건담건담~ 지구의 보라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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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6-13, 2017 22:22에 작성됨.

전쟁이란 무엇인가.

여러 답 중하나는 '고도로 발달된 물질문명과 미숙한 인간의 정신의 결함'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전쟁이 얼마나 무익하고 쓸모없는지, 그리고 얼마나  흉악한지는 누구나 하는 사실 아닌가.

이 사실은 역사 속에서 몇 번이고 인류가 학습해온 것이지만, 그것이상으로 인류는 전쟁을 반복해왔다.

토미노 요시유키는 그 메세지를 전달하기위해 '건담'을 창조해냈다. 먼 미래,  우주 도시를 개척하고 우주전함을 만들 정도의 문명은 인간들의 전쟁을 위해 이용되고있다.

아무것도 모르는 소년이 전쟁이 휘말리고 민간인이 죽는 것으로 전쟁의 범위가 어디까지 나아가는지 보여준다.

그러나, 토미노가 보여주고자 한 것은 단지 전쟁에 대한 참상 뿐은 아니었다. 이런 잘못된 기술문명의 나아감을 비판하고, 그 해답을 해놓았다. '뉴타입' 정신감응파를 이용해 어떤 기술에도 의존하지않는다. 공간, 심지어는 시간에도 구애받지않고 순수한 인간 대 인간으로서 대화한다. 그것이 뉴타입. 과학만능주의와 패권주의에 홀려 전쟁이라는 과오를 범한 인간들은 이제, 기술에서 벗어나기를 원했던 것이다.

뉴타입의 이능은 물론 허구적인 판타지지만, 그것은 토미노가 가진 신세대에 대한 기대였다. 적어도 신세대들은 소통과 이해를 통해 자신들과 같은 과오를 범하지않기를 원했을 것이다.

그러나 실패했다.

작품에서 뉴타입이라는 존재는 전쟁이라는 현실에 휩쓸려, 그저 격추왕이 되어버렸다.

작품은 시청률이라는 현실에 휩쓸려, 조기종영되었다. 지금의 결말이 정말 토미노가 원했던 결말인지는 알 수 없지만, 결국 두 주인공들이 뉴타입으로 각성하고서도 전투를 끊어내지못한 점은 아쉬울 수 밖에 없다.

그럼, 현실의 시청자이자 신세대들은 어떻게 되었는가. 실패했다. 신세대들은 칩거하는 자, '오타쿠(집)'이 되어버렸으며 인터넷이라는 더 넓은 소통의 장을 더 넓고 흉악한 분쟁의 장으로 뒤바꾸어버렸다. 오타쿠들은 서로 이해하고 존중하기 보다는 싸우다가 이내 자신들과 말하고싶은 사람들과만 소통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건담의 장대한 전투도 시작되어버렸다. 뉴타입이라는 존재는 전쟁을 마무리할 새로운 존재. 그러나 기업은 그들이 끊임없이 싸우고 자신들에게 돈을 주기를 원했다. 때문에 건담은 수백, 수천년이 지나고서도 전쟁을 계속하게된다.

또한 토미노 역시 뉴타입의 실패에 절망했다.

z건담의 뉴타입, 최고의 적성을 가진 카미유는 결국 전투 속에서 폐인으로 망가져버렸다.

v건담은 처음부터 제대로 만들지도 않았다고, 그리고 스태프집에 불이라도 지르고싶다고 감독은 전했다.

퍼스트가 방영된지 19년, 건담의 상징이자 두 주인공인 샤아와 아무로 역시 끝내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전투 속에서 실종사한다.

이미 실패한 개념에 대한 분풀이였으며 동시에 자신의 신념을 담아낸 작품에 대한 애정으로서 토미노는 건담을 만들어왔다.

 

그리고 20세기의 해가 저물어가는 날, 토미노는 다시한번 건담을 만든다. 최종장, 턴에이.

그것은 여태껏 나온 모든 건담을 역사로서 인정하고 또 모두 부정했다.

단독으로 지구의 문명을 중세로 회귀시킬만큼 흉악한 기술의 건담, 턴에이

기존건담의 모습은 깡그리 날려버리고 전원일기와도 비슷한 느긋한 이야기

그것은 건담을 인정하되, 여태껏나온 건담은 인정하지않는다는 모순적 애증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턴에이의 큰 주제는 역시 건담의 그것에서 벗어나지 않으나 몇가지 소소한 포인트들이 있다.

먼저, 턴에이는 가장 강력한 건담이지만 마을의 다리이자 빨래건조기이자 젖소를 보호하는 도구였다. 시청자들은 비웃었지만, 이것이 이 턴에이의 본질이다. 턴에이는 아무런 장비없이 핵폭발 속에서도 멀쩡하고, 자신에게 달려오는 전함을 힘으로 역주행시킬 수 있다. 전 지구권의 문명을 깡그리 날려버리기도 했다. 그러나 이 흉악한 기능을 가진 건담은 사람들의 일상을 보조하는 도구가 되었다. 그것을 그렇게 사용한 자는 누구인가. 인간이었다. 기술보다도 중요한 것은 인간의 가능성과 선택이라는 것을 토미노는 전하고싶었다.

전쟁을 위해 사용한 기술들이 지금 어떻게 선택하고 쓰느냐에 따라 일상에서 유용한 기능이 될 수도 있다고 전한 것이다.

 

두번째는 주인공은 이능이 없다.

이것은 어찌보면 그 긴 세월동안 토미노가 늙고 타협했음을 인정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기술에서 인간이 벗어난다는 뉴타입은 너무 과대한 망상이라고 인정한 다음 턴에이에서는 인간의 선택으로 기술을 평화롭게 사용하자는 메세지를 전했다.

 

턴에이는 그렇게 막을 내리고 21세기의 포문은 열렸다.

답은 무엇인가. 실패에 실패를 거듭했다.

애니메이션이라는 시장부터가 파멸해가고있었다. 토미노 요시유키, 데즈카 오사무, 미야자키 하야오....그들은 애니메이션을 소통의 도구로 보았다. 자신이 삶속에서 겪고 깨달은 메세지를 전하기위한 하나의 도구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 애니메이션을 보고 자란, 차세대 애니메이터들은 달랐다. 그들은 그저 자신이 보고자란 그런 애니메이션을 만들고싶었다. 애니메이션을 전하기 위해 애니메이션을 만든다라는 우스운 상황이 된 것이다.

전쟁이 지나 풍족해지고, 전쟁은 게임과 영화로만 배운 이들은 그저 전쟁은 자극적인 오락물에 불과했다. 더 멋지게 적을 죽이고 터트리면 될 뿐이다.

결국 애니메이션 속에서 메세지는 희미해지고 그것은 그저 그저 잘 그린 그림의 연속체로 추락해버렸다.

건담 또한 마찬가지였다.

20세기의 끝에서 마무리일 줄 알았던 건담은 기업의 수익창출을 위해 부활하여 점점 끝없이 수렁으로 빠져들어가고있다.

시드는 메세지는 명확했지만, 그 표현방식이 너무나도 불투명했고 실제로 제작진은 소통이 아닌 강압과 독재로 작품을 만들었다.

더블오는 훌륭하다고 할 수 있었지만, 전달방식의 난해함과 과도한 기술의존이라는 아쉬움을 남겼다

에이지 역시 중심주제를 잡지못하고 흔들렸다.

유니콘은 건담에 대한 오마쥬 덩어리였고, 뉴타입과 사이코프레임이라는 알 수 없는 기술에 의존해갔다.

철혈은.............여기 쓰기에는 여백이 너무 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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