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 갔다 왔습니다

댓글: 4 / 조회: 323 / 추천: 0


관련링크


본문 - 01-17, 2017 21:23에 작성됨.

 

 오후 내내 한가람미술관에 있었습니다. 전시회 보러 갔거든요. 원래 계획대로 했다면 첫 날 오후에 가서 봐야 했지만 결국 휴가 끝나기 하루 전에 가서 봤습니다. (덕분에 저녁에 놀지도 못하고 잠만 자게 생겼습니다.;; 어제도 길게 못 잤는데...)

 미술관의 1층에선 오르세미술관의 소장품들을, 2층에선 무하 재단이 소장한 알폰스 무하의 사진들과 작품들을, 마지막으로 3층에선 탐파라 렘피카 기획전을 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전부 보고 왔습니다. 다른 전시회는 나중에 갈 수 있을 때;;)

 소감부터 말하자면 정말 괜찮았습니다. 인터넷에서만 보는 그림과 실제로 보는 그림은 정말 다르거든요. 1층과 2층에서 꽤 오랫동안 머물면서 그림들을 즐기고 왔습니다. 촬영만 가능하다면 모든 작품들을 담고 싶을 정도 였습니다.(그 대신 피 같은 5만원을 내고 두 전시회의 도록을 샀습니다.)

 일단 첫 번째 전시회인 오르세미술관 전. 주로 19세기의 회화들을 전시하는 곳에서 갖고 온 그림들이라 정말 익숙했습니다. 물론 정말 유명한 작품들은 몇 점 없었지만(밀레의 이삭줍기 정도나 알고 보러 갔습니다.), 훌륭한 그림들은 많이 보고 왔습니다.

 아는 게 전무해서 오디오 가이드를 대여해 전시회의 그림들을 감상했습니다. 백 점이 넘는 그림들 중에서 22점 정도를 소개해주던데, 제가 모르던 부분을 알려준 건 좋았습니다. 하지만 제공해주는 설명에서 추상적인 부분이 적잖아서 이해하느라 고생 좀 했네요.;;

 그렇게 한참동안 그림들을 감상하고 있을 동안 갑자기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왔습니다. 2시 부터 도슨트가 몇몇 그림들을 설명해주기 시작했거든요. 안 그래도 방학시즌이라 사람들로 미어터질 지경이었는데 도슨트가 제가 있는 구역으로 넘어왔네요?

 그때 제가 시슬레의 그림 톤을 보면서 우유를 푼 라면 국물을 떠올리며 똥폼을 잡고 있었는데, 제 주변이 사람들로 꽉 찼습니다. 그리고 도슨트가 들어왔죠. 우유 푼 라면 국물은 무슨, 핑크톤이었다네요. 어쨌든 간에 저는 다른 그림을 보려고 움직이려고 했지만, 그러기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아서;; 어차피 도슨트도 거기서 볼 일이 없었는지 그냥 다음 작품으로 넘어갔습니다. 미술관에서도 콩나물 시루 꼴을 면하지 못할 줄은 상상도 못 했습니다.

 도슨트의 강연이 끝나는 동시에 수많은 사람들이 출구로 나가거나 다른 작품들을 더 자세히 보려고 지나간 곳으로 다시 돌아갔습니다. 물론 저는 아직도 볼 작품들이 한참 남았기 때문에 계속 전진했습니다. 그리고 깨달았습니다. 설명을 제공하는 그림들의 근처에는 비슷한 소재와 표현의 그림들이 있더군요. 아무 이유 없이 배치한 게 아니라서 놀랐습니다.(제 반응이 이상한 거겠죠?) 그렇게 거의 세 시간을 1층에서 머물렀습니다. 나중에 그림의 갯수를 확인하니 못 해도 100개는 넘어가더군요.

 2층에는 제가 미술관에 온 목적인 알폰스 무하 전시회를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들어가기 전에 도록을 샀는데, 자그만치 3만원이나 지출했습니다.(물론 퀄리티는 그 문제를 아무 것도 아닌 걸로 여길 수 있을 정도로 훌륭하지만.) 오덕 그림체의 조상님을 영접한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들어왔는데, 나중에는 체력이 방전돼서 그림들에 집중할 수 없었습니다. 1층에서 시간을 너무 끈 게 흠이었습니다.

 전시회의 입구에는 무하의 사진들이 있고, 소개하는 글이 있고, 그리고 우키요에 한 점이 있었... 거든요? 지금이야 해당 작품이 아르누보의 기원을 설명하기 위해 걸려있었단 걸 알고 있지만 그땐 몹시 당황했습니다. "예쁘긴 한데 왜 이게 걸려 있지?"

 그리고 그 뒤로 무하의 작품들이 계속 나오더군요. 소장품들과 스케치들에도 눈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체코에서 자란 어린 시절과 시대상과 맞물린 그의 민족주의, 파리에서 성공하기 이전의 그에게 영향을 끼쳤던 학생 시절과 판화 모음집, 그리고 우키요에, 미국에서 흥행가도를 달리던 그의 모습을 보여주는 행적들을 포함한 모든 것들에요. 작품 외적인 행적들만 해도 정말 비범하더군요.

 그런 그의 작품들이요? 제가 주변의 지인들에게 꼭 보라고 전도하고 다닐 정도였습니다. 그 전설적인 지스몬다의 포스터부터 책을 위한 삽화들, 그리고 공식 행사의 팜플렛들은 빙산의 일각이더군요. 과자 포장과 담배종이 포스터의 디자인에 홀릴 뻔 했습니다. 인물 형상도 그렇고, 그 인물들을 주변에서 장식하는 조형적인 자연물의 이미지도 굉장했으니까요. 똑같은 스타일을 계속 보니까 질릴 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지만 그림 하나하나가 다른 구도와 다른 비주얼을 갖고 있어서 감탄했습니다.(그것도 원본 그대로!)

 그런 전시회에도 아쉬운 구석이 없지 않았는데 그건 바로 프롤로그에 집어넣어야 할 "영향을 받은 작가들"의 작품을 맨 마지막으로 몰아넣었단 겁니다. 그래서 처음엔 적잖게 실망했습니다. 왠지 모르게 전시회의 통일성이 무너진 것 같단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으니까요.(그러면서도 감탄하면서 하나하나 봤습니다.) 로도스 전기의 삽화를 담당한 이츠부지 유타카 씨부터 CLAMP의 만화들, 그리고 한국의 순정만화 작가들의 그림들이 한 곳에 있었지만 마찬가지로 지대한 영향을 받은 짐 리 스타일의 코믹스는 문전박대 당했더군요. 좀 지엽적인 컬렉션이 아니었나 싶네요.

 (마지막으로 본 건 탐파라 렘피카 전시회였는데... 제가 썰을 풀다가 화를 낼 수도 있어서 이건 생략하겠습니다. 도록 두 권에 5만원을 쓴 게 비록 지갑을 얇게 만들었어도 후회는 없었건만 이건 정말 돈이 아깝단 생각을 하게 만든 전시회였습니다.)

 PS. 이렇게 길게 쓰는 것도 일이네요. 창작하시는 분들 대단해요.

0 여길 눌러 추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