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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한 해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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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4-03, 2017 00:00에 작성됨.

 

끼이익.

 

조심스럽게 닫혀있는 문을 열자, 아직은 조금 쌀쌀한 바람과 함께 아무도 없는 텅 빈 옥상의 전경이 눈 앞에 들어왔다. 나는 훅 불어들어오는 차가운 공기를 한 움큼 집어삼키고는 한 걸음, 두 걸음 걸어나가 난간의 바로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불어오는 바람이 아직 몸에 남아있던 따스한 기운을 조금씩 씻겨보내는 것만 같았다. 아래층과는 달리 무척이나 조용하고, 어두운 이 곳. 좀 전만 하더라도 주변을 가득 채우고 있었던 웃고 떠드는 소리들은, 무척이나 오래된 일처럼 아득하게만 느껴졌다. 어쩌면, 처음부터 없었던 일이 아니었을까- 할 정도로.

 

에이, 그런. 그럴 리는 없지. 나는 쓸데없는 생각을 그만두고는 난간에 손을 슬쩍 가져다 대었다. 이제 정말 봄이라고는 하지만, 그게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서늘한 감촉이 손을 타고 퍼진다. 그렇지만 나는, 난간에서 손을 떼는 일 없이 그대로 고개만을 조금 들어 눈 앞에 펼쳐진 풍경을 바라보았다.

 

온통 새까만 도화지 같은 하늘을 베이스로, 여기저기서 하얗고 노란 빛을 내고 있는 크고 작은 건물들. 생각보다 불빛이 많은 듯 보였지만 뭐어, 아직은 저녁일테니 당연한 걸까나.

 

"후우."

 

앗, 한참 주변을 구경하고 있자니 저도 모르게 그만 한숨이 나와버렸다. 별로 지쳤다던가 힘들다던가 하는 건 아닌데. 어째서일까나. 오늘은, 한숨이 전혀 어울리지 않는 날. 다른 무엇도 아닌, 다른 누구도 아닌 내 생일인데. 방금 전만 하더라도 모두가 날 위해 열어준 생일 파티를 한참 즐기고 있었던 참이었다.

 

그런데도, 어째서일까나.

 

톡톡. 나는 아직 차가운 난간을 손가락 끝으로 두들겨보며 그 이유를 생각해보았다. 음, 여기가 아래층에 비해 유달리 조용해서인걸까? 음, 그것도 그렇겠지만 뭔가 또 다른 이유가.....이제 생일이라고 할 수 있는 시간이 그리 많이 남지 않아서, 인걸까?

 

그래,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나는 어두워서 잘 분간도 되지 않는, 머나먼 지평선을 주의깊게 바라보았다. 물론, 그런다고 해서 저물었던 해가 다시 돌아오거나 하지는 않는다. 그래도 나는, 약간의 아쉬움이 담긴 눈을 그 쪽에서 떼버릴 수는 없었다.

 

툭, 툭.

 

손 끝이 또 한 번 움직이자, 여전히 차가운 난간이 작게 소리를 냈다. 그에 맞추기라도 한 듯 나는 또 한 번 작게 한숨을 쉬었다. 뭔가, 아쉬웠다. 어딘가 부족한 느낌이 났다. 살짝 쓸쓸한 기분도 들었다. 생일을 보낸다는 건, 이런 느낌이었나? 살면서 처음으로 미묘한 감정을 느낀 나는 난간을 쥔 손등에 얼굴을 파묻었다.

 

앞머리를 살짝 흔들고 지나가는 바람은 차가웠다. 다른 날보다도 훨씬 더. 이제 그만 내려가는 게 좋았다. 괜히 오래 있다간 감기에 걸릴지도 몰랐다. 그렇지만 나는 어쩐지 이 쓸쓸한 장소에 계속 있고 싶었다.

 

끼이익.

 

그 때, 등 뒤에서 작게 문 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고개를 들고 천천히 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등을 돌렸다.

 

"하루카, 여기 있었네."

 

익숙한 목소리와 함께, 밤하늘에 녹아들 듯 말 듯한 검푸른 긴 머리카락이 바람을 타고 살며시 흔들렸다. 나는 그 사람, 치하야쨩을 향해 작게 웃어보였다.

 

"음, 그게 잠깐 바람 좀 쐴까 해서."

 

터벅, 터벅. 그 말을 뒤로 치하야쨩이 이 쪽으로 천천히 다가와 내 옆에 섰다. 나는 별 달리 할 말 없이 앞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러자 곧 난간을 붙잡고 있는 손 바로 옆에, 또 다른 손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손의 주인은 나와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는 작게 입을 열었다.

 

".....여긴 조용하네."

"응."

 

그저 짧게만 대답하자, 바로 옆에 있는 사람은 조금 망설이다가도 이 쪽을 돌아보았다. 곧은 시선에는 언제부터인가 걱정 또한 담겨있었다. 이런, 그 정도까지는 아닌데. 쓸데없는 걱정을 끼쳐서 미안해진 마음으로, 나는 천천히 말을 풀어내며 아까부터 자리잡고 있던 감정을 조금씩 섞어넣었다.

 

"아하하, 그냥, 좀 신기한 기분이 들었어. 작년만 하더라도 이렇게나 떠들썩한 생일은 상상도 못했거든."

 

이 사무소에 들어오기 전, 내 생일을 축하해주는 건 몇몇 친구들과, 부모님 정도였다. 그것만으로도 무척이나 고맙고도 즐거운 일. 아이돌 후보생이 되어서는, 축하해주는 사람이 열 몇 명 정도 더 늘었다. 말로 다할 수 없을 정도로 감사했다.

 

그리고 지금 와서는.

 

정말 상상도 못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내 생일을 축하해주었다. 어제부터 해서 사무소로 들어온 팬레터며 선물이며 하는 게 한가득. 솔직히, 아직도 얼떨떨할 정도로, 아주 정말 놀랍고도, 즐겁고도, 기쁘지만서도......

 

"모두들 너무 많이 선물을 보내와서, 어떻게 해야할까 솔직히 고민이네. 어쩌면 내 방을 가득 채우고도 남아버리는 게 아닐까나."

"그렇다면 내년에는 좀 더 넓은 집으로 이사하는 게 어떨까. 하루카 정도라면 충분히 가능할 것 같은데."

 

농담 또한 섞은 한 마디에 치하야쨩도 농담으로 응수했다. 그러나 아직, 걱정이 담긴 시선은 거두지 않은 채.

 

"에이, 치하야쨩도 참. 그 정도까지는 아니야."

 

나는 농담에 또 한 번 복잡한 심정을 슬쩍 얹어 대답했다. 그러자 치하야쨩은 싱긋 웃어보이고는 난간에서 손을 떼어, 대신 내 손등에 얹고는 이렇게 말했다.

 

"그렇게 말하지만, 어딘가 좀 아쉬워보이네."

"후후, 우후훗. 그럴까나. 응, 그렇네."

 

이 이상 숨겨봤자 소용없었다. 나는 항복했다는 표시로 웃어버리고는 치하야쨩을 불렀다.

 

"있지."

"응."

"아무리 즐거운 날이라도 오늘 하루로 끝나버리고, 내일부터는 다시 평범한 날이 돌아오는 거네."

 

물론, 시간이란 돌고 도는 것인 만큼 언젠가 또 한 번 생일이 돌아오거나 하겠지만.....그 생일이, 이 생일 만큼 즐거울 거라는 보장은, 아마 없지 않을까. 나는 시간이 지나면서 완전히 구체적인 모습을 갖춰버린 미묘한 감정을 입에 담았다.

 

"생일이란 거, 단 하루만으로 끝나버리는 건 좀 아쉽다고 생각하지 않아?"

"글쎄....."

 

치하야쨩은 말 끝을 끌며 잠깐 생각에 잠기는 듯 했더니, 곧 부드러운 웃음과 함께 고개를 가로로 저었다.

 

"그렇구나."

 

그래, 생일이라고 해도 결국 무수한 날들 중 하나일 뿐. 그게 지나간다고 이렇게나 아쉬워하는 내가 너무 아이 같은 거겠지. 마음 속으로 그렇게 결론을 내리려는 순간이었다.

 

"있지, 하루카. 그렇게 아쉬워할 건 아니라고 생각해."

"응?"

 

치하야쨩에게서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대답이 날아왔다. 놀란 내가 멍하니 두 눈을 껌뻑거리고 있자, 치하야쨩은 가벼운 웃음과 함께 나직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나갔다.

 

"생일이라는 건, 어쩌면 멋진 한 해의 시작이 아닐까."

"에.....?"

"앞으로 그보다 훨씬 즐거운 일들이 하루카를 기다리고 있을 수도 있다는 의미."

 

스스로 말하고도 조금 멋쩍었는지, 치하야쨩은 말을 다 하기도 전에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나는 픽 웃으면서, 손등에 올려져 있던 치하야쨩의 손을 꼭 감싸쥐었다.

 

"치하야쨩이 그런 말을 하다니, 조금 의외네."

".....너한테 배운 거야."

"헤에, 정말?"

 

끄덕끄덕. 치하야쨩은 말없이 고개만을 움직였다. 이상하네, 내가 언제부터 그런 부끄럽고도 로맨틱한 말을 가르쳐주었던 걸까. 그런 기억 없는데. 괜히 거짓말 하는 거 아닐까? 치하야쨩이 내뱉은 말의 진위 여부에 대해 생각해보고 있자니, 누군가가 이 쪽의 손을 슬쩍 잡아당겼다.

 

그에 이끌려 그 쪽을 돌아보자, 조금 붉은 기가 도는 단정한 얼굴이, 이리저리 눈치를 보면서도 결국은 이 쪽을 향하고 있는 두 갈색 눈이, 가까이에.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은게 아닐까. 어차피, 내년이 되면 또 생일이 돌아오니까. 그리고 그 때는 오늘보다도 훨씬 기쁜 날일테고."

 

만약 그렇지 않더라도, 모두와 함께 그렇게 만들어보일테니까. 마지막으로 아주 가까이, 지근거리에서 작고 얇은 입술이 그렇게 속삭였다.

 

"풋, 후훗, 크흣."

"뭐야, 하루카. 기껏 말했는데."

"아니, 아니야. 그게, 숨이 닿아서, 그, 간지러워서."

"앗, 그, 그래....."

 

약 절반 정도의 이유를 말하자 깜짝 놀란 치하야쨩이 한 두 걸음 뒤로 물러났다. 그녀가 손마저 놓으려고 하는 걸, 이 쪽이 단단하게 잡아 막아내었다.

 

"하, 하여튼 그래서, 그러니까....."

"아하핫, 그렇게 말씀하시니 하루카 씨는 벌써부터 기대가 되는데요. 이걸 어떻게 책임 져주셔야 하는 걸까."

"정말, 놀리지 말아줘."

 

말은 그렇게 했지만, 치하야쨩은 그리 불쾌하지는 않은 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생일. 멋진 한 해의 시작. 앞으로 돌아올 다음 생일은, 이보다 더. 방금 들었던 말을 곱씹어보자 절로 입가에는 미소가 그려졌다.

 

"뭐, 어쨌든. 치하야쨩이 그렇게 말한다고 한다면야, 그런 거겠지?"

".....지금 와서 아니라고 말하기에는 체면이 안 서네."

 

치하야쨩 또한 어쩔 수 없다는 듯 옅게 웃었다. 나는 다른 한 손을 들어 전부터 잡고 있던 치하야쨩의 손을 양 손으로 꼭 감싸안았다. 그러고는 누가 들을세라 작게 말했다.

 

"그럼.....즐거운 마음으로 기다려보도록 할게."

 

말을 끝마치기 무섭게 휘이잉, 하고 조금 강한 바람 한 줄기가 우리 둘 주변을 빠르게 스쳐지나가버렸다. 이래서야 내 한마디는 누가 들어볼 사이도 없이 흩어지고 말았을 것이었다.

 

뭐어, 들으라고 한 말은 아니었으니 아무래도 상관없는 이야기이려나.

 

그렇게 생각하기 무서운 순간, 차가운 손등에 덧대어지는 또 하나의 손.

 

이런, 치하야쨩을 얕보는 게 아니었구나. 자신만만한 표정을 짓고 있는 치하야쨩에게, 나는 멋쩍은 웃음을 돌려주고는 새까만 풍경을 다시 한 번 눈에 담았다. 저녁, 아니 이제는 밤인가. 우리 둘밖에 없는 텅 빈 옥상.

 

여전히 봄이라고는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조금 추운 이 곳.

 

그렇지만 서로 감싸쥐고 있는 두 손만큼은, 따스한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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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흑흑 하루카 생일 축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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