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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분하게 느긋하게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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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4-02, 2017 19:30에 작성됨.

 

---15

“치하야? 너 지금?”

 

“아? 나도 모르게...”

 

무심코 한 말에 당황스러워하는 치하야였다.

 

“이해해. 야요이가 어지간히 귀여워야 말이지.”

 

“저기 하루카.”

 

“응?”

 

“나 정말로 이렇게 행복해도 괜찮은 걸까?”

 

“행복이라니?”

 

하루카는 생소한 단어를 꺼낸 치하야를 빤히 바라봤다.

 

“너와 타카츠키 양, 프로듀서, 다른 동료들과 함께 하는 나날들이 행복해. 하지만...”

 

치하야의 시선이 한 액자로 향했다. 하루카도 그 액자 속 인물을 알고 있었다. 과거로 남아버린 치하야의 하나뿐인 동생, 키사라기 유우였다.

지금 새로운 행복을 깨달아가면서도, 치하야는 아직 과거를 놓지 못했다. 그리고 늘 ‘행복해도 되는가?’라는 의문과 마주했다. 그러면서 망설이고 있었다.

 

“나, 정말 이렇게 살아도 괜찮은 걸까?”

 

동생을 과거에 남겨 두고 온 슬픔일까? 아니면 마지막을 바라만 봤던 자신에 대한 죄책감일까? 모든 얘기를 들었던 하루카도 그것이 치하야의 마음에 푸른 차가움을, 그리고 프로듀서가 얘기했던 마음속 소용돌이를 일으키는 것으로 생각해왔다.

하루카는 쓸쓸한 눈으로 액자를 바라보는 치하야를 더는 지켜만 보고 있을 수 없었다.

 

‘남은 사람은 계속 살아가야 돼.’

 

하루카는 치하야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잡은 손으로 하루카의 따뜻한 마음이 치하야에게 전해지기 시작했다.

 

“하루카?”

 

“난 치하야와 함께 you-i 활동을 하면서 새삼 다시 보게 됐어. 치하야는 내가 알던 것보다 정말로 행복한 사람이라는 걸 새삼 느꼈어. 특히 노래할 때 말이야.”

 

“왜 그렇게 생각해?”

 

“같이 무대에 섰을 때 치하야를 보면 꼭 공주님같이 아름다워. 누가 지었는지 몰라도 ‘푸른 가희’란 별명이 정말 어울린다니까.”

 

“아니야. 나한텐 과분한 별명이라고 생각해...”

 

“아니야. 나랑 야요이도 그렇고 모두들 치하야가 노래하는 모습이 아름답다고 하는걸? 또 함께 노래하다 보면 나도 행복해져.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모두 치하야가 행복하게 노래를 불러서 그런 게 아닐까?”

 

“내가...?”

 

“이런 얘기하기 조심스럽지만... 아마 동생도 치하야가 지금 행복하게 노래 부르는 걸 좋아하지 않을까??”

 

“유우...”

 

하루카는 치하야의 손을 더 꼭 잡아주었다. 흔들리는 치하야의 눈빛을 보고 혹시나 다시 소용돌이에 빠질까 걱정됐다.

하루카의 손을 잡은 채 치하야는 옛날을 떠올렸다. 유우는 치하야가 노래 부르는 걸 가장 좋아했다. 울다가도 치하야의 노래를 들으면 언제 울었냐는 듯이 활짝 웃었다. 그리고 항상 치하야에게 먼저 노래해달라고 조르기도 했다.

 

‘노래해. 노래해 줘, 누나.’

 

아직도 유우의 그때 그 모습과 목소리가 선명했다. 그만큼 슬픔으로 만들어지는 소용돌이에 빠지기 쉬웠다. 그러나 지금은 그러지 않았다. 새로운 행복을 담아내며 끝없을 것 같던 슬픔이 더는 커지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 의지가 되는 한 사람이 따뜻하게 손을 꼭 잡아주고 있었다.

 

“유우도 정말 지금의 나를 좋아할까?”

 

“분명 동생도 지금의 치하야를 보면 기뻐할 거야. 누구보다 치하야의 노래를 좋아했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유우를 잊을 수는 없어.”

 

“동생을 잊으라는 얘기는 아니야. 잊지 않으면서, 대신 행복까지 품어도 된다고 생각해. 한 가지 마음만 담기엔 사람의 마음은 굉장히 넓잖아.”

 

“하루카...”

 

“그러니 난 지금 치하야가 행복하게 노래해도 된다고 생각해.”

 

생긋 웃는 하루카의 말에 치하야는 소용돌이에 빠지지 않았다. 장황하지도, 길지도 않은 말이었지만, 치하야에게 진심으로 이런 위로를 해준 것은 하루카가 처음이었다. 그래서 하루카의 따뜻한 마음이 치하야의 마음에 더욱 와 닿았다.

처음 765 프로에 들어왔을 때, 모든 것이 낯선 치하야에게 하루카가 먼저 다가왔다. 유우가 떠난 날부터 늘 혼자였던 치하야는 그런 하루카가 낯설었다. 하지만 항상 고마워했다. 그런 하루카 덕분에 다른 사람들과도 가까워질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하루카에게 진심 어린 감사의 말을 한 번도 하지 못했다. 그래서 지금은 용기를 내기로 했다.

 

“하루카, 정말 고마워.”

 

“응?”

 

“내게 먼저 다가와 줘서... 그리고 늘 힘이 되어줘서... 고마워.”

 

도통 꺼내지 않던 말을 하려 하니 얼굴이 달아올랐다. 그러나 치하야는 용기를 내었다.

 

“그러니 정말 고마워. 앞으로도 잘 부탁할게.”

 

“우린 동료인걸. 나도 치하야에게 다시 잘 부탁할게. 우리 톱 아이돌이 될 때까지 열심히 하자.”

 

“응. 그러자.”

 

치하야와 하루카는 서로를 향해 웃었다. 치하야도 누군가를 향해 이렇게 마음 편히 웃은 것도 오랜만이었다. 그렇게 하루카는 치하야에게 소중한 사람이었다.

치하야는 계속 자는 야요이를 쳐다보았다. 마음속에 용기를 주는 야요이도 치하야에게 소중한 사람이었다. 그러고 보니 프로듀서가 온 이후 둘과 더욱 가까워졌단 생각이 들었다.

 

“프로듀서가 오고 나서 많은 게 바뀐 것 같아. 노래 부르는 게 더 행복해졌고...”

 

“맞아. 특히 자주 웃게 됐잖아. 나도 무대에서 웃는 치하야가 그렇게 예쁠 줄 몰랐어. 아이고, 공주님. 왜 이렇게 예쁘셔요.”

 

하루카가 짓궂게 치하야의 볼을 살짝 꼬집자, 치하야는 도리어 부끄러워했다.

 

“하, 하루카! 공주님이라니! 낯 뜨거운 얘기는 하지 마.”

 

“난 진심인걸? 사장님이 우리한테 했던 얘기가 있잖아. ‘제군들, 아이돌은 본연의 모습으로 행복을 주어야 한다네.’라고.”

 

하루카는 타카기 사장의 말투를 흉내 냈다. 그 모습에 치하야도 키득키득 웃었다.

 

“응. 그랬지.”

 

“그 말이 틀리지 않았단 걸 느낀 게 프로듀서 씨 덕분이야.”

 

“프로듀서?”

 

“프로듀서 씨가 노력한 덕분에 치하야가 행복하게 노래를 부르고 있잖아. 그래서 그 행복이 노래로 전해져서 그런가, 치하야가 공주님처럼 더 예뻐 보여.”

 

확실히 하루카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처음 유닛 활동을 한다 했을 때 반발심이 없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러면서 노래하는 행복을 새로 깨달았다.

 

“응... 그런 거 같아.”

 

“그렇다면 나중에라도 한 번 프로듀서 씨에게 제대로 감사 인사를 하는 건 어때?”

 

그러고 보니 프로듀서에게 따뜻하게 대한 적이 별로 없었다. 여전히 프로듀서에겐 차가웠고, 업무상 파트너의 선을 넘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무언가에 쫓기듯이 노래하던 자신에게 차분하게, 느긋하게 둘러보게 해준 사람이 프로듀서였다.

그렇게 프로듀서는 치하야를 항상 믿어주고, 응원하고 있었다. 치하야는 자기도 모르게 그 믿음과 응원의 증거인 보라색 히아신스를 쳐다보았다.

 

“프로듀서...”

 

“어때, 프로듀서 씨도 우리 동료잖아. 나한테 고맙다고 한 것처럼 하면 돼. 어렵지 않지?

 

그동안 치하야는 섣불리 감사 인사를 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사람 대하는 게 아직은 서툰 치하야에겐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 그 용기를 지금 하루카가 채워주고 있었다.

 

“그럼 해볼게.”

 

“그럼 약속~.”

 

“응. 약속하자.”

 

치하야와 하루카는 조용히 서로 새끼손가락을 걸었다. 그리고 하루카는 길게 하품을 했다.

 

“많이 졸린가 보구나. 그만 자자. 하루카, 잘 자.”

 

“응. 치하야도 잘 자.”

 

다시 한번 웃어준 하루카는 곧 스르르 잠이 들었고, 치하야는 아직 잠에 들지 않았다. 다소 무거운 마음이 완전히 가신 것은 아니었지만, 하루카의 격려 덕분에 마음이 가벼워졌다.

 

‘행복...’

 

오래 잊고 지냈던 행복을 정작 다시 마음에 담자 어쩔 줄 몰랐다. 그러나 프로듀서와 동료들, 팬들이 행복을 놓치지 않게 도와주고 있었다. 모두에게 감사함을 다시 느끼는 치하야였다.

 

단풍이 한창인 시기, 765 프로의 올스타 라이브가 크리스마스 날로 잡혔다. you-i를 비롯하여 류구, 페어리는 물론 솔로 멤버들까지 총망라하는 대형 라이브 콘서트였다.

기존의 자기 곡은 물론, 모두 함께 하는 단체곡이나 특별 듀엣곡도 새로 연습해야 했다. 그래서 프로듀서와 리츠코는 레슨실에 모인 아이돌들과 공연 계획을 논의하고 있었다.

 

“그럼 12명 단체곡은 ‘idolm@ster’, ‘Ready’, ‘자신☆Rest@rt’ 세 곡으로 정하도록 하자.”

 

“리츠코, 미키는 ‘Change’도 하고 싶단 거야.”

 

“미키, ‘씨’를 꼭 붙이라고 했을 텐데.”

 

“알았어, 리츠코 씨.”

 

“우리도 이제 유닛도 많아졌고, 솔로 곡까지 부를 걸 생각하면 단체곡을 더 넣긴 힘들 것 같아서 내린 판단이야. 그리고 스케쥴 상 12명 단체곡 연습을 위해 낼 시간도 부족해.”

 

“그럼 유닛당 두세 곡 정도 부르는 것으로 하고, 개인 무대랑 듀엣 무대를 추리도록 하죠”

 

우선 3부로 구성된 올스타 라이브의 메인인 류구는 3부에서 데뷔곡인 ‘Smoky Thrill’, ‘일곱 색깔 버튼’ 등 2개 곡을, 페어리는 2부에서 ‘오버 마스터’와 신곡 ‘큥~ 뱀파이어 걸’를 부르기로 정했다. 1부 메인인 you-i도 데뷔곡 ‘fo(u)r’와 준비 중인 신곡 ‘당신의 한마디’를 올스타 라이브 때 부르는 것으로 정했다.

 

“자, 그렇다면 솔로나 듀엣 무대 편성인데 타카츠키 양은 후타미 자매분들과 미나세 양하고 ‘어른의 시작’, 여기에 가나하 양까지 포함해서 ‘비죠나리’까지 하기로 미리 정해졌군요. 그럼 아마미 양과 치하야 양은 어떻게 할래요? 치하야 양은 솔로곡 위주로…”

 

“프로듀서, 저 이번 올스타 라이브에서 듀엣 무대도 해보고 싶습니다.”

 

공연 계획을 써내려가던 프로듀서는 얼빠진 표정으로 치하야를 바라봤다. 치하야가 누군가와 듀엣을 하고 싶다는 의견을 내놓은 것은 처음 듣는 소리였다. 프로듀서는 얼떨결에 치하야에게 되물었다.

 

“갑자기 왜요?”

 

“왜라뇨? 듀엣을 해야 음악 세계가 넓어진다고 프로듀서가 얘기하지 않았습니까. 어차피 올스타 라이브에서 합동 무대도 해야 되니까...”

 

주저하는 듯, 하지만 분명히 말하는 치하야를 보고 프로듀서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좋아요. 그럼 치하야 양은 누구랑 듀엣하고 싶은지 생각했나요?”

 

“저요! 저 치하야랑 꼭 듀엣하고픈 노래가 있어요.”

 

“하루카?”

 

“’My Best Friend’ 이거 어때? 우리한테도 딱 맞는 노래잖아.”

 

“하지만 이걸 내가 잘 부를 수 있을까...”

 

“아니야. 노래 부르는 재미가 있어서 치하야도 좋아할 거야. 자, 여기 악보.”

 

치하야와 하루카는 악보를 보며 검토하기 시작했다. 악보를 꼼꼼히 살펴보는 치하야는 살짝 들떠 보였다. 그런 치하야를 보고 하루카도 흐뭇했고, 프로듀서와 야요이도 흐뭇했다. 다만 먼저 무대가 편성된 야요이는 아쉬운 눈치였다.

 

“저도 치하야 씨랑 듀엣하고 싶은데... 무대가 먼저 잡혀서 아쉬워요.”

 

“그래도 you-i로는 같이 서잖아요?”

 

“그러니 you-I 무대도 앞으로 열심히 준비하려고요! 웃우!”

 

그리고 치하야는 유키호에게 먼저 듀엣 무대를 제안했고, 유키호는 당황하면서도 수락하여 듀엣 무대가 결성되었다. 마찬가지로 치하야에게서 듀엣 무대 제안을 받은 미키는 두 눈을 반짝이며 흔쾌히 동의했다.

치하야는 유닛 활동, 솔로 활동에 올스타 라이브 준비까지 정신이 없었다. 그리고 틈틈이 개인 신곡까지 준비했다. 프로듀서 역시 올스타 라이브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서로 바빠지다 보니 프로듀서도, 치하야도 서로에게 많은 관심을 쏟기 힘들어졌다.

그래도 프로듀서는 치하야에 대한 걱정을 접어둘 수 있었다. 유닛 활동을 시작하고 나서 치하야는 한층 밝아졌고, 무대에서도 달라졌다. 무대에서 웃지 않던 ‘푸른 가희’는 점차 웃기 시작했다. 항상 노래를 마칠 때마다 치하야는 관객들을 한참을 바라보고 내려왔다. 치하야의 눈빛엔 감동과 행복이 서려 있었다.

그리고 창법도 많이 달라졌다. ‘파랑새’ 등 솔로곡을 불러도 푸른 차가움이 소용돌이치지 않았다. 오히려 차분하게 부르게 되면서 듣는 사람도 편안해졌다. 그리고 노래하는 치하야는 프로듀서가 보기에도 그 누구보다 행복해 보였다.

you-i의 저녁 스케쥴이 끝나고, 모처럼 야요이와 하루카를 역으로 바래다주고 치하야의 집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프로듀서, 감사합니다.”

 

그동안 서로 바쁘게 지내느라 아직 하지 못한 말을 치하야가 용기를 내 꺼냈다. 들으리라 생각도 못 했던 말에 프로듀서는 핸들을 놓칠 뻔했다.

 

“갑자기 왜 그래요?”

 

“그동안 제게 노래 말곤 아무것도 없었어요. 그 날 이후, 무언가에 쫓기듯이 노래를 불렀어요. 그래서 지금처럼 마음 편히 부른 적은 없었던 것 같아요.”

 

아마 유우의 얘기인 것 같았다. 하지만 치하야는 마냥 슬퍼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젠 제 노래로 동료들도, 팬들도 행복해지는 게 느껴져요. 그래서 저도 기쁩니다. 노래하는 것이 이렇게 행복한 일이었다니... 다시금 깨닫고 있습니다.”

 

그동안 프로듀서는 간혹 치하야의 미소를 보았지만, 지금처럼 수줍어하는 미소는 처음이었다.

 

“사실 저도 요즘 치하야 양의 노래를 들을 때마다 그걸 느꼈어요.”

 

“네? 어떻게요?”

 

“치하야 양의 노래를 들을 때마다 그런 느낌이 왔습니다.”

 

‘느낌’이란 단어에 그게 무어냐고 되묻는 치하야의 차가운 눈빛이 오지 않을까 싶었다. 그러나 치하야는 조용히 웃었다.

 

“프로듀서라면 역시 그렇게 말할 줄 알았습니다”

 

“어느새 제 인상이 그렇게 박힌 건가요?”

 

“그게 프로듀서다운 모습인걸요. 하지만 그 느낌이... 틀린 것만은 아니네요. 보컬리스트가 할 일은 아니지만, 춤도 추고 다른 노래도 부르면서 음악 세계가 넓어지는 것 같습니다.”

 

“뭐, 이렇게 생각하면 되지 않을까요? 아이돌은 사람들에게 행복을 주는 것이다, 그리고 치하야 양은 노래로 행복을 전파하는 아이돌이라고요. 노래로 모든 걸 전달하는 보컬리스트처럼 말이죠.”

 

“행복을 노래로 전한다...”

 

“제가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것도 치하야 양이 지금 행복하게 노래 불러서죠.”

 

“프로듀서도 그렇게 느끼셨군요. 하루카도, 타카츠키 양도, 많은 사람들도 그렇게 얘기했습니다.”

 

그날 밤 하루카와 했던 얘기와 비슷하게 말하는 프로듀서였다. 그리고 치하야는 다시 마음속에 다시 자리한 행복을 어루만졌다.

 

‘정말 내가 행복한 거구나.’

 

“저번에 저한테 노래하면 자기 안의 세계에 빠져 신경 쓸 여유가 없다고 얘기했죠? 하지만 지금은 어떤 거 같아요?”

 

“확실히 노래 부르는 즐거움이 늘어났다고 해야 할까요? 프로듀서 덕분에 그걸 깨달은 것 같습니다. 다시 감사드립니다.”

 

“감사하긴요. 그러니 앞으로 항상 명심하세요. 차분하게, 느긋하게.”

 

“차분하게, 느긋하게… 알겠습니다.”

 

치하야는 다시 운전에 집중한 프로듀서를 슬며시 지켜봤다. 누구보다 노래를 사랑했던, 하지만 이제는 부를 수 없는 이 사람은 자기를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결과, 열린 치하야의 마음속엔 새로운 행복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그래서 용기 내어 고맙다는 말을 한 것이었다.

이제는 프로듀서가 믿음직스러운 치하야였다.

 

‘이 사람도 이젠 내 동료야.’

 

“저기 프로듀서, 혹시 작사 작곡도 하실 줄 아십니까?”

 

“잘은 아니어도 공부는 했죠. 그런데 왜요?”

 

“혹시 배울 수 있을까 해서… 노래로 사람들에게 더욱 전하고픈 얘기가 많아졌습니다. 그러려면 직접 노래를 만드는 게 가장 낫다고 판단했습니다.”

 

“최선을 다해 도와드릴게요.”

 

많이 달라진 치하야의 모습을 보면서 프로듀서는 자신이 잘못 생각한 것을 깨달았다.

오직 노래뿐인 것이 치하야 본연의 모습이 아니었다. 치하야의 가려진 본연의 모습은 그저 단순히 노래 부르는 것이 행복한 아이였다. 함께 노래하는, 그리고 듣는 사람의 마음을 느끼기 시작하면서 치하야는 그 행복을 되찾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아직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그 소용돌이 속에 있던 분노와 원망은 대체 뭐지?’

 

지금은 느껴지지 않았지만, 예전엔 분명히 느꼈던 감정이었다. 동생 얘기를 들었을 땐 동생의 비극을 바라만 봤던 자신에 대한 분노라고 생각해봤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기엔 너무나 진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원망’을 설명하기엔 부족했다. 치하야 자기 자신을 향한 것 같진 않았다.

그냥 지나친 작은 불씨가 커다란 불길로 커질 수 있기에, 혹시나 자기가 놓친 것이 있나 생각해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기엔 몸도 마음도 너무 피곤했다.

어느덧 차는 치하야의 집에 다다랐다.

 

“오늘도 푹 쉬어요. 그럼 내일 봐요.”

 

“저기 프로듀서.”

 

“네?”

 

“앞으로도 프로듀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차분하게, 느긋하게 따르겠습니다.”

 

차 안으로 스며드는 달빛과 가로등 불빛에 비친 치하야의 따뜻한 미소는 그 무엇보다 아름다웠다.

 

“저야말로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치하야 양.”

 

두 사람은 만난 이래 처음 서로에게 진심으로 웃어 보였다. 둘의 웃음은 내려 비치는 달빛으로 더욱 빛났다.

 

치하야는 you-i 무대뿐만 아니라 신곡 ‘잠자는 공주’를 발표하며 다시 선 솔로 무대에서도 완벽한 무대를 선보였다. 프로듀서는 you-i와 치하야의 무대를 못 보더라도 팬들이 찍어 올리는 영상을 꼼꼼히 챙겨봤다. 그리고 치하야의 노래에서 여전히 푸른 차가움이 사라진 것을 알 수 있었다. 하루카, 야요이와 함께라면 푸른 차가움은 따스함과 즐거움에 섞여 옅어져 있었고, 홀로 노래를 부를 때도 행복이 가득했다.

그런 치하야의 노래를 들을 때면 뿌듯함과 함께 행복이 차올랐다. 가끔 신곡을 준비하는 치하야에게 작사, 작곡을 가르쳐줄 때도 그러했다. 하지만 아직까진 작은 불안감을 지우지 못했다.

올스타 라이브까지 한 달쯤 남았을 때, you-i는 한 페스티벌 공연에 참가했다. 프로듀서도 원래 동행하려 했지만, 갑자기 잡힌 올스타 라이브 관련 미팅으로 중간에 먼저 떠났다.

이날 무대에서도 you-i는 뜨거운 환호성을 받으며 무대를 마쳤다. 치하야는 이제는 버릇처럼 환호성에 귀를 기울이며 관객들을 천천히 살펴봤다. 모두들 you-i 멤버들의 이름을 부르며 기뻐하고 웃고 있었다. ‘푸른 기사단’을 비롯한 많은 팬들이 흔드는 파란 불빛도 보였다. 그런 관객들을 바라보면 치하야의 가슴 속에 뜨거운 것이 벅차올랐다.

 

‘이젠 노래하는 게 정말로 행복해. 유우, 보고 있니?’

 

여전히 식지 않는 환호성을 들으며 셋은 무대에서 내려왔다. 무사히 무대를 마쳤다는 안도감과 관객들에게 받은 희열이 식기도 전에, 무심코 핸드폰을 든 치하야의 표정이 굳어졌다.

 

“치하야? 왜 그래?”

 

“응? 아니야. 아무것도 아니야.”

 

궁금해하는 하루카를 뒤로 하고 치하야는 다급히 핸드폰을 들고 조용한 곳으로 향했다. 그리고 떨리는 손으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 핸드폰 화면에 ‘어머니’라는 글씨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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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올 것이 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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