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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하야를 위한 소품집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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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4-01, 2017 00:39에 작성됨.

 

 

 

-치하야와 봄-

 


"프로듀서"

꽃샘추위도 어느새 한풀 꺾이고 바람에서 젖은 흙 냄새가 올라오는 초봄의 어느 날,
치하야는 답지 않게 들뜬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응? 왜?"

협소한 영세 사무소 주제에 쓸데없이 커다랗게 뚫린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살을 등지고
서류를 보고 있던 나는 고개를 들어 목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시선을 향했다.

"이거, 사왔어요."

거기에는 치하야가, 커다란 비닐봉지를 들고 방긋방긋 웃으며 서 있었다.
자기 몸의 3분의 1 정도 되어보이는 짐에 휘둘리며 양손으로 그것을 겨우 잡고있는
트레이닝복 차림의 치하야는, 무게를 이기지 못해 뒤뚱뒤뚱 휘청였다.
나는 좀처럼 볼 수 없는 치하야의 밝은 얼굴에 조금 놀라면서 치하야에게 물었다.

"그게 뭔데?"

"보시면 아실거에요."

대답과 동시에 치하야는 쇼파 앞 테이블에 그 비닐봉지를 놓았다.
쿵 하는 소리가 제법 무게가 있는 물건인듯 싶었다.

"치하야가 뭘 사 들고 오다니 별일이네."

나는 좀처럼 볼 수 없는 치하야의 하이텐션에 호기심이 이끌려 보던 서류를 책상에 놓고
의자에서 일어섰다.
치하야는 봉지를 풀어 테이블 위에 그것들을 하나하나 꺼내 올려놓기 시작하였다.

"후훗"

치하야는 기분이 좋은 듯 작게 콧노래를 불러가며 짐을 풀었다.
테이블에 늘어져 있는 것은 모종삽, 흙, 물뿌리개 등 원예도구 일체였다.

"원예도구?"

"네, 프로듀서. 봄이니까요."

치하야는 그렇게 말하며 마지막으로 봉지에 손을 쑥 집어넣어 맨 아래에 있던
커다란 일자형 화분을 꺼냈다. 초등학교 식물관찰 시간에 나팔꽃 같은것을 심는, 그런
크고 긴 파란색 플라스틱 화분.
봉지에 있던 것을 다 늘어놓은 치하야는, 대단한 일을 하나 끝냈다는 듯 한숨을 한번 후우
내뱉고 어떻냐는 듯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나는 치하야의 의도를 짐작할수 없었기에 멀뚱히 서서 당혹스런 표정을 짓는 것 밖에
할 수 있는것이 없었다. 그러자 치하야는 기대한 반응이 아니라는 듯 미간을 약간
찌푸리며 경쾌한 목소리로 말했다.

"식물을 키울거에요."

"사무소에서?"

"네."

너무나도 단호한 선언에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뒷머리를 긁었다.

"그래도... 한마디 얘기도 없이 이런걸 들고오면..."

"충동구매였으니까요."

"층동구매?"

"네. 출근하는길에 꽃집 앞을 지나는데, 프로듀서도 아시죠? 사무소 오기 전에
꽃집이 하나 있는거. 그래서 그 앞을 지나는데 이걸 파는거에요. 봄이니까요."

"그래서 사 왔다?"

"네."

"있잖아 치하야, 그렇다고 해도 전화로 물어볼 수 있었잖아... 모두 같이 쓰는 사무소인데
치하야 마음대로 이런걸 들여놓는 건..."

뜻밖의 반응에 치하야는 조금 기분이 상한 듯 목소리에 날을 세워 따지고 들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프로듀서, 봄이에요."

"응, 봄이지."

"봄이 온 걸 모두가 직접 느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산 거에요."

"그래도 놓을 자리라던가... 사전에 말해주지 않으면..."

"창문 앞에, 모처럼 이렇게 커다란 창문이 있는데 아무것도 놓지 않으면 손해에요.
이것보세요, 놓기에 딱 좋잖아요?"

치하야는 예의 그 화분을 창문 앞 선반에 올려놓으며 문제없다는 듯 말을 이어갔다.

"게다가 고작 화분인데 문제 될 일도 없지 않을까요?"

초봄의 텐션 탓인지 치하야는 굉장히 들떠 있었다.
평소같아서는 이런데 고집을 부리는 성격이 아닌데다, 차분하고 좀처럼 흥분하는
일이 없던 치하야인지라 이런 모습이 굉장히 새롭게 느껴졌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아무 말 없이 독단으로 갑자기 사무실에 화분을 놓는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했기에, 나는 사장님에게 우선 물어보고 나서 결정하자고 치하야를 구슬렸다.

"그럼 사장님에게 물어보고 결정하자. 사장님이 문제 없다고 하면 거기에다 놓자구. 어때?"

"네, 사장님도 분명 좋은 생각이라고 해 주실 거에요."

의외로 순순히 받아들인다.
하기야 사장님도 별난 분이니까, 갑자기 화분을 들여놓자는 제안 정도는 별 생각도 없이
'그거 좋은 생각이군!' 하고 바로 승낙해 버리리라는 것은 쉽게 예상이 간다.
그래도 보고는 해 놓는 것이 좋으니까, 라고 혼잣말을 하며 나는 치하야와 함께
사장실의 문을 두드렸다.

'똑똑'

그러나 아무도 없는 듯 안에서는 대답이 없다.
나는 조심스레 문고리를 돌려보았다. 시정은 되어 있지 않았다.
아무리 드나드는 사람이 별로 없는 사무소라고 해도 문 하나 잠그지 않고 외출을 한다니
사장님의 평소 성격이 이런데서 드러난다.
앞으로 아이돌들도 유명해지고 회사도 커지면 그런 느슨한 성격으로 어떻게 경영을 해 갈지
걱정이 될 정도이다.

"실례합니다."

살짝 문을 열고 그 틈으로 고개를 빼꼼 내밀어 안을 들여다보았다.
그러나 역시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낡아서 여기저기 찢어진 의자와 '타가기 쥰지로' 라고 쓰인 명패만이
하얗게 먼지를 뒤집어 쓰고 주인의 빈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이었다.

"사장님, 나간것 같은데."

"그렇겠죠. 사장님이 사무소에 붙어있는 일은 거의 없으니까요."

그렇다, 그 사장은 도대체 어디서 무엇을 하는 것인지, 출근해서 아침 조례를 하고는
홀연히 사라져 버린다. 정말이지 765프로 3대 미스테리 중 하나이다.
사장님은 어디서 무엇을 하는 걸까? 사장 없이도 대체적인 일은 다 처리해 버리는지라
지금까지 그렇게 신경쓰지 않았던 의문이지만, 세삼스럽게 궁금해진다.

"그러면 전화를 해 보죠."

치하야는 어떻게든 오늘 안에 저 화분을 들여놓고 싶은 듯, 휴대전화를 꺼내 사장님에게
전화를 걸기 시작한다. '중요한 회의라도 하고 있으면...' 이라고 치하야를 말리려 했으나
사장님에 한해서 그럴 일은 없겠다라는 생각에 그냥 놔 두었다.
그러나 예감이 틀린 것일까, 수신음이 뚜르르르 하고 5번이나 울리는 동안에도
사장님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안 받아요."

"회의라도 하고 계시나보지?"

치하야는 실망한 얼굴로 핸드폰을 닫았다.

"그럼 코토리씨가 오면 물어보자."

"오토나시씨는 어디 가셨나요?"

"글쎄, 종이컵이 떨어졌다고 사러 나간것 같은데."

치하야는 한시가 급한 듯 이번에는 코토리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뭐가 그렇게 급한걸까. 어린아이가 갖고싶은 장난감을 조르듯 떼를 쓰는 것 같아
왠지 치하야가 귀엽게 보였다. 치하야도 아직 어린아이구나. 평소에 어른스러운 모습만을
보여주는 치하야였기에, 잊어버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치하야는 아직 16살의 여자아이라는것을.
나는 치하야가 휴대전화를 붙잡고 분투하고 있는 것을 뒤로하고
다시 테이블로 돌아가 치하야가 사 온 물건들을 하나하나 살펴보기 시작하였다.
모종삽이 두 개, 흙이 한 포대, 자갈 몇 개, 물뿌리개, 그리고 화분과 영수증 조각.
별 거 없는 원예 도구였다. 아마도 봄이라고 꽃집에서 세트로 묶어 파는 것이겠지.
꽃집에서터 이걸 사 들고 낑낑거리며 사무소 계단을 올랐을 치하야를 생각하니
조금 웃음이 나왔다. 치하야에게 들키지 않도록 작게 피식 소리를 내서 웃었다.

"프로듀서!"

"응?"

별안간 큰 소리로 부르는 소리에 깜짝 놀라 넘어오던 웃음이 목에 콱 걸려버렸다.
웃음 대신 터져나오는 헛기침을 꿀꺽 삼키며 치하야를 바라보았다.
치하야는 아까처럼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오토나시씨가, 화분 놓아도 된대요!"

약간의 흥분과 기쁨이 묻어나는 목소리로, 치하야는 외쳤다.

"그래? 그거 잘 됐네."

"그럼! 그럼 지금 바로 해요!"

"응? 지금 당장?"

"네!"

모종삽 하나를 나에게 건네며 치하야는 어느새 준비했는지 신문지를 가져와
사무소 바닥에 깔기 시작했다.

"아니, 지금은 좀..."

"프로듀서 오늘 원래 비번이었죠?"

그렇다. 사실 오늘 나는 비번이다.

"그래도 할 일이 있어."

할 일이라고 해도 별로 중요하지 않은 서류나 쳐다보는 일이지만.

"그러면 같이 해요! 자, 흙 묻으니까 팔 걷으시고요."

치하야는 친히 내 소매의 단추를 풀어 쭉 걷어올려주었다.
이렇게 적극적인 치하야는 처음 보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하고싶어 했던 노래방송의 출연이 결정되었을 때 보다 더욱 의욕에 넘치는 듯 하였다.
그때도 이렇게 활기찬 미소는 본 적이 없었으니까.
그래, 어치피 비번이었으니까. 치하야랑 어울려주도록 하자.
그렇게 다짐한 나는 치하야가 깔아놓은 신문지 위로 흙포대와 화분을 옮겼다.
그런 미소를 보여주면 나도 어쩔수가 없다. 오늘의 치하야는 어느때보다 활기찼다.
나도 동화되어 버린 것일까, 오후의 나른한 햇살로 몽롱해져있던 정신에 왠지 모르게 기대감이 차오르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되는거지?"

"우선 흙을 뜯고... 아, 프로듀서. 커터칼좀 가져와 주시겠어요?"

코토리씨의 책상에 있던 커터칼을 가져와 치하야에게 건네었다.
치하야가 흙 포대를 주욱 뜯자 축축한 흙 냄새가 확 퍼져나왔다.
아, 봄 냄새다. 나도 모르게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콧속으로 시큼하고 푹신한 부엽토의 냄새가 들어와 폐를 가득 채운다.
창문으로 들어오던 봄의 햇살보다도, 따뜻해진 바람보다도, 더욱 봄을 느끼게 해주는 냄새.
치하야도 눈을 감고 심호흡을 하는 나를 따라서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봄이네요."

"그래, 봄이야."

치하야는 쭈그려 앉아 흙을 맨 손으로 조금 퍼 올렸다.
그리고는 무언가 성스러운 것을 만지듯이, 조심스레 손가락으로 흙을 부수었다.

"느낌이 좋아요. 푹신푹신."

"나도 만져볼래."

치하야의 옆에 쭈그려 앉아 나도 흙을 한웅큼 쥐어 손가락으로 꾹 눌렀다.
촉촉한 흙이 부서지며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렸다.
그러고 보니 이렇게 흙을 만져본 것도 오랜만이다.
도시에서 나고 자랐으니 당연히 흙을 만져볼 기회는 어렸을때 공원에서 흙놀이 하던 정도일까나.
나는 손이 더러워지는것도 상관하지 않고 양 손으로 흙을 주물렀다.
흙이 부서지며 향기가 더욱 진하게 올라와 퍼졌다.

"아 왠지 어릴적으로 돌아간것 같아."

"그렇네요. 저도 어릴적에... 곧잘 유우랑 같이 흙놀이를 하곤 했어요."

유우의 이름을 꺼낼 때, 치하야의 옆모습에 잠시 쓸쓸함이 떠올랐다 사라졌다.
그런 치하야를 의식해 나는 일부러 과장된 목소리로 화제를 바꾸었다.

"자, 그럼 시작할까? 이걸 여기에 넣으면 되는거지?"

나는 모종삽을 들고 흙포대에서 흙을 퍼올렸다. 모종삽은 흙에 저항 없이 부드럽게 들어갔다.

"아, 프로듀서. 아니에요."

퍼올린 흙을 화분에 쏟아넣으려고 하는 도중, 치하야가 가로막았다.

"우선 자갈을 깔지 않으면."

"그런거야?"

"네. 그대로 흙을 넣으면 화분 밑의 구멍으로 흙이 다 흘러나가 버리니까요."

치하야는 그렇게 말하며 자그마한 자갈을 몇개 집어 화분의 구멍 위에 놓았다.

"됐어요. 이제 흙을 넣으면 돼요."

나는 치하야가 자갈을 놓는 동안 꼼짝 못하고 공중에 정지시켰던 손을 기울여 화분 안에 흙을 쏟아부었다.
흙이 플라스틱 화분과 부딛히며 솨르르 하는 소리가 났다.
치하야도 모종삽을 집어들고 흙을 퍼올려 화분을 채웠다.
번갈아 흙을 퍼서 솨라라 하고 화분에 집어넣는 작업이 잠시 계속되었다.
떡메로 번갈아 떡을 치듯이 내가 한번 푸고, 치하야가 한번 푸고, 그걸 화분에 쏟아붓고, 이어서 치하야가 쏟아붓고.
왠지 박자가 맞아 즐거웠다.
그렇게 열 번쯤 하자 화분에 흙이 거의 채워졌다. 치하야는 모종삽을 놓고 손으로 화분 위의 흙을 고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맨손으로 하면 가시 박히지 않겠어?"

"괜찮아요, 가시가 박히면 프로듀서가 빼 주세요."

"나 눈 안좋은데..."

"벌써 늙으신 건가요?"

"늙었다는건 코토리씨 같은 사람을 보고 하는 말이고."

"그 말, 코토리씨가 들으면 화낼거에요"

우리는 화분을 앞에 두고 쭈그려 앉아 흙을 고르거나 꾹꾹 눌러주며 농담을 주고받았다.
아, 왠지 이거 즐겁다. 정말 즐겁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오랜만에 흙을 만져서 그런가? 아니면 일을 땡땡이 쳐서 즐거운가?
정체를 알 수 없는 즐거움에 나는 마음이 조금 들뜨기 시작하였다.

"자, 이제 됐어요."

치하야는 마지막으로 흙 전체를 꼭꼭 눌러주더니 손을 탁탁 털었다.
그리고는 화분받침을 꺼내 창가의 선반에 올려놓았다.

"여기에 놓으면 될 것 같아요."

"그래, 거기가 딱 좋아."

나는 수긍하며 화분을 들어올렸다.
흙이 가득 찬 화분은 보기와 달리 꽤 무거웠다.
입에서 나도 모르게 '영차' 소리가 흘러나왔다.

"한쪽은 제가 들게요."

치하야가 달려와 화분의 한쪽 모퉁이를 잡았다.
치하야도 의외로 무겁다는 듯 '영차' 소리를 내었다.

"프로듀서, 발 조심하세요."

"치하야도 옆에 조심해."

우리는 각각 화분의 양 끝을 잡고 천천히 창가로 옮기기 시작하였다.
좁은 사무소라 여기저기 부딛힐 곳이 많아 조심조심 한걸음씩 하나 둘 하며 구호를
맞춰 걸었다. 마치 이인삼각 같은 기분이 들었다.

"치하야, 이제 내려놓을게."

"네"

선반의 화분받침대 위에 화분을 내려놓자, 파란색 플라스틱 화분에 햇빛이 정면으로 비췄다.
이정도 햇빛이면 실내에서도 식물들이 잘 자라겠지.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치하야를 바라보았다. 치하야도 비슷한 생각을 했는지 손등으로
이마의 땀을 닦으며 말했다.

"햇빛이 좋은 자리에요. 정말 딱 좋아요."

"그래..."

땀을 닦느라 약간 헝클어진 치하야의 앞머리가 햇빛을 받아 반짝였다.
아름다웠다. 오후의 봄 햇빛과 이마에 촉촉하게 맺힌 땀과, 찰랑찰랑한 머리칼.
그리고 햇빛에도 지지 않을 만큼 환한 미소.
나는 넋놓고 치하야의 얼굴을 뻔히 바라보았다.
치하야는 그런 나를 보고 자신의 얼굴에 흙이 묻었나 하며 손등으로 볼과 이마를
연신 훔쳐내었다.

"얼굴에 흙 묻었나요?"

치하야는 여전히 손등으로 볼을 비벼대며 내개 물었다.

"어? 아니? 응. 안 묻었어."

"그런데 왜 그렇게 빤히 보세요?"

"어... 치하야가... 예뻐서?"

멍한 탓에 본심을 말해버렸다.
치하야는 맥빠진다는 듯 피식 웃었다.

"당연하죠. 아이돌이니까요."

"그렇지. 하하하."

나는 멋쩍게 웃으며 치하야에게 물티슈를 건네었다.

"그런데 치하야."

"네?"

"이게 다 끝난거야?"

"네, 우선은요."

"그런데 씨앗을 안 사온것 같은데."

"일부러 안 사 온거에요."

치하야는 장난스럽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럼 여기엔 뭘 심을거야?"

대답 대신 치하야는 모종삽과 비닐봉지를 챙기기 시작했다.
나는 물티슈로 손을 닦으며 치하야가 무엇을 하는지 지켜보았다.

"프로듀서, 아직 손 그렇게 깨끗하게 닦지 마세요."

"왜?"

치하야는 수수께끼의 질문을 토막낸것 같이 뜻을 알 수 없는 말을 하였다.

"씨앗은, 사지 않고 직접 가져올거에요."

"가져온다니?"

수수께끼의 토막은 여전히 이어지지 않고 있다.
나는 도대체 무슨 말인가 싶어 고개를 기울이며 치하야에게 재차 물었다.

"여기에 뭘 심을거야?"

"따라오세요 프로듀서."

그렇게 말하고는 치하야는 사무소 문을 열었다.
나는 하는 수 없이 영문도 모른 채 치하야를 따라나섰다.
치하야는 사무소 계단을 또각 또각 하며 내려가더니
사무소 바로 옆의 공터로 들어갔다.
몇 년 째 팔리지도 않고 방치되어 있어서 매년 여름마다 잡초만 무성하게 자라는 공터였다.

"여기서, 새싹을 캐 갈거에요."

치하야는 공터를 휙휙 둘러보더니 공터의 모서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거기에는 잡초의 새싹들이 어느새 봄을 알아채고는 고개를 빼꼼 내밀고 있었다.

"이건 잡초잖아."

"프로듀서, 그거 아세요?"

치하야는 새싹이 난 곳에 쭈그려 앉아 새싹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잡초는요, 사실 전부 다 이름이 있대요."

"......"

나는 잠자코 치하야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 잡초는 사실 잡초가 아니래요."

"이런 이름 모를 풀들도, 사람이 이름을 붙여주고, 정성들여 키워준다면, 잡초가 아닌거에요."

"......"

나는 수긍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다만 쭈그려 앉아 잡초를 바라보는 치하야를 바라보았다.
치하야가 잡초를 바라보며 그 얘기를 할 때, 치하야의 눈빛은 상냥했다.

"프로듀서? 여기, 모종삽이요."

치하야는 쭈그려 앉은 채 나를 올려다보며 모종삽을 건네주었다.
나는 치하야가 건네준 모종삽을 집어들었다.

"뿌리가 다치지 않도록 조심해서 캐야해요."

치하야는 새싹의 주변으로 모종삽을 집어넣더니, 주변의 흙째로 동그랗게 퍼 올리고는
손으로 살살 흙을 털어 새싹만 비닐봉지에 집어넣었다.

"많이 해 본 솜씨네."

나도 치하야의 옆에 쭈그려 앉아 건네받은 모종삽으로 새싹을 캐 보았다.
그러나 치하야처럼 잘 되지 않고, 새싹의 뿌리가 뚝뚝 끊겨 올라왔다.

"프로듀서, 그거 버리지 마세요."

실패한 새싹을 휙 던져버리려던 나를 치하야가 말렸다.

"뿌리 끊어졌는데?"

"아직 괜찮아요, 실뿌리만 끊어진거니까."

그렇게 말하며 치하야는 나에게서 새싹을 빼앗아 그것도 비닐봉지에 넣었다.
오늘의 치하야는 상냥하다. 새싹 하나 허투로 버리지 않을 정도로 상냥하고, 쾌활하고, 아름답다.
아니, 평소의 치하야도 물론 아름답다. 하지만 오늘은, 그냥 겉치례 단어로서 '아름답다' 고 말하는 것이 아닌,
진짜 실제로 느껴지는 아름다움이 보인다. 만약 아름다움이라는 것이 눈에 보이는 확실한 무엇인가라면,
지금의 치하야에게선 그것이 아주 많이 보일 것이다.
치하야는 아름답다, 나는 새삼 그렇게 느꼈다.

"이정도면 됐겠죠?"

치하야는 비닐봉지를 열어 새싹의 갯수를 세어본다.
조심스레 작업하느라 그렇게 많이 캐지 못했다. 치하야는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까지 세고 비닐봉지를
도로 닫았다.

"이제 가서 심을거야?"

"네. 하지만 그 전에."

치하야는 봉지를 들어 햇빛에 비춰보았다.

"그 전에 얘네들의 이름을 지어주고 싶어요."

"이름?"

"네. 아까 말했잖아요. 사람이 이름을 붙여 주고 정성을 들이면 잡초가 아니라고."

"그래? 그럼 어떤 이름을 붙일거야?"

치하야는 봉지를 닫아 쥔 채 햇빛에 비추이는 새싹의 그림자를 하나하나 가르키며 이름을 붙이기 시작했다.

"얘는 하늘, 얘는 꽃, 얘는 행복, 얘는 빛, 얘는 음표...."

"코토리씨의 노래 제목이구나?"

"네."

하지만 코토리씨의 노래중 이름으로 붙일 만한 길이의 제목은 5개밖에 없다.
나머지 하나는 어떻게 붙일까 하고 치하야는 고민하다가 나를 쳐다보았다.

"프로듀서, 마지막 하나는 프로듀서가 이름붙여주실래요?"

나는 잠깐 고민하였다. 어떤 이름이 좋을까.
치하야랑 나랑 같이 화분을 만들고, 직접 캐러 나와서 골라낸 놈이다.
왠만하면 좋은 이름을 붙여주고 싶다.
그러다가 문득 떠올랐다. 그래, 이걸로 하자.

"'사랑'은 어떨까?"

"사랑... 좋은 이름이에요 프로듀서."

치하야는 좋은 이름이라면서 환하게 웃었다.

"그럼 가서 심을까?"

"네! 하늘, 꽃, 행복, 빛, 음표, 그리고 사랑..."

치하야는 만족해서 얼른 심고싶다는 듯 빠른 걸음으로 사무소로 뛰어 올라갔다.
기뻐하며 계단을 올라가는 치하야의 뒷모습이 무척 보기 좋았다.
나는 치하야의 뒤를 따라 사무소 계단을 올라가며 작게 중얼거려 보았다.

"하늘, 꽃, 행복, 빛, 음표,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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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들 아녕하세요.

써놨던거 올립니다.

치하야하고 화분 가꾸기 하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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