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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분하게 느긋하게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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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3-27, 2017 22:31에 작성됨.

---9

하루카를 사무실로 바래다주고 나서도 다른 아이돌들을 도와주느라 치하야의 하교 시간에 간신히 도착할 수 있었다. 여전히 서로 불편했지만, 발목이 나을 때까지 시간이 되는 한 태워주기로 했다.

막 도착해서 하교하는 여고생들 중에 치하야를 찾던 참에, 누군가 프로듀서를 쿡쿡 찔렀다.

 

“으악! 누, 누구야!”

 

“이 아저씨 또 왔네?”

 

누군지 보니 치하야와 같은 교복을 입은 여고생이 서 있었다. 척 보기에도 여느 아이돌 못지 않은 화려한 외모가 빛나는 아이의 명찰엔 ‘토코로 메구미’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상당히 화려한 외모로군. 아이돌 자질이 있어 보이는 걸?’

 

“아저씨는 누군데 맨날 치하야를 태우고 가는 거야? 혹시 그렇고 그런...”

 

“아닙니다! 저는 치하야 양의 프로듀서입니다.”

 

불필요한 오해가 생길세라 프로듀서는 다급히 명함을 꺼냈다. 메구미는 프로듀서의 명함을 받아들고 신기한 듯 쳐다봤다.

 

“우와, 치하야가 그래도 아이돌은 맞긴 맞네. 저번에 장애물 코스 건너다 삐끗한 방송을 보긴 했지만.”

 

신기해하는 메구미에게 프로듀서는 조심히 질문했다.

 

“그럼 치하야 양이랑 친구인가요?”

 

“그런 건 아니고 그냥 같은 학교일 뿐이야. 아이돌이 우리 학교에 있단 게 신기해서 관심 있는 정도? 뭐, 나도 아이돌에 관심 있는 것도 있지만...”

 

“그럼 치하야 양이랑 친한 친구가 누구인지 아나요?”

 

메구미는 고개를 저었다.

 

“학교도 자주 안 나오고 쉬는 시간이면 이어폰만 꽂고 있으니 누구 하나 말 붙일 엄두를 못 내는걸. 나도 관심만 있는 거지, 아는 사이까진 아니야.”

 

“그렇군요.”

 

“저기 치하야 오네. 아무튼, 이 명함은 내가 가져갈 테니 나중에 아이돌 되고 싶을 때 연락할게.”

 

뭐라 말도 하기 전에 메구미는 잽싸게 도망쳤다. 메구미가 가거나 말거나 치하야는 이어폰을 꽂은 채 고개만 숙이고 조수석에 탔다.

 

“오늘은 좀 어때요?”

 

“괜찮습니다. 바로 레슨실로 가겠습니다.”

 

프로듀서는 차를 레슨실로 몰았다. 둘 사이에는 이전보다 짙은 푸른 차가움이 맴돌았다. 라이브 기권 사건 이후 여전히 두 사람 사이 거리는 멀었다. 거기에 남동생의 얘기까지 들은 프로듀서는 불편함이 더해졌다.

치하야가 레슨을 받고 홀로 노래 연습하는 동안 프로듀서는 모은 정보를 정리하고 있었다.

학교에서는 아이돌이라고 규정지어질 뿐 담임의 관심 밖인 데다 친구도 없는 아이. 남동생의 비극적인 마지막을 눈앞에서 목격했고, 남동생이 좋아했다는 노래에 모든 것을 건 아이. 그야말로 오직 노래밖에 없는 쓸쓸한 아이였다.

지독한 외로움을 떨치기 위해 노래에 매달리는 것일까? 아니면 하루카의 말대로 노래에 전념하고자 스스로 외로워진 것일까? 그리고 치하야의 노래를 정말 좋아했다는 남동생의 비극은 어떤 관련이 있는 것일까??

하지만 지금 가장 먼저 해결할 문제는 치하아와 다시 가까워지는 것이었다.

 

‘미치겠네. 함께 있을 시간은 줄어드는데 거리는 여전하니...’

 

지금도 다른 아이돌들의 스케쥴을 돕기 위해 프로듀서는 레슨실에서 나와야 했다. 레슨실을 떠나며 홀로 남은 치하야가 목을 푸는 장면을 보았다. 창문에 비쳐 들어오는 햇살을 받는 치하야에게서 작은 푸른 차가움이 일렁이고 있었다. 유난히 그 모습이 더 쓸쓸해 보였다.

765 프로에 일거리가 늘어나면서 프로듀서는 서서히 다른 아이돌들의 프로듀스도 도와야 했다. 스케쥴 보조는 물론, 때론 노래는 못 불러도 교정해주는 등 보컬 레슨도 도와주었다. 하지만 머릿속엔 늘 치하야 생각뿐이었다.

그래서 틈나는 대로 치하야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만나는 아이돌마다 물어보았다. 혹여 프로듀서인 자기가 보지 못하는 것을 동료인 아이돌들이 보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하루는 잡지 인터뷰하러 가는 미키와 동행할 때였다. 미키는 프로듀서가 사준 주먹밥을 베어 물고 있었다. 워낙 주먹밥을 좋아하는지라 프로듀서나 리츠코가 말려도 꼭 먹어야 직성이 풀리는 미키였다.

 

“그러고 보니 호시이 양은 치하야 양에겐 ‘씨’ 호칭을 붙인다고 들었어요.”

 

“왜냐면 미키는 치하야 씨를 존경하기 때문인 거야.”

 

“존경이요?”

 

“치하야 씨의 노래는 말할 것도 없고, 자기 관리까지 철저하단 거야. 그리고 무엇보다 노래를 향한 열정이 가장 존경스럽단 느낌. 그러니 미키의 동료로서도 존경할 만 하단 거야.”

 

존경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미키의 표정은 사뭇 진지해 보였다. 다른 아이돌들도 미키와 같이 ‘존경’이란 표현까지 쓰지 않아도 비슷한 의견을 내놓았다. 그 밑바탕엔 ‘동료’라는 생각이 있었다. 아마 치하야도 그런 마음을 어렴풋이 느꼈기에 옅게라도 웃었던 게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다만, 혼자가 익숙하다 보니 그런 마음을 쉬이 받아들이지 못 하는게 아닐까?

 

‘하긴, 나이도 많고 싸우기까지 한 나보단 동료들이 조금이라도 더 편하겠지.’

 

혹시 아이돌 동료들과 함께라면 치하야의 마음이 열리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프로듀서는 앞으로 다른 아이돌들을 프로듀스하며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자고 생각했다.

하루는 타카츠키 야요이의 촬영 스케쥴이 있던 날이었다. 다소 멀리 떨어진 곳에서 촬영이 잡혀 야요이 혼자 보낼 순 없어, 프로듀서가 동행하기로 했다.

 

“프로듀서, 안녕하세요! 좋은 아침입니다!”

 

늘 그렇듯이 양팔을 뒤로 뻗으며 몸을 굽히는 인사를 한 야요이가 조수석에 탔다. 아직 어리지만, 집안을 돕기 위해 아이돌이 되었다고 들었다. 철이라곤 찾아볼 수 없던 자신의 어릴 때를 생각하면 야요이가 참으로 대견했다.

둘이 도착한 곳은 외곽에 위치한 한 농장이었다. 이번 녹화는 아이돌들의 농장 체험을 주제로, 아이돌들이 직접 농작물을 수확하는 것이 녹화 포인트였다.

녹화가 시작되며 야요이의 자기소개 차례가 왔다. 야요이는 활기찬 표정과 말투로 해맑게 인사하였다.

 

“읏우! 안녕하세요! 765 프로 타카츠키 야요이입니다! 오늘 열심히 농작물들을 팍팍 뽑아보겠습니다!”

 

햇볕이 따가운 날에 무거운 농작물을 수확하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녹화 초반 강한 의욕을 보이던 아이돌들도 점차 지쳐갔다. 하지만 야요이는 지친 기색 없이 신나게 농작물을 수확했다. 거뜬히 무거운 농작물을 들고 나르거나 방송 진행을 도와주는 농부에게 적극적으로 질문하는 등 녹화장 분위기를 주도했다.

잠깐의 쉬는 시간 동안 다른 아이돌들은 각자의 프로듀서에게 힘들다고 투덜거리거나, 하기 싫다고 불만을 표했다. 하지만 야요이는 땀이 비 오듯 흐르고 흙먼지가 군데군데 달라붙었음에도 여전히 해맑았다.

 

“수고했어요.”

 

프로듀서가 건네준 생수를 시원하게 들이켠 야요이는 여전히 활기찼다.

 

“프로듀서! 저 어땠어요?”

 

“타카츠키 양을 보면서 놀랐어요. 혹시 농사일해본 적이 있나요?”

 

“아뇨. 처음 해보는 건데도 되게 재밌어요. 마트에서 장 볼 때 봤던 농작묻들이 이렇게 땅속에서 자란다는 게 정말 신기해요. 그래서 완전 재밌고 신나요! 아, 혹시 저 뭔가 잘못 한 건 없었나요?”

 

들떠있는 야요이를 보고 프로듀서는 자기도 모르게 웃었다. 힘들 텐데도 활기찬 야요이를 보니 프로듀서도 힘이 절로 솟아났다.

 

“지금까지 한 대로 즐겁게 하면 됩니다.”

 

지금까지 야요이는 혼자서 녹화 현장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었다. 야요이가 뿌리는 가식 없는 즐거움에 촬영장의 모든 사람들이 웃고 있었다.

 

‘본연의 모습으로 사람들을 행복하게 한다는 게 이런 건가?’

 

“녹화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이번에도 잘하고 와요.”

 

“네! 그럼 열심히 하고 오겠습니다!”

 

총총걸음으로 가던 야요이가 다시 프로듀서에게 돌아왔다.

 

“프로듀서, 잠깐만요.”

 

갑자기 야요이가 프로듀서에게 손을 내밀었다.

 

“읏우! 하이 터치!”

 

“하이 터치?”

 

얼떨결에 야요이가 내민 손에 손뼉을 치자 야요이는 신난 걸음으로 돌아갔다.

이어진 촬영에도 야요이는 지친 기색 없이 수박을 들고 날랐다. 그러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았다. 더위와 일에 지친 다른 아이돌들도 그런 야요이를 보고 힘내며 즐겁게 일했다.

그런 야요이를 보며 프로듀서는 보컬 레슨을 봐줄 때를 떠올렸다. 발성이나 호흡, 발음 등은 아직 부족했지만, 모든 노래를 마치 동요처럼 즐겁게 만드는 특징이 있었다. 그런 야요이의 노래에서 활발함, 사회성, 행복 등을 의미하는 주황색이 떠올랐다.

 

‘주황빛 즐거움이라, 딱 타카츠키 양에게 어울리는 느낌인데.’

 

그렇게 녹화는 쨍쨍한 햇볕보다 즐거운 분위기 속에 끝났다. 녹화 내내 흡족해하던 PD가 프로듀서에게 야요이에 대한 칭찬을 늘어놓았다.

 

“저런 아이돌이 있다니 대단하군. 우리 딸 아이도 저렇게 자라야 할 텐데 말이야. 자네도 나중에 결혼하면 저런 딸 낳으라고. 다음 녹화 때도 기회가 되면 타카츠키 군을 꼭 부르도록 하지. 자네도 수고했어.”

 

“정말 감사합니다!”

 

만족한 표정을 지은 PD에게 감사 인사를 표하고 야요이에게 가보니, 농부가 농사일을 도와준 아이돌들에게 농작물을 나눠주고 있었다.

 

“여기 꼬마 아가씨에게는 수박 단 하나!”

 

“감사합니다!”

 

자기 몸통만 한 수박이었지만, 야요이는 손쉽게 받아 들었다. 그 광경을 보고 농부는 흐뭇하게 수박 하나를 더 주었다.

 

“이 꼬마 아가씨 힘이 굉장한데? 오늘 꼬마 아가씨 덕분에 아주 즐거웠으니 하나 더!”

 

“우와, 정말 감사합니다!”

 

그래도 무거울 테니 프로듀서가 수박 두 개를 재빨리 들어 주었다. 차로 돌아가는 길에 프로듀서는 질문했다.

 

“타카츠키 양, 수박은 사무실로 가져갈 거죠?”

 

“네. 하나는 사무실 가서 동료들이랑 먹고, 하나는 집에 가져가서 동생들이랑 먹으려고요!”

 

“그러고 보니 타카츠키 양이 장녀랬죠? 동생이 총 몇 명인가요?”

 

“으음, 카스미부터 코우조까지 5명이에요.”

 

“동생들이 정말 많네요.”

 

“그래서 힘든 부모님을 돕고 싶어서 아이돌이 되었어요. 언니니까 아이돌을 하면서 가족들에게 보탬이 되려고요.”

 

“집안일도 같이 한다고 들었는데 힘들지 않나요?”

 

“아니요! 아이돌 하는 거 정말 재밌어요. 아직 카메라 앞에 서면 두근두근하지만, 다양한 일을 하는 것도 즐겁고, 다른 동료들과 활동할 땐 더 재밌어요. 아직 무대 데뷔는 못 했지만, 열심히 하다 보면 무대 데뷔도 곧 할 거로 생각해요!”

 

햇빛 아래 고된 농사일을 하느라 힘들었을 텐데도 야요이는 여전히 주황빛 즐거움을 잃지 않았다. 그런 야요이를 보며 프로듀서의 마음도 즐거워졌다. 문득 이런 야요이와 치하야가 함께라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타카츠키 양이라면 분명 좋은 아이돌이 될 거라는 느낌이 오네요.”

 

야요이와 함께 사무실에 도착하니 어느덧 저녁 시간이었다. 잠깐 메일함을 살펴보니 마침 치하야의 여러 신곡 샘플 파일과 악보가 도착해있었다. 그리고 메일을 보낸 작곡가의 코멘트도 같이 있었다.

 

- 제가 조만간 업무상 장기 출국을 할 것 같습니다. 그러니 바쁘셔도 내일까지 피드백을 주셨으면 합니다.

 

‘얼른 치하야 양과 얘기해봐야겠군.’

 

프로듀서는 치하야에게 전화를 하려고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그러나 통화 버튼을 쉽게 누르지 못했다. 녹화 중 사고 이후로 아직도 서먹한 관계였다. 차에 같이 탈 때도, 가끔 보컬 레슨을 도와줄 때도 의무적인 말 외엔 나누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아직도 자신에게 화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 일과 관련된 얘기잖아. 우리는 업무상 파트너라고. 그거면 된 거야.’

 

눈을 질끈 감으며 통화 버튼을 꾹 눌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조용하고 차가운 치하야의 목소리가 들렸다.

 

- 네, 프로듀서.

 

“치하야 양, 신곡 샘플들 왔는데 작곡가님이 내일까지 피드백 달라고 하시네요. 지금 이메일 보낼 테니 확인하고 답장 주세요. 이메일 주소가 어떻게 되나요?”

 

- ... 저... 이메일이 뭐죠?

 

프로듀서는 예상치도 못한 질문에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그 전자 우편 있잖아요? 컴퓨터로 글도 보내고 파일도 보내는 거 있잖아요.”

 

- 전 그런 거 할 줄 몰라서...

 

스마트폰으로도 이메일을 주고받을 수 있다고 말하려 했지만, 프로듀서는 ‘기계치’라는 걸 떠올렸다. 생각해보니 치하야는 악보는 종이로만 봤고, 핸드폰으로는 전화 말고 다른 걸 하는 모습을 본 적도 없었다. 과거 하루카에게 MP3 플레이어는 용량이 클수록 좋다는 얘길 듣고 ‘그럼 더 무거운 거야? 아니면 강한 건가?’라고 하는 광경을 본 기억이 떠올랐다.

 

‘설마 했더니 치하야 양이 기계치가 맞는구나.’

 

“그럼 직접 만나서...”

 

문득 지금이 밤이란 걸 떠올린 프로듀서는 시간을 재차 확인했다.

 

“지금 시간도 늦었으니 내일 아침 사무실에서 회의할까요? 발목도 안 좋으니 지금 나오는 건…”

 

- 아닙니다. 일은 일이니깐요. 저희 집에서 회의하도록 하죠.

 

“그럼 집 앞에 도착하면 다시 연락할게요.”

 

-      예, 알겠습니다.

 

예전보다 더 무뚝뚝한 대답과 함께 통화가 끊겼다.

 

‘여전히 화 난 모양이군.’

 

프로듀서는 한숨을 쉬며 치하야의 집으로 향했다. 그래도 담당 아이돌의 집 방문이고, 치하야에게 사과하려면 선물이라도 가져가야 할 것 같았다. 먹는 것도 안 좋아하고, 음악 CD는 까다로운 치하야의 취항을 자극할 수 있었다.

 

‘아아, 까다로운 공주님이시여. 그대의 화를 풀기 위해 무얼 바치오리까.’

 

무얼 사가면 좋을지 생각하던 도중, ‘시부야 꽃집’이란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뭐, 그래도 그냥 잡동사니보단 낫겠지. 차갑다 해도 어린아이는 어린아이고.’

 

프로듀서는 자기가 무얼 하고 있냐는 생각을 하면서도 꽃집에 발을 들여놓았다. 꽃집 문을 지키고 있던 작은 요크셔테리어 한 마리가 프로듀서를 향해 짖었다.

 

“하나코! 손님한테 짖지 말랬지?”

 

차분하지만 인상 깊은 목소리가 꽃집 안에서 들렸다. 파란색 앞치마를 입은 머리 긴 어린 여자아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차가운 인상이었지만 치하야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어서 오세요. 무슨 꽃을 찾으시나요?”

 

“그, 혹시 사과한다는 뜻이나 용서라는 의미의 꽃말을 가진 꽃이 있을까요?”

 

여자아이는 가게 한편에 둔 보라색 꽃들을 가리켰다.

 

“마침 보라색 히아신스가 있네요. 원래는 구하기 힘들거든요.”

 

“그럼 한 다발 부탁드립니다.”

 

프로듀서는 꽃이라고는 다발 단위로만 사 본지라 무의식적으로 한 다발을 주문했다. 여자아이는 능숙한 솜씨로 꽃다발을 만들기 시작했다.

 

“편지나 필요한 장식 있으세요? 혹시 여자친구 분 취향이 어떤가요?”

 

“여자친구 아니에요! 담당 아이돌과 싸워서 화해의 의미로 선물을 주려고요.”

 

“아, 아이돌…”

 

“그냥 단순한 업무상 파트너예요!”

 

“알겠습니다. 그럼 알맞게 꾸며 드릴게요.”

 

순간 프로듀서는 아차 싶었지만, 여자아이는 ‘아이돌’이란 단어에 별 관심이 없어 보였다. 도리어 프로듀서가 당황한 걸 눈치챘는지 살짝 웃으며 안심시켰다.

프로듀서는 꽃다발을 완성해가는 여자아이를 잠깐 관찰했다. 강아지를 부를 때의 높은 목소리, 차갑지만 예쁘장한 외모, 풍기는 분위기와 잠깐 웃었던 모습 등을 통틀어 보면 아이돌로 스카우트할 만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이 아이를 스카우트해볼까.’

 

하지만 아이돌이란 단어에 별 반응이 없는 걸 보면 아이돌엔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그리고 혹여 이 아이를 스카우트한다 해도 지금은 프로듀스할 여력이 없었다.

완성된 꽃다발을 받아 들고 나가던 프로듀서는 꽃집으로 들어오는 한 남자를 지나쳤다. 꽃집에 들어온 남자에게 여자아이가 인사했다.

 

“일찍 오셨네요. 아버지.”

 

“슬슬 가게 문도 닫아야지. 그나저나 린, 방금 보라색 히아신스 꽃다발 네가 포장한 거니? 잘 포장했더구나.”

 

“누군가한테 사과의 의미로 준다길래 저걸 추천했어요.”

 

“사과? 보라색 히아신스의 꽃말엔 슬픈 사랑, 영원한 사랑이란 말도 있는데?”

 

“어?”

 

꽃을 잘못 추천했다는 생각에 시부야 린은 당황했다. 하지만 린의 아버지는 괜찮다는 표정을 지었다.

 

“괜찮아. 주는 사람의 마음이 꽃말보다 중요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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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생일을 맞이한 야요이를 볼 때마다 저도 저런 딸을 낳아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리고 이번 편엔 찬조 출연이 2명이나...

메구미는 치하야와 동갑이긴 하지만, 같은 학교라는 설정은 제가 임의로 넣은 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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