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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분하게 느긋하게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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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3-18, 2017 18:54에 작성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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깔끔하게 정장을 차려입은 남자는 척 봐도 낡은 경차를 몰고 있었다. 무언가를 찾는 듯 계속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남자의 마음속엔 긴장과 기대감이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분명 이쯤일 텐데?’

경차가 한 허름한 건물 앞에 멈췄다. 건물을 흩어 보던 남자의 시선이 2층에 멈추었다. 창문에 테이프로 붙여 만든 ‘765’ 글자가 765 프로덕션의 사무실임을 알려주었다.

‘아이돌 프로덕션치곤 꽤 초라한걸. 그래도 선배의 추천을 받은 곳이니까...’

자그마한 실망을 느끼면서 남자는 차를 주차하고 건물로 들어갔다. 낡은 사무실 문엔 ‘765 프로덕션’이라는 명패가 붙어 있었다. 안경과 옷매무시를 단정히 한 남자가 조심히 노크하려던 찰나, 뒤에서 갑자기 쿵 소리가 들렸다.

“으아아아!”

뒤를 돌아보니 한 여자아이가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당황한 남자는 넘어진 여자아이를 얼른 부축해주었다. 옷을 터는 여자아이의 앞머리에 빨간 리본 2개가 달려 있었다. 척 봐도 귀여운 인상인 여자아이는 멋쩍게 웃어 보였다.

“감사합니다. 오늘도 어김없이 넘어졌네요.”

한두 번 있는 일이 아닌 듯 여자아이는 아무렇지 않은 태도였다.

“그런데 저희 사무실에는 무슨 일로 오셨나요?”

“사무실? 혹시 765 프로 소속 아이돌이신가요?”

“예, 전 아마미 하루카라고 해요! 아이돌이지만 데뷔한 지 얼마 안 됐어요.”

“반갑습니다. 전 오늘 프로듀서 면접을 보러 왔습니다. 이름은...”

“그럼 프로듀서 씨신가요? 반갑습니다!”

“프로듀서라고 하실 것까진... 아직 면접이 남아 있어서요.”

“프로듀서 씨라면 면접에 꼭 붙으실 거에요!”

처음 보는 자신에게 생긋 웃는 하루카를 보고 아직 무명이라지만 언젠가 많은 팬이 따를 미소라고 생각했다.

하루카가 먼저 문을 열고 들어가자, 허름하고 좁은 사무실이 펼쳐졌다. 남자는 조심히 하루카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오늘도 좋은 아침이에요.”

“왁!”

하루카를 뒤따라 들어오던 남자는 뒤에서 누군가 지른 고함에 놀라 넘어졌다. 넘어지면서 흐트러진 안경을 고쳐 쓰니 한 여자아이가 보였다. 머리를 대각선으로 한데 올려 묶은 여자아이는 장난기 가득한 웃음으로 남자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마도 이 여자아이가 남자를 깜짝 놀라게 한 것 같았다.

“여기는 아미! 무단 침입자 발견! 지금부터 처치할 테니 지원 바람.”

“그렇다면 마미도 출동!”

머리 묶은 방향이 다르지만, 얼굴은 똑같이 생긴 여자아이가 튀어나왔다. 그러자 사무실 안에서 누군가 남자를 공격하려는 쌍둥이를 꾸짖었다.

“어이 어이 너희들! 손님한테까지 장난치지 말랬지!”

쌍둥이는 남자를 지나쳐 잽싸게 사무실 밖으로 도망쳤다. 안경을 쓴 여자는 쌍둥이가 도망친 쪽을 노려보다가 남자에게 급히 사과했다.

“괜찮으세요? 정말 죄송합니다. 아미랑 마미가 워낙 장난이 짓궂은 아이들이라서요.”

“아닙니다. 전 괜찮습니다.”

남자는 일어나면서 안경 쓴 여자를 자세히 보았다.

“잠깐, 혹시 아카즈키 리츠코 씨 아닌가요?”

“어? 저를 아시나요?”

“당연하죠. 아이돌이셨잖아요. 노래를 잘 부르셔서 기억하고 있습니다.”

“어머, 절 기억해주시다니 감사해요. 지금은 765 프로덕션에서 ‘류구코마치’의 프로듀서를 맡고 있어요. 아차, 여긴 무슨 일로 오신 건가요?”

“오늘 프로듀서 면접 보러 왔습니다.”

사무실 소파에서 누가 일어나는 소리가 들렸다. 잠이 덜 깼는지 졸린 눈을 비비는 여자아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밝게 염색한 머리가 눈에 확 띄었다.

“아후, 새로운 프로듀서?”

머리는 헝클어져 있고 눈을 게슴츠레 뜨고 있었지만 누가 봐도 예쁘다는 감탄사가 나올 만한 외모였다.

“나랑 코토리 씨만으로는 너희 모두를 프로듀스하기 벅차서 사장님이 프로듀서 한 명 새로 뽑겠다고 하셨거든.”

리츠코의 설명을 들은 여자아이의 눈이 갑자기 번쩍 뜨였다. 급히 소파를 박차고 나오더니 남자의 팔을 냅다 끌어당겼다.

“난 호시이 미키라고 해. 앞으로 잘 부탁한단 거야. 저기 리츠코, 이제 이 사람이 미키를 프로듀스하는 거야?”

“미키, ‘씨’를 꼭 붙이라고 했지?”

“알았어. 리츠코 씨.”

“그리고 그분 팔부터 놔. 이 분은 아직 사장님과의 면접이 남아 있어. 그리고 누굴 프로듀스하실 지도 아직 안 정해졌어.”

“헤에 그럼 프로듀서, 합격하면 꼭 미키를 프로듀스해줘야 한단 거야.”

자신을 바라보는 미키의 초롱초롱한 눈빛에 남자의 마음이 흔들렸다.

‘이게 아이돌의 매력이란 건가?’

하지만 남자는 면접을 앞둔 자신의 처지를 떠올리고 마음을 가다듬었다.

“꼭 면접에 붙어서 여러분들을 열심히 프로듀스하겠습니다.”

“오빠, 붙으면 아미, 마미랑 자주 놀아줘야 해.”

“반드시 면접에 붙으실 거에요!”

“미키도 프로듀서의 합격 기원한다는 거야.”

어느새 사무실에 돌아온 후타미 자매를 비롯한 하루카, 미키 등 아이돌들로부터 응원을 받은 남자는 힘이 솟는 것 같았다. 반드시 합격하여 해맑은 아이돌들을 프로듀스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사장님은 안에 계세요. 제가 안내해드릴게요. 그리고 아미랑 마미 둘 다 꼼짝 말고 있어.”

리츠코를 따라 들어간 사장실에는 나이 든 남자가 마술에 쓸 법한 중절모를 이리저리 만지고 있었다. 노크 소리에 남자는 중절모를 급히 책상 아래에 넣고 안경을 매만지며 점잖은 헛기침을 했다.

“흠흠. 아카즈키 군, 무슨 일인가?”

“오늘 오기로 한 프로듀서 면접자입니다.”

“오오, 그러기로 했지. 만나서 반갑네. 765 프로덕션 사장 타카기 준지로네.”

“만나서 반갑습니다.”

리츠코가 나가고 사장실에는 타카기 사장과 남자 둘만 남아 있었다. 타카기 사장은 남자의 이력서를 찬찬히 읽어보고 있었다.

“호오, 음악학과 출신이라? 어떤 공부를 했나?”

“본래 보컬 쪽 공부를 했습니다. 1년 휴학하고 이번에 막 졸업하였습니다.”

“그런데 가수가 아닌 아이돌 프로듀서를 하고 싶다고?”

“그건 사정이 있어서...”

“뭐 누구나 말 못 할 사정이 있는 법이니까 말일세. 그만큼 음악적 조예가 깊겠지만, 아이돌 프로듀서는 그것만으론 할 수 있는 직업이 아니네.”

“알고 있습니다. 부족한 만큼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사장실 문이 열리며 한 여자가 마실 것을 내왔다. 단정한 사무원 복장에 노란 머리띠가 눈에 띄었다.

“아, 소개하지. 이쪽은 우리 프로덕션의 사무원인 오토나시 군이네. 이쪽은 이번에 지원한 프로듀서 군이네. 앞으로 프로듀서 일을 하는 동안 많이 마주칠 테니 인사 나누도록 하게.”

“안녕하세요. 오토나시 코토리예요. 앞으로 잘 부탁드릴게요.”

마실 것을 내려놓는 코토리가 남자에게 환히 웃어 보였다. 여느 아이돌과 견줘도 밀리지 않는 외모였다. 남자는 사무원의 미모가 이 정도라면 나머지 아이돌들은 대체 어떨지 호기심이 들었다.

“아 오토나시 군, 우리 아이돌 제군들의 프로필을 좀 가져다주겠는가?”

“바로 갖다 드릴게요.”

코토리가 나가고 타카기 사장은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아무쪼록 우리 765 프로덕션의 프로듀서가 된 것을 환영하네. 앞으로 자네를 프로듀서 군이라고 부르도록 하지.”

“네? 저 합격입니까?”

자애로운 웃음으로 답하는 타카기 사장에게 남자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연신 고개 숙여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정말로 감사합니다.”

“앞으로 최선을 다하여 아이돌 제군들을 프로듀스해주게.”

코토리가 가져다준 파일을 연 다카기 사장은 아이돌들의 프로필을 천천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이제 프로듀서의 직함을 받은 남자도 프로필을 대략 볼 수 있었다. 아이돌들 모두 다들 어려 보였지만 척 보기에도 뛰어난 외모에 개성까지 뚜렷해 보였다.

“우리 아이돌 제군들은 프로듀서 없이 활동하다 보니 웬만한 일은 자네 없이도 해낼 수 있을 것이네.”

“예?”

“하지만 모든 아이돌이 처음부터 홀로 서진 못 하네.”

타카기 사장은 프로필 하나를 프로듀서에게 건넸다. 프로듀서는 프로필을 차근차근 살펴보았다. 분명 다른 아이돌들은 프로필 사진에서 활짝 웃고 있었지만, 이 아이돌은 그렇지 않았다. 어린아이에게 무표정이 무언지 가르쳐줄 때 보여주면 단박에 이해할 수 있을 만큼, 감정이 한 오라기도 묻어 있지 않았다.

“키사라기 치하야?”

“당분간 자네가 담당해서 프로듀스할 아이돌이라네. 한 번 쭉 살펴보게나.”

치하야는 데뷔한 지 얼마 안 된 신인 아이돌이었다. 그리고 아직 고등학생이지만 어릴 적부터 여러 아마추어 노래 대회에서 받은 다수의 수상 경력이 눈길을 끌었다.

“아직 경력도 없는 제가 이 아이돌을 프로듀스해도 되겠습니까?”

“키사라기 군도 이번에 막 데뷔를 했지. 갓 데뷔한 아이돌과 새내기 프로듀서, 서로 러닝메이트로 삼을 만하지 않나?”

“하지만 노래 실력이 뛰어나다면 굳이...”

“아이돌은 노래와 춤만 뛰어나다고 아이돌이 되는 것이 아니네. 아직 키사라기 군에겐 부족한 것이 있어. 자네가 키사라기 군을 프로듀스하면서 그걸 채워줬으면 하는구먼.”

“그럼 아카즈키 씨도 있는데 왜 저를...?”

“왜냐고?”

프로듀서의 연이은 질문에도 타카기 사장은 다시 자애롭게 웃었다.

“아카즈키 군은 지금 ‘류구코마치’ 프로듀스에 전념해야 할 때라네. 그리고 방금 자넬 봤을 때 ‘이 사람이다’라는 느낌이 팟! 하고 왔다네. 자네라면 키사라기 군을 톱 아이돌로 만들 수 있을 거라 생각이 드는구먼.”

영 생뚱맞은 이유였지만 사장의 지시이니 프로듀서로서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치하야의 프로필을 복사하여 자세히 살펴보던 도중, 누군가 사무실로 들어왔다.

프로듀서는 막 사무실로 들어오는 여자아이가 치하야임을 알아볼 수 있었다. 사진과 실제 모습 사이에 차이점이 있다면 사진에 담기지 않은 푸른 차가움이 느껴졌다.

“치하야 언니다!”

아미랑 마미가 막 사무실 문을 닫는 치하야에게 쪼르르 달려갔다.

“안녕.”

“치하야 언니, 드디어 우리 회사에 새로운 프로듀서가 왔어!”

마미가 치하야를 프로듀서 쪽으로 끌어당겼고 리츠코도 다가왔다.

“마침 잘 왔어. 인사해. 이쪽은 이번에 새로 들어온 프로듀서 씨. 앞으로 당분간 네 프로듀스를 담당하시게 됐어.”

“담당 프로듀서?”

의아해하는 목소리와 프로듀서를 바라보는 시선 모두 푸른 차가움이 느껴졌다. 그래도 담당 아이돌이니 프로듀서는 먼저 악수를 청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키사라기 양.”

갑자기 치하야를 감싼 푸른 차가움이 세차게 일렁였다. 장난기 많던 아미와 마미도 당황했고 리츠코도 마찬가지였다.

“죄송하지만 성으로 안 부르셨으면 합니다. 전 노래 연습을 하러 먼저 가보겠습니다.”

홱 돌아서는 치하야에게서 푸른 차가움이 뿜어져 나왔다. 프로듀서는 무안해진 손을 거두지도 못하고 치하야가 사라진 사무실 문을 바라만 봤다. 그런 프로듀서에게 아미가 조심히 말을 꺼냈다.

“오빠는 오늘이 처음이라 몰랐구나. 치하야 언니는 성으로 부르는 걸 싫어해.”

“그러니 오빠 앞으로는 조심조심!”

마미의 말까지 듣고도 프로듀서는 푸른 차가움에서 헤어나오질 못했다. 프로듀서는 아이돌은 대중에게 행복과 즐거움을 선사해주는 직업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치하야는 그런 아이돌에 대한 인상과 정반대였다.

“굉장히 차갑네요...”

“사실 치하야는 사람과 거리를 두려 하는 것 같아요. 자신을 아이돌이라 생각하지도 않고요. 물론 성격이 나쁜 아이는 아니에요.”

“있지, 언니인 릿쨩이 말을 놓으라고 했는데도 아직도 거리를 이만큼 두고 있어.”

걱정스러운 표정인 리츠코와 팔을 쭉 펼쳐 보이는 마미의 설명까지 들으니 혼란스러웠다.

‘그럼 왜 저 아이는 아이돌이 된 걸까?’

의문에 잠기는 프로듀서에게 코토리가 무언가를 건넸다.

“아, 프로듀서 씨. 여기 치하야의 이번 주 스케줄이에요. 이따 점심시간에 라디오 방송 출연이 있으니 시간 맞춰서 같이 방송국으로 가시면 돼요. 그 뒤는 레슨 일정이 있고요.”

프로듀서는 코토리가 준 스케줄 표를 살폈다. 하지만 첫 만남부터 거대한 벽을 마주한 심정인 프로듀서는 막연한 두려움부터 앞섰다.

‘내가 잘할 수 있을까?’

하지만 이미 아이돌 프로듀서로서 첫 발걸음을 내디딘 상태였다. 그리고 분명 타카기 사장도 무언가 생각이 있어 자신에게 치하야의 프로듀스를 맡겼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까짓거 부딪혀 보자.’

심기일전한 프로듀서는 힘찬 발걸음으로 사무실을 나갔다. 하지만 이내 다시 사무실로 돌아왔다.

“그런데 레슨실이 어디 있죠?”

“치하야라면 지금 늘 가는 연습 장소에 있을 거예요.”

멋쩍게 물어보는 프로듀서에게 코토리가 한 장소를 알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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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새 이야기를 연재하게 된 Choice입니다.

연재 간격은 1~2일 정도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많이 부족한 글솜씨지만 재밌게 읽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특정 아이돌 중심의 글이니 다른 아이돌 P분들의 양해도 부탁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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