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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즈사 「미아가 되는 것은 익숙할 텐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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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3-15, 2017 23:05에 작성됨.

누구보다 빛나되, 모두에게 사랑받되, 모두의 우상이되,

 

그 누구에게도 진실된 사랑을 받을 수 없는 거죠.

 

조금만 더, 아주 조금만 더, 그것을 일찍 깨달았더라면 좋았을 텐데요.

 

그랬다면 저는.

 

 

 

 

귀가 아프다.

 

미우라 아즈사는 발갛게 얼어붙은 손을 들어 두 귀를 감싸쥐었다. 이유는 알고 있었다. 추운 날씨에 너무 오랫동안 바깥에 있었기 때문이다. 고막이 죄어드는 것 같은 불쾌한 통증에도 아즈사는 눈을 찌푸리지 않았다. 희로애락이 깃들지 않은 붉은 눈동자는 망연히 앞쪽을 향했다. 특별히 무엇을 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아무 것도 보고 싶지 않았기에, 그렇다고 해서 눈을 감고 싶지도 않았기에 몸뚱이를 아무렇게나 내버려두고 있는 것에 가까웠다.

 

어둡다. 도시의 불빛은 미처 가리지 못했지만, 하늘을 물들이기에는 충분한 농도의 어둠이 그 거대한 몸집으로 대기를 내리누르고 있었다. 압도적인 부피에 소리마저 가려졌는지 주위는 실로 조용하다. 어쩌면 그저 아즈사 자신이 느끼지 못할 뿐인지도 몰랐다. 아무래도 상관없는 이야기였다.

 

“저, 길을 잃고 말았네요.”

 

농담을 던지는 기분으로 혼잣말을 했다. 들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 눈도 내리지 않는 바싹 마른 겨울의 밤, 사무소 옥상 같은 곳에 사람이 서 있을 일은 보통 없을 것이다. 비록 아즈사 자신은 그 명제를 몸소 부정하고 있었지만, 평소의 아즈사였다면 이런 행동은 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단언할 수는 없을지도 모른다. 치명적일 정도의 방향치인 아즈사는 길을 나섰다 하면 곧잘 목적지와 전혀 동떨어진 곳에 도착하곤 했으니까. 하지만 지금만큼은 확실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길을 헤메고 있는 것은 아니다. 달리 가고 싶은 곳도 없으니까. 아즈사는 그저,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게 되었을 뿐이다.

 

어쩌면 다를 게 없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옥상에 올라온 거다. 아즈사는 그렇게 납득했다. 길을 찾기 위한 가장 고전적이면서도 직관적인 방법은 높은 곳에 오르는 것이다. 거짓말쟁이. 그것을 의식하고서 아즈사는 난간 바깥을 바라보았다. 듬성듬성 놓인 블록 같은 건물들이 늘어서 있다. 낯설지 않을 터인데도, 어쩐지 대단히 낯설게 느껴졌다. 그렇기 때문에 방향치라고 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어쩔 수 없다.

 

하아, 내뱉은 숨이 결정이 되어 허공에 녹아들었다. 그것을 멍하니 바라보던 아즈사는 고개를 돌렸다. 사무소로 통하는 계단 너머에서는 아무도 나타나지 않는다. 구태여 확인할 것까지도 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아즈사는 기다렸다. 종종 그랬듯, 길을 잃어버린 자신을 누군가가 찾으러 오기를 기다렸다. 불가능한 일이다. 그것을 알고 있는 자신은, 순진하고 둔해빠진 바보 같은 여자다.

 

“추워요… 프로듀서 씨.”

 

소리내어 말해 보았다. 바뀌는 것은 없다. 귀의 아픔이 잦아들었기에 아즈사는 다시 손을 내렸다. 난간을 감아쥐려다가, 손을 다시 거두어 내려다보았다. 이런 손모양을, 굉장히 최근에 했던 기억이 있다. 아니, 조금은 잘못된 표현일지도 모른다. 불과 예닐곱 시간 전의 일을 최근이라고 표현하기에는 아무래도 어폐가 있다.

눈이 내리지 않는 것을 아즈사는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눈 오는 날의 결혼식이라는 것은, 아무래도 삭막하다. 누군가는 낭만적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실용적인 측면에서 보아도 하객들을 맞이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날씨임은 틀림없다. 그 사람에게 있어선 평생 한 번밖에 없는 중요한 날인 것이다. 그런 행사가 날씨 탓에 차질을 겪는 것은 원하지 않았다. 거짓말쟁이. 무엇보다도 아즈사는, 흰색을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았다.

 

와 주지 않으시려나.

 

미소짓는 얼굴을 떠올린다. 길을 잃은 탓에 찾으러 나온 그 사람에게 어쩔 줄 몰라 사과를 거듭하는 아즈사에게, 자신은 정말 괜찮다며 한결같이 웃어 보이던 그 사람. 설령 업무 상의 실수를 지적할 때라도 항상 정중함과 상냥함을 잃지 않던 그의 얼굴이 굳어지는 것을, 아즈사는 그 날 처음으로 보았다.

 

─ 못 들은 것으로 하겠습니다, 아즈사 씨. 그래서는 안 된다는 걸, 누구보다 알고 계시지 않나요.

 

한 마디만으로 모든 것이 정리되었다. 그간 착실하게 줄여 왔다고 생각했던 마음의 거리도, 혹시 들키지 않을까 걱정하면서도 내심 눈치 채기를 바랐던 시선도, 전날 밤 집에서 혼자 화끈거리는 뺨을 누르며 했던 고민도, 핸드폰을 붙잡고 친구에게 부탁했던 상담도, 불안과 기대를 이기지 못해 꼭 쥐었던 이불의 감촉도, 모든 것이.

느릿하게 손을 오므렸다 펴 보았다. 당연히 아무것도 만져지지 않았다. 아즈사는 엉겁결에 받아들었던 부케의 감촉을 떠올리고 있었다.

 

새하얀, 새하얀 웨딩드레스. 길게 늘어지는 면사포. 신부가 중간까지 다다랐을 때 아즈사는 고개를 숙였다. 그 다음을 보았다간 자신이 어떻게 될지를 직감했기에 취한 행동이었다. 어리석기 짝이 없다. 그러면서도 아즈사는 도중에 식장을 뛰쳐나갈 생각만큼은 하지 못했다. 그런 짓은, 실례가 된다.

사무소 동료들의 손에 이끌려 억지로 대열에 섰다. 신부가 부케를 던진다. 그럴 생각은 전혀 없었는데도, 자그마한 꽃다발은 이 쪽으로 날아온다. 반사적으로 받아든다. 주위에서는 시끄러운 환호. 혼기가 찬 아이돌, 당신 차례를 기대할게. 그런 의미이리라고 이해한다. 웃음을 짓는다. 멋쩍게, 수줍은 듯이.

그 사람의 얼굴은 마지막까지 바라보지 못했다.

 

─ 저는 말이죠, 프로듀서 씨. 아이돌 일을 하면서 운명의 사람을 찾고 싶어요.

 

그렇게 털어놓았을 때의 그의 표정을 기억하고 있다. 그는 활짝 웃었다. 축복과 기원을 담아. 한참 후에나 깨달았다.

사람은 자신과 완전히 무관한 일에 대해서만 그런 표정을 지을 수 있다.

 

─ 낭만적인 목표네요. 아즈사 씨만큼 매력적인 분이라면, 반드시 이룰 수 있을 겁니다.

 

 

 

흑, 앙다문 입술 사이로 소리가 터져 나왔다. 황급히 손을 들어 얼굴을 가린다. 보는 사람 따윈 아무도 없는데도.

눈가가 뜨거워진다. 참을 수 없게 된다.

 

많은 사람들에게 지탱받는 존재. 많은 사람들을 지탱하는 존재. 때로는 고고하게, 때로는 화려하게 빛나며, 누구보다도 많은 이들을 매혹시킨다.

모두를 사랑해야 한다. 모두의 연인이어야 한다. 그 누구도, 배신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함으로서 존재를 용인받고 있다.

그것이 미우라 아즈사다.

아즈사는 그것을 참을 수 없었다. 어찌나 어리석은지. 이렇게 될 줄 알고 있었다면.

 

나는 비겁하다.

 

 

“프로듀서 씨. 저… 길을… 잃었어요.”

 

아즈사는 난간을 붙잡고 주저앉았다.

 

“데리러 와 주세요……”

 

그는 찾으러 오지 않는다.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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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상태에서 글을 쓰면 어떤 게 나올지 궁금했습니다만 그런 것 치고도 좀 과하게 짧네요

내용 없는 글이라서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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