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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그렇게 적응해간다. 와쿠이 루미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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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3-15, 2017 01:44에 작성됨.

모두가 그렇게 적응해간다. 와쿠이 루미 편.

 

요 주의. 당신의 기분 좋은 하루를 망쳐버릴 수도 있는 시리어스 물입니다.

 


 

 

유리로 된 문을 밀자 가늘게 종이 울렸다. 여름을 닮은 소리. 그러나 곧 종소리는 종업원의 목소리와 한데 섞인 냄새에 묻혔다.

 

“어서 오세요. ...아.”

 

종업원은 나를 보더니 곧바로 굳어진 탄성을 질렀다.

이해는 간다. 나역시 직접 찾아 온 주제에, 그녀의 모습을 보자마자 잠시 굳어버렸으니까.

하지만 볼일이 있는 것도, 나이가 많은 것도 내 쪽이었다.

아직도 어른이랍시고 모범이라도 보이려는 듯 내가 먼저 웃으며 말했다.

 

“오랜만이야. 시부야군.”

 

“...오랜만이에요. 와쿠이씨.”

 

손님이 비는 시간대가 되자 린은 탁자에 차를 가져왔다.

유리잔 안에서 서서히 가라앉는 꽃잎. 꽃집의 아이는 꽃으로 우린 차에 대해서도 잘 아는 걸까.

하지만 가게 안에 가라앉아있는 무거운 향 때문에 차 맛은 느껴지지 않았다.

하나하나 좋은 향기라도 한데 뒤섞이면 악취가 된다는 것은, 그녀를 알게 되면서 깨달은 것이었다.

아이돌은 모두 각자의 향기를 가진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모두 어울려도 빛날 수 있었던 건...

 

“연락도 없이 무슨 일로 찾아오셨어요. 아 물론 언제나 찾아와도 좋지만.”

 

린은 오프날에 가게를 도울 땐 언제나 편해 보이는 옷과 검은 앞치마를 입곤 했었다.

그때와 마찬가지다. 달라진 게 있다면 지금은 오프날에 돕는 것도, 더는 아이돌도 아니라는 거겠지.

 

“이 근처 지나다가 들렸어. 마침 꽃도 사갈 생각이었으니까.”

 

“집에 장식 해두시려고요? 아니면 선물...”

 

“응...”

 

나는 맛이 느껴지지 않는 차를 한 모금 마신 뒤 말을 이었다.

 

“선물이라면 선물이겠지.”

 

“아...”

 

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같은 기억을 가진 사람들의 편리한 점이 있다면 사소한 몸짓과 표정만으로도 감정을 알아차릴 수 있다는 점이었다.

동시에 그 편리함은 익숙하다고 느껴질 때쯤이면 가슴 한 구석에 콱 박혀 내려가지 않는다는 점도 있었다.

 

“시부야군은 어떻게 지내.”

 

내가 그렇게 묻자 린은 굳어버린 표정을 고치며 말했다.

 

“저야 보시는 대로 가게 일을 이어받을 준비를 하고 있어요.

아이돌 그만 두고 학교에 복귀하려고 했지만, 빠진 만큼 진도를 따라가는 것도 쉽지 않더라고요.”

 

그래. 쉽지 않겠지. 노래도, 댄스도, 퍼포먼스도, 라디오 수록도. 그렇게 하나 둘씩 어려워지다 보면 결국 일상조차도 어려워졌다.

밤늦게 사무실에 남아 커피포트를 데우던 일.

오프 날에 취미가 없다는 이유로 서류 정리를 돕던 일.

그 사이에 장난스럽게 혼인 신고서를 끼우던 일.

마지막 한 곳, 집이라는 익숙한 공간이 남은 린은 어쩌면 행운아일지도 몰랐다.

나는 그 행운이 하나도 부럽지 않았다.

 

“와쿠이씨는 뭐하고 지내세요? ”

 

“나? 글쎄. 더 이상 노래도 부르지 않고 춤도 추지 않아. 그래도 346에는 남아있어.”

 

“...에?”

 

“사무원이 됐거든. 비서로 일한 경력이 도움이 됐지. 지금은 치히로씨처럼 녹색 옥을 입고 스타드리 카탈로그를 건네주고 있어.

완전 귀신 악마가 다됐지.”

 

“그거 치히로씨가 들으면 화낼 거예요. ...화낼까요.”

 

“화낼 거야. 그 정도 기력은 차렸으니까. 안즈처럼 게으른 아이돌은 있어도 게으른 사무원은 없거든. ...치히로씨는 강한 사람이야.”

 

“하하. 다행이네요.”

 

“그래. 다행이지.”

 

린은 차를 입에 대려다가 도저히 그럴 수 없다는 듯 다시 내려놓았다.

 

“미안해요. 저 그게. 티비를 안 본지 꽤 돼서... 그래서 와쿠이씨가 더는 아이돌 일을 하지 않는다는 것도 몰랐어요.

그게... 다들 똑같을 테지만... 나 혼자만이 아니겠지만 그래도 너무 힘들어서...”

 

“아냐. 그럴만해. 다들 똑같으니까 시부야군은 아직 어리잖니. 전부 이해가 돼.”

 

망할 놈의 동병상련. 같은 처지를 겪고 같은 것을 본 사람들은 결국 같은 처지의 사람을 이해하고 만다. 그건 상관없다.

하지만 다른 사람은 이해할 수 있으면서도 몇 년이 지나도 자신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것은 불공평하게 느껴졌다.

내가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걸까.

와쿠이 루미는 왜 아직까지 346에 남아서, 그리고 이렇게 옛 동료를 보러 오는 걸까.

이젠 더는 신데렐라라는 목표도 사라져 버린 지금.

그곳으로 갈 마차도 유리 구두도 마법사도 사라진 지금까지.

 

“저기 와쿠이씨. 실례가 되지 않으면 다들 뭐하고 지내는지 물어봐도 될까요?”

 

“아... 응. 그래. 괜찮아. 어디 누구부터 얘기해야할까.”

 

그날 이후 원래부터 아이돌이 목표인 사람들은 아직도 아이돌로 남아있었다.

우즈키는 무대 위로 올라가고 나나씨는 여전히 우사밍성인이었다.

그러나 처음부터 아이돌이 아닌 사람들은 대부분 떠났다.

카에데는 모델 때의 경험을 살려 디자이너 공부를 시작했다.

시즈쿠양은 오이카와 목장으로, 쿄코양은 돗토리, 미즈키는 전속 아나운서로 돌아갔다.

남은 사람들 중에서도 완전히 변하지 않은 사람은 없었다.

잡생각을 지워낸 리이나는 기타를 완벽히 익히고 료와 나츠키와 그룹을 짰다.

미쿠양은 고양이 흉내를 그만두었다.

유코의 손에는 더는 숟가락이 보이지 않았다.

그대로 남아있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그리고 어디로 갈지 정하지 못한 와쿠이 루미는 사무원이 되었다.

겉만 그럴싸해 보이는 가장 최악의 형태겠지.

 

“다들 잘 지냈으면 좋겠어요. 저만 이렇게 멀쩡한 거 같아서...”

 

“걱정 마. 다들 잘 지내니까 너도 네 생각만 하렴. 가게일이 힘들지는 않아? 아직 어린데.”

 

"늘 해왔던 일이니까 조금 늘어난다고 해서 힘든 일은 없어요. 가게일은 괜찮아요. 가게 일은..."

 

"그래..."

 

스스로에게 되묻는다. 나는. 와쿠이 루미는 사무원일은 괜찮은가? 하지만 거기에 답변을 해줄 자신은 아무데도 없었다.

스스로 내린 결정은. 그날. 당신은 굳은 얼굴보다 미소가 어울린다며 명함을 받은 그날. 터무니없는 제안에,

그것도 젊은 학생이 아니라 다 큰 여자에게 아이돌이라니.

바보 같은 제안을 무슨 변덕이 들어서 덥석 받아들인 그날이 마지막이었다.

마지막 이후로 다시 시작되는 건 아직까지 없었다.

 

“그럼 슬슬 가볼게. 하얀 녀석으로 골라줄래?”

 

“아 네. 여기요.”

 

나는 대금을 치루고 린에게서 꽃다발을 받았다.

무리에서 떨어져 홀로서도 아름다운 꽃.

홀로서도 아름다운 아이돌.

홀로서도 아름다운 사람은...

 

“시부야군도 가지 않을래?”

 

그럴 생각은 아니었다. 갑자기 튀어 나온 말에 스스로도 놀랐다.

악질이네. 무슨 생각으로 어린 아이에게 그런 권유를 하는 걸까.

다 큰 어른인 나도 견디지 못하는 일에. 타성 섞인 태엽이 그러하듯, 규범에 의해 만들어낸 사이클에 몸을 내던진 주제에.

마음 속 깊은 곳으로는 여전히 원망이 남은 걸까.

그렇다면 나는 최악의 여자였다. 아무 죄 없는 시부야 린에게. 아무 상관없는 사람들에게 썩어빠진 원망을 돌리고 있는 셈이니까.

린은 놀란 표정을 애써 구겨 넣으며 예의바르게 대답했다.

 

“아뇨. 그게. 저... 가게 일이 바빠서. 대신 해줄 사람이 있으면 모르겠지만, 부모님도 안 계셔서

음. 그러니까 가시도 다듬어야하고 화분도 옮겨야 하고. 응. 물도 줘야하니까...”

 

하지만 애써 구겨 넣은 감정은 의외로 부피가 커서 다 들어가지 않았다.

자그마한 주머니에서 튀어나와버린 감정은 결국 눈가에 맺히고 목을 잠기게 만들었다.

 

“미안...해요 와쿠이씨... 사실 그런 거 하나도 안 중요한데... 가게 일 따위... 어찌돼도 상관없는데...

그렇게 변명을 해서라도 가기 싫어서... 아니 못갈 거 같아서...”

 

“아냐. 시부야군.”

 

위로의 말은 가도 위로의 손길을 닿지가 않는다.

지금 내게 저기에 손을 대는 것은 나조차 억누르지 못한 것들을 그대로 떠넘기게 되는 것 같았다.

와쿠이 루미가 사무원이 된 것은.

의상이 아니라 녹색 사원 복을 입은 것은, 연습실이 아니라 정기 회의실에 들어가는 것은,

익혀야할 캐러밴 곡 가사대신 수많은 워드파일의 내용일 외우게 된 것은.

서서히 앞으로 나아가는 게 아니라 이미 차고 넘친 감정의 주머니에 아직 여유분이 있다고 속인 것에 지나지 않았으니까.

울음을 터뜨려버린 린을 보는 것만으로도 잊고 있던 사실이 떠오르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난 여기까지, 넌 거기까지라고 선을 그어버렸다.

 

“가서 시부야군의 안부도 전해줄게. 그러니 미안해하지마. 오히려 내가 미안해. 떠올리기 싫은 걸 떠올리게 만들어서. ”

 

“아뇨. 와쿠이씨... 정말 죄송해요. 저기... 언제라도 괜찮다면 다시 와주셔도 되요. 굳이 꽃을 사는 일이 아니더라도.”

 

“그래. 그렇게 할게.”

 

그 말이 거짓말이라는 건 서로가 잘 알고 있었다.

물론 린이 다시 찾아오라는 말도, 내가 다시 찾아오겠다는 말도 전부가 가짜라는 것도.

그러나 여태까지 일부러 피하고 있던 린의 얼굴을 보고 한 가지는 깨달았다.

짙어져버린 다크써클과 눈물자욱. 메말라버린 피부.

아. 이 아이도 이젠 어른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것도 최악의 형태로.

 

다듬어진 산길을 올라 똑같은 구조물들이 늘어져있는 길을 지났다.

어느 곳이나 다를 바가 없지만, 찾아갈 장소가 어디인지는 훤히 알 수가 있었다.

잊을 수가 없으니까. 찾아오기 싫지만 찾아오고 싶어서. 마주하기 싫지만 마주하고 싶어서.

그만큼 소중했지만, 이제는 아프기만 한 그곳에 꽃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오랜만이야.”

 

참매미가 정신없이 울어댔다. 달구어진 아스팔트에선 보는 사람도 어지러워질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그러나 시부야에게서 받은 꽃은 시리도록 하얗고, 내 앞에 놓인 검은 비석은 냉담하게 차가웠다.

햇살은 밝았고 시간은 더웠다. 그러나 기억은 어둡고 과거는 추웠다.

 

우즈키는 무대 위로 올라가고 나나씨는 여전히 우사밍성인이었다.

카에데는 모델 때의 경험을 살려 디자이너 공부를 시작했다.

시즈쿠양은 오이카와 목장으로, 쿄코양은 돗토리, 미즈키는 전속 아나운서로 돌아갔다.

리이나는 기타를 완벽히 익히고 료와 나츠키와 그룹을 짰다.

미쿠양은 고양이 흉내를 그만두었다.

유코의 손에는 더는 숟가락이 보이지 않았다.

선택할만한 여유가 있던 사람들은 제 갈 길을 찾아서 흘러갔다.

누군가를 잃는 게 익숙하지 않을 초등학생 아이들은 대부분 그 나이 대 아이들이 있을 장소로 돌아갔다.

그러나 그 아이들이 마음까지 그 나이대로 온전히 돌아갔을 거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어디로 갈지 정하지 못한 와쿠이 루미는 사무원이 되었다.

겉만 그럴싸해 보이는 가장 최악의 형태였다.

본인의 보증이니까 믿을 만 할 것이었다.

 

그리고 고 카페인 스타드리를 입에 달고 다녀도,

성인조 아이돌에게 이끌려 매일같이 술을 마셔도,

수많은 아이돌을 혼자서 담당해도 피곤한 기색 없이 마차도, 마법사도 되었던.

그리고 나를 비롯한 누군가에겐 신데렐라가 마주할 왕자님이었던...

 

“오랜만이야. 프로듀서군.”

 

탁한 묘비에 새겨진 글자를 하나씩 뚫어져라 본다.

항상 프로듀서라고 부르던 우리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본명.

야속하게 지나버린 1년 전의 년도.

그 아래에는 더는 볼 수 없는 사람이 있었다.

 

 


 

 

원고랑 과제를 하다가 도저히 진행이 안 돼서 에라이 나가 뒤져야지 라는 심정으로 끄적인 글입니다.

그래서 탈고고 맞춤법 검사고 가장 중요한 재미고 플롯이고 뭐고 없습니다.

이런 기분으로 뜬금없이 프로듀서를 죽여 버린 저를 욕해주십쇼.

 

지금이라도 사실 마유에게 혼전임신 당한 프로듀서 때문에 단체로 멘붕했다는 결말로 바꾸고 싶습니다.

 

이게 다 346이 프로듀서를 과로사로 몰아넣은 탓입니다.

덧붙여 전공 필수를 일주일 전부에 넣어버린 학과의 탓입니다. 인생...

 

기세 좋게 와쿠이 루미편이라고 써 갈겼지만, 다음 편은 누구로 할지 정하지도 못했습니다.

그건 중요하지 않겠죠. 어차피 비루한 글 이름에 누구 한 명 딱 붙여놓으면 그게 그 사람이 되지 않겠습니까.

캐릭터 성격 고증이요? 그런 건 저 같은 주옥망생에게는 어렵습니다. 주옥을 빠르게 발음해주시면 됩니다.

나 사실 린 말투도 흉내 못 낸다는 건 안 비밀! 쉿쉿.

 

사실 다음 편이 나올지 모르겠습니다.

원고를 끝내고 과제도 끝내고 아니면

제가 박카스 한 병으로 하루를 버틸 수 있는 날이 오면 더 쓰겠습니다.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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