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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데렐라 판타지] 편광렌즈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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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3-01, 2017 16:47에 작성됨.

"다음."

 

무기질적인 목소리가 신경질적으로 다음 작업을 재촉한다. 입에는 재갈 대신 더러운 걸레를 물리고, 눈에는 안대 대신 철사 다발이 꿰어 쳐박힌 사람이 쇠사슬에 칭칭 감긴 채로 끌려나왔다. 얼굴에 복면을 쓴 남자가 목에 달린 쇠사슬을 당기자, 화학 물질에 절어버린 옷을 입은 사람이 앞으로 꼬꾸라졌다. 다 헤지고 썩어가는 옷은 그가 이전까지 살던 곳이 어디인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빈민의 목이 도끼 자국이 남은 나무토막 위에 올려졌다. 피 속의 철분을 흠뻑 머금어 단단히 썩어들어간 목질 받침대가 새로운 강화 소재를 반겼다.

 

"그, 그분이 두렵지도 않느냐! 그분께서 날 천국으로 이끌 것"

 

목까지 뻗어나온 시커먼 나무뿌리 같은 것이 도끼질 한번에 썰려나갔다. 예로부터 도끼란 나무꾼의 좋은 친구였다는 것을 증명하듯, 검붉은 피가 솟구쳐 나오며 좁은 방 안을 다시 한 번 붉게 물들였다. 복면을 쓴 사람은, 더 이상 새롭게 물들 곳조차 보이지 않는 방의 바닥 한구석을 향해 목과 시체를 던졌다. 나지막한 언덕 정도까지 높아진 시체 무더기 위에서 목이 하나 굴러떨어졌다. 떽데구르르르. 좁은 지하실에 두기엔 너무 많은 양이었다. 광신도의 비명이 터져나오는 지하실이 점점 시체로 메워져간다. 중간중간 쇠사슬과 도끼가 부딛히는 소리가 처형 집행인들의 의욕을 억지로 고취시키고 있었다. 썩은 피가 바닥 틈 사이로 새어들어가 땅을 오염시켰다.

 

"교대다."

 

"예이."

 

"가지고간다."

 

"수고하슈."

 

무기질적인 문답이 오고갔다. 집행인들이 서로 교대하는 동안, 마스크로 입과 코를 가린 병사들이 시체들을 철장에 넣어 끌고나갔다. 철장이 바닥에 끌리며 신경질적인 쇳소리를 내는 동안, 지하 감옥에 같힌 죄수들의 방에 광신도의 핏물이 스며드었다. 피가 다 빠지지 않은 시체가 뭉게지며 먹지 못할 고기로 변하고 있었다.

 

"죽어! 죽여버려!"

 

"봐봐, 내가 죽는다고 했잖아. 오늘은 좀 많네."

 

"간수 양반, 이따가 뼈나 좀 챙겨주소. 크흐흐......"

 

"닥쳐. 오늘은 니들 상대할 날 아니야. 아, 그리고 저기서 무슨 일 벌어지는지 신경 끄는 게 좋을거다."

 

"뭐긴 뭐야, 종교재판이지. 키히히히히....."

 

간수의 창이 창살 차이를 파고들었다. 끝의 뭉툭한 쇳덩어리 부분이 죄수의 코와 광대뼈를 뭉갰다. 나가떨어져서 기절한 죄수를 보며, 같은 방을 쓰는 다른 죄수들이 멍청하다는 듯 비웃었다. 죄수들은 하나같이 피골이 상접해 있어서, 마치 혈관과 뼈들이 시체에 박혀 부풀려진 나무뿌리들처럼 툭 튀어나와 있었다. 병사도 죄수도, 이런 풍경이 익숙한 듯 한 모습이었다.

 

"그거면 우리가 손 쓸 것도 없지. 아무튼 이 일에 대해선 아무것도 모르는 거다. 니들은. 나중에 알려줄 테니까."

 

간수 역할을 맡는 병사는 죄수들에게 다짐하고 나서야 다시 시체가 가득 담긴 철장을 끌고가기 시작했다. 철장과 바닥 사이에서 적당히 으깨지는 시체가 피와 육즙을 바닥에 흩뿌리는 것도 잠시, 광신도는 지하 감옥으로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아 다시 태양 바깥으로 나왔다. 그의 목이 붙어 있더라면 이 사실에 분명 기뻐했을 것이리라. 하지만 잘려나간 머리는 아무런 감정도 내뱉지 못했다.

별의 신인지 오니기리인지 하는 것이, 평생을 애처롭게 살다가 마지막 희망으로 입신하기로 결심한 신도 하나를 죽음에서 구해주는 일은 없었다. 그의 어머님이 도둑질을 하다가 자궁이 창에 꿰뚫려 죽을 때나, 그의 부인과 그녀가 안고 있던 태아가 화학약품 속에서 썩어 들어갈 때와 마찬가지였다. 전투 중에 죽고 끌려와서 죽은 모든 광신도가 그랬던 것 처럼 그는 신에 대한 아부를 늘어놓다 죽었다.

 

"구마랑 진혼 부탁합니다."

 

병사가 자뭇 진지한 듯 한 목소리로 성령을 들은 성기사에게 말했다. 병사는 행여나 자기가 무례를 범하지 않을까 하는 근거없는 불안에 자기도 모르게 정중하게 인사하며 시체를 인계하고 물러났다. 갑옷을 입은 성기사의 투구 사이로 엷은 만족감과 미소가 빛나고 있었다.

 

"걱정 마십시오. 이런 건 저희가 전문입니다."

 

성기사는 정중하게, 허나 당당하고 근엄하고 웅장한 목소리로 대답하였다. 그 목소리가 지레짐작에 사로잡혀 있던 병사의 걱정을 조금 덜어주었다. 그것이 그의 일이자, 그의 의무이자, 그의 권리이자, 그 성기사가 속한 태양의 젤러시교의 권위였다. 병사와 태양의 젤러시교의 자원봉사자들, 깊은 곳의 성직자들이 옮겨온 시체를 거대한 가마 안으로 전부 집어넣고 불을 붙이자, 태양의 젤러시교 소속의 성기사가 성령을 흔들며 기도문을 읊기 시작하였다.

 

"......디 청커옵거니 이 죄인들의 영혼이 마지막에라도 그 죄를 뉘우쳐, 조금이나마 그들의 고통을 덜 수...."

 

혀에 굳은살이 박힐 정도로 외운 기도문이 갑옷 사이로 웅얼거리며 울려퍼졌다. 성기사는 이 간이 합동 장례가 끝나고, 아이카와 치나츠의 경호를 하러 갈 때 까지 약간의 시간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 점심식사는 깊은 곳의 교단 사람들한테 얻어먹자. 아무래도 남들보다 조금 더 많이 먹게 될 테나 돈을 좀 내는 게 보기 좋으려나? 맛은 괜찮았던 것 같은데....' 엄숙하고 웅장한 기도문이 무릎꿇은 모든 자들을 다시 한 번 짓누르는 동안, 성기사가 흔드는 성령만이 분위기에 맞지 않게 청아하고 수려한 단조로움을 뽐내고 있었다. 찰랑, 찰랑. 쇠와 쇠가 부딛혀 울리는 소리.

 

 

 

----

 

 

 

"음.... 이래서야 구호소를 운영할 수가 없는데...."

 

남바 에미가 사뭇 진지한 듯 한 목소리로 말했다. 미무라 카나코 역시 같은 생각이었다. 하지만 미무라 카나코는, 오히려 잘 되었다는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지금처럼 연금당한 이상, 공을 세우는 것은 물건너가 버린 것과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이걸 기회로 그냥 왕국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그녀의 마음 속에서 척수를 따라 두뇌로 치솟아 올라왔다. '그래, 이런 동네 당장 떠나버리자. 이렇게 불쾌한 곳에 오래 있을 이유가 없어' 카나코는 과거부터 피해오다 결국엔 도래한 왕국행에서 다시 도피할 수 있다는 희망이 보이자, 속으로 남 몰래 웃어버렸다.

 

"일단 카미죠 하루나 영주에게 말해서 구호소만이라도 운영하게 하죠. 노하우는 어떻게든 전수해주고. 종이로 적어주는 게 빠르겠죠?"

 

미무라 카나코가 침통한 표정으로 어둡게 말했다. 그녀의 명성에 걸맞는, 누군가를 걱정하는 듯 한 느낌이 가득 묻어나와 있었다.

 

"그것도 어려울 것 같아."

 

고급스럽게 장식된 문이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며 열렸다. 아이카와 치나츠의 구두 소리가 고급스런 방에 연금당한 사람들의 신경을 건드리고 있었다. 아이카와 치나츠 또한, 이 종교인들의 모임에서 가장 머리가 좋은 사람이라는 이유로 교섭역과 브레인을 반 강제로 맡아버린 게 불만인 듯 신경질적인 목소리를 높이며 보고를 시작했다. 자신의 일을 자랑스러워 하는 듯 한 모습은 전혀 보여주지 않았다.

 

"심문관 아씨, 그게 무슨 소립니꺼?"

 

"카미죠 하루나가 거기까지 신경쓸 상황이 아니라는 거지. 지금 닛타 미나미가 아인헤리야를 이끌고 들어오겠다는 걸 필사적으로 말리고 있는 중이야."

 

"아인헤리야를? 왜 말리는 거죠?"

 

"닛타 미나미의 성격상, 빈민가를 전소시킬 가능성도 부정할 수 없거든."

 

굶주림도, 배부름도 사람이 있어야 존재할 수 있는 개념이다. 그 단순하고도 당연해서 잊혀지던 사실이, 최악의 가능성 앞에서 무너지기 시작했다.

 

"우리 제국군도 움직일 수가 없어요. 자칫하다간 내정간섭이고, 그 미친년이랑 마찰을 일으키는 건 사양이고."

 

하라다 미요가 아이카와 치나츠의 뒤를 따라 들어왔다. 미래의 왕국 고관대작 앞에서 아인헤리야 대장의 뒷다마를 까는 패기를 보여주었건만, 그 누구도 이에 토를 달거나 하지 않았다. 이 곳에 있는 사람들 중, 왕국에 대해 호의적인 인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없다는 반증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거 참, 엘드리치를 뵐 명목이 없습니다. 뭐라 말씀드려야 할지...."

 

나이 든 깊은 곳의 성기사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닛타 미나미. 아인헤리야의 단장이자 과격파로 유명한 인물. 전쟁에선 카미죠 하루나나 사죠 유키미와 합을 맞춘 적도 있었다.

 

"사죠 유키미는 어때요? 왕국 상층부와 연결되어 있는 사람은 현 시점에서 걔 하나일텐데."

 

"지금은 휴식중이야. 아까 싸우다가 힘을 많이 소모한 듯 해."

 

"화력부족이었지. 크크...."

 

하라다 미요가 꼴 좋다는 듯 웃음을 흘렸다. 마법사 주제에 그 정도로 약해빠진 화력이라니. 은폐가 쉬운 숲 등의 복잡한 지형을 주 활동 무대로 삼는 이유가 있었다는 걸 알고 있었다면 부하가 죽을 일도 없었을 것이라고 자책하는 듯 했다.

 

"...그럼 슬슬 쓸모없는 회의를 해 보죠. 영주는 대체 무슨 생각인 걸까요?"

 

아이카와 치나츠가 총대를 매고 화제를 억지로 전환시켰다. 이 곳에서 아무런 성과도 없이 갈 수는 없다. 생각하는 바는 달랐지만, 결국 목표는 한 가지였다.

 

 

 

---

 

 

 

"소식 한 번 빠르게 전해지네."

 

늦은 밤. 카미죠 하루나의 집무실. 그림자가 등불 빛을 받아 아지랑이와 함께 달빛이 새어들어오는 창문에서 조용히 타오른다. 아무래도 오늘은 철야를 해야 할 것만 같다는 예감에, 이곳의 영주가 한숨을 쉬었다. 야근이나 철야 같은 건 전쟁 시절 동안 질리게 겪어봤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런 과중한 업무와 스트레스가 익숙해질 리가 없다. 고급 기름을 써서 그을음이 없는 맑은 등불빛 한 쌍이, 그녀의 침침한 눈에 맞춘 안경 속에서 타오르다 약해지고 있었다. 그녀는 고개를 들고 등잔을 바라보았다. 기름이 없었다.

 

".....가져왔어."

 

"아아, 고마워요. 피곤하지 않으세요? 피곤하면 먼저 들어가서 주무셔도 되요."

 

"경호중."

 

사죠 유키미가 등잔용 기름을 가져다 준 동시에 영주의 제안을 거절했다. 거대한 고양잇과 짐승의 모습으로 변한 페로만이 몸을 둥글게 말고 잠을 청하는 것 처럼 보였다. 몸 어딘가에서 떠오르는 눈동자가 사역마의 주인과, 주인의 곁에 있는 영주의 모습을 응시하고 있었다.

 

".....무슨 생각?"

 

"그거 보고내용에 포함되어 있나요?"

 

"......"

 

페로가 몸을 일으켜세웠다. 여전히 느긋한 움직임. 하지만, 눈 깜짝할 사이에 주인을 지키고 영주를 물어뜯을 수 있도록 서서히 자리를 옮겨가고 있다. 카미죠 하루나는 가소롭다는 듯 페로를 쳐다보곤 말했다. '그 정도로는 나한테서 네 주인을 지킬 수 없을 거다'라는 무언의 암시가 흐르고 있는 듯 했다. 실제로, 지금 사죠 유키미는 카미죠 하루나의 공격범위 안에 들어와있다. 하루나는 페로가 달려들기 전에 유키미를 맨손으로 찢어버릴 수 있었다.

유키미 역시, 그걸 알고 있었다.

 

"종교인들 관련해서는 지금 보고서를 쓰고 있어요. 왕궁에서 온 사자가 제 목을 치기 전에요. 일단 표면적인 이유를 말씀드리자면..... '경호 상의 정보 유출 의혹' 때문이죠. 제가 공단을 방문한다는 건 당일까지 관계자 몇 명을 빼곤 아무도 몰랐어요. 즉, 가장 의심되는 것은 그 관계자들이라는 거죠."

 

".....납득. 하지만, 그만큼 오니기리 교에게 시간을 주는 꼴. 이쪽의 수단을 스스로 봉쇄한 형국이야. 변명은?"

 

"죄악이라는 것을 모르나. 지금이라도 시간과 예산을 좀만 더 주신다면 영주자리를 내팽개치고 싶습니다~"

 

"내 '고용주'는 진짜 이유를 원해. 아인헤리야를 언제까지 막고 있을 수는 없어."

 

"정확히는 닛타 미나미 경을 막을 수 없다는 거겠죠."

 

전쟁이 일어나기 전, 카미죠 하루나는 닛타 미나미를 부를 때 '경'이라는 칭호를 붙이지 않았다. 아나스타샤를 부를 때도 마찬가지였다.

 

"......사이온지 영지에서 벌어진 일을 알고 있나요?"

 

".....알고 있어. 그 때문에, 나도 스카웃 당했어."

 

카미죠 하루나는 몰랐지만, 사이온지령은 사죠 유키미의 고향이기도 했다. 다행스럽게도, 그녀는 고향에 대해서 이렇다 할 애착을 지니고 있지 않았다.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의 죽음 따윈, 아마 그녀 안에선 효율과 숫자로 치환되고 있으리라. 사죠 유키미의 말투는 어느 때보다 더 냉랭했다. 시커먼 한기가 결정창처럼 카미죠 하루나의 등에 꽃혀 척추를 쑤시는 느낌이 들자, 그녀는 약간 의아스러움을 느꼈다. '이럴 아이가 아닌데' 그녀는 머리 속에 떠오른 의문을 접어두고 잠깐 서류를 치워두었다. 유키미를 통해 왕궁의 높으신 분에게 보고하는 것 또한 일이라는 판단 아래 서류 업무에서 도망친 것이다.

 

"....고용주 쪽은 걱정하지 말라고 했어."

 

"아, 그럼 그걸로 전달해주세요. 그것보다 위에서는 뭐래요? 아인헤리야는 언제쯤 여기 온데요?"

 

".....?"

 

마치 '그럼 그 이유로 OK다' 라고 하는 듯 한 말투. 분명히 뒤가 있다. 그리고, 그걸 숨길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오히려 난리가 나는 걸 노린 듯 한 언행이기까지 하다.

혼돈, 광기, 의도적.

 

".....아, 미리 말해두는데 전 오니기리 교 아니에요. 제 귀여운 영지민들을 건드린 그 개새끼들을 족치기 위해서라면 아인헤리야라도 불러올 생각이에요. 그리고, 영주인 제가 오니기리 교라면 진작에 여긴 난장판이 됐겠죠. 하지만, 여긴 카와시마령 정도는 아니더라도 상당히 번창하고 있는 곳이라고요."

 

깊은 곳의 교단 성직자들이 들으면 코웃음을 칠 법한 말이지만, 사죠 유키미는 딱히 부정하지 않았다. 난민이 흘러들어 모였다는 것은, 그 만큼 번창하고 있는 곳이라는 뜻이다. 다만 영지의 능력이 갑작스레 늘어난 사람의 숫자를 따라가고 있지 못할 뿐.

 

".....그럼, 진짜 목적은?"

 

"구금한 목적이라면..... 음, 공정성이라고 해 두죠. 나중에 더 큰 시비를 피하기 위해서요. 아, 엘드리치에겐 걱정 말라고 전해주세요. 내일 일찍 풀어줄 계획이니까. 언질을 전해줄 루트 정도는 있죠?"

 

사죠 유키미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엔, 그녀는 페로와 함께 방 구석으로 들어갔다. 그곳은 카미죠 하루나가 한 호흡에 공격할 수 있는 범위를 아슬아슬하게 벗어난 곳이었다. 하루나는 그 모습을 보고 씁쓸하게 웃었다. 

 

"그럴 생각은 전혀 없는데. 아, 내일부턴 바빠질 거에요. 자 두는 게 좋아요."

 

 

 

---

 

 

 

도시라는 것은 상류층의 생활 공간과 중류층의 생활 공간, 그리고 하류층의 생활 공간으로 분류된다. 지금 아침 햇살을 받기 시작한 이 저택은 상류층의 거주지역에 지어져 있었고, 그 지역의 건물들이 그렇듯이 전쟁의 여파를 느끼지 못하는 고색창연함이 이슬 속에 맺혀 빛나고 있었다. 이 저택의 소유주는 카미죠 하루나 영주의 친척 소유이기 때문에, 적어도 이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함부로 건드리려 하지 않았다.

 

"하암...."

 

저택에서 일하는 관리인이 하품을 하며 자물쇠를 풀었다. 독특한 광택을 발하는 금속으로 만든 백합과 장미꽃 위에 색유리를 씌워 한층 더 독특하고 아름다워 보이는 장식들이 움직이며 쇠문을 열어가기 시작했다. 이 저택의 주인은 영주의 친척이자 공단에서 사업체를 꾸리는 유력자 중 한 사람이기도 했기에, 이러한 기술을 자신의 저택에 잔뜩 이용하고 있었다.

 

그는 최근에 자신의 주인을 찾아오던 금발의 여성을 떠올렸다. 활기차고 밝은 모습 속에 어딘가 사악하고 위험한 기색을 풍기던 여자였다. 과거 용병으로서 일하던 관리인은 그녀의 얼굴을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그가 알던 '오오츠키 유이'와는 너무나 다른 느낌에 그저 닮았을 뿐인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그녀는 진작에 행방불명되었다. 이제 와서 귀족들 사이에서 나타날 리가 없다.

'그런 천박한 년을 만나줄 리가 없지.' 전직 용병은 그렇게 생각했다.

 

"....어라?"

 

이 고귀한 거리의 아침이, 불쾌한 쇳소리에 의해 오염되기 시작했다. 익숙한 갑옷 소리가 귀를 자극한다. 그것도, 상당히 가까이에서 들려온다. 전직 용병은, 이 선명한 소리를 이제서야 들었다는 걸 깨닫곤 자신이 상당히 무더졌다는 걸 깨달았다. 잘 먹고 잘 살고 있다 보니, 긴장이 풀려버린 걸까. 도련님의 검술 연습에 어울려주면 조금은 감을 되찾게 될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저택의 관리인은 무슨 일인지 보기 위해 바깥으로 나갔다.

 

"수고 많으십니다. 무슨 읿꿔헉!"

 

"이단심문이다."

 

관리인이 주먹에 맞아 날아가는 도중 마지막으로 들은 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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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시간적인 여유가 조금 나왔네요.

그러고보니 내일부터 개학이군요. 전 5월달까진 백수입니다. 아아 요 2개월이 영원히 지속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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