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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즈 담당 프로듀서는 죽을 만큼 후회했다 -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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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2-24, 2017 02:21에 작성됨.

원작
아이돌 마스터 신데렐라 걸즈 - 반다이 남코 엔터테인먼트/ A-1 Pictures

프로듀서와 안즈는 우선 휴게실로 향했다. 프로듀서는 안즈에게 무슨 일이 있었음을 직감했지만, 추운 계단에서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도 없을 노릇이므로 안즈를 휴게실로 데려갔다. 따뜻한 곳에서 차분히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마침 휴게실이 비어서 지금은 안즈와 프로듀서만 있다. 프로듀서는 자판기에 동전을 투입하고 안즈에게 말을 걸었다.

“뭐 마실래?”
“아무거나.”
벤치에 앉은 안즈가 차분하게 대답.

프로듀서는 손가락으로 음료 목록을 훑다가 코코아 캔 버튼을 눌렀다. 금속 캔이 금속판에 요란하게 부딪혔다. 프로듀서는 캔을 꺼내 안즈에게 가볍게 던졌다. 안즈는 그걸 능숙히 캐치.


“자, 나는 뭘 마실까……. 그래, 나도 아무거나를 마실까!”
프로듀서는 눈을 감고 손을 아무렇게나 흔들다가 버튼을 눌렀다. 캔이 자판기에서 배출된다. 프로듀서가 뽑은 캔은 차갑게 식은 생선 캔.

“와, 안즈! 이것 봐봐! 여기 미쳤어! 음료수 사이에 생선 캔을 팔아!”
“알고 있어.”
프로듀서가 호들갑을 떠는 걸 보고 안즈는 그만 피식 웃고 말았다. 안즈도 저걸 보고 똑같은 말을 했었는데.

프로듀서가 코코아 캔을 뽑고 안즈 옆에 앉았다.

둘은 코코아를 마셔 몸을 녹였다. 히터 바람에 온몸이 나른해진다. 휴게실 공기가 프로듀서와 안즈의 몸을 포근하게 감싸 안고 토닥였다. 잠이 조금 왔지만, 프로듀서는 숨을 약간 들이쉬곤, 나른함을 숨에 담아 배출했다.

프로듀서는 안즈를 보았다. 안즈는 눈을 반쯤 감고 코코아 캔을 손바닥에서 굴리고 있다. 이대로 조금만 더 방치하면 아마 잠들지 않을까. 니트니까……. 프로듀서는 문득 이대로 안즈를 재우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전에 풀어야 할 이야기가 있다. 프로듀서는 안즈에게 말했다.

“내가 잘못 본 거면 미안한데……. 아까 계단에서 너…….”
안즈가 프로듀서에게 고개를 돌렸다. 둘의 눈이 맞았다. 나른함에 덮인 안즈의 눈동자에서 슬픈 빛이 엿보였다. 그리고 그게 프로듀서가 이야기를 이을 동력이자 동기가 되었다. 안즈가 품은 씁쓸한 감정이 살아있는 동안에 이야기해야 한다.

그래야 프로듀서가 안즈의 마음을 더 깊게 이해할 테니까.

“혹시 일부러 떨어지려고 그랬어? 아까 내려오면서 널 봤을 때 그렇게 보였거든.”
프로듀서는 안즈에게 숨김없이 물었다. 안즈는 캔을 몇 바퀴 더 굴려 캔의 온기를 빨아들인 다음에……. 프로듀서의 말에 대답했다.

“응.”
고개를 끄덕이면서.

“정확히는 그럴 뻔했어. 중간에 바보 같다고 생각해서 그만뒀지만.”
안즈는 덤덤하게 말했다. 그러나 목소리는 조금 불안정하다. 안즈는 코코아를 한 모금 마셨다.
“그런데 운 없게 발을 헛디뎌서 넘어질 뻔했는데……. 그걸 프로듀서가 잡았지.”
코코아의 단맛이 안즈의 혀를 잡아주기라도 했는지 안즈의 발음이 조금 나아졌다.

“오늘 무슨 일 있었어?”
프로듀서가 묻는다. 안즈는 조금 고민하다가 코코아를 한 모금 더 마셨다.

“있지, 프로듀서.”
“응?”
“부모란 건 좋은 걸까?”
안즈의 눈에서 나른함이 완전히 걷혔다. 대신 나른함에 숨어 기회를 엿보던 애수가 안즈의 눈을 장악했다. 세상 빛을 흐리게 하는 필터가 안즈의 눈에 쓰였다. 프로듀서는 그게 어디서 왔는지 잘 안다. 그래서 프로듀서에겐 안즈와 이야기할 의무가 있다.

프로듀서는 의무를 치렀다. 입을 열고 말했다.

“그건, 사람마다 달라. 자식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고, 자식에게 사랑을 베푸는 부모들도 있겠지. 하지만, 자식에게 부당한 압력을 주고, 자유를 빼앗는 부모도 있고, 심지어 자식을 버리는 경우도 있지.”
프로듀서는 말을 마치면서 입술을 뿌득 씹었다. 자기도 모르게 속에서 울분이 치밀었다. 프로듀서는 입술에서 샌 아픔 덕분에 정신을 차리고 속을 가라앉혔다. 프로듀서는 평소보다 숨을 더 많이 들이쉬고 말했다.

“중요한 건 자기 부모가 어떤 부모인가 그 여부겠지. 그리고 그런 점에선 난 너한테 입이 백 개라도 할 말이 없어.”
안즈가 이렇게 마음고생을 하는 이유. 그건 프로듀서가 안즈와 부모의 인연을 끊는 걸 주저하기 때문이다. 물론 안즈네 집안, 후타바 가는 사회에서 무시하지 못할 저력을 뽐내는 무서운 가문이다.

제아무리 346라 하더라도 정면으로 상대하기 벅찬 상대이며, 지금 346 아이돌 부서는 다른 부서들에 공격받고 있으므로, 346의 제대로 된 지원을 기대하기도 힘들다.

안즈도 그걸 이해하고 있다. 안즈가 프로듀서에게 강경하게 나가지 못하는 건, 오다이바 페스 당시의 일 때문이기도 하지만, 후타바 가의 저력을 알아서다.

“오늘 라디오 주제가 평소에 고마운 사람이었는데 부모에 관한 사연이 뽑혔어.”
안즈는 나직하게 말했다.
“세상 모든 부모는 사랑으로 자식을 낳고 사랑으로 자식을 키워준다고, 세상 모든 부모님이 존경받아야 한다는 내용이 있더라.”
나직한 목소리가 조금 떨린다. 슬픔이 아닌, 분에 의해서.

“나는 그걸 전혀 동감하지 않아. 웃기지도 않는 헛소리라고 생각해. 그런데, 방송 시작 전에 미쿠 쨩이 전화하는 걸 우연히 봤거든? 미쿠 쨩, 부모랑 정말 기쁜 듯이 이야기하고 있었어.”
미쿠는 정말 친근하고 편하게 통화했다.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사람과 통화를 한다는 게 제삼자에게도 느껴질 정도로.

“미쿠 쨩은 안즈를 정말 잘 챙겨줘. 기숙사에서도 그렇고, 일할 때도 그렇고. 안즈는 미쿠 쨩한테 고마움을 느껴. 그런데……. 그 편지를 읽고 나니까 미쿠 쨩이랑 같이 있고 싶지 않아졌어.”
안즈는 계단에서 미쿠의 말을 가로막고, 괜찮은 척하면서 일부러 미쿠를 돌려보냈다. 미쿠를 안심시키고 돌려보낸 건……. 미쿠에게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아서 그런 게 아니라…….

“우리 부모는 이런데 왜 미쿠 쨩 부모는……. 나는 이런데 왜 쟤는…….”
안즈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같이 있으면 그런 생각을 계속할 것 같았어. 그래서 미쿠 쨩이 걱정해주는 걸 뿌리치고 그냥 헤어졌어.”
안즈는 코코아로 목을 축였다.
프로듀서는 안즈가 코코아 한 모금을 다 마실 때까지 기다렸다가 말했다.

“그거 말고 미쿠한테 다른 건 안 했어?”
“응, 안 했어.”
“그럼 됐어. 네가 그런 감정을 느끼는 건 어쩔 수 없는 거야. 자기보다 더 나은 상황에 있는 사람을 보고 마음이 무거워지는 건 당연한 거야. 질투하거나, 혹은 저 사람이 가진 걸 나도 가지고 싶다, 그렇게 느끼는 건 인간이면 누구나 다 그래. 그걸 남한테 푸느냐 마느냐가 문제지. 너는 그 감정을 미쿠에게 풀지 않았어. 그것만으로도 넌 칭찬받아 마땅해.”
나와는 다르게. 프로듀서는 이 말만은 삼켰다. 하고 싶었지만 참고 삼켰다.

“프로듀서는 정말, 날 걱정해 줘.”
안즈는 미소 지었다. 지금 당장에라도 증발할 듯한 아지랑이 같은 희미한 미소였다.

“오늘 온 사연 중에 이런 사연도 있었어. 고열로 고생했는데, 부모가 간호해줘서 나았대. 나도, 비슷한 경험이 있어. 어렸을 적에.”
프로듀서도 얼핏 들은 이야기다.
안즈가 어릴 적에 고열로 쓰러져서, 안즈의 부모가 스케줄을 모두 쉬고 간호에 매달린 일화. 안즈가 유일하게 기억하는 부모의 따뜻한 온기. 안즈는 그 이전에도, 그 이후로도 그걸 느끼지 못했다.

“그때 기억이 떠올라서 계단에서 이런 생각이 든 거야. 내가 계단에서 굴러서 다치면 그 사람들은 과연 나를 걱정해줄까. 그때처럼 날 간호해줄까. 하고…….”
안즈는 말하면서 헛웃음을 터트렸다.
“그럴 리가 없는데 말이지.”
만약 안즈가 다쳤단 소식을 들어도, 그 사람들은 부모로서 안즈를 걱정할 위인이 아니다.

만약 안즈를 걱정하더라도, 그건 안즈를 자기 딸로 봐서 걱정하는 게 아니라……. 그저 재산이 손실될까 봐 걱정하는 것이겠지.

“그래도 프로듀서는 와줬어. 프로듀서는 내가 다치면 걱정해줄 거로 생각했는데, 진짜로 와서 기뻤어.”
안즈는 이번엔, 아무리 지워도 사라지지 않을 것 같이, 짙게 웃었다. 입꼬리를 그저 살짝 올리기만 한 웃음이었지만, 조금 전에 지은 헛웃음과는 질이 다르다.

“얼마 전에 학교에서 같은 반 아이들이 생일 파티에 초대해줬어. 그런데 가지 못했지.”
안즈의 웃음이 메말라갔다. 안즈가 학교로 돌아가려면 아직 시간이 걸린다.
“가고 싶었어.”
안즈는 숨을 한 번 끊고는
“정말, 가고 싶었어.”
슬픔에 차올랐다.

“학교는 처음엔 귀찮다고 생각했어. 근데, 아이돌이 되고, 학교에서 친구가 생기고, 같은 반 아이들하고 친해지니까……. 귀찮지만, 그래도 나쁘진 않다고 생각했어.”
안즈는 아웃사이더. 니트. 학교에선 내부자의 탈을 쓴 외부자.

하지만 그건 안즈에게 있어 조성된 환경에 불과했다. 안즈가 태어난 환경이 안즈를 그런 인간으로 정의했다. 다른 사람하고 연관되어봤자 길게 못 간다. 그저 부모가 정해준 대로만 인연을 맺을 수 있는 그런 인간이……. 사회성을 제대로 기를 수 있을까?

물론, 정해진 사람과 만나, 정해진 커뮤니티에만 속해도 사회성을 기를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얻은 시야가 넓을까? 혹시 높기만 하고 좁지는 않을까?

안즈는 아이돌이 되기 전엔 인터넷 커뮤니티를 제외하면 현실에서 사람을 만나길 꺼렸다. 학교는 출석 일수를 계산해서 다녔고, 반 친구들과는 거리를 뒀다.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두지 않았고, 그저 집에만 틀어박혔다.

후타바 가에서 나온 건 좋았지만, 안즈 몸엔 부모가 심어놓은 생활양식이 배어있었기 때문이다. 안즈는 자기도 모르는 새에 평범한 사람과 관계를 맺지 않는 사람으로 세공된 것이다.

입에 대었던 고급 음식의 식감도, 몸에 걸쳤던 고급 의류의 감촉도, 몸을 맡겼던 고급 침대의 포근함도, 전부 내던지고 생활할 수 있었지만 인간관계만은 도저히 어찌할 수 없었다.

현실 인간관계에 안즈 스스로 발을 내딛지 않았다.
내디딜 수 없었다.

하지만…….
“아이돌이 된 덕분이야.”
아이돌이 되고 나서 조금이나마 달라진 기분이 들었다.

“아이돌이 된 후로, 주변이 시끄러워지는 거……. 귀찮지만 좋았어.”
아니, 기분 탓이 아니다. 실제로 달라졌다. 안즈는 확신했다. 그렇기에……. 프로듀서에게 지금 확신을 담아 말했다.

“나 아이돌 그만두고 싶지 않아. 아이돌 하고 싶어!”
안즈가 괴로운 이유. 안즈가 힘든 환경에서 성장한 탓도 있지만, 단순히 그래서 그런 게 아니다. 아이돌 활동은 안즈가 하고 싶은 걸 찾기 위한 여정이었다. 이 길을 통해 하고 싶은 걸 찾을 순 있을지언정 아이돌 자체가 안즈가 계속 달려갈 길인지는 아직 모른다.

하지만, 계속 달릴 수 있느냐 없느냐는 상관없다. 안즈가 지금 하고 싶은 것, 지금 걷고 싶은 길. 그게 바로 아이돌이다. 안즈는 아이돌 업계에 들어와 일상이 바뀌었다. 새로운 세계를 경험했다. 아이돌 활동은 안즈가 스스로 손에 넣은 것 중에서 손꼽히는, 뿌듯함이 손에 가득 차는 멋진 경험이었다.

안즈는 이걸……. 이대로, 그것도 최악의 방식으로 끝내기 싫었다.

흔히들 무언가에 깊게 매진하는 걸 보고 목숨을 건다고 표현한다.

그렇게 뜨거운 표현은 안즈의 취향이 아니다. 하지만, 열기를 조금 식히면 이야기는 다르다. 조금 순화해서, 안즈의 지금 마음을 표현하면 이렇다. 목숨 외에 모든 걸 걸 정도는 된다. 지금 부풀어 오른 이 마음은 아이돌 활동으로 얻은 활력에서 오는 것. 원천 자체가 바로 아이돌 활동이다.

안즈에게 있어 지금 목숨 외의 모든 것……. 그 중심에 있는 게 바로 아이돌 활동이다.

살아있는 시체에 생기를 불어넣은 게 바로 그것이니까.
그리고 프로듀서는 안즈의 마음을 귀에 똑똑히 담았다.

“결심이 섰어.”
프로듀서는 품에서 명함을 꺼냈다. 명함에는 오직 핸드폰 전화번호만이 적혀 있었다. 그 외 다른 정보는 일절 적혀있지 않았다.

“나는 널 지원할 거야. 나는 네 프로듀서이자, 너의 동반자니까.”
프로듀서는 명함을 노려보았다.

“네 마음이 아프면, 더는 망설일 필요는 없어.”
그리고 프로듀서가 한 일은 아주 명확하고 간단한 것이었다. 전화번호는 전화를 걸라고 있는 것이다. 프로듀서는 전화번호의 용도에 맞게, 핸드폰 전화 앱에 전화번호를 입력했다.

명함에는 전화번호의 주인이 누군지 적혀 있지 않지만, 프로듀서는 그게 누군지 짐작했다. 안즈의 교육 담당이 답은 정해진 것만 들고 오라며 건네준 명함. 프로듀서가 답을 전할 인물은 한정된다.

프로듀서는 전화를 걸었다. 통화 대기음이 프로듀서와 안즈의 마음이 얼마나 뛰건 상관없이 무뚝뚝한 멜로디를 반복한다. 멜로디가 지나가고, 스피커 음질이 달라졌다. 상대방이 전화를 받았다.

-누구지?
통화 대기음보다 더욱 무미건조하고 무뚝뚝한 목소리가 프로듀서에게 물었다.

프로듀서는 전화 모드를 스피커 모드로 바꾸었다. 안즈도 똑똑히 듣게. 안즈는 목소리를 듣고 얼굴을 굳혔다. 안즈는 목소리의 주인이 누군지 아주 잘 안다. 잊으려야 잊을 수 있을까. 안즈를 만들고, 안즈를 벼랑 끝으로 내몬 사람의 목소리를 안즈는 절대 잊지 않는다.

통화 상대는 안즈의 아버지였다.

프로듀서는 자신의 이름을 대었다.
-아아, 누군가 했더니 안즈의 담당 프로듀서였군.
안즈의 아버지는 시시함을 대놓고 목소리에 드러냈다.

-그래서, 이 번호는 어떻게 알았지? 자네에겐 알려주지 않았네만.
전화번호만 적힌 명함의 용도. 명함은 사회에서 명함 주인의 지위를 나타내는 표시다.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담당하는지 간략하게 알려주는 물건이다.

요즘 시대 명함에는 보통 이름과 직종, 그리고 직책 등의 정보가 쓰여 있다.
이게 없으면 사회적 지위를 알릴 필요가 없다는 거다.

이런 경우는 둘 중 하나. 알리면 안 되거나, 알릴 필요가 없거나.

이 경우는 분명 후자이리라. 안즈 교육 담당이 프로듀서에게 건넨 명함은 분명 안즈 아버지의 사생활용 혹은 친교용으로 가까운 사람에게만 건네주는 명함일 테지.

“어쩌다 보니 얻었습니다.”
프로듀서는 안즈 아버지의 질문을 어물쩍 넘기기로 했다. 안즈 아버지가 명함의 출처를 물어보는 건, 즉 안즈 교육 담당이 프로듀서에게 명함을 넘긴 걸 모른다는 뜻이다. 정보를 숨기는 건 탐색전의 기본이다.

안즈 교육 담당이 어떤 의도로 이걸 넘겼는지 아직 정확히는 모른다. 짚이는 구석이 있지만, 확신은 얻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 확실한 건 프로듀서가 안즈의 아버지와 통화를 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프로듀서가 할 일은 단 하나.

-그런가. 그래, 아무래도 상관없겠지. 그래서 무슨 일인가? 나는 바쁘다. 지금 이러는 순간에도 처리해야 할 게 산더미니 빨리 끝내줬으면 한다.
“제가 전화할 일은 하나밖에 없지 않습니까.”
-안즈를 보낼 마음이 들었나?
“안즈는 절대로 안 보낼 겁니다.”
프로듀서는 단호하게 고했다.

-그런 헛소리를 들으라고 전화했나?
“그쯤하고 이야기를 들으시죠.”
-건방진…….
“당신 딸 이야기야.”
프로듀서는 핸드폰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프로듀서의 악력 때문에 핸드폰 케이스에서 요철이 풀리는 소리가 났다.

통화 소리가 그 소리를 묻었다.

-그래, 내 딸이지. 그러니 이쪽으로 넘기는 건 당연한 순리 아닌가?
“당신은 여태까지 안즈를 내버려 뒀어. 그런데 이제 와서 데려가겠다고?”
-그 아이가 가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그 아이는 자기 가치를 증명했지. 다시 데려올 이유는 이걸로 충분하다.
안즈는 입술을 깨물려다가 말았다. 화를 표출해 봤자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 테고, 무엇보다 안즈는 자기 아버지……. 자기 부모에게 정을 기대하는 게 어리석은 행위라고 이미 뼛속 깊이 이해하므로.

“안즈는 이제 자기가 하고 싶을 걸 할 거야. 그걸 방해할 자격은 당신에게 없어.”
-나는 그 아이에게 모든 걸 부여했다. 생명도, 먹을 것도, 입을 것도, 살아갈 집도 모두 다 내가 주었지. 그러니 그 아이를 어떻게 할지 그건 내가 정할 일이지.
안즈는 집에서 나와 혼자 생활했지만, 그럼에도 부모의 그늘에서 완전히 벗어나진 않았다. 안즈가 먹고, 자고, 입고, 의식주를 이루는 데에 사용한 자원은 모두 안즈의 부모가 준 것이었으니까.

안즈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대부분을 안즈 부모가 제공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하지만 프로듀서는 안즈 아버지의 말에 코웃음을 쳤다. 안즈에게 생명을 주고, 먹을 음식을 주고, 안즈를 재우고, 입힌 게 무슨 대수라는 건가. 안즈의 부모는 안즈에게 중요한 걸 주지 않았다. 그저 안즈의 겉을 꾸미기에만 치중했을 뿐이다.

프로듀서는 안즈가 맨션에서 기숙사로 이사한 날 안즈와 나눈 대화를 떠올렸다.
-이거……. 좀 좋은 것 같아. 집에서 이렇게 같이 테이블에 둘러앉아 밥 먹고 이야기하고 같이 웃고 그런 거 말이야.

“당신은 직접 뭘 만들어서 안즈에게 먹인 적 있어? 테이블에 안즈랑 같이 둘러앉아서 웃으면서 식사한 적이 있어?”

프로듀서는 안즈의 손톱을 깎아준 날 안즈와 나눈 대화를 떠올렸다.
-와, 남이 깎아주는 게 이렇게 기분 좋을 줄은 몰랐어.

“안즈의 손톱을 깎아준 적 있어?”

프로듀서는 안즈의 생일을 떠올렸다.
-프로듀서! 앞으로도 추억 잔뜩 만들자!

“안즈 생일에 추억 하나 만들어준 적 있어?”

프로듀서는 안즈와 캐치볼을 했던 날을 떠올렸다.
-프로듀서! 안즈를 똑바로 봐줘!

“안즈와 공을 주고받은 적이 있기나 해?”

의식주는 인간의 삶에 필수적인 요소다. 무엇 하나 없어도 인간은 살 수 없다. 그러나……. 인간의 삶은 그게 전부가 아니다. 삶은 세 가지 요소로만 이루어지지 않았다. 인간에겐 마음과 감정이 있다. 이것까지 채워야 인간의 삶이 비로소 완성된다.

인간의 마음을 채우는 요소……. 그건 바로 정이다. 흔히 인연 혹은 유대감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안즈의 부모는 안즈에게 그것을 주지 않았다. 안즈가 마음에 상처를 입어도, 마음이 회복하게 마음속을 가득 채우는 걸 소홀히 했다. 결과 그 빈자리를 절망이 차지하고 안즈는 의욕을 잃어버렸다.

인간의 마음에 정이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하는지 프로듀서는 잘 안다. 그걸 뼈저리게 느끼면서 살아왔기에. 그러므로 프로듀서는 들끓는 마음을 더욱 주체할 수 없었다. 아니……. 주체하지 않았다.

주체할 필요가 없다. 안즈의 마음을 무참히 찢어발긴 녀석에게, 가감 따위를 할까 보냐!

프로듀서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답이 돌아왔다.

-그게 뭐 어떻단 말인가? 그게 살아가는 데 필요하나?
목소리는 조금 전과 다르게 격양되어 있었다. 그러나 프로듀서는 안즈 아버지의 목소리에 위화감을 느꼈다. 보통 사람이 안즈 아버지 입장에서 화를 낸다면, 자기가 안즈에게 무엇을 해주었는지에 대해 더 중점을 두고 화를 낼 게 뻔하다.

하지만 안즈 아버지가 목소리에 담은 짜증은 어딘가 방향성이 다른 것처럼 들렸다.

-이번엔 내가 물으마. 요리? 즐거운 식사? 손톱 깎아주기? 생일 추억? 그게 정점에 오르는 데 있어 무슨 도움이 되지?
프로듀서의 등에 한기가 지나갔다.

-이 사회에 여유를 즐길 수 있는 사람은 한정됐다. 여유란 타인이 자기를 따라오지 못할 정도로 격차가 있어야 비로소 즐길 수 있는 물건이다. 타인이 따라올 수 없는 격차……. 그걸 만들지 못하면 의미가 없단 말이다!
프로듀서는 침을 꿀꺽 삼켰다. 이 사람은……. 평범한 사람과 사고 논리 구조가 다르다.

안즈 아버지는 진심으로, 프로듀서가 말한 걸……. 안즈에게 해줄 수 있는 걸……. 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고, 애초에 그게 왜 필요한지 프로듀서에게 묻고 있다.

-흥……. 어차피 지금 이러고도 내가 안즈의 부모가 맞는지 경악하고 있을 테지. 생각은 네 자유지만 정정의 필요가 있다. 보통 사람에게 애정이 필요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보통 사람에 한한다. 안즈는 보통 사람이 아니야.
안즈 아버지의 목소리에 웃음이 섞였다.

-그 아이의 재능은……! 아이돌 놀이 따위에 쓸 물건이 아니야! 사람들 위에 군림해야 진정으로 발휘되는 재능이다! 그 누구도 범접하지 못 하는 높은 곳에서, 낮은 곳에 있는 것들을 내려다보아야 어울리는 재능. 그저 혼자서 고고하게 군림하는 제왕의 재능. 정점에 서는 자는 애정을 갈구할 필요가 없다. 왜냐면 사람은 항상 위를 올려다보게 되어있으니까.
안즈 아버지는 즐겁다는 듯이 이야기했다.

-정점에 서는 자는 시련에 맞서 싸울 줄 알아야 한다. 누구에게 의지하지 않고 홀로 고독하게, 결국 안즈가 따라오지 못해서 한때는 포기했다만, 이렇게 다시 일어서서 다행이군. 안즈는 재능을 가지고 있으면서 그걸 썩혔지. 아까운 짓을 했어.
안즈 아버지는 웃음기를 거두었다.

“당신은 결국 안즈는 안중에도 없다 이건가?”
-후타바에 필요한 건 그 아이의 재능이다. 사회의 톱에 오르는 건 누구나 다 열망하는 게 아닌가? 그 아이도 이 자리에 오르면 이해할 테지.
프로듀서는 기가 질렸다. 안즈 아버지가 이런 인간이란 건 이미 알고 있었지만 이런 식으로 직접 확인하니 허탈함이 몰려왔다. 프로듀서는 안즈가 상처 입는 걸 무릅쓰고 이런 사람과 교섭을 시도했단 말인가.

하지만 허탈함에 끌려다닐 때가 아니다. 안즈의 아버지가, 안즈의 부모가 안즈에게 있어 어떤 존재인지 반박의 여지 없이 확실하게 파악한 이상, 안즈를 이런 사람들이 데려가게 둘 수 없다. 프로듀서는 입을 열었다.

그러나 프로듀서가 말하기 전에 안즈가 먼저 선수를 쳤다.

“시련에 맞서 싸울 줄 알아야 한다고? 웃기지 마! 날 인형처럼 다루었으면서 내가 알아서 움직이길 바랐어? 헛소리도 정도껏 해!”
안즈는 자기 부모를 아주 잘 알고 있다. 정 없는 인간들이란 건 알고 있다. 그러나……. 안즈 아버지의 말은 안즈의 한계점을 넘겼다. 안즈를 끓어오르게 했다.

-안즈냐. 거기 있었군. 마침 잘됐어. 너에게도 전하마. 이곳으로 돌아와라. 네가 있을 곳은 그곳이 아니야.
안즈 아버지는 안즈가 화내는 걸 들었으면서 아주 태연하게 안즈에게 고했다. 안즈 아버지는 아주 당연한 걸 말하는 것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안즈에게 명령했다. 안즈는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그걸 들은 채 만 채 소리를 질렀다.

“그럴 거면 내가 뭘 하고 싶은지 대체 왜 물었어?! 그건 대체 뭐였냐고!”
스피커에서 깊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깊고 짙은 한숨. 상대방을 진심으로 한심하다고 여기는 한숨이다.

-날 실망하게 하지 마라. 안즈. 답은 간단하잖아. 후타바의 정점에 서서 후타바에서 어떤 걸 하고 싶은지, 네가 후타바를 어떻게 이끌지 물어본 거다.
안즈는 할 말을 잃었다. 목이 순식간에 무언가로 막힌 것 같았다. 목구멍의 살점이 죄다 부어서 목구멍이 막힌 것 같은 답답함이 목에 꽉 찼다.

-너는 우리가 준비하는 대로 움직이면 된다. 한심하게 굴지 마.
안즈의 부모가 쐐기를 박았다.

안즈는 집에서 나온 후로, 자기가 뭘 하고 싶은지 몰라 괴로워했다. 집안의 압박에 질려 의욕을 잃은 게 가장 큰 원인이었지만, 부모가 안즈에게 심었던 질문도 원인 중 하나였다.

프로듀서와 만나기 전까지, 안즈의 심장을 꿰고 안즈의 양분을 빨아먹은 악독한 질문의 의미가 바로 이거였다니……. 안즈는 주먹을 꾹 쥐었다. 안즈의 주먹이 지금 당장에라도 폭발할 듯이 요동쳤다.

그리고, 프로듀서가 그런 안즈의 손을 살며시 잡았다. 그러자 안즈의 손이 프로듀서의 손 안에서 진정됐다.

프로듀서는 안즈와 눈을 맞췄다. 안즈는 프로듀서의 눈빛을 확인했다. 둘은 완전히 같은 타이밍에 고개를 끄덕였다.

프로듀서가 입을 열었다.

“당신에게 안즈는 안 줘.”
-나한테 이렇게 구는 게 무엇을 뜻하는지 알고는 있지?
“알 바 아니야.”
-흥, 그래. 지킬 수 있으면 지켜 봐라. 모든 수단을 써서 빼앗을 테니.
“해보시든가! 이쪽도……, 모든 수단을 써서 안즈가 하고 싶은 걸 하게 할 거야.”
프로듀서는 한 치의 양보도 없이 물러서지 않았다.

이제 협상의 여지는 티끌만큼도 남지 않았다. 프로듀서와 후타바 가의 격돌은 필연으로 굳었다. 이제 대화를 이어갈 필요도 없다. 누가 먼저 통화를 끊을 것인지만 남았다.

안즈는 그 전에 말했다.

“어릴 적에 날 간호했던 건……. 대체 뭐였어?”
안즈가 유일하게 기억하는 부모의 온기. 안즈가 부모와 보낸 기억 중에 가장 이질적인 기억. 대답은 일말의 주저 없이, 조금의 딜레이 없이 아주 즉시, 상대방이 고민한 흔적도 없이 바로 돌아왔다.

-망가진 기계를 고치는 데에 거창한 이유가 필요하나?

그래, 그랬어. 당신들은 역시…….

“당신들 정말 최악이야. 이거 알아?”
안즈는 주먹을 풀고 프로듀서의 손을 깍지를 끼어 잡았다.

“당신들 정말 엿 같아. 쓰레기 같다고.”
대꾸는 돌아오지 않았다. 몇 초 지나서 전화 앱이 꺼졌다. 상대방이 전화를 끊었다. 안즈와 프로듀서는 전화 앱이 꺼지고 핸드폰 화면이 자동으로 절전될 때까지 아무 말도 안 했다.

핸드폰 화면이 완전히 꺼지자
“우아아! 힘 빠져!”
프로듀서가 축 늘어졌다.

“며칠 분량의 배터리륻 단숨에 쓴 느낌이야.”
프로듀서의 손을 잡은 안즈도 마찬가지로 축 늘어졌다. 마치 바람 빠진 풍선이 된 것 같다. 안즈가 숨을 고르고 있으려니 프로듀서가 말했다.

“미안해. 안즈, 너무 늦었지?”
안즈는 고개를 끄덕였다.
“좀 더 빨리 이랬으면 좋았을 텐데…….”
“후후, 그러게……. 그래야 했는데, 그만 쓸데없는 생각을 품어버렸어.”
“그런데 괜찮아? 솔직히 말해서 걱정돼.”
프로듀서는 안즈의 손을 풀고, 안즈의 손을 잡았던 손으로 안즈의 이마를 콕, 하고 살짝 건드렸다.

“괜찮아. 저쪽이 강하게 나오면 이쪽도 강하게 나갈 뿐이야. 네가 걱정할 건 없어.”
프로듀서는 숨을 고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기분 상쾌하네. 이런 날은 베이킹이 하고 싶어지지.”
프로듀서는 기지개를 켜고 몸을 풀었다.

“좋아, 사무소에서 크로캉부슈라도 만들까!”
“어? 슈를 탑처럼 쌓아서 캐러멜 실로 장식하는 그거? 그 크로캉부슈? 만세!”
안즈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안즈의 입안에 벌써 군침이 돌았다.

“만들 수 있어? 힘들지 않아?”
“물론, 단……. 네가 도와준다면.”
“으엑…….”
“농담이야. 그렇게 높게 만들 건 아니어서 혼자서 해도 충분히…….”
“쌓는 건 도와줄게.”
프로듀서가 눈을 휘둥그렇게 뜬다.

“프로듀서, 그거 재미없어.”
“하하, 미안.”
프로듀서는 표정을 원래대로 돌렸다.

“자, 그럼 가 볼까!”
둘은 그대로 휴게실에서 나왔다.

휴게실에서 나오기 직전 프로듀서는 안즈 아버지의 명함을 쓰레기통에 버렸다. 고급 종이가 쓰레기 더미 위에 살포시 얹혔다. 이후 명함은 안즈와 프로듀서가 나간 후에 들어온 사람들이 버린 쓰레기 뭉치에 파묻혔다.

쓰레기통에 버려진 것들은 그 날 저녁에 청소부들이 타는 쓰레기로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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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키 단편을 쓰느라 생각보다 많이 늦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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