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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제일] 사과와 고백의 욕심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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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2-16, 2017 22:30에 작성됨.

 

“···그럼, 오늘도 수고하셨습니다.”

 저녁 시간이 살짝 지난 무렵, 정중히 인사를 하고 사무소에서 나온다.

 

 사무소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아서, 이질적인 아름다움 그러나 낯이 익은 사람의 옆모습을 발견한 순간, 묘하게 재촉하던 발걸음이 늦춰지기 시작하였다. 마침, 옆을 바라보던 고개가 나를 향해 움직였고, 그로 인하여 먼저 건네려던 말은 마주친 그 시선 너머의 미소에 의해 온데간데없이 삼켜졌다.

“오늘은 제가 좀 더 빨리 끝났네요. 후훗.”

 자신이 빨랐다는 사실에 대한 기쁨의 웃음일까, 내가 늦었다는 사실에 대한 짓궂음의 웃음일까.. 어찌 좋은 그러한 생각과 함께, “죄, 죄송해요.” 라는 사과의 말이 습관적으로 나왔다.

“여지없이 바로 사과인가요?”

“죄송합니다. 아!...”

“어라? 또~~.”

 그녀의 표정에서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그리고 얼핏 만족스럽다는 무언가가 떠올랐다. 그 표정에 어찌 답변해야 좋을지 생각하던 찰나에,

“아아~ 또, 미유 씨의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았다~ 만족만족~.”, “제게 그 모습은 언제나 귀엽게 다가오지만, 좀 더 자신을 가져도 좋다고 생각한다고요?”, “그렇게 사과만 하시다가는 사과 사가러 가셔야 할 거에요. 후훗.” 라며 이어진 그녀의 말들과 말장난을 끝으로 구원받았다.

 그 구원의 답례로, “그럼 오늘 저녁에 쓸 재료 사러 갈 겸, 사과사가..죠...”

 나의 말에 그녀도 약간은 놀란 듯, 그녀의 각기 다른 빛을 머금은 두 눈이 커졌다.

 결국, 스스로 말해놓고는 부끄러움이 밀려와 나는 살짝 고개를 숙였다.

 

 

 그렇게 저녁거리를 사고 함께 집으로 들어왔다.

그녀와 한 집에 같이 산지 3개월이 지났다.

 나는 바로 주방으로 향하여 앞치마를 두르고 저녁밥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녀의 동거하자는 제안이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가벼운 옷차림으로 갈아입은 그녀는 즐거운 듯이 식탁에서 턱을 괴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도 그럴게, 그녀는 평소에 내가 닿지 못할 곳의 사람이라고 생각해왔기에..

 완성된 음식들을 식탁에 옮기고 비로소 식사의 시간을 가졌다.

너무나도 눈부셔서, 나라는 존재가 닿으면 사라질 빛 같아서..

 식사 중에 그녀에게서 ‘좋은 아내가 될 것 같다.’ 라는 맛평가가 또 내려졌다.

다가갈 생각조차 못하는 그런 내게 성큼 다가온 그녀, 생각해보면 첫 만남부터 그랬었다.

 칭찬에 감사를 표하며, 마저 즐거운 식사를 이어갔다.

그러던 중, 어느새 그녀의 술자리 모임에 들어가 있던 나를 발견하기도 하고..

 식사를 마치고, 그녀에게 목욕을 권하고는 그동안 설거지를 끝마쳤다.

내게는 과분한 지난 총선거의 결과 이후에는 그녀와 아이돌 업무를 하는 날들 또한 늘어갔다.

 그녀가 나오고, 이어서 나도 목욕을 하러 들어갔다.

그렇게 함께 하는 시간이 흐를수록 그녀라는 존재는 커져만 갔다. 왠지 모를 불안감과 함께...

 

 

 목욕을 마치고 나오는데, 나의 등 뒤에서 와락 껴안는 그녀의 행동에 살짝 놀랐다.

“에, 저기.. 카에데 씨? 이건 대체...”

 달콤한 향에 이끌려 왼쪽 어깨 위를 약간 올려다보니, 초록색 눈동자가 반짝였다.

“미유 씨~ 저는 저기 보이는 크리스털 으로 잔잔하게 한 하고프답니다~.”

“안돼요.”

 즉각 거절을 한 나였다.

“즉답.. 그것도 단칼에 거절하시다니.. 흑흑”

“우는 소리 내셔도 오늘만큼은 안.돼.요.”

 단호하게 거절하는 나의 모습에 지지 않고 응석을 부리기 시작하였다.

“오늘 밖에서 쓸쓸하게 기다리던 저의 모습은 잊으신 건가요...”

“아...” 언제나 주도권을 쉽게 가져가는 그녀가 좀 치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 카에데는 슬퍼지려고 해요. 그러니 술퍼마셔야겠어요. 흑흑”

“하아.. 알겠어요. 대신에 조금만, 조금만 마시는 거예요.”

“네에~!”

 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미 술잔과 술병을 꺼내러 가는 그녀였다.

 

 

 술병을 기울이는 모습이 발랄하기까지 한 그녀의 모습에 미소가 옅게 지어졌다.

“그러고 보니 오랜만에 늦은 오늘, 어떤 일이 오래 걸리셨던 거죠?” 술을 마시다가 문득 저녁의 일이 떠올라 그 원인이 궁금해졌는지 내게 물었다.

“그게...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향후에 있을..”

“아! 혹시 CD 데뷔?! 맞죠?”

“에, 네...”

 나의 말이 완료되기도 전에 정답을 외친 그녀의 말에 작게 수긍하다가 급히 덧붙여,

“그렇지만 확정 단계가 아닌, 검토랄까..예정..이랄까...아직은 단지, 그 뿐의...”

“그러한 단계면 시기의 차이인, 이루어질 사항인거랍니다~.”

‘가희’이자, ‘톱 아이돌’인 그녀가 그렇게 말해주니 묘하게 높은 신빙성이 느껴졌다.

“향후에 다시 축하할 일이~~후훗. 아, 그래도 마냥 좋지만은..”

 그녀의 알 수 없는 부분에서 끊어진 말에 의해 나의 표정에는 물음표가 띄어졌으리라. 그녀는 그런 나를 보고는 멈춘 말을 이어갔다.

“미유 씨가 CD 데뷔를 하면, 본격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미유 씨의 매력을 알게 되겠죠~.”

“그게 무슨?...”

“나만이 알고 있던 미유 씨의 매력이~~ 아아~싫다~~.”

“그, 그럴 리...”

“그렇게 인기쟁이가 된 미유 씨는 결국 저와 멀어..”

“그럴 리가 없잖아요.”

 나도 모르게 정색을 해버렸다. 장난이란 걸 알았으면서도..

“저.. 미유 씨?”

“죄, 죄송해요..”

 나의 사과 뒤에 그녀 나름대로 내 주변의 공기를 헤아리는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한순간에 찾아온 정적, ‘아아...’ 정적에는 익숙하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정적은 역시 싫다.

 그리 길지 않았지만 싫은 정적을 깨기 위해 내가 입을 열었다.

 

“장난이여도 그런 말은 하지..말아주세요..”

“네.. 이번엔 제가 잘못한 거니까요.”

 약간은 쓸쓸한 미소를 짓는 그녀를 본 순간, 답답함을 느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밝던 그 모습을 내가 지워낸 것 같아서...

“카에데 씨.. 카에데 씨, 저는 이전까지는 실패한 인생을 살아오고..소극적이고..말주변이 부족하여 아직까지도 타인을 대하는 것이 서툴기만 한..저에요...”

 한번 늘어뜨린 자조적인 말들은 계속해서 나오기 시작했다.

“그런 제게 다가와준 카에데 씨인데, 제가 멀어진다는 건...그 반대라면 모를까..”

“네?”

 이번에는 그녀가 의문을 표했다.

“저와 달리 카에데 씨는 빛나는 보석처럼 아름답고, 바라보기만 해도 눈부신 존재니까요.”

 이 답변만으로는 아직 의문이 사라지지 않은 듯 표정을 나타내는 그녀에게 이어서 말하였다.

“그리고 제게는 언제나 동경의 대상이기도 하고..가까이 가면 사라질 행복과도 같은, 저에겐 분에 넘치는 사람이니까...!”

 별로 마시지 않았다고 생각한 술의 기운에 생각 이상으로 등 떠밀린 덕분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내뱉기 시작한 말들이 점차 쌓여, 그동안 마음속에 지녀왔던 불안감과 끓어오르는 무언가의 표출에 불을 지폈다.

“가, 가까워질수록 커져가는 카에데 씨에 대한 제 마음만큼, 행여나 곁에 없게 되었을 때의 예상되는 슬픔도 커져가서 내심 불안해하기도 하고...그런 제가 멀어진다는 말은..너무...흑..흑흑..흑흑흑”

 점점 북받쳐 오른 감정에 이제는 내 자신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알 수 없게 되었다.

“미유 씨, 미안해요..미안해요. 제가 그렇게 먼저 다가가 놓고.. 저도 그런 건 싫다고요. 응?”

 그녀가 말을 마치고, 울음이 멈추지 않는 내 옆으로 와 어깨를 감싸 다독여주기 시작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좀 전까지의 동요와 감정의 북받침이 차츰 가라앉을 기미가 보였다. 기분 좋기까지 한 그녀의 상냥함에 기대어 이대로 지쳐 잠들까 생각도 했지만 마음을 겨우 진정시킨 끝에, 옆에 있는 ‘내게 소중한 그녀’에게 시선을 천천히 돌려서,

“카에데 씨.. 저, 카에데 씨를 좋아해요."

 말을 마친 순간, 그녀의 오드아이가 커졌다. 그리고,

“저도 미유 씨를 좋아한답니다.”

 긍정적인 답변이 날아왔다. 그 답변에도 왜인지 만족 못한 나는 조심스레,

“앞으로도..곁에..있어줄래요?” 라며 매달리듯 되물었다.

“음~ 이건 마치, 사랑의 고백 같네요. 후훗.”

 그 말을 듣자, 얼굴이 뜨거워져 고개를 숙이는 나였다. 그런 나를 어떻게 보고 있을지는 짐작이 가지 않는 그녀에게서,

“네, 그럴게요.” 간결하지만 이보다 좋은 답변은 없다고 생각되는 말을 들려줬다.

 

“그런데 미유 씨는 정말로 욕심쟁이시네요~.”

“에? 무슨...”

“그런 ‘약속’을 혼자만 받아 내는 건 치사한걸요~.”

 그녀의 말에 작은 기대감이 생겨나고 이내,

“앞으로도, 제 곁에서도 있어주세요. 미유 씨.”

“...네!”

현실이 되어 행복을 이루었다.

 

 

 나비의 날갯짓과도 같던 밤이 지나고, 아침보다는 이른 시간이 방 안에 찾아왔다. 잠에서 깬 나는 조금 지끈거리는 머리를 조용히 일으켜 세워 창가 쪽을 바라봤다. 아직은 적은 빛이 녹색 커튼 사이로 비치고 있었다. 커튼을 멍하니 바라보는 것만으로 지끈거림이 어느 정도 잦아들었다. 그러자, 어제의 일이 떠오르기 시작하였다. 커튼에 머무는 부끄러움에서 고개를 돌리자, 새근새근 자고 있는 그녀에게 시선이 닿았다. 나만이 오롯이 만끽할 수 있는 ‘작은 사치를 부리는 시간’ 이란 느낌과 함께, ‘제가 이렇게 욕심쟁이일 줄은 몰랐어요.’ 라는 생각을 삼키며 따스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고마워요.. 사랑해요..” 그녀에게 들리지 않을 정도로 나지막이 내 마음을 다시금 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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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읽어주셔서 감사하고, 아프지 않게 마구 채찍질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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