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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제일] 물론 제일 귀여운, 나의 사치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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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2-16, 2017 19:54에 작성됨.

사치코, 귀여운 아이.
  나이에 비해 작은 그 키, 자기자신을 필사적으로 어필하는 태도, 그러면서 꼬맹이는 아니라고, 어른이라고 하면서 최대한 성숙한 척 하는 그 어숙함. 자신은 그 어숙함이야말로 매력인 걸 알고 있으려나?
  그런 생각을 하며 사치코를 보고 있자니 사치코가 시선을 눈치챈 모양이다. 파르페를 먹던 손을 멈추고는 올려다보며 뭐, 뭐죠…? 하고 불안한 듯 부끄러운 듯 물어본다. 이런, 생각없이 내 표정이 또 풀렸나보다. 아마 바보같이 헤벌레, 웃으면서 내려다보고 있었겠지.

“맛있어?”

  새삼 멋쩍어져서 던진 이 질문에 사치코는 웃으며 대답했다.

“물론이죠! 제가 선택한 건데 맛있죠 당연히!”

  그렇게 말을 마치고는 바로 다시 파르페를 한 입 먹는 사치코. 조금 부끄러워하던 표정은 파르페의 단 맛에 풀려 이내 아주 방긋한 미소를 띠어버린다. 그래, 이 표정, 이 표정 때문에 나도 바보같이 헤벌레 웃어버리게 된단 말이야. 또, 또 뭐에요…? 바로 눈치채고 나를 올려다보는 사치코를 이번엔 아무말 없이 조용히 쓰다듬었다.

“에, 엣?”
“귀여워서”
“물론이죠!”
“응, 귀여워”
“다, 당연한 소리를 계속 하셔도 말이죠!”
“응, 그래그래”

  그렇게 난 원없이 사치코를 쓰다듬었다. 예전에 기르던 강아지를 쓰다듬던 기분과 비슷하기도 하지만, 강아지랑은 달리 가능만 하면 몇 시간이고 쓰다듬고 싶은 건 강아지랑 다르다.

“그, 그마, 그마안…”

  사치코는 부끄러운지 머리가 헝클어지는게 싫은지 곧 그만하라며 머리를 제 손으로 쥐어싼다. 내가 좀 과했는지 단정하던 머리는 제법 헝클어져 버렸다. 그래도 사치코는 귀엽단 말이지. 그래, 그래도 내 여자친구는 너무 귀엽단 말이지. 사치코는 잠시 나를 째려보고는 – 그 표정에 나는 확실히 미안해졌다 – 다시 파르페를 먹기 시작한다.
  사치코, 그 머리 향이 조금 남은 내 손바닥, 그녀가 먹는 파르페, 데이트하기에 좋다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좋은 날씨, 그리고 오후 2시의 상점가. 나와 사치코는 데이트중이었고, 나는 그저 나에게 너무나 딱맞는 142cm의 행복에 겨워하고 있었다.

 

 

  머리는 너무 많이 쓰다듬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말이에요. 물론 제가 귀여워서 어쩔 수 없다는 건 알지만! 그래도 제 머리가 헝클어지는 건 딱히 유쾌하지 않단 말이에요! 그런 말을 해도 아마 프로듀서는 알았다고 하고 얼마 안 있어 다시 쓰다듬겠지만 말이죠. 한 두 번 당해야 말이죠. …사실 그렇게 싫은 건 아니지만 머리가 헝클어지는게 싫을 뿐이에요.
  항상 올려다봐야하는 이 남자는 너무 커요. 그 덕분에 제가 더 귀엽게 보이긴 하겠지만요! 아마 제 친구들은 제가 이런 어른과 사귀고 있는 걸 안다면 놀라겠죠? 부러워하겠죠? 흐흥, 이 사치코는 당신들과 달리 이미 어른인 거에요!
  …뭐, 사실, 그것도 슬슬 질려가요. 프로듀서가 방금 저를 쓰다듬을 때, 문득 그런 기분이 들었어요. 이제, 솔직히 조금, 귀찮아요. 뭐랄까, 두근두근함이 다 사라졌어요. 그 짜릿한 기분이 없어지고 있어요. 이 생각에 약간 미안해져서 다시 프로듀서를 올려다보면 프로듀서는 그저 헤벌레 웃고 있네요. 이렇게까지 웃고 있으면 도리어 더욱 미안해진단 말이에요.

“너, 너무 웃지는 마세요…….”
“표정이 이상했나? 미안미안”

  뭐 어쨌든, 그만 쓰다듬으면 지금은 괜찮지만요. 파르페를 마지막까지 다 먹으면서 좀 생각해보죠. 슬슬 적당히, ‘정리’하는게 좋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드니깐요. 애초에 프로듀서와 아이돌의 연애라니, 위험하잖아요? 남들 눈은 무섭다고요? 지금은 서로 선글라스도 끼고 있다지만 분명 이렇게나 귀여운 저라면 알아채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른다고요?

“아”

  어느새 파르페를 다 먹었네요. 으음, 어쩌면 좋을까요? …역시, 어쩔 수 없겠죠? 결코 귀찮아서 하는 변명은 아니에요. 어쩔 수 없는 일일 거에요, 아마? 응, 그런 거에요, 아마!
  이제 어떻게 하면 완만하게 해결할 수 있을지를 생각해봐야 할 거 같아요.

 

 

“안녕하세요”

  사무실에 들어가면서 습관적으로 인사를 해보지만 사람이 별로 없다. 다들 오늘은 아침에 일이 몰려있는 모양이다. 뭐, 나도 오늘은 11시 스케쥴이니 나갈 준비부터 해야되지만. 그나저나 사치코는 아직 안 왔나? 오늘은 11시부터니 어제 헤어질 때 9시까지 나오라고 말을 해두었는데 말이지. 분명 아이돌 휴게실에선 보이지 않았고 말이지… 전화라도 해볼까.

“쇼코짱도 사탕, 먹을래…?”
“후히, 고마워”

  어이쿠, 오늘 쇼코는 내 책상 밑을 자리로 삼은 모양이다. 생각없이 의자에 바로 앉을 뻔 했어, 위험위험. 조용히 방해하지 않고 책상 위의 전화를 집으려고 하는데 익숙한 목소리도 같이 들린다.

“그거, 되게 이상해보이는 사탕이네요 코우메씨”
“응, 맛… 있어 보이지?”
“딸기맛이야, 후힛”
“진짜 눈깔처럼 생긴 사탕이라니 코우메씨 취향은 참 변함이 없어요…”

  사치코도 같이 책상 밑에 있는 모양이다. 3명이나 저 밑에 들어가면 비좁지 않나 싶지만, 142cm들에게는 문제가 없나 보구만. 시계를 슬쩍 보면, 잠깐 딴 짓을 할 시간은 있나 싶다.

“사치코도, 먹을, 래?”
“저, 저는 나중에 먹죠…”
“후힛, 맛있는데”

  나도 커피나 한 잔 마시고 출발하면 좋겠지. 사치코나 아이들에게 들키지않게 조용히 책상에서 멀어졌다. 편의점에 가서 커피 한 캔 사고 사치코가 먹을 물도 사고 치히로씨한테 볼 일 좀 보고 오면 되겠지.

 

“그런데 어, 어제 내 라이브는 봤어?”
“어머 쇼코씨 어제 라이브셨나요?”
“응, 머, 멋있었어”
“후, 후힛…”
“저는 어제 조금 바빠서”
“바빠…? 사치코 어, 어제 휴일이었잖아?”
“휴일이라도 바쁠 수 있잖아요”
“데이트… 라거나…?”

  코우메씨는 묘하게 눈치가 빠르달까 뭔가 분위기를 잘 읽는달까, 종종 놀란다니깐요. 응후훗, 그래서 자랑하는 보람도 있어서 좋지만요.

“후훗…”
“에? 지, 진짜? 엄청나다 사치코오!”
“저는 어엿한 숙녀니깐요! 데이트 정도는 별 거 아니잖아요”
“흐응, 그렇구나…”
“그런 이유여서 못 봤어요, 그 뿐이에요 쇼코씨”
“응, 그러면 무, 뭐, 어쩔 수 없지”

  으음, 묘하게 다들 반응이 없네요. 뭐, 놀란 건 이미 한참 전에 다들 놀랄만큼 놀랐으니 더 놀랄 건 없다 이런 거겠지만요, 이러면 자랑하는 맛이랄까 뭔가 제가 맥이 빠진단 말이죠.

“그런데 사치코…”
“네, 네?”

  갑자기 코우메씨가 눈을 반짝이며 – 종종 이 사람의 눈은 정말로 반짝이는 듯해서 놀랍다니깐요. 한 쪽 눈만 보이는 주제에 왜 그 눈이 그리 잘 반짝일 수 있는 거죠 – 저를 보네요. 이럴 때의 코우메씨는 뭐랄까 엄청 흥미로운 걸 발견한 건데, 코우메씨가, 흥미로운 거라니, 서, 설마 아니겠죠.

“설마 사무실에도 그, 있다거나 한 건 아니겠죠…”
“으응… 그건 아니고…”
“뭔가 아쉽네, 사무실에도, 친구 있으면 코우메도 좋을텐데 후힛”
“그, 그건 좀…”
“그냥 궁금해서이긴 한데…”
“네…?”
“그, P씨랑, 어디까지, 갔어…?”
“오, 오오오오오…!?!?”
“쇼코씨 목소리 커요! 괜히 이상한 스위치 들어가려고 하지 말라고요!”

  갑자기 두 사람의 관심도가 급격히 증가한 기분이에요. 역시 얘들이라니깐요, 진도 같은 것에 그렇게 관심 가지고 말이죠.

“손은 잡아… 봤지?”
“오오…?”
“그, 그, 그 정도야 기본이죠”
“오오오…!”

  물론 뻥이지만요. 으음, 쇼코씨의 목소리가 조금만 작으면 좋을텐데.

“그러면 다른 스킨… 쉽은?”
“오오오오, 스, 스, 스, 스, 스, 스, 스킨쉽은…?”
“뭐, 뭐 그거야… 머, 머리 정도도 기본이고”
“머리? 머리? 머리로 뭘?”
“헤에, 사치코는 쓰다듬어주는 거, 좋아하나 보구나…”
“제, 제가 쓰다듬을 때도 있었거든요!”
“에이 쓰다듬는 거였어…”
“왜 실망하고 그러세요!”
“그런 건, 별 거 아니잖아… 사치코, 완전 어른의 계단을, 오르는구나 싶었는데 조금 실망…”
“그, 그야 당연히 기본이라고 했잖아요! 그 외에 무릎에도 앉아봤다고요 흥”
“그, 그거 뭔가”
“아빠와 딸… 같네…”
“이이잇, 아빠와 딸이라뇨, 연인이에요 연.인.!”
“응, 그렇지… 그렇다면… 키스도 해봤어…?”
“키, 키, 키, 키, 키……!!!! 오오오오옷!?!?”
“쇼코씨 쉿! …그, 그야 당연히!”
“…당연히?”
“오오오옷…”

  당연히 해 본 적 없죠… 라고 말하기에는 두 사람의 눈동자가 그 어느 때보다 타오르는 듯이 보이는데요. 이제와서 아니라고 말해도… 쇼, 쇼코씨 눈동자가 위험해 보이는데요. 코우메씨는 반짝이다 못해 너무 밝잖아요 지금…….

“후우…”
“…음?”
“…오오…오옷…?”
“뭐랄까, P씨는 저를 그냥 적당히 상대해주는 거 아닐까, 싶기도 하네요 최근”
“무슨 일, 있었…어?”
“아녜요, 그냥, 요즘 조금 지루해졌달까, 두근대지 않는달까 그런 기분도 들어서 말이죠”
“으, 응?”
“키스라거나 좀 더 뭔가 달콤할 줄 알았는데 말이에요, 연애라는거, 뭐랄까, 그냥 맛있는 거 같이 먹고 그 정도인 느낌이라서요”
“사치코…”
“아아~ P씨는 어른이니깐 뭔가 좀 더 멋지고 달콤하고 두근두근대는 그럴 걸 줄 알았는데~ 사랑이라는 게 그런 거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죠… 이제 슬슬 그만두는게 좋을려나요~”
“그, 그만둬…?”
“아니, 아니에요, 후우~…”

  얘기하려니 뭔가 조금 아닌 거 같아 말이 막히네요. 이 둘한테 조금 털어놓으면 편해지지 않을까 싶었는데, 이렇게 말을 하려고 하니 답답할 뿐이에요. 저야 뭐 정리해야지 하고 결심했다지만, 그걸 남한테 이러쿵 저러쿵 설명하는 건 그리 탐탁지 않네요. 하긴, 이 둘에게 이런 걸 얘기해도 이 둘이 좋은 답변을 내줄 리도 없지만요! 저는 이 둘과 달리 이미 숙녀이니 사랑이라는 게 뭔지 알지만, 아직 사랑에 대해 모를 이 둘한테 물어봐도 어차피 답은 모르겠죠. 조금 복잡한 기분에 한숨만 쉬고 있으니 코우메씨와 쇼코씨가 제 눈치만 보고 있는 듯 해요. 조금, 미안하네요. 화제를 돌려볼까요.

“그런 것보다 코우메씨는, 다음주 미니라이브 아니었어요?”
“그, 그렇지…”
“사, 사, 사, 사, 사치코…”
“왜 그러세요 쇼코씨”
“뒤…”
“코우메씨도 또, 사무실에는 유령 없다면서요”
“유령이 아니라…”
“유, 유령이 아니면 뭔데요”

“프로듀서라고, 사치코”

“히이이이이익! P, P씨 어느새…?”
“슬슬 시간이니 출발하자고”
“네? 에? 아, 시간”
“오늘 11시 스케쥴이라 했잖아. 지금 출발하는게 좋겠다”
“아, 네, 나, 나갈, 아쿠!”

  머, 머리를 찧었어요… 아, 아파요… 아파… 으읏…….

“괜찮니?”

  P씨는 그런 제 머리를 천천히 어루만져주네요. 아, 아프다고요, 만지면 아프다고요!

“미안, 미안”

  미안하다하면서도 여전히 계속 어루만져주는 건 대체 뭔지요! 그래도 조금 살살 어루만져주니 나쁘진 않은 듯 싶지만… 아야야야……. 한동안 머리를 어루만져주는 P씨. 제가 괜찮아질 때까지 기다려주는 듯 싶어요. 이 사람은 언제나 이런 식으로 제 페이스를 맞추어준단 말이죠. 그걸 묘한 눈빛으로 보는 책상 밑 두 사람의 시선은 좀… 거북하네요.

“가, 가요 P씨”

  아직은 머리가 아프지만 시선에 떠밀려 저는 P씨를 떠밀었습니다. 머리는 나중에, 나중에 쓰담쓰담 받아도 될테니깐요! P씨는 알았다고 살짝 웃어주고는 가방을 챙겨 저랑 같이 사무실을 나갑니다.
  은근히 큰 키, 빠른 듯하면서도 앞질러 가버리지 않는 발걸음, 그 뒤를 종종 따라가는 저는 P씨의 등을 바라보면서 생각합니다. 이 사람한테 이제 그만두죠! 라고 하면 무슨 반응을 보일까요? 화를 낼까요? 울까요? 으음, 무섭네요. 어른이 그러는 것 보고 싶지 않은데 말이죠. 제가 말해도 괜찮은 걸까요?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제 입으로 그러면 보고 싶지 않은 걸, 이 사람이 운다거나 화내는 건 보고 싶지 않다고요…….
그렇다면, 그래요, 그렇다면 반대로 하면 되는 거에요. 그래요, 그렇다면, 이 사람이 저에게 정이 떨어지도록 하면 되는 것이겠죠! 좋은 생각이에요. 역시 저는 머리가 좋다니깐요, 흐흥! 그럼 조금씩, 계획을 짜서 진행해봐야겠어요.

 

 

“라는 것으로, 주스 사주세요 P씨~~”
“주스 대신 물 가져왔으니깐 물 어때”
“에이, 좀 맛있는 걸 먹고 싶단 말이에요! 저기 자판기도 있으니깐!”

  촬영장에서 우선 떼를 써보는 거에요. 쌀쌀한 호수가, 많은 스태프들이 저를 촬영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 이 순간 떼를 쓰고 있으니 P씨가 난감해하는 것이 보…여야 하는데 P씨는 쿨하게 ‘아 그래? 그럼 사올게 잠시만 기다려’ 하고는 저 멀리 있는 자판기를 향하네요. 하지만 여기까진 제 상정 안이에요! 지나오면서 봤어요, 저 자판기에 주스 같은 건 팔지 않는 걸요. 커피나 콜라같이, P씨가 저에게 사주지 않는 것들로만 가득한 자판기니 P씨는 이제 난감해하며 그냥 돌아오시겠죠.

“사치코, 주스는 없네… 나중에 돌아가는 길에 마시면 어때?”

  역시, 제 생각대로 움직이시는군요 P씨는. 이제 작전대로 플랜 에-이로 진행합니다!

“지금 먹고 싶은걸요, 지. 금. 말. 이. 에. 요!”
“으음, 하지만…”

  난감해하시는 P씨. 그럼요, 난감하겠죠. 제 촬영을 위해 준비하고 있는 스태프도 있는데 주스 하나 때문에 자리를 비우고 일정을 연장시키고 그러려면 개인적으로도 일적으로도 난감할 거에요! 이렇게 떼나 쓰는 아이라니, 하고 저에게도 조금은 실망하시겠지만요. 아, 저는 귀여우니깐 실망을 거의 안 할지도 모르는데, 그건 신경쓰이네요, 으음 그렇게 가면 조금 난감한데…….

“뭐, 상관없나… 입구에 편의점 있었으니, 하나 사올게. 뭐 먹고 싶은 주스가 따로 있어?”
“어, 네, 네? 그게… 음…”
“? 뭐야, 주스가 먹고 싶다면서… 시마무라양이나 미무라양 촬영 끝나려면 아직 시간 좀 남은 거 같으니깐, 시간은 괜찮겠지, 바로 하나 사올게”
“고, 곧 제 촬영 아니었나요?”
“아니 메인 촬영이 끝나야 사치코 차례니깐……. 그래서 뭐? 사과? 오렌지? 사치코 사과주스 좋아했지?”
“네, 네…….”

  그 말을 듣고 P씨는 금방 올게, 하면서 바로 가버리셨습니다. 배려할 사람 없는 혼자만의 빠른 발걸음으로. 이거, 제 예상과는 달리 전혀 데미지를 주지 못한 거 같은데… 어쩌죠.

 

 

  사치코한테 사과주스를 하나 사주길 잘한 거 같다. 생각보다 본방촬영에 시간이 오래 걸려, 사치코 차례는 1시간 뒤에나 돌아왔으니 말이다. 사과주스 하나를 천천히 입에 물고는 뭔가 투덜대는 사치코에게 내 코트를 입혀주고, 우리는 그렇게 쌀쌀한 호숫가에서 조용히 시간을 겹치기만 할 뿐이었다. 잠깐이라도, 조금이라도 더 시간을 겹치는 게 그저 좋다.

 

 

  두 번째 작전은, 스케쥴 망치기! 어른이고 사회인인 프로듀서라면 스케쥴을 멋대로 망치면 아주 곤란해할 거에요! 최근 데이트하면서도 들었지만, 바쁘고 쉴 타이밍도 제대로 안 나와서 힘들어하고 있으니깐 프로듀서라면 스케쥴 망치기로 저에 대한 호감이 팍팍 내려가겠죠!

“그럼 내일 할 거 설명은 대충 끝난 거 같고… 내일 시간 말인데”

  신호등에 잠깐 멈춘 사이에 다이어리를 보며 시간을 체크하는 프로듀서. 지금이 타이밍이네요.

“저기 P씨!”
“응? 왜 그래? 궁금한 거 있어?”
“아니 그게 아니라요”
“그러면 이건가?”

  으아아악! 쓰다듬지 마세요! 갑자기 쓰다듬으면 귀여운 제 머리가 또 헝클어진다고요! 그리고 이 타이밍에 쓰다듬으면 말 꺼내기 힘들어진단 말이죠…!

“응, 그래, 사치코는 귀여워”
“그야 당연하죠… 가 아니라!”
“응? 이거 아니었어?”

  하마터면 P씨에게 넘어갈 뻔 했어요! 안 돼, 안 돼… 지금은 매정해져야 할 때입니다 사치코!

“내일 스케쥴 말인데요… 빠지면 안 되나요!”
“어, 엉?”

  역시 생각대로 당황하는 P씨! 이번만큼은 직빵이에요, 이번만큼은 저에게 실망하시겠죠! 이걸 시작으로 계속 펑크를 내주면…….

“왜? 무슨 일 있어?”
“그냥… 그냥요!”

  이유 없는 게 좀 더 얄밉겠죠!

“그냥…?”

  조금 심각해지는 표정의 P씨! 그래요, 제 예상대로에요, 정 떨어지는 거겠죠, 역시 제 계획은 완벽해요! 이제 저한테 한 소리 하겠죠, 그러면 그냥 네, 라고 대답해서 좀 더 얄밉게 구는 거에요!

“사치코… 혹시 힘드니? 괜찮아?”
“네! …네?”
“그래… 최근에는 좀 무리하고 제대로 쉬어본 적이 없었지?”
“네? 아, 아니, 그게 아니라”
“조금 펑크는 나겠지만 내일 일은 게스트였기도 했고, 대체는 가능하겠지… 그래, 휴식시간을 조금 만들어보자”
“아니, 잠시만요, 요즘 어차피 일 별로 없었는데요…”
“아니야 아니야, 오늘도 공원에서 촬영한다고 오래 있었고, 분명 그저께도 단체녹음 참가하고 그랬으니깐 힘들 법도 하지”
“어, 네? 아니, 그거 별 거 없었잖아요”
“학교도 다니면서 일도 하려면 힘들거야, 응, 맞아, 내가 생각을 좀 못했네 미안미안”
“아, 우아, 우으…”

  또 쓰다듬지 말라고요! 이 사람은 저를 격려하고 싶으면 일단 쓰다듬고 본다니깐요, 정말이지!

“좋아, 잘하면 모레까지도 쉴 수 있을테니깐, 사치코는 잠깐 쉬게 해 줄게, 그러니 푹 쉬자고”

  으으, 또 실패인가요… 거기다가 엉망진창으로 쓰다듬까지 당했어요. 이게, 이게 아닌데…….

 

 

  아직 본 궤도에 오르진 못했다지만, 아무래도 사치코도 일이 많아지니 조금 힘들었던 모양이다. 그걸 좀 배려하지 못했던 스스로를 반성하며, 일단 어떻게든 쉴 시간을 만들어볼까 싶다. 뭐 이번 일은 사실 없어도 되는 걸 내가 좀 억지로 만든 것도 있으니 빼는 건 쉬울 거고, 별 이상도 무리도 없다 음음! 아주 좋군. 나름 많이 신경썼다고 생각했지만 아직도 부족한 건 많나 보다. 이 아이를 위해 좀 더 스케쥴 같은 건 잘 짜봐야겠다.
  그건 그렇고 사치코 귀엽다. 쓰다듬을 때 곤란해하는 거 같은 모습도 귀엽다. 한 손으로 운전하면서 한 손으로 쓰담고 있자니 그만두라는 듯 나를 부르는 모습도 귀엽다. 응, 귀여워.

“P씨~ 스, 슬슬”
“응, 귀여워, 귀여워”
“그, 그거야 당연하지만요”

  귀엽다를 빌미로 그 뒤로도 한 동안 좀 더 쓰다듬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는 알겠지만 어쨌든 좀 더 쓰다듬고 싶었다. 응, 사치코 귀여워, 응응.

 

 

  으음… 오늘 내로 호감을 많이 떨어트리고 싶었는데, 이대로 실패라니 이러면 완벽한 저 답지 못해요! 아무리 상냥하고 저를 위해서라면 잘 해주는 P씨라도 질투 같은 건 하겠죠. 그러므로 일단 이번엔 마지막 작전으로, 질투하게 만들고 정 떨어지게 만드는 작전을 해야겠어요!

“그러고보면 코우메씨 프로듀서, 조금 멋진 거 같지 않아요?”
“어?”

  엘리베이터에서부터 뜬금없이 공격하는 거에요! 기습 공격은 좀 더 효과가 좋겠죠!

“가끔 보면 그 수염이랄까, 뭔가 와 멋진 어른이야~ 라는 느낌이라니깐요”
“…흐음, 그래”

  좋아요, 이번에는 효과가 있어요, 질투 작전은 유효해요! P씨가 뭔가 생각하는 듯이 조금 멈칫하기 시작했어요! 사실 수염 같은 거 별로 관심은 없지만 이렇게 다른 남자를 칭찬하고 그러면 프로듀서는 질투심과 배신감을 느끼겠죠! 상냥한 남자니깐 괜히 더 느낄 거에요, 아마…!

“그리고 그 쇼코씨 프로듀서도! 키가 큰 남자는 좋네요~”
“아, 확실히 나보다 좀 더 크지”

  좋아요 좋아, 비교하고 계시네요! 비교야말로 불행의 시작! …이라고 책에서 본 적 있으니 맞을 거에요, 프로듀서는 지금 저에 대한 호감이 떨어지기 시작할 거에요!

“그리고 우즈키씨랑 카나코씨 프로듀서는 뭔가, 그, 그러니깐 음”

  그 사람은… 어… 특징이… 멋진 게 뭐였더라… 기억이 잘 안 나네요. 아니에요 아니야, 저같이 완벽한 사람이라면 캐치할 수 있어요, 할 수 있어요…!

“그래요! 그, 신발이 멋지더라고요! 뭔가 센스가 좋은 사람은~ 좋네요~”
“어 그거 나랑 같은 건데”
“네?”
“그거 나랑 같이 사러 갔어, 사실 대학 동기에다 회사도 동기라서 입사 전에 같이 쇼핑하러 갔었지~”
“그, 그랬군요…”
“그런데 사치코, 수염 같은 거 좋아했어?”
“어, 아뇨, 아니, 네, 예”
“그래… 나도 길러볼까?”

  잠깐만요 흐름이 또 이상한데요? 엘리베이터를 나와 방으로 돌아가면서 P씨는 유쾌하게 말을 잇네요.

“나도 대학생 땐 좀 길렀는데~ 좀 나이 들어보여서 잘랐거든”
“그, 그랬나요”

  그 때를 안 봐서 다행인 거 같지만요. 저 수염은 별로 안 좋아해서.

“그래도 사치코가 마음에 들어한다면 한 번 길러보지 뭐~”
“어, 아녜요, 그건 좀… 수염은 그다지…”
“어, 그래?”

  왜 이 사람은 또 아무런 탈이 없는 거 같죠…….

“아 그리고 사실 쇼코 쪽 프로듀서, 이거 비밀인데”
“네, 네?”

  P씨가 조용히, 제 귀에다가 조용히 속삭입니다.

“그 놈 키높이 깔창 쓰고 있어”
“예???”
“충분히 키 큰데 괜히 좀 더 커 보이고 싶다고, 압도하고 싶다나 뭐라나, 그러면서 쓴다 하더라. 그래서 사실 원래 키 나랑 거의 비슷해. 아, 이건 비밀이니깐 다른 사람한테는 말하지 말고”

  그건 쇼크네요……. 아니 왜 키가 큰 사람이 그러는 건가요, 그건 과유불급 아닌가요!

“뭐, 그런 거지”

  라고 말하면서 다시 저를 쓰다듬는 프로듀서. 이 사람은 또, 또 저를…!

“나는 사치코가 가장 귀엽지만 말이야”

  싱긋 웃으면서 그런 말 하면 반칙이에요, 지금은 반칙이에요 아니 룰 위반이에요! 같은 거지만 다르니깐 거기 당신 태클 걸지 마요! 그러면 쓰다듬는 거에 저항도 못 하게 된다고요…….

“으, 다, 당연하죠!”
“응, 당연하지!”

  계, 계속 쓰다듬을 건가요 프로듀서… 뭔가 쓰다듬는 게 좀 더 격렬해지는 거 같은데요오…….

“그래그래, 사치코는 귀여워”
“그, 그럼요!”
“응응, 귀여워 귀여워”
“당연하죠!”
“역시 최고로 귀여워”
“무, 무, 물론이죠!”

  제가 귀여운 건 당연하지만 그걸 몇 번이나 말하지 않아도 충분히 안다고요! 하지만 그런 눈빛을 보내도 프로듀서는 그저 저를 쓰다듬을 뿐이에요. 아니, 뭔가 좀 더 격렬해지는데요…? 이, 이 사람 지금 저 쓰다듬는 것에 맛 들고 있는 거죠? 그런 거 맞죠? 그냥 마구 저를 쓰다듬고 싶고 그래서 그냥 쓰다듬고 쓰다듬고 쓰다듬는 거죠? 무, 물론 귀여운 저를 쓰다듬고 싶은 건 당연하지만 조금 지나치지 않나요!

“아”
“네?”

  갑자기 쓰다듬는 걸 멈추는 P씨. 왜, 왜죠? 무슨 일이죠? 갑자기 쓰다듬다가 안 쓰다듬으면 그게 또 이상하다고요.

“역시 사치코도 좋아하는 거 맞구나”
“네?”

  으아아 갑자기 다시 쓰다듬지 마요! 이, 이러면 뭔가 저항하기 힘들다고요… 으으, P씨도 정말… 정말이지……. 이러면 제 계획이… 제 계획…?

아.

“잠깐…!”

 

 

  갑자기 사치코가 팔과 손을 펼치며 스탑! 이라는 제스쳐를 취한다. 조금 과하게 쓰다듬었나 싶은 생각에 손을 거두고, 조용히 사치코를 본다. 사치코는 그대로 멈춘 자세로, 뭔가 머뭇거리더니, 갑자기 눈을 마주치지 못하면서 주위를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다시 나를 보다가, 다시 눈을 돌린다. 이럴 때의 사치코는 뭔가 할 말이 있는 거다. 그것도 꽤나 중요한 게 말이지. 이런 모습을 보는 건 두 번째다. 첫 번째 때와 다른 느낌은 조금 들지만 말이지.

“저기, 그러니깐, P씨!”

  한 동안 뜸을 들이던 사치코는 어떻게 마음을 가라앉힌 것인지 입을 열었다. 하지만 이내 곧, 다시 조용해진다. 저번에도 그랬지. 역시 귀여운 아이라니깐.

“그, 다시, 그래요, 다시 생각해보지 않을래요!?”

  아, 마지막에 삑사리 났어 사치코.

“응?”
“그러니깐…….”

  다시 입을 다무는 사치코. 나는 그런 사치코를 그저 기다려 줄 뿐이다.

 

 

  으으, 역시 힘들어요. 직접 입으로 말하려니, 입이 안 떨어지네요. 뭔가 큰 잘못을 하는 기분, 뭔가 실수하는 감각이 입을 막아요. P씨를 다시 힐끗 봐요. 역시 P씨는 저를 기다려줘요. 같이 걸을 때도 뭔가 먹을 때도 심지어 이런 말을 하려고 할 때도, 이 사람은 언제나 저를 기다려주네요.
  하지만 말할 거에요. 헤어지자고 말할 거에요. 이미 그러기로 마음 먹었어요. 그러니깐 그럴 거에요! 그도 그럴게, 이건 이제 사랑이 아닌 거잖아요? 사랑이라는 건 그런 거 아니에요? 뭔가 두근두근하고, 짜릿하고, 그래요, 즐거운 거!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뛰고 뭔가 되게 두근거리는 게 사랑인 거 잖아요? 저는 더 이상 그러지 않은 걸요. P씨랑 같이 있으면 좋긴 하지만, 이제 두근거리는 건 사라졌는걸요! 남들에게 자랑하는 즐거움도 이제 없는 걸요, 제가 어른이 되었다라는 그런 기분도 더 이상 없어요. 어른이랑 사귀는 저는 참 대단해요라는 느낌도, 긴장되는 두근거림도 없다면 사랑이 아닌 거일 거에요. 아마 그런 거일 거에요……. 이제 어른이니깐, 저는 어른이니깐 제 이 생각은 틀린 게 아닌걸요! 그렇다면, 그래요, 이젠 바이바이하고, 다시 제가 두근거림을 찾아야 하는 거일 거에요.

“P씨…”
“응”

  말, 할, 거에요.

그, 그만해요!
“응?”
“그러니깐, 그, 커플 같은 거, 아니, 그 연인, 관계, 관계, 그만, 그만해요…”
“……”

  사랑이라는 건 좀 더 두근두근거리고 짜릿한 거잖아요. 사랑이라는 건 좀 더 달콤하고 그런 거잖아요. 쓰다듬기만 하고 키스나 스킨십 같은 거 자제하는 그런 건 사랑이 아니잖아요. 뭔가 보살핌만 받기만 하는 그런 건 사랑이 아니잖아요. 저도 충분히 어른인데 얘 취급 당하는 그런 것도 조금 이상하잖아요. 그런 주제에 저를 엄청 챙겨주기만 하고 그런 건 뭔가 이상하잖아요. 좀 더 두근두근 거리지 못할 거라면, 이렇게 적당히 단 맛이라면 이런 건 사랑이 아니잖아요 그렇잖아요. 그렇다면 그만두고 싶다고요.
  말이 나오지 않고, 그저 생각만이 머리 속에 마구 뱅뱅 도네요. 이상해요, 첫 방송에서도 긴장하지 않는 완벽한 저인데 대체 뭐죠? 이 이상한 기분은 뭐냐고요? 마치 왠 꼬마아이 하나가 제 안에서 난리치는 듯한 불쾌한 기분이 들어요. 아니야, 얼른 말해야 해요. 방금 한 생각을 그저 조리있게 말하면 되는 거에요 사치코! 봐봐요, P씨가 기다리고 있잖아요. 갑작스런 이별 선언에 P씨가 어이없어 하잖아요. P씨가 뭐라고 항의하기 전에 얼른 따박따박 말해서! P씨가 무슨 말도 못하게 만들어야 한다고요! 사치코, 그러지 말고, 얼른, 말해요! 안 그러면 P씨의 항변이.

“…그래”
“그러니깐 사, 사랑이라는 건… 네?”
“그게 사치코의 생각이라면 말이지”
“에……”

  뭔가 이상하잖아요?

“뭐, 뭐, 뭔가 이상하지, 않아요!?”
“그래…?”

  그 반응은 대체 뭐에요! 저한테 화도 내지 않는 건가요!?

“바, 반응, 이상하잖아요? 아니, 뭐에요! 화도 안 내시는 건가요?”
“으음… 물론 사치코한테 그런 말 들으면 슬프지만 말이지”

  그럼 뭔가요! 이렇게 깨끗하게! 미, 민다고 그냥 밀쳐지는 사람이에요 P씨는!?

“그럼, 이렇게 깨끗하게! 민다고… P씨는…!?”
“하지만 사치코가 그렇게 말하니깐 말이지”

  대, 대체 이 사람은… 사랑이 아니었어요!? 이렇게 쉽게 포기하다니, 사랑이란게 이렇게 쉽게 포기되는 거에요!?

“이, 이 사람은… 사, 사랑이긴 한 거에요!? 포기되는 거에요!?”
“으응… 사실 사치코가 갑자기 그래서 되게 당황스럽고 정말이라면 되게 아픈데… 슬픈데…”

  그런데 대체 왜!

“사치코가 그러고 싶다, 라고 하니깐”

 

 

  아마 사랑이라는 건, 나도 뭐 아직 잘 모르지만, 이 나이라고 해도 많이 해보진 않았다고! 어쨌든, 잘 모르지만, 그래도 그나마 그 윤곽이라도, 사랑의 윤곽이라도 내가 본 게 맞다면 사랑이라는 건.

“사치코가 그러고 싶다면, 그럴 거야”

  사치코의 말대로, 해야지. 이게 사랑 아닐까.

 

 

  이 사람은 언제나 이런 식이었어요. 잘 생각해보면 처음부터 그랬어요. 제가 고백할 때도, 역시 아저씨랑 저는 아닌가요 아니 그 전에 P씨 제법 잘 생겼고 분명 인기도 많죠 아니아니 저야 완벽하지만 그래요 이 완벽한 제가 고백하는 거니 감사히 받아도 좋아요 P씨라면 치히로씨가 좀 더 좋을지도 모르겠지만 아아 어쨌든 P씨에게 고백하는 거니 감사해도 되어요 아니 으아! 이런 추태를 보였지만, 완벽한 저답지 못하게 조금 실수를 했던 거 같지만, 받아줬어요. 이 사람은 언제나 이런 식으로 저를 받아줄 뿐이었어요.
  분명히 쓰다듬어달라고 한 것도 저였죠. 쓰다듬어달라고 하고 10초 뒤에 바로 후회했지만, 머리 다시 만지는 거 힘들어서 후회 조금 했지만! …그래도 큰 손이 묘하게 따뜻해서 좋아서 계속 조금씩 쓰다듬어달라고 했었죠. 이 사람은 이런 식으로 제 부탁을 들어줄 뿐이잖아요.
키스나 다른 스킨십 하지 않는 것도, 아이돌이라서 어린 아이라서 안 하는 게 아니라 제가 말 안 했다고 안 하는 거였나요, 그런 거였네요. 이상한 부탁들 다 들어준 것도 받아줄 뿐이라서였나요. 괜히 질투심 유발해보려고 해도 별 타격이 없던 건 절 그냥 받아줘서였나요!
  그런 것이었나요… 그러면서 지금 헤어지자는 말도 받아주시는 건가요! 그냥 바보같이 제가 하자는 대로만 따라주는 건가요! 이게 뭐에요, 이런 거 되게, 뭔가, 바보같잖아요! 아무리 제가 귀엽고 완벽하다고 해도 그냥 저 하고 싶은 데로 하게 두시는 게 뭔데요… 이러면 제가 잘못한 거 같잖아요… 이러면 제가 이상한 아이같잖아요… 이게 뭐에요… 알았다면서 그 표정은 뭔데요… 이상하잖아요… 당장이라도 울 거 같은 표정이나 지으시고! 그런 표정 처음 본다고요… 흡, 훌쩍! 그렇게, 훌쩍! 슬픈 표정은, 훌쩍, 어른도, 흡! 그런 표정, 짓는 거였나요… 저는… 흡, 그냥 저는 좀 더, 흡! 그냥 좀 더 재밌게 해달라고, 흡! 그냥! 흡! 그런 건데! 흐윽… 이러면… 제가… 훌쩍! 미안하다고요…….”
“사치코…”
“미안해요… 훌쩍, 훌쩍! 저는 그냥, 훌쩍! P씨한테 상처주ㄱ, 훌쩍! 나, 훌쩍! 흡, 훌쩍! 하고 싶은, 훌쩍! 건 아니었는, 훌쩍!”
“……”

  P씨가 조용히 와서 쓰다듬어줘요.

“훌쩍, 훌쩍!”
“응, 옳지, 착하다 착해…”

  손이 괜히 따뜻해요.

“흑, 훌쩍, 훌쩍, 훌쩍… 으응… 으엥…”
“심심했구나… 으응, 착하다 착해 사치코는 괜찮아 안 미안해도 돼”

  차라리 혼을 내라고요. 화를 내라고요.

“으에엥… 훌쩍, 으에엥…”
“아저씨가 조금 눈치가 짧아서… 음, 그래… 으응, 옳지, 옳지”

  지금 안지 마요, 지금 안아주기까지 하면 저는.

“으에에엥… 우에에… 으에에에에에엥…”
“으응, 미안 미안~”
“으아아아앙… 으아아아앙… 으에에에에에엥…!!!”

  울어버리잖아요.

 

 

“좀 괜찮아졌니?”
“후, 네, 훌쩍”
“그래그래, 착하다 착해”
“훌쩍, 그, 흡! 쓰, 쓰다듬지, 훌쩍, 마요!”
“…응 그래그래”
“쓰다듬지, 훌쩍, 말라니깐, 흡! 요! 훌쩍, 제가, 아무리, 훌쩍, 귀여워도, 흡, 말이죠”

  이제서야 이 아이가 하는 말을 조금 더 알아듣는 기분이다. 만지지 말라고 진짜로 만지지 말라는 게 아닐 때가 종종 있는 거였구만. 나는 조금 더 사치코의 머리를 쓰다듬고 다시 품에 안아준다.

“훌쩍, 훌쩍!”

  사치코는 코를 훌쩍이면서 품에 안겨 있는다. 아, 쓰다듬지 말고 안아달라는 거였구나. 방금 말은 철회. 나는 아직도 이 아이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하나보다. 아까전에는 사무실이 떠나가도록 울었지만, 지금은 작게 내 안에서 숨을 고르고 있는 사치코. 보고 있으면 역시 레슨 덕분에 성량이 참 좋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 뭔가 많이 이 아이 나름대로 참고 있었나, 하는 생각도 든다. 너무 어린 아이 취급했나 싶은 후회도 조금 드는구만.

“……”
“괜찮니?”
“…네”
“옳지 옳지”
“어, 어린 아이 취급하지, 말라고요!”

  응, 그래, 이건 조심해야하는 거다.

“좀 진정했으면, 일단 밖에 나갈까? 늦었으니 집에 가야지”
“ㄴ, 네…”

  진정한 사치코를 데리고 밖으로 나온다. 시간은 벌써 10시. 9시도 늦는 건데 한 시간이나 더 늦었으니 사치코 부모님한테 사정을 좀 둘러대주고, 그래야겠지. 아 근데 사치코 눈 완전히 퉁퉁 불었는데, 괜찮나. 어쩌지, 코시미즈씨 엄청 화낼텐데. 으음…….

“……”

  잠시 사치코를 내려다본다. 방을 나와 주차장에 가면서 사치코는 아무 말 없이 내 소매만을 꽉 잡고 있다. 옆에 붙어있기엔 미안하지만 가지말라고 강력히 말하고 싶은 그런 거다, 아마도. 응, 아마도.

“저기, P씨…”

  목에 잠긴 목소리로, 뭔가 퉁명스러운 듯 부끄러운 듯 아니면 심히 곤란한 듯한 목소리로 사치코가 입을 열었다. 이번엔 무슨 말일려나…….

“그, 방금 했던 말이요”
“어린 아이 취급하지 말라는 거?”
“아뇨, 그거 말고”
“아무리 귀여워도 쓰다듬지 말라는 거?”
“아니 정말이지! 그거 말고요!”

  장난치니 발끈하는 사치코 귀엽다.

“그, 그만두자… 고… 한 거…”
“응?”
“그러니깐요! 그, 연인관계 그만두자고 한 거요!”

  으음, 역시 조금 지나쳤던지 사치코가 더욱 발끈한다. 미안미안.

“그거… 취소에요… 미안해요… 괜한 소리를…”

  이미 끝난 얘기 다시 확실하게 마무리짓는 사치코 귀엽다, 완벽하게 귀엽다.

“역시 사치코는 귀여워”
“으, 으으, 쓰다듬지 말고요!”
“으, 어어, 미안…”

  황급히 손을 치우자니 손을 잡는 사치코.

“응?”
“그… 그러니깐… 그, 쓰다듬지 말고요…”
“쓰다듬지 말고, 응”
“쓰다듬는 거 말고요…!”
“아, 응, 그래”

  한 쪽 무릎을 꿇고 사치코를 안아준다. 바로 안겨서는 품에 부비부비 하는 사치코가 너무 귀여워서 순간 더 끌어안을 뻔 했다. 아플테니 그만두었다. 아마 그러면 안아주는 것도 쓰다듬는 것처럼 조금씩 싫어하게 될까봐 그만두었다.

“안 그럴테니깐…”
“응?”
“이젠 안 그럴게요오…”

  사치코는 그렇게 말하면서 계속 내 품에 머리를 파묻고는 부비부비 흔들었다. 위에서 내려다보자니 그게, 흔들리는 양갈래 머리가 묘하게 살아있는 거 같아서, 양갈래 머리가 계속 돌면서 날개짓을 하는 거 같아서 나도 모르게 풉, 하고 웃어버렸다.

“뭐에요…”
“사치코가 귀여워서”
“그야 당연하죠…”

  풉 웃는 소리에 발끈하면서도 귀엽다는 말에 당연하다고, 좋아서 계속 날개짓하는 사치코가 사랑스러울 뿐이다.

  그렇게 우리 둘은 아무도 없는 지하주차장에서 한동안 안고 있었다. 그 덕분에 삼십분 정도 더 늦게 집에 보내게 되어서 코시미즈씨에게 한 소리 들었지만, 아내인 코시미즈씨가 코시미즈씨를 적당히 말려주신 덕분에 그리 심각한 사태가 되지 않은 건 다행일려나.
  그 뒤로 사치코는 뭔가 요구하는 게 좀 더 많아졌다. 뭐 이상한 건 아니고 그 전과 다를 건 없긴 하지만, 적극적이라고 할까 좀 더 어리광을 많이 피우게 된 거 같다. 부탁이랄까 어리광 피우는데 거리낌이 없어졌달까 어리광이 진심이 되었달까 묘한 느낌이다. 그게 좋다, 싫지 않다, 꽤나 좋다. 그래서 뭐 아마 나는 할 수 있는 데까지 받아주지 않을까 싶지만. 그게, 내가 결정한 거였으니깐.
  사치코, 이 아이가 처음으로 나에게 고백한 날 결정했다. 담당하는 아이돌이 나를 고백하다니 그저 놀라기만 했고 나이 차이에 당황했고 대체 무엇 때문이지 하는 의문만이 가득한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 때 그 아이의 눈동자는 정말이었다. 왠지 알 수 있었다. 그래서 결정해야 했다. 받아주느냐 마느냐. 그래서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 그게 내 결정이었고, 그게 다니깐. 그래서 나는 이 아이를 다 받아줄 거다.
  아 또 달라진 게 하나 더 있다. 뭔가, 나에게 어리광을 요구한다. P씨는 뭐 하고 싶은 거 없어요 라든가, P씨는 뭐 좀 더 원하는 거 없어요 라든가, 종종 물어본다. 이전에는 하나도 물어보지 않다가 이제 물어보니 이게 조금 어색하긴 하지만, 이 아이는 나름대로 나를 받아주고 싶어서 그러는 거겠지. 나는 뭐 딱히 없다고 계속 대답하는 중이긴 하지만. 그럴 때마다 사치코는 볼을 부풀리면서 조금 삐지긴 하지만 그게 귀엽다. 응. 귀여우면 됐어, 응, 그러면 됐어. 아마 사치코는 내가 자신에게 바라는 게 하나 없다는 점에서 이제 불만을 조금 가질지도 모르지만, 그건 사치코의 착각이다. 나 또한 사치코에게 마음이 없었다면, 사치코를 바라지 않았다면 그 때 받아들이기로 결정하지 않았을 건데 그걸 사치코는 간과하는 모양이다. 뭐, 그리고 사실 쓰다듬고 품에 안아주는 것만으로도 좋으니깐, 그것만으로도 사치코가 나한테 들어오는 건 느껴지니깐, 지금은 이걸로 충분한 것도 있는 거지만.
어디까지 이 아이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 어디까지 이 아이는 들어와줄까, 그것만으로도 그저 좋다. 이제 나를 받아주려고 하는 그 모습이 사랑스러워서 견딜 수 없다.

  뭐. 그런 거다, 이 아이와의 사랑이라는 건.

 

 

“어때요? 어때요? 흐흥, 부럽죠?”
“……”
“……”
“뭐, 뭔가요 그 반응들은!”

  코우메씨와 쇼코씨의 반응이 묘하게 뚱하네요. 이건 뭔가 마음에 안 드는데요, 대체 왜죠.

“허그야… 뭐…”
“나는 매, 맨날 친구들 만져주는데 뭐, 벼, 별 거 아니잖아… 부힣”
“에, 에에…”

  아니 그 정도였나요, 이 정도면 엄청 부러워해야 하는 거 맞잖아요. 이 사람들의 기준은 잘 모르겠어요.

“난 또 무슨… 큰 일이라도 있는 줄 알았는데…”
“크, 큰 일이라뇨, 이 정도면 충분히…”
“저번에… 방에서 울길래… 뭔가 있었나 싶었지”
“에, 네, 에엣? 에에엣!?”

  그, 그, 그, 그, 그, 그, 그걸 어떻게 안 거죠!?

“친구가… 말해줬어…”
“네, 네!?”
“그래서… 뭘까 했는데… 허그라니, 김빠지네”
“그러게, 히힛”

  친구라뇨 친구라뇨 친구라뇨 그거 진짜였어요?? 아니 진짜 유령이라든가 그런게 사무실에 있는 거였나요오???

“응, 있어…”
“부힛, 코우메도, 사무실에 친구 있으니 좋지?”
“응, 좋아… 헤헷…”
“뭐, 뭐, 뭘 웃는 건가요…!”
“친구가… 있으니깐… 좋아서… 응… 친구도 좋지…?”
“에, 에엣? 잠깐만요, 지금 그 말은, 어, 그러니깐, 있는 건가요, 아니 잠깐만, 지금은, 대낮인데”
“사치코, 그 뒤에”
“네!?”
“어이 사치코”
히이이이이잉이ㅣ이이이이이잉ㄹ민라밍이ㅣㅣㅣㅁㄴ러ㅣ이이익!!!!!!!!
“어, 괘, 괜찮아…?”
“P, P, P, P, P, P씨 언제…!?”
“바, 방금이야, 그, 미안해, 놀래켰나 보네”
“으, 으으으으으으으으으…!!!!”

  부끄러워요!!! 부끄럽다고요!!! 아파요! 그리고 아파요!!!! 그, 갑자기 쓰다듬으면 아… 프지 않네요…? 천천히 쓰다듬어주는 건 생각보다 머리를 어루만져주니 괜찮은 거 같기도…?

“자, 일단 가자 사치코”
“ㄴ, 네…”

  프로듀서씨의 말대로 조용히 나와 프로듀서씨를 따라가요. 하지만 여전히 머리는 아프네요. 이번엔 너무 쎄게 박았어요… 아프니깐 좀 있다가 프로듀서한테 좀 쓰다듬어달라고 해야겠네요…….

 

 

“…뭔가 사치코…”
“으, 응?”
“조금… 달라진 거 같아…”
“그, 그래? 난 모르겠는데, 힛”
“조금… 부드러워졌대”
“졌, 대?”
“응, 친구들이 그렇게 말하네…”
“그런, 가?”
“응… 오늘은, 뭐하고 놀래?”
“히, 히힛, 이, 이거 봐 볼래?”

<끝>

 


 

사랑이라는 건 뭘까요, 라는 생각으로 쓴 글입니다. 뭔가 막판에 괜한 폭주를 한 거 같기도 하네요.

봐 주시는 분들께는 항상 감사하며, 글이 뜨문뜨문해서 그저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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