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카테고리.

  1. 전체목록

  2. 그림

  3. 미디어



[천하제일] 사쿠마 마유 "결국엔 맺어질 운명의 그대"(下)

댓글: 18 / 조회: 979 / 추천: 10


관련링크


본문 - 02-15, 2017 21:32에 작성됨.

"하암…."

 

오늘도, 늦은 밤입니다. 마유는 졸음과 싸우고 있습니다

수면 부족은 피부 건강의 적이자 피부 트러블의 근원이며, 수백 가지의 화장품을 가지고도 커버하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아이돌도 모델도 결국 얼굴로 먹고사는 일이고, 마유는 지금부터 아이돌이 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프로듀서님에게 조금이라도 누를 끼칠 순 없습니다. 마유가 언제나 완벽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면, 그건 결국 프로듀서님의 결점이 되어 버립니다. 하지만, 운명공동체라는 자각이 마유의 운신폭을 묶어버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비즈니스 메일을 보낼 땐…."

 

마유는 컴퓨터 앞에 앉아, 돌아오는 길에 서점에서 사 온 책을 읽고 있습니다. [비즈니스맨을 위한 이메일 예절]이라는 제목의 책입니다. 지금 보내는 메일은 어디까지나 형식적인 안부인사 겸 감사인사입니다. 아무리 개인적인 용도로 보내는 메일이라곤 하지만, 일이라는 명분이 있으니 이러한 예절 또한 철저히 지켜야 합니다.

 

사랑이란 신중하고, 철저하고, 냉철하게 불타야 하는 법.

피부 건강 유지를 위해 필요한 수면 요구 시간까지 앞으로 30분.

 

"….이걸로 OK"

 

그 회사의 주소 쪽으로 메일을 보냈습니다. 익숙하지 않은 어투에 고전하면서, 실수한 곳이 없는지 체크하다 보니 결국 상당히 늦어져 버렸습니다.

Q&A코너를 통해 보냈으니, 답변은 며칠 뒤에 오겠죠. 이제 남은 시간 동안은 기존의 검색 결과를 다시 한 번 점검해야 합니다. 시간이 없습니다. 마음이 불타서 재가 되어버릴 정도로 초초한 시간이 지나갑니다.

 

"아아…. 빨리 답변이 왔으면 해요."

 

자료를 계속 찾아다닙니다. 하지만 마음은 이미 사랑스러운 그대에게 가 있습니다. 애타는 마음만이 당신을 찾아가버렸습니다. 사랑스러운 나의 프로듀서님. 마유는 이렇게 애타게 당신을 그리고 있는데 당신은 지금 어디 계시나요.

아, 도쿄인가요. 그렇겠죠. 우후후. 곧 잠자리에 드실 건가요? 밤이 늦었으니, 너무 늦게까지 일하시면 안 돼요. 막차도 놓칠 거고, 집에 돌아가도 피곤할 거에요. 마유는 아마 며칠 동안 애태움 속에서 잠들지 못하는 밤을 보낼 것 같습니다. 마유는 사랑스런 당신의 답변만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답니다.

아시나요? 마유는 오늘 당신에 대한 것만 생각했답니다? 당신에 관한 것만 알아보았답니다. 마유는, 사랑스러운 당신에 대해 알아갈 때 마다 운명이 우리를 묶는 감각에 몸서리치면서 기뻐했답니다. 너무 멋져요.

한 눈에 운명을 알아보고, 매일이 꿈결만 같아요. 마유는 그대와 같이 있고 싶어요. 지금 잠자리에 들으셨군요. 아무도 없어 차갑고 공허한 그 잠자리를 마유가 메워드릴게요. 마유의 불타는 마음이 그대의 서늘한 잠자리를 조금이라도 따뜻하게 만들어 줬으면 해요.

혼자서 프로듀서 일을 하느라 힘드시죠? 괜찮아요. 이제 마유가 그대의 곁에 있을 거에요. 마유의 사랑이 그대의 피로를 녹여줄 거에요. 세상 모든 것으로부터 그대를 지켜줄께요. 마유와 그대의 세상 바깥에 있는 수 많은 도둑고양이들은 접근조차 하지 못 할 거에요.

 

….당신에게 쏟아지는 것이 비일 지라도 운명일 지라도, 허락할 수 있을리가 없어.

 

상대방을 알아가는 즐거움이란 이렇게나 큰 것이었군요. 놀라워요. 연애소설 같은 건 솔직히 재미없다고 생각하던 과거의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고 무지한 존재였는지 새삼스레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이라면, 연애 소설 하나하나를 문장의 구석에서 부호의 끝까지 핥고 태워가며 맛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조금만 기다려줘요. 마유가 지금, 당신이 마유를 맞이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중이니까요. 마유는 그대의 모든 것을 알게 될 거에요. 멋지게 불타는 마음을 그대에게 전하기 위해서, 마유가 그대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우후후….."

 

그대는 성실한 사람.

그대는 친절한 사람.

그대는 운명의 사람.

그대는 마유의 사람.

이미 마유는 다 알고 있답니다. 그 외의 정답은 없어요. 왜냐하면, 그것이 운명이니까요. 마유는 그대와 운명적인 만남을 가진 거에요. 그대도 잘 알고 있는 것 처럼. 어쩌면 내세나 전생에서도, 우린 계속 맺어져왔을 거에요.

 

"마유는, 그대와 이어지기 위해….. 어라? 이건… 우후후. 봐요. 마유 말이 맞잖아요."

 

그러니까, 이렇게 그대에 관한 이야기를 마유가 인터넷에서 찾은 것도 운명이에요.

우후후

 

 

 

===

 

 

 

"어~이. 괜찮아? 밤새 컴퓨터라도 한 거야?"

 

"마유는 괜찮아요. 우후후…"

 

학교 친구가 마유의 모습을 보고 걱정스러운 듯 물었습니다. 마유에게 인터넷 강의라고 하는 멋진 변명거리를 만들어 준 고마운 친구입니다. 덕분에 어제는… 아니, 오늘 아침 어머니가 일어나기 전 까지 프로듀서를 더욱 더 깊이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친구는 잘 둬야 하는 법이죠.

친구 덕에, 어제는 프로듀서에 관한 걸 더욱 더 깊이 알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보면 볼수록 멋진 분이에요.

 

"어쩌지, 마유가 이상해."

 

"중2병이 늦게 찾아온 거 아니야?"

 

"중2병이라니 실례네요. 이래 봐도 어엿한 사회인이에요."

 

"아, 이거 중2병보다 더 성가신 거다."

 

초등학교 때부터 같이 해 온 좋은 친구들. 항상 다니던 학교와, 매일같이 보던 교실의 풍경. 마유는 곧 이 따스한 풍경과 작별인사를 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보살펴 줘서 고마워요, 라고 성의와 진심을 담아서 인사를 할 때가 온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운명적인 만남을 알려준 이 땅에 감사해야 합니다. 지금까지의 마유의 인생은, 그 순간을 위해 존재해왔다는 걸 알려줬으니까요.

 

"중2병은 그쪽이었잖아요. 마유, 다 기억하고 있답니다? 한 손에 붕대를 감고 한쪽 눈에 안대를 차고 와서 얼마나 걱정했었는데 그게 다 중2병 때문에 생긴 부상이라니…."

 

"그만해! 흑역사를 들추지 마! 내 마음이 부상당할 것 같단 말이야…."

 

"과거는…. 산산히 부숴버려도 돌바닥 아래에서 지렁이처럼 기어나오지… 누가 한 말이더라? 응?"

 

"친구 좋다는 건 이럴 때 쓰라고 있는 말이죠. 우후후후후…."

 

좋은 친구들입니다. 하지만 이제 작별을 고해야 할 시간입니다. 지금까지 고마웠다고, 도쿄 가서도 꼭 연락하자고 눈물 섞인 작별인사를 건낸 다음 즐겁게 도쿄로 향할 시간입니다. 지금이라도 당장 도쿄에 계신 그 분을, 운명의 그대를 보러가고 싶지만 필사적으로 눌러 참는 중입니다. 들켜선 안 됩니다. 왜냐고요?

마유의 친구들이, 그 분의 존재를 알게 되는 걸 원치 않으니까요. 마유의 프로듀서는 너무나 멋지고 매력적인 분이시고, 살짝 돌아본 것 만으로도 수 많은 사람들이 멋대로 착각해서 잘못된 운명을 그대로 믿어버릴 게 분명합니다. 그것은 오로지 마유만 생각하고 계신 그분에게 있어서 비극이자 무가치하고 무의미한 연심만 태우다가 결국 재조차 남지 않게 될 친구들에게 있어서도 비극입니다. 그 분은, 마유의 친구가 슬픔을 겪고 있다고 하면 자기 일이 아닌데도 괴로워할 상냥한 마음의 소유주이십니다.

 

"아, 그렇지. 너 요즘 아이돌 화보 모으던 거 혹시…."

 

"호, 혹시라니 뭐야. 난 벌써 중학교는 졸업했다고."

 

"대령님! 가방에서 정체불명의 잡지를 확보했습니다!!"

 

"수고했다, 중사!"

 

"니들이 그러고도 인간이냐아아!!!"

 

그러니, 지금은 조용히 입 다물고 있어야

 

"칸자키 란코? 와아, 귀엽게 생겼다!"

 

"이런 걸 보고 고스로리라고 하는 거지? 왠지 중2병…. 아, 그렇군. 알겠어."

 

"……칸자키, 란코?"

 

"마유? 혹시 아는 사람이야?"

 

"잠깐 좀 보여주세요."

 

"와악?!"

 

시끄러. 조금 세게 넘겨준 것 가지고 시끄럽게 비명소리 지르지 마.

그럼 어디 보자…. 우선 이 잡지. 마유도 잘 아는 잡지입니다. 마유도 몇 번인가 출연한 적이 있으니까요. 아니, 그 정도가 아닙니다. 이 잡지, 마유가 찍은 사진이 표지로 쓰였습니다. 마유의 단골손님입니다.

마유가, 프로듀서 님에게 소개할 좋은 일자리였습니다.

그런데 벌써 누군가가 들어와 있네요. 망할 중2병 년이, 지 주제도 모르고, 예전 마유가 실렸던 코너를 그대로 차지하고 있습니다. 아아, 그러고보니까 이 코너엔 마유 이전에 모리쿠보 씨가 실려 있었죠. 그렇구나. 마유가 가져다 줘야 할 행운을 모리쿠보 그 년이 먼저 채간 거구나. 거기에, 같잖은 중2병년이 지 다리 뻗을 자리도 모르고 들어간 거고. 저것들이, 마유 것을 빼앗았습니다. 운명을 훔친 도둑고양이들입니다. 도둑고양이들의 마수가 지금도 마유의 프로듀서를 노리고 있는 겁니다. 그 망할 년들이.

잘도, 마유의 운명을.

 

"우후후….."

 

"마, 마유?"

 

"어~이. 마마유땅? 괜찮아?"

 

아아, 마유는 괜찮지 않아요. 마유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는 걸 알게 되었으니까요. 마유의 운명을 손에 넣기 위해선, 조금 더 서둘러야 할 것 같아요. 마유의 프로듀서에 대해 더 깊이 알게 되는 시간은 너무나 즐거워서, 무심코 목표를 잊어버릴 것 같았어요. 지금은 낮. 아마 프로듀서께선 그 수전노 사무원에게 정체를 알 수 없는 수상한 에너지 드링크를 강매당하고, 일 이상의 관계는 아닌 망할 도둑고양이들의 대쉬에 머리를 감싸쥐며, 어떻게든 그 망할 년들에게 상처주지 않기 위해서 스스로의 가슴을 할퀴고 있겠죠. 프로듀서에겐 이미, 마유라는 멋진 운명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잠깐 잡지 좀 빌릴게요."

 

"아, 응…."

 

망할 년들.

마유의 프로듀서에게 감히 손을 대려 하는 쓰레기들. 바퀴벌레들. 이 잡지 사이에 숨어있는 망할 도둑고양이들을 하나하나 박멸할 기세로 잡지를 빠르게 읽어내립니다. 표지를 장식한 마유의 사진 뒤, 이름도 모르는 여러 사람들과 이름은 들어본 유명 모델들, 그리고 프로듀서에게 달라붙으려 하는 기생충년들의 사진과 이야기까지 전부.

지피지기 백전백승. 벌레들에게는 벌레의 종류에 알맞은 퇴치법이 존재하죠. 모기 같은 날벌레는 살충제와 전기파리채로, 바퀴벌레나 곱등이 같은 벌레들은 독먹이와 끈끈이로.

 

"뭐야? 질투라도 하는 거야? 의외네~ 마유가 그런 타입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질투요?"

 

질투?

아니요. 이건 분노입니다. 정당한 사랑과 운명이 더럽혀져버린 것에 대한 분노입니다. 질투 같은 하찮은 감정이 아닙니다. 마유가 대체 누구를 부러워하고 질투해야 하나요. 마유는 이미 불타오르는 운명을, 뜨거운 사랑을 알게 되었는데. 이미 이루어져버린 사랑을 넣어서 행복해질 운명만 남아있는데 대체 누굴 질투한다는 건가요.

…..아아, 마유가, 저것들을

‘사랑의 라이벌’로 보고 있다는 말인가요? 그런가요?

 

"응. 동종업계에서 경쟁심을 가지고 일커헉" "아니에요."

 

마유는 힘이 센 것 같습니다. 샘솟는 힘의 원천은 사랑입니다.

한 손으로, 헛소리를 지껄인 년의 목을 쥐곤 들어올렸습니다. 초등학생 때부터 알던 사이지만, 그딴 헛소리를 지껄이는 정신병을 갖고 있는 줄은 몰랐습니다. 정말 사람 일이란 알다가도 모르네요. 친구로서, 헛소리를 지껄이는 정신병을 조금 교정해줄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프로듀서는 상냥한 마유를 사랑해주실 게 분명하니까요.

 

"마, 마유?! 너 갑자기 왜 그래?!"

 

"마유의 프로듀서는, 마유만을 보고 계신답니다."

 

"….에?"

 

힘 빠지는 듯 한 목소리. 목에서 손을 떼 내려놓았습니다. 정신병자 하나가 엉덩방아를 찧고선 켁켁거리고 있습니다. 난폭한 교정 방법인 건 인정하지만, 친구를 위해서라면 어쩔 수 없죠. 올바른 걸 가르쳐주기 위해선 과격한 방법도 필요하지 않겠어요? 마유, 고통은 훌륭한 스승이라는 걸 알고 있답니다. 지금도 이렇게 마음이 불타서, 화상조차 눌러붙어버릴 것 같으니까요.

 

"예. 마유는 프로듀서께 프로듀스 받아서, 톱 아이돌이 될 거랍니다."

 

"….에, 아이돌로 전직할 생각인 거야? 자자, 진정하고. 심호홉 하고…"

 

"…..저기, 아이돌은 사랑 같은 거." "닥쳐요."

 

그런데 아아, 어쩌죠? 마유의 오랜 친구들이 갑작스럽게 정신병에 걸려버렸어요. 대체 어떻게 된 일이죠? 어제까지만 해도 즐겁게 이야기하고 점식식사를 함께 하던 친구들이 이상해요. 마유의 운명은 이미 정해진 사항인데. 아,혹시 마유의 친구들은 아이돌은 연애하면 안 된다는 그런 미친 개소리를 주워섬기고 있던 걸까요? 그런 족속들이었던 걸까요? 괜찮아요. 잘못된 지식과 신념은 얼마든지 교정할 수 있어요.

자, 다시 한 번 목을 꾸욱. 방금 전 보단 조금 힘을 빼죠. 이건 어디까지나 치료이자 교정. 그러니까 필요 이상의 상처를 줘서는 안 됩니다. 절대로.

 

"너, 너 미쳤어?!"

 

"마유는 지극히 정상이랍니다. 그래서, 아이돌은 연애하면 안 된다고 누가 그러던가요? AKB48? 오냥코클럽?"

 

아직 목이 졸리지 않은 한 명이 드디어 마유의 팔을 잡고 늘어집니다. 좋아요. 놓아 드리죠. 다시 한번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정신이상자가 떨어졌습니다.

 

"그래서, 누가 그딴 소리를 지껄이던 건가요?"

 

"커, 커헉…. 마… 유, 너 미쳤어?!"

 

어라? 혹시 치료가 부족했던 걸까요? 그럼 어쩔 수 없죠. 다시 한 번 시도하는 수 밖에. 애초에 병원이란 곳도 한번 가고 끝인 건 아니잖아요? 자, 이제 다시 손을 뻗어보죠. 목을 향해서.

 

"대답해요!"

 

"히, 히익!"

 

이상하네요. 치료는 제대로 된 것 같은데.

 

"….아, 곧 수업시간이네요. 자리로 돌아가죠."

 

가능하면, 친구로서 증세와 경과를 확인하고 싶지만 학생으로서 공부에 충실해야 합니다. 도쿄권에 있는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선 학생의 본분을 다하는 자세가 필요한 법이죠. 사랑을 위해서라면 마유는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무엇이든 될 수 있습니다. 친구들이 마유에게서 떨어져 버린 것 같지만 어쩔 수 없죠. 마유는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무엇이든 될 수 있으니까요. 그 분을 위해선, 당신을 위해서라면, 마유의 프로듀서를 위해서라면, 이 불타는 사랑을 위해서라면, 마유와 프로듀서의 운명을 위해서라면.

어떤 것이라도.

 

 

 

===

 

 

 

"…..예?"

 

"그러니까, 이적 말이야. 고마워 마유. 마유가 가져다 준 정보 덕분에 엄청난 소식을 남들보다 빨리 캐치했다고."

 

캐치해봤자 아무런 도움도 안 되긴 하지만, 이라는 사족이 붙은 말이었습니다.

학교가 끝나고, 마유는 친구들에게 작별인사를 건내고 사무소로 왔습니다. 마유는 평소와 다를 거 하나 없이 친구들에게 인사했는데, 친구들은 그런 마유를 왜인지 피하는 듯 한 느낌이었습니다. 너무해요. 오랬동안 사귄 친구들이 차가워요.

하지만 그것보다 마유를 더 힘들게 만든 건, 방금 사무원 분을 통해 전해들은 소식이었습니다.

 

"죠가사키 미카랑 타카가키 카에데. 너도 들어봤지?"

 

"네. 마유도 알고 있어요."

 

마유와 같이 일한 적은 없는 모델들입니다만, 잘 알고 있습니다. 모델 업계에서 그 두 사람을 모른다고 하면 간첩이라고 할 정도로 유명한 사람들입니다. 잘 나가는 인기 모델 두 명. 마유와는 티어부터 달라서 만날 일 조차 없던 두 명입니다. 젊은 학생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카리스마 갸루 죠가사키 미카와, 패션쇼를 위해 해외에 밥 먹듯이 다녀오는 타카가키 카에데. 동종업계인으로서 마유 또한 둘의 동향에 신경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둘이.

 

"그 둘이, 신데렐라 걸스 프로덕션으로 이적했다고요? 거짓말이죠?"

 

"거짓말이었으면 하는데 말이지. 하하."

 

업계 탑이라는 그 둘이, 모델로서의 절정을 걷고 있는 데다가 더한 커리어 하이가 약속되어 있는 그 둘이 코딱지만한 아이돌 사무소로 이적했다? 믿을 수 없는 이야기입니다. 그런 이야기를 믿는 건, 3류 찌라시에 중독된 음모론자나 그에 준하는 정신병자 정도일 겁니다. 우주 어딘가로부터 괴전파 공격을 받고 있다고 믿는 정신분열증 환자가 주워섬길 헛소리입니다.

 

"저기, 오늘은 4월 1일이 아닌데요…."

 

"거짓말 같지만 사실이야."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3류 찌라시보다 못한 아이돌 프로덕션으로 이적해버린 것입니다. 이제는 마유가 우주 독전파의 공격을 받는 건 아닌지 진지하게 성찰해봐야 할 때입니다. 하지만 마유는 지극히 정상입니다. 이상한 것 따윈 하나도 없습니다. 운명을 알게 된 마유에게 이상한 점 따윈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왜, 이런 비상식적인 일이 그 분 곁에서 일어난 거죠?

 

"아하하….."

 

"웃음밖에 안 나오지? 자, 여기 봐봐."

 

사무원 분께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마유에게 자료를 건냈습니다. 거기엔 짧은 글귀와 몇 장의 사진이 있었습니다.

 

"이건….."

 

그 둘의 사진입니다. 어디선가 촬영하던 걸 찍어온 듯 합니다.

그리고, 사진 구석엔 운명의 그분이 찍혀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그 사무소, 우리 업계에서 사람들을 빼오는 것 같아. 뒤에 돈이 얼마나 많은지는 모르겠지만 내실이 있는 정도가 아닌데? 그러고보니 마유도 스카우트 제의 받았지? 혹시 갈 때는 미리 이야기하고 가 줬으면 하는데…."

 

아닙니다.

그 분은 스카우트를 해 온 게 아닙니다.

그저, 멋진 남성을 보고 꼬인 날벌레들 중에 큼지막한 것들이 있었을 뿐입니다.

마유와는 다릅니다. 마유는, 마유의 프로듀서께선 손이 맞다은 순간 운명으로 이어졌습니다.

 

"…..아아, 그래요. 깜짝 놀랐어요."

 

설마 이렇게 많은 벌레들이, 마유의 프로듀서를 노리고 있을 줄이야. 마유가 매일 밤 사랑의 불길 속에서 타들어가며 고통에 몸서리치는 동안 이 벌레들은 마유의 프로듀서를 먹잇감 삼아 불을 향해 날아드는 날벌레들처럼, 수액에 모여드는 벌레들처럼 달려들고 있었습니다. 어지간히도 맛있어 보였던 거겠죠. 그 유명한 톱모델들조차 프로듀서를 노릴 정도로.

 

"그렇지? 이런 사람들이 왜 그런 약소 프로덕션을 선택한 건지 모르겠다니까. 미시로 프로덕션이나 961프로덕션, 적어도 765정도는 충분히 들어가고도 남을 사람들인데. 혹시 뭐 약점이라도 잡힌 건가?"

 

아니에요.

벌레들이, 본능적으로 마유의 운명을 먹어치우러 왔을 뿐.

 

"그 사람도 보기보다 약았구만."

 

"아니에요!!"

 

그 분을, 마유의 프로듀서님을 모욕하는 모든 것들로부터 지켜내야 합니다.

 

"….에, 마유?"

 

"마유의 프로듀서께선 절대로 그런 분이 아니에요. 추잡한 개소리 지껄이지 말아요. 아가리 찢어버리기 전에!

 

"잠깐, 너 무슨" "오늘은 빨리 가 볼께요. 그동안 고마웠어요."

 

시간이 촉박합니다.

결행은, 빠를수록 좋죠.

 

 

 

===

 

 

 

돌아오는 길에 큼지막한 여행가방을 하나 사왔습니다. 마유의 용돈 내에서 어떻게든 구매할 수 있었습니다. 어머니와 아버지에겐 촬영장에서 협찬받은 물건이라고 둘러대었습니다. 몇 번인가 이런 식으로 의상이나 액세서리를 받은 적이 있어서 두분 다 별다른 의심 없이 넘어가 주셨습니다.

 

"프로듀서….. 마유의 프로듀서…."

 

가방을 가지고 바로 방으로 직행했습니다. 우선 짐을 싸야 합니다. 필요한 속옷과 양말, 그리고 옷가지들을 대충 가방에 우겨넣었습니다. 귀중품들도 챙겼습니다. 북오프에 적당히 팔아넘길 수 있는, 환금성이 있는 것들입니다. 마유의 프로듀서에게 돈 때문에 폐를 끼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화장품 세트도 챙겨넣었습니다. 아이돌이라면 언제 어디서라도 자신을 꾸밀 수 있도록 준비돼 있어야 합니다. 마유는 완벽한 아이돌이니까요.

 

"그리고….."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서 마유의 통장, 카드, 지갑, 신분증, 그리고 인감도장을 챙겨야 합니다. 전국적인 체인점을 가지고 있는 인터넷 카페의 회원증도 챙겼습니다. 혹시나 마유의 얼굴을 알아보는 사람이 있을까봐 안경 등의 변장용 도구도 챙겼습니다.

 

"이것도…."

 

자취하기 위한 도구를 빼먹을 수 없죠. 방금 다이소에서 사온 물품들을 체크합니다.

요리할 때 쓰기 위한 작은 도마, 그리고 작은 후라이팬. 후라이팬은 인덕션에도 가스불에도 대응할 수 있는 물건입니다. 그 외에도 국자와 뒤집개, 플라스틱 젓가락과 숟가락 등등.

그리고, 가장 중요한 가위와 식칼. 특히 식칼은 빼놓을 수 없죠. 마유는 어머니를 도와주면서 나름대로 요리 실력을 쌓았습니다. 식칼 없이는 그 어떠한 요리도 성립되지 않습니다. 야채를, 생선을, 그리고 붉은고기를 썰기 위해선 꼭 필요합니다.

가장 중요한 건, 이것을 써야 할 최악의 가능성을 위해서입니다. 마유는 폭력을 싫어합니다. 범죄를 싫어합니다. 마유는 훌륭한 신부에 어울리는 소시민적인 감성과 일반적인 정의감을 가지고 있는 여자아이입니다. 하지만, 마유와 프로듀서의 사랑을 방해하는 것들을 배제하기 위해서라면 극단적인 방법에 손을 댈 수 밖에 없습니다. 그 날을 기점으로, 그 운명의 날을 기점으로 그렇게 정해진 것입니다. 다만 이것을 쓸 일이 일어나지 않길 바랄 뿐입니다. 마유는 지금도 속을 헤집어놓는 사랑의 칼날의 감촉을 느끼고 있습니다. 진짜 칼날의 감촉도 이것보단 덜 아프겠죠.

 

"프로듀서님, 마유의 요리는 어떤가요?"

 

프로듀서께선 물론 마유의 요리를 맛있게 잡숴주실 거에요. 비록 마유의 요리가 맛없다 할 지라도. 하지만 마유는 프로듀서 님에게, 마유가 만들었다는 이유만으로 맛없는 요리를 억지로 먹이고 싶진 않습니다. 어머니가 집안일을 도우라고 했을 땐 솔직히 귀찮았지만, 지금은 어머님께 무한한 감사를 보낼 뿐입니다. 지금까지 불효녀처럼 생각해서 죄송해요. 고마웠어요. 그리고 안녕. 마유는 꼭 행복해져서, 프로듀서를 데리고 다시 부모님 앞에 나타날게요. 어머니가 그랬던 것 처럼, 행복한 가정을 만들어 보이겠어요.

 

"그리고, 행복한 가정을 위해서 가장 중요한 건…."

 

이 세상에는, 마유의 친구처럼 잘못된 인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아주 많습니다. 아이돌은 절대로 연애를 해선 안 된다는 그런 비틀린 처녀성을 숭상하는 변태들 이야기입니다. 마유 근처의 사람이라면 마유가 어떻게든 교정시킬 수 있지만, 이 세상에는 그런 인식을 가진 사람이 너무 많아서 마유가 일일이 교정할 수 없습니다. 마유는 현실과 망상을 구분할 줄 아는 여자아이에요. 그러니까….

 

"가족계획이죠."

 

행여나 실수가 일어나지 않도록, 피임기구를 챙겨 넣는 걸 잊지 말아야죠. 마유의 사랑을 방해할 여지조차 그들에게 주지 않겠습니다.

다만, 단 하나. 비장의 수를 남겨둬야죠.

 

"구멍 뚫린 것도 하나."

 

그 무엇도 마유를 멈출 수 없도록.

 

 

 

===

 

 

 

마유를 맞이해줄 운명의 그대를 만나기 위한 준비를 마쳤습니다. 컴퓨터로 심야 버스를 알아보고 편의점에서 결재했을 땐, 마유의 자금은 반 이상 줄어들어 있었습니다.

 

들키지 않도록, 아버지와 어머니가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미리 가방을 바깥으로 빼두었습니다. 가방을 들고서 움직이면 주무시는 두 분을 깨울 수 있으니까요.

마유는, 이대로 두 분이 잠자리에 들면 그대로 야음을 틈타서 나갈 생각입니다.

내일은 모델 일도, 학교 수업도 있습니다. 하지만 더 이상 지체할 수는 없습니다. 마유에게 더 이상 시간은 남아있지 않습니다. 부모님을 설득하지도 못했습니다. 학교에 연락도 하지 않았습니다. 사무소에 그만둔다고 이야기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마유는 후회하지 않습니다. 할 리가 없죠. 해서도 안 됩니다. 마유가 후회한다는 건, 그 분과의 운명에 무언가 결점이 있다는 거니까요.

 

"…."

 

마유 방의 창문을 통해 바깥을 쳐다보는 것도 오늘이 마지막입니다. 마유를 숨겨주기 위해 오늘은 달빛이 보이지 않습니다. 만월의 도피는 로맨틱하지만, 냉정히 생각하면 들킬 위험을 높여줄 뿐입니다. 도시의 조명이 별빛조차 지운 밤. 마유는 조용히 방에서 숨을 죽이며 기다립니다.

두 분이 잠들 그 시간만을.

 

"…."

 

버스 출발 시간은 11시 30분. 정류장까지는 30분 정도면 걸어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두 분이 11시 이전에 잠들어줄 지가 문제입니다. 두 분에게, 오늘은 피곤하니까 빨리 자 달라고 말했습니다. 공부도 좋지만 건강을 해칠 정도로 하지 말라는 아버지의 따뜻한 충고와, 어머니의 의미심장하고도 조용한 미소도 오늘이 마지막입니다. 당분간은 볼 일 없겠죠. 마유는 지금부터 혼자 살아가야 할 테니까요.

 

"…."

 

거실의 불이 꺼졌습니다. 현재 시각은 10시.

앞으로, 30분 정도면 두 분도 잠자리에 드실 겁니다. 어쩌면 오늘 밤은 두 분이 부부간의 오붓한 시간을 가질 지도 모르겠습니다. 아까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먹인 약은 비아그라 같은 걸지도 몰라요. 프로듀서를 만족시키기 위해, 프로듀서의 쾌락을 위해 두 분이 하는 것을 몰래 배워볼까 싶기도 하지만 육체의 쾌락 따위에 휘둘려선 안 됩니다. 마유의 사랑은, 그리고 마유와 프로듀서의 운명은 지고지순하게 불타오를 테니까요. 물론 프로듀서도 알고 계시는 것 처럼.

 

그거 아세요? 마유는 항상 프로듀서와 함께 있는 것 같답니다. 프로듀서의 마음을 모두 다 알 수 있어요. 왜냐하면 그게 운명이니까요. 마유는 말 한마디 없어도 프로듀서를 알 수 있습니다. 프로듀서가 그런 것 처럼. 프로듀서는 마유와 만난 순간 그렇게 될 운명이었던 거에요. 아니, 애초부터 프로듀서는 마유와 행복한 결말을 맞이할 운명이었어요. 그런 운명밖에 없던 거에요. 태어난 그 순간부터 바로 지금까지, 마유와 프로듀서의 모든 역사와 순간은 이 운명을 위해 존재했던 거에요. 이 압도적인 행복 앞에서, 지금까지 겪어온 수 많은 일들과 역사는 아무런 의미도 없어요. 왜냐하면 이 행복이, 이 운명이야말로 목적지이자 이상향이니까요. 이곳에서, 마유와 프로듀서는 둘 만의 세계에서 영원히 행복한 사랑을 맹세하는 거에요. 결코 꺼지지 않는, 타오르는 마음을 가지고.

이 사랑은 너무 멋져요.

우후

우후후

우후후후후…..

 

"안녕히계세요."

 

조용히 방 문을 열고, 두 분의 방을 향해 인사한 후 거실로 내려왔습니다.

어째서인지 식탁 위의 조명만 어슴푸레 켜져 있었고, 주먹밥과 약과 알 수 없는 간단한 기계장치들이 쟁반 위에 놓여 있었습니다.

 

"…..?"

 

어째서일까요?

하지만 거절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러고보니, 거기서 갑자기 아파질 경우를 생각 못 했어요. 약은 챙겨가는 게 좋겠죠. 그런데 이 기계장비들은 어디에…

 

"!!!"

 

식탁 위의 쟁반에 담긴 주먹밥과 약과 기계들을 챙긴 순간, 쟁반 밑에 깔린 메모지가 옆으로 삐져나와 있었습니다.

마유는, 이런 노골적인 사인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둔감한 바보가 아닙니다.

 

"…."

 

그 메모지엔, 작은 글씨로 무언가가 빼곡히 적혀 있었습니다. 마유에겐 익숙한 어머니의 글씨였습니다.

그대로 서서, 한참을 읽었습니다. 시간을 잊고 빠져들어버릴 정도로 멋진 이야기였습니다. 미숙했던 마유를 돌아볼 수 있던 굉장히 유익한 내용이었습니다.

 

"…..우후후, 아하하하. 고마워요."

 

어머니가 남기신 종이를 고이 접어, 따로 챙긴 가방 속에 넣었습니다. 수면제와 발정유도제, 도청기와 발신기, 그리고 그 분의 쾌락을 위한 외설적인 성인용품들이 가방 속에서 달그락거렸습니다.

가족이, 마유를 응원해주고 있었습니다. 어머니의 사랑이란 걸까요. 언젠간 마유도, 프로듀서와 마유의 자녀에게 이런 사랑을 베풀어주고 싶어졌습니다.

 

 

 

==

 

 

 

[승객 여러분께 안내 말씀 드립니다. 이 버스는 곧 도쿄 신주쿠바스타에 도착합니다. 귀중품의 분실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으니, 내리실 때에는 잊으신 물건이 없는지 꼭 체크해 주시기 바랍니다. 또한, 이 버스를 타는 동안 발생한 쓰레기들은 전부 챙겨서 내려주시기 바랍니다. 버스는 쓰레기통이 아니며, 이러한 쓰레기는 불결함의 원인이 됩니다. 그리고 버스가 완전히 정차할 때 까진 자리에서 일어나거나 안전벨트를 풀지 마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 번…]

 

아침 6시 반.

불편한 버스에서 밤을 지샌 사람들이 하나둘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허리가 아프다, 다리가 뻐근하다, 목이 당긴다. 온갖 불평 불만들과 함께 버스의 아침이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마유는, 어젯 밤부터 한숨도 자지 못한 채 도쿄의 아침을 맞이했습니다. 이 아침이, 마유가 도쿄에서 겪는 첫 아침입니다. 미야기 현을 벗어난 첫날의 아침입니다. 수학여행조차 현내의 유명 관광지를 돌아본 게 전부인 마유가, 스스로 첫 발을 내딛은 것입니다.

 

"….."

 

대도시. 그것도 그냥 대도시가 아닌 일본의 수도.

센다이에서는 볼 수 없었던 고층빌딩들이 굳어버린 홍수처럼 범람하고 있습니다. 이 콘크리트의 숲 어딘가에, 마유의 프로듀서가 살고 있습니다. 마유의 프로듀서가 일하고 계십니다. 그 저주받아 마땅한 벌레들이 서식하고 있습니다.

 

"수고하셨어요~"

 

"아가씨도 고생 많았수다~ 힘내요~"

 

마유를 사모하는 분의 도시까지 데려다 준 버스기사님에게, 진심을 담아 감사인사를 건냈습니다.

 

"실례합니다~"

 

미어터지는 지하철을 타고, 타고, 몇 번이나 갈아탔습니다. 매연에 달라붙은 새벽 공기가 새벽동에 타오르지도 않은 이 시간부터 도쿄는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구글 맵을 통해 머리 속으로 몇 번이고 그린 지도가 사라져가는 듯 한 느낌이었습니다. 하지만, 벌레 떼 같은 인파가 마유를 막을 수는 없습니다.

 

"에…. 야마노테선을 타고 시나가와까지 간 다음에….."

 

몇 번이고 길을 확인합니다. 헤메입니다. 하지만, 그래도 발길은 멈추지 않습니다. 끌고 온 캐리어가 너무나 가볍게 느껴집니다. 오히려 이 짐이 마유의 등을 밀어주고 있습니다.

 

새벽 공기가 가실 때 즈음, 버스가 마유를 목적지에 내려 주었습니다.

 

"…..여기가."

 

이전 사무소의 사람이 말하길, 코딱지만한 작은 사무소라고 했습니다. 그 말대로입니다. 다 낡아가는 건물에 좁아터진 사무소. 1층에는 장사도 제대로 안 되는 것 같은 마츠야가 홀로 주제가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곳이야말로 마유가 찾아헤매이던 곳.

 

"업무 시작 시간은 9시. 현 시각은 8시 40분."

 

그렇다면. 마유의 프로듀서는 이곳 가까이에 있습니다. 어쩌면 마유 다음 버스를 탔을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지금 저 식당 안에서 아침식사를 해결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아니, 가정이 아닙니다. 확실한 대답입니다. 마유의 프로듀서께선, 다음 버스를 타고 옵니다.

 

"….."

 

버스에선 아무도 내리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마유는 알 수 있습니다. 이미 알고 있습니다. 프로듀서께선, 오늘도 일하기 위해 나와주시리라고. 마유를 맞이하기 위해 운명적으로 만나주실 거라고.

 

그리고.

 

"아아, 드디어 오셨구나. 마유의 프로듀서님."

 

꿈에도 그리던 손, 그 운명적인 때와 같은 옷차림. 잡벌레 하나 데리고 나오지 않은 멋진 모습. 언제나 성실하고 진지하신 그 표정. 그 눈빛. 그 마음. 그 사랑. 이분이야말로 마유가 그렇게 찾아헤메이던, 매일 밤을 불타오르는 마음 속에서 달구게 하던 장본인이시자 마유의 운명. 이미 정해진 결말을 맞이하기 위해 준비되신 분.

마유의 연인.

 

"에, 저기… 혹시 아시는 분인가요? 분명 만난 분인데 혹시 성함이…."

 

"우후후, 사쿠마 마유에요. 계속, 프로듀서를 찾아다니고 있었답니다."

 

"아! 그 때 모델 분이시구나!  반갑습니다! 신데렐라 걸스 프로덕션의 프로듀서입니다. 그 때 커피 맛있었습니다. 그리고 메일도 잘 받았습니다. 헌데 오늘은 어쩐 일로 방문하신 건가요?"

 

"모르시나요?"

 

"….예? 혹시 저희가 그 때 무슨 실례라도…"

 

"그럼, 지금부터 깨닫게 해 드릴께요. 마유는 프로듀서님에 관한 거라면 뭐든지 다 알고 있으니까."

 

그의 손을 잡았습니다. 당신이 조금 당황한 눈초리로 손을 뺍니다. 하지만 마유는 당황하지 않고, 당신의 손을 꽉 잡았습니다. 당신이 손을 빼려 하지만, 마유는 당신의 손을 상냥하게 감싸 가슴에 품었습니다. 괜찮아요. 더 이상 혼자가 아니에요.

 

"마유는, 프로듀서께 프로듀스 받아서 톱 아이돌이 되기 위해 여기까지 왔어요.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해서 죄송해요. 이제, 마유를 프로듀스하시면 돼요."

 

당신께서 무어라 말씀하십니다. 아아, 하지만 들리지 않아요. 당신의 손을 통해 느껴지는 혈류의 박동이, 마유의 가슴과 공명해서 전 세계의 소리를 메우고 있으니까요. 당신도 느끼고 있죠? 예. 마유도 알고 있어요.

 

"프로듀서 씨를 처음 봤을 때 느꼈어요. 이건 운명이라고...

저기... 당신도 운명을 느꼈나요? 느꼈죠? 그렇죠...?

그러니까 마유, 결심했어요. 아이돌이 돼서, 당신에게 프로듀스를 받자고

모델도 은퇴하고, 부모님도 설득했어요"

 

거짓말입니다. 전부 내팽개쳐버리고 왔습니다. 하지만 거리낄 건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제 아무것도 걱정할 필요가 없으니까요

 

"계속, 이제부터 계속 함께에요. 우후후후…."

 

이미 마유는 프로듀서밖에 비추고 있지 않습니다. 그 외의 것은, 모두 잡음에 불과합니다.

운명적인 사랑은 이미 움직여 버렸습니다.

영원히 타오를 불꽃이, 마유와 당신을 감싸안았습니다.

 

 

 

 

 

 

 

 

 

 

 

===

 

Q : 마유의 사랑, 받아주시겠나요?

A : 물론이지!

 

메모장 기준 53kb전후. 이 정도면 한번에 올라갈 줄 알아서 한번에 올렸는데 중간에 잘리네요.

그런데 이번엔 워낙에 벼르고 계시던 분들이 많아서 입상이 힘들까 싶네요. 고생해서 썻는데 다들 퀄리티가 ㅎㄷㄷ

그런 것보다 나님은 제목 좀 어떻게 잘 뽑을 수 없을까. 항상 제목 뽑는게 힘들다니까. 아무튼 이건 사랑임. 얀데레도 사랑임.

 

사실 마유를 주연으로 하는 건 따로 생각하고 있는 게 있습니다만, 그쪽은 아무리 해도 스릴러로 흘러가버리는지라......

그럼 이만 줄입니다. 중간에 요리하느라 잠깐 빠졌는데도 눈 아프네요. 집필 작업이 좀 더 눈에 상냥했으면 합니다만 관절이 땡기고 눈이 침침해진 시점에서 러너스하이도 아니고 작가스하이가 찾아오는 건 건강을 망치는 지름길입니다.

 

p.s 여기 올리니까 두개 다 합쳐서 70kb급. 잘릴만 하구만(뿌듯)

10 여길 눌러 추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