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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제일] 취중진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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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2-15, 2017 06:16에 작성됨.

전화가 울리기 시작한다.

이 시간대에 무슨 전화야,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휴대폰을 열어 발신자의 이름을 살펴본다.

타카가키 카에데. 단풍은 또 붉게 물들어 있구만,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한숨을 쉬며 전화 버튼을 눌러 그녀에게서 온 전화를 받는다.

전화를 받자마자 휴대폰의 스피커에서 들려온 소리는 긴 한숨 소리.

내가 무슨 일이냐고 그녀에게 물어보기도 전에 많이 취했는지 혀 꼬인 목소리가 두서없이 나를 희롱하기 시작한다.

 

"아아, 푸로듀서 씨는 일바께 모르눈 바아보예요오...."

 

도대체 얼마나 드신 겁니까, 나는 얼굴이 보이지 않는 만취한 카에데 씨에게 나지막히 말하고는 시계를 쳐다본다.

자정이 훨씬 넘은 시각.

이 시간에 일을 하고 있는 나도 미친 놈임에 분명하지만, 분명히 저녁 일곱 시에 퇴근해 지금쯤이면 자고 있어야 하는, 어느 정도 인지도가 있는 아이돌을 직업으로 삼고 있는 타카가키 카에데 씨가 지금까지 술을 마시고 있다는 것도 정상은 아니다.

내 말에 잠시 말이 없던 스피커 너머에서 거친 숨소리가 들려오더니 나를 놀리는 듯한 말소리가 들려온다.

 

"바아보, 바아아아아보."

 

도대체 무슨 말이 하고 싶으신 겁니까, 내가 조금 화난 듯한 말투로 말하자 카에데 씨가 잠시 무슨 말이 하고 싶은지 입을 뻐끔거리는 소리가 나다 전화가 끊어진다.

영문을 알 수 없는 카에데 씨의 행동에 조금 이마에 핏줄이 서버린 내가 일이고 뭐고 다 집어치우고는 옷을 챙겨 사무소를 빠져나간다.

사무소의 문을 잘 잠갔는지 확인한 후 빠른 걸음으로 카에데 씨가 있을 만한 주점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한 10분 정도 발걸음을 옮겨 도착한 익숙한 주점.

내가 문을 열고 들어서자 늘 보던 얼굴의 바텐더가 고개를 조금 숙이며 인사를 건넨다.

여기 타카가키 카에데 씨가 있냐고 물어보자 고개를 끄덕이더니 나에게 따라오라는 손짓을 한다.

바텐더의 뒤를 따라 오픈된 좌석이 아닌, 개인실이 다섯 개 정도 모여있는 작은 복도로 들어간다.

아무리 그래도 이런 곳에서 마셔본 적은 없는 내가 신기하다는 눈으로 주변을 살펴보는데, 바텐더가 방 하나의 문을 조심스럽게 열고는 나에게 들어가라는 손짓을 한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고 안으로 들어가자 그 술에 강한 카에데 씨가 완전히 얼굴이 빨개진 채로 책상에 머리칼을 늘어놓은 채 잠들어 있다.

내가 한숨을 내쉬며 그녀를 흔들어 깨우자 카에데 씨가 천천히 눈을 떠 나를 쳐다보다가 어린아이같은 미소를 짓는다.

 

"와이- 푸로듀서 씨다아-."

 

이제 일어나서 댁에 돌아가셔야죠, 내가 카에데 씨가 엉겨붙으려는 것을 겨우 막아내며 말하자 그녀가 불만이라는 듯이 볼을 부풀린다.

다른 사람이 보았다면 그 귀여운 모습에 누구라도 눈길을 멈췄을 테지만, 몇 번이고 만취한 그녀를 집에 데려다줬던 나는 이미 그 표정이 술 취한 25살 어린아이의 주사 그 이상의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목석처럼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간 술 마시고 난 후의 기억이 깨끗이 남아있는 그녀에게 한 소리 들을 가능성이 높았기에, 나는 잠시 그녀의 귀여움에 반한 것같은 연기를 하고는 그녀를 업는다.

길고 날씬한 그녀의 몸이 나의 등에 밀착한다. 그와 더불어 술에 녹아내리지 않은, 신비하고도 향기로운 체취가 은은하게 풍겨온다.

술만 이렇게 무작정 마시지만 않는다면 좋을텐데,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개인실을 나와 바텐더가 있는 오픈 테라스 쪽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오픈 테라스에서 와인 잔을 정리하던 바텐더는 자신에게 줄 것이 있지 않냐는 듯이 나를 쳐다본다.

카에데 씨를 업고 있기에 난감한 표정을 띄우고 있었는데, 점점 술이 깨는지 카에데 씨가 내 귓가에 달콤한 신음소리를 낸다.

아무리 그래도 이런 상황까지 간 적은 없었기에 내가 조금 얼굴을 붉히고 있는데 업혀있던 카에데 씨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아, 프로듀서 씨..."

 

자신이 업혀 있는 것을 깨달은 카에데 씨가 잠시 그 한 마디만을 하고는 아무런 말이 없더니 바텐더의 얼굴을 보고는 지갑에 손을 뻗어 술값을 계산한다.

카드가 긁히는 소리가 들리고 바텐더가 카드를 다시 카에데 씨에게 되돌려주자 그녀가 마치 말을 다루는 것처럼 나의 등을 찰싹 때린다.

내가 길게 한숨을 쉬며 카에데 씨를 업은 채로 가게 밖으로 나오자 그녀의 벌꿀주같은 달달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미안해요, 제가 전화했었나요?"

 

술 드시지 않으면 카에데 씨는 저에게 전화하시지 않으시죠, 나는 조금 화가 난 듯한 목소리로 카에데 씨에게 말하고는 천천히 발걸음을 옮긴다.

내가 그녀를 업은 채로 주점에서 그다지 떨어져 있지 않은 카에데 씨의 집에 도착할 때쯤, 그녀의 기어들어가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혹시, 저는 방해인가요...?"

 

카에데 씨의 풀 죽은 목소리는 신인 시절에도 들어보지 못한 것이라, 나는 무심코 그 목소리를 듣고는 웃어버린다.

내 웃음소리에 카에데 씨가 나의 등을 세게 몇 번 두드리고는 입을 연다.

 

"웃지 마세요! 저도 신경쓰이긴 한다고요!"

 

저는 전혀 신경쓰지 않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나는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이 말하고는 카에데 씨의 집으로 성큼성큼 발걸음을 옮긴다.

카에데 씨의 집 앞에 도착하자 그녀가 술에 완전히 깼는지 나의 등에서 폴짝하고 뛰어내리고는 문을 연다.

카에데 씨를 무사히 데려다준다는 임무를 마친 내가 나의 원룸으로 향하려는데 그녀가 나의 소매를 잡고는 조금 떠는 듯한 목소리로 권유한다.

 

"호, 혹시 제 집에서 한 잔 하시지 않으실래요?"

 

저는 내일도 아침 일찍 출근해야 합니다만, 나는 카에데 씨의 권유에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그녀 쪽으로 몸을 돌린다.

카에데 씨는 나의 말에 실망한 듯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푹 숙인다.

나는 그녀의 표정을 보고는 차마 그냥 갈 수는 없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카에데 씨의 집 안으로 향한다.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카에데 씨가 나의 발걸음에 밝은 미소를 짓고는 부리나케 집 안으로 들어가 먹을 것을 준비한다.

맥주 몇 캔과 마른 오징어, 안주로 먹기 알맞은 과자 몇 봉지.

새삼 우리 프로덕션의 음주돌의 준비성에 놀라고 있는데, 카에데 씨가 맥주캔을 하나 따 나에게 건네준다.

 

"자, 그럼 마셔요!"

 

너무 피곤하지 않을 정도로만 부탁드립니다, 나는 그렇게 말하고는 그녀가 내민 맥주캔을 집어들어 단숨에 비워낸다.

차가운 알코올이 내 몸에 천천히 스며들어 감각을 무디게 한다.

술에 그다지 강하지 않은 내가 맥주 한 캔을 단숨에 때려넣자 카에데 씨가 당황한 표정을 짓는다.

 

"괘, 괜찮아요? 그렇게 마시면 쉽게 취한다고...."

 

괜찮습니다, 나는 그렇게 대답하고는 다시 맥주 한 캔을 집어 때려넣는다.

카에데 씨가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나를 쳐다보다 에라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나와 똑같은 포즈로 맥주를 때려넣는다.

한동안 그렇게 광란의 술파티가 이어지고, 나의 눈앞이 점점 뱅뱅 돌기 시작한다.

그것은 이미 술을 먹고 또다시 음주한 시작한 꼴이 되어버린 카에데 씨도 마찬가지인지, 눈을 꿈뻑이고 있던 카에데 씨가 느닷없이 주절주절 말하기 시작한다.

 

"푸로듀사 씨, 구러케 잘 드쉬면서 왜 저랑은 술 안먹겠다고 한 건가여!"

 

나는 카에데 씨의 혀 꼬인 목소리에 뱅뱅 도는 눈에 힘을 줘 그녀를 쳐다보았다.

아름다운 카에데 씨의 입술과, 머릿결과, 눈물점과, 그녀의 모든 것들이 하나의 원에 돌아가는 것처럼 빙글빙글 돌았다.

내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자 카에데 씨가 볼을 부풀리고는 귀여운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뭔가여! 제 말은 이제 대답할 가치도 없다는 건가여!"

 

그게 아니라, 나는 그렇게 말하고는 잠시 무엇인가를 고민했다.

그리고는 너무나도 남자스럽게 입 밖으로 무언가를 말하고-

 

 

"....기억하고 있는 것은 여기까지입니다만, 제가 그 때 무슨 말을 했는지 모르겠어서."

 

"아, 그, 그러신가요."

 

다음 날, 온 몸은 비명을 지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신은 말짱한 내가 왠지 모를 불안함에 카에데 씨에게 질문을 한다.

나를 보자마자 얼굴을 붉게 물들였던 카에데 씨가 나의 말에 조금 탐탁지 않은 표정을 지으며 떨떠름한 대답을 한다.

 

"제가 무슨 짓이라도 했다면 가르쳐주신다면 고맙겠습니다만..."

 

"...정말로 기억 못 하시는 건가요?"

 

"네, 정말로 기억이 나질 않아서..."

 

"그런가요...."

 

나의 말에 카에데 씨가 길게 한숨을 내쉬며 나를 쳐다본다.

내가 무슨 이상한 말이라도 했던가? 나는 알 길이 없어 왠지 모르게 기분이 축 쳐진 듯한 카에데 씨를 쳐다본다.

잠시 나를 쳐다보던 카에데 씨가 결정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연다.

 

"그럼, 오늘은 홧술이네요!"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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