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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제일] 소년이 떠나보내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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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2-15, 2017 01:51에 작성됨.

 어스름한 노을 햇빛이 교실을 비추었다.


 졸업식이 끝나 당분간은 사용되지 않을 빈 교실. 한 켠에 자리잡고 있던 짐들 또한 제 주인과 함께 떠나버린 뒤인지라, 교실에서 사람이 있었던 흔적이라곤 칠판에 커다랗게 써져 있는 「졸업」이라는 글자와 옆에 자잘하게 쓰인 낙서 정도가 끝이었다. 한동안은 이 상태에서 변하는 일은 없을 터다. 보통은 그러했다.
 비어 있어야 정상일 교실에는 한 남자가 책상에 기대앉아 창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직 소년 티를 벗지도 못한 어린 청년. 깔끔히 차려 입은 교복과 가슴팍에 단 작은 조화가 그가 방금 전까지 학생이었던 사람임을 어렵지 않게 추측하게 해 주었다. 다른 사람은 모두 학교와 이별했으나, 그만이 이곳에 남아 교실을 지키고 있었다.


 해가 기울었다. 붉던 노을이 서서히 검어지고 있었다. 소년은 교실이 어두워지는 것도 신경쓰지 않고 계속 창문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대로 둔다면 언제고 교실에 남아있을지도 몰랐다. 다행히 누군가 그를 제지한 덕에, 그런 사태까지는 발생하지 않을 수 있었다.


「여기서 뭐하냐」


 소년을 건들어 창문에서 시선을 떼게 한 것은 한 청년이었다. 몸집이 작아 언뜻 보면 중학생처럼 보일 수도 있는 소년과 다르게, 청년은 어딜 보나 건장한 성인 남성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의 복장 또한 소년과 같은 교복이었다.


「뭐, 그냥 좀」


 소년은 머리를 긁으며 대꾸했다. 확실히 졸업식이 끝나고도 한참이나 지난 이 시간까지 남아있는 것은 이상하게 보일 법도 했다. 두 손을 책상에 짚어 기대 천장을 바라보던 소년은 문득 생각난 듯 청년에게 시선을 돌렸다.


「넌 왜 여기 있어?」

「네가 안 보이길래 찾으러 왔다고. 간단한 파티라도 할까 했더니」


 청년이 투덜거렸다. 소년은 픽 웃곤 몸을 일으켰다.


「미안, 미안」

「대체 왜 여기 있던 거냐. 마지막 풍경이라도 담고 싶었던 건가」

「뭐어, 비슷해」


 소년은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청년의 눈 또한 그의 시선을 따라갔다. 그들의 눈에는 산 너머로 지는 노을이 있었다.


「아아, 저것도 이젠 마지막이군」

「이런 날이 오긴 오는구나」

「모든 일엔 끝이 있는 법, 아니겠냐」

「...그렇지. 끝이 있는 법」


 소년의 표정이 굳었지만, 뒤에 있던 청년은 그것을 보지 못했다. 잠시 풍경을 바라보고 있던 도중, 소년이 먼저 입을 열었다.


「있지, 지금 어떤 기분이야?」

「어떤 기분이냐니... 뭐, 묘하지. 불안하기도 하고」

「그렇구나」


 소년은 몸을 돌렸다. 책상에 걸어둔 가방을 챙겨 뒤에 메고, 청년에게 제안했다.


「우리 집, 갈래?」


* * *


「오랜만이네, 여기도」


 청년은 짐을 내려놓았다. 그리 넓지 않은, 방 하나에 거실 겸 주방인 공간이 하나 있는 집. 여럿이 산다면 문제가 되겠지만 소년이 혼자 산다는 것을 아는 청년은 그것을 문제 삼진 않았다. 꺼내기엔 민감한 주제이기도 했다.


 소년이 차를 내 왔다. 무심코 받아 마시던 청년이 안의 내용물을 보고 경악했다.


「뭐야, 녹차잖아!」

「이상한 거라도 있어?」

「쓴 거라곤 질색하던 놈이 녹차라니」

「녹차만 좋아해서 말야」


 청년은 나야 별로 싫어하진 않는다만, 하고 중얼거린 뒤 그대로 녹차를 들이켰다. 탁 소리나게 컵을 내려놓은 청년은 입가를 닦고는 말했다.


「그래서, 날 데려온 이유가 뭔데」

「이것들을 버릴까 해서. 좀 도와줘」

「뭔데 그래. 한 번 보자」

 청년은 소년이 가리킨 상자를 열어보았다. 상자를 연 후 가장 먼저 보인 것은 「THE iDOLM@STER」이라는 글자와 여자아이가 그려진 게임 소프트였다.


「아이돌... 뭐야」

「마스터」

「읽는 법 참 특이하네」


 투덜거린 청년은 게임 소프트를 들어냈다. 상자가 가득찬 것을 보면 밑에 무엇이든 더 있을 게 분명했다. 그리고 그 예상이 맞다는 것을 증명하듯, 아래에는 수많은 물건이 들어있었다.


「...이게 다 뭐야」


 청년은 경악했다. 차곡차곡 정리된 물건에는 모두 방금 치운 게임 소프트의 타이틀이 붙어 있었다. 청년이 의문 가득한 시선으로 소년을 바라보자, 소년은 슬그머니 시선을 피했다. 청년이 지그시 노려보기 시작하자 그제야 소년은 항복을 선언했다.


「알았다, 알았어. 다 말해줄게」


 별로 유쾌한 얘기는 못 돼, 라고 덧붙인 소년이 차근차근 이야기를 시작했다.


* * *


「이건, 몇 년 전에 발견했어」


 게임 소프트를 든 그가 말했다. 타이틀에는 리본을 맨 소녀가 환하게 웃고 있었다.


「눈 오는 날이었지. 그때 난 최고로 맛이 갔을 때였고」

「아아, 유명했지. 사건이 연달아 나서」

「그래. 제정신이 아니었단 말이지」


 소년은 잠시 숨을 고르고 말을 이었다.


「부모님은 사고로 돌아가시고, 주위에 친구라곤 없고」


 피식 하는 웃음 소리가 났다.

 

「난 몰랐는데, 부모님은 내게 굉장히 의미가 큰 존재였던 것 같아. 소식을 듣자마자 바로 주저앉을 정도였으니. 그런데 그날은 크리스마스가 가까워서, 사람들이 죄다 연인 아니면 가족과 같이 다니는 거야. 보자마자 욕이 나오더라고. 나는 그럴 수 없으니까」

 

 잠시 말을 끊은 후, 소년은 이야기를 계속했다.

 

「기분은 더럽지, 외롭기는 엄청 외롭지, 그냥 들어가서 잠이나 자고 싶었어. 그래서 집 쪽으로 빨리 걸어가는데, 골목에 뭔가 있는 거야」

「그게 설마」

「응. 이 게임기랑 소프트」

 

 소년은 게임 소프트를 쓰다듬었다.


「종이 가방에 담겨서는「주워가십시오」라고 적혀 있어서 그냥 가져왔어. 뭔지는 전혀 모르겠고, 왜 그런 게 붙어있는지도 모르는 채로」

「딱 봐도 수상한 물건이잖아」

「뭐 잘못돼도 상관 없다는 생각 아니었을까」


 잠시 정적이 흘렀다. 먼저 침묵을 깬 것은 소년이었다.


「아무튼, 주워와서 바로 시작했지. 그런데 이 게임, 아이돌이 나와 함께 나아가는 게임이야」

「그게 왜?」

「즉, 아이돌이 있는 한 난 혼자가 아냐」

「아」

「그래서 더 빠졌던 걸지도 모르지. 적어도 플레이하는 동안엔 외롭지 않을 수 있었어」

 

 소년이 웃었다. 그리 밝은 웃음은 아니었다.


「어느샌가, 내 머리는 여기에만 맞춰 돌아갔지. 아이돌을 생각하고, 음악을 듣고, 프로듀서니까 얕보이면 안 되니 공부도 하고」

「마지막 건 좋은데」

「유일한 순기능이야」


 소년은 쓴웃음을 지었다. 소년은 게임 소프트를 상자에 다시 넣곤 자리에 앉았다.


「계속 놔뒀으면 지금도 그랬을지도 모르지」

「놔뒀으면?」

「평소처럼 집에 오는데, 길에 누가 있더라고」

「누구야」

「모르지, 나야」


 소년이 어깨를 으쓱했다.


「무시하고 지나가려는데, 스치는 순간 사라져버렸어」

「뭐?」

「그냥 사라졌어」

「뭐야, 그건」

「모르지, 나야」


 소년과 청년이 웃었다.


「근데 집에 오니까, 갑자기 생각이 들더라고. 나는 어째서 이러고 있나. 언제까지나, 외롭다고 징징댈 수는 없지 않나」

 

 소년이 잠시 말을 끊었다.

 

그 뒤부터 이걸 멀리하게 됐어. 어찌어찌 되긴 하더라. 결국, 최후의 방법을 쓰기로 했지만」

「그래서 찾은 방법이」

「응. 이거」


 소년이 상자를 가리켰다.

 

「이제, 작별할 때야」

「괜찮겠어?」

「무엇이든 끝은 존재하는 법이야. 불안하더라도 이젠 혼자 나아가야지」

「...그래」

「그러니까 들어줘. 나, 무거워서 못 들거든」

「그런 거라면 얼마든지」


 청년이 상자를 들려던 찰나, 소년이 제지했다.


「잠깐만」

「어?」

「...인사 정도는 하게 해줘」


 소년은 상자를 품에 안았다. 조명을 등져, 그림자가 그의 표정을 가렸다.


「그동안 수고 많았습니다, 765 프로덕션. ...사랑했습니다」


 상자에 물방울이 떨어져 종이를 적셨다.
 소년은 그가 동경하고, 사랑한 일상을 떠나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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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아간 거 내역 찾아서 중반부까지 복구하고 후반부 대충 써갈겼습니다. 초안에 비해 퀄리티가 떨어졌어요. 젠장.

솔직히 말하자면 주제와는 동떨어져 있습니다. 부가 설명을 붙이자면, 외톨이인 소년은 아이돌과 함께한 그의 일상을 사랑했다는 겁니다. 연애 쪽을 못 써서 이렇게 확대해석해서 썼어요.

졸작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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