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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소 풍경 단편 - 01. 초콜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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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2-14, 2017 11:16에 작성됨.

1 . 초콜릿

 

나, 시부야 린은, 초콜릿을 좋아한다.

농담 삼아서 메모 앱에

 

초콜릿.

1) 카카오나무 열매의 씨를 볶아 만든 가루에 우유, 설탕, 향료 따위를 섞어 만든 것. 

2) 나, 시부야 린이 좋아하는 것.

 

같은 것을 만들어 볼 정도로, 초콜릿을 좋아한다.

밀크 초콜릿은 익숙한 향과 맛을 즐길 수 있으니까 좋아한다.

화이트 초콜릿은 향이 약한 대신 혀가 녹아버릴 것 같은 감미를 즐길 수 있어서 좋아한다.

블랙 초콜릿은 감미를 절제한 만큼 카카오 특유의 향과 맛을 더욱 강하게 즐길 수 있어서 좋아한다. 

과일이나 견과류를 넣은 초콜릿도 서로 다른 맛과 맛이 어우러지면서 만들어내는 하모니를 즐길 수 있어서 좋아한다.

그래. 나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종류의 초콜릿을 좋아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내게 있어서 발렌타인 데이는, 1년 중에서도 가장 기쁜 날 중 하나일 수 밖에 없다.

게다가 이번 발렌타인부터는 팬들로부터 선물 초콜릿도 한가득 받게 될 예정이니 더욱 기쁜 날이 되는 것은 당연지사.

평소에는 하지 않는 실수, 언동을 보여도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왜냐면, 발렌타인이니까.!

 

"시부린 진짜로 초콜릿 좋아하는구나..."

 

"당연하잖아 미오. 초콜릿의 날이란 말이야. 후후, 벌써부터 기대되서 가슴이 진정되질 않아."

 

"린쨩, 그것 때문에 트레이너님한테 세번이나 혼났으면서도 굽히질 않네."

 

"내가 나쁜게 아니야. 날 이렇게 흥분시키는 초콜릿이 나쁜거야. 이제, 사무실에 돌아가면 내게 온 초콜릿들이....우후후."

 

"와아! 린쨩! 찍어서 인터넷에 퍼트리면 재미있을 것 같은 얼굴이네! 찍어도 괜찮지?"

 

"그만둬 시마무. 아직은 때가 아니야."

 

미오와 우즈키가 뭔가 떠들기 시작했지만, 지금은 그런 것보다 초콜릿이 더 중요하다.

프로덕션 입구까지 남은 걸음 수는 고작 네걸음.

그 네걸음 너머에서, 낙원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가자, 예들아. 초콜릿이 기다리고 있어."

 

"예이예이~그리고, 그 핸드폰 내려놔 시마무."

 

"에에~ 하지만 이럴 때가 아니면 언제 린쨩의 저런 얼굴을 찍을 수 있을지 모르는데...."

 

우선 한걸음.

미오와 우즈키의 회화가 멀어지는 감각과 함께, 호흡이 거칠어지는 것이 느껴진다.

 

다시 한걸음.

후각이 달콤한 초콜릿의 향기를 포착.

호흡이 더욱 거칠어지는 것을 느끼면서 앞서 나가있던 왼손을 후퇴시키며 오른손을 앞으로 내보낼 준비를 한다.

 

또 다시 한걸음.

왼발과 오른손이 앞으로 나선 그 순간, 

고양된 몸과 마음이 떨리는걸 느끼면서, 다음 걸음을 내딛을 준비를 한다.

목표까지, 앞으로 단 한걸음!

 

마지막 한걸음.

프로덕션 입구 손잡이를 굳게 쥐고서, 보이스 트레이닝을 받던 때의 요령으로 힘을 이끌어낸다.

그리고 그 힘을 그대로 목소리로 바꿔서 내보내는 것과 함께, 문을 연다!

 

"다녀왔습니다!"

 

""다녀왔습니다~.""

 

"오, 어서와라."

 

프로듀서가 내게 어서오라는 인사를 던졌지만, 그 인사를 받아줄 시간은 없다.

지금 내게 가장 중요한 것은 다용도실 한 구석에 산더미처럼 쌓여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초콜릿 들이니까.

그래, 다용도실의 문을 열고 들어가면, 초콜릿으로 이루어진 낙원이 나를─

 

"...에?"

 

하지만, 다용도실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저마다 다른 장식과 색으로 포장된 초콜릿들이 아니었다.

다용도실에 있던 것은 멋없는 황색 상자들과, '개봉금지'라는 글자가 써진 종이들로 만들어진 오브제 뿐이었다.

내가 잘못 짚은게 아닐까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냄새가 그 가능성을 부정했다.

사무소 전체에 감도는 달콤한 향은 확실히 이 방에서 흘러나오고 있었으니까.

그렇다면, 초콜릿은 도대체 어디에...?

한가지 가능성이 있다면...아니야, 설마.

설마 그럴리가 없어.

그래서는 안 돼!

 

"저기, 린."

 

"프로듀서?"

 

필사적으로 이성의 끈을 붙잡고으려고 발버둥치던 그때, 프로듀서의 목소리가 나를 깨웠다.

어째서일까, 지독하게 싫은 예감이 들었다.

결코 생각하고 싶지 않았던 최악의 가능성이 머리를 드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혼란스럽겠지만, 한가지 들어줬으면 하는게 있어."

 

"오늘은, 너도 알다시피 발렌타인 데이고, 팬들한테서 너한테 선물이 와있었어." 

 

".....응."

 

그래.

그건 나도 알아.

오늘은 발렌타인데이고.

초콜릿을 선물하는 날이니까.

 

"네 인기가 많아서 그런지, 상당히 많은 사람한테 왔었더라. 너 개인을 대상으로 보낸것만 세도 상당한 수였어."

 

"....그랬겠지."

 

학교에서 친구들한테 받은 것만 해도 한가득이었단 말이야.

블로그에 초콜릿 보내겠다고 한 사람도 많았고.

 

"그런데, 그 초콜릿들은 전부 어디 간거야? 팬들이 보낸 초콜릿들, 정리해두겠다고 했었잖아."

 

"그 초콜릿들이라면...."

 

프로듀서가 입을 연 순간 싫은 예감이 더욱 강해졌다. 

그와 함께, 프로듀서가 황색 상자들로 된 오브제를 향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프로듀서가 그 오브제에 가까워질때마다, 싫은 예감도 가까이 다가오는 것만 같았다.

설마....

 

"그 초콜릿들은, 전부 이 방에 그대로 남아있어. 다만....."

 

등골이 오싹해지고 손이 떨린다.

분노인지, 공포인지, 슬픔인지 알 수 없는 복잡한 감정이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프로듀서가 다시 입을 연 그 순간....

 

"이렇게, 골판지 상자 안에 들어가있을 뿐이지. 개봉금지 스티커도 함께 붙여서 말이야."

 

".....왜?!"

 

"미오쨩! 린쨩 지금 완전히 절망한 얼굴을 하고 있어!"

 

"아직이야! 아직 더 좋은 얼굴을 찍을 기회가 남아있을 것 같다는 기분이 들어!

 

 

나는, 내가 생각해도 한심하기 짝이 없는 목소리로 되묻고 말았다.

그 한심한 물음에, 프로듀서가 대답하기 시작했다.

 

"왜냐....어디부터 말해야하나....그래. 린. 너도 아이돌이니까, 우리의 관계가 권리를 행사하는 대신 의무를 이행하는 관계라는 것 정도는 알지?"

 

"아주 잘 알지. 하지만. 그게 지금 초콜릿이랑 무슨 관계야? 팬들이 나한테 보낸 초콜릿들을 압수하는 것과 무슨 상관이 있는거야?

 

"......물론 상관이 있지. 이건 소속사로서 이행해야하는 의무 중 하나거든."

 

"뭐가 의무라는거야?! 그냥 팬들이 선의로 보낸 선물이잖아! 그걸 받는게 무슨 문제가 되는데!"

 

그 말을 듣는 순간 이성이 날아가버리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어지는 프로듀서의 말이 이성을 되찾게 만들었다.

 

"선의의 선물이 아닌게 섞여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안 해봤어?"

 

"!"

 

선의의 선물이 아닐 가능성이라고?

지금까지 생각도 해본 적 없는 가능성에 할 말을 잊은 사이에, 프로듀서가 다시 말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너를 회사의 상품으로서 사용하는 권리를 가지는 대신, 너의 가치를 높이고 유지하기 위해서 노력할 의무를 가지지. 아직 연예계 경력이 짧은 너는 잘 이해할 수 없겠지만, 경쟁자를 방해하려고 선물로 위장해서 위협을 가하거나 위험물을 보내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단 말씀이야. 그래서, 널 보호하기 위해서 이렇게 처리해둔거였어."

 

"...보호..."

 

그 말을 듣고나니, 뭔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프로듀서는 나를 위해서 한 일인데, 초콜릿에만 정신이 정신이 팔려서 화부터 내버린게 부끄럽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동시에, 자신이 좀 한심하게 느껴졌다.

왜 그런 당연한 것도 생각하지 못했던 것일까.

아무리 조심해서 활동했다고 해도, 나에게 앙심을 품은 사람이 한명도 없을리가 없는데...

프로듀서한테, 사과하는게 좋으려나.

 

"그치만, 검열이 끝나도 초콜릿을 린쨩한테 줄 생각은 없으시잖아요?"

 

"그걸 말하면 어떻게 해 시마무!? 뭐, 사실이지만. 그렇지? 프로듀서?" 

 

"...뭐?"

 

하지만, 우즈키가 던진 한마디 앞에서 사과는 아무래도 좋아져버렸다.

검열이 끝나도 초콜릿을 안 준다니, 이게 무슨 소리란 말인가.

그럴리가 없어!

안전을 위해서 검사하는 거니까, 검사가 끝나면 나한테 주는게 당연한 거잖아?!

하지만, 프로듀서의 눈빛은 내 일말의 희망마저 부정하려는 것 같았다.

그 눈빛을 도무지 견딜수가 없었기 때문에 나는 프로듀서에게 소리치고 말았다.

 

"프로듀서! 우즈키가 한 말 진짜야?!"

 

"부정은 안 할께."

 

"어째서!?"

 

가능성 중 하나에 불과했던

『선물 받은 초콜릿을 먹을 수 없다.』라는 한마디가,

확실한 형태를 가진 사형선고가 되어 머리 속에서 울린다.

잔인한 현실 앞에, 의식이 멀어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멀어지는 의식을 힘겹게 붙잡은체로, 나는 살면서 단 한번도 낸 적이 없는 한심한 목소리로 프로듀서에게 질문했다.

 

"왜 안된다는거야...?"

 

"어...그게 말이지...."

 

내 목소리가 너무 한심해서였을까,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어서였을까.

프로듀서는 어물어물 거리다가 이렇게 대답했다.

 

"트레이너님한테서, 네가 살짝 찐것 같다고 연락을 받았거든."

 

그 대답을 듣는 것과 함께, 나는 다리에 힘이 풀려서 주저앉았다.

멀어지는 의식 속에서, 나를 부르는 프로듀서의 목소리와, 우즈키와 미오의 목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린!? 린!?! 정신차려!"

 

"와~시부린 얼굴 정말 걸작이네. 내 말이 맞지 시마무? 더 좋은 기회가 남아있을 것 같다고 했잖아."

 

"정말 그렇네....후훗, 역시, 희망을 붙잡으려다가 절망으로 굴러떨어진 사람의 얼굴은 최고인 것 같아."

 

"니들 진짜 친구 맞냐?!"

 

 

-초콜릿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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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렌타인 = 초콜릿의 날이라 써봤습니다.

후회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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