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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2-12, 2017 19:48에 작성됨.

-오늘도, 부모님은 오지 않으시네~

 

차가운 공기가 넓디 넓은 공간을 채워나간다.

그 공간에 홀로 있는 소녀, 타치바나 아리스는 그 차가움이 싫어 아무도 없는 거실의 불을 켜 본다.

넓은 소파, 넓은 다과상, 커다란 벽난로, 커다란 그림들.

너무 넓어 마치 자신이 소인이 된 것 같은 넓이의 거실.

순간, 타치바나 아리스는 자신이 뭐든지 커다랗고 커다란 세계에 들어와 있는 앨리스의 기분이 된다.

 

-시간은 자꾸만 흘러만 가고~

 

테이프가 넘어갔는지 구식 테이프카세트가 찰칵하고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다른 노래가 흘러나온다.

타치바나 아리스는 자신의 집에, 거기다가 자신이 자주 왔다갔다하는 거실에 카세트 플레이어가 있었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표정을 조금 굳힌다.

잠시 동안 카세트 플레이어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듣던 타치바나 아리스는 불 켜진 거실에서 왠지 모를 기괴한 노래만을 흘려보내는 카세트 플레이어를 찾아서 꺼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타치바나 아리스가 작은 발걸음을 종종거리며 옮겨 거실 주변을 돌아다닌다.

불이 켜진 거실의 샹들리에는 전구의 수명이 다 되었는지, 몇 개 정도의 빛이 깜빡거리며 점멸한다.

부모님이 돌아오시면 전구를 바꿔달라고 해야지, 타치바나 아리스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일단 카세트 플레이어를 찾으러 거실을 돌아다닌다.

한 곡을 끝낸 카세트테이프가 위잉하고 나사빠진 소리를 내더니 이내 다른 음악을 들려준다.

제목은 잘 모르는 한 영화의 OST가 기괴스럽게 흘러나온다.

타치바나 아리스는 영화의 제목이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듯이 잠시 영화의 이름을 생각해내려고 애쓰는 듯한 표정을 짓다가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태블릿을 조작해 음악의 이름을 찾아본다.

 

-Hedwig's Theme~

 

기괴한 이름이네, 타치바나 아리스는 그렇게 생각하며 조금은 기괴한 방식으로 연주되는 피아노 선율의 음악을 잠시 듣다가 자신의 목적을 깨닫고는 다시 거실을 이리저리 탐색한다.

하지만 그 넓은 거실을 꽤나 탐색했음에도 카세트 플레이어는 보이지 않는다.

이상한 일이네, 타치바나 아리스는 그렇게 말하고는 점멸하던 전구가 완전히 깨져버려 이제 본래 의도의 반 밖에 밝지 않은 샹들리에 아래의 거실에 놓여진 소파 위에 앉는다.

분명히 5분 정도의 곡일 텐데, 플레이어가 고장난 탓인지 계속해서 같은 부분만 들리는 듯한 기분이 든다.

아니, 확실히 카세트 플레이어는 마치 자신의 의지로 이 부분만을 연주하는 양 집요하게 곡의 기괴한 초반부만 반복해서 재생한다.

타치바나 아리스는 마치 어디인지조차 모르는 방 안에 갇힌 피험자처럼 불안한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다 자신의 태블릿이 약하게 떠는 진동에 깜짝 놀라며 태블릿을 확인한다.

태블릿에는 누가 보냈는지 모를 메시지가 한 개, 떠 있었다.

타치바나 아리스가 무심코 메시지를 확인하려다가 왠지 모를 불안감에 태블릿의 전원을 꺼 버린다.

꺼진 태블릿의 검은 바탕에 검은 공기 속에 있는 타치바나 아리스의 긴 흑발이 찰랑거린다.

타치바나 아리스는 잠시 소파에 앉아 있다가 다시 태블릿이 약하게 떠는 진동에 조금 놀라며 태블릿의 화면을 쳐다본다.

또 메세지가 왔는지 메세지 아이콘이 밝은 빛을 내며 타치바나 아리스의 얼굴을 밝힌다.

메세지의 발신자는 자신의 아이돌 생활을 프로듀스해 주고 있는 프로듀서.

타치바나 아리스가 이것은 넘길 수 없다는 듯이 재빠른 손놀림으로 태블릿을 조작해 메세지의 내용을 띄운다.

메세지의 대부분은 별 의미 없는 안부 인사일 뿐이고 그나마 의미 있는 내용이라고는 내일의 스케줄에 대한 내용이다.

타치바나 아리스가 그것만으로도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태블릿에 자판을 띄워 프로듀서가 보낸 것과 비슷한, 하지만 확인 잘 했다는 마음이 담긴 메세지를 보내고는 태블릿을 끈다.

태블릿의 화면에는 아직 읽지 않은 메세지를 알리는 아이콘이, 한 개 표시되어 있다.

 

-Gloomy Sunday,Rezső Seress~

 

카세트테이프가 다시 찰칵, 하고 돌아가는 소리가 나더니 이번에는 명백하게 슬픈 곡조의 곡이 온 거실 안에 울려퍼진다.

이 카세트는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은 걸까, 그런 어린아이같은 생각을 하며 타치바나 아리스가 소파에서 일어나 카세트를 찾는다.

이내 아까 카세트 플레이어를 찾았을 때는 보이지 않았던 거실의 한 쪽 구석에서 90년대나 2000년대에나 썼을 법한, 꽤나 구식의 휴대용 카세트 플레이어를 찾아내고는 눌러져 있는 재생버튼을 꾹 누른다.

카세트 플레이어가 잠깐 덜덜거리더니 아무 소리도 내지 않는다.

자신이 앉아있던 거실의 소파의 자리로 돌아온 타치바나 아리스가 왠지 모를 느낌에 괜히 주변을 둘러본다.

왠지 모르게 자꾸만 자신이 앉아 있는 소파도, 깜빡이는 샹들리에도, 아무것도 연주하지 않는 카세트 플레이어도 커져버리는 듯한 기분이 든다.

타치바나 아리스가 왠지 무서워져서, 음악이라도 틀어야겠다고 생각하고 다시 카세트 플레이어 쪽으로 달려가 재생 버튼을 꾹 누른다.

카세트 플레이어는 타치바나 아리스가 끈 것만으로도 수명이 다했는지 아무리 재생 버튼을 눌러봐도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는다.

타치바나 아리스가 길게 한숨을 내쉬며 소파로 돌아가려던 찰나, 카세트테이프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더니 한 곡이 연주된다.

곡이 연주되자 타치바나 아리스가 놀란 표정을 지으며 카세트 플레이어가 있는 쪽에 시선을 돌린다.

하지만 카세트 플레이어는 잠시 곡을 연주하다가 이것은 자신의 취향이 아니라는 듯이 다시 멈춰버린다.

타치바나 아리스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카세트 플레이어가 있는 쪽을 쳐다본다.

차가운 한기가 온 거실 안을 감싸고 타치바나 아리스의 발 끝에 맴돈다.

타치바나 아리스는 왠지 무서운 느낌이 들어 도망치듯이 태블릿을 들고 자신의 방으로 들어간다.

아무것도 남지 않은 거실에는 그 언제보다도 시끄러운 소리가 난다.

 

 

후기 

어제 친구들과 같이 서울시립미술관에서 봤던 "VOID"를 조금 재해석해서 글써봤습니다.

사실 태블릿에 처음으로 메세지를 보낸 것은 다름 아닌 프레데리카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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