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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quest/여신과 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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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2-03, 2017 10:32에 작성됨.

어느 추운 겨울, 한 소녀는 한 남자의 집을 찾아 거리를 두리번거린다.

소녀의 귀여움과 느긋한 분위기, 그리고 이제는 아무도 입지 않을것만 같은 화려한 의복에 사람의 시선이 집중된다.

하지만 정작 온 이목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소녀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지 이곳저곳을 두리번거리며 중얼거린다.

 

"분명히 치히로 씨가 이 근방이라고 하였사온데-."

 

소녀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투는 꽤나 고풍스럽고도 왠지모르게 그녀다운 말투.

그것이 그녀의 귀여움을 한층 더 업그레이드시켜주는지, 거리를 우연히 지나다니던 몇몇 여성들이 참을 수 없다는 듯이 그녀에게로 달려간다.

하지만 그녀에게로 다가가는 족족 쓰러지는 여성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그녀들이 쓰러지기 전에 이미 쓰러진 몇 명의 남성들도 눈에 띈다.

소녀의 귀여움에 모에사라도 한 것일까, 알 수 없는 일이다.

 

"불순한 의도로 다가오는 사람은- 신님을 대신해 제가 처리할 수밖에 없겠지요-."

 

소녀가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조금은 소녀와 맞지 않는 듯한 험한 말을 입에 담는다.

이제 보면 소녀의 손에는 누군가가 그려준 듯한 그림지도가 들려져 있다.

아무래도 그 지도를 보고 누군가의 집을 찾아가 천도재라도 지낼 모양인 것 같았다.

소녀는 다시 한번 그림지도를 쳐다보다가 방향이라도 잘못 잡았는지 이내 어딘가로 급히 뛰어간다.

소녀의 의복에서 딸랑딸랑, 하고 방울이 울리는 소리가 난다. 

잠시 뛰던 소녀가 잠시 숨을 고르고는 꽤나 허름한 원룸가로 들어선다.

그 곳에서 소녀는 다시 한 번 그림지도를 쳐다보다가 이제는 확실히 알겠다는 듯이 원룸가에서도 꽤나 지어진 지 오래된 듯한, 그래서 방세는 확실히 쌀 것같은 건물로 들어가 한 집에 멈춰서고는 벌컥 문을 열어젖힌다.

방은 외부와는 다르게 꽤나 깨끗하고 정돈이 잘 되어있고, 한 남자가 눈을 뜨기조차 어려운지 겨우 눈을 떠 소녀를 쳐다보고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입을 연다.

 

"요, 요시노 씨....?"

 

"안 오시길래 걱정했더니 치히로 씨가 이 곳을 가르쳐 주었기에-."

 

"그렇습니까, 걱정을 하게 해 드렸군요...."

 

거대한 이불을 뒤집어쓰고, 꽤나 심한 감기에라도 걸렸는지 계속해서 콜록거리는 커다란 남자.

요시노는 남자의 표정을 보고는 심각한 얼굴로 그의 이마에 손을 대어 열을 잰다.

펄펄 끓는듯한 남자의 이마. 요시노는 더는 안 되겠다 생각했는지 그의 이마에서 손을 떼고는 눈을 감으며 선언하듯이 외친다.

 

"역병의 신이여- 그대는 왜 여신을 알아보지 못하며, 그대는 왜 여신의 남자를 건드리는가-."

 

"저, 요시노 씨? 그것은...."

 

남자가 병중에도 이것은 태클을 걸어야한다는 사명이라도 있는지 요시노의 말에 일단은 딴지를 시도해본다.

하지만 이미 자신만의 세계에 들어가버린 듯한 요시노는 남자의 말이 들리지도 않는지 꽤나 당당한 태도로 입을 연다.

 

"지금 당장 이 남자의 몸에서 나가라-. 나가지 않으면 네놈을 태워죽이리라-."

 

"..제 눈에는 요시노 씨가 더 무서운 신으로 보이는데 말입니다."

 

남자가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요시노의 기도(?)에 꽤나 몸이 가뿐해진 것같은지 이제 좀 살 것 같다는 표정을 짓는다.

잠시 기도문같은 것을 중얼거리고 있던 요시노가 천천히 눈을 뜨고는 남자를 쳐다보고는 입을 연다.

 

"역병의 신은 쫓아냈기에- 이제 남은 것은 잘 쉬는 것 뿐입니다-."

 

"그, 그렇습니까. 그나저나 역병의 신이라니..."

 

"일단 제가 그대의 몸이 빨리 나을 수 있게 죽을 만들어 드리지요-."

 

"아닙니다. 그렇게까지 하실 필요는.."

 

"오히려 이것은 저의 업보- 그대는 저를 가까이하시어 저를 노리는 잡신들이 붙기 쉬운 체질이 되셨기 때문에-."

 

"그런 얘기는 말씀해주셔도 잘 모르겠습니다만..."

 

"지금은 이걸로 됐겠지요- 그럼 죽을 만들어 올릴 터이니-."

 

"아니, 요시노 양..."

 

"제가 만든 죽은 먹고 싶지 않은 겁니까-?"

 

"아니요, 그건 아닙니다만..."

 

"그럼 누워 원기를 회복하시지요-. 금방 만들어 오겠사오니-."

 

요시노의 단호한 말투에 타케우치가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이불을 잘 덮고 잠을 청한다.

요시노가 정갈하게 칼질하는 소리가 마치 마음이 편안해지는 음악처럼 그의 마음을 덮는다.

타케우치의 눈이 점점 무거워진다. 

더 없이 편안한 기분. 

마치 성모 마리아에 안긴 아기 예수의 기분.

타케우치는 그 어떤 종교도 믿지 않지만, 오늘만큼은 요시노라는 신을 믿어볼까라고 생각한다.

 

 

"그대여, 일어나 보시지요-. 죽을 만들어 왔사오니-."

 

얼마나 잤을까, 죽을 완성한 듯한 요시노의 목소리가 마음 속으로 파고드는 것처럼 잔잔하게 들려온다.

타케우치가 천천히 눈을 떠 요시노의 얼굴을 한 번 쳐다보고는 상체를 일으킨다.

수저를 집으려고 해봐야 이미 요시노가 죽을 떠 들고 있기에 의미없는 행위이다. 

타케우치는 마치 자신이 신에게 사랑받고 있는 추종자가 된 것같은 묘한 기분을 느끼며 죽을 먹는다.

타케우치가 죽을 다 비우자 요시노가 천천히 그릇을 들고 일어나고는 설거지를 한다.

언제였을까, 이렇게 따스한 하루를 보낸 마지막 나날은.

 

"그대- 오늘은 푹 주무시도록 하시지요-"

 

"아니요, 이제 몸도 다 나았고, 그럴 필요는..."

 

"그대- 신의 말은 지엄한 것입니다-"

 

"...그렇겠죠. 그럼 조금 더 자 두겠습니다."

 

"안녕히 주무십시오-"

 

요시노의 말에 타케우치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잠들지 못하는 정신을 의식의 저편으로 보내려 애써본다.

그리고, 타케우치가 잠들었다고 생각한 요시노가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오늘은 주욱 제가 함께 있을 것이오니- 그 어떤 역병도 다가오지 못할 것입니다- 부디 평안한 꿈 꾸시기를-"

 

타케우치는 왠지 모르게 성모 마리아가 아닌, 그것보다도 더 아름다운 여신을 만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후기 

빠르게 써내려간 요시노 리퀘스트입니다.

요시노 전혀 모르는데 이런 캐릭터도 나름 괜찮네요.

뭐, 물론 쓰기는 전혀 쉽진 않았습니다만...

다음은 신이라도 죽여 보이겠다고 자신한 오른손 제외 무능력자와 붙여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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