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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프로젝트x데레마스] 신앙은 덧없는 인간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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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2-01, 2017 00:28에 작성됨.

동방프로젝트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다면 이해하기 힘드실 수 있습니다. 수고로우셔도, 나무위키의 모리야 스와코 항목을 읽어보시면 어째서 이런 스토리가 나왔는지 이해하기 편하실 겁니다.

요시노가 이상할지도 모릅니다. 작중 언급되는 카나코와 사나에는 동방프로젝트의 인물로, 데레마스의 동명이인과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급하게 쓴 졸작입니다. 너그러이 읽어주세요.

 

* * *

 

 가을.

 식물이 제 몸을 물들이는 계절이며, 또한 생명을 끝마치기도 하는 계절.

 그리고, 인간의 풍요를 상징하는 계절이기도 하다.

 

 -

 

 모리야 신사.

 

 한때는 인간의 발길이 끊길 일이 없었으나, 현재에 와서는 낡은 토리이와 신사만이 쓸쓸히 자리를 지킬 뿐이다. 단풍이 들기 시작한 낙엽이 하나 둘 떨어져 신사 앞까지 이어진 돌길 위를 덮고 있다.

 

 평소처럼 정적이 감돌던 산에 걸음 소리가 들렸다. 한 걸음씩 차분히 나아가는 걸음. 신사 앞에 자리잡은 돌계단에서, 한 소녀가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그리 빠르지 않은 걸음으로, 한 걸음씩.

 

 요리타 요시노는 모리야 신사를 향해 걸음을 재촉했다. 계단에 쌓인 낙엽을 밟을 때마다 바삭거리는 소리가 났다. 쌓인 낙엽은 얼마 되지 않았기에 걸음을 방해할 정도는 아니었다. 이내 계단이 끝나고, 토리이 건너편의 신사가 눈에 들어왔다. 새전함 위에 걸터앉은 어느 소녀의 모습도 함께.

 

 소녀가 먼저 말을 건네왔다.

 

「오야, 이게 누구람」

「그간 강녕하셨사온지-」

 

 요시노는 살짝 고개 숙여 인사했다. 새전함 위의 소녀 또한 인사로 화답했다. 잠시 후, 고개를 든 두 소녀는 다시 대화를 시작했다.

 

「어쩐 일이야, 이런 조용한 신사에」

「오늘은 반드시, 뵈어야 할 듯한 예감이 들었기에-」

「오호라. 직감이라는 거네」

 

 소녀는 입을 가리고 쿡쿡 웃었다. 요시노의 입가에도 희미한 미소가 걸쳐졌다.

 

 요시노는 신사의 마루에 앉았다. 새전함이 높은 위치에 있어 요시노가 올려다보는 형태가 되었지만 둘 다 신경쓰지 않는 듯했다.

 

「오는 길은 어땠어? 열심히 청소한 길인데」

「깨끗하였기에-, 걸음하기 편했었지요-」

「다행이네. 사나에가 기뻐하겠어」

「사나에라 함은-?」

「우리 신사의 무녀. 귀여운 아이라구」

「호오-, 한번 만나고 싶군요-」

 

 두 소녀는 웃다가 잠시 마주본 후 시선을 앞으로 돌렸다. 토리이 너머로 바쁘게 돌아가고 있을 도시가 흐릿하게 보였다.

 

 소녀는 모자를 조금 더 눌러썼다. 그림자로 인해 표정이 보이지 않게 되어, 입술의 모양만이 겨우 보였다. 이내, 그녀의 입이 열렸다.

 

「...조용하네」

「그렇네요-」

「언제부터일까, 인간이 신을 잊은 건」

「...」

「인간과 신이 서로를 보살피던 시절은, 이제 더는 오지 않겠지」

「그렇겠지요. 이미 그들은 신에게 의지하지 않게 되었으니」

 

 요시노의 말이 간결했다. 이 주제는, 그들에게 있어 그만큼 진지한 얘기였다.

 

「아직도 생생한데 말야. 가을이 되면 공물이 오고, 축제가 열리면 나도 슬쩍 끼어서 즐기고」

「인간이 고민을 털어놓으면, 몰래 해결하러 가고-」

「참배하러 오면 축복도 좀 내려주고」

「아이가 태어나면, 축하해주고-」

「...이젠 다 옛날 일이네」

 

 소녀가 모자를 만지작거렸다. 해가 조금 더 기울어 하늘이 한층 더 어두워졌을 때, 소녀는 입을 열었다.

 

「나, 곧 떠날 거야」

「...」

「신앙이 사라진 땅에서, 신은 존재할 수 없으니까」

 

 그림자 탓에 소녀의 표정은 보이지 않았다.

 

「나도 이 신사도, 환상이 되는 거지」

「영원한 작별이 되겠지요-」

「그렇네. 영영 못 볼 테니까」

 

 키득거리는 웃음 소리가 났다.

 

「사나에가 아무리 힘을 써도, 카나코가 애를 써 봐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을 거야. 결국 우리는 도망치는 것에 불과해」

「그러나, 어쩔 수 없는 것-」

「응. 나, 소멸하긴 싫거든」

 

 소녀는 몸을 젖혀 신사 쪽을 바라보았다.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사실은, 원래는 인간들 사이에서 소멸하고 싶었어. 토착신은 인간 사이에 있을 때 가장 밝은 법이니까」

 

「그런데 말이지, 카나코도, 사나에도 절대 안 된다고 그러잖아. 너무 단호해서 그만 할 말을 잃었지 뭐야」

 

「알고 보니 벌써 날 데려갈 준비는 다 돼 있고. 이러면 어울려줄 수밖에 없잖아. 안 그래?」

 

 소녀가 입을 막고 웃었다. 아까보다 짙어진 그림자가 그녀를 완전히 가렸다. 검은 빛을 띠기 시작한 하늘을 보고, 소녀는 요시노에게 말했다.

 

「너는, 앞으로도 세상에 남아있을 거야?」

「물론이지요-. 저는, 앞으로도 그들의 곁에 있을 것이기에-」

「그런 불안정한 신앙으로는 오래 버티지 못해. 그래도?」

「저는, 세상에 남아 함께하는 쪽을 택하지요-」

「그게 네가 찾은 길이구나」

「예. 저는, 마지막은 인간의 사이에서 맞이하고 싶기에-」

「뭐야, 그게. 그건 내가 먼저 생각했는데」

 

 소녀가 몸을 일으켰다. 살짝 보이는 그녀의 입이 웃고 있었다.

 

「그럼, 작별할 시간이야」

「영원한 이별이지만-, 부디 평안하시길-」

「물론이지. 난 태평한 신님인걸」

 

 요시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소녀는 끝까지 일어나지 않았다.

 

「그렇지요-. 언제나 태평하신 분이었기에-」

 

 요시노는 신사를 뒤로 했다. 해가 사라진 검은 하늘이 그들을 덮고 있었다.

 

-

 

 

「요시노-」

「예-, 그대. 무슨 일이온지-」

「애들이 요 앞의 산으로 놀러가자는데」

「산이라 하시면-?」

「슬슬 단풍이 질 시기니까, 늦기 전에 놀고 싶나봐. 이 근방은 네가 잘 아니까」

「알겠사오니-. 다녀오겠사오니-」

「응, 부탁해」

 

 요시노는 346 프로덕션의 앞에서 기다리던 아이돌들과 합류했다. 그들이 걸음을 향한 곳은, 얼마 전에도 들른 바 있는 곳이었다.

 

 요시노는 산을 올랐다. 가득 쌓인 낙엽이 발에 밟혀 부스럭거렸다. 산을 모두 오른 요시노의 눈에 들어온 것은 낡은 토리이도, 신사도 아니었다.

 

 빈 터가 그녀의 시야를 채웠다. 앞에 깔린 돌계단도, 돌길도 없었다. 마치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던 듯, 듬성듬성 난 풀만이 보일 따름이었다.

 

 요시노는 두 손을 모았다. 박수 두 번, 절 두 번 후 박수 한 번.

 

「안녕히 가시길, 모리야의 스와코여」

 

 환상의 길을 선택한 그녀의 친구를 떠나보내듯, 요시노는 빈 터에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어스름한 햇빛이 그녀가 있던 장소를 비추었다.

 

-

 

가을.

인간과 신이 어울리던 풍요로운 계절.

그러나, 이제는 쓸쓸한 신만이 홀로 남은 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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