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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즈키와 상무 친해지길 바라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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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1-31, 2017 22:51에 작성됨.

 시마무라 우즈키의 표정에 동요나 식겁의 기미는 없었다.

 

 시부야 린과 혼다 미오는 친구의 표정을 유심히, 그러나 들키지 않게 조심해서 관찰한 끝에 그러한 결론을 내렸다. 다행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것만으로 긴장의 끈을 놓을 수는 없었지만 계획의 시동 단계부터 가장 듣고 싶지 않은 비명과 함께 모든 것이 끝장나는 사태만은 면한 것이다. 두 사람은 서로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것을 듣지 않아도 느낄 수 있었다. 이어서 두 쌍의 눈길은 그들을 양 옆에 끼고, 시마무라 우즈키를 정면으로 마주하고 있는 다른 한 인물을 향해 기울어졌다.

 

 바로 그 인물을 시마무라 우즈키는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이마를 덮은 검은 색 생머리가 엉덩이까지 내려와 있었으며 눈초리는 올라간 편이지만 대하는 사람을 위축하게 만들 정도는 아니다. 수수하지만 품위를 갖추고 있는 성인 여성의 아름다움이 이목구비마다 또렷했다. 키는 꽤 큰 편이었는데, 나란히 선 린과 비교해도 확실히 더 크다는 걸 알 수 있을 정도였다. 그렇다는 건 아마 우즈키보다 십 수 센티미터 정도는 더 클 것이다. 전체적인 인상은 어딘지 눈에 익은 점이 있었다.

 

 하지만 초면인 사람이었다. 우즈키는 사람을 사귀는 데 있어서 ‘스스럼이 없다'라고 표현할 만큼 사교적인 것은 아니었지만 사람을 보자마자 경계심을 품는 경우도 거의 없었다. (물론 예외가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는데, 가령 현재 그녀의 프로듀서와의 첫만남 같은 경우는 우즈키의 대인 방침을 일거에 격파할 정도로 자극적이었다) 우즈키는 적당한 정도의 기대와 호기심, 그리고 어른을 대하는 사근사근한 예의의 눈빛을 담아 앞의 사람을 그녀의 온기 있는 눈망울에 담고 있었다.

 

 개인 대 개인으로서는 어색하지만 초대면인 인간관계 일반의 양상에 비추어 볼 때 특별히 이상할 것은 없는 가벼운 침묵의 시간이 지나고, ‘흠' 하는 헛기침으로 운을 뗀 것은 시부야 린이었다.

 

  “우즈키, 지난번에 말했지? 이 사람이 내 먼 친척 언니인 시부야….죠미 씨야.”

 그 짧은 말을 시작하고 끝내기까지 시부야 린에게 요구된 극기심은 필설로 다할 수 없다.





 "‘죠미'라는 건 대체 어디서 나온 이름이야?”

 

 살짝 촌스러운 느낌인데. 린은 그렇게 의견을 개진해 보았지만 작명자는 자신의 센스에 지극히 만족하고 있는 듯했다. 혼다 미오의 설명은 심플했다.

 

 “그야 ‘미시로(美城)’를 거꾸로 해서 ‘죠미(城美)’인 거지.”

 “너무 성의 없는 거 아냐?”

 “상무님은 별 불만 없었잖아. 사소한 거에 너무 따지고들지 마, 시부린.”

 “불만은 있다, 혼다 미오. 가명 말고 직급명에 대해서다만.”

 “봐봐, 이름에 불만 없다지? 그리고 ‘죠미 죠무(城美 常務)’라고 하면 뭔가 재밌지 않아?”

 “결국 말장난인 거야?”

 

 왠지 어떤 기묘한 만화의 주인공 이름처럼 돼 버렸잖아. 파문 쓸 것 같잖아. 속으로 그렇게 태클을 걸었지만 린은 그것을 굳이 말로 하지 않았다. 해봤자 소용없는 일에 정신력을 낭비하지 않겠다는 현명한 사고의 결과였다. 작명자와 작명 대상이 오케이한 사안에 대해서 제3자인 린 혼자 뭐라고 떠들어 대봐야 부질없는 일이다.

 

 그러나 관계없는 일에 끼어들지 않겠다는 친구의 방침을 배려하여, 듬직한 뉴 제너레이션의 리더는 린을 이 사안의 적극적인 관계자로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기회를 얻은 린은 관계자로서의 권리를 행사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다음과 같은 말을 들은 순간 아주 적극적으로 또 격렬하게 항의 의사를 표명한 것이다.

 

 “그럼 우리의 죠미씨는 시부린의 먼 친척인 걸로 하고.”

 “기다려. 왜 이 사람이 내 친척이야? 웃기지 마.”

 “시부야 린. 아무리 그래도 ‘이 사람'은 연장자에 대한 지칭으론 부적절하다는 생각 안 드나?”

 

 느닷없이 닥쳐온 가문의 위기 앞에 시부야 린은 냉정을 유지할 수 없었다. 인생에서 가장 황당한 소리를 들었다는 표정을 하고 있는 린을 앞에 두고 미오는 리더다운 침착함으로 설명을 시작했다. 그러나 집안의 명예를 지키고자 하는 소녀의 의지를 납득시키기에는 부족한 모양이었다.

 

 “생각해 보라구 시부린. 우린 지금 상무님과 시마무를 화해시켜주려고 하는 거잖아.”

 “이미 ‘화해'의 본뜻하고는 억만 광년 멀어진 것 같지만 말이지.”

 “아무튼 전혀 관계 없는 사람을 팬이랍시고 냅다 시마무한테 소개해주는 건 이상하잖아? 뭔가 적당한 구실이 필요하고, 그런 구실로는 역시 친척 사이라고 하는 게 가장 좋지.”

 “근데 왜 우리 친척이냐고. 미오 네 친척으로 해.”

 “에에? 싫어.”

 “나도 싫어!”

 “자네들은 사람을 앞에 두고 할 소리와 못할 소리를 구분 못 하는군.”

 “그쪽이야말로!”

 

  영문을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짓는 상무에게 린은 한소리 퍼부어줄까 하다가 바로 미오 쪽으로 시선을 되돌렸다. 저 인간 저러는 건 하루 이틀이 아니고, 지금은 상대해야 할 크나큰 위기가 따로 있다. 사악한 설득의 목소리는 계속되었다.

 

 “들어봐 시부린. 시부린은 외동이잖아. 난 오빠도 동생도 있고.”

 “그게 이거랑 무슨 상관인데.”

 “자고로 일이란 항시 신중을 기해야 하는 법이야. 시마무, 내 동생 번호 알잖아? 나중에 혹시 친척 중에 이런 사람 있냐고 얘기라도 나왔다간 뒷감당이 안 된다니까.”

 “그럴듯하지만, 우즈키가 굳이 네 동생한테 전화해서 그런 걸 캐내리라곤 생각할 수 없는데.”

 “...그건 그렇네.”

 

 린은 이 건에 대해서 결코 양보할 수 없다는 자세를 굳건히 했다. “그리고 상무님 인상 말이야, 시부린하고 닮았잖아. 친척이라고 하면 다들 고개 끄덕일 걸?" 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마음이 산산이 부서지고 피가 김이 되어서 머리로 쏠리는 기분이 들었지만 그녀는 참아냈다! 그리하여 비록 가상일지라도 상무와 한가족이 되는 건 사절이라는 린의 고집을 꺾기 위해서, 미오는 치사하고 더러운 마지막 수를 꺼내들 수밖에 없었다.

 

 “시부린. 애초에 사태의 씨앗을 만든 건 시부린이라고?”

 “무슨 말이야?”

 “상무님의 어처구니없는 부탁을 냉큼 받아드는 바람에… 게다가 혼자선 벅찰 것 같으니까 나까지 얽어넣고 말이야…”

 “에…”

 “시부린. 사람을 이렇게 말려들게 했으면 책임을 져야 하지 않겠어?”

 “아니, 그건 미안해, 미오. 근데 그건 그거고, 이 일은 진짜…”

 “실망이네. 시부린은 남을 골치 아픈 일에다 엮어놓고도 자기가 싫은 일은 못 참는 그런 여자였어?”

 “....”

 

 그렇게 해서 시부야 가는 새로운 일원을 맞았다.



 “그럼 대충 관계를 설정해 놔야겠네.”

 “으음.”

 “뭐...그냥 적당히 고모나 이모라고 하면 되지 않을까.”

 

 지금으로서는 아득한 옛날로 느껴지는 어린 시절. 끝끝내 대답을 내리지 못한 질문이 다시 린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러고보니 아빠가 지난번에 하나코는 너보다 날 더 잘 따른다며 으스댔었지.

 

 “흐응, 상무님이 내 고모? ...나쁘지 않지 않은데.”

 “이쪽에서도 이의가 있다.”

 “뭔데, 상무님.”

 “첫째, 상무가 아니라 전무다. 둘째, 고모가 아니라 사촌 언니로 한다.”

 “뭣이?”

 

 우즈키랑 친해지고 싶다고 난리칠 때부터 알아봤지만 이 아줌마 자기 성찰이 부족한 거 아냐?

 

 “상무님, 나이를 생각해야지. 그 얼굴에 사촌 언니라고 하면 신빙성이 떨어진다니까.”

 “사촌 언니로 간다. 이건 총괄 이사의 명령이다.”

 “이상한 데서 직권 남용하고 난리야!”

 “상무님은 쓸데없는 곳에서 민감해지는 스타일이구나아.”

 “자네들은 아직 어려서 모르는 것 뿐이다. 고모냐 언니냐는 굉장히 중요한 문제야.”

 “네이네이. 맘대로 하세요.”

 

 여담 삼아 말하자면, 이즈음에 이르러 미오는 직장 최고 상사에 대한 최소한의 경의마저 잃어버렸다.




 “그럼 기본적인 설정은 이걸로 됐다 치고. 이제 겉모습을 싹 뜯어고쳐야겠네.”

 

 세 사람은 드디어 ‘시부야 죠미'를 본격적으로 세상에 만드는 작업에 착수했다. 현재 미시로 상무가 발하고 있는 인상, 예컨대 위압적인 눈매나 헤어스타일, 화장, 차림새 등등을 각각 정 반대 방향으로 그러나 어색하지 않게 전환하는 것이 첫째 관건이었다.

 

 다행이라면 다행스럽게도 구상하는 것 자체는 크게 어렵지 않았다. 늘 입고 다니는 여성용 정장 대신 쿨톤의 브이넥 티셔츠와 캐주얼한 회색 카디건으로 갈아입히고 나니 평상시의 묵직한 압박감이 벌써 절반은 사라져버렸다. 여기에 하이힐 대신 굽 없는 구두를 신겼는데, 하이힐을 벗었음에도 린보다 키가 크다는 것에 대해 두 사람 모두 살짝 놀라긴 했지만 차림새 자체는 예상 이상으로 어울렸다. 코디를 마친 혼다 미오가 자신의 패션 센스에 대해 자화자찬을 늘어놓는 와중에 시부야 린이 찬물을 끼얹은 정도 빼고는 해프닝이랄 것도 없었다.

 

 머리카락은 아예 썩둑 잘라버리…는 것도 곤란한 까닭으로 그냥 묶었던 것을 풀기만 하기로 했다. 전부 이마 뒤로 넘겼던 앞머리를 눈썹 쪽으로 빗질하고, 이어서 미오의 스트레이트기로 머릿결을 일직선으로 쫘악 훝어내리고 나니 인상은 확연하게 달라졌다. 여기에 뭔가 악센트를 주어야 한다! 는 미오의 주장으로 별 모양 헤어핀까지 꽂아보았다.(어린애 같다며 저항하는 상무에게 미오는 ‘떽! 편식하면 못써요!’ 라는 꾸중으로 입을 다물게 했다)

 

 순조롭다면 순조로운 코디네이팅은 예상 외의 부분에서 난항을 겪었다.

 

 “얼굴만은 안 된다! 얼굴만은 절대로!”

 “상무님, 고집 부리지 마. 그렇게 진한 화장을 하고 있으면 딴 거 다 바꿔도 소용 없어. 얼굴만 딱 봐도 평상시 상무님인게 보이잖아.”

 “그렇다니깐. 상무님 눈화장이나 립스틱 같은 거, 신경 안 쓰기에는 너무 두드러진단 말이야. 그걸 지워야 시마무가 못 알아볼 확률이 높아진다고.”

 “뭐라고 말해도 안 되는 건 안 된다. 맨얼굴로 거리에 나가라고? 나 참… 10대 풋내기들이나 할 수 있는 흉포한 발상이군.”

 “흉포하긴 뭐가.”

 “화장은 성인 여성의 영혼이다! 자네는 영혼을 벗겨낼 수 있겠나!”

 “화장품을 영혼으로 삼고 사는 어른 따윈 되고 싶지 않은걸.”

 

 셋 말고는 아무도 없는 메이크업 룸에서(총괄 이사라는 직책은 편하게 써먹을 데가 많다) 젊음의 횡포에 전율하며 격렬히 농성 중에 있는 상무를 두고, 린과 미오는 어떻게 그녀를 어르고 달랠지 궁리하기 시작했다. 우선 미오가 ‘아주 쌩얼이 아니라, 비비크림이랑 파운데이션만 하는 걸로 하자'고 교섭을 시도했지만, ‘그게 맨얼굴이랑 뭐가 다른가! 어리석은 녀석!’이라는 면박만 받고 돌아서야 했다.

 

 생각해보면 작전의 주연인 본인이 싫다는 걸 반강제로 끌려온 두 사람이 설득을 시도할 의무도 의리도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둘 중 한 사람도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지 못했다. 이미 너무 많은 길을 걸어온 까닭일까. 오히려 두 사람은 지금까지의 노력을 수포로 만들려는 상무의 고집에 불필요한 짜증까지 느끼고 있었다. 그까짓 화장, 안 하면 뭐 사람이 죽나 세상이 무너지나. 세월은 때때로 젊은이와 어른 사이에 이해 불가능한 균열을 남기곤 하는 법이다.

 

 “아무튼 이번엔 내가 얘기 좀 해볼게.”

 “......시부린이?”

 “그 못 미덥다는 눈길은 뭔데.”

 

 혼다 미오의 경험에 따르면, 그리고 애매하긴 하지만 이른바 객관적인 시선이란 것으로 보자면, 시부야 린이라는 사람은 남을 달래고 설득하는 데에는 재주가 있다고 말하기 난처한 사람이다. 솔직하게 자신의 감정을 직구로 쏘아낼 뿐, 언어의 변화구를 던지는 요령은 젬병에 가깝다. 그 일직선의 화법이 또한 시부야 린이라는 소녀의 매력이지만, 그렇다 해도 사람마다 있는 적재적소를 무시해서는 안 되지 않을까. 리더의 그런 걱정에도 불구하고,

 

 “됐어. 나도 생각이 있어.”

 “흐흠, 어떤 생각이지요?”

 “동질감이랄까, 작은 의리랄까.”

 “에?”

 

 린은 그렇게 말하고 구시렁거리고 있는 상무에게로 다가간다. ‘의리라니 뭔데?’라며 어리둥절해있는 미오를 남겨두고. 린은 상무의 어깨를 두드리고, 상무와 눈을 맞추고, 상무에게 말한다.

 

 “상무님, 생각해 봐.”

 “뭐, 뭘 말인가.”

 “이대로 우즈키가 상무님 앞에서 오들오들 떨고 도망치듯이 대화를 끝내고, 미소 한 방울 없는 눈으로 바라보기를, 상무님은 바라는 거야?”

 상무는 말이 없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강력한 송곳이 그녀의 심장에 꽂혔다는 것은 그녀의 눈동자가 흔들리는 것에서 알 수 있었다. 설혹 그녀의 눈을 보지 않았다고 해도, 린은 그것을 깨닫는 데 어려움이 없었을 것이다. 린은 말을 이었다.

 

 “상무님은 이대로 우즈키의 미소를 포기할 수 있어? 물론 이게 좋은 방식은 아니지. 이건 야바위야. 언젠가 전부 밝히고 용서를 빌어야겠지. 하지만 시도할 수 있는 일이라면 해보기로 했잖아. 우즈키가, 상무님을 친구처럼 생각해 주기를 그만큼 바라고 있는 거잖아. 그 마음은 안다니까. 말했잖아, 우즈키 팬끼리의 의리라고.”

 “시부야 린…”

 “겨우 화장 같은 것 때문에 그 마음까지 없던 걸로 할 셈이야? 우즈키의, 영혼을 맑게 씻어내는 것 같은 그 웃음을 보고 싶지 않은 거야?”

 

 린은 말을 멈추었다. 이 이상의 말은 필요치 않다고 느꼈다. 그녀는 이해할 것이다. 우즈키의 햇살 같은 미소를 한 번이라도 느낀 사람이라면, 그 느낌을 잊을 수 있을 리 없다. “저기, 지금 뭐하고 있는 거야?” 계속되는 침묵에 불안감을 느낀 미오가 그렇게 찌르고 들어왔을 때, 상무는 일어섰다. 346 프로덕션의 총괄 이사다운, 결연한 의지와 당당한 품위가 배어있는 표정으로.

 

  그리고, 엄숙하게 명령했다.

 

 “클렌징 폼을 가져오도록. 그리고 나는 전무다.”

 “바로 그거야. 그쯤은 해 줘야 크로네의 상무님이지.”



 “상무님, 맨얼굴로 보니까 꽤 부드러운 여자인데!”

 “정말. 막 보는 사람 겁먹을 정도로 부리부리한 눈매보단 훨씬 낫네.”

 “...누구 눈매가 부리부리하다는 거냐.”

 

 상무의 화장을 지우던 린과 미오는 저도 모르게 감탄했다. 물론 진한 눈화장을 지운다고 해서 날카롭던 눈이 갑자기 온화해지는 기적이 일어나지는 않는다. 다만 보는 것만으로도 압박감을 줄만큼 팽팽했던 예리한 기운이 상당히 가라앉아서, 날카롭다기보다는 빠릿빠릿하다는 인상에 가까웠다. 린보다 조금 더 새침해보이는 정도일까. 그러나 상무 본인은 두 사람의 반응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했다.

 

 “이사에게는, 이사로서의 위엄이 있어야 하는 법이다. 그걸 위해서는 겉모습부터 제대로 차려야 하는 것이고.”

 “이제와서 새삼스럽게 이사로서의 위엄을 찾는 거야?”

 “그치만 이 정도면, 시마무가 보면 진짜 못 알아챌지도 몰라!”

 “...그런가?”

 “응. 아마도? 그리고 상무님, 말 나온 김에 말인데, 이제부턴 그 ‘이사의 위엄'을 버리는 연습을 하자.”

 “뭐라고?”

 “상무님은 시부린의 친척 언니이자 시마무의 팬인 시부야 죠미가 되는 거라구. 그런데 팬이라는 사람이 아이돌을 만나서 그렇게 딱딱하고 위엄있는 말투를 쓰는 건 이상하잖아?”

 “확실히...그렇다만, 나는 이게 원래 말투다. 특별히 의식해서 쓰는 게 아니야.”

 “그러니까 연습이 필요한 거지! 좀 더 사근사근하고, 뭐라고 해야 하나… 말랑말랑하게 말할 수 있도록 레슨해 보자구!”

 “...알았다. 해보지.”

 “...이제 와서 할 말도 아니지만, 어쩌다 일이 이렇게 된 걸까…”

 

 린의 혼잣말에 대답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대답을 바라고 한 말이 아니었으므로 불만은 없었다. 없었지만.



 “리슨 앤 리피트. ‘반가워, 우즈키!’”

 “반가워, 우즈키..즈키..…”

 “아니 아니 아니! 제대로 ‘우즈키'라고 불러야죠! 평소처럼 ‘시마무라 우즈키'라고 딱딱하게 부르면 팬심이 전해지지 않는다니까!”

 “큿...겨우 이런 호칭 같은 게 뭐가 그리 중요하단 말인가.”

 “각설하고! 좀더 부드럽게, 내면의 애정을 담아서, 친근감 만땅의 목소리로 ‘우즈키~☆’ 이라고 해봐요.”

 “우즈키~이이이….”

 

 가르치는 사람이나 배우는 사람이나 참 고생한다. 설정상 시마무라 우즈키의 열렬한 팬인 ―여기까지는 어차피 설정도 아니지만― 시부야 린의 사촌 언니 ‘시부야 죠미'가 되기 위해, 대기업 346 프로덕션의 총괄이사 미시로 상무(사실은 전무)는 재탄생으로의 마지막 역경을 치르고 있었다. 당연한 것이, 상무라는 걸 들키지 않은 채 친해져야 하는 자리에서 상무와 똑같은 식으로 말하고 행동하는 것은 곤란하다. 태도가 닮아 있으면 사람은 닮은 이를 연상할 수밖에 없으니까. 그러나 이 회사의 보스께서는 미오가 요구하는 ‘말랑말랑'한 말투라는 것이 영 입에 붙지를 않는 모양이다.

 

 하지만 어쩔 수 있나. 잘 하지 못하더라도 해내야 하는 것이 세상에는 있는 법이다.

 

 “일단 앞으로 ‘우즈키☆’만 일백 번 연습하도록 시켰어. 다 됐으면 이제 한 발짝 씩 나아가야지.”

 “그래. 수고하네…”

 “시부린은 대(對) 시마무 주의사항을 강의하기로 했지?”

 “뭐 그거라면 전문이니까. 여러가지 의미로…”

 

  안 좋은 기억, 보다 자세히는 찔리는 기억이 떠오르는지 린은 살짝 표정을 찡그렸다. 어디까지나 보편적인 이야기지만, 어떤 사안에 대한 주의사항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은 그 사항들을 실행한 끝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는 결론을 몸으로 얻은 사람인 법이다. 다시 말하지만 결코 특정인을 집어서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핫핫하, 하고 털어내기 식의 웃음을 낸 미오는 분위기를 다시 당면한 상황에 알맞은 쪽으로 돌렸다.

 “그나저나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라구. 우리, 신데렐라 프로젝트잖아. 평소에는 우리가 프로듀서의 마법에 도움을 받는 신데렐라인데, 지금은 상무님을 우리가 생각하는대로 꾸며주고, 바꿔놓고, 가르치고 있으니까. 뭐라고 해야 하나, 프로듀서의 기분을 사알짝 이해한달까? 이번만큼은 마법을 걸어주는 요정의 역할이 된 것 같다는 느낌.”

 “방향성이 반대지만 말이지.”

 

  한 인간을 그가 지향하고자 하는 장소를 향해 움직이도록 돕고 그에 합당한 모습이 되도록 꾸민다는 점에서 단순한 맥락에서는 같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린과 미오의 역할은 평범한 소녀에게 드레스와 마차를 제공하는 요정의 아니다. 그녀들에게 주어진 임무는 성의 여왕에게 여염의 옷을 입히고 태도를 익히게 해서 평범한 소녀가 있는 곳으로 보내는 일이다. 미오는 이해했다는 의사 표현에 능청스러운 농담을 곁들여서 친구에게 돌려주었다.

 

 “응? 그러고보니 그렇네? 그럼 뭐라고 해야 하지? 역(逆) 신데렐라? 아니면 마이 언페어 레이디?”

 “나도 몰라. 근데 정말 이 작전, 먹힐 거라고 생각해?”

 “시부린.”

 

 혼다 미오는 린을 부르며 말을 멈췄다. 미오의 눈에는 린이, 린의 눈에는 미오가 미동 없이 담겼다. 오래라면 오랫동안 공적으로나 사적으로나 호흡을 맞춰온 두 친구 사이에 기묘한, 어떤 뜻이 담겨 있는 침묵이 흘렀다. 어색하지도 않고 편안하지도 않은, 무언가를 주고받는 듯한 침묵이. 침묵은 두 사람의 시선이 만나는 곳에 맺혀서 봉숭아 씨주머니처럼 터졌다. 린을 똑바로 보면서 미오는 말을 이었다.

 

 “그거야말로, 나도 몰라. 솔직히 될 대로 되라지.”

 “미오 너, 사실 처음부터 반쯤 포기하고 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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