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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즈키와 상무 친해지길 바라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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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1-31, 2017 22:46에 작성됨.

 시부야 린은 적잖이 불안했다. 겉으로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트라이어드 프리무스로서의 스케줄을 마치고 회사로 복귀하자마자, 회사 전체의 최고책임자이자 그녀의 직속상사이기도 한 346 프로덕션의 총괄이사가 자신의 집무실로 호출한 것이다.

 

 린은 그녀가 역시 불편했다. 처음 정도로는 아니지만 그녀와 마주 서 있을 때면 편안하다거나 익숙한 느낌은 들지 않았다. 이런 구석은 그녀가 속한 또 하나의 부서의 책임자와는 상반되는 면이었다. 직위 자체가 까마득하기도 하지만 특유의 고압적인 말솜씨도 그렇고, 부서 레벨로 작년 여름즈음부터 해서 이래저래 좋다고도 나쁘다고도 하기 어려운 애매한 양가감정들이 얽혀있기에 '전적인 아군'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 것도 어쩔 수 없다.

 

 호출한 장본인은 용건은 말하지 않고 린의 얼굴만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다. 아무래도 이쪽에서 먼저 물어야 할 것 같다.

 

 "왜 부른 거야, 상무님."

 

 린의 물음에 그녀는 잠시 미간을 찌푸리더니, 육성으로 대답하는 대신 자신의 책상 앞머리에 놓은 이름판을 손으로 가리켰다. 린의 시선도 이름판으로 움직였다. 거기에는 이미 알고 있듯이 <346 프로덕션 아이돌 사업 부문 총괄이사 미시로 상무>라는 이름이―― 아니라, 딱 한 글자가 변해 있었다.

 

 아무래도 이 회사의 보스께서는 그 변한 한 글자에 대해 상당히 민감하신 모양이다. 린은 목구멍 속에서 가느다란 한숨을 뽑았다가 입술로 나가기 전에 거둬들이고, 살짝 질렸다는 투로 자신의 말을 정정했다.

 

 "그래, 전무님. 어찌 됐든지… 나만 부른 데는 이유가 있을 거 아냐."

 

 화제를 처음으로 돌렸다. 상무냐 전무냐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린은 잘 와닿지 않고, 알 바도 아니다. 아마 상무로서도―― 실례, 전무로서도 그것 때문에 굳이 쉬려고 하는 린을 부르지는 않았을 터. 문제는 그 진짜 용건이 뭐냐는 것이었다.

 

 린이 불안할 수밖에 없던 것이, 만약 이번 일에 대해 가타부타 말할 참이라면 트라이어드 프리무스 전체를 불러서 지적을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굳이 린만 따로 불러냈다는 것은 이번 스케줄과는 전혀 무관한 일이거나 아니면, 다른 두 사람이 들어버리면 곤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라는 뜻이다. '유닛 멤버에게 말할 수 없는 일'이라면 린은 이전의 경험이 있다.

 

 '설마, 뉴제네나 트라이어드 둘 중 하나를 포기하라는 건 아니겠지…?'

 

 크로네의 직속 책임자이기도 한 전무가 트라이어드를 포기하리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즉 그녀가 린에게 포기를 종용할 가능성이 높은 것은 뉴 제너레이션 쪽이라는 뜻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린도 허파가 답답한 느낌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만약 정말로 그렇게 나온다고 해도, 따라 줄 생각은 없지만. 물론 내치려는 쪽이 그 반대여도 마찬가지다. 린과 친구들의 유대는 '유닛'이라는 울타리에 연연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견고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억지로 울타리를 헐어버리려는 고약한 손길을 곱게 봐줄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배에 힘을 꽉 주고 각오를 다지는 린을 두고서 전무의 대답이 돌아왔다. 약간의 초조한 기색이 깃들어 있었다.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은, 절대로 다른 누구에게 누설해서는 안 된다. CP 쪽은 물론이고 크로네에도 마찬가지야."

 

 전신의 근섬유가 한순간에 팽팽하게 당겨진 기분이 들었다. CP에도 크로네에도 비밀로 움직여라? 그 얘기는 설마 자신이 만든 프로젝트까지 한꺼번에 뒤엎을 생각이라는 건가? 말도 안 된다. 하지만 한 번 일어난 일이 두 번 없으리란 법도 없고, 그녀는 총괄 이사직 취임과 동시에 회사 전체에 백지화의 폭풍을 몰고 온 여자다. 그렇게나 스케일 큰 얘기라면 일개 아이돌인 린 따위가 할 수 있는 일은 기실 아무것도 없다. 그러니까, 그 용건이 뭔데? 라고, 린은 동요를 애써 안쪽으로 욱여두고 말을 이었다.

 

 너무 긴장하고 있었기 때문인가, 린은 말을 꺼내려는 전무의 표정이 평상시와는 현저히 다르다는 사실, 망설임이 많고 어쩐지 부끄러워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데까지 신경이 미치지 못했다.

 

 그러한 까닭으로, 다음 순간 전무의 말에 린은 머리가 백지화된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시마무라 우즈키와 우호관계를 맺고 싶다. 자네가 모쪼록 잘 연결해 줄 수 없을까."




 "그러니까, 우즈키한테 심하게 말한 걸 사과하고 싶다는 거야?"

 "그렇다고 할 수 있지."

 

 린이 전무의 말을 온전히 해석한 것은 앞의 사태로부터 몇 분이 흐른 뒤였다. 작년 겨울 때까지 전무가 시마무라 우즈키에 대해서 별로 좋은 인상을 가지진 않았던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그것을 숨기려 하지도 않았기에, 도리어 현재 전무는 시마무라 우즈키에 대한 긍정적 감정이 충만해져 있지만 우즈키 쪽에서는 별로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 문제라는 모양이다. 자업자득이라는 점은 그렇다 치고, 원만한 사이가 되고 싶다는 말을 굳이 '우호관계를 맺는다'고 표현하는 것은 윗사람으로서의 프라이드인지 아니면 그녀의 무뚝뚝한 성미 탓인 건지.

 

 "본인이 직접 가라고. 어른이면서 남이 도와주지 않으면 혼자서 사과도 못하는 거야?"

 "…한심하다는 자각은 있다."

 

 언제나 쿨하고 합리적인듯이 행동하는 인간이 이런 걸로 쩔쩔맬 줄이야.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린은 그 한심한 모습에 나름의 친밀감을 느꼈다. 사실 '혼자서는 제대로 사과도 못 하'냐느니 '쿨한 척 하면서 이런 일로 쩔쩔맨'다느니 하는 지적에 대해서는 린 자신도 켕기는 부분이 없지 않아 있다. 그것은 어쩌면 두 사람 사이의 사소한 동질감이라 할 만한 특징인지도 모른다. 전무는 이어 말했다.

 

 "하지만 나라고 사과를 시도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어제 우연히 로비에서 마주쳤기 때문에, 그때 지난번 언행에 대한 사과를 하려고 다가갔지. 그런데 시마무라 우즈키가 걸어오는 나를 보고 울먹거리면서 황망한 표정을 짓고 있었기 때문에, 차마 말을 걸 수가 없었다. ……말이라도 붙였다간 식겁을 할 듯한 분위기였어."

 "그 나긋나긋한 우즈키가 그 정도라니… 크리스마스 때 뭐라고 얘기를 한 거야?"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아마 자네는 아이돌로서의 재능이 없으니 그만 포기하고 나가보라는 식의 말이었던 것 같― 노, 놓아라."

 

 깨달았을 때 린은 어느샌가 상사의 멱살을 잡고 있었다. 그녀가 냉정을 잃어버린 채 들개처럼 으르렁거리는 자신의 표정까지 깨달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다른 사람이 그렇듯이 린에게도 건드리면 폭발하는 역린 같은 것이 있는데, 시마무라 우즈키라는 소녀는 그 중 하나다. 다른 친구들도 소중하지만 애착의 각별함에 있어서 우즈키는 남달랐다. 동인(動因)으로서의 동경, 감동, 고마움 그리고 죄책감 등의 요소가 우정이라는 맑은 보석의 핵을 이루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린은 당시의 우즈키가 가장 콤플렉스를 느끼던 사항이 바로 '자신의 아이돌로서의 재능'이라는 점을 알고 있었다. 우즈키가 울면서, 반말로, 부서질 듯이 격렬하게 하소연한 그 모든 말들이 아직까지도 지워지지 않았으니까. 그런데 이 양반이 급소에 독설의 칼을 쑤셔넣어 멋지게 상처를 벌려놓았다 이거지. 이성을 가다듬고, 다소의 적의를 숨길 생각 없이 어투에 담아서, 린은 퉁명스럽게 말했다.

 

 "됐어. 상무님 탓이잖아. 거들어 주고 싶은 마음도 없고. 평생 그렇게 무서움이나 받으라고."

 "그건 곤란하다…. 그리고, 이미 얘기했다만 지금은 상무가 아니라―"

 "아니, 상무라고 부를 거야."

 

 그녀 나름의 소소한 복수다. 시부야 린은 쿨해 보이는 평소의 모습 뒤에 유치한 속감정도 지니고 있는 소녀다.

 

 "애초에 뭐가 곤란한 건데. 우즈키는 크로네도 아니고, 딱히 상무님이랑 얼굴 보며 살 일 없잖아."

 "곤란하다는 건…, 총괄 이사로서가 아니라 개인적인 문제다."

 "개인적인 문제?"

 "그러니까… 그걸, 쉽게 표현하자면 말이지…"

 

 그렇게 우물쭈물하는 상무(린의 호칭을 따라주자면)의 모습을 린은 처음 보았다. 별로 귀엽다거나 신선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은 조금 전에 축적된 미운털의 탓이려나. 그리고 상무가 다시 입을 열었을 때 린은 또 한 번 머릿속이 백지화되는 체험을 해야 했다.

 

 "내가, 시마무라 우즈키의 팬이 되었다…는 거다."

 

 "…팬? 우즈키의 팬? 상무님이?"

 "그래. 지난 크리스마스 라이브 때 그녀가 울음섞인 채 지었던 마지막 미소가… 굉장히 인상에 남아서… 정신차려보면 해당 라이브의 영상을 돌려보면서 피곤을 풀고 있다거나 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과연. 그건 확실히 멋졌지."

 

 격하게 공감했다. 린 자신이 우즈키의 스마일 파워의 가장 큰 수혜자 중 하나였으니까. 생각해보면, 처음에 이 길을 걷고자 결심한 계기도 그 웃음에 있었다. 봄날의 꽃보라 속에서 빛나던, 꿈에 대한 열정과 기쁨으로 충만한 그 화사한 미소. 열정과 생명력이 태양광선처럼 린의 마음에 직사(直射)되어, 그 안에 잠들어 있던 린의 막연한 열정을 공명으로 깨워낸 것이다. 크리스마스 라이브 때의 미소도 마찬가지다. 한 번 빛이 희미해졌던 우즈키의 자신감이 다시 제자리를 찾고, 기대와 깨달음과 확신을 가지고 찬란하게 쏟아지던 그 눈물섞인 미소는 린의 길지 않은 삶에서 가장 감격적인 장면 중 하나였다.

 

 "시마무라 우즈키의 그 사랑스러운 미소를 봐라. 그녀는 마치 현실에 내려온 꿈의 여신 그 자체 같지 않나. 그녀가 있으면 그 어린애 동화 같은 CP 프로듀서의 유치한 생각조차 불가능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버릴 정도로 말이지."

 "뭘 좀 알잖아, 상무님. 우즈키의 미소야말로 마법같은 힘이 있어. 그거야말로 아이돌의 이데아라고 나는 생각해. 그걸 깨닫지 못하고 우즈키를 갈궈댔으니까 상무님은 미움받아도 싸다는 거야."

 "전무다. 그리고 이제는 다르다! 그 라이브 이후 시마무라 우즈키에 대한 모든 활동정보와 매체, 기록들을 수집했어! 그리고 깨달았다! 시마무라 우즈키의 미소야말로 아이돌 세계를, 아니 인류 역사를 새로운 장으로 이끌 진리의 메세지라는 것을! 그녀는 내게 346의 갈 길을 알려주기 위해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야!"

 "끽해야 불특정 다수를 향한 미소만 봤을 상무님이 뭘 얼마나 알겠어? 나는 말이야, 우즈키가 직접 나만을 위해서 미소를 지어준 사람이라고! 그때의 황홀감을 상무님이 알까? 아니, 알 리가 없지! 목표의식을 잃고 태만해져 있던 온 몸의 세포에 고양감이 샘솟아오르는 그 때의 심정을!"

 

 그리하여 두 사람은 우즈키의 미소의 매력에 대한 적극적이고 치열하며 물러설 수 없는 난상토론을 벌인 것이다. 현장에 제3자가 있었다면 필시 아이돌 오타쿠 둘의 기묘한 의기투합이라는 냉정한 평가를 내렸을 테지만.

 

 이야기가 처음의 화제로 복귀한 것은, 린이 '우즈키의 미소에서는 고통을 잊게 하고, 젖산을 분해하며, 세포 회복을 촉진하고 긍정심을 증가시키며 활기와 용기를 부여하고 세상을 아름답게 보이도록 만드는 특수한 광자가 발산되고 있다'는 가설을 주창하기 시작하고 10분쯤 지난 시점이었다.

 

 "…그래서, 내 제안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응? 제안? …아아, 우즈키랑 친해질 수 있게 다리 좀 놓아 달라는 그거 말이지."

 "그래."

 "그런 건 제안이 아니라 부탁이라고 해야 할 것 같은데. 아무튼 싫어. 우즈키를 괴롭힌 사람을 도와주고 싶은 마음 없어."

 

그런가…라고 답지 않게 드러나 보일 정도로 침울해하는 상무를 보며, 린은 살짝 산뜻하게 입꼬리를 올리며 말을 이었다.

 

 "…라고 말하고 싶지만, 내가 말하기는 그래도 나 역시 우즈키에게 상처를 줬다는 점에선 책임이 있단 말이지."

 "……?"

 "그리고 지금의 상무님이 우즈키의 매력을 제법 이해하고 있다는 것도 알았어. 도와줄게. 상무님을 위해서―라기보다, 상무님 같은 사람을 무서워하는 우즈키가 가엾으니까."

 "나 같은 사람이라는 게 무슨 뜻인지 캐묻고 싶지만, 내게 협조해 주겠다는 뜻인가…? 감사하지. 시부야 린."

 "아니 뭐… 같은 우즈키 팬끼리의 작은 의리랄까, 그런 거야."

 

그렇게 말하면서 린은 시원스레 웃었다. 그것 역시 두 사람 사이의 사소한 동질감이라 할 만한 부분이었다.




 "그래서, 그 사과할 타이밍 잡는 거 말인데."

 "으음."

 "내가 내일 우즈키랑 로비에서 이야기 나누고 있을테니까, 상무님은 가다가 우연히 마주친 척 나한테 와서 크로네 얘기를 꺼내. 그리고 마침 옆에 우즈키가 있으니까 떠오른 김에―― 라는 느낌으로 슬쩍 미안했다고 하는 거야."

 "흐음… 지난번처럼 될 가능성은 없겠나?"

 "괜찮아. 우즈키도 내가 옆에 있으면 안심할 거야."

 "그 으스대는 말투가 마음에 들지 않지만… 알았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제안하지, 시부야."

 "그러니까 부탁이라고 하는 거라고. 뭔데?"

 "이제 그만 직급명을 정정해주지 않겠나? 나는 전무다."

 "싫어, 상무님."




 "여기 있었군, 시부야 린. 잠깐 실례 좀 하지."

 "어라, 상무님."

 "저, 저저저전무님?! 아아아안녕하세요!"

 

 각본대로군. 화들짝 놀라서 허리를 직각에 가깝게 굽히는 우즈키의 옆에서 그렇게 생각한 린이었다. 로비에서 우즈키와 뉴제네의 신곡에 대한 담소를 하고 있던 린은, 마치 상무를 만난 게 의외의 사건이라는 듯이 능청을 떨었다. 아주 순간적으로 두 사람 사이에 시선을 통한 이야기가 오갔다. 그런 한편 육성으로 나누는 것은, 어제 이벤트 수고했다는 식의 시답잖은 공치사 정도. 당연하지만 메인은 이쪽이 아닌 것이다. 적당히 얘기를 끝낸 후 상무는 시선을 돌려, 두 사람의 대사를 멀뚱히 바라보고 있을 우즈키에게로――

 

 "아, 아아, 아아아……"

 "……우즈키?"

 

 우즈키는 굳어 있었다. 단지 딱딱한 정도가 아니라 머리카락부터 발뒤꿈치까지 미세하게 떨리고 있는 것 같았다. 눈은 뱅글뱅글 돌고 입술은 상대에 대한 두려움을 필사적으로 숨기려는 듯 억지로 벌어져 있었지만, 입술이 뻣뻣하게 부들거리는 것은 우즈키로서도 어쩔 수 없는 듯했다. 린은 당황했다. 그녀로서도 이 정도로 무서워할 거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하지만, 이렇게 되었으니 일단 잡아두기라도 해야 한다.

 

 "뭐, 뭐야 상무님? 우즈키한테 하고 싶은 말이라도 있는 거?"

 "으음. 시마무라 우즈키. 기왕에 만났으니 하는 말이다만…"

 "죄, 죄송합니다!"

 "우즈키?"

 

 사과를 받아야 하는 쪽에서 엉뚱하게 선수를 쳐버렸다. 할 말이 있다 = 혼낼 일이라니, 어쩜 이다지도 인상 좋은 상사가 다 있을까. 거짓말이지만.

 

 "제. 제가 뭔가 잘못한 일이라도…. 아, 지지난번에 유리구두를 옮기다 떨어뜨려서… 그것 때문에…"

 "진정해 우즈키! 그게 언젯적 일인데! 그리고 그 때 저 사람 여기에 없었어!"

 "아, 아닌가요? 그러면… 아 지난번 라이브에서 제가 제대로 하지를 못해서… 그래서 전무님이 심기가…"

 "아니, 아닐거야 우즈키! 일단 진정하고, 상무님 얘기부터 듣자, 응?"

 

 차마 고개를 올리지 못한 채 물어오는 우즈키의 손 한 쪽이 린의 소맷부리를 쥐었다. 역시나 린이 없었다면 대화 같은 건 어림도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자신을 의지해주는 친구의 손을 살짝 감싸며 린은 복잡한 심사를 느꼈다.

 

 "우으…. 제가 뭔가 불편한 일이라도 했던 건가……요?"

 "그러니까 말이지, 그게…"

 

 이 분위기에 우물쭈물 하고 있으면 어떡해. 린이 힐난의 눈초리로 쏘아봤다. 우즈키 울 것 같잖아! 깔아 줬으면 좀 똑바로 하라고, 어른! 상당히 노골적으로 험악한 얼굴을 했지만 허둥지둥하는 우즈키는 그런 친구의 얼굴을 돌아볼 겨를도 없는 듯했다. 안절부절하던 우즈키가 놀란 것은, 자신에게 고개를 숙이는 총괄 이사의 모습을 보고서였다.

 

 "사과를, 하게 해다오."

 "에? 저기… 전무님."

 "먼젓번에 내가 자네에게 함부로 심한 말을 해버렸지. 빛나지 않는 자는 성의 계단을 오를 수 없다느니 어쩌니."

 

 우즈키의 어깨를 토닥이던 린은, 그 순간 우즈키의 어깨가 살짝 움츠려든 걸 손끝으로 느꼈다.

 

 "내 불찰이었다. 자네는 결코 단순한 재투성이가 아니야. 그 라이브 회장에서 나는  분명히… 자네의 빛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니, 사과를."

 

 우즈키는 상황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는지 멍하니 있었다. 그런 우즈키의 어깨를 두드리며 린이 말했다. "우즈키, 상무님이 미안했대." 그 짧은 해석의 의미를 받아들이기 위해서, 우즈키는 린을 잠깐 쳐다봤다가 다시 상무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말했다.

 

 "천만에요…. 오히려, 전무님께서 인정해주셔서 저, 기뻐요…."

 "그, 그런가. 자네가 사과를 받아주니 이쪽이야말로 고맙지."

 "아뇨, 제 쪽이 오히려…"

 "그렇지 않다. 고마워 해야 하는 것은…"

 

 끊어야겠다. 우즈키 상태로 봐도 이렇게 질질 끄는 대화는 좋지 못하다.

 

 "거기까지 하자고."

 "그, 그럼 나중에 다시 보지. 앞으로도 많은 활약 기대하마."

 "네. 시마무라 우즈키, 열심히 하겠습니다!"

 

 우즈키의 트레이드마크 같은 대사를 마지막으로 그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대화는 마무리되었다. 멀어져가는 상무를 지켜 보다가 다리가 풀린 듯 하느적거리는 우즈키를 린이 급히 지탱했다.

 

 "후, 후아아…."

 "우즈키, 괜찮아."

 "괜찮아요. 그냥 긴장이 쫙 빠져서 그래요…."

 "그래도 놀랍네. 그 상무님이 고개 숙이며 사과를 하다니."

 

 정말로 놀랍다. 자리를 주선한 린도 그렇게 담담히 미안하다는 말을 담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크로네의 일원으로 몇 개월을 밑에서 일하고 있지만 ‘사과' 같은 숙이고 들어가는 말을 한 횟수는 손에 꼽는 사람이다. 꼭 사과할 만한 일이 또 있었던 건 아니지만…. 제 잘못이 아닌데도 ‘면목이 없습니다' 라는 말을 달고 사는 다른 누구도 있으니 말이다.

 

 "그러게요…. 저도 잠깐동안 이게 무슨 일인가 했어요. 헤헤. 그치만… 어쩌면 전무님도 제가 생각했던 것처럼 엄격하고 차가운 분이기만 한 것 아닌 것도 같아요."

 "그렇구나. 상무님도 우즈키한테 기대하고 있겠다고 했으니, 이번 기회에 좀 친해지는 것도 괜찮지 않아?"

 

 물론 이 말을 꺼내는 린 자신도 실현 가능성에 대해선 회의적이긴 하다.

 

 "린도 참. 그건 그냥 하신 말씀이잖아요. 저도 그 정도는 안다구요."

 "…."

 "뭐랄까, 생각한 것만큼 무서운 분은 아닌 것 같지만, 역시 어려운 건 어려우니까요. 전무님 특유의 위압감 같은 게 있잖아요. 말투도 무뚝뚝하시고 하니까, 마주 서면 숨이 막히고…. 그리고 전 전무님이 하시는 크로네 같은 아이돌 분들과는 완전히 다르잖아요? 역시 전무님이 마음에 들어하실 리는 없겠죠."

 

 오답이지만 폭넓은 의미에서는 또한 정답이다.




 "그렇다는데."

 "그런가…."

 "기운 없어 보이네, 상무님."

 "전무다. 그리고 일단 사과는 했지만… 시마무라 우즈키의 나에 대한 거리감은 거의 그대로란 얘기잖나."

 "어쩔 수 없지 뭐. 상무님이라면 본인한테 그런 트라우마를 준 사람이랑 친해지고 싶겠어? 아무튼 상무님은 사과를 했고, 우즈키는 받아줬잖아…. 그걸로 만족하라구."

 

 이 정도면 대단한 성과 아닌가. 대화 한 번 한 걸로 언감생심 인식의 획기적인 전환을 기대하기라도 한 걸까. 나오가 가끔 하는 아이돌 육성 커뮤 게임이 아니라고, 현실은. 첫인상이란 중요한 것이고 어지간해서는 바뀌지 않는다. 뭐 린 자신도 이 반증 사례는 몇 가지고 있지만 보편화할 생각은 없다.

 

 그리고 우즈키에 대해서라면 린은 더더욱 확신할 수 없다. 우즈키가 진심으로 어려워하는 사람은 거의 본 적이 없으니까. 학교에서도 두루두루 친하게 지낸다고 하던가. 그렇다면 반대로, 한 번 대하기 어렵다고 인식한 상대와는 관계의 변화가 어려운 것은 아닐까.

 

 "난 시마무라 우즈키와 친밀감이 있는 사이가 되고 싶었던 거다. 너희 뉴 제너레이션이나 CP의 프로듀서처럼."

 "목표가 너무 엄청난데. 정 그러면 우즈키한테 가서 팬이 되었다고 한마디 하든가."

 "난 346의 총괄 이사다. 그런 내가 대놓고 회사 아이돌 중 누군가에게 그런 얘기를 해버린다면 책임자로서의 형평성이 무너지지 않나."

 "자기 직속 아이돌한테 어떻게 중매 좀 서달라고 청승 떠는 시점에서 이미 책임자로서의 형평성 같은 건 물 건너 간 것 같은데."

 

 그리고 어른으로서의 위엄도 옛저녁에 물 건너 갔다. 슬프게도 이 사람이 내 상사다. 시부야 린의 그런 탄식은 물론 전달되지 않을 것이다. 그야 개인적인 팬심을 공공연하게 드러내기 어색한 위치라는 건 이해하지만, 호의는 드러내 보이지 않으면서 친밀도는 높이겠다는 건 난이도가 높은 정도가 아니라 불가능에 가깝다. 게다가 0도 아니고 마이너스에서 시작한다면.

 

 "중매라니, 너무 나가지 마라, 시부야 린. 나는 딱히 시마무라 우즈키와 결혼하고 싶은 게 아니다."

 "그냥 비유야. ……왜 본인은 포엠스러운 대사 읊어대면서 남의 비유는 알아듣질 못하는 거야?"

 "난 시마무라 우즈키의 평생지기 소울메이트 정도면 충분해."

 "너무 나간 건 당신이잖아. 오냐 오냐 해 주니까 누구 자릴 뺏으려 해?"

 

 아무튼, 나도 이 이상 어떻게 해줄 수 있는 게 없는 것 같은데. 린이 말했다. 그녀로서는 나름대로 할 만큼 했다는 생각이었으므로, 옆에서 '협력 인선을 잘못 택했다'느니 뭐라느니 구시렁거리는 괘씸한 어른은 모른체 하기로 했다. 애초에 그런 짓을 해놓고서 친구가 되고 싶다는 게 너무 간이 큰 발상이다. 사람 대할 줄도 더럽게 모르면서. 뭐, 나도 그리 커뮤니케이션이 유연한 축은 못 되지만서도….

 

 그런 생각을 하던 린의 뇌리에 스쳐간 것은 한 친구의 얼굴이었다. 자신만큼이나 우즈키를 아끼고, 적어도 자신보다는 훨씬 교류 능력의 방면에서 뛰어난 뉴 제너레이션의 리더의 얼굴. 린이 상무에게 이렇게 말한 것은 거의 반쯤 의식의 흐름이었다.

 

 "상무님. 별 기대 말고 들어 줬으면 하는데. 이런 거 아주 특기인 친구가 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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