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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들끼리 노닥거리는 이야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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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1-31, 2017 22:18에 작성됨.

'벌써 2월인가.'

추운 겨울날. 3월의 꽃샘추위까지 생각해보면, 실질적으로 4월을 넘어서기 전까지는 계속 겨울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리라.

주변에는 촬영 장비를 들고 있는 스탭들이 포진해 있고, 지나가는 구경꾼들로 분주하다.

그렇다. 지금 그는 거리 한복판. 그 중에서도 광장에 서 있다. 지금 촬영되는 프로그램의 주요 출연진의 한 사람으로서 또 한 사람의 출연자를 기다리고 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보라. 저 멀리서 다가오는 소녀를. 빵모자를 쓰고 있는 그녀가 헐레벌떡 달려오고 있다.

 

"어이, 바닥이 얼어서 위험하다고? 조심──."
"꺄아아앗?!" 돈가라갓샹

 

아니나 다를까. 언제나처럼 바닥에 넘어져 버린다. 인터뷰에서도 하루에 한 번씩 바닥에 넘어진다고 하지만 역시 실제로 보면 무언가 박력이 있다.

 

"아야야야...아파라."
"그 틈 사이에서도 속옷 노출은 없다, 라...역시 프로구만."
"엣헴! 아이돌이니까요! 그 부분에서는 철저하답니다!"
"됬으니까. 손 잡고 일어나기나 해."

 

손을 내밀자 그녀는 부드럽게 미소지으며 그의 손을 잡는다. 그대로 힘을 주어 일으켜 세우니, 카메라의 붉은 빛이 들어오는 게 보인다.

 

달려와서 넘어지는 순간부터 찍기 시작한 건가. 방금 전의 행동으로 시청률이 소폭 상승했을 거다. 주변의 구경꾼들도 환호성을 내지르고. 한두 번 있는 일도 아니지만, 이런 작은 일 하나에도 설레이는게 시청자들의 마음이라는 거니까.

 

"고마워요."
"다음부터는 주의하라고. 내가 이 말을 대체 몇 번이나 더 해야 하는 거지?"
"음...앞으로 100번은 더?"
"200회 까지? 너도 방송 욕심이 넘치는 구만."
"그야, 이건 저희들의 고정 프로인걸요? 그만큼 길게 늘려가지 않으면 안 되니까요!"

 

욕심이 넘친다고 할까. 프로답다고나 할까. 그 향상심에는 입가가 누그러진다.

 

해당 아이돌의 이름이나 유닛의 이름을 내건 프로그램을 고정 진행하고 있다는 건 성공했다는 증거 중 하나. 당장 우리 프로덕션에서만 해도, 모후모후엔이 진행하는 '모후모후 킹덤'이라는 게 존재한다.

 

"그럼, 오늘도 아마아마 쿠킹! 힘내도록 해요, 토우마 군."
"그러도록 하지......하루카."
"웃...갑작스러운 이름 부르기라니! 놀랐다구요?"

 

그는 쑥스러움에 볼을 살짝 붉히며 시선을 돌린다.

 

"그거야...그쪽은 계속 이름으로 부르는데, 나만 성으로 부르니까 말이지. 100회쯤 되었으면, 슬슬 이름으로 불러도 괜찮지 않겠어? 불화설 같은 거 터져나와도 곤란하잖아."
"후후후, 그러네요."

 

스윽, 하고 손을 내밀어오는 하루카. 토우마는 얼떨떨하게 그 손을 내려다본다.

 

"뭐하는 거에요. 손 잡아 달라는 거잖아요."
"주머니에 넣고 다니면 안 되는 거야?"
"사람의 체온보다 더 따뜻한 건 지금 없으니까요. 핫팩이라도 가지고 계신가요?"
"참나...스탭들이나 주변에서 구경하고 있는 팬들도 추울 텐데, 내가 그런 호사를 누릴 수 있겠어? 괜히 눈치 보여서 밥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할 걸?"

 

하루카가 작게 미소짓는다.

 

"토우마 군은 츤데레이니까요."
"시끄럽구만."

 

툴툴거리면서도, 토우마는 그 손을 맞잡는다.

 

"가자...오늘 장 보러."
"네! PD님! 오늘 메뉴는 뭔가요?"

 

PD는 연어 요리라고 말한다.

 

"아일랜드 풍의 겨울 연어 요리인가요~. 이거 참, 또 독특한 게..."
"슬슬 소재 떨어져가고 있는 거 아닙니까, PD님. 아, 예예. 더한 소재 나오기를 기대하겠습니다."

 

장난스럽게 PD와 이야기를 나눈다. 이것도 벌써 100회 째를 맞이한 만큼, 서로 얼굴 모르고, 이름 모르며, 친하지 않은 스탭들은 없다.

 

"아일랜드에 연어가 넘친다고 했던가."
"정말로 아일랜드 산 연어가 시중에 나와 있으면 좋겠네요."

 

가벼운 발걸음으로 나아가는 일행들.

 

"그보다 아일랜드 풍 연어 요리면 볼까. 찌개 요리? 아니면 구워먹는 건가?"
"구워먹는 거 아닐까요? 옛날부터 이어져 내려온 거라면, 아무래도 향신료가 없었던 시절부터 계속된 것일 테니까요."
"소금에 푹 절여두어야 겠구만."
"프라이팬에 간장 두르고 굽는 건?"
"그것도 좋네."

 

요리가 취미이자 특기인 두 사람이 요리 프로그램에 공동 출연하는 건 필연이었겠지.

 

자연스럽게 이어져나가는 대화는 소소하지만 평온한 일상의 한 모습을 담아내고 있다. 작위적인 대본 없이, 오로지 두 사람과 PD가 이끌어 나가는 프로그램으로 튼튼한 지지기반을 가진 아마아마 쿠킹은, 훗날 장수 프로그램의 하나로서 그 이름을 달아놓을 것이다.

 

"그래서, 오늘 우리들의 연어 요리를 먹을 게스트는 누구입니까?"
"그건 말해주지 않겠죠. 원래 그런 건 비밀로 해두는 게 더 극적인 반응으로 터져나올 테고."
"너는 뭐 출연하기를 바라는 게스트 없어?"
"그런 식으로 따진다면, 당연히 저희 765 올스타즈의 후배들을 부르겠죠. 먹을 거 좋아하는 애들은 많으니까."
"팔이 안으로 굽는 게 아니라?"
"에이~. 토우마 군도 참. 토우마 군도 부른다면, 저랑 똑같이 본인 소속사의 아이돌 데리고 나오길 바라잖아요."

 

가식 없이 솔직하고 담백. 이 프로그램의 인기 요소 중 하나이다. 호불호가 갈릴 수는 있겠으나, 깔끔하다는 측면에서 호평이 따라온다.

 

"결국, 너는 누가 나오길 바라는 건데?"
"음...기왕 나오기를 바란다면, 아리사짱이라고 할까요."
"그 호로관 메뚜기?"
"...아리사짱이 들으면 울 거에요."

 

마츠다 아리사는 아마미 하루카를 추앙하며, 아이돌을 좋아하는 아이돌. 즉, 덕업일치의 화신이며 아마미 라인의 한 사람이다.

 

"그런 식으로 따지면, 토우마 군은 누가 나오기를 바라는데요?"
"보통은 쇼타나 시로를 부르겠지만...이번만큼은 카논을 부르도록 할까. 그 녀석, 생선 가시 발라내는 일에 투정 부리는 경우가 많으니까 말이지."
"그 아이도 토우마 군을 엄~청 좋아하죠?"
"물론! 내 팬이라고!"
"결국 토우마 군이나, 저나 오십보백보네요."
"그러니까 같은 프로그램을 찍고 있는 거겠지."

 

그리고, 두 사람은 인근의 매장에 들렀다.

 

*

 

가상 결혼 프로그램이라는 게 존재하면, 당연히 가상 연애를 다루는 프로그램도 있는 법.

 

"많이 기다렸어? 유메코."
"딱히. 아직 촬영 시작도 안 했고."
"그런가. 다행이네. 기다리게 했나 싶어서 걱정했어."

 

아키즈키 료가 다행이라는 듯 미소 지으면, 유메코의 얼굴이 살짝 붉어진다.

 

"...따, 딱히 상관없지 않으려나? 남자친구를 먼저 기다리는 여자친구라는 걸로, 시청자들이 더 좋아할지도 모르니까."

 

보통 데이트를 하면 남자가 먼저 나가서 기다리는게 일반적이라는 인식이 만연하니, 제법 신선함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것도 나쁘지는 않겠지만, 역시 기다리게 하는 건 싫으니까."
"...흐응. 제법 여자를 기쁘게 할 줄 알잖아? 여장 아이돌이 아니라 남성 아이돌로서 인기를 좀 끄니 슬슬 여자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알게 된 모양이네?"
"오해를 불러일으킬 표현은 자제해 줘. 일부러 그러는 건 아니라고."

 

능글맞은 표정으로 속내를 살짝 떠보자 료는 쓴웃음을 지으며 물러난다.

 

"나한테 있어 유메코는 특별한 사람이니까."
"...?!"

 

갑작스러운 기습과도 같은 직설적인 말에 유메코의 얼굴이 확 달아오른다.

 

"그, 그건...무슨 의미야?"
"유메코는 내가 이 바닥에 처음 발을 들인 때부터 알고 지내온 라이벌이고 친구이잖아? 언제나 대등하게. 누가 앞서가거나 뒤쳐지거나 기다리는 일 같은 건 없으면 좋겠다는 게 내 솔직한 바램이야."
"......그런가."

 

유메코는 한숨을 내쉰다. 그의 둔감함에 대해서는 이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바라는 것과 방향성이 조금 다르지만, 자신을 특별하게 여기고 있다는 사실에 입꼬리가 자연스레 말려올라가는 걸 필사적을 막는다.

 

'침착하자 유메코. 료의 앞에서 쉬운 여자라고 인식되면 안 되니까!'

 

크흠, 하고 헛기침을 한 번 하며 정신을 다잡는 유메코. 그러나, 료의 별 생각 없는 추가타가 연달아 들어온다.

 

"지금 시간이면 하루카 선배나 토우마 씨도 아마아마 쿠킹을 찍고 있을 것 같은데. 그쪽에 연락해서 출연해 보는 건 어떨까?"
"그건...더블 데이트 아니야?"
"응? 뭐, 그렇게 되네. 토우마 씨나 하루카 선배도 제법 좋은 그림이 된다고 호평이 있으니까. 유메코는 어떻게 생각해?"

 

유메코는 잠시 망설인다. 아마아마 쿠킹에 참가하면 맛있는 식사를 대접받을 수 있겠지. 다만, 그래서는 료와의 둘만의 시간을 가지는 게 어려울 것이다. 애시당초, 이것도 가상 연애 프로그램인지라 주변에 스탭들이 가득하니 둘 만의 시간이라는 건 꽤 먼 이야기지만.

 

"굳이...그 두 사람을 찾아갈 필요가 있어?"
"유메코의 손요리도 좋지만, 가끔씩은 거창한 레스토랑이나 분위기 좋은 식당보다는 그쪽에서 친한 사람들끼리 떠들며 그 시간을 즐기는 것도 좋다고 생각해."
"...으음, 료가 바란다면, 뭐. 그렇게 할까."

 

못 이기는 척 조금 넘어가주는 유메코. 료는 PD에서 허락을 받고 아마가세 쪽에 연락을 넣었으나,

 

"유감스럽게도, 오늘은 안 되겠네. 이미 게스트가 잡혀있다는 모양이야."
"그런가...아쉽네. 그럼, 다음에 자리가 남기를 바라도록 할까."
"대략 한달 후 즈음이면 가능할 것 같네. 그때까지 기다려 주겠어?"
"...네가 내 수제 요리로 참아줄 수 있다면."

 

부끄러움을 숨기기 위해 고개를 숙이고 작게 중얼거리는 유메코. 료의 눈동자가 휘둥그레 지다가, 곧 부드럽게 웃는다.

 

"응, 그건 그거대로 기대되는 이야기네. 가끔씩은, 나도 직접 요리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데 말이지."

"다음 기회를 노리도록 해. 예를 들어, 아마아마 쿠킹에 출연했을 때─라든가?"
"그럼 평소에도 열심히 연습해둬야 겠어. 그 두 사람, 요리에 한해서는 엄청나게 엄격하니까."

 

유메코는 슬쩍 주변을 돌아본 뒤, 최대한 자연스럽게 말을 건넨다.

 

"네 수제요리를 제일 먼저 맛보는 사람은 나...인걸로. 괜찮겠지?"

"당연하지. 유메코를 위해서 하는 거니까."
"......너의 그 솔직함은 너무 날카롭다니까."
"어, 어라? 유메코?"

 

양손으로 얼굴을 감싼 유메코를 보며 당혹해하는 료. 그렇지만, 그녀의 입가에는, 작은 기쁨의 미소가 걸려 있었다.

ㅡㅡㅡㅡㅡㅡ.

 

죽창은 셀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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