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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Petite Princes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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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1-28, 2017 12:07에 작성됨.

대도시의 여름은, 미어터질 듯이 모여있는 사람과 높다란 빌딩들만큼의 척도만큼 덥고 끈적거린다.

발을 한 번 잘못 놀리면 자신도 모르는 새 강렬한 태양의 직사광선과 건물에서 반사되는 반사광이 합쳐진 이중광선 아래 놓이게 되고, 그 댓가는 마치 햇빛을 받으면 몸이 가루가 되어버리는 좀비물의 좀비들처럼 타는 듯한 감각을 느끼며 온 몸의 온도가 급격히 올라가 버린다.

그런 여름의 대도시 안에서, 차가운 얼음궁전의 갑갑함을 뚫고 잠시 점심식사를 하러온 나의 시선을 사로잡는 한 여자아이.

긴 흑발이 잘 어울리는, 그리고 손에 작은 태블릿을 들고 있는 여자아이는 꽤나 기분이 좋은지 발랄한 표정을 짓고는 거의 붙어있는 듯한 두 건물의 그림자 사이를 폴짝폴짝 뛰어다니고 있다.

그녀의 근처에는 혹여나 그녀를 잃어버릴까 걱정이 되는지, 아버지처럼 보이는 정장을 입은 커다란 사내가 여자아이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는다.

저 쪽도 점심시간이라 잠시 짬을 낸 것일까, 나는 원초적인 궁금증으로 그들을 쳐다보다 어느새 시선을 여자아이에게 빼앗겨 버린다..

 

그런 것도 모르고 내가 마치 무의식 속의 의식처럼 여자아이를 쳐다보다 오늘은 또 한층 후덥지근한 날씨에 나도 모르게 꽤나 덥겠는걸-이란 소리를 모래가 가득찬 내 입에서부터 내뱉는다.

꽤나 중얼거리는 듯한 목소리였지만, 내 목소리가 들렸는지 정장을 입은 사내가 빠른 속도로 벌떡 일어나 나에게로 다가온다.

천천히 나에게로 다가오는 그의 몸집은 사람의 것이 맞는건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커다랗고 까맣다. 

난감하네,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천천히 다가오는 그 사람의 얼굴을 쳐다본다.

나와 시선이 마주치자 정장을 입은 사내가 발걸음을 우뚝 멈추고는 나의 얼굴을 유심히 쳐다본다.

갑자기 멈춘 그의 발걸음에 내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자 그가 천천히 정장 안에 오른손을 집어넣는다.

그의 움직임에 내가 조금은 긴장한 표정을 지으며 그의 손에 시선을 주자 그가 정장 안에서 새로운 아이돌을 홍보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전단지를 나에게 건네며 입을 연다.

 

"346 프로덕션의 타케우치라고 합니다. 저희 아이돌에게 관심이 있으시다면 부디 응원을 부탁드립니다."

 

뭐야, 체구와는 어울리지 않게 꽤나 정중한 사람이네. 괜히 긴장했어.

나는 긴장됐던 몸이 한꺼번에 풀리는 듯한 기묘한 느낌을 받으며 그가 내민 전단지를 받는다.

전단지에는 타치바나 아리스라는, 일본풍의 성씨에는 어울리지 않는 이름이 적혀있었다.

타치바나 아리스라, 저기 저 여자아이를 말하는 것이겠지.

내가 시선을 천천히 옮겨 여자아이를 쳐다보자 그녀는 내 시선을 눈치챘는지 조금 움찔하며 정장을 입은 사내 쪽으로 다가간다.

정장을 입은 사내는 여자아이의 태도에 조금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천천히 입을 열어 그녀를 달랜다.

 

"타치바나 양, 이 분은 당신의 팬이 되실 수도 있는 분입니다만..."

 

"아, 아직은 조금 거부감이 있달까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귀여운 여자아이는 마치 나에게 잡히지 않으려는 듯이 정장을 입은 사내의 옷깃을 잡고 나에게서 가까워지지 않는다.

내가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남자를 쳐다보자 그가 더더욱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여자아이의 정수리를 쳐다본다.

쳐다본 것이 얼굴이 아닌 정수리.

그 모습이 왠지 웃기다고 생각한 내가 입가에 조금 미소를 보이자 정장을 입은 사내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본다.

내가 미안하다고 사과하고는 여자아이, 아니, 아리스 쨩에게 은근한 말투로 악수를 청한다.

아리스 쨩이 조금 불안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다 이내 결심을 했는지 더듬거리며 손을 뻗어 나의 손을 잡는다.

보드랍다. 그 말 밖에는 표현할 방법이 없는 따스한 푹신푹신함.

내가 미소를 지으며 영어식 표현대로 몇 번 맞잡은 손을 아래위로 흔든 다음 놓자 아리스 쨩의 표정이 조금은 풀어져 있다.

 

다행이다. 이 아이에게 미움받지 않는거구나.

 

"감사합니다. 타치바나 양, 믿지 못하는 사람 외에는 조금 거부반응이 있는 것 같기에..."

 

내가 괜히 사과를 하는 듯한 정장의 사내...그래, 이름이 타케우치라고 했던가. 어쨌든 그의 말에 괜찮다는 듯이 손을 내젓고는 미소를 짓는다.

아리스 쨩은 내 미소를 보고는 이제 밝은 미소를 지어보인다.

역시 아리스 쨩은, 웃고 있는게 귀여워.

 

"타치바나 양?"

 

"네, 무슨 일이시죠?"

 

"이제 슬슬 녹음실로 가야할 시간입니다."

 

"아, 벌써 그런 시간인가요?"

 

아리스 쨩이 타케우치의 말에 이제와서 새삼 어른스러운 말투를 흉내내며 말하고는 태블릿을 이리저리 조작해 스케줄을 확인한다.

어린아이가 어른스러운 말투를 따라해 어른이 되고 싶어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행위다.

뭐, 어른인 내가 그런 어린아이를 보며 귀여워하는 것도 당연한 행위이겠지.

그리고 그 어린아이를 귀여워해주며 지켜봐주는 것도 어른의 당연한 의무.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조금은 아쉽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는 아리스 쨩을 쳐다본다.

언젠가는 또 만날 날이 있겠지. 내가 옅은 미소를 지으며 그렇게 말하자 아리스 쨩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그래요, 언젠가는 또 볼 수 있을 거예요!"

 

아리스 쨩의 미소가 내 건조한 마음에 단비를 내린다.

천천히 그녀의 미소가 마음속을 적셔간다.

그래, 마치 사막에 불시착한 비행사가 어린 왕자를 만나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두레박으로 우물의 물을 퍼서 마시는 것처럼.

왠지 모르게 축축한 감정이 마음속을 채운다. 어라, 아리스 쨩과 만나서 슬퍼서였던가?

아니, 아니다. 나는 그녀를 만났음에 감사해하고 있는 것이다.

 

"괘, 괜찮아요? 울고 계신거 같은데..."

 

아리스 쨩이 내 표정을 보고는 어쩔 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조금 허둥지둥해한다.

아아, 아리스 쨩은 너무나 귀여워. 나같은 녀석을 위해 이렇게까지 신경을 써주고.

내가 왠지 모르게 눈에 차 있는 글썽임을 손가락으로 지우고는 밝은 미소를 짓는다.

내 표정을 본 아리스 쨩이 이제야 안심이 된다는 듯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타케우치의 손을 잡는다. 그래, 이제는 헤어질 시간.

 

"그럼, 앞으로 타치바나 아리스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당신은 제 두 번째 팬이니까, 저를 잊으시면 안 돼요!"

 

이런 귀여운 아이를 잊을리가 있나.

나는 이 말은 내 마음 속으로만 삼킨 채로 밝은 미소를 지은 채로 타케우치의 손을 잡고 발걸음을 옮기는 아리스 쨩에게 손을 흔들어 작별 인사를 한다.

아리스 쨩과 타케우치의 모습이 사라지자 나는 천천히 얼굴에 띄운 밝은 미소를 지우고는 사막같이 메마른 표정을 얼굴에 띄운다.

이 찌는 듯한 강철 사막에 살려면 표정까지도 메말라야 한다는 듯이, 비행기를 고쳐 하늘로 날아가기 위해서는 아직도 많은 시간을 이 곳에서 지내야 한다는 듯이.

하지만 내게는 어린 공주가 있다. 마음 속에서 절대로 잊어버리지 않고, 떠올릴 때마다 조금은 얼굴 근육을 느슨하게 해 주는, 그런 존재가.

머릿속으로 아리스 쨩을 생각하며 조금 얼굴 근육을 느슨하게 푼다. 오늘은 점심을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르다.

천천히, 아리스 쨩과 타케우치가 사라진 반대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기며 시간을 확인한다. 점심시간이 거의 끝날 시간이 다가온다.

 

나는 오늘도 이 한여름의 대도시에서 살아간다.

다시 어린 공주를 만날 때까지,

그녀의 미소를 만날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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