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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두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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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1-25, 2017 00:14에 작성됨.

 이른 아침.

 희미한 빛 아래 수많은 사람이 오간다.

 

 오토나시 코토리는 열쇠로 문을 열고 어둑한 사무소에 들어섰다. 서늘한 공기에 몸을 떨며 난로를 켠 후, 다른 사람이 오기 전까지 사무소 정리와 자잘한 업무를 한다. 그녀가 출근하고 삼십 분쯤 지나면 하나 둘 다른 사람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정장을 갖춰 입은 남성이 사무소에 들어와 소파에 앉았다. 그는 그녀와 간단히 인사를 나누곤 이내 가방에서 종이 몇 장을 꺼내 읽기 시작했다. 종이가 펄럭거리는 소리와 연필의 사각거리는 소리만이 공간을 채우고 있을 때, 문이 열리며 두 여성이 사무소로 들어왔다. 간단히 인사를 나누고 코토리는 하던 일을 계속했다.

  

 대충 중요한 건 끝마쳤을 즈음, 어느새 사무소엔 사람이 부쩍 늘어나 있었다. 잠시 쉴 겸 기지개를 켜자 여자아이 한 명이 차를 가져다 주었다. 감사인사를 하고 들어 한 모금 마시자 씁쓸한 기운이 입 속을 채웠다. 지쳤던 머릿속이 조금이나마 진정되는 기분이 든다. 힘을 풀고 잠시 쉬고 있었더니 쌍둥이들이 농담을 던져온다. 코토리는 피식 웃으며 농담을 받아주었다. 재미있었던 모양인지, 대답을 들은 쌍둥이들은 깔깔 웃어대었다. 코토리는 수다 떠는 아이들 사이에 섞여 잡다한 얘기에 동참했다. 그러다가 엄격한 동료에게 핀잔을 듣기도 했지만, 꽤 즐거운 시간이 지나갔다.

 

 해가 빛을 본격적으로 뿌리기 시작했다. 사무소도 하나 둘 자리가 비어갔다. 오후가 되자 사무소는 자고 있는 아이 한 명의 고른 숨소리와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를 제외하면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게 되어 있었다. 코토리는 시계를 보고 아이를 깨웠다. 아이는 눈을 비비며 일어나 세수를 하고 방금 돌아온 남성과 함께 사무소를 떴다.

 코토리는 찬장에서 컵라면을 꺼냈다. 물을 붓고 3분을 기다린 뒤, 후루룩 면을 먹었다. 간단한 점심 식사가 끝났다. 그녀가 다시 책상 앞에 앉아 키보드를 두드린다. 고요 속에 키보드가 딸각거리는 소리가 퍼져나갔다.

 

 의자에서 일어나 허리를 폈다. 시간이 꽤 지난 모양인지, 이미 밖은 어둑어둑했다. 소파에 앉아 TV를 켰다. 예능 프로그램이다. 진행자는 그녀도 잘 아는, 잘 넘어지곤 하는 귀여운 아이였다. 코토리는 웃었다. 그러다 무언가 생각난 것인지 자리에서 일어나 서랍을 뒤적거렸다. 잠시 후 그녀의 손에는 카메라가 들려 있었다. 코토리는 카메라로 TV 화면을 찍었다. 옛날 카메라라 화질은 썩 좋지 않았지만, 그녀의 입에는 만족스러운 미소가 그려져 있었다. 그녀가 앨범에 추가할 사진이 한 장 더 늘었다.

 

 해가 완전히 졌다. 코토리는 서류를 정리했다. 오늘 할 일은 다 끝냈으니, 이만 청소하고 퇴근하면 끝이다. 책상 위의 먼지를 수건으로 닦았다. 그러던 중, 액자 하나가 코토리의 눈에 띄었다. 그녀는 액자를 들어 안에 든 사진을 보고는 풋 웃었다.

 사무소의 모두가 함께 찍은 사진이었다. 아직 한가하고 일이 없던 시절, 다같이 앞으로 나아가자고 결의를 다지는 뜻으로 찍었던 사진. 시기상으로는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도, 체감상으로는 이미 먼 일인 것처럼 느껴졌다. 그때의 소란스럽던 사무소는 이제 비어있는 것이 더 익숙한 풍경이 되었다.

 

 코토리는 고개를 젓고 액자를 다시 책상에 올려놓았다. 기뻐해야 할 일이다. 그만큼 그녀들의 빛이 세상에 드러나게 됐다는 것이니까. 그래도 역시, 조금은 쓸쓸했다.

 

 시계가 어느덧 열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코토리는 짐과 열쇠를 챙겼다. 이제 퇴근하면 하루가 끝이 난다. 코토리는 문을 잠그고 계단을 내려왔다. 어둠이 깔린 거리에 가로등이 빛났다.

 걸음을 떼려던 코토리는 저 멀리 보이는 인영을 눈치챘다. 실루엣이 익숙했다. 아니나 다를까, 달려오고 있는 것은 765 프로덕션에 단 두 명밖에 없는 남성 중 한 사람이었다. 전속력으로 달린 것인지 그녀의 앞에서 숨을 고르는 프로듀서를 보고, 코토리는 살짝 웃었다.

 

「어쩐 일이세요, 프로듀서 씨? 퇴근 시간인데 여기까지 달려오시고」

「오랜만에, 코토리 씨와, 한잔하고, 싶어서요. 헥」

 

 한껏 지친 숨을 내뱉으면서 하는 말을 듣고 코토리는 결국 크게 웃고 말았다. 그녀의 맑은 웃음소리가 어두운 거리로 퍼져나갔다.

 

「확실히 오랜만이네요. 좋아요, 가자구요」

 

 코토리와 프로듀서는 나란히 서서 걸었다. 그래, 사무소가 조용하면 뭐 어떤가. 그 속의 사람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코가 삐뚤어질 때까지 마셔봅시다!」

「내일도 일이 있으니까, 부디 자제해주세요」

 

 그날따라 환한 달빛을 받으며, 두 사람은 길 너머로 모습을 감췄다.

 

* * *

 

「눈이 오네요」

 

 창 밖을 본 코토리가 먼저 꺼낸 말이었다. 서류를 몇 장 살펴보고 있던 프로듀서가 고개를 들어 창문 밖을 내다봤다.

 

「그렇군요. 눈이네요」

「눈, 좋아하세요?」

「예에. 꽤 많이」

 

 코토리는 창문에서 시선을 떼지 않다가, 잠시 후 말했다.

 

「저도 좋아해요. 꽤 많이」

「우연이군요」

「그러게요」

 

 잠시 옅은 웃음소리가 사무소 안을 채웠다. 먼저 말문을 튼 것은 코토리였다.

 

「제가 예전에 아이돌이었던 건 아시죠?」

「네, 그랬죠」

「제가 무명이던 시절에, 그러니까 갓 데뷔한 신인이었을 때 일이에요」

 

 코토리는 편지 한 장을 서랍에서 꺼냈다.

 

「눈 내리는 겨울이었어요, 제 미니 라이브가 잡힌 날. 겨울이라 엄청 추운 데다가, 눈 때문에 미끄럽기까지 해서 야외 무대는 경쟁자가 적었거든요. 그걸 사장님이 얻어다 주셨어요. 정말 기뻤죠」

 

 그녀는 잠시 말을 끊었다가 계속 이었다.

 

「관객은 적었어요. 겨울에 야외 라이브는 보러 오는 사람이 얼마 없거든요. 춥기도 하고요」

「그래도 열심히 했어요. 노래하고, 춤추고」

「끝나고 나서도 조마조마했죠. 혹시 실수하진 않았을까, 제대로 어필했을까. 다음 날에 사무소에 와서도 긴장하고 있었는데, 사장님이 편지 한 장을 가지고 오신 거예요」

「팬레터였어요. 제 팬이 보내준」

 

 프로듀서와 코토리의 시선이 책상 위의 편지에 겹쳐졌다. 코토리가 편지를 집었다.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요. 종이 한 장에 쓰인 응원과 칭찬, 그리고 감사 인사가. 덕분에 아이돌 활동에 용기를 가지고 임할 수 있었죠. ...별 성과도 못 내고 은퇴하게 됐지만요. 아하하」

 

 코토리가 힘 빠진 목소리로 웃었다. 그녀는 편지를 다시 서랍에 넣었다.

 

「그래서 전, 눈 오는 날이 좋아요. 그때의 기쁨이 되살아나는 것 같아서」

「그랬군요」

 

 코토리는 창틀에 턱을 괴었다. 그녀의 시선이 창밖에 내리는 눈으로 향했다.

 

「...갑자기 궁금해지네요. 그 팬 분은 지금쯤 어디서 뭘 하고 계실까」

「글쎄요」

「얼굴이라도 한번 뵙고 싶었는데」

 

 코토리가 웃었다. 프로듀서는 픽 웃고는 책상 위로 시선을 돌렸다. 조금 시간이 지났을 때, 프로듀서가 작게 중얼거렸다.

 

「...어쩌면, 어딘가에서 프로듀서를 하고 있을지도 모르죠」

「네?」

「아뇨. 혼잣말입니다」

「그런가요」

 

 코토리는 눈에서 시선을 떼고 다시 앉았다. 바깥에 내리는 눈을 배경으로, 두 사람은 다시 하던 일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

 

코토리 씨의 비중이 꽤 높은 단편 두 개입니다. 지적은 언제나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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