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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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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1-21, 2017 15:27에 작성됨.

눈을 아플 정도로 찔러오는 빛에, 치하야는 몸을 뒤척였다. 그 순간 온 몸을 얻어맞은 듯이 쑤셔오는 느낌과, 발 끝부터 머리 끝까지 장악하고 있는 열에 우우, 하고 신음을 내뱉는다. 온 몸이 뜨거울 정도로 불타고 있는데 몸만은 으슬으슬 춥다. 목도 간질간질, 먼지가 들어간 것 같다. 눈을 뜨자마자 밀려오는 그 감각들에 치하야는 인상을 찌푸리며 생각했다.
아, 나, 결국 감기인가.

어제 늦게까지 그런 옷차림으로 있었으니 감기에 걸릴 법 하지만, 이렇게 속으로 중얼거린다. 작게 기침하며 떠지지 않는 눈을 억지로 뜬다. 손을 뻗어 옆에 놓아뒀던 휴대폰을 잡아 시간을 확인한다. 그리고 인상을 찌푸린다.
안돼, 일어나지 않으면 늦을지도 몰라. 하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천근이라도 되는 양 무거운 몸과 끓어오르는 열, 반대로 찾아오는 오한과 다가오는 시간 사이에서 고민하던 치하야의 눈이 자신도 모르게 스르륵 감겼다.
집안은 쓸쓸할 정도로 조용했다.

 

 

 

 

 

 

"...역시 많이 화났으려나...?"


시간이 지나도 사무소에 오지 않는 '그녀'에, 초조하게 시계를 바라보았다가 전화를 바라본 하루카는, 전화 옆의 팩스에 눈길이 닿았다. 팩스 옆에는 새하얀 종이 몇 장이 쌓여있었다.


"...그러고보면..."


그 종이들을 멍하니 바라보던 하루카는, 팩스 옆으로 걸어가 종이를 뒤적이기 시작했다. 그러고보면 치하야가 정식 채용된 이틀 뒤엔가, 분명히 팩스가 왔었다. 뒤늦게 치하야의 서류가 도착했던 것이다. 아마 누군가가 버리지만 않았어도 이 종이들 사이에 끼어있을 텐데─
그렇게 종이들을 뒤적거리던 하루카의 손이 멈췄다.


"버리진 않았구나. 다행이다."


사이에서 나온 치하야의 사진이 복사된 종이를 보며 하루카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띠리리리리리, 시끄럽게 집안을 울려대는 소리에 치하야는 인상을 찌푸렸다.
떨어지지 않는 눈을 억지로 뜬다. 이건 전화벨 소리다. 누구지, 이런 시간에. 그런 생각을 하며 핸드폰을 바라보았다가 한숨을 내쉰다. 이건 핸드폰 소리가 아니군. 집에 걸려온 전화다. 도중에 끊겼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전화는 끊기지 않고 계속 울려댔다. 그 소리에 다시금 인상을 찌푸린 치하야는 조금 뒤척이다가 침대에서 일어섰다.
일어서자마자 팽글, 세상이 돈다. 눈 앞이 어질어질하고 온 몸에 힘이 안 들어가는 사태에 벽을 짚고 겨우 몇 발자국 걸어가 전화를 받는다.


"여보세요..."
「...치하야쨩인가요?」


전화를 받고 말하자마자 잠시 뒤에 들리는 익숙한 듯한 목소리. 그 목소리에 치하야는 퍼뜩 정신이 들었다. 뭐야, 지금 몇시지? 깜짝 놀라 전화기에 표시된 디지털 시계를 내려다본다. 그리고 순간 온 몸에서 힘이 빠지는 것을 느꼈다.
1시 24분.
도착했어야 할 시간에서 벌써 3시간이 지난 상태다.


"...네에... 죄송합니다, 왜 시간이 이렇게..."
「저기, 감기야? 목소리가 엉망인데..」


그녀의 말에 수화기에서 입을 떼고선 흠, 하고 목을 가다듬어본다. 하지만 목소리는 그녀의 표현대로 여전히 '엉망'. 그 사실에 한숨을 푹 내쉬며 치하야는 다시 수화기를 들고 말했다.


"어쩌다보니..."
「어제 일 때문에 화나서 안 온 줄 알고...상태는 괜찮아?」
"가기 싫어서 안 간건 아닙니다만... 뭐..."


뭐라고 답해야하지.
괜찮냐고 물어보면 당연히 최악이다. 자느라 제시간에도 못일어났다. 아니, 잠들었다는 기억도 없다. 도중에 분명 자신은 일어났었는데. 그런 생각에 한숨을 내쉬던 치하야는 다시 콜록, 하고 작게 기침했다.


「으응, 괜찮다면... 치하야쨩이라면 벌써 나왔겠지.」
"멋대로 확정하지 마세요."
「치하야쨩의 성실함에 감탄하는 거야.」
"...아 예, 감사합니다."


아픈 상태에선 그 말투 자체가 짜증이 난다.
제발 부탁이니 할 말만 하고 끊어라, 라고 생각하며 치하야는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이라도 나갈테니까─ 그렇게 속으로 중얼거리던 치하야의 귓가에 전혀 예상치도 못했던 말이 들려왔다.


「아프면 나오지 말고 쉬어.」
"...네?"
「내 책임도 있으니까...프로듀서씨한테도 말해둘게. 집에 사람은 있지?」


그리고 하루카가 물어본 마지막 말에 치하야는 순간 집안을 돌아보았다.
적막한 집안.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다.

당연하다, 아무도 없으니까.


"......예. 있어요. 감사합니다, 아마미양. 그럼 오늘은 푹 쉬고 내일 나갈게요."
「응, 알았어. 그럼 내일 보자?」
"예."


하루카의 말에 단조롭게 대답하고 수화기를 내려놓은 치하야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머리가 아프다.
눈 앞이 어질어질하다.


"...괜찮아."


그렇게 중얼거린 치하야는 다시 침대 쪽으로 벽을 짚은 채 걸어갔다.
하루 푹 자면 나을거다.

혼자서도 괜찮다고 자신만만하게 말했으면 그 만큼은 해야지.
그렇게 자신에게 타이르며, 조금 서러워지는 것을 억누르고 치하야는 방으로 들어갔다. 아직도 자신의 체온이 가시지 않은 이불 속으로 기어든다. 조금 자고, 적당히 몸이 괜찮아지면 죽으로 끼니 때우고, 다시 자도록 하자. 그것만으로도 괜찮아 질 거야. 괜찮아지지 않으면 안돼─ 그렇게 자신에게 속삭이며 치하야는 눈을 감았다.

 

 

 

 

 

전화를 내려놓은 하루카는 잠시 전화기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집에 누군가가 있다고?


"...보통 아픈 사람이 나와서 전화를 받지는 않잖아?"


아무래도 치하야는 거짓말은 심각한 정도로 서투른 것 같다. 보통은 집에 다른 사람이 있는데도 일을 못 올 정도로 아픈 사람에게 전화를 받으라고 하진 않는다. 목소리만 들어도 꽤 심각한 감기인 것 같던데. 그렇게 생각하며 하루카는 계속 전화기를 바라보며 고민했다.


아직도 죄책감이 있다. 어쨌든 그녀의 감기는 자신 탓이다. 거기다가 집에 정말로 혼자라면, 누가 병원에 데려가 주기라도 하는가? 완전히 혼자 자기 자신을 돌볼 수 밖에 없단 말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한 손에 들고 있던 종이를 조금 구기던 하루카는 문득 눈에 와 닿은 대목에 시선을 고정했다.
이력서의 가족 사항.
어머니와 아버지. 둘 뿐.

─그리고 모두 비동거.

역시 거짓말이었다.


잠시 더 종이를 주시하던 하루카는 휙, 손에 들고 있던 종이를 던졌다. 그리고 옷걸이에 걸린 외투를 휙 낚아챘다.
밖엔 조금씩 눈이 오고 있었다.

 

 

 

 

 

 

잠이 들었던 치하야의 귓가에 시끄러운 벨소리가 울렸다. 또 전화인가하고 인상을 찌푸리며 일어난다. 그리고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던 치하야는 이게 전화소리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현관의 벨 소리다.


자신의 모습을 내려다보고 한숨을 내쉰다. 옷차림은 잠옷 그대로. 그것도 땀에 좀 젖어있다. 이걸 나가야하나. 이런 모습으로 나가긴 좀 그런데.
치하야는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아무래도 아무도 없는 걸로 알고 돌아가줬으면 했지만 딩동거리는 소리는 끊이지 않고 울렸다. 급한 일인가보지. 그럼 기왕 기다리는거 좀 더 기다리던가 해라, 하는 마음가짐으로 주섬주섬 대충 옷을 갈아입는다. 어떤 상태든 땀에 젖은 잠옷 상태보다야 평상복인 편이 낫다. 머리가 좀 엉망이었지만 빗질 할 기운도 없었기 때문에 대충 머리를 손으로만 빗은 치하야는 끊임없이 울리는 벨소리에 현관문쪽으로 불안정하지만 조금 빠른 걸음으로 걸어갔다.


"네네, 나가...흠, 요!"


도중에 목소리가 갈라져서 나온 바람에 잠시 목을 가다듬는다. 그래도 재촉하듯 울리는 벨소리에 신경질까지 나는 것을 느끼면서 치하야는 문을 조금 거칠게 열었다. 확, 소리가 날 정도로.


"예, 누구...! 어."
"우와, 문으로 사람을 칠 생각은 아니지, 치하야쨩?"


하지만 문을 열자마자 보인 흩날리는 눈과, 의외의 사람에 말을 하다 말고 멈춰버린다.
갑작스레 확 열린 문이었지만 재빠르게 뒤로 피한 건지, 현관 문에서 두어 발자국 떨어진 곳에 서 있는 소녀는 그렇게 말하곤 그녀 쪽으로 걸어왔다.
그리고 턱하니 손을 뻗어 치하야의 이마에 갖다대었다.


"자, 잠깐, 뭐하는 거예요?"
"열이 심한데, 이런 상태로 잘도 일어났네.."
"...옆집에서 신고 들어올 것 같이 초인종 눌러댄게 누군데...!!"
"평상복인걸 보니... 병원엔 안가본거야?"
"어? 아, 아니, 잠옷은 땀 때문에 젖어서..."
"...집에 '있는 사람'은?"
"네? 아, 그, 그건─"


쏟아져나오는 말들에 한 번도 제대로 대답을 못하다가, 마지막 질문엔 텀이 주어졌는데도 아무 대답을 하지 못한다. 눈만 깜빡이며 어쩔줄 모르는 치하야를 보고 한숨을 내쉰 하루카는 머리를 긁적이곤 말했다.


"치하야쨩, 거짓말도 좀 배우는 게 좋겠어. 보통 다른 사람이 있는 집에 전화 받는 것도, 현관에 나오는 것도 아픈 사람이 할 리 없잖아?"
"...그거 확인하러 온 건가요?"
"아, 그것만은 아니고~"
"그럼 뭐...아니, 잠깐, 윽....어디로 데려가는 건데요!?"


이 여자, 대체 뭐하러 온 걸까─ 손을 잡아 끌고 내려가는 하루카에 깜짝 놀라며 소리쳤다. 얼마 없는 힘으로 반항하려고 했을 땐 이미 하루카는 집 문을 닫고선 프로듀서의 차 뒷좌석에 그녀를 던지듯 태워놓은 뒤였다.


"자, 잠깐, 뭐하는...!"
"얌전히 있어, 병원엔 가봐야지!"
"아, 안 간다니까! 쓸데없이 신경쓰지 마요!!"
"뭐야, 치하야. 왜 그렇게 고집이야?"
"안 된다니까!!"


그리고 주변에 지나가는 사람이 보면 꽤 이상할 광경을 연출하며 티격태격댄다. 쉽게 수긍하지 않는 치하야의 모습에, 나원, 이라고 중얼거린 하루카는 치하야를 억지로 밀어넣고 문을 닫곤 뒷좌석 쪽의 차문을 잠궜다. 아픈 탓인지 몸에 전혀 힘이 들어가지 않아, 안 그래도 질 싸움에서 완벽하게 져버린 치하야는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근데, 대체 '안 간다'도 아니고 '안 된다'라는 건 뭐냐?"
"......"
"치하야쨩, 뭔가 말을 해줘. 정당한 이유면 출발하지 않을테니까."


그렇다고 보기엔 벌써 시동까지 다 걸었는데. 조용히 그렇게 투덜거린 치하야는 시선을 돌렸다. 그런 둘을 가만히 바라보고만 있자 그 시선이 거북스러워진 듯 치하야는 고개를 푹 숙이곤 말했다.


"생활비, 모자라게 되니까..."
"...응?"
"약값이랑 진료비가 얼마나 비싼데... 그렇게 되면 교통비도... 수도세랑 전기세에...식비..까지는 별로 먹는 거 신경쓰진 않지만..."


우물거리며 중얼거리듯 그렇게 말하는 치하야를 하루카는 멍하니 보고 있었다. 아니, 물론 이 나라의 교통비와 의약비가 비싸긴 합니다만.
그런 일로 그렇게 고뇌할 정도인가?


"치하야쨩, 16살이었지?"
"그런데 그렇게 집안일에 지친 아줌마 같은 고민을..."
"시, 시끄러워요!! 사정이 사정이니까...!"
"부모님은?"
"...연락하면 안되니까 이러고 있는겁니다만..."


머리에 열이 오르는 듯한 기분을 느끼며 치하야는 그렇게 대답했다. 그리고 치하야의 정확한 사정을 알 수 없는 하루카는 조금 그녀를 보다가 외투를 벗어 치하야에게 건내주었다.


"와, 어, 뭐, 뭐, 갑자기...!"
"얌전히 덮고 있어. 병원으로 바로 갈테니까."
"안된다니까 사람 말을 뭘로..."
"거 참, 내가 내줄테니까 가만히 좀 있어라."


지친다는듯 그렇게 화내며 내뱉곤 자신의 반박은 듣지도 않은채 곧장 차를 출발시키는 프로듀서를 치하야는 멍하니 바라보았다. 뭐라고 말 할 수도 없을 정도로 황당했으니까.
그리고 차가 순조로이 미끄러져 하얀 눈이 흘러내리는 거리로 빠져 나갔을 때 쯤 치하야가 물었다.


"...왜 내주는 거예요?"
"겨우 묻는게 그거냐? 네가 내 담당 아이돌이니까 낸다고 해두기로 할까. 관리를 못해준 내 잘못도 있으니. 감기탓에 일을 못하면 그것도 손해니까."
"그럼, 엣취! 음, 아마미양은 날 감기에 걸리게 만든 죄책감에 오신 거고?"
"꼭 그런 걸 직접 말해야겠나요 치하야쨩..?"
"날 화나게 만든 사람이."
"아~ 전화 목소리 만으로는 다 죽어가더니, 기운이 넘치네~"


하루카의 중얼거림에 치하야는 흥, 하고 내뱉고선 하루카의 외투를 목까지 끌어올리며 창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생각했다. 그러고보니 나, 외투도 못 입고 끌려 나왔구나. 옷도 머리도 엉망일텐데.


"...이 외투 집에 돌아갈 때까지 빌려주세요."
"응? 얼마든지. 어차피 차 타고 돌아갈테니까."


그리고 두 사람 사이에 더 이상 말은 오가지 않았다. 다른 이유는 아니었다. 치하야가 그대로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기 때문에.

 

 

 

 

 

하루카의 외투를 덮은 채 잠들었던 치하야를 깨워서 진료를 받게 하고, 약 처방전까지 받아다 약까지 모두 지어 돌아온 하루카와 프로듀서는 먼저 차에 가 있으라고 했던 치하야가 자리에 앉아서 내리기 전과 똑같은 모습으로 잠들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 헛웃음을 지었다.


"잘도 자는구만..."
"뭐, 그래도 귀엽지 않나요?"
"어이.."
"아, 치하야쨩 편히 있게 이번엔 조수석에 타서 갈게요."
"그러던지."


시동을 걸면서 차가 작게 진동하는데도, 치하야는 깨지 않았다. 뒤척이지도 않았다. 다만 죽은 듯 자고 있을 뿐. 그런 치하야를 힐끗 본 하루카는 쓱 시선을 내려 약 봉지를 바라보았다. 척 보기에도 많은 양의 약이 들어있다. 치하야 본인이 처방전을 받아 보고선 투덜거린 이유를 알 것 같다.
치하야가 잠든 차 안은 조용했다. 힐끗 돌아보면, 추운 것인가 몸을 조금 웅크리고 있다. 히터도 틀어놓은 상황에서 추울린 없지만. 오한 증상인 것이다.


외투가 조금 흘러 내려와 있는 것을 발견하고, 다시 끌어 올려주다가 슬그머니 뺨에 손을 갖다 대 본다. 아직도 뜨겁다. 놀랄 정도로.
그 상태에서 화내고 소리칠 만한 기운이 남아있었단 말이지. 그렇게 생각하다가 어쩌면 그나마 남아있던 기운을 자신 때문에 다 써서 지금 이렇게 숨도 쉬는 것인지 아닌지 분간이 안 갈 정도로 잠든게 아닐까 고민한다.


그러고보니, 뭔가 먹었다고 했던가?
그런 대화는 나누지 않았던 것 같다. 하루카는 치하야를 돌아다봤다. 여전히 변함없는 자세로 좌석에 완전히 파묻힌 채 외투를 덮고 잠들어있다. 음, 하고 잠시 고민하던 하루카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 상태에서 뭔가를 만들어 먹는다는 건... 무리겠지?"

 

 

 

 

 

프로듀서가 길을 조금 헤멜 뻔 하다가 겨우 무사히 치하야의 집에 도착한 후 하루카는 한숨을 내쉬었다. 하루카는 치하야를 깨우려 손을 뻗다가 멈칫했다.
몸을 조금 웅크린 채 차 시트에 기대어, 라기 보다는 힘없이 늘어져 잠든 모습을 뚫어져라 보다가 다시 이마에 손을 갖다 대본다. 역시나 놀랄 정도로 뜨겁다.


"정말 죽은듯이 자네..."
"진짜 죽은 건 아니겠지?"
"무슨 말씀을 하시는건가요!"


진짜로 자고 있는 건지 아니면 죽은 건지 의심이 갈 정도다. 한숨을 내쉬며 차의 시동을 끈 프로듀서는 나와선 뒷좌석의 문을 열고 잠든 치하야를 안아들었다.
축 늘어진 사람은 꽤 무겁다. 하지만 아무리 아파도 이 정도로 경계를 풀고 자다니, 조금 위험할 정도 아닌가?


"농담이야 농담. 그럼 치하야는 맡긴다? 집까지는 데려다주겠지만 나도 좀 바쁜 상태라서 말야."
"..일이 있으셨던가요?"
"너희들이 무명이라고 해서 나도 노는 건 아니거든..?"


프로듀서가 치하야를 데려오는 동안 먼저 올라간 하루카는 현관에서 잠시 눈을 깜빡인다. 그리고 프로듀서가 도착했을때, 일단 치하야가 신고 있던─ 정확힌 자신이 막 끌고 나간 바람에 갈아 신지도 못하고 나온 슬리퍼를 벗겨 현관에 떨어뜨리곤 자신도 신발을 벗는다.


"...아깐 제대로 못봤는데 이건.."
"흠흠, 이 이상은 소녀의 프라이버시 침해 같으니 난 이만 가볼게."
"아, 네! 감사했어요, 프로듀서씨."


엉망으로 흐트러진 이불 위에 던져진 잠옷과 휴대폰. 어떻게 봐도 지금 자고 있는 그녀가 오늘 무슨 일을 했는지에 대한 결과물이다. 어쨌든 집엔 그녀 혼자밖에 없는 것 같으니까. 역시 자신의 선택은 믿을 만하다, 라고 멋대로 납득한 하루카는 침대로 가 치하야를 바로 뉘운 뒤 자신의 외투를 벗겨내고 대신 이불을 덮어주었다.

적당한 책상같은게 보이지 않아 부엌에 봉투를 던져놓고 오던 하루카는 문득 시야에 들어온 치하야의 모습에 멈춰섰다.
식은 땀을 흘리고 있는 것 같다. 추운 듯 이불을 꽉 붙잡은 채 몸을 웅크리고 있지만, 방은 그렇게 춥지는 않았다. 뺨이 열로 인한 것인가 붉다.


"혼자서 아프다니, 하루카씨로서는 상상도 못할 정도로 서러운 일인걸...."

 

 

 

 

 

 

 

 

"..아, 일어났어, 치하야쨩?"
"....아마미양?"


얼마나 자고 일어났을까. 서서히 의식을 되찾자마자 눈 앞에 보이는 반가운 얼굴에 그렇게 묻는다. 자신을 바라보며 피식 웃은 하루카는 말했다.


"너무 잘 자고 있길래 안 깨웠는데. 배는 안 고파?"
"... 별로 식욕은..."
"음..그래도 일단은 먹어두는 편이 좋을거야. 죽 만들어뒀으니까 가져올게."


상냥하게 그렇게 말해주는 하루카를 멍하니 바라본다.


─나, 언제 집으로 돌아왔지?


멍한 머릿속에서 기억을 끄집어내봐도 기억이 없다. 갑자기 아마미양이 찾아와서, 자신을 멋대로 차에 실어서 병원에가서 진단을 받고 약은 프로듀서와 자신이 받아갈테니 먼저 차에 가 있으란 말과 함께 차키를 받아서 차에 가서 외투를 입은 채 잠들었는데.
그 뒤로는 전혀 기억이 없다.
아니, 오히려 집 밖으로 나갔다는 사실이 꿈은 아닐까 싶을 정도다.

아니면 지금도 꿈을 꾸고 있는 건 아닐까, 하고 멍한 머리로 그렇게 생각한다.
시간은 6시 30분. 정말 오늘은 하루 종일 잠만 자는구나.


"자, 뜨거우니까 천천히 먹어."
"..이렇게까지 안해줘도 되는데.."
"아~ 또 그런다! 괜한 말 말고 빨리 드세요~"
"..이상한 사람이라니까, 아마미양은."


치하야가 내민 그릇을 몸을 일으켜 받는다. 새하얀 색의 죽이 그릇 안에서 김을 내고 있었다.
별로 식욕은 없지만 우선 뭐라도 배를 체워두는게 좋다는 걸 잘 알기 때문에 말없이 수저를 들었다. 사실 별로 말할 기운도 없었다.

 

"약은 죽 다 먹은 다음에 먹자."
"약...꿈은 아닌게 맞구나."
"응?"
"좀 망연해서, 꿈이 아닐까 하고...아니면 이것도 꿈인가요."
"헤에, 꿈속의 치하야쨩은 그래도 비교적 얌전해서 좋네~"
"꿈에선 고통을 못느낀다는 데 한대 때려도 되겠습니까?"


하루카는 퉁명스럽게 그렇게 답하는 치하야를 계속 망연히 바라보다가 자신도 모르게 웃는다.


"자자~ 이제 그쯤 하고 얼른 먹자, 죽 다 식겠어."
"...알았어요."


아프다는 건 정말로 사람을 외롭게 만든다. 몸도 마음도 약해지니까.


"약이랑 먹고 한숨 더 자. 그래야 얼른 나을테니까."
"이제 별로 졸리진 않을 것 같은데..."
"얼른 나아야지. 아이돌이 감기로 앓아누워 있어서야 되겠어? 계속 옆에 있어줄테니까."


하지만 자신이 아플 때 걱정해주고 상냥하게 챙겨준다는 사람이 있다는, 어찌보면 당연한 사실에 한동안 느끼지 못한 가족애를 느낀 치하야는 왠지 모를 따뜻함에 자신조차 눈치채지 못할 작은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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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면 생각나는 감기라는 소재는 써먹기 좋을지도 ^호^

'감기에 걸렸다는 결과'만 중요시해서 걸리는 과정이 없긴해도(..)

근데도 결말은 또 생각이 안나서 예전에 쓴 내용을 좀 끌기도 했지만<

 

혹한기는 끝났지만요~ 원래는 금요일 점심때까지 했어야하지만

금요일 아침에 일어나보니 뜬금없이 폭설이라, 그냥 아침에 바로 종료되더군요 야호?

허나 돌아오자마자 바로 하늘에서 내리는 악마의 가루를,

주말에까지 치워야하는 디메리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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