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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스널리티 P 시리즈] 사기사와 후미카 < 파트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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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1-18, 2017 02:15에 작성됨.

 

 


 

10월 27일.

어쩐지 낯이 익은 날짜였습니다. 무슨 날이었더라? 기숙사의 로비에 걸려 있던 달력 앞에서 고개를 갸웃거리던 저를, 마유 씨의 목소리가 잡아 끌었습니다.

 

“후미카 씨? 슬슬 출발하지 않으면 지각이에요.”

“아……네, 죄송합니다…….”

 

저는 마지막으로 달력을 한번 바라보고는, 마유 씨의 뒤를 따라 기숙사를 나섰습니다.

10월 27일. 어쩐지 낯익은 날짜였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선물은 무엇인가요?’

 

그 질문을 처음 듣고 떠올린 것은, 어릴 적, 제가 처음으로 한자를 배우기 시작한 그 날, 숙부님께 처음으로 받은 책갈피였습니다. 아직도 간직하고 있는 그 책갈피는, 비록 지금은 약간 색이 바랬지만, 새빨간 동백을 압화로 만든 책갈피였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말하자 기자님은 고개를 가로저었습니다. ‘최근에 받은 것’은 없냐고 하시면서 말이죠.

저는 곰곰이 생각했습니다.

‘뭔가가 없을까’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중에, 한 가지, 떠오른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제가 아이돌이 되기로 한 그 날, 어떤 사람에게서 받은, 자물쇠가 달린 일기장이었습니다. 이제 절반정도 채워진 그 일기장을 준 사람은 누구인지는, 제 개인적인 사정상 밝힐 수 없었지만, 저에게는 무척 소중하고, 또 기억에 남을 물건이라는 것은 말할 수 있었습니다.

 

‘후미카 씨다운 물건이네요.’

 

저의 대답이 만족스러웠던 모양입니다. 비로소 고개를 끄덕이며, 기자님은 제게 고맙다는 말을 남기고는 인터뷰를 마쳤습니다. 기자님과 프로듀서 씨가 이야기하는 모습을 멀찍이서 바라보면서, 저는 또다시 생각했습니다.

'다음 번의 같은 질문에는 어떤 대답을 해야 할까?'하고 말이에요.

 

그 대답은, 뜻밖에도 얼마 지나지 않아서 얻을 수 있었습니다.

 

 


 

 

“자,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늦은 시간까지 고생 많았다.”

“수고하셨습니다……!”

 

베테랑 트레이너 씨와 1:1로 진행하는 보충 트레이닝을 마치고, 샤워까지 끝낸 뒤, 저는 다시 사무실로 향하는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었습니다. 평소대로였다면 바로 숙부님의 가게로 갔을 테지만, 오늘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오늘은 조금은 특별한 일이 있는 날이었기 때문입니다.

 

“다녀왔습니다…….”

“아, 수고했어.”

 

해질녘이 되어 사무실로 돌아온 저를 프로듀서 씨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사무실 구석에 있는 자신의 자리에 앉아서 책을 읽고 있던 프로듀서 씨가 고개를 들어 저를 바라보았습니다.

 

“조금 쉬었다 갈까? 아니면 바로 갈래?”

“아무래도, 바로 가는 편이 좋지 않을까요……?”

“그래. 정리하고 나갈 테니까 복도에서 기다리고 있어.”

 

이미 퇴근준비는 마치신 모양입니다. 읽던 페이지에 책갈피를 꽂아, 책상 위에 책을 올려둔 프로듀서 씨는 곧장 자리에서 일어나 사무실의 전열기구를 정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저는 곧바로 사무실을 나갔습니다. 복도에 서서 뭔가 놓고 온 것은 없는지 소지품을 다시 한번 점검하는 사이, 사무실의 불이 꺼지고 프로듀서 씨가 문을 열고 나왔습니다.

 

“가자.”

 

앞장서서 걷기 시작하는 프로듀서 씨의 커다란 등을 바라보면서 저는 그 뒤를 따라갔습니다.

 

 

*****

 

'조금은 특별한 일'이란, 다름아닌 저의 데뷔 첫 단독 인터뷰였습니다. 

화보의 촬영에 더해 간단한 인터뷰를 마치고, 프로듀서 씨와 저는 근처에 있는 식당으로 향했습니다. 하지만, 저녁식사를 하는 내내 프로듀서 씨는 어쩐지 초조해 보이는 듯, 뭔가 불만스러운 듯 한 표정을 짓고 있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전혀 짐작이 가지 않았기에, 저는 입으로는 밥을 먹으면서도, 머릿속으로는 계속해서 그 원인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무슨 실수라도 한 것일까요? 감독님께서는 좋다고 하셨는데, 무언가가 마음에 들지 않으셨던 걸까요?

  

“사기사와.”

 

저녁식사를 마치고, 제가 프로듀서 씨의 자동차의 조수석에 앉았을 때, 휴대전화의 화면을 바라보고 계시던 프로듀서 씨가 제 이름을 불렀습니다.

 

“잠시 들렀다 갈 장소가 있는데 들렀다 가도 될까?”

“네, 저는 괜찮아요.”

“고마워.”

 

빙그레 웃으면서 프로듀서 씨는 그대로 골목길로 차를 몰았습니다. 그렇게 몇 번인가 방향을 꺾은 프로듀서 씨의 자동차는 반쯤 닫힌 문 틈새로 은은한 불빛이 새어 나오는 가게 앞에서 멈추어 섰습니다. 프로듀서 씨는 제게는 차 안에서 잠시만 기다려달라고 한 뒤 운전석에서 내려 곧바로 가게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무슨 가게일까……?’

 

룸미러를 통해 프로듀서 씨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저는 가게의 이름이라도 알아보려고 했지만, 아쉽게도 간판은 조수석에 앉아 있는 저에게는 보이지 않는 각도에 있었습니다. 몇 번인가 몸을 뒤척이던 저는 결국 간판을 보는 것을 포기하고, 대신 앞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골목길의 밤하늘을 멍하니 올려다보았습니다.

잠시 후, 포장지로 포장된 작은 상자를 한 손에 든 프로듀서 씨가 운전석으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미안하다. 오래 기다렸지?”

“아니요…….”

 

프로듀서 씨는 들고 있던 상자를 운전석 옆에 설치된 콘솔박스에 집어넣고 다시 자동차의 시동을 걸었습니다. 저는 부르릉, 하는 진동과 함께 또다시 천천히 지나가기 시작하는 바깥 풍경을 바라보았습니다.

장식 같은 것은 그다지 붙어있지 않은 소박한 포장이었지만, 프로듀서 씨는 그것을 무척이나 소중하게 대하고 있었습니다.

그 안에는 대체 무엇이 들어 있을까요?

시선은 창 밖을 향해 있었지만, 제 머릿속에는 온통 콘솔박스 속에 들어간 작은 상자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프로듀서 씨의 자동차가 기숙사의 정문 앞에 도착한 것은 통금을 약 10분 정도 남겨둔 시각이었습니다.

평소처럼 조수석에서 내려, 기숙사로 들어가려던 저를 운전석에서 막 내린 프로듀서 씨가 불러 세웠습니다. 무슨 일인가 싶어 돌아서는 저를 향해 성큼성큼 다가온 프로듀서 씨는 낯익은 상자를 불쑥 내밀었습니다. 그것은 다름아닌, 조금 전 프로듀서 씨가 정체 모를 가게에서 가지고 나온 작은 상자였습니다.

 

“이건 아까 골목길의 가게에서 가져오신……이걸 어째서 저에게……?”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알고 있어?”

 

저는 대답을 망설였습니다. 날짜는 떠올랐지만, 무슨 날인지는 쉽사리 떠오르지 않았던 것입니다.

제가 대답을 망설이자, 프로듀서 씨는 쓴웃음을 지으며 자신의 휴대전화의 화면을 제게 보여주었습니다. 달력처럼 날짜가 떠올라 있는 화면 아래쪽에는 자그마한 문구가 적혀 있었습니다. ‘사기사와 후미카의 생일’이라고요.

저는 그제서야 오늘이 무슨 날인지를 떠올렸습니다. 그리고, 제가 받은 것이 무엇인지도 눈치챘습니다.

 

“10월 27일……제 생일이네요……그러면 이건, 저의 생일 선물……인가요?”

“늦어서 미안하지만, 생일 축하한다, 사기사와.”

 

프로듀서 씨는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정말로 기쁜 듯이 보이는 미소였기에, 저는 어쩐지 떨떠름한 기분을 느꼈습니다. 저는 제 생일조차 모르고 살았는데, 제가 이런 것을 받아도 되는 걸까요?

떨떠름한 표정이 그대로 얼굴에 드러난 모양입니다. 프로듀서 씨는, 난처한 듯 턱을 쓰다듬었습니다.

 

“……이런, 좀 더 화려한 게 좋았어? 꽃이라던가…….”

“아, 아니요…...저, 그게……부끄럽지만, 타인에게서 이런 건 처음 받아보는지라……거기다, 저보다 더 기뻐하시는 것 같아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잘…….”

“하하, 난 또……그럴 때는 그냥 고맙다고만 해 줘도 충분해.”

“그런가요……그럼, 감사합니다…….”

“밤 늦게까지 잡아둬서 미안하다. 들어가서 푹 쉬고.”

 

저는 기숙사의 로비에 서서, 유리문 너머로 보이는 프로듀서 씨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습니다. 그가 탄 자동차의 테일램프가 사라질때까지.

 

“……정말로, 감사합니다.”

 

다시 한번, 자그맣게 내뱉은 감사의 인사는 로비의 유리문에 부딪혀 사방으로 흩어졌습니다.

 

 

여자 기숙사의 제 방은 TV와 냉장고, 전자레인지가 설치된 거실을 사이에 두고 두 개의 개인실이 서로를 마주보는 형태로 되어 있습니다. 시간이 늦었기에, 제가 들어왔을 무렵에는 거실에는 불이 꺼져 있었습니다.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를 들은 것인지, 마유 씨의 방 문이 열리면서 그녀의 모습이 나타났습니다.

 

“어머, 이제 오시는 길인가요?”

“네……늦은 시간에 죄송합니다.”

 

마유 씨와 인사를 나누고 저는 제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방 문이 제대로 닫힌 것을 확인하고, 곧바로 책상의 스탠드를 켠 뒤, 저는 조금 전에 받은 상자를 가방에서 꺼내어 그 위에 올려두었습니다. 상자를 묶고 있는, 반짝이는 재질로 된 푸른색 리본이 스탠드의 강한 빛을 받아 더욱 눈부시게 반짝였습니다. 상자의 리본을 풀고, 포장지가 찢어질세라 조심스레 그것을 열었습니다.

 

“이건……?”

 

포장지 아래로 나타난 것은 가벼운 나무를 깎아 만든 목제 케이스였습니다. 스탠드의 불빛 아래에서 케이스를 이리저리 돌려보던 제 눈에 케이스의 한쪽 구석에 음각으로 각인되어 있는, 반짝이는 무언가가 눈에 띄었습니다. 자세히 살펴보니, 반짝이는 도료로 새겨진 그것은 언젠가 팬미팅용으로 프로듀서 씨와 함께 연구했던 제 서명과 제 이름 넉 자였습니다.

 

‘어쩐지 비싸 보이는 물건이네…….’

 

저는 한층 더 조심스러운 손길로 케이스의 뚜껑을 열었습니다. 목재가공품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나무와 나무가 마찰을 일으키는 느낌조차 내지 않으면서 상자의 뚜껑이 부드럽게 열렸습니다. 그 아래로 모습을 드러낸 것은.

 

“만년필……이네요.”

 

금색으로 반짝이는 펜촉과 유려한 곡선을 그리는, 목재 몸체가 인상적이었습니다. 몸체에도 상자의 뚜껑과 마찬가지로 제 이름이 음각으로 새겨져 있는 것을 보면, 아무래도 오더메이드인 모양입니다. 보관함의 뚜껑과 달리 만년필의 몸체에 적힌 이름은 한자가 아닌 로마자로 적혀 있었지만, 그 또한 저의 이름이라는 것은 마찬가지니까요.

제가 들고 있던 뚜껑을 내려놓으려는 순간, 뚜껑 아래에서 자그마한 쪽지 하나가 툭, 하고 떨어졌습니다. 저는 쪽지를 주워, 스탠드 아래에서 그것을 펼쳐 보았습니다. 그것은, 언젠가 본 적이 있는 필체로 적혀 있는 짧은 편지였습니다.

 

사람의 마음 속에는 만 권의 책으로도 채울 수 없는 게 있어.

그건 자신의 이야기로 스스로가 채워나가야 하는 부분이지.

이 아이가, 이제부터 만 권의 책보다도 더욱 더 값진 이야기를 써 나갈 후미카에게 좋은 파트너가 되었으면 좋겠다.

다시 한번 생일 축하한다.

매일매일 새로운 자신을 향해 노력하는 후미카에게.

 

마치 내용을 음미하듯, 쪽지를 몇 번이나 다시 읽은 저는 그것을 조심스레 접어, 원래 들어 있던 자리로 되돌려 놓았습니다. 그리고 조심스레 뚜껑을 덮어, 제가 항상 가지고 다니는 작은 손가방 안에 집어 넣었습니다. 혹시나 크기가 크면 어쩌지, 하고 생각했지만 그런 제 걱정을 비웃기라도 하듯, 상자는 너무나도 딱 맞게 가방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선물로써의 만년필은 보통 성공을 기원하지만, 쓰는 사람에게 점점 맞춰가는 만년필의 특징상, 때로는 다른 의미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작가들 중에서는 수 년을 함께한 자신의 만년필을 파트너처럼 여기는 사람도 있다고 해요.

제가 아이돌이 되기로 결심한 날, 저는 텅 빈 저만의 일기장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지금, 아이돌 사기사와 후미카의 첫 번째 기념일에, 저는 저와 함께 걸어갈 또 다른 선물을 받았습니다. 절반쯤 채워진 일기장의 새로운 페이지를 함께 채워나갈 파트너를 말이에요.

 

벽장에 가방을 넣으려다가 말고, 저는 가방 안에 집어 넣었던 상자를 다시 끄집어 내어, 침대의 머리맡에 올려두었습니다. 방 안의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워, 저는 창문 너머로 내리쬐는 달빛이 상자에 새겨진 저의 이름을 은은하게 비추는 모습을 바라보며 눈을 감았습니다.

 

 

*********

 

 

‘가장 기억에 남는 선물은 무엇인가요?’

 

반년 만에 다시 듣는 질문이었습니다. 기저님의 앞에서, 저는 곰곰이 생각하는 시늉을 했습니다. 어째서 시늉이냐고 하냐면, 이미 머릿속에서는 대답이 떠올라 있었기 때문입니다.

 

“네. 그건…….”

 

눈을 반짝이는 기자님께 대답하면서, 저는 손에 쥐고 있는 작은 손가방을 조금 강하게 잡았습니다. 인조가죽의 감촉 너머로, 뭉툭한 나무 케이스의 감촉이 느껴졌습니다. 저는 슬쩍 시선을 돌려, 기자님의 등 뒤에서 저를 바라보고 있는 키다리 아저씨를 바라보았습니다.

 

“……파트너, 입니다.”

 

 

---------<END>


 

히로인과 소녀, 꿈의 무게 상편에서 잠깐 언급된 후미카의 만년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만.

이거 작성일자가 16년 10월 25일이더라구요. 작년 후미카 생일때 올리려고 써 둔 걸로 생각됩니다.

그대로 남겨두기에는 아깝고, 올해 10월은 너무도 많이 남았기에 그냥 업로드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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