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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d machine

댓글: 12 / 조회: 513 / 추천: 2



본문 - 01-11, 2017 18:06에 작성됨.

달빛도 보이지 않아 완전히 검게 물들어버린 밤.

한 중소 프로덕션에 딸린 작은 방에는 자칭 괴짜 메카아이돌, 이케부쿠로 아키하가 심각한 표정으로 앞에 앉아 있는 여성을 쳐다본다.

아키하의 앞에 앉아 있는, 미스테리어스한 오오라를 풍기는 은발의 숙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째깍, 째깍, 째깍, 째깍, 째깍, 째깍, 째깍, 째깍.

두 사람 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아 방 안에는 온통 시계의 소리밖에 들리지 않는다.

그 사이에 초침은 계속해서 움직이고, 이윽고 그 끝이 6이라는 숫자에 닿을 즈음, 은발의 숙녀는 차가운 말투로 입을 연다.

 

"...그래서, 고칠 수 있어?"

 

"만들지도 않은 기종의 애프터서비스를 어떻게 하라는 건가."

 

은발의 숙녀, 타카미네 노아의 말에 이케부쿠로 아키하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타카미네 노아는 그녀의 반응이 더 어이가 없다는 듯이, 차가운 얼굴로 이케부쿠로 아키하를 쳐다보고는 그녀 특유의 말투로 다시 묻는다.

 

"...그럼, 고칠 수 없어?"

 

"다시 말하지만, 나는 만들지 않은 녀석의 애프터서비스는 할 수 없어."

 

"....고칠 수, 없다는 거네."

 

이케부쿠로 아키하는 타카미네 노아의 말에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다는 듯이 희미한 미소만을 지어보인다.

타카미네 노아는 차가운 표정으로 이케부쿠로 아키하를 노려보다 잠시 창 밖의 하늘을 쳐다본다.

유성이라도 잠깐 지나갔는지 천천히 눈을 감았다 뜬 타카미네 노아가 마치 기름칠이 덜 된 것처럼 삐걱거리며 이케부쿠로 아키하를 노려보며 다시 질문을 던진다.

 

"....그럼, 내 병명이 뭔지는 알아?"

 

"그야 그 정도는 알고말고. 병명이라고 해야되나, 라고 다시 묻고 싶지만 말이야."

 

이케부쿠로 아키하가 타카미네 노아의 말에 여러가지로 난감하다는 듯이 옅게 웃는다.

타카미네 노아는 그런 이케부쿠로 아키하의 반응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살짝 기울여 어리둥절함을 표현한다.

이케부쿠로 아키하는 그런 타카미네 노아의 반응이 재밌다는 듯이 얼굴에 미소를 띄우고는 입을 연다.

 

"그럼, 타카미네 노아여. 질문을 두어개 정도 해도 괜찮을까?"

 

"...무슨, 질문?"

 

"사랑이라고 아나?"

 

이케부쿠로 아키하의 말에 타카미네 노아는 아까보다도 더욱 고개를 기울여 알 수 없음을 표현한다.

이케부쿠로 아키하는 그런 타카미네 노아의 반응에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중얼거린다.

 

"이건 심각하군."

 

"....고칠 수 없다고, 말했었잖아."

 

"그 쪽의 의미가 아니야."

 

"....그럼?"

 

"아, 설명하기 좀 복잡한데...."

 

이케부쿠로 아키하가 타카미네 노아의 질문에 어떻게 설명을 해야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노아를 쳐다본다.

타카미네 노아가 마치 자신에게는 이런 표현밖에 프로그래밍되어있지 않다는 듯이 고개를 살짝 옆으로 기울이자 이케부쿠로 아키하가 조금은 짜증난다는 표정을 지으며 한 마디 한다.

 

"그 반응, 정말로 보기 그렇군. 다른 표현방법은 없는가?"

 

"...난, 이런거 밖에, 할 줄 몰라."

 

"거 참....."

 

이케부쿠로 아키하는 타카미네 노아의 당연하다는 말투에 한숨을 내쉬고는 잠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긴다.

타카미네 노아는 이제 지루해지기 시작했다는 듯이 처음부터 한결같이 째깍거리고 있던, 어두컴컴한 방 한 켠에 놓인 벽걸이시계를 쳐다본다.

굼벵이같이 움직이는 시계의 초침은 이제서야 겨우 언덕의 입구에 도착했다는 듯이 8과 9 사이에서 알짱거리고 있었다.

타카미네 노아가 인간으로서는 전혀 읽을 수 없는 표정을 짓고는 이케부쿠로 아키하를 쳐다보자 그녀는 마치 비중의 원리를 알아낸 아르키메데스처럼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노아를 기다리고 있었다.

타카미네 노아가 고개를 살짝 옆으로 기울이며 어리둥절함을 표현하자 이케부쿠로 아키하는 조금 불만섞인 표정을 지으면서도 평정심을 잃지는 않은 채로 입을 연다.

 

"좋아, 자네에게 하나만 질문하도록 하지."

 

"...뭔데?"

 

"프로듀서를 어떻게 생각하나?"

 

"......프로듀서."

 

이케부쿠로 아키하의 입에서 프로듀서라는 단어가 튀어나오자 타카미네 노아는 무슨 반응을 보여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이 겨우 그 단어를 다시 한 번 곱씹고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이케부쿠로 아키하는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왼쪽으로 손을 뻗어 프로듀서가 퇴근하기 전에 손수 타 준 커피가 든 잔을 들어 커피를 한 모금 홀짝인다.

설탕과 우유로 꽤나 쓴 것을 중화시키고는 있었지만, 그래도 커피 특유의 쓰디쓴 맛이 입가에 퍼진다.

잠깐의 시간이 지나고, 타카미네 노아에게서 프로그래밍 될 수 있는 최소한도의 볼륨의 목소리가 나온다.

 

"....프로듀서는, 상냥해."

 

"그것도 그렇군, 자신도 피곤할 텐데, 퇴근하기 전에 굳이 내 연구실에 들러서 나에게 이런 커피까지 손수 내주고 말이야."

 

"....그는 가끔씩, 나를 귀엽다는 듯이 상냥히 쓰다듬어 줘."

 

"그것도 그렇군, 도움이 되는 기계들을 만들어서 보여주면 내 머리를 상냥히 쓰다듬어 주고."

 

".....그를 보고 있으면, 가슴 속에서 무언가 뜨거운 게 솟아올라."

 

"그것도 그렇군, 나도 시간이 날 때마다 내 연구에 어울려주는 조수를 보고 있으면 그런 감정을 느끼니까."

 

이케부쿠로 아키하는 타카미네 노아의 말에 일일이 대답하며 다시 커피를 홀짝인다.

이케부쿠로의 대답에 잠시 말이 없던 타카미네 노아는 살짝 고개를 기울이며 아키하를 쳐다보고는 입을 연다.

 

"...이게 사랑이란 거야?"

 

타카미네 노아에게서 사랑이라는 단어가 나오자 이케부쿠로 아키하는 커피잔을 내려놓고는 옅은 미소를 짓는다.

하지만 그 미소에는 커피의 성분도 조금 함유되어 있는지, 약간의 씁쓸함이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다.

 

"그렇지. 그게 사랑이란 거라네."

 

"...사랑."

 

"하지만, 뭐, 이거 완전히 슬픈 기계잖아."

 

이케부쿠로 아키하가 누구에게 말하는 것인지 모를 축축한 말투로 중얼거리고는 잔을 다시 들어 커피를 홀짝인다.

초침은 이제서야 겨우 도달했다는 듯이 정확히 12를 가리키고 있었다.

 

 

후기

두 번째로 창작글을 남기는군요. 

제목은 동명의 곡인 Sad machine - Porter Robinson에서 빌려왔습니다. 위에 잘 보시면 음악 링크가 있으니 들어주시기를.

몇 번 올라온 것같은 기분이 드실테지만 수정하는 와중에 자꾸 습관적으로 저장키(ctrl+s)를 눌러서(.....)

타카미네 노아 씨와 이케부쿠로 아키하 관련글입니다. 나름 최선을 다해서 썼지만 어딘가 이상하다고 느끼신다면 저를 책망해 주세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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