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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비밀을 말하면 당신은 어떤 표정을 지을까요

January 10, 2017 (화) 19:27에 작성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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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을 말하면 당신은 어떤 표정을 지을까요

 

 

 

 

매주 금요일 저녁 8시, A호텔 203호실. 그녀와 만나는 시간과 장소다. 우리는 이곳에서 남들에게는 보여줄 수 없는 이야기를 속삭였다.  당신은 믿어도 되는가라던가, 만약이라는 말을 한다던가, 아는 사람의 이야기라며 이루어 질 수 없는 연애에 대해서 속삭인다던가... 우울한 눈으로 서로에 대해 말해서는 안되는 사랑을 에둘러서 말했다. 오늘도 우리는 그렇게 시치미를 뗄 것이다.

나는 홀로 소파에 앉아 TV를 켜 놓고는 생각에 잠겼다. 그녀가 오기까지 답이 없는 고민을 한다. 그러나 답이 없기에 생각이 끝나는 것보다 그녀가 먼저 도착해버린다.

 

"프로듀서씨..."

 

그녀는 문을 잠그자 마자 내게 안겨 들었다. 갈수록 야위어가는 그녀의 몸이 애처로웠다. 그녀가 살이 말라가는 동안 내 몸도 같은 이유로 무력했다. 처음에는 의자 두개 만큼의 거리가 이제는 살갗이 닿는 순간 마저도 멀게만 느껴진다. 조금 더 가까워지고 싶다. 안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포근함에 우리는 미쳐가고 있었다.

 

"어서와. 아이코."

 

"프로듀서씨..."

 

아이코의 목소리가 슬프게 속삭였다. 눈을 감고 더듬어 찾지 않으면 듣기 어려울 만치 작은 목소리. 나도 그녀를 닮아 낮고 조용한 목소리였다. 그 작은 등을 쓰다듬자 그녀는 내 품에 얼굴을 묻었다.

거절해야 하지만 그럴 수 없을 만치 행복해진다. 이정도는 괜찮겠지하는 같잖은 자기위로만을 믿으며 우리 사이의 거리는 조금씩 가까워졌다. 처음에는 의자 두개, 지금은 안고있는 순간조차 더 가깝고 싶다.

 

"아이코, 무슨 일 있던거야?"

 

"어리광 피워서 죄송해요. 하지만 조금만 더 안길래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아이코가 숨을 쉴 때마다 작은 등은 부드럽게 움직였다. 그녀는 내 심장소리를 듣고 있을 것이다. 평소보다 약간 빨랐다가, 하지만 그녀와 함께 있으면 점차 안정을 찾는 심장에 귀를 댔다.

 

"하루 종일 이렇게 안기고 싶었어요. 프로듀서씨는 안 그랬어요?"

 

"나도..."

 

뒷말을 흐렸다. 너에게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었어. 이 말을 몇 번이나 삼켜왔는지 모르겠다. 내 배를 가른다면 이 한 문장이 수도 없이 쏟아져 나올 것이다. 그러나 입으로는 뱉을 수 없었다. 말하는 순간 우리는 되돌아올 수 없는 길을 걸어야만 한다. 내가 쌓아온 모든 것과 그녀가 쌓아갈 모든 것을 포기하기에는 나는 너무도 겁쟁이다.

 

"심장소리를 들으면 기분이 좋아요."

 

나는 말없이 머리를 쓰다듬었다. 잘 가꾼 머리카락이 파도치듯 구불거린다. 그녀의 머리카락을 보면 바다가 생각난다. 차라리 그녀의 손을 잡고 거친 겨울바람 사이로 걸어간다면, 차라리 그녀의 손을 잡고 바닷속에서 숨이 멎는다면 이만치 아프지는 않을 것이다.

 

"이거 놔요!"

 

아이코는 짜증난다는 듯이 내 손을 쳐냈다. 그리고는 내 몸을 밀쳐버리곤 조금 생각할 시간이 필요한듯 벽을 보고 섰다. 말없이 벽에 머리를 박고는 한참을 괴로워하다, 비명같은 슬픔을 토해냈다.

 

"이젠 지긋지긋해요! 언제까지 이런 멍청한 짓을 되풀이 해야하는 거죠? 저는 당신을..."

 

"그만!"

 

내 고함이 그녀의 비명을 덮어버렸다. 그 뒤에는 다시금 정적이 내린다. 바깥에서 차가 지나가는지 타이어와 아스팔트 길이 만들어 내는 소리가 들려왔다. 커튼을 치는 것을 잊어버렸군, 아이코도 같은 생각인지 흠칫 놀라며 창가에 커튼을 쳤다. 혹시라도 파파라치가 있었을까? 노이로제가 올 것만 같다.

그제서야 흥분이 가신 그녀는 바닥에 주저 앉아버렸다. 아이코는 실망한 듯이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나는 그녀를 안아줄 수도 안아줘서도 안됐다. 그럼 그렇지, 체념하듯 눈길을 거두었다.

 

"제 친구 중에, 사랑받기는 글렀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어요."

 

아이코는 자조적인 웃음을 지었다. 누구의 이야기인지는 서로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 남자는 그 애한테 손도 대지 않는데요. 그 아이가 안겨들더라도 망부석이고, 키스는 커녕 그저 머리나 쓰다듬어주는 것이 전부라네요. 과연 둘은 무슨 관계일까요?"

 

"그런 말 하지마."

 

"프로듀서씨도 그런 짝사랑은 바보같다고 생각하시죠?"

 

아이코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져 내렸다. 훌쩍임을 억지로 삼키고 있었지만 이미 눈과 양 볼은 붉게 충혈되어버렸다. 그 눈물이 방울지는 것을 보면 심장 속에서 절제와 욕망이 거칠게 싸웠고, 그리고 사랑으로 가득해져 미쳐버릴 것 같다.

 

"젠장, 나도 너를...!"

 

잘 참아왔건만 오늘은 충동적으로 한마디를 조금 뱉어 버렸다. 내 혀가 만든 단어들에 스스로가 깜짝 놀라 뒷말을 삼켰다.

 

"뒷말은 여전히 말씀하시지 못하는군요."

 

아이코는 아무런 표정을 짓지 못했다. 그렇게 냉담한 아이코는 처음이었다. 나는 그제서야 이 일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항상 따스하게 웃던 그녀를 내가 망가뜨려버린 것이다. 그놈의 체면이라는 것 때문에 저 여린 아이가 저리 망가져버렸다. 나도 이제는 참을 수 없게 되어버렸다. 머릿속이 텅 비어서 많은 생각을 할 수 없었다. 충동이 나를 조종해 그녀를 끌어안고는 귀에 속삭였다.

 

"아이코, 너를 사랑해."

 

"이제는 믿을 수 없어요."

 

그녀의 마음은 너무도 상처가 많아 더이상 사랑하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 작은 입술로 잔인한 말을 속삭였다.

 

"그거 아세요? 저 사실 당신이 첫사랑이 아니에요. 다른 사람도 만났었죠. 그래도 사랑해주실 수 있나요?"

 

"사랑해."

 

그런 것은 이미 중요치 않았다. 그녀의 귀밑에 코를 박고 숨을 쉬었다. 약간은 뜨겁게 덥혀진 체취가 향긋하다. 내 몸도 따라 뜨거워진다. 심장을 찌르는 확인절차는 잔인하게도 계속되었다.

 

"당신에게 드리려 했던 이 입술도 당신이 처음은 아니에요. 그래도 사랑해주실 수 있나요?"

 

"사랑해."

 

그녀의 마른 가슴과 내 가슴이 맞닿았다. 그녀의 두근거림이 평소보다 빠르다. 내 심장도 그럴 것이다.

 

"저는 생각보다 숨기는 것이 많은 사람이에요."

 

"네가 어떤 사람이던지, 무얼 숨기던지 사랑해."

 

"못믿겠어요. 만약에, 만약에 말이에요. 사실은 제가 사실은 남자라던가, 그래서 치히로씨랑 사귀었다면요? 아니면 매일 당신하고 점심을 같이하는 그 프로듀서하고 몸을 섞은 적이 있다면요? 아니면, 아니면 또..."

 

"상관없어."

 

말도 안되는 가정들은 울먹임 속에서 점차 알아들을 수 없게 된다. 이윽고 목소리가 작아진다. 몸을 떨며 작게 우는 그녀가 애처롭다. 울음이 잦아들고 훌쩍임만이 남았을 때, 나는 그녀의 귀에 속삭였다.

 

"그래도 사랑해. 너는?"

 

저 붉은 입술이 말해줬으면 하는 이야기를 물어본다. 아이코는 그제서야 고개를 들었다. 눈물과 번진 화장으로 엉망인 얼굴이 아름다워 보였다.

 

"사랑해요. 그래서 당신을 볼때마다 미칠 것 같아요. 당신이 다른 아이랑 이야기하는 것조차도 싫지만, 아닌 척할 뿐인, 질투도 어리광도 많은 아이에요. 이래도 저를 사랑하나요?"

 

"사랑해."

 

그녀는 눈물자국 가득한 얼굴에 햇살같은 따스한 미소를 지었다. 내일 아침에 뜰 태양도 저보다는 아름답지 않을 것이다. 머릿속이 녹아내린다.

 

"또 말해줘요. 제발..."

 

"사랑해. 너에게 무슨 일이 있었건, 앞으로 무슨 일이 있건 사랑해줄게."

 

"저도요. 저도 사랑해요. 제 모든 걸 드릴 게요."

 

그녀의 눈을 바라보다 작게 입맞추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것을 찾아 혀로 혀를 더듬었다. 우린 무얼 찾고 있었기에 입술을 때는 순간 이렇게 아쉬운 것일까.

바닥에서 한기가 올라왔다. 그녀는 두 눈에 아쉬움을 담고는 가볍게 내 가슴을 밀어냈다. 나도 아쉬움이 밀려왔지만 잠깐 마음을 추스를 겸 물러났다. 지금 멈추지 않으면 다시는 멈추지 못할 것같았다. 그리고 그건 다시금 그녀에게 상처를 줄 것이었다.

 

"침대로 가요. 바닥은 너무 차가와."

 

멈추고 싶지 않은 것은 같은 마음이었던가, 그녀는 먼저 침대 위로 올라가 새우자세로 누웠다. 그때 그녀는 내 쪽을 바라보며 새침한 미소를 지었는데, 그 표정을 나는 잊지 못할 것 같다. 나를 강렬히 바라는 그 눈동자를 보는 순간, 작은 어깨를 붙잡고는 포근한 곡선을 그리는 입술에 내 입술을 맞추었다. 내가 누구건, 그녀가 어떤 사람이건 상관없어졌다. 그녀의 입에서 어떤 비밀이 쏟아져 나온다 해도 변함없이 사랑할 것이었다. 격렬한 입맞춤 끝에 아이코는 내 입술에 검지를 가져다댔다.

 

“둘이 있을 때는 다르게 부르고 싶어요.”

 

“뭐라고?”

 

"그건..."

 

긴 입맞춤에 몸이주는 즐거움에 헐떡이면서도 그녀는 나에게 특별하길 바랐다. 나로서는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참을 성은 없었기에 그녀가 잠시 생각에 빠질 동안 대답을 기다리며 입맞춤은 목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살이 없어 단단한 가슴에 얼굴을 묻는 순간에 입을 열었다.

 

“정했어요.”

 

그녀는 계속 내려가던 내 얼굴을 붙잡아 자기 얼굴까지 끌어올렸다. 어여쁜 손가락으로 내 뺨을 톡톡 건드리며 행복한 미소를 짓는 것을 보니 마음에 드는 별명을 찾은 모양이었다. 그리곤 귀에 입술을 가져다 대고는 달콤하게, 혹은 짜릿하게 속삭였다.

 

 

 

 

"사랑해요, 형."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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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aba@aa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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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바르고 고운 말을 사용 합시다.
  • 포틴P (@howo***)

    (가쁜 호흡)(동공지진)(혼란)(당황)(슬픔)(경악)
    1January 10, 2017 (화) 19:59_61
  • REMAINDER72 (@zxc***)

    옛날에는 여자들도 많이 형이라 불렀다고 하니 괜찮을 겁니다 아마.....
    2January 10, 2017 (화) 20:07_66
  • yoshino (@syo***)

    ....?!
    3January 10, 2017 (화) 20:21_75
  • 타르기스 (@Tar***)

    ......?!(경악)(혼돈)(동공지진)
    4January 10, 2017 (화) 20:30_48
  • Lucien (@sinn****)

    이렇게 귀여운 아이코가 여자일리 없잖아!
    5January 10, 2017 (화) 22:13_61
  • MadJ (@ppark****)

    괞찬아요 여동생들은  오빠를  형이라고부르는  것도있으닌까!
    6January 11, 2017 (수) 01:08_28
  • WhatsUP (@teah***)

    맛만 좋으면 모 다이죠오~부!
    7January 12, 2017 (목) 16:50_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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