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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버엔드, 아이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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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1-08, 2017 16:53에 작성됨.

만약 내가.....정점에 서게 되는 날이 온다면.

 

그런 날이 올 수만 있다면.

 

언제나 꿈에서만 머물러있던 자리가, 지금 발을 딛고 서 있는 현실이 되어버리다니. 나는, 가볍다 못해 조금은 휘청거리는 발걸음으로 무대의 뒷편에 돌아왔다. 방금 전만하더라도 눈 앞에는 반짝이는 빛의 파도가 한 가득 펼쳐져 있었는데. 이 곳은 저 앞에서 새어나오는 빛과, 주변에 있는 아주 약간의 조명말고는 아무 것도 없어 어두침침하다.

 

"하아....."

 

공연, 전부 끝났으니까. 여기는 무대가 아니니까. 조금 정도는 한 숨 돌려도 괜찮지 않을까. 나는 크게 한숨을 쉬고는 어깨를 축 늘어트렸다. 기분 좋은 나른함이 온 몸에 퍼졌다.

 

특별한 것 하나 없는 나이지만, 할 수 있는 한 모든 것을 보여주자.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것을, 있는 힘껏 전해주자.

 

그 생각만으로 지금까지 쭉 달려온 끝에.....마침내 도달하고 말았다. 톱 아이돌, 그조차 넘어선- 그야말로 아이돌 계의 정점 중의 최정점이라 말할 수 있는 그런 위치에. 내가 있다. 있게 되었다.

 

정말로, 해낸 걸까, 나?

 

.....믿겨지지 않네.

 

등지고 있는 무대의 빛도, 멀리서 어렴풋하게 들려오는 함성도, 지금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어둠도 어딘가 막연하게 느껴졌다. 아직 현장의 열기가 남아있긴 하지만, 이제 조금만 더 있으면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릴 것만 같았다.

 

정말로 나, 톱 아이돌, 아니 그보다 훨씬 더. 그러니까, 초 톱 아이돌이 된 게 맞는 걸까?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만약에, 지금 눈을 꼭 감았다가 다시 눈을 뜬다면, 주변의 모든 것이 온데간데도 없어져버리는 게 아닐까. 대신에, 합숙소의 조금 낡은 레슨실만이 모습을 보인다던가, 그러지 않을까.

 

아니, 실감도 실감이지만.....무엇보다, 아주 다른 느낌이었다. 이 초 톱 아이돌이라는 자리는.

 

엄격하고, 무겁고, 진지한, 그런 곳이라고 생각했는데. 모두의 기대와 응원을 한 몸에 받는 만큼, 뭔가 모범을 보여야한다- 그렇게 생각했는데.

 

아니, 었다.

 

그래서 더더욱 진짜가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어쩌면 이 상황은, 내 입맛에 맞게 각색된 꿈일지도. 그래, 아마 레슨하는 도중에 깜박 졸다가 꾸게된 달콤한 꿈일거야. 점점 강해지는 묘한 울렁거림과 붕 뜬 것 같은 느낌이 그 생각에 더욱 힘을 보탰다. 나는 아쉬운 마음에 눈을 질끈 감아버리려고 했다.

 

".....하루카."

"으, 응!"

 

그런데 갑자기, 옆에서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났다. 지금껏 없었던 현실감이 들어 급히 그 쪽을 돌아보았다. 거기에는 같이 정점에 서게 된, 나한테 있어 무척이나 소중한 사람이 선명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에, 이거, 꿈은.....아닌 걸까. 나는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그 사람, 치하야쨩을 살폈다.

 

"해냈네, 우리."

 

치하야쨩은 얼떨떨해하고 있는 이 쪽과 달리 아주 홀가분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지금이 꿈인가 현실인가. 여전히 분간이 어려웠지만, 그 얼굴과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울렁거리던 속이 조금은 편해진 기분이 들었다.

 

"에헤헷, 그, 그럴까나."

"별로 기뻐보이지는 않네."

"그게 말이지.....아직 잘, 모르겠어. 내가 정말로 아이돌의 최정점에 섰다는 게, 믿겨지지 않아....."

"그러니."

 

잔뜩 떨리는 목소리로 품고 있던 것을 털어놓자, 치하야쨩은 작게 미소지었다. 부드러우면서도, 망설임 없이 당당한 저 모습. 같은 곳에 도착한 두 사람이 이렇게나 다를 수 있다니. 그렇다면 역시 이거, 꿈?

 

"치하야쨩은 다른 것 같네. 음.....뭐라고 해야할까, 모든 것을 속 시원하게 내려놓았다, 라는 느낌?"

"후후, 그렇네. 맞아. 후련한 기분이야. 우리가 할 수 있는 것, 해야하는 것.....그 모든 것을 전부 해낼 수 있어서."

"그런, 걸까?"

"하루카는.....아니야?"

"아니, 나도 할 수 있는 건 전부 다 했다고 생각해."

"그러면?"

 

아니, 그렇지는. 치하야쨩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니, 다시 이 모든 것이 진짜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완전히 받아들이기에는 거부감이 들었다.

 

"있지, 치하야쨩."

"응?"

"여기, 살짝만 꼬집어줄래?"

 

나는 반억지로 지은 웃음과 함께, 치하야쨩에게 손등을 보였다. 좀 전에 약간 남아있던 열기마저 이젠 완전히 식어버려서, 보다 더 확실한 자극이 필요했다. 지금 이 순간이 곧 사라지고 말 환상 같은 게 아닌, 앞으로도 계속될 현실이라는 걸. 이 어리석은 나에게도 단번에 알려줄 수 있을 정도의, 그런 자극이.

 

"후후, 하루카도 참."

 

치하야쨩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웃었다. 그러고는 어째서인지 요청을 들어주는 대신, 두 손을 들어 내 손을 꼭 붙잡았다.

 

"어, 에엣?"

"이걸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해."

 

.....응, 그렇네. 이걸로 확실히 진짜라는 걸 알겠어.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비어있는 한 손을 들어 치하야쨩의 손등에 포갰다. 두 손 가득한 온기에는, 나를 여기에 꼭 붙들어놓을 수 있는 실감이 있었다.

 

"나 있지, 만약 정점에 서게 된다면.....완전히 바뀌어버릴거라고 생각했어."

"바뀐다고? 어떻게?"

"음, 그러니까.....정점이라는 자리에 걸맞은 쪽이라고 해야할까. 진중하고, 고고하게? 막 카리스마 아이돌이라던가, 살아있는 전설! 같은 느낌으로? 앗, 이건 너무 촌스러운 쪽이려나."

"푸훗, 카리스마 아이돌? 하루카가?"

"에, 뭐야 치하야쨩.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거야."

"미안, 그런 쪽으로는 전혀 상상이 되지 않아서."

"그럼 대체 어느 쪽으로......하, 하여튼 나는.....바뀌어야한다고, 변해야한다고......그렇게, 생각했어."

 

만약 내가 정점에 서게 된다면, 어떻게 되는 걸까.

 

처음에는 실없는 망상으로, 조금 더 시간이 지나서는 조금 더 구체적인 방향으로. 나는, 몇 번이고 이 자리에 선 내 모습을 상상했다. 어쩌면 내가, 나로서 있지 못하게 되는 게 아닐까. 이제까지하고는 완전히 다른 쪽으로 변해버리지 않을까. 그렇게, 변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그런데, 아니네. 생각했던 것과 전혀 달라. 

 

이 자리에 서도 나는 변하지 않았다. 억지로 변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나는 나로서, 아마미 하루카로 있을 수 있었다.

 

"나는 이 곳이.....좀 더 외로운 장소라고 생각했어."

 

치하야쨩은 그렇게 말하고는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나도 질 수 없어서, 손 안에 있는 걸 꼭 쥐었다.

 

"지금은, 아닌거지?"

"응. 하루카는 어때?"

"지금 이대로도, 괜찮은 것 같아. 전혀 상상이 안된다는 누구씨 덕분에."

"정말."

 

조금 아플 정도가 되었지만, 그래도 기분이 좋았다. 세세한 곳은 조금 다르긴 했지만 비슷한 점이 많았던 우리들의 예상이, 보기 좋게 빗나가고 말았으니까. 다행이었다. 혼자가 아니라서 정말 다행이었다. 치하야쨩이 내 곁에 있어주어서. 내가 치하야쨩에게 있어주어서.

 

정말, 정말, 정말로, 다행이었다.

 

"앞으로 우리는 어떻게 되는 걸까."

"글쎄."

 

우리는 손을 맞잡은 채, 여전히 빛을 잃지 않은 무대에 시선을 두었다.

 

"정점까지 올라온 만큼, 이제 내려가는 일이 남아있을 지도 모르겠네. 성자필쇠라는 말도 있으니. 간단하게 내려올 생각은 없지만."

"아니, 그렇지는 않은 것 같아."

"응?"

"치하야쨩, 나는.....아직 더 높은 곳이 우리를 기다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그럴 지도. 아니, 그렇네."

 

우리들의 눈은, 이제 무대 저 너머를 향했다. 반짝이는 웨이브의 저편에서, 새롭게 엿보이는 또다른 빛. 그래, 여정은.....아직 끝나지 않았다.

 

우리들은 다시 거기까지 도달할 수 있을까? 만약, 정말로 그 곳에 설 수 있다면....그 때에 가서는, 어떻게 되는 걸까. 어쩌면, 빗나갔던 예상이 적중하는 일도 있지 않을까. 다시 가야만 하는 길, 그 끝에 존재할 알 수 없는 장소를 생각하는 순간 새롭게 두려움이 솟아올랐다.

 

하지만, 그렇다하더라도.

 

분명 괜찮을 거야.

 

설령, 그 곳이 정말로 엄격하고, 외로운 장소라 하더라도......그렇지 않은 장소로 바꿔낼 수 있어.

 

나는, 우리들은 그렇게 믿어.

 

꿈을 현실로 바꾸고, 다시 새로운 꿈을 꾸기 시작한 나와 치하야쨩. 멀리서 들려오는 발소리에, 잠깐 꿈을 엿보는 것을 그만두고는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짙은 어둠이 깔린 그 너머에는 선명하지는 않아도 익숙한 인영이 보였다.

 

터벅, 터벅.

 

조금 무거운 발소리와 함께, 완전히 모습을 드러내는 그 사람. 언제나 우리들을 지켜보고, 등을 밀어주는, 가장 든든하고 믿음직스러운 사람. 우리들의 프로듀서 씨.

 

"우리들에게, 끝은 없어요. 그렇죠? 프로듀서 씨?"

 

그 사람이 입을 열기도 전에, 나는 우리들의 마음을 전했다. 이 애가 무슨 소리를 하나, 하고 어리둥절하시던 것도 잠시. 프로듀서 씨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는 걸로 대답을 대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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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래티넘 스타즈 하루카와 치하야 S랭크 달성 기념. 간만에 마스터피스뽕도 좀 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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