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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다 3남매의 긴 여름 저녁 [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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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1-08, 2017 07:15에 작성됨.

※ 일전에 Exnoy님이 쓰신 혼다 동생 시리즈의 설정을 가져온 3차 창작 팬픽입니다.

  아이커뮤는 처음이네요. HARUMON이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일상다반사가 꼭 평화롭지는 않다.

 

 “시마무, 시부린. 좀 긴급한 얘기가 있는데.”

 

 그런 미오의 말에 우즈키와 린은 긴장했다. 하지만 놀라지는 않았다. 뭔가 일이 있긴 있었을 거라는 건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아침에 리더의 얼굴을 봤을 때 그녀의 표정에서 근심을 읽었으니까. 불상사라도 생겼냐는 린의 물음에, 미오의 대답은 ‘좀 찝찝한 일이 있긴 했는데 사소한 일이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는 것이었다.

 

 린과 우즈키는 얘기를 나눈 끝에 큰일은 아니리라 결론지었다. 미오는 두 사람이 자신을 걱정할 여지조차 주려 하지 않는 사람이니까. 정말 큰일이라면 아예 고민이나 골칫거리 같은 건 전혀 없다는 듯이 애써 태연자약한 웃음을 지었으리라. 두 사람이 아는 미오는 그런 아이였으며, 바로 그 때문에 오히려 ‘찝찝하지만 사소한 일'이라는 표현은 그 표현이 암시하는 딱 그 정도 규모의, 미오가 생각하기에도 누구한테 걱정 끼칠 거리도 없는 가벼운 말썽 이상의 의미는 없다, 그렇게 보는 것이 타당했다. 친구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할 뜻은 없었으므로 우즈키도 린도 그 이상 캐묻지는 않았다.

 

 실제로 이벤트 최종 연습과 리허설, 본무대를 치르면서 미오는 자신의 걱정거리를 싹 잊어버리고 있었다.

 

 뉴제네의 그 날 활동은 이벤트 하나뿐이었으며, 5시가 채 안 돼서 끝나는 스케줄이었다. 세 사람은 내색하진 않았어도 그 사실에 만족했다. 프로로서 과연 괜찮은 자세일지는 모르지만 아스팔트가 녹아버릴 것 같은 텁텁한 여름철에 많은 야외 스케줄을 솔직하게 환영하기는 힘들었다. 아무튼 그렇게 해서 꽤 이른 시간에 스케줄이 완료되자 뉴 제너레이션의 삼총사는, 다른 현장에 가봐야 하는 그들의 프로듀서를 먼저 보낸 뒤 셋이서 자주 가는 치킨 전문점에서 뒤풀이를 진행 중이었다.

 

 그 때 이미 미오는 아침에 언급했던 ‘찝찝한 일' 같은 건 다 털어내 버렸을 뿐더러 아예 그런 일이 있었던 것조차 생각나지 않는 것마냥 활기찼다. 그 모습을 보며 우즈키와 린은 안심했다. 정말 심각한 문제가 있다면 아무리 치킨 애호가인 뉴제네의 리더라도 느긋하게 닭다리를 뜯으며 오늘의 스테이지에 대해서 열변을 토한다는 것은 불가능할 테니까. 즉 두 사람의 추론대로 미오에게 벌어진 것은 누구나 가끔씩 미묘한 기분이 되게 만드는 일상적인 트러블 수준을 벗어나지 않는 것이 틀림 없었다.

 

 적어도 방금 전 누군가에게서 온 전화를 받기 전까지는 그 수준이었을 것이다.

 

 통화를 마친 뒤 미오의 표정도 심각한 충격을 받았다거나 좌절의 해일에 휩쓸린 얼굴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별 것 아닌 문제가 쓸데없이 크게 벌어졌다는 사실에 대한 난처함, 적나라하게 말하면 ‘짜증'이 애써 웃는 표정에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미오, 뭐가 잘못 됐나요?” 라는 우즈키의 말에 미오는 말을 시작했다.

 

 “두 사람 다 알지? 우리 집 바보 동생.”

 

 “아아… 남동생분요….”

 

 우즈키는 ‘다 잊어버렸어요!’ 라고 대답하는 것이 더 나으려나 고민했다. 하지만 잊어버렸다고 하는 게 더 부자연스럽기에 그런 식으로 흐리는 대답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혼다 미오한테는 중학생 남동생이 한 명 있다. 이름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아니, 처음부터 통성명을 한 적이 없는 것 같다. 우즈키와 린은 굳이 자기 이름을 밝힐 필요가 없었으니까. 우즈키와 린 안에서 소년은 혼다 남동생이라는, 고유명사와 보통명사의 어중간한 사잇골쯤 되는 호칭으로 등록되어 있었다.

 

 그리고 혼다 동생을 잊어버린다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긍정적인 의미로 그렇다고는 못 하지만. 절친한 동료이자 친구의 가족이라는 점도 물론 이유의 하나지만, 그보다도 처음 만났을 당시에… 워낙에 그런 일이 있었던 것이다. 우즈키와 린의 혼다 가 방문이 있던 날, 뉴 제너레이션의 세 사람은 소년으로 인해 두 차례의 곤혹을 치렀다.

 

 처음 일은 그럭저럭 넘어갈 만했다. 가족 이외의 남성에게 속옷 차림을 보인 것은 처음이었고 그래서 당황하긴 했으나 이상하게도 수치스럽다는 느낌은 적었다. 아마 가족 같은 미오의 동생이니까 자신에게도 어린 동생처럼 여겨진 게 아닐까 한다. 린이 들었다면 ‘우즈키는 좀 더 위기의식을 가질 필요가 있어' 라고 잡도리를 했을 지도 모르지만. 또 얼마 안 가서 미오가 동생이 열어놓은 스레드 페이지를 찾아내서 골려 주자는 제안을 하기도 한지라 그럭저럭 쌤쌤이 아닐까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때의 사진이 스레드 페이지에 올라온 것은 아무리 무던한 우즈키라도 대경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칫 대형 사고로 판이 커질 수 있는 문제였고 그게 아니라도 부끄러운 소동이었다. 사건 자체는 아이돌 동료들과 프로듀서의 수완으로 잘 마무리되었지만 역시 우즈키도 그것은 심했다고 느꼈다. 린은 그 정도가 아니라 날카롭고 단호한 목소리로 자신이 직접 혼다 동생을 혼쭐 내주겠다고 나섰으나, 동생이 저지른 사고에 필사적으로 대신 사과하는 친구를 보며 겸연쩍어 하면서도 화를 거둘 수밖에 없었다.

 

 그게 혼다 동생과의 첫 만남이었다. 그리고 두번째 만남은 없다. 그 후로 다시 본 적이 없으니까. 다만 전화 통화를 한두 번 한 적은 있어도.

 

 “역시 그 애가 또 뭔가 저지른 거야?”

 

 린이 왠지 알 것 같다는 투로 그렇게 말하는 것을 듣고 우즈키는 당황했다. ‘역시'나 ‘또' 등의 단어 선택은 린이 혼다 동생에 대해 품은 기본 인상을 암시하고 있었다. 물론 린이나 우즈키 입장에서 그것은 당연한 일이겠지만 어쨌든 바로 ‘그 애'의 누나에게 하는 말로는 섬세한 발언이라고 하기 어려웠다. 별 생각 없이 그렇게 물었던 린도 쓴웃음을 짓는 미오를 보고 아차 싶었는지, 곧장 보다 긍정적인 방향으로 부연에 나섰다.

 

 “그러고 보니 지난번에 미오가 몸살 걸렸을 때, 미오네 동생이랑 얘기한 적 있어. 꽤 귀엽더라.”

 

 “맞아, 그랬어요! 그 때 동생분이 하는 얘기 듣고, 미오를 참 걱정해주는 아이구나 하고 생각했는데.”

 

 어쩌다보니 변명하는 식이 되긴 했지만 거짓말은 아니었다. 스레드에서 벌였던 그 짓이 괘씸한 소행이기는 했지만, 지난 일은 지난 일이고 이미 용서하기로 한 일이니 그 부분을 너그러이 넘어간다면, 혼다 남동생은 꽤 귀여운 구석이 있는 아이다. 사춘기의 한가운데를 지나는 남자아이답게 툴툴거리면서도 결국 아이같은 티를 벗겨내지 못하는 태도가 특히. 가령 처음 만난 누나의 친구들에게 어버버 거리면서 어색하고 쑥스러움을 감추지 못하던 모습도 쿡 하는 웃음이 나올 만하다. 또 미오가 몸살로 일을 쉬어야 했던 날, 걱정해서 전화를 건 우즈키의 부탁에 허세에 가까운 의욕을 보이기도 했다. 우즈키 본인은 ‘누나를 참 걱정하는구나, 기특하게도' 정도의 인상밖에 내리지 못한 듯하지만.

 

 “학교도 빠지고 몸살난 누나를 간병해줬다면서요. 얼마나 기특한 동생이에요. 전 외동이니까, 그렇게 아플 때 도와줄 형제자매가 있구나, 생각하면 좀 부러워져요. 헤헤헤….”

 

 “하긴 나도 그 땐 좀 다시 봤어. 뭐랄까, 남매끼리는 서로 앙숙으로 만들어졌다 어쩐다 그러면서도 미오를 걱정해주는 게 보였으니까. 역시 형제자매란 서로 의지가 되는 관계구나. 있으면 분명 재미있을 것 같아.”

 

 미오는 우리 집 웬수에 대한 두 친구의 과분하게 호의적인 평가를 듣고서도 ‘아마도 걔는 그냥 학교 빠질 핑계가 필요했을 뿐일 걸'이라는 전문가적 견해를 피력하지는 않았다. 그 대신 콜라 잔을 입에 가져가 잠깐 기울이고는 말했다. 그 음성에 떨림이 느껴지는 건 입을 저리게 하는 탄산 때문만은 아니었으리라.

 

 “걔가 지금 삐쳐가지고 집 나갔어… 가출했다고.”

 

 말 한 마디로 누군가의 오판을 바로잡는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이 순간의 혼다 미오는 진정 뛰어난 리더의 자질을 보여주었다고 해도 좋다.

 

 형제자매란 참으로 다사다난한 관계구나.




 경위를 요약하면 이러하다. 누나와 동생이 있다. 누나가 장난을 걸었다. 동생이 욱했다. 이에 누나도 화를 냈다. 싸웠다. 서로 삐쳤다. 그러다 동생이 집 나갔다. 끝.

 

 “뭘 가지고 싸운 건데?”

 

 미오의 요약이 사정을 아무것도 말해주지 못한다는 것을 지적하는 질문이었다. 눈빛으로, 린은 자세한 설명을 요구했고 우즈키는 경청하겠노라는 뜻을 전했다. 잠깐 어깨를 이리 저리 비틀던 미오는 가는 한숨을 첫머리로 삼아 해야 할 이야기를 꺼냈다.




 일반의 시각으로 봐도 그렇고, 특히 이 대화에 한해서는 화자한테나 청자한테나 새삼스럽기 짝이 없는 사실. 아이돌이란 피곤한 직업이다. 노래하고, 춤추고, 말하고, 자세 취하고. 아무튼 순간 순간의 재치와 변함없는 밝은 태도, 쉼 없는 몸의 움직임의 병행을 요구하는 일이며 그 행동 하나하나를 위해서 짧아도 수 시간, 길면 몇 주 씩의 예행연습을 요구받는다. 게다가 가만히 있어도 땀이 말로 쏟아질 듯한 이 후텁지근한 계절에 일을 몇 탕 뛰다 보면 아무리 점잖고 참을성 강한 사람이라도 태양을 향한 살의에 사로잡히기 마련이다.

 

 그러나 태양은 지난 50억 년 간 휘하 행성의 미물들에게서 감히 도전을 접수한 역사가 없으며, 따라서 불가능을 인정할 줄 아는 똑똑한 사람은 무의식중에 그 충만한 적의를 발산할 다른 대상을 찾게 된다.

 

 다시 말해, 사람이 별 것 아닌 일로 내면의 폭력성을 확인하기에는 딱 이맘때가 제철이다. 그것만이 이유라고 할 수야 없겠지만, 혼다 남매의 그 싸움도 사실 본질은 불쾌지수의 장난이었다.

 

 “동생~ 누나 왔는데 인사 안 하냐!”

 

 “뭐, 뭐야!”

 

 호기롭게 동생의 방문을 열고 들어간 누나의 눈이 반짝였다. 침대에 앉아 있던 동생이 문이 열리자마자 시뻘개진 얼굴로 경황없이 등 뒤로 무언가를 숨기는 모습은 누가 봐도 수상쩍었다. 그리고 남자 중학생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그 물건이 무엇인지 예상하기는 어렵지 않다.

 

 욘석이 벌써 남자라고. 미오의 장난기가 발동했다.

 

 “동생~ 허리 뒤에 숨긴 거 뭐야?”

 

 “아무것도 아니거든.”

 

 아무것도 아닌데 왜 그걸 잽싸게 이불 아래로 집어넣는 걸까. 이 누나는 다 알고 있어요.

 

 그래도 아직 바지 입고 있을 때 들어왔으니 타이밍은 좋았네. 한창 뜨거울 때(?) 들어왔으면 아무리 친남매라도 조금 많이 민망했을 거야. 실없는(그러나 실현되었다면 농담으로 끝나지 않을) 생각을 하면서도 미오는 겉으로 능청을 떨었다.

 

 “뭐 맛있는 거 먹고 있었어? 그럼 누나한테도 나눠 줘야지. 요 녀석, 이리 내 봐!”

 

 “머, 먹을 거 아니야! 누나는 필요 없는 거야!”

 

 누나도 알아. 쓰려는 거 아니니까 보기만 하자.

 

 “됐으니까 비켜 보라고. 뭘 숨겼나 보기만 할 테니...까! 아자!”

 

 자신이 이불 안에 찔러넣은 손을 빼낼 때 동생이 지은 만감이 뒤섞인 표정은 미오에게 흡족한 쾌감을 주었다. 그리고 손에 잡히는 감촉은 예상대로 종이질의 얇은 잡지로 추정되는 물건. 악을 쓰고 팔을 휘저으며 덤벼드는 동생을 풀 마운트로 제압하고 잡지를 찬찬히 살펴보기로 했다. 동생의 여성 취향을 확인하고 점검하는 것은 누나의 권리인 것이다. 아마도.

 

 ‘우리 동생이 어떤 스타일에 꼴… 끌리는지 어디 보자!’

 

   잡지로 눈을 돌렸다. 여성의 수영복 사진이 있다. 그럼 그렇지. 부드럽고 밝은 갈색 머리칼. 살짝 삐친 단발. 흔히 말하는 여성적인 이미지보단 남녀 안 가리고 활기차게 어울릴 것 같은 시원시원한 미소. 흠흠. 보는 눈 있는데. 그러나 목덜미 아래로 내려가면 발육이 좋은 흐벅진 흉부가 눈부시다. 이어서 건강하게 잘 빠진, 탄탄하면서도 군살을 찾을 수 없는 허리로 넘어가는 사이 얌전하게 옴폭 들어간 배꼽의 은근한 자기주장이 눈길을 끈다. 그 아래로 삼각형의 천이 가리고 있는 둔부는 홍시처럼 부드러운 가슴과 달리 잘 여문 자두 같은 탄력이 도드라진다…. 소년적인 스포티함이 지워지지 않은 얼굴과 여성적 곡선의 심미를 보여주는 몸매가 언밸런스한 듯 자연스레 어우러져 이루는 묘한 에로티시즘이 능히 사춘기 남학생의 흥미를 자극할 만한…

 

 “…… 나잖아?”

 

 …혼다 미오의 수영복 그라비아 사진이었다.

 

 예상치 못한 사태에 누나는 남동생을 깔아뭉갠 채로 당황했다. 그와 동시에 혹 자신이 지금 히든 상태에 있던 혼다 남매 금단의 사랑 루트의 분기점 이벤트를 열어버린 게 아닌가 하고 0.5초 동안 고민했다.

 

 그래서 그냥 물어보기로 했다.

 

 “너…. 설마 그동안 이 누나를 그런 눈으로….”

 

 “미쳤냐!”

 

 싹수없는 응답에 마음이 편안해진다.

 

 “그거 내 거 아니야. 이리 줘!”

 

 “으흠, 그치만 방금 이거 보고 있던 거잖아?”

 

 “내가 뭐하러 내 눈을 썩히겠냐고! 아무튼 내놔!”

 

 시뻘개져서 분을 토하는 동생을 보면서, 누나는 다시 고약한 장난기가 발동했다. 미오는 침대에 냅다 드러눕고는 몸을 틀어서 본인 나름의 섹시한, 그러니까 가슴과 엉덩이가 부각이 되는 포즈를 잡았다. 란제리 모델처럼. 그리고 살살 놀리는 목소리로,

 

 “뭐 어쩔 수 없나! 이 미오님의 다이너마이트한 매력에서 어디 동생이라고 도망칠 수 있겠어? 자자, 동생! 오늘은 특별히 이 누나의 섹시 보디를 욕망대로 쭉 감상해도 괜찮다고~?”

 

 ‘선머슴 주제에 웃기고 있네!’와 같은 짜증 섞인 대꾸를 기대하며 낄낄거리던 미오에게 동생이 보인 것은 예상치 못한 반응이었다. 물론 진짜로 음흉한 눈길로 누나의 몸매를 훑어 내린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와는 정 반대의 반응이었다.

 

 동생은 불쾌감과 한심스럽다는 감정이 섞인 싸늘한 눈으로 침대 위의 누나를 보고 있었다.

 

 “그러고 싶어?”

 

 “어?”

 

 시선뿐 아니라 입에서 나온 발언도 퉁명스럽기 그지없었다. 장난스런 분위기가 아니란 걸 알고 몸을 일으킨 미오에게 동생의 질타가 쏟아졌다.

 

 “그러고 싶냐고! 섹시 보디? 욕망? 동생한테 그게 할 말이야!”

 

 “어… 뭘 그렇게 예민하게 그래? 누나는 그냥 장난으로.”

 

 “장난으로 그딴 짓을 하는 게 문제란 거라고! 그러니까 그 자… 아니, 됐고! 그게 여고생이 할 농담이야? 일 나가서 그런 것만 배워?”

 

 독설의 방향이 아이돌 활동 쪽으로 뻗자 미오도 빈정이 상했다. 물론 오늘 좀 심하다 싶은 건 있었지만 그렇다고 이번 같은 장난이 처음도 아닌데 과민반응이다. 그리고 아무리 연장자가 참는 법이라고 해도 참고 넘길 선이란 게 있다. 아이돌 활동이나 아이돌 동료들에 대한 모욕은 미오에게 있어 역린이었다.

 

 “내 일 물고 늘어지지 마! 그리고 애초에 네가 내 그라비아나 보고 있었으니까 그런 거 아냐!”

 

 “말했잖아! 내 거 아니라고!”

 

 “그럼 네가 왜 가지고 있어!”

 

 “누나랑 상관 없거든!”

 

 더위와 피로감이 일시에 몰려들면서 남매의 전화(戰火)에 장작불 노릇을 톡톡히 했다. 이 시점에서 싸움은 이미 싸움을 위한 싸움이 되었으며, 익히 알려져 있다시피 그런 종류의 싸움은 감정을 해소하는 게 아니라 독기를 오르게 할 뿐이다. 혼다 동생이 내뱉은 ‘그 말'도 평소 같았으면 결코 생각도 하지 않았을 것이었다.

 

 “시끄러워! 그런… 아이돌 따위 요란하고 야시시한 짓거리나 하고 다니니까 그렇게 되지!”

 

 그것이 대전(大戰)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얼얼한 손바닥의 감각 때문에 사고를 되찾았을 때, 미오 앞에는 안경이 날아간 채 한쪽 뺨을 문지르고 있는 동생이 있었다. 잠깐 동안 미오는 무슨 사태가 오고 갔는지 인식하지 못했다. 내가 얘를 왜 때렸지? 얘가 무슨 헛소리를 지껄였어. 무슨 소리였지? 요란하고 야한 짓거리라 그랬어. 뭐를? 나를. 내 친구들을.

 

 가만 안 둘 거야.

 

 분노의 여울이 자제력의 둑을 부수고 치밀었다.

 

 “너 이게에에에에에! 지금 뭐라 그랬어!”

 

 “그런 바보 같은 짓이나 하니까 바보 됐다 그랬다, 왜!”

 

 “죽을래!”

 

 “내가 왜!”

 

 그 후의 경과는 미오도 잘 기억하지 못한다. 몸싸움이 있었고 폭언이 오갔다. 가슴의 우물 밑바닥에서 퍼올린 시시콜콜한 악감정들이 순식간에 맹독으로 변해 뿜어져나왔다. 동생이 고함을 지르면 미오도 맞받아 질렀다. 미오가 발길질을 하면 동생이 머리로 받았다. 한여름 오밤중에 방 안에서 벌어진 혼다 남매의 전쟁이 임시 휴전을 맺은 것은 돌아온 부모님의 중재와 꾸중 때문이었다. 그때 가서는 두 사람 다 싸운 이유 따위는 어찌 되든 좋았다. 서로 죽일 듯이 으르렁거리는 눈으로 노려보고 각자의 방문을 처닫는 것으로 그날 밤의 싸움은 막을 내렸다.

 

 그러나 전투가 식으면 냉전이 이어지는 법이다.

 

 대략 20 시간 동안 이어진 냉전은 다소 엉뚱한 방향으로 2차전을 불러왔다.




 “…그렇게 된 거야.”

 

 “그건 화낼 만 하긴 했네….”

 

 “미오는 그래서 오늘 아침부터 기운이 없었던 거군요….”

 

 친구의 이야기를 들은 우즈키와 린은 난감했다. 형제 자매는 없었지만, 별 것 아닌 시비가 큰 싸움으로 번지는, 으레 있을 법한 평범한 형제 싸움이라는 것 정도는 느낌으로 알고 있었다. 미오의 놀림이 다소 과했던 것이 불씨였지만 혼다 동생이 내뱉은 발언은 너무 심하다. 물론 홧김에 내던진 말이니 그것이 진심이라고 생각하긴 어렵지만, 아이돌이라는 일과 그 인간관계에 각별한 애착을 가지고 미오로서는 무심코 나온 말이라고 너그럽게 거를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남의 집 동생을 함부로 비난하거나 매도하는 것도 적절한 반응이라 할 수는 없으므로 두 사람은 멋쩍게도 애매한 위로를 건네줄 뿐이었다. 게다가, 미오가 굳이 이 낯부끄러운 가정사를 두 친구에게 털어놓은 것은 단순한 울화 토로나 시시비비를 따지려는 이유가 아니다.

 

 지금 가장 큰 문제는 싸우고 화가 난 동생이 가출해버렸다는 것이다.

 

 “동생분이 큰일이잖아요. 지금 어디에 있을지도 모르는데….”

 

 “아, 그건 걱정 마. 그 녀석 갈 데가 뻔하지…. 자취하고 있는 오빠 집에 들러붙었대. 오빠한테 무슨 일인 거냐고 연락 왔어.”

 

 그러고 보니 미오에게는 동생 말고도 대학생 오빠가 한 명 있다고 했다. 얼굴은 보지 못했지만. 두 사람은 이야기가 나오기 전 미오가 받았던 전화를 떠올렸다. 아마 혼다네 오빠가 느닷없이 쳐들어온 막내 동생에 놀라서 걸었던 전화인 모양이다.

 

 “그럼 일단 걱정은 없는 거네. 부모님한테 연락 간 거야?”

 

 “아직… 걔가 오빠한테 알리지 말아달라고 뭐라 했나 봐. 우리 오빤 사람이 너무 좋달까, 기가 약해서.”

 

 “그치만 계속 거기 있으면 오빠분께도 폐…가 되겠죠?”

 

 “이미 폐야. 동생 쳐들어오는 바람에 달래느라 오늘 알바도 쉬었대. 아~ 진짜 짜증나!”

 

 우즈키와 린은 서로를 마주보았다. 싸운 당사자들이야 둘째 쳐도 아닌 밤중에 날벼락 맞은 그 오라버니 운수도 고약하다. 아무리 여름방학 중이라지만 중학생이 싸우고 나가서 집에 들어오지 않는 건 여러모로 좋지 않다. 혼다 동생만해도 마냥 남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노릇인데, 이대로 냉전이 길어지면 미오도 심리적으로 악영향이 가리라는 것은 뻔하다.

 

 린도 우즈키도 그런 친구를 내버려 둘 수 있는 성격은 되지 못한다.

 

 “어쨌든 일단 데리러 가야지. 거기 계속 두면 부모님이나 오빠나 걱정일 거 아냐.”

 

 “나보고 가라고? 싫어. 그럼 내 쪽에서 사과하는 것처럼 보이잖아.”

 

 “미오….”

 

 “애초에 좀 놀렸다고 함부로 그따위 말 싸지르는 녀석이 나쁜 거지! 게다가 뭐야, 가출? 지가 뭘 잘했다고 가출을 해! 나도 기분 잡쳤어! 그런 자식 맘대로 하라지!”

 

 아무리 그렇다고 누나 보기 싫어서 가출까지 해? 화나도 내가 더 화났지. 자기가 함부로 지껄여댄 건 생각도 안 하고…. 뭔데? 내가 뭐 걔한테 잘못한 거 있어? 살짝 놀려준 거? 아아, 그렇네. 근데 그거 때문에 집 나가는 녀석이 어딨어? 기가 막혀서. 내가 왜 먼저 숙이고 들어가야 해? 내가 연장자고, 내가 더 화났는데. 애초에 그 자식이 그런 잡지나 가지고 다니니까 내가… 그런 주제에 뭘 나더러는 요란하다느니 뭐니…. 짜증나!

 

 동생한테 하는 말인지 두 사람한테 하는 말인지 아니면 그냥 허공에 대고 투덜거리는 건지 모를 불평불만들이 가열차게 터져 나왔다. 한마디로 자기가 더 험한 꼴 당했고 자존심 상해서라도 먼저 화해하는 제스처는 못 취하겠다는 소리다. 하지만 우즈키도 린도 알고 있었다. 절대 그럴 생각이 없었다면 처음부터 두 사람에게 상담을 청하지도 않았을 테지. 성토 중인 미오의 등을 쓰다듬으며 우즈키가 제안했다.

 

 “미오, 그러면….”




 우즈키와 린은 덜컹거리는 전철에 몸을 실었다. 처음 타보는 노선이었지만 그렇게 먼 거리도 아니어서 긴장되지는 않았다. 요즘 세상은 주소만 알면 스마트폰으로 금방 길을 찾을 수 있으니 편리하다. 두 사람이 걱정하는 건 그 부분이 아니었다. 첫째는 물론 혼다 동생을 잘 달래서 누나와 화해시키는 것, 그리고 다른 하나는

 

 “미오의 오빠분 처음 뵙는데, 어떤 분인지 조금 긴장돼요.”

 

 “그러게. 미오 같은 스타일이라면 조금 대하기 편할 텐데.”

 

 뭐 미오가 사람 좋은 오빠라고 했으니까 괜찮은 분이 아닐까. 린은 손목시계를 보았다. 가는데 이십오 분쯤 걸린다고 했으니 곧 도착할 것이다. 그녀는 조금 전 있었던 대화를 회상했다.

 

 ‘저랑 린이 먼저 오빠분 자취집으로 가서 동생분이랑 얘기를 나눠 볼게요. 미오는 집에서 기다리다가 저희가 데리고 오면 남은 감정 풀고 화해하세요.’

 

 ‘에? 안 돼, 시마무. 그건 민폐지.’

 

 ‘난 괜찮다고 생각해. 그 아이, 우리한테 빚이 있으니까 우리 말에는 잘 따를지도 모르잖아.’

 

 ‘아니… 그럼 그냥 전화로….’

 

 ‘전화는 너무 성의 없잖아요. 미오도 많이 화가 났지만, 틀림없이 동생분도 뭔가 그런 말까지 한 사정이 있을 거예요. 차근차근 들어보고 싶어요.’

 

 ‘그래도 안 돼. 남의 집안일로 민폐나 끼치고 그런 건 이 미오는 결코….’

 

 ‘미오, 우린 그냥 남이 아니잖아요.’

 

 ‘미오, 계속 그런 일로 스트레스 받아서 활동에 영향 생기면 그땐 우리 모두의 문제가 되는 거야.’

 

 ‘으으…….’

 

 린은 살짝 웃었다. 생각해보면 자신이나 우즈키나 오지랖이 많이 넓어진 것 같다. 어쩌면 미오한테 옮은 것일지도. 그렇다면 미오는 우리한테 민폐를 끼친다고 전전긍긍할 입장이 아니다. 우즈키가 먼저 자신이 만나보겠다고 나선 것도, 그런 마음이 있어서겠지.

 

 우즈키와 린은 역에서 내렸다. 주변에 보이는 건물들 중 좀 떨어진 곳에 척 보기에도 낡아 보이는 아담한 사이즈의 빌라가 있었다. 그 앞으로 걸어갈 때마다 조금씩 긴장이 몸에 살아나기 시작했다. 침을 꿀꺽, 삼키고 초인종을 누른 건 우즈키였다.




 전일 오후 8시부터 현재에 이르는 기간 동안 벌어지고 있는 혼다 가(家)의 남매전쟁을 동생의 전술행동 중심으로 평가해 보자.

 

 한 차례의 주먹다짐이 벌어지고 이어 돌입한 냉전에서, 혼다 동생은 고전적이나 동시에 그만큼 유구한 전례를 통해 그 효과가 입증된 집안싸움의 기본 전술을 채택했다. 즉 ‘방 안에서 농성'이라는 방법을 취함으로써 자신의 분노와 억울함을 시위하기로 한 것이다. 단기전술적인 측면에서는 효과적이라고 볼 수 있으리라. 자고로 무언의 주장보다 강한 주장이 없는 법. 필요한 것은 자물쇠 달린 방과 몸뚱이, 참을성을 빙자한 오기면 족하다. 그리고 중학생 남자에게 그런 오기는 썩어 넘치도록 있다. 생산적인 방향으로 쓰이는 일은 거의 없지만.

 

 그러나 냉전의 장기화는 작전의 피할 수 없는 허점을 드러냈다. 문 안에서 농성을 하려면, 문 밖에서 애가 탈 사람이 있어야 한다. 부모님은 맞벌이를 나가고 누나 역시 아이돌 일로 출근한 냉전 2일차 아침, 혼다 동생은 자신이 무(無)의 세계에서 존재를 입증코자 하는 실존 철학의 대과제에 도전하고 있음을 깨닫고 절망했다. 뼈저린 후회를 동반하면서. 여름방학이니까 누나도 학교에 안 가고 집에 있으리라 생각하다니. 어젯밤에 뭐 가지고 싸웠는지조차 잊어버린 얼간이가 아닌가.

 

 난처한 것은 그뿐이 아니다. 여름방학, 다시 말해서 본인도 밖으로 나갈 일이 없으며, …따라서 방 밖에 나갈 명분이 없다. 그의 농성이 다시 전술로서의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언제가 될 지 모를 가족들의 퇴근 시간까지 줄창 허무와 씨름하며 방 안에 처박혀 있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누나가 언제 일을 끝마칠지 모르는 판국에 안심하고 밖에 나가 있을 수도 없다. 이제 와서 자연스럽게 퇴근한 누나를 맞이하는 건 패배다. 자존심의 파괴다. 하지만 안 그래도 젊음의 포악을 부리고 있는 태양을 상대로 몇 시간씩이나 좁아터진 방에 틀어박혀 있는 건 뭘로 보나 심신에 대한 자해다.

 

 여기까지 생각을 정리한 다음 혼다 동생은 자신이 기본 전술 단계부터 실책을 저질렀음을 인정했다. 질풍노도의 오기는 으레 무익함에 헌신하는 것을 긍지로 삼기도 하지만, 오기란 것도 최소한 그 탓에 골치 아파질 누군가가 있어야 성립하는 법이다.

 

 하여 혼다 동생은 자신의 전술을 전면 수정하기로 결정했다. 실책으로 판단된 과거의 고집에 연연하지 않고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자신의 영웅적인 모습에 그는 도취되었으리라. 혼다 동생의 새로운 대응 방침은 가출이었다. 역시 단기적인 면만 두고 보면 나름대로 괜찮다고 해줄 수 있을 것이다. 방 안에 요새를 짓고 며칠을 버티던 누나 입장에서는 전혀 상관할 게 없는 반면, 가출이라는 이상 사태는 좋든 싫든 상대의 행동을 유발할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누나에게 자신이 아직 화나 있음을 알리고, 누나의 반응을 이끌어내는 데까지는 동생의 생각대로 되었다.

 

 그러나 슬프게도, 이번에도 혼다 동생은 어설픈 장기적 안목을 보여주고 말았다.

 

 첫째, 부모님이 퇴근해 가출 사실을 알게 될 경우 사투는 더 이상 남매 간의 다툼으로 끝나지 않으리란 점. 둘째, 가출해서 온 장소가 ‘형의 자취방'이라는 뻔하디 뻔한 장소인 이상 상대의 짜증을 부를 수는 있어도 걱정이나 죄책감을 조성하지는 못한다는 점. 셋째, 그로 인해 싸움에 휘말린 제 3자들이라는 변수를 상정하지 못했다는 점.

 

 자신의 멍청함이 초래한 눈앞의 사태에 혼다 남동생이 아연해진 것은 냉전 2일차 오후 7시의 일이었다.

 

 “아하― 미안해요. 우리 바보 동생들이 바보짓을 하는 바람에 엉뚱하게.”

 

 소탈한 웃음과 함께 남자는 차와 간식거리를 담은 쟁반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티백 녹차와 맥주 안주용 땅콩의 부조화가 도드라졌지만 자취생의 생활에 조화미를 기대한다는 것이 부조리다. 손님들이 별 불만 없이 찻잔을 손에 들자 남자는 그 부분에 대한 걱정을 접었다. 대신 옆에 앉아있는, 살아 지껄여대는 걱정거리를 손으로 꽉 눌렀다.

 

 “너랑 미오 쌈박질 때문에 괜히 네 누나 친구들한테까지 폐잖아. 사과해, 인마.”

 

 “죄송합니다. …저 때문에 또 이렇게 돼서.”

 

 난감해 미치겠다는 표정을 하고 있는 혼다 동생은 앞에 있는 두 손님을 차마 쳐다보지 못했다. 미안한 것도 미안한 거고, 눈과 눈을 정면으로 마주치면 심장이 멈춰버리지 않을까 무서운 것이다. 여신님들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다니, 그런 불경을 저질러도 괜찮은 걸까. 그보다 여신님들께 이런 어처구니없는 수고를 들이게 하다니, 불경죄로 죽어야 하지 않을까. 아니, 이건 누나 잘못이다. 남매 싸움에 다른 사람을 끌어들이다니, 비열하게. 그것도 하필이면 이 두 사람을. 그렇게 속으로 이곳에 없는 상대에게 짜증을 내다가 얼결에 생각이 미쳤는지,

 

 “……죄송하다는 건 그… 두 분 한테 얘기고. 누나한테 미안하다는 건 아니에요.”

 

 부루퉁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부드럽고 온화한 인상의 소녀는 난처한 표정으로 귀여운 신음을 흘렸고, 쿨하고 똑부러진 인상의 소녀는 실례가 되지 않을 만큼의 강도로 한숨을 토했다. ‘고집 센 어린애를 상대하기란 피곤하네' 라고 말하려는 듯이. 말인즉 틀린 말은 아니지만 나이 차가 그렇게 많이 나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형은 동생의 지금의 말보다 앞서 한 말에 더 주목했다.

 

 “너 때문에… ‘또'? 너 예전에도 여기 애들한테 뭐 했어?”

 

 “어, 어?”

 

 그날 혼다 동생은 자신이 스스로 생각한 것보다 아득하게 더 멍청하다는 사실을 여러 번 실감했다. 옆에서 찔러온 추궁을 얼버무리기 위해, 그리고 인생 최대급의 흑역사(아직까지는)가 다시 화제로 떠오르는 자살 충동 치미는 사태를 피하기 위해 혼다 동생은 애걸하는 눈으로 정면을 보았다. 불경이고 나발이고를 생각할 때가 아니다.

 

 그의 애걸하는 눈에 들어온 것은 형제를 번갈아 쳐다보며 고민에 싸여 있는 두 여신, 좀 더 객관적인 표현으로는 몇 살 연상의 누나들의 모습이었다.

 

 “에… 그게 저기, 동생분이, 뭐 크게… 폐를 끼친 건 없…다고 할까, 뭐랄까….”

 

 이것은 시마무라 우즈키의 말이었다. 어떻게든 거짓말하지 않으면서 동생을 감싸주려 노력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그러나 슬프게도 그 우물쭈물하는 모습은 혼다 동생의 불안감만 부채질했다. 우즈키의 안간힘을 쓴 변명은 그 가상한 노력을 성사시킬 넉살이 결핍돼 있었다. 혹은 말재간이, 혹은 혼다 동생이 저지른 사고를 과소평가할 수 있을 만큼 비상식적인 사고력이.

 

 “그, 정말로 별 거 아니거든요. 아니, 그러니까 제 개인적인…생각으로는 그렇다고… 그러니까아….”

 

 다정다감하게 귓가에 울리는 절망에 혼다 동생이 눈물을 떨굴 뻔 했을 때, 냉정한 구원의 목소리가 들렸다.

 

 “예전에 미오네에 놀러 갔을 때, 동생분이 인터넷에 그 얘길 하는 바람에 좀 귀찮아진 적이 있거든요.”

 

 그렇게 말한 사람은 시부야 린이었다.

 

 틀린 말은 아니다. 인터넷 스레드에 뉴 제너레이션즈가 자기 집에 왔다고 떠벌린 건 사실이니까. 하지만 그건 사건의 서막이지 전부는 아니다. 문제는 그 이후에 혼다 동생이 벌인 짓으로,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떠올리는 것만으로 그때의 자신을 잡아 죽이고 싶어지는 환장할…. 진정하자.

 

 아무튼 저 냉정해 보이는 사람이 자신을 위해 사건을 축소 보고해 줄 줄이야. 지난번에 전화 통화하면서 ‘이번엔 넘어가겠다'라고 한 게 진짜였던 걸까. 그런 마음을 담아서 시부야 린을 쳐다보니, 린은 다른 두 사람이 눈치채지 못할 찰나에 째릿 하고 경고의 눈빛을 쏘아보냈다. 한 번 봐줬다고 털어넘길 생각 말라는 뜻이리라. 여부가 있겠습니까, 여신이시여.

 

 다행히 시마무라 우즈키도 그런 린의 말에 황급하게 맞장구를 쳐주었다.

 

 “네, 네. 그래서, 잠깐 작은 소란이 일어난 정도인데, 다 금방 해결됐으니까요. 별로 신경 쓰지 않으셔도 돼요. 에헤헤.”

 

 “하여튼 이 녀석아, 쪽팔릴 짓 좀 하지 말아야지….”

 

 “아, 형….”

 

 장난스레 동생의 머리를 헤집는 형의 모습을 우즈키와 린은 빤히 바라보았다. 내색은 안 했지만 두 사람 다 유닛 동료의 친오빠인 눈앞의 남자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확신이 서지 않고 있었다. 미오가 사전에 얘기한 대로 선량하고 사람 좋아 보이는 인상에, 미오 만큼의 활달한 기세는 드러나지 않는, 평범하게 온화한 사람이었다. 그 평범하게 온화한 태도가 두 사람에게는 도리어 생경했다.

 

 미오의 오빠는 두 사람의 직업이나 유명세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을 뿐더러, 아예 모르는 사람과 별반 다를 것 같지 않은 태도로 동생의 친구들을 맞았다. 현관문을 연 순간 그가 보여준 놀란 표정은 TV에서 보던 아이돌이 자기 눈앞에 나타났다는 경악감보다는 초면인 연하의 여자애들이 느닷없이 자기 집에 찾아온 사실에 대한 당혹감에 가까웠다. 그는 시마무라 우즈키와 시부야 린에게 ‘여동생의 아르바이트 친구' 이상이나 이하의 입장을 부여할 생각은 없는 듯했다. 사인이나 악수를 요청하거나 상투적인 ‘팬입니다'라는 인사치레도 하지 않았다. 대신 간단한 통성명 뒤 뒷머리를 긁적이며 ‘미오는 같이 안 왔나요? 아, 그래요? 그 바보가 하여튼…’ 이렇게 말하고 배시시 웃었을 따름이다.

 

 활기차지는 않지만 상냥한 사람이었다. 그 상냥함은 자신들이 아이돌이 아니라 평범한 여고생이었어도 한 치의 변함도 없었을 것이며, 아이돌 시마무라 우즈키나 아이돌 시부야 린으로서가 아니라 집에 찾아온 한 명의 손님이자 대화를 나누는 사람을 향한 진심 어린 성의에서 나온 상냥함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그 사실이 고마우면서도 얼떨떨했다.

 

 “자, 그래서 이렇게 이쁜 누님들이 몸소 찾아오기도 했으니까… 이제 집에 가라?”

 

 “싫어!”

 

 형제의 대화가 소녀들을 관찰자에서 본래의 처지로 복귀시켰다. 우즈키와 린은 친구의 오빠의 첫인상을 살피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음을 상기했다. 불퉁한 표정의 동생은 세 방향에서 오는 시선을 피하기 위해 방 한 구석에다 시선을 고정해 놓고 있었다.

 

 “어차피 학교도 안 가니까 방학 동안에 여기 있어도 되잖아.”

 

 “네 맘대로? 나 혼자 있기도 좁아터진 집구석에 쓸데도 없는 몸뚱이 더 들이기 싫거든.”

 

 몸뚱이의 주인은 자신의 쓸모 없음을 수긍할 생각이 없었다. 동생은 황폐한 슬럼가를 헤매는 어린아이 같은 처연한 표정으로, 난폭한 누나의 횡포와 무심한 부모의 냉대와 구박만이 사방에 도사리는 감옥 같은 집에서 신음하는 어리고 여린 아우의 해방자가 되어 따뜻한 눈길과 안락한 쉼터를 마련해주는 것이야말로 먼저 출가독립한 형으로서의 의리가 아니냐고 설득을 개시했다. 형이 비장한 목소리로 ‘그럼 네가 엄마 아빠한테 가서 그렇게 말하고 허락받으렴. 나는 목공소 들러서 오동나무 침대 하나 주문해 놓을 테니…’ 라고 대꾸하는 와중, 낭랑한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끼어들어서 미안한데, 잘잘못부터 확실히 해야 할 것 같은데.”

 

 형제의 주목에 아랑곳않고 린은 말을 이었다. “미오랑 싸운 거 말야. 대략 이야기 들은 바로는 먼저 놀린 건 미오지만, 이렇게 일을 키운 건 그쪽으로 보이거든. 특히 누나한테 했다는 말 중에…” 잠깐의 휴지를 두고 린은 짧게 숨을 뱉었다. 냉정을 유지하려는 그녀 나름의 준비동작이었지만, 이어지는 목소리는 그 효과를 의심케 할만큼 날이 서 있었다. “우리로서도 절대 그냥 넘길 수 없는 말이 있었거든?”

 

 그 목소리와 질타의 눈빛이 혼다 동생을 위축시켰다. 반쯤 농담투로 얘기를 받아주던 형도 분위기의 급랭을 감지하고 미묘한 표정을 지었으며, 왜 동생을 맞이하는 데 오동나무 침대가 필요한지를 진지하게 궁금해하고 있던 다른 한 명도 퍼뜩 린 쪽을 돌아보았다. 린은 가차없었다.

 

 “그동안 우리를 요란하고 야한 여자들이라고 생각했구나.”

 

 밟아 다진 감정이 무감정으로 굳은 듯한 한마디였다. 심장을 겨누어 쏜 드라이아이스 화살처럼 체열을 앗아가는 차고 건조한 말투.

 

 “아아아뇨! 그건 홧김에! 홧김에 그런 거고요! 누나한테 했던 얘기지, 결코 두 분이나, 다른 아이돌 분들께 그렇게 말한 건 절대 아닌데! 그 말을 하다 보니까, 어,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누나한테도 할 소린 아니라고 보는데. 그리고, 생각도 하지 않고 있었는데 그런 말이 나올 리가 없잖아.”

 

 이상하다. 나 용서받은 거 아니었나? 사형수에게 주는 마지막 은혜였던 건가 그건? 목소리가 격앙되지는 않았지만 화를 숨길 생각도 없어 보였다. 하긴 혓바닥을 경솔히 놀린 쪽의 죄니 그저 석고대죄할 도리밖에 없다. 여신님들의 자신에 대한 평가가 회복 불능의 데드라인을 파고들어감을 느꼈다.

 

 “말해 두는데, 내가 미오라도 그런 말은 가만 안 뒀어.”

 

 화살은 한 발에 그치지 않았다. 듣고 있던 우즈키는 친구에게 검사의 재능이 있음을 처음 알았다. 검푸른 머리의 소녀는 자신의 친구이자 소년의 가족인 그 아이가 직업에 대해 가진 긍지, 그 힘겨움, 그 각별함을 설명하고 그것들을 가족에게 모욕당한 순간의 심정에 대해 생각해 볼 것을 촉구했다. 과격하고 원색적인 어휘도 없이, 외교적인 수사도 없이, 화난 것을 화났다고 말하고 돼먹지 못한 일을 돼먹지 못하다고 말함으로써 깨끗하고 울림 있는 목소리로 상대의 합리화의 장벽을 파괴했다.

 

 “그런데 그런 말을 해 놓고서, 말을 주워담을 생각은커녕 가출은 하고. 반항심도 정도껏이지. 해서는 안 되는 일의 구분 정도는 있어야 하는 게 아니야?”

 

 “죄송합니다….” 그렇게밖에 말하지 못하는 동생의 모습은 측은할 정도였다.

 

 린 역시 아차 싶었다. 그녀는 집으로 돌아갈 것을 설득하러 온 것이지 호송을 하러 온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미오에게서 동생이 했다는 그 말을 전해들은 이후로 린은 소년에게 도무지 너그러워질 수가 없었다.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을 짚고 넘어가겠다는 작정으로 말을 꺼냈는데, 그렇게 올이 풀리니 열이 치솟는 것을 억누를 수 없었다. 속에서 터져나오는 것을 말로 꺼내면 곧잘 직설이 되는 것이 소녀의 천성이었다.

 

 잠자코 신문을 지켜보고 있던 혼다 오빠는 긴장된 목을 가다듬었다. ‘자자, 동생을 위해 그렇게 화내 줘서 고마워요. 미오는 참 좋은 친구를 뒀네. 그런데 일단 그건 여기까지 하고…’ 그런 말을 준비하고 있는데, 한 발 앞서 낭랑한 목소리가 방 안을 조금 데웠다.

 

 “동생분.”

 

 “네.”

 

 “동생분이 한 말은 나빠요. 혼나야 해요. 어쩜 그런 말을 하나요! 저도 동생분한테 실망했어요. 절대로, 절대로 그런 말은 하면 안 되는 거예요! 저희들은 사람들이 웃어줬으면 하니까 언제나 열심히 하고 있어요. 저희만이 아니라, 모든 아이돌들이 다 그럴 거예요. 아이돌이란 절대 요란하거나… 그런 일이 아니예요! 우리는…”

 

 앞선 린의 질책보다 훨씬 감정적인 목소리였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말랑말랑한 꾸짖음이었다. 그 공손한 어투까지 더해서, 마치 잘못을 저지른 초등학생을 잡도리하는 신참 여선생 같았다. 그래서 우즈키의 꾸중은 소년의 몸에서 묶인 듯한 압박감을 풀어 주었다. 아까까지 수죄를 받는 피의자였던 소년은 이제 설교를 듣는 말썽꾸러기가 되었다. 혼다 오빠는 이 일련의 분위기 변화가 흥미로운 상호작용이라고 생각했다. 소녀들 자신은 그런 생각이 없는 것 같지만.

 

 “우으으, 그치만, 반성했으면 됐어요. 반성했죠?”

 

 “네! 그럼요! 정말로 죄송합니다! 앞으론 절대 이런 일 없을 거예요”

 

 “다행이다. 그럼, 이제 미오랑 화해하세요. 누나를 걱정시키면 안 되잖아요. 네?”

 

 “어――……”

 

 만약 이 흐름을 의도한 것이라면 대단한 수완이다. 그 눈빛과 천진한 웃음에는 소년이 자신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담겨 있었다.

 

 그러나 소년에게 상황은 이미 물러설 수 없는 싸움이었다.

 

 “저어, 그건 그거고… 솔직히 누나도 잘못이 있으니까, 저만 사과하고 끝나는 건 조금.”

 

 “네에~?”

 

 어, 어라? 우즈키는 순식간에 언니답던 태도를 잃고 허둥지둥했다. 우우 하는 귀여운 신음을 내며, 도와달라는 표정으로 소년의 형에게 물기 많은 눈망울을 향했다. 청년은, 소녀의 따사로운 허술함에 옅은 미소를 지으며, 나라고 용 빼는 재주 있겠냐는 식으로 어깨를 으쓱할 뿐이다.

 

 사실인즉, 그는 이 무대에 배우로서 끼어들기보다는 집중하는 관객으로서의 위치를 고수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애절한 눈망울은 소녀의 유일한 아군에게로 향했다. 한 살 많은 이 친구의 강아지 같은 몸짓에 애정을 느끼며 린은 그동안 다부지게 당겨 왔던 뺨을 풀었다. 그 나잇대 답게 어리고 선드러진 미소가 린의 수려한 얼굴을 스쳐지나갔다. 물론 고개를 동생 쪽으로 돌렸을 땐 의식적으로 무뚝뚝한 표정을 되돌린 이후다.

 

 “자존심 지키려는 건 알겠지만, 나는 무리라고 생각해. 가출이라는 선택을 한 시점에서 이미 네가 졌다고 보거든.”

 

 “자, 자존심? 자존심이라니… 아, 맞아요. 미오도 직접 말하기 부끄러우니까 그렇지, 분명 화해하고 싶을 거예요. 저희도 그걸 아니까 이렇게 여기까지 온 거고요.”

 

 “그리고 어차피 밤이 되면 부모님도 아시게 될 거 아냐? 그럼 설득이 아니라 그냥 끌려 가도 할 말이 없을 걸. 부모님 손에 붙들려 가는 것보단 지금 자기 발로 가는 게 더 괜찮은 결말 아니야?”

 

 “동생분, 이미 누나를 걱정시켰잖아요. 부모님이 아시면 또 얼마나 곤란하시겠어요? 화해가 쑥스러우면 우리도 도와줄테니까요, 네?”

 

 성격의 차이가 부른 자연스런 역할 배분이지만, 청년은 두 소녀가 각자의 적재적소를 잘 알고 연합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고운 바이올린과 맑은 첼로 같은 둘의 목소리는 음색만으로 듣는 이의 정신에 이완과 긴장을 번갈아 주었다.

 

 자신의 첫째 동생을 비올라 삼아 소녀들의 사이에 넣어 보았다. 퍽 재미있는 삼중주가 될 것임이 분명했다. 뉴 제너레이션의 자랑스런 리더의 오라버니는 동생과 두 친구가 평소 어떤 모양새로 사귀는지 대충 알 것 같았다.

 

 동생은 고집스럽게 눈을 피하고 입을 닫았다. 지리멸렬해지기 전에 이야기를 다음 장으로 이끌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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