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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데렐라 판타지] 편광렌즈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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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1-05, 2017 23:12에 작성됨.

윤활유가 덜 발린 기계들이 찢어질 듯한 신음소리를 흘리며 돌아간다. 독특하고 끔찍한 악취들이 공장 곳곳에서 흘러나오는 슬러그에서 생성되는 동안, 노동자들은 청록색 녹물과 은회색 증기를 온 몸으로 받아가며 끈적한 무언가가 든 자루를 등에 메고선 옮기고 있었다. 고열의 환경을 버티지 못한 작업원이 한 명 쓰러지자, 그가 메고 있던 자루의 내용물이 튀어나와 그의 온 몸을 뒤덮었다.

 

"5번 라인 사고 발생!"

 

"옆으로 치워놔! 너희들은 계속 작업해!"

 

쓰러진 사람을 도와주려던 작업원들을 반장 격의 사람이 제지하며 작업을 재촉한다. 신경질적인 목소리가 시끄러운 공장의 소음 사이를 메우는 도중, 작업반장은 그의 제지를 듣지 않는 한 여성을 발견한다. 그 여성은 환자의 곁에 앉아, 상처를 보고 약을 발라주고 있었다.

 

"너 뭐야?! 귓구멍에 좃이라도 박혔어?! 당장 작업으로 돌아가!!"

 

작업반장이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녀의 가슴을 뒤에서 쥐고 억지로 끌어낼 생각이었다. 자기 권위도 세우고, 작업도 진척시키고, 무엇보다 괜찮아 보이는 젖도 잠시 맛보고.

일석삼조를 노리기 위해 손을 뻗은 순간, 작업반장이 쇠 기둥에 쳐박혔다. 그는 기둥에서 서서히 흘러내리고 나서야, 자기가 손짓 한 번에 날아가 쇠기둥에 쳐박혔다는 걸 깨달았다. 상황을 인지한 통증이, 그의 몸이 아슬아슬하게 부숴지지 않았다는 걸 고통으로 알려주기 시작했다. 컥컥, 켁, 숨 넘어가는 소리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도록 막고 있었다.

 

"네녀석! 무슨 행패냐?! 이 분들이 어떤 분인지는 알고나 있는 거냐?!"

 

미무라 카나코가 쓰러진 작업원에게 치유의 주술을 걸어주는 동안, 카미조 도마는 날아간 작업반장의 녂살을 양 손으로 잡고 집어올렸다.

 

"죄송합니다! 설마 이런 일이 일어날 거라곤.... 이 자식은 당장 해고시키겠습니다."

 

"저런 건 됐고, 붕대 좀 가져와주세요. 깨끗한 걸로."

 

그녀는 자신이 날려버린 작업반장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카미죠 도마가 허둥대며 붕대를 찾는 동안, 카미죠 하루나는 고개를 90도 이상 숙이고 그녀에게 사과했다.

 

"조, 죄송합니다!!"

 

"고개 들어요. 나중에 이야기할 테니까."

 

앞으로 캔디 아일랜드의 중책을 맡을 여성이, 이곳에서 굉장히 무례한 대접을 받았다. 카미죠령과 그녀의 신변에 좋을 리가 없다. 하루나의 머리가 급속도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어떡하지? 지금 바로 저 작업반장인지 하는 놈을 죽여버려야 하나? 아니지, 일단 하옥시킨 다음에 형식적인 절차를 거쳐서 제대로 사형시켜야 하나? 이 일을 무마할 수는 있나? 지금 목격자가 한둘이 아니라 숨기는 것도 무리고...... 아, 그렇지.

 

카미죠 하루나의 머리가 복잡하게 돌아가는 동안, 카나코는 환자를 치료하며 주변을 주의깊게 둘러보았다. 노동자들 대다수는 뜨거운 물건을 다루다 입은 화상과 화학약품 때문에 입은 화상을 몸 곳곳에 달고 있었다. 체격은 다양했지만, 마른 사람이나 찐 사람이나 영양 상태는 그리 좋아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방금 그녀가 한 손으로 날려버린 작업반장을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정체불명의 만성 질병을 앓고 있었다.

기계 바닥의 틈 사이로 들어간 아이가, 탁한 눈동자로 그녀를 보고 있었다. 그녀는 자기 쪽을 보는 게 우연이라고 판단했다. 그 아이의 눈은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었으니까.

 

"......심각하네."

 

아이카와 치나츠가 툭 던지듯 말했다. 인력 관리 상황에 대해서인지, 근무 환경에 대해서인지는 말하지 않았다. 카미죠 도마의 얼굴이 곤혹스럽게 우겨진 순간, 하루나가 툭 치고 나가며 사과하기 시작했다.

 

"카미죠령의 영주로서, 갑작스레 벌어진 이번 사태에 대처하지 못한 점 사과드립니다. 저 자의 처분은 여러분의 뜻에 맏기겠습니다. 또한,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영주로서 단속을 철저히 하겠습니다. 카미죠 도마 대표님, 이곳 공단에서 다시는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저희가 사람들을 파견하겠습니다."

 

"아, 예.... 가능하면 공단 입주 기업들의 자율성을 보장해주는 쪽으로 부탁드립니다. 저희는 왕국의 발전을 위해, 기존 귀족층보다 더 유능한 인재들을....."

 

'왕국이 막장인 건 알았지만 이 정도로 막장인 건가' 카나코는 지금이라도 캔디 아일랜드 이야기를 거절하는 게 좋지 않을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차라리 잘 짜인 꽁트라면 받아들일 수 있다. 하지만, 끔찍한 환경에서 끔찍한 사고가 일어났는데도 불구하고, 손님이자 고관대작인 사람 앞에서 자기들 아귀다툼이나 벌이는 꼴은 농담으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카미죠 하루나에 대한 세간의 평가가 조금 과장되어 있는 게 아닌가, 라는 의문마저 들을 지경이다.

 

"....이곳의 공정은 어떻게 되있나요?"

 

"아, 아! 공정 말이죠? 지금 바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자, 우선 이쪽으로 오시죠! 그리고 자네는 오늘 좀 쉬어. 이건 임금으로 받아두고. 그리고 이 쪽지도....."

 

카미죠 도마는 주머니에서 쥬얼을 꺼내, 카나코가 치료하던 사람의 주머니에 꽂아주었다. 환자의 치료가 아직 안 끝났다고 말하려던 카나코는, 돈을 받은 노동자의 제지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노동자는 조금 불편한 걸음걸이로 공장 바깥으로 걸어나갔다. 슬럼가 방향이었다. 노동자가 받은 쪽지의 내용이 무엇인지 그녀는 알지 못했다.

 

 

 

---

 

 

 

"녹인 소재는 여기 있는 틀들을 거쳐 초벌 가공을 합니다. 이 틀들로 말씀드릴 것 같으면......"

 

뜨겁다.

화학약품의 냄새가 코와 피부, 눈을 찌르며, 찌른 상처를 열이 다시 한 번 벌린다. 공단의 화학 연기 속에 비명과 신음 소리가 묻어나온다. 고통받는 육체를 쥐어짜, 영혼을 추출해선 다시 고문해서 고통의 액기스를 쥐어짜는 공장. 미무라 카나코는 이 곳이 성서에 나온 지옥과 비슷하게 느껴졌다. 기억 깊은 곳에서, 이러한 풍경에서 익숙한 그리움을 느끼고 있었다.

 

"아픈 사람들이 있는 곳에 가는 거니까 익숙해진 거야. 괜찮아....."

 

화학약품, 입을 벌리고 쏟아져 목을 태워, 배 속에 아무것도 남지 않아 거대한 구멍이. 내장이 녹아 흘러내리면 컬러플하게

 

".....괜찮아?"

 

"에?"

 

사죠 유키미가 카나코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그녀가 카나코를 걱정하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었지만, 카나코의 상태가 안 좋아 보인다는 건 사실이었다.

 

".....마스크 갈아. 그리고 약 발라."

 

카나코는 잠깐 숨을 참고, 얼굴을 뒤집어쓴 마스크를 벗었다. 거대한 고글이 그녀의 눈에서 떨어져나왔다. 그녀는 고글이 달라붙은 흔적이 남은 얼굴에 다시 마스크를 끼웠다. 길죽한 가죽 부리 속에 필터와 향초를 꽉꽉 채워넣은 마스크가 그녀에게 다시 신선한 공기를 공급해준다. 갑갑한 숨소리 속, 그녀는 연고를 꺼내 맨살이 드러난 부분에 다시 한 번 치덕치덕 바르기 시작한다.

치덕치덕. 연고로 갑옷을 만든다 해도 믿을 정도로. 치덕거리는 돼지기름 같은 연고가 카나코의 살에 들러붙는다. 그녀보다 칼로리는 낮다.

 

"괜찮으신가요? 이 곳은 위험하니 익숙하지 않으신 분은 돌아가시는 걸......"

 

카미조 도마는 뭐가 그리 불안한 건지, 온 몸을 방호복으로 둘둘 말고서도 고개를 좌우로 흔든다.

 

"다치는 건 상관 없습니다. 깊은 곳에 맹세컨데, 이 공단에서 오염 물질에 노출되 몸이 상했다고 해도 피해보상을 청구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불안하시다면, 옆에 계신 아이카와 심문관님이 증인을 서주실 수도 있습니다."

 

"그 점은 걱정 마세요. 오늘 방문한 사람들 모두, 이곳에 피해보상을 청구하진 않을 것입니다. 원하신다면 서류를 써 드릴 수 있으니 견학 종료 후 찾아와주시기 바랍니다."

 

"하, 하지만......"

 

신의 이름에 건 맹세를 앞에 두고도 무엇이 불안한지, 카미조 도마는 계속 일행을 제지하려 들었다.

 

"음.... 유키미쨩은 무슨 일 있으면 제가 다 보상해드릴께요."

 

"......보상은 따로 받을 곳이 있어. 여기서도 받으면 중복 수취...."

 

반면, 카미죠 하루나는 신이 나서 종교인 일행을 안내하고 있었다. 

몸에 그 어떠한 방호장비도 걸치지 않고서.

그녀는 이 맹독성 화학 안개 속을, 마치 신선한 밤공기를 즐기는 것 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거닐고 있었다. 그녀의 몸에서 나오는 은은한 푸른 기운이 스모그를 밀어내고 있었다. 도쿠가와 마츠리에게 죽빵을 꽂아서 물리치료와 참교육을 해준 것으로도 명망높은 그녀의 힘이, 그 정체를 조금이나마 드러내고 있었다.

 

"자, 안경 써보세요. 오염을 막아줄 거에요."

 

"맥락, 없음."

 

"기념품이에요. 그럼 설명 계속할께요. 이게 말이죠....."

 

유키미의 태클은 신경쓰지도 않았다. 페로가 안경을 쓰고 싶은 건지 옷 바깥으로 촉수를 뻗었지만, 유키미가 때찌하자 풀죽은 듯 들어갔다. 그렇게 안경이 맘에 들었던 걸까.

 

그러거나 말거나, 카나코는 주변을 계속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저기... 미무라 전도사님, 안경 드릴까요?"

 

"네, 듣고 있어요. 참 흥미로운 이야기네요. 공해도 굉장하고요. 설명 계속해주세요."

 

명백히 듣고 있지 않았다. 한 지방의 영주 앞에서, 일개 종교인이 취하기엔 너무나 무례한 행동이자 태도였다. 이 자리에서 당장 축객령을 내려도 아무런 문제가 없을 정도이다. 하지만, 하루나는 그녀의 반응을 웃으면서 즐기고 있었다. 오히려, 이런 무례함을 바라고 있었다는 것만 같았다.

영주의 열성적인 설명과, 그걸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붉은 연기 속의 신음과 불쾌감만을 보려 하는 어긋남이야말로 그녀의 노림수였다는 것을 아이카와 치나츠는 깨달았다. 화학 스모그 때문에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기 때문일까, 아이카와 깨닫는 게 조금 늦었다고 스스로를 책문한다. 조금 꼬집은 자리 사이로 붉은 스모그가 스며들어가는 듯 하다.

 

"예. 이 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만든 안경이에요. 하나 드릴까요?"

 

"저 사람한테 주세요."

 

"네~♪"

 

툭 던지는 듯 한 말투. 경쾌하고 즐거운 대답.

카미죠 하루나는 고개를 숙이고 걸어가던 남자에게 다가가 안경을 씌워주었다. 다 헤진 마스크와 깨진 고글을 쓰고 비몽사몽하던 남자가, 자기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깨닫는 데엔 예상보다 조금 긴 시간이 걸렸다. 그 남자가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었다가, 이내 고개를 조아리며 벌벌 떨었다.

 

"자, 안경 쓰고서 머리 조아리는 거 아니에요. 일어나세요."

 

"하, 하지만 저 같은 게 어찌 영주님 앞에서 고개를....." "죽빵 쳐맞을래요? 아니면 일어날래요?" "부, 부디 하대해주십시오!!"

 

남자가 벌떡 일어났다. 방금 전까지 굽히고 있던 목과 허리가 꼿꼿하게 펴졌다. 하루나가 만족한 듯 미소를 지었다. 이곳은 카미죠령, 참교육과 물리치료의 고장이다.

그 별명이 비록 그녀의 아버지가 저지른 일에 대한 풍자에 불과할지라도, 카미죠 하루나는 다시 한 번 결의를 다졌다.

 

그때였다.

 

"성기사다!! 비켜!!"

 

전신에 무장을 한 성기사 한 무리가 공단에 들이닥쳤다. 손등에 묻어있는 핏자국을 보건데, 경비원들을 어떻게 뚫고 들어왔는지 쉽게 유추할 수 있었다. 차라리 다행이다, 라고 하루나는 생각했다.

 

"심문관님께! 긴급보고드립니다! 지금 더러운 이교도들의 폭동이 일어났습니다!! 현재 교전중입니다!!"

 

그들이 든 무기에 묻어있는 피는, 이 영지를 더럽히는 자의 피란 뜻이 되니까.

카미죠 도마의 표정은 마스크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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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미죠 하루나와 도쿠가와 마츠리는 전쟁 중에 싸운 적이 있습니다. 결과? 참교육이야!

 

......와 진짜 바빠 죽겠습니다. 해외취직이 이렇게 힘들어요 여러분. 그러니까 전 오아시스로 떠납니다. 자리야쨔응의 올해 목표가 세계평화였나 570kg였나 잘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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