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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5단편] 여름의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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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1-05, 2017 20:25에 작성됨.

소녀는 외로움을 싫어한다.

 

물론, 그것이 그녀가 인기가 없었다는 소리는 전혀 아니었다. 아니, 그녀는 모두에게 사랑받는 아이였다는 말이 더 정확할 것이다. 그녀는 아픈 가정사를 뛰어넘어 피어나는 듯 밝은 모습을 보여주었고, 그녀의 외모와 재능을 따라올 수 있는 사람은 그녀의 주변, 못해도 그녀가 다니던 학교에는 한 명도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모두에게 사랑받는 와중에도 여전히 외로움을 싫어했다. 그런 그녀가 모두에게 사랑받는, 무대 위와 화면 속에서 눈부시게 빛나는 아이돌이 되기를 꿈꾸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였으리라. 심지어 그녀에게는 주변의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재능까지 있지 않은가. 그런 그녀가 자신의 재능과 꿈만을 믿고서는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바다를 건너서 이 도시에 오게 된 것 또한 전혀 말이 안 되는 이야기는 아니었던 것이다.

 

다만, 그녀에게는 너무나도 안타까운 이야기였지만, 이 도시는, 이 철근과 콘크리트로 이루어진 드높은 나무들의 숲은, 그녀가 살던 섬과는 너무나도 다른 곳이었다. 이 도시에서, 보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 도시에 있는 그녀와 똑같거나 비슷한 꿈을 가진 소녀들 사이에서, 그녀는 최고가 아니었다. 물론 이 곳에서도 그녀의 재능은 확연하게 눈에 띄는 축에 들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최고가 아니었다. 그녀는 이제 최고가 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소녀들 중 한 명에 불과했고, 그녀에게 있어서 이 사실이 어떻게 다가왔을지는 따로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더더욱 안타까운 사실은, 최고가 될 가능성이 그녀와 비슷하거나 어쩌면 더 높을 수도 있는 소녀들이, 하필이면 그녀의 주변에, 그것도 그녀와 매우 친한 동료로 있다는 것이었다. 그것을 어쩌지도 못한 체, 그녀는 시간을 보내가고 있었다.

 

그렇게 또 하루가 끝났다. 소녀는 예전과 달리 자연스럽게 웃는 것이 어려워졌다. 그 대신이었던 것인지는 모르지만, 지어낸 밝은 웃음이 자연스러운 밝은 웃음으로 보이게 하는 것이 익숙해졌다. 최소한 그녀와 가장 친하다고 여겼던 동료들조차도 약간의 위화감만을 느끼게 할 정도로는, 나는 완벽하니까, 라는 입버릇처럼 되뇌던 말이 그저 단순히 그녀의 프라이드 강한 성격을 보여주는 말로 보일 정도로는, 그녀가 아직 행복을 느끼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것은 가능했다. 물론 그것이 그녀가 감정을 잃어버렸다는 것과 동의어는 아니었다. 하지만, 어쩌면 차라리 그것이 그녀에게는 더욱 이로운 일이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로, 그녀는, 마치 도시의 길 한복판에 심겨진 야자수의 결말을 보여주듯, 말라가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여름, 소녀는 마치 내가 지금까지 버텨왔던 것이 기적이라고 세상에 절규하듯, 부서졌다.

 

연습실이었다. 그냥 평소와 같은, 그녀들이 최고가 되기 위한 길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으며 긴 시간들을 씹어 삼키던 공간에서, 평소에는 무사히 넘길 수 있었던 그런 시간이었다. 단 한 가지, 소녀가 사라졌다는 것과, 그렇게 된지 어느덧 2주 남짓이 지났음을 제외한다면. 사무소는 비상이 걸린지 오래였고, 아직 최고는 되지 못했지만 가까운 자리에 있었던 소녀인 만큼 그녀의 잠적은 이 도시에 소소한 화젯거리가 되었다. 어쩌면 못해도 가십거리 정도는 되었으리라.

 

그래서, 그녀는 어디에 있었는가, 에 대해 말하자면, 그녀는 고향집에 있었다. 휴대폰은 꺼둔지 오래였다. 아마 이대로 그녀는 도시에서 잊힐 것이고, 그녀는 다시금 고향의 모두에게 사랑받는 소녀가 될 것이다. 언론에서는 아마 한동안 시끄러울 것이다. 하지만 뭐 어떤가. 그들은 어차피 가라앉을 텐데. 그녀가 주목을 받았다 한들 그 뿐이고, 어차피 그들은 또 다른 이야깃거리를 찾을 텐데. 계약과 법은 어차피 그녀가 질 이야기였고, 이제 남은 일은 어떻게 머리를 숙여야 모든 것을 잃어버리지 않고 끝날지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윽고, 동료들, 그녀들에 대해 생각하는 순간 그녀의 의식이 멈췄다. 그녀들은 지금 어떻게 하고 있을까. 자신을 찾는 것은 진작 포기했을 것이다. 아마 자신을 원망하고 있겠지. 아직 기억에서 지워버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지금은 기억에서 지워지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이 흘렀으니까. 그렇다면 아마 미워할 것이다. 그녀들에게 한 마디의 말도 없이 떠나버렸으니까. 아마 공항에 도착하고 나서는 그녀들과 소녀가 이야기를 나눌 일 따위는 없을 것이다. 그것을 떠올리는 그 순간, 그녀의 가슴 한편이 아려오기 시작했다. 최소한 그녀들에게는 말해야만 했던 것 아니었을까. 너무나도 힘들고, 더는 버티기 힘들다고, 자신과 함께 그 시간을 걸어왔던 그녀들에게는 말해야 했던 것 아니었을까.

 

이윽고, 그녀는 자신이 무슨 일을 했는지 다시금 느끼기 시작했다. 해서는 안 될 짓을 한 것이었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넘어서 단순히 해서는 안 될 짓이 아닌 인간으로서 잘못된 짓이었다는 것을 그 순간 깨닫게 돼버린 것이었다. 눈에서 눈물이 흘러나왔다. 돌이키기에는 너무 늦어버린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 돌아가고 싶었다. 두 번 다시 용서받지 못할지언정, 그녀의 동료들에게 사과를 해야만 할 것 같았다. 그리고 그녀의 오빠가 손님을 데려왔다.

 

역시나 예상했던 대로 프로듀서였다. 오빠한테 연락을 받고 왔다는 것 같았다. 아마 자신에게 계약 해지 절차와 민사소송에 필요한 서류와 가지고 온 것이겠지. 자신이 용서받을 수 없는 짓을 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이렇게 끝나리라는 것도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머리를 식히면서 자연스럽게 떠오른 것이었고. 이제는 모든 것을 잃어버리지 않고 끝내기 위해 어떻게 머리를 숙여야 할지를 생각해야 할 시간이었다. 이미 많은 것을 잃었던 것이 그녀가 돌아온 이유였으니까, 여기에서 더 잃어도 괜찮은 것은 자존심 말고는 없었으니까. 이윽고 그녀가 머리를 숙이려던 순간, 그는 손을 내밀면서 말을 건넸다. 돌아가자고.

 

소녀는 당황했다. 왜 자신에게 손을 내미는가에 대해 생각해보려 했지만, 알 수 없었다. 아마 자신이 입힌 손해는 자신이 생각할 수 있는 것 이상일 것인데. 알아야만 할 것 같았다. 지금 여기에서 아무것도 모른 채로 저 손을 기쁘게 덥석 잡아버린다면 그것으로 끝날 것이다. 책임이야 물을 테지만 다시 돌아갈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알아야만 했다. 어째서 자신을 다시 데리러 왔는가. 지쳤다고, 이 일을 못 하겠다고 나간 것은 분명히 자신이었을 텐데 왜 데리러 왔는가. 소녀는 물었다. 이윽고, 그는 답했다.

 

그래서라고. 그저 지쳐서였기 때문에 너를 데리러 온 것이라고. 그는 말을 이어갔다. 네가 어떻게 지치게 된 건지 알지는 못하지만, 그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너를 데리러 온 것이라고. 처음에는 너를 데리러 가야 하는가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지만, 너의 오빠와 이야기를 하고는 너를 데리러 오기로 마음을 먹었다고. 지금 모두가 네가 돌아와주기를 바라고 있고, 매 주마다 이야기할 시간을 만들었다고. 그러니까, 이제 돌아와서 너의 이야기를 해주지 않겠냐고.

 

이 말이야말로 지금 그녀가 기다려왔던 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과연 괜찮을까. 모두가 돌아와주기를 바라고 있다고 해도, 그것과 그녀가 그녀의 동료들 앞에서 떳떳할 수 있느냐는 것은 다른 이야기였다. 고민하고 있던 사이, 그녀의 오빠가 한 마디를 던졌다. 걱정 말고 조금 더 뻔뻔해지라고. 네가 처음 도시로 갔을 때도 나랑 싸우고 집을 나간 후에 이렇게 말도 없이 돌아왔으면서 뭘 그리 남의 감정에 세세하게 신경쓰냐고. 모든 사람이 가족과 같을 수는 없겠지만, 그 정도라면 받아줄 거라고. 그 말에, 소녀는 결심을 굳혔다.

 

그 이후로 며칠이 지났다. 그녀가 돌아온 날이 이야기하는 날이었기 때문에 그 길로 반성회가 열렸지만, 모든 것은 제자리로 돌아왔다. 그녀가 짓는 웃음에 진심이 담기기 시작했다는 것을 제외하고 말이다.

 

소녀는 외로움을 싫어했다. 그리고 이제는 외롭지 않았다.

 

아마 이게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것 같네요. 제목은 소녀(여름)의 사춘기(봄)이라서 저렇게 지었습니다. 소녀가 누구인지는 말씀드리지 않아도 아실 거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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