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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퀘-소게(小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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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1-03, 2017 15:54에 작성됨.

“으아아아~무리이~!”

 

“어이, 카렌 지금은 어리광 부릴 때가 아니잖냐.”

 

겨울의 매서운 추위를 피해 코타츠에 옹기종기 모여앉은 프로듀서, 그리고 카렌과 카나데. 카렌과 카나데는 아이돌이기전에 학생이었고, 학생이었지만 동시에 아이돌이었다. 아이돌 활동에 쫓겨 못 다한 공부를 프로듀서가 한창 봐주던 도중 카렌이 결국 ‘항복’을 선언한 것이었다. 평소라면 카렌의 몸을 점검할 프로듀서지만 지금은 ‘성적’이라는 중요한 부분이 걸려있는 순간이기 때문인지 비교적 엄격한 모습이었다.

 

“아아~정말로 힘들어.....나 열나는 것 같기도하고...”

 

“엣? 어디어디...”

 

조금 거칠고 큰 손이 카렌의 이미 위에 올라왔다. 꾸욱-하고 프로듀서의 손이 카렌의 이마를 누르자 카렌의 코 끝에서는 프로듀서의 손목으로부터 묘하게 흘러나오는 체취가 느껴졌다.

 

‘하아....이거야 이거....아, 조금, 조금만 더...후히히....’

 

열 따위는 없다. 공부가 싫은 건 사실이지만, 카렌이 엎이진 이유는 그런 이유가 아니었다. 병약이고 열이고 나발이고 카렌이 슬며시 힘든 모습을 흘리기라도 하면 프로듀서가 다가오는 건 자명한 사실. 카렌은 그때마다 프로듀서의 체취를 느끼면서 자그만 행복을 느끼는 것이었다. 어디사는 매애드 캐미컬 아이돌은 아니고....사랑하는 사람과 좀 더 같이 있고싶다는 소녀심이라고 해두자. 자세히 알면 피곤하다.

 

‘아아.....그래도 손목이 좀 아래쪽으로 오면..’

 

“어이 카렌, 너 괜찮냐? 혀까지 늘이고..”

 

자세히 말하면 아이돌로서 치명적이기에 조용히할수 밖에 없는 욕망이 어느새 행동으로 표출된 것인지 카렌의 붉은 혀는 입 밖으로 나와서 허우적 거리고 있었다. 어쩌면 추하게 보일지도 모르고, 카렌의 말 못 할 취향을 들킬지도 모르는 상황....이지만! 카렌의 오히려 그것을 기회로 바꾸었다.

 

“아아~조금 그럴지도.....저기 프로듀서 손으로는 잘 안 되는 거 아니야?”

 

“아....그런가...그래도 지금은 체온계도 없고...”

 

“이마...로 하면 좀 더 정확할지도 몰라..?”

 

혼절류-병약소녀

 

카렌의 눈동자에 힘을 풀어버리고 눈을 게슴츠레하게 뜬 채 입을 힘없이 살짝 벌렸다. 이미 몇 번이고 몇 번이고 해본 연기. 프로듀서라면 분명 허둥대다가도 카렌의 건강을 위해 이마를 가져댈것이고, 그렇게 키스 할듯말듯 얼굴이 겹쳐지면....

 

‘므흐흐.....아, 당황하는 프로듀서도 귀엽네...’

 

카렌이 천천히 프로듀서의 모습을 감상하며 그 다음을 기다리고 있을 때.

 

삐빅-!

 

‘삐빅...?’

 

“36.5도, 완전 멀쩡해.”

 

허스키한 느낌의 여유로운 목소리가 카렌의 주의를 끌었다. 카나데가 21세기 기술력을 탄생한 디지털체온계를 들고서

 

“카렌을 걱정한다면 이런 것쯤 들고다니는게 좋아? 카렌은 예민하니까 그런 건 별로 좋지않거든.”

 

여러모로라는 말까지 덧붙이며 조언 아닌 조언을 하는 카나데를 보며 프로듀서가 깨달음과 고마움이 섞인 얼굴을 띄우며 카렌에게서 떨어졌다. 카렌이 프로듀서 몰래 눈을 흘기며 카나데를 위협했지만, 카나데는 오히려 ‘후훗’하고 넘겨버릴 뿐이었다.

 

“저기말이야, 프로듀서. 혹시 카렌 배고픈 것 아닐까?”

 

아, 하는 느낌으로 프로듀서가 시계를 보자 확실히 밥먹을 때를 놓친 순간이었다. 프로듀서는 분주하게 지갑을 챙겼다. 아마도 사무실 아래의 패스트푸드 점에 다녀오려는 생각이겠지. 카나데는 예상했다는 듯이 일어나 자연스럽게 프로듀서의 팔을 안았다.

 

“추운 밤에 혼자 3인분을 포장해오는 건 너무 쓸쓸하지않아? 한 명 쯤 같이 가도 괜찮다고?”

 

카렌이 그제서야 카나데의 내막을 파악하고 몸을 일으켜세우자, 프로듀서가 카렌을 제지했다.

 

“카렌, 갑자기 찬바람을 쐬면 위험해.”

 

“어머? 나는 괜찮고, 카렌은 안 괜찮은 거야? 섭섭하네...”

 

“어이, 카나데...”

 

“농담이야. 대신, 옆에 붙어서 따뜻하게 해줘야해?”

 

한 쪽 눈을 지그시 감아 윙크를 날리는 카나데의 모습은 남자뿐만 아니라 소녀의 마음에도 불을 질러버리기에 충분했다.

 

‘이년이...!’

 

.
.
.

 

“이러면....포장하는 의미가 있나...?”

 

“괜찮으니까!”

 

결국, ‘자기가 먹을 건 자기가 선택한다’는 이유로 프로듀서의 다른 한 팔을 붙잡고 패스트푸드 점까지 다녀온 카렌.

 

“어으으으으...”

 

그러나 몸이 버티지 못하는 건 또 사실이라 카렌은 온몸을 부여잡고 버들버들 떨고있었다. 얼굴과 손끝은 피가 돌지도 않아 시퍼렇게 질려서 다른 사람이 봐도 놀랄 만큼 위험해보였다.

 

“그러니까, 카나데랑 내가 다녀온다고 했잖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얼굴을 하고서 프로듀서가 카렌을 타박하면서 서둘러 코타츠에 밀어넣고 음식을 챙겨주기시작했다.

 

“정말, 그냥 배고파서 이런 것 뿐이라고?”

 

입으로는 싫은 척 할 뿐, 내심 프로듀서의 시선이 자신에게로 쏠린 게 싫지는 않은 카렌은 오히려 프로듀서가 자신을 챙겨주도록 묘하게 유도하고있었다. 프로듀서가 카렌의 말을 듣고 금새 햄버거를 입에 물려주고 있었으니까

 

“네네,”

 

“프로듀서?”

 

카렌의 몸상태에만 집중하는 프로듀서를 보면 카나데에 살짝 삐친 듯 볼을 조금 부풀렸다가 좋은 생각이 난 듯 미소를 지었다. 카나데의 길고 흰 손가락은 햄버거를 지나 봉투 속으로 들어가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내었다, 그리고-

 

“그럼 난 프로듀서에게 먹여줘야겠네?”

 

스윽-하고 카나데의 상체가 앞으로 밀려나오며 책상 위에 놓여있던 프로듀서의 팔과 그녀의 흉부가 맞닿는다. 프로듀서가 돌아보자, 자신의 팔이 카나데의 팔에 살짝 눌려있는 채로 카나데가 묘한 자세를 취하고있었다.

 

“계속 기다리게 할거야?”

 

윤기가 흐르면서 도톰한 카나데의 입술 사이에 감자튀김이 살며시 들어간채로 프로듀서를 향해있다. 마치 키스를 기다리는 영화의 여주인공처럼 눈을 지그시 감고있는 카나데의 얼굴에는 알듯말듯한 미소가 어른거리고있다.

 

“고맙다.”

 

그러나 그가 누구인가. 카나데를 데뷔 때부터 만나 꾸준히 단련(?)해온 남자. 프로듀서는 잠깐 카나데를 바라보더니 카나데의 입에 물린 감자튀김을 손으로 톡-하고 끊어 내어 먹었다.

 

“증말.....”

낭만을 직구로 와장창 부셔버린 프로듀서의 행위에 슬쩍 눈을 흘기면서 투정을 부려보았지만 프로듀서는 동요하지않고 느긋하게 손끝에 묻은 손가락을 츕-하고 핥아내었다.

 

“아직도 이런 장난에 넘어갈 거라고 생각한 쪽이 잘못이야. 좀 더 날 놀라게 할 놀라운 장난은 없는거냐?”

 

프로듀서와 아이돌, 그 관계로서 친밀하게 지내온 사람이 내뱉을 수 있는 가장 무난하면서도 친근한 대답이었겠지만 그 관계 이상의 마음을 품은 카나데로서는 조금은 외로움이 느껴지는 말이었다.

 

“장난....이라고 생각하는구나?”

 

“그럼 아니냐?”

 

“아....맞아. 맞지.....”

 

하지만 정작 또 때가 되면 이렇게 좀 더 옆에 계속 있고싶다는 마음이 올라와 어물어물 넘겨버리는 것이었다. 분명 이 미련스러울 정도로 성실한 남자는 소녀의 진심을 받아들이지 않을테니까.

 

‘하아....’

 

입술을 삐쭉-내밀여 자그맣게 마음을 표시하던 카나데는 속으로 ‘에잇!’하는 심정을 담아 툭-하고 프로듀서의 어깨의 머리를 살며시 기대었다. 아마도 보기보다 소녀심이 가득한 그녀의 마음으로는 이것이 최선일지도 모른다. 물론 프로듀서의 눈에는 언제나 처럼 성숙한 느낌을 가장한 카나데의 장난으로 보였겠지만 말이다.

 

“어이어이....”

 

‘흐음......뭐 됬나. 오늘은 내가 더 프로듀서를 독차지한 쪽이고....’

 

그것을 가만히 지켜보던 카렌은 반대편에서 프로듀서에게 기대어버렸다. 평소라면 혼절류-병약소녀를 사용해서 프로듀서의 시선을 돌리기라도 했겠지만, 오늘은 별로 그런 마음이 들지않는다. 본질은 그래도 착한 소녀이기 때문인가, 연적에게도 모질지 못하고 외려 도와줘버리는 행동을 취했다. 어쩌면 쏟아지는 졸음 탓인지도 모른다. 배도 부르고 따뜻한 코타츠에 몸을 맡긴 채 사랑하는 사람 옆에서 마음도 따스하게 녹아가는 기분. 그렇게 서서히 나른해져가는 것을 느끼며 카렌도 프로듀서의 어깨에 몸을 기대었다.

 

“나 참.......”

 

결국 진퇴양난의 상황에 빠진 프로듀서는 한숨이 섞인 미소를 얼굴에 띄우고 책을 덮었다. 그리고는 천천히 몸을 뒤로 기울였다. 무방비하게 자신쪽으로 기울어진 소녀 둘을 조심조심 옮기면서.

 

서서히 어두워지면서도 밝아지는 겨울의 밤을 뒤로하고 소녀 둘과 남자 한 명이 포근하게 잠들어버렸다.

 

=====

 

아싸라비야 리퀘 끝

 

소게(小憩): 잠시 쉬는 것

 

얀모에 리퀘 당첨은 꽝도 겸한다 카더라.....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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