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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해의 마지막은 하루치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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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12-31, 2016 13:48에 작성됨.


"정말 카레로 괜찮아?"
"응~ 상관없어, 치하야쨩이 해주는 거라면야. 예전에 치하야쨩이 해줬을 때도 맛있었고!"
"먹고 싶다면 상관없긴 하지만."
"자자, 우리집에 오면 뭐든 만들어준다고 했으니까~"
"'뭐든'이라고 한적은 없는데 말야.."


요리에 열중한 치하야를 하루카는 뒤에서 가만히 바라보았다.
푸른색의 긴 머리카락, 날씬한 몸매. 두르고 있는 에이프런은 치하야의 몸에 아예 맞는 크기로 사둔 것이었다. 꼭 허리를 죄듯 묶인 그 끈과, 무릎 위로 올라오는 길이의 치마 아래로 날씬하게 뻗은 다리를 바라보던 하루카는 한숨을 쉬었다.
오늘따라 평소같으면 그냥 그렇구나, 하고 넘어갈 만한 것에도 하나하나 눈길이 가 버린다. 그러니까, 자신의 위치에서 보이는 그 치마의 안쪽이라거나─


─안?


아무 생각 없이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들을 이어가던 하루카는, 화들짝 놀라며 뒤로 물러서야만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은 바닥에 앉아있고, 치하야는 서서 요리 중. 거기에 오늘 치하야가 입고 온 치마는 평소엔 거의 입지 않는 짧은 치마. 그런 상황에서 이런 각도라면.
...당연히 보인다. 살짝 고개만 숙여도 보일 것 같은 그 치맛자락 안의 풍경에 굳어 버린 하루카는 뒤늦게서야 귀 끝까지 빨개진 채로 후다닥 뒤로 돌아 앉았다.


"치, 치하야쨩, 저기..."
"응? 왜?"
"그... 치마 말야... 그, 너무 짧은 건... 아닐까?"
"에?"


뒤로 돌아 앉은 채 그렇게 말하는 하루카에, 감자를 자르던 치하야는 자신의 치마를 내려다보았다. 그리곤 고개를 들어 감자를 손질하며,


"역시 나한텐 잘 안 어울리나? 이상해?"


라고, 전혀 논점에 맞지 않는 질문을 건네왔다. 그리고 그는 그 논점이 어긋난 질문에 한숨을 내쉬며 답했다.


"...아니, 굉장히 잘 어울려."
"그래? 괜찮아?"
"응, 그.. 예쁘달까.."


어쨌든 그런 면에서 거짓말을 할 수 없다는 점에서, 아마미 하루카란 사람은 참 슬픈 생물이라고 하루카는 생각했다.

 

 

 

 

 

 

 

 

 

 

 

결국 그 위치에서 더 앉아있기에는 낯이 뜨거워지며 시선이 자꾸 그 쪽으로 가는 탓에 하루카는 일어서서 치하야를 지켜보기로 했다. 치하야가 '정신사나워' 라고는 했지만, 그래도 그대로 앉아있다가는 자신이 먼저 이성을 잃을지 어떻게 될 지 모를 일이다. 그 때문에 일어서서 멍하니 치하야를 바라보기만 하고 있던 하루카는, 문득 든 뭔가 낯선 느낌에 두 눈을 깜빡였다.
그리고 원래 생각하기 보다는 먼저 행동하는 파인 하루카는 그 느낌이 무엇 탓인지 눈치채기도 전에 몸이 먼저 움직였다.


"에? 하, 하루카, 갑자기 뭐하는 거야?"


그리고 갑작스레 자신을 뒤에서 끌어안는 팔에 카레를 하고 있던 치하야는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며 그렇게 물었다. 하지만 하루카는 대답하지 않은 채 치하야의 허리를 끌어안은 채로 가만히 치하야의 머리카락 사이로 고개를 묻었다가 말했다.


"웅... 향이 조금 다른 것 같은데?"
"...아, 응. 샴푸 바꾸긴 했는데... 그보다 하루카. 그런 걸로 이렇게 사람 놀래키지 말아줄래?"
"아, 놀랐어?"
"갑자기 뒤에서 끌어안으면 누구나 놀라, 정말..."


그녀의 갑작스런 그 행동과 그 행동의 이유에 많이 놀랐던 듯, 그렇게 화를 내며 탕, 하고 손에 들었던 칼로 도마를 내려치다시피 하며 칼을 놓는 치하야에 움찔했던 하루카는 조심스레 치하야의 눈치를 살폈다. 하지만 치하야는 그녀가 염려했던 것처럼 허리에 감긴 팔을 뿌리치진 않았다. 단지 조금 붉어진 얼굴로 한숨을 내쉬었을 뿐. 그 모습에 치하야가 화가 나진 않았는지 걱정하던 하루카는 조금은 안도하고서 그녀의 허리를 끌어안은 채로 치하야를 바라보았다.


"향, 이상해?"
"응? 아니, 이상하진 않지만... 하루카씨는 왠지 전의 것이 더 좋은 것 같달까~"
"전에?"
"응! 이건 좀 무리하게 꾸몄달까, 지나치게 화려한 것 같아서, 전에 치하야쨩이 쓰던 것이 더 은은하고... 뭐랄까, 더 치하야쨩 같다는 느낌이라... 아, 물론 어쨌든 치하야쨩은 치하야쨩이지만!"


뭐라고 대답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스스로 대답하고서도 그렇게 생각하며 하루카는 한숨을 내쉬었다. 뭔가 엄청나게 횡설수설 하는 것 같다. 그건 치하야가 이렇게 가까이 있어서일까.
하지만 그 대답에 치하야의 뺨은 오히려 약간 붉어졌다.


"그...래?"
"어, 어? 응..."


그리고 치하야가 묻는 말에, 고개를 끄덕여 수긍하자마자 조용해져 버린다. 하루카가 치하야의 허리에 팔을 감아 안은 채로, 아무 말도 오가지 않고 단지 통, 통, 하며 칼로 야채를 썰며 칼이 도마에 부딪히는 소리만 났다.


'으아아... 무, 무슨 말이라도 해야...!!'


그리고 하루카는 그 침묵에 굉장히 당황했다. 치하야는 돌아보지도 않은 채 그냥 요리에 열중하고 있었지만, 자신도 모르게 다가선 거리라고 해도 이건 그에겐 너무 가까운 거리였던 것이다. 치하야가 새로이 산 샴푸의 향이 바로 느껴질 정도의 거리. 그건 지금 치하야를 대상으로 한 여러 이상한 상상을 하고 있는 자신에게는 끔찍할 정도로 가까운 거리였다.
거기다가 이 정도의 침묵이 지속되면, 요리에 집중하고 있는 치하야에게는 별 것 아닌 일일 수도 있지만, 하루카에게는 다른 집중할 것이 없었으므로 품에 안겨있는 치하야에게 집중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더 문제였다. 코 끝을 간지럽히는 부드러우면서도 어딘가 화려한 듯한 샴푸의 향, 그리고 그 사이로 느껴지는 본래 치하야의 체향. 품에 닿은 작은 어깨와, 팔을 감은 가는 허리의 감촉까지.


─이래서야 정말로 위험하다.
그렇게 생각하지만 떨어지고 싶지도 않다.
조금 더, 옷 너머로나마 이 감촉과 체향과 함께 있고 싶다.


농담도 아니고, 이건 무슨 생각일까. 그렇게 머릿속으로 중얼거리며 하루카는 최대한 의식을 돌리기 위해 치하야의 손에 신경을 집중했다. 통, 통, 하는 가벼운 소리와 함께 칼날은 일정히 야채를 썰고 있었다.


"?! 치, 치하야쨩! 위험하잖아!"
"아."


─아니, 있었다고 생각한다. 방금 전까지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건지, 치하야는 칼날로 손가락을 벨 뻔했다. 손을 집중해 보고 있었던 하루카가 발견하고선 재빨리 붙잡지 않았다면 분명히 엄청난 사태가 벌어졌을 것이다.


"미, 미안. 잠깐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어."
"...치하야쨩이 그렇게 넋을 잃는 일도 적은데... 무슨 고민같은 거라도 있어?"
"으응. 그런 거 아냐. 그냥 좀... 갑자기 신경쓰이는 게 있어서."


그리고 그런 대화가 오가고서, 다시 침묵이 무겁게 내려앉는다. 그 어색한 침묵에 하루카는 후우, 하고 작게 한숨을 내쉬며 치하야의 손을 놓았다. 동시에 자연스럽게 그녀에게서 떨어진 하루카는 머리를 긁적이곤 말했다.


"조심해... 다치면 큰일이잖아."
"뭐, 잠깐 방심했을 뿐인걸. 이제 괜찮아. 하루카는 저기 가서 앉아있어."


치하야의 미소와 함께 그녀가 한 말에, 순간 고개를 끄덕일 뻔 했던 하루카는 치하야가 말한 '저기'가 어디인지 깨닫고선 겨우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 그냥 여기에 서 있을게..."


아까 앉아있던 자리로 다시 갔다가 괜한 번뇌에 휩싸이고 싶지 않은 그녀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하루카, 천천히 먹어. 그러다가 걸린다?"
"괜찮아 괜찮아~"
"나참..."


천천히 먹으라고 하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듣지도 못한 것 처럼 다시 카레 그릇에 얼굴을 쳐박다시피 하는 하루카를 보고서 치하야는 한숨을 섞어 웃었다.


"...하루카가 맛있게 먹어주면 나야 기쁘지만 말야. 그래도, 그렇게 엉망으로 먹으면 안돼. 고개 들어봐."
"응?"


치하야의 어딘지 모르게 상냥한 목소리에, 먹다 말고 고개를 든 순간 하루카는 숨이 멈추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가느다란 긴 손가락이, 얼굴 가까이에 다가온다. 그리곤 입가를 훔쳐낸다. 손이 입가에 닿은 순간, 그제서야 하루카는 치하야가 어느새 티슈를 들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상냥하게 자신의 입가를 범벅으로 만든 카레를 닦아내는 치하야를 그저 멍하니 보고만 있던 하루카는 치하야가 손을 떼고서야 정신을 차렸다.


"얌전히 먹으라니까. 이렇게 엉망이잖아."
"아, 으, 으응..."
"...왜? 뭐 이상해?"


아직도 멍한 목소리로 대답하는 하루카의 모습에, 치하야는 살짝 이마를 찌푸리며 고개를 갸웃했다.
치하야와 평소와 달리 이상하달까, 뭐랄까, 그런 것 보다는─


"아니, 순간, 키스하고 싶다고 생각해서... 아, 아앗!"


치하야를 보면서 생각했던 것을 자신도 모르게 그대로 내뱉어 버렸던 하루카는, 놀라며 입을 가렸다. 지금껏 주의하고 주의해왔던 것을, 이렇게 어이없게 실수하다니.
치하야는 어째선진 몰라도 스킨쉽을 싫어한다. 껴안는 것까지는 그래도 하루카에게는 허용해주지만, 그 이상, 즉, 키스는 거의 연인에 가까운 '하루카'에게 조차도 잘 허용하지 않는다.
그런 치하야 앞에서 실언을 해 버렸다. 그렇게 생각하며 하루카는 당황해서 치하야를 바라보았다. 물론, 식기를 든 손에 맞지 않기 위해서 손을 주의깊게 살피며.


하지만 치하야는, 하루카를 때리지 않았다. 다만, 당황하며 시선을 하루카에게서 돌렸을 뿐이었다.


"무, 무슨 소리 하는 거야. 바보같은 소리 하지 말고 얼른 밥이나 먹어."
"어? 으, 응... 이, 이상한 말 해서 미안해!"


예상 외의 그녀의 행동에 순간 놀라 버린 표정을 감추기 위해서 하루카는 황급히 다시 카레 그릇으로 시선을 내렸다. 그리고 얼마 남지 않은 카레를 향해 온 신경을 집중했던 하루카는, 치하야가 중얼거리는 말을 듣지 못했다.


"...그렇다고 사과할 건 없잖아, 바보..."


그렇게 중얼거리며 살짝 자신의 연인을 흘겨보는 치하야의 얼굴은, 약간 붉은 기를 띄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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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글 써놓고 제목 못정하고 있었는데 오늘이 12월 31일이라는 걸 여기다 써먹고 있다요(?)

뭐 제목이랑 내용이랑 전-혀 상관이 없지만 뭐 어때요 ^호^

으..오늘의 날씨도 쓰긴 해야되는데 귀찮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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