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카테고리.

  1. 전체목록

  2. 그림

  3. 미디어



[카나데x아리스] 저기, 봐 줘. 진정한 나를.

댓글: 12 / 조회: 952 / 추천: 1


관련링크


본문 - 12-27, 2016 22:50에 작성됨.

언제부터였을까요. 그 사람을 보면 제 심장이 뛰기 시작한 것은.

그 사람에 대한 첫 인상은 ‘예쁜 사람’ 이었습니다. 짧은 남색 머리에 하늘색 교복을 입은 그 사람의 눈동자는 금색으로 빛나고 있었습니다. 조금씩 시선을 내려 보니 밑에는 오뚝하게 솟은 콧날이, 그 아래는 새빨간 입술이 있었습니다. 피처럼 붉은 입술은 요염하기 짝이 없어, 입고 있는 교복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그 사람은 구석에 홀로 앉아 있는 저를 발견하고는 천천히 걸어왔습니다. 그리고는 손에 든 종이와 제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았습니다. 아마 제가 누군지 확인하는 거겠지요. 이윽고 제 이름을 발견했는지 살며시 미소를 지으며 말했습니다.

 

“안녕. 네가 아리스구나. 잘 부탁해.”

“타치바나 입니다!”

 

무의식적으로 내뱉고 난 뒤 아차 싶었습니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갑자기 소리를 지르다니요. 그것도, 아무도 말을 걸어주지 않아 홀로 구석에 있는 처지인 데도요. 겨우 말을 걸어준 사람에게 쌀쌀맞게 대하다니, 너무나도 어린아이 같잖아요.

 

“흐음, 이름이 싫은가 보구나?”

 

하지만 그 사람은 크게 개의치 않고 계속 말을 걸어주었습니다. 그렇게 여러 가지 대화를 나눌 수 있었고 서로 통성명도 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하야미 카나데야.”

 

카나데. 하야미 카나데. 저는 그녀가 떠나간 뒤에도 몇 번이고 그 이름을 되뇌었습니다. 막 아이돌로 데뷔를 한 제게 있어 처음으로 이름을 알게 된 동료였으니까요. 첫 무대를 앞두고 긴장한 채로 구석에 앉아 있는 제게 먼저 말을 걸어준 건 오로지 그녀밖에 없었습니다.

다행히 첫 무대를 무사히 끝냈고, 다른 동료들도 알게 되었습니다. 저와 나이가 비슷한 아이들도 많이 있어서 금방 친해질 수 있었습니다.

 

“우리 아리스, 이제 친구가 많이 생겼구나? 혼자 대기실 구석에 앉아 있을 때가 어제 같은데.”

“그 얘기는 이제 하지 말라고 했잖아요! 그리고 타치바나 입니다!”

 

그녀는 저를 만날 때마다 곧잘 놀리곤 했습니다. 데뷔 무대 때의 제 모습을 얘기하는 건 단골 레퍼토리 중 하나에요. 새 아이돌이 들어올 때마다 저 얘기를 한다니까요. 정말 지치지도 않나 봅니다.

 

“이야, 카나데. 아리스랑 사이좋구나!”

“절대 아니에요!”

“아, 얼굴 빨개졌대요~”

 

옆에 있던 시키 씨와 프레데리카 씨가 히죽거리며 놀렸습니다. 씩씩거리며 두 사람은 쫓아가다가 문득 옆에 있던 거울을 보았습니다. 홍당무처럼 새빨개진 제 얼굴이 보였습니다. 인정하기는 싫지만, 이 정도라면 놀림감이 될 만하겠네요.

항상 자신의 페이스를 유지하며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그녀와는 너무나도 대조적인 모습이라 힘이 빠졌습니다. 그녀의 눈에 비친 저는 자신의 감정도 제대로 컨트롤하지 못하는 어린아이겠지요.

빨리 어른이 되고 싶다. 항상 그랬지만, 그녀를 마주할 때면 더욱 간절해져요.

거기까지 생각하고는 화들짝 놀랐습니다. 카나데 씨를 보고 그런 생각을 하다니요. 어린아이를 항상 놀리기만 하는 유치한 사람을요. 박학다식한 후미카 씨나 자연스레 어른스러움이 배여 나오는 미나미 씨 같은 어른이 되어야 할 텐데, 카나데 씨 같은 어른이 되면 안 되겠죠.

그렇게 다짐을 하며 아이돌 활동을 계속 이어나갔습니다. 동경하던 후미카 씨와 미나미 씨와는 같은 유닛이 되어 친밀한 관계가 되었고 많은 점을 배웠습니다. 처음 생각하던 대로 두 분은 정말 배울 점이 많은 어른이었어요. 물론 나머지 구성원인 아이코 씨와 유미 씨도 어른스러운 분들이었죠.

활동을 하며, 배우기도 하며 차분히 생각을 해보니 역시 카나데 씨 같은 어른이 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저는 좀 더 인텔리하고 쿨한 타치바나 아리스가 되어야 해요. 그게 제 아이돌로서의 목표이기도 하구요.

하지만, 여전히 카나데 씨를 볼 때면 어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지울 수는 없었습니다. 카나데 씨가 매번 저를 ‘아리스’ 라고 부를 때면 이제는 습관처럼 ‘타치바나 입니다!’ 라고 대답하곤 했지만, 은연중에 저를 이름으로 불러주길 바랬습니다. 저를 아리스라고 불러줄 때마다, 가슴 속에 알 수 없는 무언가가 가득 찬 느낌이었습니다. 나이가 비슷한 친구들도 아리스라고 부르지만, 그때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에요.

이 느낌 때문일까요. 카나데 씨와 얘기를 할 때 멍하게 카나데 씨를 바라보는 빈도가 늘었습니다. 주로 그녀의 붉은 입술에서 시선이 멈춰요. 어떤 스케줄이 있는지에 따라 입술의 색은 조금씩 바뀌었지만, 어떠한 색이더라도 카나데 씨의 입술은 매력적이었습니다. 옅으면 옅은 대로, 짙으면 짙은 대로요.

특히 카나데 씨가 「Tulip」을 센터에서 부를 때는 정말이지, 입술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빨갛고 도톰한 그 입술을, 노래의 가사처럼……. 카나데 씨의 공연을 본 날은 하루 종일 머릿속에 「Tulip」의 가사가 울려 퍼졌습니다.

공연을 본 다음 날, 사무실에서 카나데 씨와 만났습니다. 그녀는 평소처럼 제게 장난을 치며 머리를 쓰다듬었지만, 갑자기 제 마음 속 깊은 곳에서 화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저는 그녀의 팔을 쳐내며 소리쳤습니다.

 

“언제까지 어린아이 취급을 할 거에요!”

 

사무실에 있던 모든 사람이 놀라 제 쪽을 바라보았습니다. 수십 개의 눈이 저를 쳐다보자 퍼뜩 정신이 들었습니다. 조심스레 눈을 그녀의 얼굴 쪽으로 돌렸습니다. 카나데 씨의 놀란 표정을 보는 순간, 저는 눈을 감고 뒤를 돌아 문을 박차고 나갔습니다. 누군가 저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지만, 애써 무시한 채 밖으로 달렸습니다.

어떻게 집에 왔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방구석에 박힌 채 양 팔로 무릎을 감싸 안았습니다. 돌연 눈물이 흘렀습니다. 집에는 아무도 없었기에 마음껏 울고 또 울었습니다. 넘쳐흐르는 이 감정은, 울지 않고서는 풀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하필 바로 다음날에 LiPPS와 함께 예능 프로그램에 나가기로 되어 있었어요. 정말 가기 싫었지만, 프로가 사적인 일로 공적인 일을 그르치면 안 되겠지요. 마음을 굳게 먹고 대기실로 향했습니다.

평소 같았으면 오자마자 장난을 쳤을 시키 씨와 프레데리카 씨, 슈코 씨가 구석에서 속닥거리고 있었습니다. 제 눈치를 보면서요. 화장을 하던 미카 씨가 몇 번이고 말을 꺼내려고 했으나, 이내 그만두었어요.

그리고 카나데 씨는……. 아직 도착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이제 슬슬 준비하지 않으면 늦은 시간인 데도요. 카나데 씨가 이렇게 늦은 적은 처음이라, 프로듀서도 걱정을 하고 있었습니다. 결국, PD님께 출연자 중 한 명이 부득이한 사정으로 참가할 수 없다는 걸 알리려는 찰나, 대기실의 문이 열렸습니다.

 

“미안해. 많이 늦었지?”

 

모두가 기다리던 카나데 씨가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먼저 프로듀서에게 고개를 깊게 숙인 뒤 LiPPS 멤버들에게도 사과의 뜻을 건넸습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있는 방향으로 몸을 돌렸지요. 무표정한 얼굴은 평소와 별 다를 게 없어 보였지만, 살짝 그늘져 있는 것 같았습니다.

 

“어제는 미안했어. 앞으로 언행에 주의할게.”

 

잠시 제 표정을 살펴보던 카나데 씨가 작은 목소리로 덧붙였습니다. 주변에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은 소리였습니다.

 

“……타치바나.”

 

그 단어를 듣는 순간, 제 안의 무언가가 멈춰버린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마치 저를 구성하는 부품 중 하나가 고장이 난 것 같았어요. 그 때문일까요, 제 머리는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고 방송에서도 계속 멍하게 있었습니다. 시키 씨와 프레데리카 씨가 능숙하게 이야기를 주도했기 때문에 큰 사고가 나지는 않았습니다만, 끝나고 나서 프로듀서에게 잔소리를 들어야 했습니다.

그대로 집에 돌아온 저는 오늘 있었던 일을 다시 떠올려 보았습니다. 타치바나. 틀림없는 제 성입니다. 저를 지칭하는 단어입니다. 다른 의미로 사용하지는 않았을 거라 생각합니다.

언제나 카나데 씨에게 저를 타치바나라고 불러달라고 투정을 부렸지만, 막상 정말로 타치바나라고 불리니 기분이 미묘했습니다. 아니, 아닙니다. 미묘한 기분이 아닙니다. 이 기분은. 틀림없이. 슬픔이라고 불리는 감정입니다.

고개를 들어 방 안에 있는 거울을 똑바로 바라보았습니다. 타치바나 아리스가 거기 있었습니다. 어른인 척 하지만, 어른이 되고 싶지만, 결국은 어린아이인. 타인에게는 물론이거니와 자신에게조차 솔직하지 못한, 틀림없는 어린아이같은 타치바나 아리스가 있었습니다.

이제는 인정해야 합니다. 적어도, 나 자신에게는 솔직해져야 합니다. 나는 하야미 카나데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머리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녀와 같은 높이에서 보고 싶었기 때문에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고, 그녀의 입술을 만지고 싶었기 때문에 그녀만을 바라보았고, 그녀가 나를 동등한 시선에서 바라봐주기를 원했기 때문에 어린아이 취급에 화가 났고, 그녀를 좋아하기 때문에 이름으로 불리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그녀를 좋아하기 때문에 이러한 고민을 하고 있다는 사실도요.

하지만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제 그릇된 행동 때문에 저와 카나데 씨의 사이는 멀어지고 말았습니다. 어떻게 해야 다시 화해를 하고, 더욱 가까워 질 수 있을까요. 저는 냉정하게 해답을 찾으려고 했으나, 결국 또다시 어린아이처럼 울고 말았습니다.

정말 좋은데도,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건 왜 일까요.

 

 

 

 

 

언제부터였을까. 그 아이를 보면 내 마음이 들뜨기 시작한 것은.

그 아이에 대한 첫 인상은 ‘귀엽지만, 어딘가 딱딱한 아이’였다. 검은색 머리에 파란색 리본을 달고 군청색의 드레스를 입은 그녀는 작은 입을 꼭 다문 채로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녀의 짙은 금색 눈동자는 테이블 위에 놓인 타블렛 PC를 향해 고정된 채 움직이지 않았다.

문득 오늘 처음으로 무대 위에 서게 되는 아이돌이 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그렇구나. 저 아이인가. 저렇게 어린아이라는 말은 듣지 못했는데. 아직 나이가 적어서 그런지 긴장한 모습이 역력해 보였다. 긴장을 다소 풀어줄 필요성을 느껴 출연진의 이름이 적힌 종이를 들었다. 타치바나 아리스. 이게 저 아이의 이름이구나. 나는 아이에게 다가가 말을 건넸다.

 

“안녕. 네가 아리스구나. 잘 부탁해.”

“타치바나 입니다!”

 

툭 하고 터져 나오는 반응에 조금 놀랬다. 하긴, 초면인데 바로 이름으로 부르는 건 좀 그랬나? 하지만 저 나이 때의 아이들을 친근하게 이름으로 불러주는 걸 더 좋아하지 않던가. 문득 그녀의 이름이 다시 떠올랐다. 타치바나 아리스. 아리스. 음, 그런 건가.

 

“흐음, 이름이 싫은가 보구나?”

 

정곡을 찔린 건지 의자에 앉아있던 아이의 몸이 움찔거렸다. 확실히 초등학생이라면, 아리스라는 이름은 놀림거리가 되기에 충분하겠지. 다소 트라우마가 생길 수도 있겠고. 어쩔 줄 몰라서 당황하는 아이에게 나는 자기소개를 건넸다.

 

“나는 하야미 카나데야.”

 

그리고는 오늘 서게 될 무대에 대해 간단히 설명을 해 주었다. 그리고 타임테이블도 하나씩 짚으며 설명해주고, 모르는 것도 이것저것 가르쳐 주었다. 초등학생 치고는 이해력이 빠른 편이라 설명하기도 편했다.

 

“그럼, 앞으로 잘 부탁해.”

 

같은 346 프로덕션의 아이돌이니, 자주 볼 일이 있겠지. 가볍게 생각하며 아리스와 작별인사를 나누었다.

그 뒤로도 종종 그 아이와 만나며 인사를 나누었고, 이것저것 대화를 할 시간도 있었다. 얼마 뒤 나는 동료 아이돌인 시키와 슈코, 프레데리카, 미카와 함께 LiPPS라는 유닛을 만들게 되었는데, 다들 아리스를 너무 좋아해서 자주 보게 되었다.

 

“에, 아리스? 토끼 안 좋아해? 아리스잖아?”

“아리스가 토끼를 싫어하다니. 말도 안 돼.”

“아리스가 아리스가 아니게 되어버렸네.”

“싫어하지 않아요! 그리고 저랑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는 관계없잖아요!”

 

물론 놀리는 걸 좋아한다는 말이다. 시키와 슈코와 프레데리카는 요즘 아리스를 놀리는 게 인생 최고의 낙이다. 저 재미로 출근을 하고 레슨을 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처음에는 미카가 제동을 걸어줬지만, 이제 그녀는 지쳤다. 구석에서 측은한 눈빛을 보내는 게 전부다.
나? 나는 물론 말릴 생각은 없다. 오히려 나도 놀리고 싶은 쪽이니까.

 

“우리 아리스, 이제 친구가 많이 생겼구나? 혼자 대기실 구석에 앉아 있을 때가 어제 같은데.”

“그 얘기는 이제 하지 말라고 했잖아요! 그리고 타치바나 입니다!”

 

나와 아리스가 처음 만난 얘기를 꺼내면 아리스의 얼굴을 항상 빨개진다. 그녀가 좋아하는 딸기처럼 새빨개진 얼굴은 정말로 귀엽다. 저 정도로 빨갛게 잘 익은 딸기라면, 먹고 싶어질지도 모르겠다.

 

“이야, 카나데. 아리스랑 사이좋구나!”

“절대 아니에요!”

“아, 얼굴 빨개졌대요~”

 

역시 시키와 프레데리카야. 저런 점을 귀신같이 포착한다니까. 결국 아리스가 울상이 되어 나를 바라볼 때까지 놀리는 건 계속되었다. 그래도 넷 중에는 내가 제일 덜 놀리는 편이고, 또 나를 가장 먼저 알게 되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울상이 되면 항상 나를 바라본다. 그러면 나는 멤버들을 다독거려 놀리는 걸 그만두고 아리스를 달래는 것이다. 이 패턴이 요즘 일상이 되었다.

어느덧 아리스도 유닛에 들어가게 되었다. 멤버는 미나미와 후미카, 유미, 그리고 아이코. 하나같이 성격이 부드러운 아이돌이다. 우리들과 있을 때처럼 놀림받는 일은 없겠지.

그렇게 유닛 활동을 시작하게 되자 그녀와 만나는 일이 뜸해졌다. 시키와 슈코와 프레데리카는 유닛을 처음 결성했을 때처럼 다시 미카를 놀리기 시작했고, 나도 한 번씩 도와주었다. 미카가 고통 받는 모습을 보며 웃다가, 문득 무언가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는 미카를 덜 놀려서 그런 줄 알았다. 하지만, 미카를 아무리 놀려도 아쉬움은 채워지지 않았다. 무엇일까. 사소한 아쉬움이었지만, 한 번 의문을 가지자 내 머릿속을 꽉 채우게 되었다.

해결하지 못한 의문을 품은 채, 혼자 얼굴을 찡그리며 휴게실에서 음료를 마시다가 에인헤랴르 다섯 명과 만나게 되었다. 가볍게 인사를 나누다가 문득 중심에 있는 아리스에게 눈길이 갔다. 그녀를 보는 순간, 저도 모르게 말이 툭 튀어나왔다.

 

“레슨은 지치지 않고 따라가고 있니, 아리스?”

“윽……. 잘 하고 있어요!”

 

예전에 미친 듯이 연습을 하다가 지쳐서 레슨실 바닥에 너부러진 일이 떠올랐는지 아리스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때 너무 지쳐서 쿨한 모습이고 뭐고 다 내팽개치고 바닥에 누워 있던 모습이 참 귀여웠는데.

 

“……아리스, 정말 잘 하고 있답니다…….”

“그래? 후미카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평소에 아리스에게 잘 해주는 후미카의 말이라 크게 신빙성이 없지만 일부러 믿어주는 척 하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러는 편이 아리스에게 더 잘 먹힐 테니까.

 

“진짜에요!”

 

역시나. 바로 반응이 온다. 이래서 아리스가 좋다니까. 그 후로도 잠시 실랑이를 벌이다가 리더인 미나미가 팀원들을 인솔하여 떠나갔다. 다시 찾아온 정적 속에서 음료를 홀짝거리다가 문득 아쉬움이 없어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쉬움의 정체가, 아리스를 놀리지 않았던 거였던가? 곰곰이 생각해보니 아리스가 유닛 활동을 한다고 나와 자주 만나지 못한 이후부터 아쉬움이 느껴졌다. 그렇게 생각하니 확실하다.

갑자기 내 안에서 아리스라는 존재가 크게 느껴졌다. 이렇게 크게 느껴질 줄은 몰랐는데, 어느새 이토록 커진 걸까. 나는 열이 나는 오른쪽 귀를 매만지며 차분히 생각을 정리했다. 그녀에게 느끼는 이 감정은 뭘까. 사랑일까? 아니다. 아직 그 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좋아하는 정도라면……. 그럴지도.

불현듯 아리스의 입술이 떠올랐다. 아직 어린아이라는 티가 물씬 풍기는, 작고 방울진 입술. 방송에 나가기 위해서 화장은 하지만 입술은 칠하지 않는다. 아직 아무것도 바른 적 없는 그 순결한 입술에,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 것일까.

 

“카나데? 계속 쉴 거야?”

 

슈코가 문틈으로 머리만 쏙 내민 채로 내게 물었다. 슈코가 찾으러 올 정도로 시간이 흘렀나. 스스로 생각을 정리하다 보니 시간을 많이 허비한 모양이다.

 

“조금만 더 있다가 갈게.”

 

오른손으로 귀를 쓸어내리며 슈코에게 말했다. 이렇게 빨갛게 달아오른 귀를 가진 채로 돌아간다면, 다른 아이들이 눈치 챌지도 모른다.

나의 혼란스러움과는 무관하게 시간을 흘러갔고, LiPPS의 공연 날이 되었다. 리더이자 센터인 나는 무대의 중앙에 서서 관객석을 바라보았다. 빨갛게 칠한 입술에 손가락을 대고, 차분한 마음으로 노래를 불렀다. 그리고 마지막 가사와 함께 조용히 눈을 감았고, 객석에서 터져 나오는 함성소리에 미소를 지었다.

관객들과 천천히 눈을 마주치며 웃어주다가 구석에 있는 관계자석에 이르게 되었다. 특별한 스케쥴이 없는 동료 아이돌이 모두 거기에 있었다. 한명씩 눈으로 인사를 건네다가 가장자리에 앉은 아리스의 얼굴을 보게 되었다. 그녀는 마치 무언가에 홀린 듯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정확히는 내 눈이 아니라 눈 약간 아래를 향하고 있었다. 한참을 보다가, 그녀의 눈이 향한 곳이 내 입술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때, 드디어 깨달았다. 아, 이 아이는 나를 좋아하고 있구나, 하고.

공연이 끝나고, 멤버들과 간단히 뒤풀이를 하고, 집으로 걸어가며 생각했다. 어떻게 해야 할까. 마음을 알아버린 이상, 예전과 같은 관계를 유지할 수는 없다. 나의 마음은 숨길 수 있지만, 아리스는 그렇지 않다. 언젠가는, 언젠가는 내게 직접 말하는 날이 오겠지.

서로 좋아하니 괜찮지 않겠어? 마음 한구석에서 달콤한 유혹을 건넸다. 그러더니 멋대로 아리스와 얼굴을 마주보는 상상을 하기 시작했다. 두 사람의 얼굴이 점점 가까워지고, 아리스의 옅은 입술이 내 붉은 입술에…….

그러나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러기엔 아리스가 너무 어리다. 그녀의 나이는 이제 12살. 아직 중학교도 들어가지 않은 어린아이다. 본인은 또래에 비해 성숙하다고 생각하지만, 결국은 아이다. 성숙하다는 것은 본인의 생각일 뿐이다.

어린 소녀는 여러 가지 착각을 하곤 한다. 동경과 존경, 친밀과 사랑을 구분하지 못한다. 나에 대한 아리스의 감정이 사랑이 아니라 친밀일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다. 어쩌면 동경일지도 모른다. 스스로 이런 말을 하는 게 건방져 보일지도 모르지만, 나름 스타일도 좋고 외모도 예쁜 편이라고 생각하니까.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머리가 복잡해졌다. 우선은 집에 가서 자자. 자고 내일 생각하자. 계속 고민하기에는 오늘 공연장에서 체력을 너무 많이 썼다. 나를 바라보는 아리스의 태도를 볼 때, 아직까지 직접적인 고백을 할 때는 아니라고 판단된다. 고로 천천히 생각을 할 시간이 있다.

그러나 일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터졌다. 다음 날 사무실에서 휴식을 취하던 도중 아리스가 들어왔다. 오랜만에 아리스를 본 멤버들은 평소처럼 열심히 놀리기 시작했다. 뒤에서 지켜보던 나는 평소처럼 하지 않으면 아리스가 의심을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여느 때처럼 장난을 걸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런데 갑자기 아리스가 나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언제까지 어린아이 취급을 할 거에요!”

 

사무실에 있던 모든 사람이 아리스를 쳐다보았다.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깨달은 아리스는 문을 박차고 나갔다. 너무나도 갑작스럽게 벌어진 일이라 아무도 막지 못했다.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프로듀서만이 그녀의 뒤를 쫓았을 뿐이다. 순간 나도 쫓아갈까 생각했지만, 일이 더 복잡해질 것 같아 그만두었다.

집에서 목욕을 하며 차분히 생각을 정리해 보았다. 역시, 이대로는 안 된다. 아무래도 내가 먼저 그녀와 거리를 두어야 할 것 같다. 조금씩, 천천히 거리를 두어 자연스레 마음이 멀어지게 하는 방법이 최선이다. 타인과 거리를 두는 건 내가 잘 하는 일이기도 하고.

그렇게 마음을 먹었으나, 가슴 한 쪽이 아려왔다. 머리로는 이해했으나, 마음이 납득하지 못했다. 결국 참았던 눈물을 흘리고야 말았다. 그래. 차라리 여기서 울자. 눈물과 함께 미련을 씻어 내리자. 그렇게 한참을 울었다.

감정소모를 너무 많이 했던 걸까. 늦잠을 자고 말았다. 나답지 않다는 생각을 하며 서둘러 나섰다. 촬영장까지 가며 오늘 해야 할 말을 천천히 고르기 시작했다. 몇 번이고 속으로 되뇌며 연습을 해 보았다. 이 정도면 괜찮겠지, 라는 생각이 들 때쯤 촬영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마침내 대기실에 도착했다. 잠시 숨을 고르고 마음을 가다듬은 뒤 문을 열었다. 수많은 눈이 내게 쏟아졌다. 나는 프로듀서와 멤버들의 눈을 보며 사과의 인사를 건넸다.

 

“미안해. 많이 늦었지?”

 

한쪽 구석에서 따가운 눈총이 느껴졌다. 고개를 돌리지 않아도 누가 있는지 알 것 같았다. 금방이라도 시선을 그쪽으로 향하고 싶었지만, 꾹 참고 다른 사람에게 먼저 말을 걸었다. 슈코를 마지막으로 멤버들과의 대화가 끝이 났고, 드디어 가장 중요한 순간이 왔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굳은 얼굴을 보는 순간, 다 흘려버렸다고 생각했던 감정이 다시금 몰려왔다. 조금만 힘을 빼면 무표정한 가면 밖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한 걸음, 한 걸음을 떼며 감정을 구겨 넣었다.

 

“어제는 미안했어. 앞으로 언행에 주의할게.”

 

내가 그렇게 말하자, 그녀의 표정이 조금 풀어졌다. 숨기지 못한 기대가 얼굴에 그대로 드러나는 모습이 너무나도 그녀다워서, 하마터면 살짝 미소를 지을 뻔 했다. 안 된다. 그래서는 안 된다. 이제부터 그녀의 마음에 상처를 입힐 내가, 미소를 지어서는 안 된다.

 

“……타치바나.”

 

무너졌다. 그녀의 표정이 무너졌다. 내가 어떤 의미로 그녀를 불렀는지, 그녀 자신도 잘 이해한 듯했다. 됐다. 그러면 되었다. 그녀의 기대를 저버리고 마음에 상처를 입히고 벽을 쌓았으면, 된 거다.

방송을 진행하는 내내, 단 한 번도 그녀에게 시선을 주지 않았다. 말실수를 해도, 당황하는 모습을 보여줘도, 멍하니 있다가 대답할 타이밍을 놓쳐도 절대로 쳐다보지 않았다. 진행상 어쩔 수 없이 봐야할 때만 봤을 뿐, 그 이외에 사적인 움직임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이윽고 방송이 끝났고, 저녁을 같이 먹자는 멤버들의 권유를 거절한 채 집으로 돌아왔다. 멍하니 침대에 기대어 있다가 앞에 있는 거울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속마음을 철저히 숨긴 채, 남들과의 거리만을 고집하는 하야미 카나데가 있었다.

사실은 그렇지 않을 텐데. 누군가 와서 내 손을 잡아주고 수갑을 채워주길 원하고 있을 텐데. 언제나 그 손을 놓고 금방 사라져버리기만을 한다. 내일이 오지 않는 장소에서, 단 둘이서 밤 새 춤을 추고 싶은 마음을 감춘 채로.

이제 아리스와의 관계는 끝이 났다. 이제 우리는 같은 회사에 있는 동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단지 같은 일을 하는 사무적인 관계. 거짓된 미소를 띄고, 마음에도 없는 말로 서로를 장식하는 사이.

나는 손을 놓았고, 우리의 관계는 사라졌다.

 

 

 

 

 

제목은 다들 아시겠지만 카나데의 솔로곡 Hotel Moonside와 아리스의 솔로곡 in fact의 첫 가사를 섞은 겁니다.

본문에도 두 노래의 가사가 아주 조금씩 섞여 있습니다.

이번엔 카나데와 아리스의 이야기를 써 보았습니다.

뭔가 애매하게 끊긴 것도 같지만, 의도한 겁니다. 그저 갈등을 하고 있는 두 사람을 그려보고 싶었습니다.

 

이후에 다시 친해져서 연인이 될 지, 영원한 직장동료가 될 지는 열린 결말로 놓아두겠습니다.

 

 

 

1 여길 눌러 추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