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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스널리티 P 시리즈] 호죠 카렌 <히로인과 소녀, 꿈의 무게> (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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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12-27, 2016 04:17에 작성됨.

<퍼스널리티P 시리즈의 이전 이야기들>

1. 타카가키 카에데 <밤 바다의 이정표>

2. 사기사와 후미카 <First Step>

3. P <인내의 삶> 

4. <신데렐라 걸스> 

5. 센카와 치히로 <함께 걷는 길> 

6. <'어제'가 '오늘'과 함께 할 '내일'에게> 

7-1. <방랑자라고 다 길 잃은 것은 아니다> 

 

<외전격 이야기들>

메모리얼 <사쿠마 마유의 회상>

사기사와 후미카<걷지 않은 길>

 


 

 

“에……? 잠깐만, 지금 뭐라고?”

 

나를 향해 쏟아지는 모두의 시선을 받으면서, 나는 화이트 보드 앞에 선 P씨를 바라보았다. 비스듬히 서서 뚜껑이 열린 보드마커로 화이트 보드를 두드리던 그는 훗, 하고 작게 웃으면서 몸을 돌려 내가 앉아 있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이번 대결에서 마지막 라운드는 호죠 카렌, 네가 나간다.”

“……하아?!”

  


 

 

─시작은 분명 단합 대회가 끝난 직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니까, 8월의 중순. P씨가 한창 출장으로 바쁘던 시기의 일이었다.

 

 

“호죠, 이거 한번 들어볼래?”

 

체력보강을 겸한 추가레슨을 마치고 올라와, 에어컨 바람을 쐬며 소파에 널브러져 있던 내게 그가 어떤 물건을 내밀었다. 그건 아무것도 적혀있지 않은 새하얀. 아니, 밝은 곳에서 자세히 보지 않으면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아주 은은하고도 밝은 청록색이 도는 DVD였다. 청록색이 아니라 밝은 민트색이라고 해야 할까?

 

“이게 뭐야?”

 

내 질문에 그는 대답 대신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무언가 생각이 있을 때면 그는 항상 이런 식으로 대답을 피하곤 했다.

 

“뭐, P씨가 가져다 준 거니까, 나쁜 건 아니겠지?”

“그럼, 당연하지. 자, 여기 플레이어.”

 

나는 P씨가 건넨 플레이어를 받아 DVD를 집어넣었다. 위잉, 하는 소리와 함께 디스크가 돌아가는 것을 손으로 느끼면서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이어폰 너머에서 흘러나오는 것은 피아노의 선율로 시작되는 느린 템포의 음악이었다.

마치 비가 갠 날, 잔잔한 웅덩이를 한 걸음씩 걸어가듯, 천천히 진행되던 피아노의 선율에 하나 둘씩 반주가 붙고, 그것은 곧 화음으로 이루어진 자그마한 하나의 흐름이 되어갔다.

 

 

“……호죠?”

“앗.”

 

나를 부르는 목소리에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음악은 이미 끝나 있었고, 내 손에 들린 플레이어는 재생 버튼을 깜박거리고 있었다.

 

“마음에 들었나보네.”

“응, 무척이나. 무슨 노래야?”

“네 다음 일이야. 가이드 레코딩.”

“나만 하는 거야? 린이랑 나오는?”

 

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유감스럽게도, 이건 호죠 카렌에게 떨어진 미션이거든.”

 

그렇게 말하며 그는 나에게 반으로 접은 A4용지를 내밀었다. 그것을 펼치자 그 안에는 마치 시처럼 구절로 나뉘어진 짤막한 문장이 적혀 있었다.

 

“이거……가사?”

“맞아. 이제부터 네가 그 노래에 입혀야 할 옷이지.”

 

나는 종이에 적혀 있던 구절 중 하나를 소리 내어 읽었다.

 

신님께서 주신 시간은 넘쳐흘러, 앞으로 얼마나 남았을까?

 

“헤에, 옷이구나.”

“그럼, 옷이지.”

 

그 가사를 읽으면 읽을수록 어쩐지 나는 무척이나 익숙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 때의 나는 눈치채지 못했지만,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이것이 나 호죠 카렌과 그 노래의 첫 만남이었다.

 


 

 

11월의 첫 번째 수요일.

일반적으로 수요일은 한 주의 절반이 지나가는 기념비적인 날이지만, 우리들에게는 마스터 트레이너와 함께하는 지옥의 보충 트레이닝이 있는 날이기도 하다.

 

 

오후 다섯 시, 일과 종료를 알리는 방송이 실내 스피커에서 흘러나왔다.

 

“좋아, 오늘은 여기까지! 다들 마무리운동 제대로 하고, 조심해서 돌아가도록!”

““네!””

 

베테랑 트레이너 씨의 말에 입을 모아 대답한 뒤,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연습실의 바닥에 철푸덕 주저앉았다. 옆에 서 있던 트레이너 씨에게서 차트를 받아 든 그녀는 곧바로 차트를 샅샅이 뒤져보며 우리들을 바라보았다.

 

”오늘의 보충 트레이닝은…….”

 

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우리는 베테랑 트레이너 씨의 다음 이야기를 기다리며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대체적으로 보충 트레이닝의 단골은 나나 후미카 정도였지만, 그녀의 기준에 만족되지 않는다면 그 누구라도 죽음의 명단에 이름을 올릴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흐음, 뭐……다들 잘 해 주었군. 그러니 오늘 보충 트레이닝은 카에데와 미즈키, 후미카만 받는다.”

“네…….”

“으으, 또야……?”

“늦었잖아요? 열심히 해야죠.”

 

울상을 짓는 미즈키 씨와, 그 옆에서 그녀를 달래는 카에데 씨를 바라보며 나는 마음 속으로 작은 승리포즈를 취했다. 저 사람 앞에서 대놓고 좋아했다가는 삽시간에 저 명단에 나도 올라갈 가능성이 있으니까, 지금은 최대한 나를 숨겨야 할 때다.

 

“카렌, 너무 좋아하지 마라. 네가 잘해서 빠진 게 아니야. 프로듀서의 지시사항이다.”

 

마치 나를 꿰뚫어보는 듯 한 그녀의 말에 나는 뜨끔하면서도 내심 고개를 갸웃거렸다.

‘P씨의 지시? 나 뭔가 잘못한 거라도 있던가?’

그리고 곧바로 이어진 그녀의 말에, 나는 오늘이 무슨 날인지를 깨달았다.

 

“카렌 너는 지금 당장 옷 갈아입고 사무실로 올라가라. 올라가면서 목 잘 풀어놓고.”

“……목이요? 아, 아아. 맞아. 그랬지.”

 

그제서야 내 머릿속에 확실하게 떠오른 것이 있었다. 아아, 맞아. 오늘은 그 날이었구나.

 

*****

 

OK사인이 떨어지고, REC이라 적혀 있던 빨간 불이 픽, 하고 꺼졌다.

 

“휴우…….”

 

한숨을 내쉬면서 나는 방음처리가 된 문을 열고 녹음실을 나왔다. 곁눈질로 바라본, 벽에 걸려 있는 시계는 오후 7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정말, 아무리 어쩌다 한번이라지만 레슨 다음에 녹음이라니 너무한 것 같아.

 

“수고했다.”

 

녹음실을 나오자, 기다렸다는 듯 나를 향해 수건과 물건이 불쑥 튀어 나왔다. 수건을 받아 흘러내린 땀을 닦아내고, 물병을 받아 목을 가볍게 축인 뒤 나는 고개를 들어 내게 두 물건을 건넨 장본인을 바라보았다.

그는 키가 큰 사람이었다. 얼마나 크냐하면, 나보다도 머리 세 개 정도가 더 높은 곳에 얼굴이 위치하고 있을 정도로 키가 큰 사람이었다. 날카롭게 줄이 선 짙은 네이비 컬러의 양복을 걸친 그는, 쓰고 있는 뿔테 안경을 빛내며 조정실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P씨, 어땠어?”

 

조정실에 있는 마스터 트레이너 씨를 바라보던 그는 나를 돌아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이걸로 오케이다. 리테이크 없이 넘어가다니, 굉장한걸?”

“정말? 앗싸! 그럼 잘 했으니까, 상으로 밥 먹으러 가자. P씨도 저녁 안 먹었잖아?”

“음……좋지. 늘 가던 거기로 갈까?”

“응!”

“녀석, 평소에도 그렇게 웃어봐라.”

 

씨익 웃으며 그는 곧바로 조정실로 향했다. P씨의 이야기를 듣고는 고개를 끄덕이는 마스터 트레이너 씨와 점차 움직임이 분주해지는 스태프들의 모습을 보아하니 이제 마무리를 하려는 모양새였다. 나는 벗어둔 외투와 머플러를 챙기며 곧바로 돌아갈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내가 짐을 모두 챙겼을 무렵, 스태프에게서 건네받은 USB를 주머니 속으로 집어넣으면서 P씨가 조정실을 나왔다.

 

“자, 얼른 가자. 그렇지 않아도 보충 트레이닝도 조금 전에 끝났다는군.”

“아, 응.”

 

안타깝게도, 오늘의 P씨를 기다리는 것은 나 혼자가 아니었다. 미즈키 씨와 카에데 씨는 곧바로 술이라도 한잔 하러 가실 분들이니까 그를 기다리는 것은 아마도 후미카 씨 뿐이겠지.

녹음실을 나와서 나는 P씨의 뒤를 따라 복도를 걷기 시작했다. 퇴근시간을 넘겼기에 회사의 복도 여기저기를 어두컴컴한 어둠이 내리고 있었다.

‘좋아, 이 정도면 되겠지.’

그의 시선이 닿지 않는 등 뒤에서 나는 마음을 가다듬었다. 가자, 호죠 카렌! 단련된 연기력을 보여줘!

 

“……적, 저기, P씨?”

“왜?”

 

좋아, 잘 나왔어. 약간 떨리는 듯 한 내 목소리를 듣고 한 걸음 정도를 앞서가던 그가 발걸음을 늦추어 나를 바라보았다. 그 때를 놓칠세라 나는 내 옆으로 다가온 그의 팔을 가볍게 끌어안았다.

 

“무, 무서워서 그런데, 이렇게 가면 안 될까……?”

 

그러자, 난처한 듯 주위를 돌아본 그는 별 수 없다는 듯 한숨을 폭 내쉬었다.

 

“……뭐, 회사 안이니까 괜찮겠지. 엘리베이터까지만이다?”

“에헤헷, 고마워.”

 

마음 속으로 승리포즈를 취하며 나는 그의 옆에 딱 달라붙었다.

응, 역시 좋아. 이 자리가 제일 안심돼.

본관의 엘리베이터에 도착해 버튼을 누르자, 1층에 있던 엘리베이터는 금세 우리가 있는 곳으로 올라왔다. 조금만 천천히 와 줘도 될 텐데.

약속은 약속이었기에, 나는 그의 팔에서 떨어져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갔다. 1층을 누르고 잠시 기다리자, 문이 닫히면서 몸이 붕, 떠오르는 듯한 가벼운 부유감이 느껴졌다.

 

“저, P씨?”

“응?”

 

그는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그 노래 있잖아. 방금까지 내가 부른 거. 그거 주인은 아직 안 정해졌어?”

“왜? 마음에 들어?”

“어? 아, 으응, 마음에 든다기보다는, 혹시 내가 하고 있는 방식이 잘못된 건 아닐까, 그래서 작곡가분이나 저 곡을 받아갈 사람도 싫어하는 건 아닐까, 싶어서.”

“……괜찮아.”

 

그는 자신의 커다란 손을 내 머리위에 턱 하고 올렸다. 그의 손을 타고 전해지는 온기를 느끼며 나는 눈을 감았다. P씨는 성인 남자 치고는 손이 무척이나 따뜻한 사람이었다.

 

“넌 잘 해주고 있어. 작곡가분도 굉장히 좋아하고 계시고. 저 노래는 아직 허물을 벗을 만큼 여물지 않은 것뿐이야.”

“……으응, P씨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아, 도착했다.”

 

땡, 하는 소리와 함께 부유감과 정 반대로, 이번에는 가볍게 몸을 누르는 중량감이 느껴지면서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우리는 아직까지 불이 켜져 있는 로비로 향했다. 드문드문 불이 켜진 텅 빈 로비에는 역시나 경비실 직원들을 제외하면 인기척이라곤 찾아볼 수가 없었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그나마 조명이 가장 밝게 비치는 정문 근처의 소파에 앉아서 책을 읽고 있는 한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그녀는 늘어뜨린 앞머리와 늘 걸치고 다니는 숄이 특징인 사람, 오늘 저녁에 나와 함께 보충레슨을 받은 후미카 씨였다. 우리들의 발소리에 반응한 것인지, 후미카 씨는 우리가 그녀를 부르기도 전에 스윽 고개를 들어 우리가 있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미안하다. 많이 기다렸어?”

 

P씨의 질문에 후미카 씨는 조용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마침 읽다 남은 부분이 있어서, 마저 정리하기에 딱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볼일은 다 끝나셨나요……?”

“이제 막 끝난 참이야. 가자, 데려다줄게.”

“네.”

 

자리에서 일어나, 읽고 있던 책을 가방 속으로 되돌린 그녀는 가장 앞에서 걷는 P씨의 반 걸음 뒤에 서서 조용히 그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그녀와 어깨를 나란히 한 채 걸으면서 나는 조금 전 후미카 씨의 행동을 떠올렸다. 평소 휴게실이나 사무실에서 책을 읽을 때는 우리가 아무리 떠들어도 미동조차 하지 않는 그녀였지만, 신기하게도 P씨의 소리에는 금세 반응을 보이곤 했던 것이다. 조금 전의 경우도, 분명히 P씨가 없었다면 우리가 흔들어 깨우거나 책을 다 읽기 전까지는 계속해서 책만 보고 있었겠지.

본관의 옆 문과 연결된 야외 주차장을 향해 나가던 그는 무언가가 떠오른 듯 손바닥을 가볍게 마주쳤다.

 

“아아, 맞아. 아까 지하 주차장에 세워 놨었지. 밖은 쌀쌀하니까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금방 가져올 테니까.”

“네.”

“응, 알았어.”

 

P씨가 돌아올 때까지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던 나는, 문득 옆에서 들려오는 사각거리는 소리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 후미카 씨를 바라보았다. 벽에 기대어 선 채, 그녀는 늘 가지고 다니는 조그마한 일기장에 무언가를 쓰고 있었다. 일기라도 쓰는 것일까?

‘……만년필?’

그런 내 시선을 잡아 끄는 것은 다름아닌 그녀가 사용하고 있는 만년필이었다. 로비의 불빛을 받아 이따금씩 은은한 금빛으로 반짝이는 펜촉과, 한 눈에 보더라도 눈에 띄는, 매끄러운 광택이 흐르는 목재 몸체가 인상적인 물건이었다.

 

“저, 후미카 씨?”

“네……?”

 

내 부름에, 그녀는 사각거리던 펜을 멈추고 나를 바라보았다. 평소에 늘어뜨린 그녀의 앞머리는 그녀보다 키가 큰 사람에게는 무척이나 효과적이지만, 나처럼 그녀보다 키가 작은 사람에게는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일각에서는 보석이라고 일컬어지는 그녀의 푸른 눈동자를 바라보면서, 나는 새삼스럽게 사람의 눈동자가 이렇게도 반짝이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 현역 아이돌마저 기죽게 만드는 눈이라니. 신님은 너무 불공평한 것 같아.

 

“그 만년필……처음 보는 건데, 새로 산 거야?”

“아, 이것 말인가요……? 실은……받은 거랍니다. 며칠 전, 저의 생일 때…….”

“아, 생일 선물이었구나.””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손에 들린 만년필을 바라보는 그녀의 얼굴에는 무척이나 온화한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그 표정을 본 순간, 나는 무언가를 직감했다. 저것은 보통 물건이 아니라는 것을.

 

“가족한테 받은 거야?”

“……아뇨. 제가 평소에 무척이나 신세를 진, 제 은인께서 주신 거에요…….”

“헤에, 그렇구나…….”

 

한 번 봐도 될까? 라고 말하려던 찰나, 문을 열어 젖히며 P씨가 불쑥 모습을 나타냈다.

 

“까, 깜짝이야! P씨! 조금만 살살 다녀!” 

“많이 놀랐어? 미안하다. 자, 얼른 집에 가자.”

“네……”

 

'뭐, 다음에 물어봐도 되겠지.'

그렇게 후미카 씨의 만년필에 대한 생각은 잠시 접어 넣고, 나는 후미카 씨의 뒤를 따라 자동차의 뒷좌석에 앉았다. 우리가 좌석에 앉아 안전벨트를 차는 것을 확인한 뒤 그는 곧바로 자동차를 몰아 회사를 벗어났다.

 

 

*******

 

 

프로덕션 본관에서 자동차로 10분 정도 걸리는 여자 기숙사의 정문.

 

 

“두 분 모두 조심해서 들어가세요…….”

“레슨 받느라 고생 많았다. 들어가서 푹 쉬고.”

“후미카 씨, 오늘 고생했어요!”

 

자동차에서 내린 후미카 씨는 P씨를 향해 깊게 고개를 숙였다. 역시 보충 트레이닝까지 받고 나서는 피곤했던 것인지, 조수석에 앉아서 연신 하품을 하던 그녀는 비틀거리는 걸음걸이로 기숙사를 향해 들어갔다.

후미카 씨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P씨는 그녀가 기숙사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그럼 가 볼까?”라고 말하며 재차 시동을 걸었다. 나는 재빨리 뒷좌석에서 내려 비어 있던 조수석으로 자리를 옮겼다.

 

“여기 앉아도 돼?”

“……안전벨트 단단히 매고.”

“후훗, 고마워.”

 

부르릉, 하는 소리를 내며 우리 두 사람을 실은 승용차가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호죠.”

 

창 밖으로 휙휙 지나가는 불야성의 불빛을 바라보고 있던 내게 P씨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고개를 돌려 오른쪽을 바라보았다. 교차로의 신호에 걸려 자동차가 잠시 멈춘 사이, P씨가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새로 온 애들은 어때? 같이 지낼 만 해?”

 

이번 주 월요일. 그러니까 11월의 시작과 함께 합류하게 된 신입 아이들은 이번 1주일간은 적응기간이라는 명목 하에 견학이나 간단한 레슨 정도만 진행하고 있었다. P씨의 말로는 앞으로 계속해서 추가되는 만큼, 순차적으로 인원을 늘리거나 프로그램에 변화를 줄 거라고는 했지만, 아무튼 지금은 그렇게 지내고 있었다.

예외로 이전부터 활동을 하고 있던 우즈키와 개인적으로 트레이닝을 받고 있던 미카는 곧바로 우리들과 함께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었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연습생 수준에서’였다.

 

“으응, 뭐, 아직은 적응기……라고나 할까? 솔직히 우리가 다들 먼저 다가가는 타입은 아니잖아? 린이나 나오도 그렇고, 마유나 후미카 씨도 그렇고.”

“그렇긴 하지. 그 부분이 조금 걱정이었다만.”

“그래도 미카나 우즈키가 중간 다리 역할을 해 주고 있어서 덕분에 어찌어찌 말은 트고 있어. 그러니까, 조금만 더 있으면 괜찮을 것 같아.”

“훗, 대견한걸.”

 

그러게, 라고 대답하며 나는 웃었다. P씨가 걱정하고 있는 것이 어떤 부분이었는지 나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P씨를 만나고, 린과 나오를 만나고, 많은 동료들을 만났다. 새삼 기억을 돌이켜보면 아이돌이 되기 전, P씨와 만나기 전의 나와 비교하면 지금의 나는 내가 놀랄 정도로 몹시나 부드러워져 있었다.

 

“정말, 내가 폼으로 아이돌 한 줄 알아?”

“하하, 그게 그렇게 되는 건가.”

 

신호가 파란불로 바뀌었다. 약한 가속도와 함께 우리를 실은 자동차가 다시 바퀴를 굴리기 시작했다. 그 때, 신호등의 색깔 때문이었는가, 문득 내 머릿속에 그 노래가 떠올랐다.

 

“……저기, 그 노래 말인데.”

“그래.”

”아까는 그렇게 말했지만, 역시……좀 그렇네.”

“신경 쓰여?”

“응, 이제 와서 말하는 거지만, 처음 그 노래를 부를 때에 비하면, 뭔가 조금 많이 바뀐 느낌이라서.”

“’바뀌었다’라……구체적으로는?”

“으응, 말로 표현하기에는 애매한데……맞아. 비유하자면 처음에는 헐렁하던 옷이 조금씩 내 몸에 맞는 것처럼 바뀌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려나……?”

“그렇게 느꼈단 말이지.”

“그런데, P씨가 전에 그랬잖아? 가이드 보컬이라는 건, 곡에 자신을 입혀서는 안 되는 거라고. 처음부터 끝까지, 안 맞는 옷은 안 맞는 옷으로 놔두어야 한다고.”

“그랬었지.”

“……실은, 그래서 불안했어. 안 맞는 옷으로 놔두어야 하는 건데, 반대로 내가 저 옷에 나를 맞춰 버린 건 아닐까, 그래서 저 노래가 선택 받지 못하는 건 아닐까……하고 말이야.”

 

대답이 없었다. 나는 고개를 돌려 운전석을 바라보았다. 운전에 집중하느라 앞을 보고 있었지만, 가로등에 얼핏 비치는 그의 옆얼굴에는 분명한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그것도 어쩐지 기뻐 보이는 듯한 미소였다.

 

“왜 웃고 있어?”

“아니, 별 의미는 없어. 그냥 기뻐서.”

“기뻐?”

“그래, 호죠 카렌의 성장이 기쁜 거야.”

 

‘헤에, 기뻐해주는구나.’

괜스레 얼굴이 뜨거워지는 것이 느껴졌다.

 

“P씨, 창문 열어도 돼?”

“안 춥다면야.”

“고마워.”

 

******* 

 

“음……나는 그럼 이거랑, 이거랑, 이거.”

 

사무실 근처에 위치한, 평소에도 자주 다니던 패밀리 레스토랑에 도착한 나는 자리에 앉자마자 예전부터 점찍어 둔 메뉴를 골랐다.

 

“꽤나 무거워 보이는데, 괜찮겠어?”

“열두 시에 점심 먹고 그 뒤로 아무것도 못 먹었단 말이야. 왠지 지금이라면 다 먹을 수 있을 것 같아.”

“호오, 한번 두고 보지. 그럼 나는 여기 샐러드로. 버튼 누른다?”

“응.”

 

잠시 후, 우리 집 근처에 있는 늘 가던 패밀리 레스토랑에 도착한 나는 평소보다 조금 더 호화로운 구성의 세트메뉴를 잔뜩 시켰다. 평소에는 먹는 거 관리해라, 컨디션 관리하라며 잔소리를 펑펑 쏟아내는 P씨였지만, 오늘처럼 특별한 일이 있을 때는 이렇게 종종 인심을 베풀기도 했다.

지갑 사정이 풍족한 것인지, 아니면 우리들에게만 허들이 낮아지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기본적으로 P씨는 돈을 쓰는데 있어서 결코 절약하는 타입이 아니었다. 오히려 써야 할 데라고 판단한 곳에는 주위에서 걱정할 정도로 화끈하다 싶을 정도로 지갑을 여는 타입이었다.

주문을 한 뒤, 학교 생활 등으로 간단한 잡담을 나누고 있자니 금세 커다란 쟁반을 든 종업원이 나타났다.

 

“주문하신 음식 나왔습니다. 파인 샐러드는 어느 쪽인가요?”

“아, 저한테 주세요. 나머지 음식은 이쪽 분에게.”

“고마워요~. 우와, 이거 끝내준다! 진짜 다 먹어도 돼?”

“물론. 안 얹히게 잘 씹어서 삼켜.”

“응!”

 

테이블 위에 푸짐하게 차려진 음식들을 내가 천천히 맛보는 동안 P씨는 드링크 바에서 우유를 가져와 야채 샐러드와 함께 먹기 시작했다. 사정을 모르는 제3자가 보기에는 가녀린 미소녀가 고기와 감자 더미 앞에서 정신 없이 식기를 놀리고 있고, 맞은 편에는 그녀의 세 배는 족히 될 법한 거구의 사내가 야채를 일일이 자신의 그릇으로 옮겨가며 깨작거리고 있는 다소 우스꽝스런 모습으로 보일 것이다. 내가 생각해도 재밌겠네.

내가 변장을 안 했다면 유X브 같은데 영상 올라갔겠지?

 

 

“휴우…….”

 

잠시 후, 한바탕 식사를 마친 나는 한숨을 내쉬며 들고 있던 식기들을 내려놓았다. 내 딴에는 먹을 만큼 먹었다고 생각했는데, 식탁 위에 남아있는 음식들은 절반은커녕 1/3정도도 줄어들지 않은 상태였다.

 

“다 먹었어?”

“으응, 먹고 싶어서 잔뜩 시키긴 했는데……역시 나한테는 무리일지도.”

“뭐, 무리해서 다 먹을 필요는 없으니까 말이야. 샐러드 먹을래?”

“응. 뭔가 입가심이 좀 필요한 것 같아.”

 

나는 P씨에게서 샐러드 그릇과 아직 쓰지 않은 새 식기를 넘겨받았다. 절반 정도 남은 샐러드는 파인애플이 듬성듬성 들어가 있고 새콤한 드레싱이 들어가 있어, 고기로 인해 느끼하던 입맛을 잡아주는 데는 굉장히 좋은 음식이었다. 어찌나 깔끔하게 먹은 것인지, 절반 가까이를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샐러드는 새 것이라고 믿어도 될 정도로 멀쩡한 모습이었다. 메뉴를 정하는 것도 그렇고, 샐러드를 먹을 때 구태여 자기 그릇으로 옮긴 다음 먹는 것도 그렇고, 열심히 따라가보려고 하지만 이런 소소한 배려를 눈치 챌 때마다 나는 그 격차를 새삼스레 다시 느끼게 된다. 마치 ‘이것이 어른이다’라고 말하는 듯 한 모습이었다.

내가 샐러드를 먹는 동안, 미처 다 먹지 못하고 남은 것들을 P씨가 마저 먹기 시작했다. 요 며칠간 ‘저러다 죽는 거 아닐까?‘ 싶을 정도로 과도하게 운동을 하던 그였기에 움직인 만큼 식욕 또한 왕성해진 것인지, 지금처럼 그가 먹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괜스레 내 입꼬리가 올라가곤 했다.

 

“잘 먹네. 보기 좋다.”

 

잠시 그의 기세가 수그러든 틈을 타, 나는 솔직하게 감상을 말했다. 정신없이 음식을 흡입하던 그의 기세가 멈칫했다. 쑥쓰러운 듯 뒷머리를 긁적이며 그는 변명하듯 말했다.

 

“……오늘은 회의 때문에 점심부터 아무것도 못 먹었거든.”

“회의 전까지 하루 종일 외근이었지? 많이 바빴어?”

“아니, 바빴다기보다는 이리저리 돌아다닐 곳이 많아서.”

“무슨 일이라도 있었어?”

 

잠시 말을 멈춘 P씨는 씹고 있던 햄버그를 꿀꺽 삼켰다.

 

“이번에 새로 들어올 애들, 거주지 문제가 해결이 안 돼서 말이야. 그거 좀 해결하느라고.”

“아아, 그러고보니 기숙사가 어쩌구저쩌구 했었지? 해결 됐어?”

“뭐, 절반 정도?”

 

모호한 대답이었다.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이 그는 마지막 남은 햄버그를 입 안으로 집어 넣었다.

 

“하, 잘 먹었다. 이제야 좀 살겠네.”

 

잠시 후, 종업원이 우리가 먹었던 식기와 그릇을 모두 회수해 갔을 무렵, 어느 정도 속이 가라앉은 듯 P씨는 “가자”라고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그의 뒤를 따라갔다.

 

“저기, P씨.”

“응?”

“오늘은 야근 안 할 거지?”

“뭐……일단은? 센카와 씨가 대강 처리해두셨다니, 내일 확인해봐야겠지.”

 

가게를 나와, 그의 승용차로 다시 돌아가던 도중에 나는 조금 전, 밖에서 P씨와 함께 식사를 하고 간다고 했을 때 부모님에게서 들었던 이야기를 그에게 전했다.

 

“그, 그러면, 우리 부모님께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고 차 한잔만 하고 가면 안 되겠냐는데, 어때?”

“으음……글쎄다.”

 

낮은 신음소리를 흘리며 그는 턱을 쓰다듬었다.

 

“뭐……부모님이 계신다면야 안 될 건 없겠지. 마침 슬슬 찾아 뵐 때가 되긴 했고.”

“그럼 왔다 갈 거야?”

“그래. 잠시 들렀다 갈게……잠시만, 이거 내 전화지?”

“응. 가방 집어줄까?”

“부탁할게.”

 

우리가 차에 타기가 무섭게 그의 가방 속에서 웅웅거리는 진동소리가 들려왔다. 내게서 자신의 서류가방을 건네받고, 가방을 뒤적이던 그가 꺼낸 것은 그의 업무용 휴대전화였다. 어쩐지 불길한 느낌이 느껴졌다.

 

“네, CG프로덕션의 P입니……센카와 씨? 네, 저에요. 아뇨, 이제 막 호죠랑 밥 먹고 집에 데려다 주는 길입니다만……네? 타카가키 씨랑 카와시마 씨가요?”

 

그는 휴대전화를 떼어놓고는 잠시 내 눈치를 살피듯 나를 바라보았다. 내 예감이 적중한 것인지, 무척 미안한 듯 나를 바라보는 그를 향해 나는 빙그레 미소로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금방 갈게요. 늘 가던 그 가게, 맞죠? 네. 알겠습니다.”

 

하아, 결국 이렇게 되는구나.

휴대전화를 다시 가방 속으로 되돌리고, P씨는 쓴웃음을 지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미안하다. 타카가키 씨랑 카와시마 씨가 뻗어버려서 아무래도 내가 데리러 가야 할 것 같아.”

“으응, 뭐……그렇다면 별 수 없지. 대신, 차는 다음에 꼭 한번 마시러 와야 한다?”

“그래. 일단 집 앞까지는 데려다 주마. 안전벨트 맸지?”

“응.”

 

잠시 후, 자동차가 우리 집의 대문 앞에 도착하자 P씨는 차에서 내려 현관까지 나를 배웅했다.

  

“정말, 안 내려도 된다니까?”

“충분히 소화시키고 자. 소화 안 될 것 같으면 소화제 먹고.”

“네, 네. 알았어요. 잔소리도 참. 우리 집인데 나한테 무슨 일이 있을 것 같아? 그보다 P씨야말로 빨리 가 봐야지. 취했다며? 부모님한테는 내가 말해 놓을게.”

“……그렇군. 그럼 난 이만 가볼게. 내일 만나자.”

“응, 잘 가, P씨.”

 

나는 뒷맛이 개운치 않다는 듯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다시 운전석으로 들어가는 그에게 손을 흔들었다. 현관 앞에서 멀어지는 한 쌍의 빨간 테일램프를 바라보며 나는 조용히, 몇 번이나 불렀던 노래의 한 구절을 읊조렸다.

 

히로인이 되고 싶어하는 건 나답지 않으려나……?

 

“하아……4개월, 진짜 따라잡기 힘들다…….”

 

마지막으로 내뱉은 한숨 너머로 슬쩍 보이던 빨간 불빛이 마침내 사라졌다. 현관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가자 바깥의 싸늘한 바람과는 전혀 다른, 실내의 온기를 품은 우리 집 특유의 공기가 느껴졌다.

 

“나 왔어~!”

“카렌 왔니? 프로듀서 씨는?”

 

거실 쪽에서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P씨는 급한 일이 생겨서 다음에 오겠대. 아깝다.”

“저런, 여전히 바쁘신 분이구나. 얼른 들어오렴. 몸 식을라.”

“네에~.”

 

만약 그 사람과 함께 왔다면, 여기서 나는 무슨 말을 했을까?

‘우리 집에 어서 와?’ 아니면, ‘누추하지만 어서 오세요?’

신발장에 신발을 넣고 거실로 걸어가는 내 머릿속에는 온통 ‘만약’의 일에 대한 생각뿐이었다.

 

“얘, 무슨 생각을 하길래 그렇게 실실 웃어?”

“으, 으응, 아무것도 아니야.”

 

아차차, 표정관리.

 


 

다음 날, 11월의 첫 번째 목요일.

 

 

“열심히 하거라. 트라이어드 프리무스는, 그리고 호죠 카렌은 우리 학교의 자랑이니까.”

 

담임 선생님과 친구들의 응원 섞인 배웅을 받으며 나는 학교를 나와 사무실로 향하는 전철에 몸을 실었다. 학교 수업 도중 사무실로 갈 때는 P씨가 데리러 오는 것이 보통이었지만, 최근에는 데리러 온다는 것을 매번 뜯어 말리느라 우리 셋 모두 꽤나 애를 먹고 있다. 라이브의 구체적인 계획이 잡힌 이후부터 그는 무척이나 바빠 보였기 때문이다. 당장 어제만 하더라도 자리에 앉아 있는 모습을 보기가 힘들었고.

전철을 타고 회사 근처의 역에서 내린 나는 역에서 나와 빌딩의 숲 속에 나 있는 오솔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5분 정도 걸었을까, 차 한대가 간신히 지나갈 만한 골목길을 빠져 나온 내 앞에 거대한 빌딩이 나타났다. 높게 치솟은 본관을 감싸는 길게 누운 두 개의 별관. 밖에서 바라보면 마치 도시 속의 커다란 성처럼 보이는 이 거대한 건물이 바로 내가 소속되어 있는 CG프로덕션의 건물이었다.

두 개의 별관 중 우리 아이돌 부서. 아니, ‘신데렐라 걸즈’가 사용하는 곳은 제1별관이다. 하지만 본관의 정문을 통해 건물 안으로 들어간 내가 향한 곳은 우리 프로젝트의 사무실이 있는 1별관이 아닌 2별관에 위치한 사내 카페였다. ‘우리’가 학교에서 같이 출발할 때는 바로 사무실로 향하지만, 오늘처럼 혹여 개인적인 사정으로 따로 출발하게 될 때는 이 카페에서 모여 함께 사무실에 가는 것이 우리들 사이의 암묵적인 규칙이었다.

‘어디, 얘네들은 지금 어디쯤 있으려나.’

적당히 카페의 한쪽 구석에 자리를 잡은 나는 가방을 내려놓고 휴대전화의 메일함을 열었다. 그러자 바로 그 때 린에게서 메일이 도착했다. 정말로 기막힌 타이밍이었다.

 

@Rin_shibuya : 카렌, 어디야? 난 집에서 막 출발했어. 나오랑 같이 가는 중.

 

“헤에, 그럼 금방 오겠네.”

 

늘 기다리던 카페에 도착했다는 답장을 보내고, 나는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턱을 괴어 창문 밖으로 비치는 시가지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린의 꽃집은 번화가에서 약간 벗어난 곳에 위치해 있었다. 번화가에서 약간 떨어져 있다고는 하지만 우리 프로덕션과는 그다지 멀지 않은 장소였기에, 별 다른 일이 없다면 금세 도착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시간이 많이 남았다면 뭔가 마실 거라도 주문하려고 했지만 단념하고 나는 곧바로 휴대전화를 조작해, 이번에는 다른 사람에게 메일을 보냈다.

 

-P씨? 나 사무실 가는 길인데 지금 뭐해? 10분쯤 뒤에 도착할 것 같아.

 

괜한 짓을 한 걸까? 지금 중요한 회의라도 하고 있으면 어쩌지? 하는 생각이 뒤늦게 들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곧바로 돌아온 답장은 그런 내 생각이 한낱 기우였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다.

 

@P_roducer : 지금 사무실 가는 중. 너희에게 소개시켜 줄 사람들이 있으니까 어디 가지 말고 사무실에 얌전히 앉아 있어.

 

‘소개시켜 줄 사람?’

P씨의 메일을 읽으면서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휴대전화의 화면에 떠오른 간이 스케줄에 떠오른 것은 D-22라고 적혀 있는 다음 라이브 예정이었다. 행사 관련으로 무슨 중요한 관계자라도 온다는 뜻일까?

그런 생각을 하며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고 있자니, 10분 정도 지나 린과 나오가 함께 카페에 모습을 나타냈다.

 

“미안해. 오래 기다렸지?”

“아니, 예상 범위 안이었어. 그나저나 너희들도 P씨한테 메일 받았어?”

“응. 소개시켜 주고 싶은 사람이 있다는 그거지? 얼른 가보자.”

 

 

******* 

 

 

사무실에 도착하자, 이미 먼저 와 있던 카에데 씨와 미즈키 씨, 그리고 후미카 씨와 마유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후미카 씨는 우리들을 향해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곧바로 책으로 시선을 되돌렸고, 마유는 뜨개질을 하던 손을 잠시 멈추고 우리들에게 인사를 한 뒤 다시 뜨개질로 시선을 되돌렸다. 스케줄 보드를 바라보면, 연습생 아이들은 지금쯤 아래쪽에서 열심히 구르고 있을 시간이었다. 어차피 연습생들이면 P씨가 알아서 대면시켰겠지.

오전부터 트레이닝이라도 했던 것인지, 사복 차림인 후미카 씨와 마유와 달리, 카에데 씨와 미즈키 씨는 트레이닝을 할 때 입는 운동복을 입고 있었다. 소파에 반쯤 드러눕다시피 뻗어 있는 미즈키 씨의 옆에서, 카에데 씨가 우리들에게 와서 앉으라는 손짓을 했다.

 

“학교에서 바로 오는 길인가요?”

“네. P씨는요?”

“방금 전에 치히로 씨와 함께 인사팀에 가셨어요. 오래 걸리는 건 아니니까 금방 올라온다고 하셨고요. 아, 그리고 이거요.”

 

나는 카에데 씨가 건넨 종이봉투를 받았다. 촉촉한 습기를 머금은 종이봉투에서는 미지근한 열기가 느껴졌다. 안에 든 것은 다름아닌 붕어빵. 나는 나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 나오를 바라보았다.

 

“P군이 사온 거야. 너희들 것만 남았으니까 하나씩 먹어. 우린 다 먹었거든.”

“나오, 들었어? 붕어빵이래. 역시 프로듀서야.”

“시, 시끄러워!”

 

미즈키 씨의 말에 린이 나오의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듣기로는 린의 집에서 사무실로 오던 도중, 붕어빵 가게가 눈에 띄어 붕어빵을 몹시 먹고 싶어 했다던가. 아무튼, 가장 언니인 주제에 너무 귀여워서 탈이다.

새빨개진 나오가 린을 덮치려던 찰나, 사무실의 문이 열리면서 P씨와 치히로 씨의 모습이 나타났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너희 왔구나. 여전히 힘이 넘치는데. 뭐 좋은 일이라도 있었어?”

“그러는 P씨야말로, 묘하게 기분 좋아 보인다?”

 

“하하, 그렇게 보여?”라고 말하면서 그는 들고 있던 서류를 자신의 자리에 갖다 놓았다. 바로 그 부분이 기분이 좋아 보인다는 것이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와중에도 웃음을 챙기는 저 부분이.

 

“저번 주부터 진행하던 몇 가지가 드디어 통과됐거든. 뭔가 후련하네. 아주 좋아.”

“그나저나 P군, 소개할 사람이라는 건 대체 누구야?”

“그건 지금부터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자, 너희도 가서 앉아 있고.”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우리들을 소파에 앉힌 P씨는 성큼성큼 걸어가 사무실의 문을 활짝 열었다. 그의 옆에 서 있던 치히로 씨는 어느샌가 우리들의 옆으로 자리를 옮겼고, 책과 뜨개질에 집중하고 있던 마유와 후미카 씨는 어느 샌가 자신들이 하고 있던 것을 모두 내려놓고 P씨를 바라보고 있었다.

P씨의 등 뒤로 보이는 반쯤 열린 사무실의 문 너머로 처음 보는 다섯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불안한 듯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방 안으로 들어온 그들은 우리들의 모습을 발견하고는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우와, 진짜잖아……!”

“어머, 어머머……테레비에서 뵈옵던 분들이 한가득이어요…….”

“ро́скошь(멋져)……!”

“아앗……! 몽환적인 장관이로다(꿈만 같아요!)……!”

 

복장은 움직이기 편한 활동적인 복장을 입고 있지만 비쳐 보일 정도로 새하얀 피부와 대조적인 새까만 눈동자와 여우를 연상시키는 날카로운 눈매가 인상적인 소녀와, 간단한 화복차림을 하고 있지만, 행동거지 하나하나에서 기품이 느껴지는 소녀. 그리고 그나마 다섯 명 중에서는 가장 평범한 차림을 하고 있지만, 머리에 쓰고 있는 고양이 귀 액세서리가 굉장히 인상적인 소녀가 있었지만, 그 세 사람도 나머지 두 사람에 비하면 그저 평범한 수준이었다.

 

“나오, 저기 쟤 외국인이지? 염색 아니겠지?”

“보통 은발은 염색 못 하지 않냐? 시죠 씨도 고향 모르잖아. 그보다도 오른쪽에 쟤, 저거 그거지? 고딕 어쩌구 하는.”

“쩐다……저렇게 입고 다니는 사람 나 처음 봤어.”

 

가장 눈에 띄는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놀랍게도 몹시 투명한 은빛으로 반짝이는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었다. 후미카 씨 만큼이나 푸른 눈동자를 반짝이는 그녀는 치켜 올라간 속눈썹 때문에 왠지 모르게 ‘은여우’가 떠오르는 인상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나머지 한 사람은, 흔히들 ‘고스로리 패션’이라고 불리는 차림새를 하고 있었다. 그래, 그 프릴이 주렁주렁 달리고 팔랑거리는 옷 말이야. 컬러렌즈인지, 아니면 천연인지는 알 수 없지만 새빨간 눈동자를 반짝이며 그녀는 우리들을 하나씩 바라보고 있었다.

자신의 옆에 늘어선. 개성이 넘치다 못해 철철 흐르는 다섯 사람을 바라본 P씨는 언젠가 그랬던 것처럼 우리들을 한번 바라본 뒤 그들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어린아이처럼 반짝이는 그의 눈을 본 순간, 나는 저 아이들이 나의 새로운 라이벌들이라는 사실을 직감했다. 아니, 직감할 수 있었다.

P씨의 신호를 받고, 가장 왼쪽에 서 있던 새하얀 피부의 사람부터 차례대로 자기 소개를 시작했다.

 

“교토 출신, 18살, 시오미 슈코야.”

“교토에서 온 코바야카와 사에라고 하여요. 15살이옵고, 잘 부탁드리옵니다.”

“Меня зовут……아, 저는 아냐. ‘아나스타샤’에서 아냐, 입니다. 홋카이도에서 왔고, 15살, 입니다.”

 

아나스타샤. 아냐의 소개가 끝나자, 곧바로 우리들의 시선을 잡아끌었던 개성덩어리 2호기, 시커먼 고스로리 여자가 자기 소개를 시작했다. 한 걸음 앞으로 나온 그녀는 우리들을 향해 팟, 하고 자신의 자그마한 손을 들어올렸다.

 

“나의 이름은 칸자키 란코! 어둠의 길을 걷는 동지들아, 지금부터 어둠의 미사를 시작하……!”

“칸자키.”

 

나직하게 말하는 P씨의 말에, 당당한 표정을 짓고 있던 ‘란코’라고 자기를 소개한 여자아이의 표정이 당혹감에 물들었다.

 

“약속했지? 처음 한 번은 제대로 하겠다고.”

“우, 우우……하지만…….”

“처음 한 번만이야. 네가 누구인지 제대로 말해 줘야 상대도 헷갈리지 않아.”

“으으……그,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망설이던 그녀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들어올린 손을 내려 자세를 바로잡으면서 꾸벅, 고개를 숙였다. 양 옆으로 늘어뜨린 나선형으로 돌돌 만 머리카락이 마치 스프링처럼 통통 튀었다.

 

“저, 저기……카, 칸자키 란코입니다! 쿠, 쿠마모토 현에서 왔고, ㅇ, 여, 14살이에요! 잘 부탁드립히댜!”

 

아, 쟤 혀 씹었다.

 

“씹었네.”

“응, 씹었어.”

 

혀가 아팠던 것일까, 새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란코가 제자리로 돌아가자, 마지막으로 남은 한 사람이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으며 한 걸음, 앞으로 나왔다.

 

“오사카에서 온 마에카와 미쿠다냥. 15살이냥. 잘부탁드린다냥!”

“저 아이가 어떻게 여길…….”

 

미쿠가 자기 소개를 마쳤을 때, 갑자기 옆에서 들려온 중얼거리는 목소리에 나는 고개를 돌려 목소리가 난 곳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커피를 홀짝이던 카에데 씨가 자신을 ‘미쿠’라고 소개한 아이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언제 만난 적이 있는 사이인가?’

지금처럼 누군가를 경계하는 듯한 카에데 씨의 모습은 좀처럼 보기 힘든 모습이었다.

 

“자, 이렇게 다섯 사람이 오늘부터 추가적으로 연습생으로 합류하게 됩니다. 선배로써, 그리고 동료로써 앞으로 이 아이들을 잘 이끌어주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센카와 씨? 잠시만 이쪽으로.”

“네?”

 

새로 들어올 아이들이 제각각 소개를 마치고, P씨는 치히로 씨에게 잠시 이쪽으로 와달라는 손짓을 했다. 진지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나누는 두 사람의 모습으로 미루어보아 아무래도 업무에 관련된 이야기인 모양이었다. P씨라면 모를까, 치히로 씨는 생각하는 게 얼굴에 그럭저럭 드러나는 편이니까.

잠시 후, 치히로 씨와 이야기를 마친 P씨는 곧바로 아이들을 우리들이 앉아 있는 소파에 앉힌 뒤 자신의 자리로 향했다.

 

“그럼 여러분들, 스케줄 시작 전까지 편하게 이야기 나누세요. 저는 회의 다녀오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P씨는 손을 흔들며 사무실을 나섰다. 찰칵, 하고 조심스럽게 사무실의 문이 닫히고, 조용한 가운데 그의 뚜벅거리는 발소리가 점차 멀어지기 시작했다. 마침내 그의 발소리가 완전히 사라졌을 때, 서로의 눈치를 살피며 가만히 있던 우리들은 일제히 고개를 들어 어색하게 앉아 있는 다섯 사람을 바라보았다.

 

  


 

  

오후 5시가 되었다.

회사의 모든 부서가 일과를 마무리하는 시각. 회의를 마치고 돌아온 프로듀서 역시 치히로에게 간단한 회의 내용을 전달하고는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아직 처리하지 못한 서류들을 마무리하기 시작했다. 오늘 하루 또한 외근과 회의에 쫓겨 있었기 때문에 처리를 요구하는 서류들이 꽤나 많이 쌓여 있었다.

프로듀서가 야근을 각오하며 속으로 한숨을 삼키던 그 때, 사무실의 문을 호쾌하게 열어젖히며 자그마한 실루엣이 모습을 나타냈다.

 

“프로듀서 씨! 승부합시다! 승부!”

“아카네? 저기, 프로듀서 씨는 오늘 굉장히 바쁘시니까 다음 기회에…….”

“오, 승부? 그거 좋지.”

“네?!”

 

치히로는 깜짝 놀라 프로듀서를 바라보았다. 아카네가 말하는 ‘승부’란, 다름아닌 CG프로덕션 근처에 위치한 강변공원에 설치된 트랙에서 하는 1500m 전력질주 승부를 말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프로듀서 씨!”

“괜찮아요, 괜찮아.”

 

치히로는 휙 고개를 돌려 프로듀서를 바라보았다. 평소의 체력이 남아도는 그라면 모르겠지만, 지금의 프로듀서는 야근을 하는 와중에도 체력 단련에 적잖은 시간을 투자하고 있었다. 비록 아직까지는 그다지 피곤한 기색을 보이지는 않았지만 매일매일 에너지 드링크를 달고 살면서 낮에는 업무, 밤에는 야근에 시달리면서 그나마 있는 휴식시간마저 체력단련실에 틀어박혀 녹초가 되어 나오는 모습을 보면 그 누구라도 걱정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 부분을 차지하고서라도, 치히로는 몇 주 전 그가 쓰러졌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느꼈던 무력한 기분을 두 번 다시는 느끼고 싶지 않았다.

그런 그녀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녀의 걱정스러운 눈빛을 받아내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프로듀서는 마치 도전자처럼 비장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아카네를 내려다보았다.

 

“오늘은 꽤 자신 있어 보인다?”

“물론이죠! 오늘은 절대로 지지 않습니다!!”

 

참고로, 아카네 본인이 말한 양성소 시절부터 이따금씩 진행했던 승부의 전적은 지금까지 11전 11승 무패로 프로듀서의 압승이었다. 그 이야기에 대해서 프로듀서 본인은 다리 길이의 차이라고는 했지만, 과연 어떨지.

 

“하하, 좋은 배짱이군. 과연 끝나고 나서도 그런 소리를 할 수 있을까?”

“승자의 여유로군요……!! 하지만 그것도 오늘까지입니다!!”

 

그러나 그 때를 기다렸다는 듯 그의 책상에 놓여 있던 업무용 휴대전화가 맹렬하게 울기 시작했다. 프로듀서는 손을 들어 잠시 기다려달라는 제스쳐를 취하고, 곧바로 자리에 다시 앉아 휴대전화를 들었다.

 

“네, CG프로덕션의 프로듀서 P입니다. 아, 선배? 네. 아뇨, 이제 별 일 없는데요. 네……잠시만요.”

 

휴대전화를 한쪽 어깨에 끼워둔 채, 프로듀서는 자신의 서랍을 열고 서류 몇 장을 꺼내 책상 위로 늘어놓았다. 그 서류의 내용은 다름아닌 11월 말에 계획된 공연, 드림 라이브 페스티벌의 기획서였다. 빨간 펜이나 형광펜으로 여기저기 표시가 되어 있는 서류를 뚫어져라 바라보던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휴대전화를 고쳐 쥐었다.

 

“네, 지금 찾았어요……네? 지금 뭐라고……알겠습니다. 곧바로 갈게요. 그 자식 다른 데 못 가게 거기 얌전히 좀 잡아두세요. 네. 그럼 잠시 후에.”

 

전화를 끊은 프로듀서는 굳은 얼굴로 휴대전화를 내던지듯 내려놓고,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서류를 챙겨 자신의 외근용 가방 안에 집어넣었다. 그는 고개를 돌려 자신을 향해 고개를 갸웃거리는 아카네를 바라보았다.

 

“히노, 정말 미안한데 승부는 다음에 하도록 하자. 대신 이따가 집에 가는 길에 별관 카페 가서 내 이름 대고 아무거나 맛있는 거 사 먹어.”

“정말인가요! 감사합니다!!”

“엉뚱한 이름 대지 말고 꼭 내 이름 대야 한다. 알겠지?”

“옛써!”

 

힘차게 사무실을 뛰쳐나가는 아카네를 바라보던 치히로는 자신의 자리를 정리하는 프로듀서를 바라보았다. 조금 전의 전화에서 무슨 이야기가 나왔던 것인지, 지긋이 아랫입술을 깨물고 있는 그의 표정은 무척이나 무거워 보였다.

 

“프로듀서 씨, 무슨 일인가요?”

“……이번 행사 관련으로 스폰서 측에서 공지할 게 있답니다. 그래서 참가 프로덕션 사람들을 죄다 불렀네요.”

 

잠시 행동을 멈추고 그는 무겁게 한숨을 푹 내쉬었다. 조금 전까지 잔뜩 들떠 있던 사람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무거운 한숨이었다. 그는 문서 몇 장이 들어있는 결재판을 들고 치히로에게 다가갔다.

 

”……이거 왠지 느낌이 안 좋아요. 왠지 길어질 것 같으니까 무슨 일 있으면 휴대전화로 연락주세요. 그리고 이거, 내일 있을 체력검정 참가자 명단이니까 이따가 트레이닝 파트에서 사람 올라오면 전해주시고요.”

“네? 아, 네…….”

 

그녀의 대답을 듣기는 한 것인지, 프로듀서는 발등이 불이 떨어진 듯 다급하게 사무실의 문을 거칠게 닫으면서 사무실을 나섰다. 문 너머로 들려오는 그의 발소리는 평소처럼 느긋한 리듬이 아닌 뜀박질을 하는 리듬이었다.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

 

사무실에 홀로 남은 치히로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프로듀서에게 받은 결재판을 열었다.

오늘부터 합류하게 된 다섯 사람을 포함한 사무실의 총원 중에서 체력검정에 불참하는 사람은 단 한 사람, 아카네 뿐이었다. ‘역시 아카네는 빠지는구나.’라고 생각하며 그녀는 그 아래 추신 부분에 적혀 있는 내용을 읽었다.

 

아카네는 체력은 합격점이지만 기본 테크닉이 부족하다고 판단, 체력검정 대신 보충 트레이닝 요망.

 

“역시, 이런 부분에선 철저하시다니까.”

 

훗, 하고 웃으면서 치히로는 결재판을 덮어 자신의 책상 위에 올려두었다.

 

한 치 앞을 모르는 것이 인생이라고 하던가. 적어도 이 때큼은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라이브의 준비도, 새로운 아이들의 영입과 그들의 육성도. 모든 것이 계획대로 순풍에 돛을 단 듯이 진행되고 있었다.

 

 

----------> 호죠 카렌 <히로인과 소녀, 꿈의 무게> (中) 으로 계속됩니다


 

격려에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슬럼프가 아니라 그저 단순히 일이 조금 밀려서 글이 밀렸을 뿐이에요. 정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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