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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나나 "골드 익스피리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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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12-23, 2016 10:11에 작성됨.

-작가가 도넛홀을 들으며 썼기에 도넛홀을 들으면서 읽는 걸 추천-

-새벽 감성 주의-

 

 세상에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어느덧 한 해가 거의 다 가버리고 또 새로운 모습으로 찾아올 내년과, 내년과 함께 찾아올 새로운 '17살의 생일'에 벌써부터 마음이 착잡하던 나나는, 어느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하아...우으, 이럴 줄 알았으면 좀 더 따뜻하게 입고 나오는 건데. 왜 하필 이런 때에 눈이 내리는 거야!"

 

 길거리의 연인들은 평소보다 더 들뜬 얼굴로 팔짱일 끼고 있을 것이다. 그런 연인들을 의식하고 부럽다고 생각하는 솔로들의 옆자리는 하얀 눈만 쌓여갈 것이다. 그녀는 자신도 그렇다고 생각했다. 아니, 했었다. 늦은 저녁 시간에 내일이 아르바이트도 일도 없는 오프라는 것을 떠올린 그녀는, 왠지 오늘따라 술이 마시고 싶다는 생각에 집 앞 슈퍼에 언제나처럼 캔맥주와 간단한 안주를 사러 나왔다. 집안 냉장고가 얼마 전의 '우사밍 파티'로 전부 고갈되었기에.

 하지만 언제나 문을 열고 있던 슈퍼는 어쩐 일인이 오늘은 일찍 문을 닫아버렸고, 집 앞 슈퍼로 나올 생각만 했었기에 츄리닝 위에 패딩 한 벌, 신발은 짝짝이 양말 위에 적당한 털 슬리퍼를 신은, 누가 봐도 그녀의 본직인 아이돌과는 거리가 멀어보이는 복장을 하고 있었기에 나나는 잠시 고민을 했었다. 결국은 조금 춥고 귀찮더라도 술을 사기 위해 좀 더 멀리 있는 편의점까지 가던 도중에 눈이 내리기 시작했지만.

 

"..."

 

'춥다...'

 

 살과 옷의 벌어진 틈새로 들어오는 찬바람을 어떻게든 막아보려 몸을 움츠리고 팔로 스스로를 감싼 나나는 문득 눈에 보이는 거리의 연인들을 보았다. 집 근처를 그저 조금 벗어났을 뿐인데도 사람들의 수가 늘어난다. 누구나가 짝이 있다. 사람이든 짐승이든 짝이 있는데, 어째서 자신은 이렇게 허전한 걸까.

 

"...괜찮아, 우사밍한테 연인은...있어봤자 맺어질 수 없는 존재인 걸!"

 

 그녀는 스스로를 격려하면서도 속으로는 계속해서 질문을 떠올린다. 거리의 연인들은 정말로 서로를 사랑하는 걸까? 얼마 전 그녀는 편의점에서 피임 도구를 사는 커플을 봤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두 사람 사이에 설렘이라는 것을 찾아볼 수 없었다. 마치 형식적으로, 매일 똑같은 서류를 결제하는 회사원의 모습을 보는 듯 했다. 그건 정말 서로 사랑하던 연인이었던 것인가 하는 의문조차 느꼈다.

 

'...사랑은 뭘까.'

 

휘이이-

 

"아읏...! 추, 추워...!"

 

 눈이 내리는 것으로 모자라 이제는 바람까지 불기 시작해 도저히 참기 힘들다고 느꼈기에, 그녀는 그만 길에서 쪼그려 앉아 어떻게든 찬바람을 맞는 면적을 줄이고, 최대한 몸의 열을 보존할 수 있도록 했다. 찬바람이 멎으면 얼마 남지 않은 편의점으로 달려가 술과 함께 따뜻한 손난로라도 사서 주머니에 넣을 생각으로, 그녀는 쪽팔림보다는 살고 싶다는 생존본능을 우선시한다.

 

'이럴 때, 도와달라고 연락할 사람이라도 있었다면...'

 

 그녀의 머릿속에는 익숙한 사람들이 떠올랐다. 자신과 비슷한 또래의 친구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로 친한 사람들. 자신과 마찬가지로 어떤 상황에서도 스스로의 젊음을 포기하지 않고 만끽하려고 하는 사람들. 함께 아이돌을 하면서 즐거웠던 추억을 쌓았던 사람들. 문득 그 사람들이 떠올라 그녀는 주머니에 든 휴대폰을 꺼내 연락을 해봤다.

 

삐리리릭-

 

삑-

 

"아, 여보세요...? 미즈키 씨..."

 

-미안, 나나! 갑자기 게스트 한 명이 펑크가 나는 바람에 난리가 났어! 나중에 연락할게!

 

"에? 아, 네에..."

 

뚝-

 

"...바쁘시구나."

 

 생각지도 못한 빠른 거절이었기에 놀라고 조금 씁쓸할 법한 일인데도, 그녀는 어쩐지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마음 속으론 애초부터 기대를 하지 않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사실 전화가 걸려서 평범하게 대화를 시작했다고 해도 그녀는 무슨 말을 하면 좋을지 몰랐을 것이다. 자신이 지금 추우니까 데리러 와달라고 말한다? 그럴 수 있을 리가 없다. 상대방에게 미안하기 때문이다.

 아니, 어쩌면 그 정도로 상대방을 신뢰할 수 있지 않을 걸지도.

 

'...'

 

삐리리릭-

 

삑-

 

"아, 여보세요? 카에데 씨..."

 

-어머, 나나 양? 이 시간에 무슨 일인가요?

 

"아, 그게...잘 계신가 해서..."

 

-...에? 우리 낮에도 보지 않았나요?

 

"그, 그랬었죠...아하하하..."

 

-음...잘은 모르겠지만 혹시 고민거리가 있다면 '연락'해주세요. 같이 '낙엽'이라도 보면서 털어 놓자구요~

 

"...네."

 

-그럼.

 

뚝-

 

"...역시, 달리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아."

 

 머릿속에 떠오르는 사람들은 아직도 있다. 하지만 앞선 두 사람을 통해 그녀는 이미 충분히 깨달았다. 자신은 지금,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고 연락을 하고 있다. 별로 연락이 된다고 해서 달리 할 말이 있는 것도 아니고 지금의 상황을 말할 수도 없다. 애초에 지금의 상황을 말한다고 해서 도움을 받을 수 있지도 않을 것이다. 사람들은 저마다 사정이 있으니까.

 당장에 자기 앞가림 하기도 힘든 세상이다. 거기에 타인을 믿는 것은 더더욱 힘들다. 타인에게 기대는 것은 그보다 더 힘들다. 기댈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믿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니까.

 

'누구에게 연락한다고 하더라도, 지금의 상황을 말하고 도움을 요청할 순 없겠지...'

 

"춥다..."

 

 어느새 바람은 멈췄다. 하지만 지금은 몸보다 마음이 추워진 나나는 여전히 쪼그려 앉은 체로 생각에 잠겼다. 자신에게는 어째서 믿고 도움을 요청할 사람이 없는 것일까? 자신의 진짜 나이를 털어놨던 것도, 사실은 그저 힘들었기 때문이란 것을 그녀는 잘 알았다. 혼자서만 간직하는 비밀이란 건 힘드니까. 비밀이 가지는 무게를 그저 조금 줄여보고 싶었다. 비밀은 많은 사람들이 알 수록 가치가 떨어지며 무게가 줄어드니까.

 그녀 스스로도 친구라 생각하는 사람들을 마음 속 깊이 믿었기에 비밀을 털어놨던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단지 힘들었던 속마음을 털어 놓고, 누구라도 좋으니 자기 진짜 모습을 마음 놓고 보여줄 상대가 필요했던 것 뿐이다. 

 그 사실을 인지하니 문득 자신의 주변엔 정말 자신의 모든 것을 털어 놓을 수 있는 사람이 한 명도 없는 것인가, 하는 회의감이 들었다. 정말로 깊게 신뢰하기에, 타인에게 쉽사리 터 놓을 수 없는 자신의 모든 걸 전할 수 있는 사람은 없는 것일까.

 

"아베 나나...우사밍성에서 온 영원한 17세...노래하고 춤추는...성우 아이돌..."

 

 쪼그려 앉은 그대로 손가락을 언제나 자신 있게 내보이는 브이로 만들어 보지만 그 안에 힘이 담기지 않는다. 언제부터인가 마음 속에 있던 빛이 점점 희미해지고 있었다. 어렸을 적 봤던 아이돌의 빛을 따라 여기까지 왔다. 나이는 점점 들어가고 일은 더 힘들어지고 있다. 그런데도 경쟁자의 수는 줄어들 생각을 안하고 오히려 늘어나기만 하며 지금 자신이 걷는 길조차 옳은 길이 맞는지 확신이 들지 않는다.

 톱은 커녕 자신의 팬이라는 사람들이 정말로 자신을 사랑해주고 있는 걸까 하는 생각마저 드는데도, 힘을 줘야하는 가족이란 존재는 나이 먹고 뭐하는 거냐며 본가로 돌아와서 결혼이나 하라고 말한다.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게 효도라는 것은 알지만, 그녀는 부모님을 위해 결혼하고 싶단 생각은 하지 않았다. 왜냐면 결혼은 '그 사람을 믿어야만 가능한 것'이니까.

 

'이런 때에...'

 

"...아."

 

삑-

 

"..."

 

 나나는 문득 든 생각에 전화번호를 입력하는 화면을 켜놓고 잠시 고민을 하다가, 이내 망설임 없이 번호를 누른다. 거기에도 역시 깊은 생각은 없었다. 아니, 어쩌면 그녀는 이 전화를 받지 않았으면 하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삐리리릭-

 

"..."

 

삐리리릭-

 

"..."

 

삐리리릭-

 

"아...역시 받지 못하시나 보네요."

 

 기대를 하지 않았기에 상처를 받을 일도 없다. 그렇게 생각했기에 그녀는 괜찮았다. 정말, 괜찮았던 걸까? 그 사람이 전화를 받지 않았다는 것으로 만족할 수 있는 걸까? 모른다. 알 수 없다. 어느샌가 그녀는 스스로에게 조차 진심을 털어 놓을 수가 없었다. 아베 나나는 어디에 있는 걸까. 진정한 자신은 어디에 숨어버린 걸까.

 

"..."

 

삑-

 

삐리리릭-

 

슥-

 

"...에?"

 

 만족할 수 없다. 납득할 수 없다. 어째서 당신은 전화를 받지 않는 것인가. 지금 내가 당신을 이렇게나 강렬하게 떠올리고 있는데. 그렇게 생각하며 다시 한 번 전화를 건 순간, 나나는 자신의 몸을 덮는 뭔가의 감각에 정신을 차려 고개를 돌렸다.

 

"역시, 혹시나 했는지 정말로 나나였구나."

 

"프, 프로듀...서?"

 

"이런 곳에서 혼자 뭐하고 있는 거야? 아이돌이 머리도 피부도 정리 안하고, 이런 차림으로 돌아다니니까 담당인 나도 못알아 보겠잖아."

 

"그런...어째서 여기에?"

 

 코트를 벗어서 자신에게 덮어준 양복 차림에 우산을 쓰고 있는 남자. 체격이 다부진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얼굴이 전형적이 남자다움을 갖고 있지도 않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나나에게 있어서 그는 세상 그 무엇보다도 믿음직하게 느껴진다. 그녀에게 있어서 그는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었으니까.

 

"오늘 약속이 있어서 이 근처에 왔었거든. 그러다가 왠지 술 생각이 나서 집에 가기 전에 좀 사둘까 하고 근처 편의점을 검색해서 왔는데...나나처럼 보이는 애가 쪼그려 앉아 있길래 혹시나 했지."

 

"하지만, 방금 전에 전화한 건..."

 

"아...미안, 나나가 맞으면 놀래켜 줄려고 일부러 안받은 거였어. 혹시 서운했어?"

 

"...아뇨."

 

 서운했었다. 하지만 말하지 않는다. 아니, 말할 수 없다. 이 사람을 본 순간 그 서운함이 지금 어깨에 내려 앉은 눈처럼 녹아 사라져버렸는데, 굳이 말할 필요가 있을까.

 

"그래? 음...그런데 왜 이러고 있는 거야? 나나도 편의점?"

 

"네. 오늘은 마실 걸 조금 사러..."

 

"그러면 같이 갈까?"

 

"네...아, 코트는 돌려 드릴게요. 프로듀서도 추우실 텐데..."

 

"난 괜찮아. 나보단 나나가 더 중요하지. 아이돌은 몸이 재산이니까, 안 그래?"

 

"..."

 

 상냥하다. 이 사람과 대화를 나누고 있으면 어째서 이렇게나 따뜻해지는 걸까? 어째서 이렇게나 애틋한 걸까?

 

"가자."

 

"네에..."

 

 그와 함께 우산을 쓰고 편의점으로 향한다. 패딩 위에 걸쳐진 코트라는 기묘한 옷차림인데도 그녀는 지금 이 순간 세상 그 누구보다 스스로의 모습에 자신이 있다고 단언할 수 있었다.

 

딸랑~

 

"어서오세요."

 

 메이드 카페에서 나름 성과를 내며 아이돌을 준비하던 시절, 그녀는 오디션들을 수도 없이 봐왔지만 이상하게 붙지를 못했다. 처음에는 왜 안되는 것일까 생각도 해보다가 자신의 개성이 너무 약한 것이 문제인 것일까, 하는 생각에 자신만의 캐릭터를 만들었다. 그렇게 우사밍 캐릭터를 만들고 처음으로 본 오디션에서 그녀는 만났다. 자신을 믿고 이끌어줄 사람을.

 

"나는 이거랑 이걸로...나나는?"

 

"전 이거면 돼요."

 

"시원한 차? 그것만 사도 괜찮아?"

 

"어쩐지 지금은, 이게 마시고 싶어서요."

 

 애초에 처음엔 술을 마시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괜찮다. 마음의 허전함을 채워줄 술이 필요하지 않다고 느끼게 되었다. 그러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 술을 사러 온 프로듀서도 혹시, 마음 속 어딘가에 자신과 마찬가지로 구멍이 나있는 것은 아닐까?

 

"저, 프로듀..."

 

"이거까지 계산해주세요."

 

"네, 감사합니다."

 

"에? 잠깐, 왜 나나가 산 것까지..."

 

"모처럼 만났으니까 이 정도는 사줘야지. 안 그래?"

 

"웃..."

 

 나나가 사려던 것까지 자비로 계산한 프로듀서는 물건들이 담겨진 봉투를 들고 먼저 밖으로 나갔고, 그 모습을 잠시 쳐다보던 나나는 이내 그의 뒤를 따라 밖으로 나갔다.

 

딸랑~

 

"오, 눈이 그쳤네? 잠깐 내리는 거였나..."

 

"..."

 

"아, 잠깐만. 나나."

 

"네?"

 

 별다른 생각 없이 얼굴에 지어진 미소조차 알지 못하고 프로듀서의 뒷모습을 보던 나나는 돌연 그의 부름에 놀란 표정을 지었고, 이내 그가 편의점 앞에 있는 자판기에서 뭔가를 뽑는 것을 보았다.

 

탁-

 

"자, 이거 마셔. 그리고 집...아, 우사밍 성인가? 나나가 괜찮다면 배웅해줄게."

 

"아..."

 

 자판기에서 뽑은 따끈한 차 한 잔. 비록 종이컵에 담겨져 나온 인스턴트일 뿐인데도 나나는 두 손으로 그것을 받아 들었다. 손이 따뜻해졌다. 한 모금 마시자 몸 속이 따뜻해지기 시작한다.

 

"...저기, 프로듀서."

 

"응?"

 

 오늘은 특이한 날이다. 그토록 공허했던 마음이, 그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가슴 속의 구멍이 필요한 순간에 만나고 싶었던 단 한 사람의 존재로 가득 채워졌다.

 

"프로듀서는, 나나의 진짜 모습을 알아도 좋아해주실 건가요?"

 

 지금 이 순간, 그녀는 스스로에게 솔직해질 수 있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자신의 모든 걸 전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신조차 보지 못했던 자신을 봐준 사람에게 그녀는 전하고 싶다.

 

"나나는 말이죠..."

 

 세상 그 무엇보다도 소중한, 황금과도 같은 한 때(Gold Experience)의 진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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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장면의 느낌은 '강미윤 님의 창작 그림판 -나나-'을 봐주시면 되겠습니다. 새벽 2시 쯤에 쓰다가 도중에 졸려서 자고 일어난 뒤에 썼습니다. 그래서 조금 미묘할 수도 있습니다. 강미윤 님에게 정식으로 허락을 받지 못해 링크만 올립니다. 링크도 안되면 어쩔 수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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