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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데렐라 판타지] 제 7장 - 빛이 내려오리라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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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12-20, 2016 17:14에 작성됨.

어두운 장소.

 

아마도, 왕도에서는 멀지 않은 곳.

 

" 지시사항은 전달했어. "

 

단발.. 보브컷에 안대를 한 여성이 어둠속에서 유일한 빛이라고 해도 좋을 푸른 한 쌍의 날개 옆에 선다. 날개의 주인은 눈길을 한번 흘리고는 도로 허공을 바라본다. 여성은 그게 무슨 의사표현인지 잘 알고 있었음에도, 물러나지 않고 그 자리에 꼿꼿하게 선 채 슬며시 입을 연다.

 

" 정말로 이렇게 해야하는거야 ? 혹시 차선책은... "

" .. 이번 계획을 짠것은 내가 아냐. 나한테 물어도 의미는 없어. "

 

 

" 내가 짯다고 해도, 너에게 알려줄 의무는 없고. "

 

알고있다. 여성은 계획의 주모자가 누군지 알고있다.

별의 뜻에 따라 창설된 광신교의 교주이자 진정한 광기의 결정체.... 그 여자가 저지른 짓이란걸 알고있다.

하지만 지금 그녀가 있는곳은 제 아무리 자신이라고 해도 절대로 들어갈 수 없는, 이른바 성역(聖域).

 

' 감히 ' 다가갈 수 없는 극히 한정된 장소.

 

그곳에 갔다가는 반드시 ' 마마 ' 의 눈길 밖에 나고 말겠지.

이러한 생각을 해봤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는 걸 안다. 그녀의 주제는 곧바로 본분으로 돌아간다.

 

" 시작해. "

 

날개의 주인이 그리 말하니, 여성은 어둠속으로 흘러내려가듯 사라진다.

 

이윽고, 날개도 말 그대로 ' 눈 깜짝할 사이에 ' 모습을 감췄다.

 

 

 

" .... 이상, 오니기리교의 주요 분포지 입니다. "

 

안즈가 왠일로 안경까지 쓰고서, 일어나 여왕 뒤편의 커다란 판에 붙은 각종 문서들과 지도를 가리키면서 설명을 하고 있었다. 지도의 중간중간에 붉은 점이 찍혀있었고, 그것이 분명 후타바 안즈가 말 끝에 붙였던 오니기리교의 주요 분포지 였으리라.

안즈가 장문의 설명을 마치기 무섭게 안경과 지침봉을 내려놓고 의석으로 돌아가 힘없이 주저앉는다.

 

' 안즈... ! '

 

대놓고 불편한 태도를 보이는 안즈를 향해 여왕이 난감하다는 눈초리를 보내자, 그제서야 안즈는 하품 한번 시원하게 내뿜으면서 건방짐을 누그러뜨린다. 무엇이 그녀를 그토록 불편하게 하는지는 여왕은 잘 알 수 없었지만 회의 진행에는 무척 장애가 된다는 것 만큼은 잘 알았다.

 

카와시마 영주가 안즈의 태도가 누그러뜨려지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번쩍 일어선다.

 

" 그렇다면 현재, 에인헨야르가 담당하고 있는 방면은 어느쪽이죠 ? "

" 왕도 기준으로 서쪽 국경지대까지. "

 

안즈는 말 끝이 짧게 즉답했다.

 

" 그러면 동쪽은 비는군요. 게다가 동남부의 도쿠가와 변경백령과 밀접한 곳은 어떻게 되는거죠 ? "

" 그쪽은 죠가사키 재단 쪽에서... "

 

" 하, 재단이요 ? "

 

카와미사 미즈키는 안즈의 답변에 코웃음친다. 명백히 비웃음의 의미로 그런 것이다. 안즈의 눈썰미가 씰룩거리며 동시에 그녀 주변에서 스파크가 한번 번뜩였다. 미즈키는 그런것에 아랑곳 않고 자기 주장을 펼쳐나간다.

 

 

" 지금 이 나라는 유래없는 국난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 국경지대부터 퍼지는 원인불명의 전염병은 물론이거니와, 광신도들은 역병과 동조하듯 그 정 반대편인 왕국의 동쪽 영토에서도 그 영향권을 넓혀가고 있어요. 그런데, 고작 몇달 전까지만 해도 고아들이나 돌보던 복지기관에게 그런 역할을 맞기다뇨 ? 이건, 누구의 결정인지 의심을 안 할 수가 없습니다. "

 

 

안즈의 주변서 스파크가 다시 한번 튀기자, 이번에 그녀는 대놓고 눈초리를 안즈와 여왕쪽으로 돌린다.

 

" 지금 우리 재단을 무시하시는겁니까... ? 요 전번에 광신교도의 요인을 생포한.... "

 

귀족 좌석과 몇 좌석 떨어진.. 외부 고위인사들이 몰린 자리의 한가운데서 죠가사키 리카는 차가운 분노가 서린채 발언에 태클을 걸었다.

그러나 영주 카와시마 미즈키는 굳건했다.

 

 

" 생포 ? 정작 요인을 잡은 그 마을은 어떻게 되어있었죠 ? "

" ..... ! "

 

리카가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하고 혀를 찬다.

그야 그럴것이, 그녀와 용병들이 도착했을 때엔.. 이미.

 

" 대답 할 생각이 없으신가 보군요. 그러면 제가 대답해드리죠. "

 

 

그녀가 승승장구하는 기세로 탁상을 손바닥으로 강하게 내리치며 쐐기를 박는다.

 

 

" 화(和)의 마을, 생존자는 한명도 없었습니다 ! 마을 전체가 죽었습니다 ! 그럼에도 광신도 하나 생포한 공적을 운운하신다 그 말씀이십니까 ! "

 

' 뭐.. 뭐라... '

' 화의 마을이라면... 자치권을 인정받았다던 그 곳... ? '

' 생존자가 0명 ? 이게 대체... '

 

귀족들이 술렁인다. 화(和)의 마을이 궤멸했다는 소식은 죠가사키 리카를 통해 여왕과 안즈고 알고있던 사실이다. 다만, 국정운영에 큰 혼란을 초래할까 봐 공식적인 발언을 미루고 있던 터였는데... 카와시마 미즈키는 어떻게 그 정보를 안것인지 바로 나라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이들이 모인 이 회의에서 그 폭탄을 터뜨려버린 것이다.

회의장 전체가 의심과 불안으로 술렁거리는 가운데서 그녀는 연이어 주장한다.

 

 

" 저는 감히 주장합니다 ! 이대로 중앙, 왕실의 판단에 모든것을 맡겨도 되냐는 물음에, ' 아니오 ' 라고 !! "

 

" 이 건방진 자식이 보자보자 하니까 - ! "

 

 

안즈의 몸에서 전류가 극심하게 요동친다. 옆자리에 안절부절 못하는 오오하라 미치루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근위대장이 마침내 일어나려는 낌새를 보인다. 하지만... 카와시마의 발언쇄도도 안즈의 격노도, 호통 한마디에 멈춘다.

 

 

" 그만 ! "

 

 

여왕, 나나 드 우사밍 17세의 목소리가 커지자.. 미즈키는 눈을 지긋이 감고 고개를 숙인다.

 

 

" 근위대장, 진정하세요. 회의장에서 폭력은 있어선 안됩니다. "

" .... 칫 ! "

 

 

여왕의 말에 몸 주변을 떠도는 전류를 거두고 안즈가 고개를 획 돌리면서 의자가 부서질 기세로 주저앉는다.

귀족들은 술렁임을 일시적으로 멈추고 여왕에게 집중했다.

 

" 카와시마 영주의 주장은 잘 알겠습니다. 지금같이 어려운 상황이니 그러한 발언이 나올 수 있음을 헤아립니다. "

 

여왕은 침을 한번 삼킨다. 실제로 회의에서 이렇게 중재하고 발언하는건 사실 처음이었다. 목소리가 미미하게 떨리고 입술이 바싹 마르지만 그녀는 힘을 내서 말을 이어간다.

 

" 허나, 왕실에 대한 모독은... 옛 미시로 왕조의 악을 막아내고 150년간 평화를 이룩해온 이 왕가를 모독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습니다. "

 

" ... 과연, 깊게 사과드리겠습니다, 여왕폐하. "

 

미즈키가 허리를 깊게 숙인다. 잠시나마 왕실을 같잖게 봤던 다른 귀족들도 저마다의 양심이 있는지 몇몇 이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숙였다. 후타바 안즈가 귀족들의 모습을 보고 긴 한숨을 내쉰다. 격정적인 감정은 가라앉았으나 여전히 안에는 불만이 남아있음이 얼굴에 다 써져있는 것 마냥 퉁명스러운 모습이었다. 미치루는 아무 말 없이 안즈와 여왕, 귀족들을 번갈아 보면서 눈치를 살폈다.

 

" 카와시마 영주. 하고자 하는 발언의 요점만 말하세요. "

 

여왕은 딱 잘라 말했다. 그외의 엄한 발언이 나올경우, 가차없으리라는 입장의 표명이었다.

물론 듣는 쪽에서도 그 말뜻을 이해한건지 아까처럼 자신만만하고.. 뻔뻔해 보이기까지 할만한 태도를 내비치진 않는다.

목청을 가다듬고.. 약간의 텀을 둔 후에 그녀가 마침내 입을 연다.

 

 

" 에인헨야르 외의 또 다른 군세를 조직할것을 건의합니다. "

 

" 에엔헨야르 이외에... ? "

 

" 네, 폐하. 지금 에엔헨야르는 변절자를 쫓는 임무과 광신도들의 제압, 이 두 임무를 겸하여 수행하느라 상대적으로 능률과 전력이 분산되어 있습니다. 변절자쪽이 빠르게 끝이 난다면 그대로 닛타 경에게 모든것을 맡겨도 되나, 만약의 경우를 대비하여 이 광신도들의 제압과 국가사업의 보조를 겸할 세력이 하나 더 존재해야 한다고 사려됩니다. "

 

이에 또다시 근위대장이 태클을 걸어온다.

 

" 헛소리 하지마. 혹시라도 세력을 하나 더 창설한다 치자. 그걸 이끄는건 누가 할건데 ? "

" 그것은 짧은 시일내에 표결을 통해... "

" 그러니까 헛소리라는... "

 

 

" 근위대장. "

 

여왕이 나지막하게 부름에, 안즈는 입을 싹 닫고 꿍한 표정으로 다시금 고개를 돌린다.

 

" 발언, 계속해도 될런지요 ? " 미즈키가 엷게 미소짓는다.

 

" ....계속하세요. " 여왕은 엄격한 얼굴로 그녀를 응시한다. 

 

 

" 제가 바라는것은 그것 뿐입니다. 특무를 목적으로 하는 제 2 세력의 창설. 다른 귀족분들은 어떠신지요 ? "

 

미즈키가 주변을 둘러보며 그리 발언하니, 귀족들 대다수가 고개를 끄덕인다. 사쿠라이 모모카와 카미조 하루나 만이 생각에 깊게 잠긴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외부 관료들은 한결같이 표정이 좋지 않았다. 자기들을 전면으로 무시하고 아래로 본 영주의 발언이 좋게 들릴 리가 없었다.

 

여왕은 바로 앞 탁상 모서리를 노려보며 골똘히 고민한다. 과연 그 주장을 받아들일지 어떨지...

안즈가 옆에 슬며시 다가가 귓가에 속삭인다.

 

' 만약 찬성하는거라면 별로 좋지 않은 생각입니다. 에엔헨야르도 통제하기 어려운 마당인데 이런... '

' 잠시만요... 이건, 제가 스스로 판단해야 할 문제에요. '

' 그러시다면야... '

 

잠시동안 회의장 내에 침묵이 흐른다. 가끔씩 회의장 안의 병사들의 철그럭거리는 갑주의 쇳소리와 귀족 몇의 기침만 들려올 뿐 쥐죽은듯이 조용하다. 안즈와 미치루가 귓속말을 몇번 주고받고서 서로 눈빛을 교환하면서 뭔가 의사전달을 하고있던 도중, 여왕이 갑작스레 자리에서 일어난다.

 

드디어 미시로의 여왕, 나나 드 우사밍 17세가 결정을 내릴 시간이 다가온 것이었다.

긴장감을 가라앉히고, 최대한 침착한 태도로... 여왕은 조심스레 입을 연다.

 

 

" 이 왕국의 여왕으로서, 카와시마 미즈키경.. 그대의 의견ㅇ..... "

 

 

 

 

 

쿵 !

 

 

 

여왕이 중요한 말을 하려는 바로 그 때, 아마도 천둥이 바로 귀 옆에서 치면 그러한 소리가 날듯한 격한 충격음이 회의장 전체에 울린다.

곧이어, 소리 뿐만이 아니라 소리가 가져온 진동이 회의장... 아니, 궁성 전체를 격렬하게 흔든다.

 

" 뭐, 뭐죠 ?! " 여왕이 당황을 금치 못하며 탁상을 부여잡고 버틴다.

 

" 뭐야 ! 무슨 일이야 ?! "

 

안즈가 문 바깥에 소리치자, 회의장 앞문을 열고 병사 두어명이 뛰쳐들어왔다.

 

" 저희도 잘 모르겠습니다 ! 다만... ! "

 

병사는 말을 잇지 못하고, 가슴팍을 뚫고 나온 창살에 경악하며 꼬구라진다. 바로 옆에 같이 들어온 병사가, 그 창을 쥔채 눈을 희번뜩하고 있었다.

그의 눈은... 피처럼 붉게 물들은 채.

 

 

" 깨어나셨다.... 깨어나셨다아아 - !! "

 

 

병사가 입가에 침을 질질 흘리며, 뽑은 창을 들고 그대로 여왕에게 돌진한다. 허나 몇걸음 때기도 전에, 그는 전격세례를 맞고 바닥에 쓰러져 경련을 일으키며 스러져간다. 안즈가 여왕 앞에 서면서 소리친다.

 

" 모두 대피 !! 여왕님과 미치루짱은 나랑 같이 ! "

 

쉴새없이 흔들리는 바닥을 힘겹게 딛으며 귀족들과 관료들이 회의장 밖으로 빠져나간다.

안즈가 바로 위 천장이 무너지며 떨어지는 파편을 전류로 파열시킨 뒤 미치루, 여왕 순서로 바깥으로 유도한다. 곧이어 자신도 회의장 밖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뛰쳐나오자마자 보이는 광경은 더 가관이고, 경악스러웠다. 마치 온 세계가 어둠으로 뒤덮인 것 처럼, 시커먼 기운들이 스멀스멀 기어올라와 바닥과 기둥, 천장 등을 침식해가고 있는 모습에 귀족들과 관료들이 발걸음을 머뭇거린다.

 

그러다가 무너지는 천장에 몇명이 깔려서 형체도 온전치 못하게 되자 패닉에 빠져 걸음아 나살려라 뿔뿔이 흩어진다.

 

검은 면에 발이 닿자, 신발과 함께 딛은 다리가 통째로 늪지대 마냥 집어삼킨다. 귀족 몇은 허우적대다가 검은 기운 안으로 먹혀들어가고 만다.

 

결국 오도가도 못하고 머뭇거리는 귀족들의 한가운데서, 작은 체구의 요조숙녀, 사쿠라이 모모카는 튀어나와 소리친다.

 

" 여왕폐하 ! "

 

모모카가 덩굴로 검게 침식된 땅 위로 교두보를 만든다. 덩굴 역시 예외는 아녔는지 검은 면에 닿자마자 시커멓게 물들어가며 생기를 잃어갔다.

 

" 어서 건너오세요 ! 어서 ! "

 

" 사쿠라이 경... ! 여왕님 ! 사쿠라이공과 함께 이곳을 빠져나가 !! "

" 네 ?! 하지만 근위대장 당신은... ! "

 

" 나는 미치루와 함께 곧바로 따라갈게 ! "

 

안즈가 재촉하는 사이에도, 덩굴은 검게 물들어 죽어갔다. 사쿠라이 모모카의 품에 있던 화분은 그것이 전부였고, 궁성에서도 꽤나 고층이었기에 식물을 끌어올릴 만한 여건도 되지 못했기에 그것이 시들어버린다면 더 이상 가능성이 없었다. 

 

" 폐하, 실례하겠습니다 ! "

 

보다못한 모모카가 교두보의 썩지않은 덩굴 일부를 보내어 여왕을 휘감아 당긴다.

 

" 뭐하는겁니까 ?! 근위대장 - !! "

 

" 사쿠라이경 ! 여왕님께 안좋은 감정도 있겠지만, 제발 부탁할게... ! "

 

안즈가 하는 말에, 모모카가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 이윽고 여왕과 함께 교두보를 건넌다. 다 건너기 무섭게 덩굴이 완전히 새카맣게 변해 바닥을 덮은 검은 기운에 스며들어간다. 끊임없이 흔들리며 정체불명의 검은 기운까지 만연하는 이 와중에, 안즈는 미치루의 어깨를 부여잡는다.

 

 

 

" 미치루짱 ! 성기사들은 ... ! "

 

" 네? 성기사..요 ? 그게 뭔지... "

 

" 나도 그쪽이랑 커넥트 많이 하거든?! 시치미 때지말고... ! "

 

' 시치미 땔 시간도 없고.. ' 안즈는 사족을 붙이며 주변을 빠르게 둘러본다. 지진 속에서 기운이 빠르게 자기들이 서있는 바닥까지 침식해왔다.

'성기사' 라는 말에 흠칫하다가, 미치루는 머뭇거리더니... 마지못해 답변을 내놓는다.

 

" 무사하다면, 모두 지하에 있을거에요.. ! "

" 좋아, 지하로 간다 ! "

" 네에에 ?! "

" 너도 명색이 '엘드리치' 라면 이런것에 원인규명은 해야 될 거 아냐 ?! "

" 으에에에에 ?! 어떻게 거기까지... ! "

" 시끄러 ! "

 

안즈가 미치루를 끌어안고, 검은 기운이 완전히 들어서기 전에 전류가 되어 섬광과 함께 사라진다.

 

 

 

아아, 나온다 나온다.

오랜 세월동안 갇혀있던 깊고 깊은 악의의 소용돌이가 해방의 때를 기다렸다는 듯 솟구친다. 가장 오랜 세월동안 세계의 밑바닥에서 고행하던 위대한 우상이 눈을 뜬 증명이다.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운명이 거만한 왕국의 첨탑을 매개로 거슬러 오른다.

 

목도할 수 있는 자여 눈을 감으라.

 

말할 수 있는 자여 입을 닫으라.

 

들을 수 있는 자여 귀를 막으라.

 

예정된 미래의 구원이, 진정한 빛이 거짓과 오만만이 가득한 세계에서 드디어 해방을 맞이하는 이 때에, 거짓에 물든 궤변은 변명이 될 수 없음이라.

 

해방된 별의 빛이 불신하는 이들에게는 어느 고역보다 짙은 고통이, 믿음있는 자들에게는 어느 것보다 달콤한 은혜가 되노라니. 이 허영과 위선만이 가득한 세계가 참된 심판을 맞이할 지어다.

 

숨이 붙어있는 모든 이들에게 고하듯이 악의의 파도는 무한과 같이 마천루를 통해 뿜어져 나온다.

 

먹구름이 모인다.

구름때가 뿜어지는 악의를 감추어주듯이 모여 칠흑의 장막을 만들고, 악의의 파도를 비와 같이 흩뿌린다. 악으로 가득 찬 구름에서 내리는 먹과 같이 검은 단물이 죄인들의 형상을 갖춘다. 그리고 자기를 성찰하듯이, 스스로 뉘우치듯 그 그림자의 주인들을 참살한다. 인간의 형상을 한 그림자들이 거짓 속에서 살아오며 뉘우치지 않은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불신을 자른다.

 

그 은혜의 단비를 직접 맞이하는 자들은 진정한 깨우침을 얻어 무아(無我) 의 경지에 다다른다. 구원과 광기의 줄다리기 속에서 스스로를 저울질한다.

깊은 그늘 아래에서 기어다니던 별의 사도들이 제 세상을 만난 마냥 춤추며 합당한 죽음을 집행하며 나아간다.

 

쇠와 화약으로 무장한 이들은 단비서 비롯된 그림자에 먹혀들어간다. 일부의 깨우친 자들은 죄지은 다른 이들의 징벌에 손을 건넨다.

 

 

" 왜, 왜이러는거야 ! 으아아악... ! "

 


탕 !

 


총성과 비명, 그리고 환희에 찬 웃음이 쇠와 화약이 가득한 군영을 뒤덮는다. 이미 무력과 무장은 의미가 없음이라.

 

" 그분의 은총이 마침내, 진정으로 우리의 곁에.. 다다랐도다.... "

 

 

마천루의 끝에서 사방으로 흩어지는 눈달린 악의 형상들이 몰아치며, 모든 살아있는 것들을 적으로 여기며 침식해왔다. 

 

 

 

◆ (에인헨야르)

 

같은 시각.

두캇과 밀접한 국경지대 인근 마을.

에인헨야르 & 제국 협력군세 초소.

 

궁성의 마천루에서 파져나오는 악의 파도는 그곳에서도 확연하게 눈에 띄었다. 그것 뿐만이 아니었다.

 

머무르는 마을에서 정체불명의 주황색 쐐기석 혹은 수정같은것들이 솟아나오고, 마을 사람들이 눈이 붉게 변하여 달려들었다.

갑작스러운 상황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일부 병사들이 난자당하고, 나머지 장병들은 닛타 미나미의 신속한 지시에 따라 응전한다.

 

" 2열 발사 ! 3열 발사 준비 ! 접근을 막아라 ! "

 

총병들에게 그리 지시하며 본인도 쇠뇌를 연달아 쏘며 붉은 안광으로 변한 마을주민들을 폭파시켰다.

 

" 갑자기 이게 어떻게 된거에요 ?! " 아이코는 경악과 절규를 동시에 담은채 외쳤다.

그녀의 눈에는 눈물이 고여있었고, 그걸 본 미나미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호통친다.

 

" 막는 것에 집중해요 ! 이 빌어먹을 광신도놈들... !! 잘도 이런 잔머리를... ! "

 

미나미가 혀를 차며 폭발 볼트를 쏘아 또 한 무리를 육편으로 흐트러놓는다. 설마 마을 전체가 광신도들이었줄 줄이야, 그녀조차 상상하지 못한 일인 것이었다. 잘도 이런 마을이 무사히 번성해왔었다는 생각에 닛타 미나미는 열불이 차올라 쇠뇌를 쏘는 손가락에 저도 모르게 힘을 가득 실었다.

바로 몇 걸음 옆에선, 에인헨야르와 마찬가지로 제국군이 열을 맞춘 채 사격을 반복하고, 소노다 우미와 미나미 코토리가 대열의 뒤편에서 뭔가 짐작한듯이 말하고 있었다.

 

" 설마 이지경까지 끌고 갈 줄은... "

" 왕국의 뻘짓도 정도가 있지, 이건 좀 심하네. 그치~? " 코토리가 웃으며 맞장구 친다.

 

 

" 거기 당신들 ! "

 

미나미의 쇠뇌가 말과 함께 즉시 둘에게로 향했다. 하지만 위협이 되긴 커녕 콧방귀만이 돌아온다.

 

" 흥, 보아하니 아무것도 모르는 눈치군요. 역시 멍청하긴... "

" 그치그치~? 자기네들 나라에 뭐가 잠들어있는 지 조차 모르다니. "

 

 

" 뭐 ? "

 

 

미나미가 두 눈을 크게 뜨고 볼트 끝을 아래로 내리자, 우미가 그제서야 활 시위를 당기면서 읉조렸다.

 

 

" 지금 이 상황을 타개하고 말해주지. "

 

" 코토리. " 뒤이어 옆사람 이름을 부르자마자 검은 불길이 옆사람, 미나미 코토리를 감싸더니... 이윽고 검은 불새의 형상이 되어 하늘로 치솟는다. 마을 위를 선회하는 크고 검은 흉조의 불길이 폭격이 되어 마을사람들의 무리에 쏟아진다. 우미가, 자기 옆 지면을 뚫고 솟아나온 주먹만한 수정을 뽑아들고, 힘껏 쥐자 수정은 산산히 부서진다.

 

부서진 파편들이 급작스럽게 기체처럼 변해 우미의 몸 안으로 스며들어간다.

 

" 이 작은것에서 이정도의 비축량이... 이거라면. "

 

 

◇ (시부야 린)

 

 

" 이건 대체 무슨... ?! "

 

기사, 시부야 린은 말을 잇지 못했다.

 

높은 벽을 넘어 왕도의 안에 들어선 일행에 앞에는, 광기와 혼란만이 가득 들어찬 왕국.. 그 원인으로 보이는 왕성에서 솟아올라 뿜어져나오는 검은 기운의 파도만이 들어선 상태였다.

 

전도하는 붉은 안광이 악의의 파도를 따라 왕국을 침식해간다.

상점가에서 물건을 흥정하던 이들은 서로의 목숨을 기부하고, 탐욕에 눈이 멀었던 장사치들은 스스로 꾸린 가게와 함께 목숨을 분신한다.

 

" 엄마 ? "

" 제 아이를... 받아 주세요... ! 아아... !! "

 

푹 !

 

아이를 돌보던 자들은 돌보던 생명을 기꺼이 공물로 바친다.

 

" 주인님께 ...  목숨을... 바쳐라.. ! "

 

" 히이익 ?! 사, 살려ㅈ.... "

 

푹찍 !

 

더 많은 공물을 요구받은 이들은 불신하는 이웃의 것을 바친다.


별의 선택을 받지 못한 자들은, 헛된 발걸음을 바삐 굴리다가 기어코 공물 신세를 면치 못한다.


상식이 사라지고, 독실한 믿음으로 채워져가는 왕국의 시가지 안에서 푸른 기사는 망연하면서도, 결코 희망의 끈을 놓치지 않는다.

 

" ... 리이나... 리이나짱이 위험하다냥 ! "

 

마에카와 미쿠의 걸음은 극도의 불안과 걱정에 가득 차 발길을 다른곳으로 옮긴다.

그 발걸음을 멈추려 했지만 이미 채셔 고양이의 모습은 사라지고 없었다. 미쿠에게도, 그녀에게도 중요한 것은 다르다.

그녀는 해야 할 일이 있다. 마에카와 미쿠가 쉽게 그 목숨을 잃지 않으리라는 어느정도의 신뢰는 존재했다.

 

" 루미 씨. "

" ...그래. "

 

와쿠이 루미가 약병을 하나 건넨다. '투명화' 라고 작게 적혀있는걸 확인한 둘은, 물약을 마시고.. 점점 흐려지는 듯 하더니 완전히 투명한 상태가 된다. 혼란으로 가득찬 거리에 내려온 둘 중 루미 쪽이 나지막하게 말을 건넨다.

 

" 이 약의 효과는 2시간 밖에 가지 않아. 최대한 빨리 궁성 비밀통로로 가야해. "

" 응... ! "

 

둘은 빠르게 질주하며 스스로를 재촉한다. 중간중간에 죽음에 가까워지는 무고한 이들이 눈에 밟혔지만, 더 이상 있다가는 아무것도 할 수 없게될 것만 같아 길을 멈추지 않았다. 사람의 형상을 한 것 같은 검은 형체들이 양 손을 무자비한 칼날다발로 만들어 백성들을 도륙하고 있는 모습이, 궁성에 가까워질 수 록 잦아진다.

 

" 저런 괴물들은 살면서 한번도 본 적이 없는데.. 이건 누구의 수작인거지.. ? "

" 루미 씨, 앞에 ... !! "

 

바로 앞, 길목 전체를 들어막을 만큼 거대한 그림자(?) 같은 괴수가 멀쩡하게 생긴것을 손을 휘둘러 닥치는대로 처부순다. 바닥에 퍼진 검은 기운에 뿌리를 박은 것 처럼 상반신만 나와있는 거대한 검은 형상은 린과 루미는 보지 않았으나 그 휘두르는 팔의 궤적에 둘이 들어와있었다.

하는 수 없이, 린은 장검을 빼어들고 푸른 불을 두른 채 힘껏 휘둘러 괴수의 일격에 맞선다.

 

" 하압 - ! "

 

!@#$!@#!!!@#@# ... !

 

알 수 없는 언어를 지껄거리다가, 푸른 불을 두른 검격에 손이 베여나가자 고통스러운듯 형체는 이리저리 몸을 비틀었다. 이에 반응하듯이, 주변에서 학살을 자행하던 검은 형상들이 일제히 거체를 향해 몰려든다.

 

" 이것들... ?! "

" 움직여 ! "

 

루미는 린을 부여잡고 아직 덜 부서진 건물의 옥상으로 뛰어오른다. 

 

 

" 네 '푸른 불' 에 반응하는 것 같군. 하지만, 덕분에 목숨을 건졌어. "

" ... 내 불에 반응해... ? "

 

분명 시부야 린은 검격을 맞추긴 했지만 그 거대한 괴물의 팔에 약간의 생체기를 입히는 정도였던지라, 그녀 생각엔 유효타가 전혀 아닌 공격이었다. 그럼에도 괴물은 경련을 일으키며 지금도 이리저리 몸을 비비꼬며 고통에 신음하고 있다.

뭔가 느낀 것 같은 찰나...

 

 

" 으윽 ?! 크윽... ?! "

 

시부야 린이 머리를 움켜잡고 주저앉는다. 머릿속에서 들려온다.

찬란하게 빛나면서도.. 끔찍한 악의를 내뿜는 살아있는 어둠이 그녀의 안에서 두 눈을 번뜩이며 응시하고 있었다.

 

 

 

── 너는, 이미... 늦었다. ── 

 

 

 

─ 너의 불은 이제 한낫 반딧불이에도 미치지 못할지니. ─

 

 

 

 

── 망각이 있는 자리에 오로지 정화의 손길만이 남는도다 - ! ──

 

 

 

 

 

" 어이 ! 괜찮아 ? "

" 크윽... 커허.... 허억.... ! "

 

머릿속에서 목소리가 떠나가자, 극심한 두통도 빠르게 멎어간다. 린이 고갤 가로저으며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내려다본다.

검은 형체들이 주변을 두리번 거리다가, 마치 자기와 눈이 마주친듯 저마다 고개를 들고 자신이 있는 쪽을 응시한다.

 

" 기척도 지우도록 고안된 물약인데.. 어떻게.. ! "

 

" 아마도, 나 때문이야. 여기서부턴 나 혼자서 갈게. "

 

린이 단언하자마자, 루미가 그녀의 멱살을 부여잡는다. 동시에 검은 형체들이 부서진 잔해들을 딛고 지붕 위로 기어올라온다.

 

 

" 멍청이 ! 목숨을 버릴셈이냐 ! "

" 아니, 아니야.. 루미 씨. 목숨을 버리는게 아니야. "

 

멱살을 움켜쥔 손을 떨쳐내고, 린은 망토를 다시금 가다듬는다. 이 물약을 똑같이 복용한 이에게는 서로가 보이기에, 루미는 그녀의 모습을 확연하게 볼 수 있었다. 두 눈은 결의와 각오... 거기에 더해 묘한 희망감 같은것도 품고있는 것 같았다. 뭔가 믿는 구석이 있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실상은 전혀 그런 상황이 아님에도.

그걸 확인한 그녀는 린에게서 걸음을 멀리한다.

 

 

" 궁성 정원의 기념 석판 앞에서 암호를 말해. ' 스타라이트 ' 그리고 ' 스테이지 ' . "

 

린이 아무 말 없이 고갤 끄덕인다. 괴수들이 지붕에 거의 다 다다가랑 무렵에, 루미가 가볍게 도약해 건너편 지붕으로 건너가며 멀어져갔다.

시부야 린이 장검을 왼 손에 들고서, 검집에서 부러진 검을 꺼내든다. 그녀가 쓰던 '네버 세이버' 였다. 와쿠이 루미가 방금 지나갔던 지붕위에도 검은 형체들이 스멀스멀 흐르듯 역류해 올라와 사람의 형체를 갖춘다.

 

검은 무리들을 향해 검날을 밝히며, 시부야 린은 기합 잔뜩 들어간 목소리로 외친다.

 

 

 

 

" 비켜 - !! "

 

 

 

 

◇ (사죠 유키미)

 

같은 시각.

 

" ...페로. 찢어발겨. "

 

그르릉 - .

 

거대한 고양이과 짐승의 모습으로 변한 암흑덩어리가, 적대적인 검은 형체들에게 무차별적으로 달려들어 찢어발긴다.

형체 몇 개가 갈갈이 짖이겨져 형상을 흐트러뜨리며 사라지니 사죠 유키미는 짐승의 모습을 불러들인다.

 

" 이것들... 죽지 않아.... 아니, [죽음] 이란게... 없어... ? "

 

 

" 응. 이것들에는, 그런 거 없어. "

 

유키미가 아닌 어린 말소리가 들려온다. 다름 아닌 검은 형체들의 근원지인 검은 기운을 품은 안개들의 한가운데서.

자그마한 발걸음이 타르처럼 끈적이는 검은 기운들을 철벅이며 유키미에게로 가까워진다. 페로가 심상찮음을 느끼고.. 금수의 형상에서 더해 온 몸에서 뾰족한 송곳같은 것들을 돋아내어 대치했다.

 

" .... 너.. 꽃파는....아이 ? "

 

" 언니야가 깨어났어. 언니야가 일어났으니까, 코즈에는.. 일 해야해. "

 

 

안개에 감싸인 채 작은 형상이 양 팔을 하늘 위로 번쩍 들어올린다.

 

" 이제, 끝내줄게. "

 

 

공기가 찢어지는 파공음과 함께, 하늘에서... 거대한 덩어리들이 불꼬리를 달고 추락해온다.

 

 

 

" ... 페로 ! "

 

암흑물질이 순식간에 해체되어 단단한 칠흑의 방벽이 되어 유키미의 주변을 빈틈없이 두르자마자, 불타는 돌덩이가 바로 그 자리를 강타하며 폭발이 일어난다. 무려 수도 한가운데서 뜬금없이 운석이 떨어져 폭발이 일어남에도 도시는 그 시선을 폭심지로 향하지 않았다. 아니, 그럴 수 있을 리 없었다.

 

궁성의 마천루에서 솟아올라 뿜어져나오는 검은 기운의 쇄도가 왕도 전체를 집어삼켜가고 있는 상황에 그런것 조차도 작은 불꽃놀이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폭발과 함께 요동치는 대기가 검은 연기를 일시적으로 거두자 그곳에 드러나는 형체는, 무척이나 착고 보드라운 모습에.. 맹목적인 붉은 안광을 번뜩이고 있었다.

아이는 순수한 미소를 지으며 저 하늘에 퍼져나가는 검은 기운을 올려다 본다.

 

" 코즈에, 잘 했어 ? "

 

 

 

 

 

" 아니.. 잘.. 못했어. "

 

그녀가 바란 대답도, 그녀가 원하던 목소리도 아닌것이 대신 답변하고 거의 동시에 검은 송곳들이 코즈에.. 라고 하는 그 아이의 양 옆의 뺨을 스쳐지나간다. 송곳들이 노렸던 것은 그녀가 아니라 다름아닌 뒤편에서 기어나오고 있는 사람의 형상을 한 검은 물체들이었다. 형체들이 솟아나자마자 기운을 잃고 도로 안개 속으로 스며들어갔다.

아이는 하얗고 여린 뺨에서 한줄기 흘러내리는 피를 훑어내면서 두 눈을 동그렇게 뜬다.

흰자위 안쪽의 동공이 떨리고 이리저리 안에서 뒤틀리며 돌아간다. 명백히 정상적인 인간이나 아이돌의 것이 아닌 눈이었다.

 

" 왜 안죽어 ? "

 

" .. 페로와 나는.. 쉽게 죽지, 않아. 그럴 수도, 없는 몸.. "

 

검은 형체가 다시금 금수의 모습으로 변하여 유키미의 앞에 선 채, 코즈에를 향해 맹렬히 으르렁댄다.

 

 

 

 

" 언니야가 말했어. '아이돌은 모두, 죽어라'. 그러니까 죽어버려. "

 

검은 물결이, 코즈에의 뒤편의 안개로부터 쏟아져 나왔다.

 

 

 

◇ (시부야 린)

 

" 타앗 ! "

 

화려한 검무와, 그 칼끝을 따라 피어오르는 불꽃에 검은 형체들이 휘말려 흩어진다. 그러나 곧장 주변의 검은 안개로부터 도로 솟아나와 다시 덤벼들었다. 그 끝이 없는 안개를 뚫고, 시부야 린은 기어코, 궁성을 두르는 내성벽에 다다르고야 만다.

 

성벽 앞에 선 린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몸에 들러붙은 피딱지와 검은 기운들을 불로써 털어낸다. 푸른 불이 닿은 검은 조각들이 살아있는 생물처럼 꿈틀거리며 발악하다 공기중으로 잘게잘게 가루가 되어 흩어져버린걸 확인하고 나서야, 호흡을 가다듬고 벽을 뛰어넘을 준비를 한다. 예전에는 궁성에서 몰래 빠져나와 우즈키, 미오와 함께 저잣거리를 돌아다니려는 것에서부터 시작했던 고공 도약 훈련이.. 궁성의 안에 깃들어있는 [진실] 을 보기위해 활용될 줄이야, 린은 떠올려본다.

 

하지만 회상도 잠시.. 뒤편에서 다시 검은 형상들이 솟아나와 우글우글 거리자, 그녀는 망설임 없이 굽혔던 무릎을 피며 높게 뛰어올랐다.

간신히 성벽에 걸쳤다가 그 기세로 장검 하나를 장대로 삼아 뛰어올라 궁성의 안뜰로 내려앉는 린.

 

한 손에 남은 '네버 세이버' 에 불을 다시금 강하게 밝힌 뒤 그녀는 정원의 한 가운데에 놓인 석판을 향해 다가간다. 그 석판은 옛적, 미시로 왕국이 엘프들을 몰락시키고 건국되었을 때 세워진 건국 기념비. 프로듀서에게 수업을 받을 때 그렇게 들었다. 새삼스레 석판 앞에 멈춰선 시부야 린은.. 루미에게 들었던 대로 나지막하게 중얼인다.

 

" 스타리이트.... 스테이지. "

 

쿠궁 - .

 

정말 와쿠이 루미가 말했던 대로 석판이 그녀의 말에 반응하는 듯 주춤하더니, 곧장 아래로 꺼져간다. 석판이 있던 넓은 지지대가 있던 자리는 거대하고 둥근 공동이 되었으며, 그 벽면을 따라 아래로 빙글빙글 돌며 나선형으로 내려가는 석재 계단이 늘어선다.

 

 

' 정말로 있었구나.. 이게 궁성의 비밀 통로. '

 

그녀는 계단을 따라서 아래로 내려갔다. 그와 거의 동시에, 저 쪽에 있는 정문이 열리며 여왕을 비롯한 관료들이 도망쳐 나왔지만.. 서로 마주치지 않았다.

 

아무튼간에 계단을 따라 계속해서 내려가다 보니.. 어느센가 시부야 린은 자신이 지하감옥 보다도 아래에 있음을 알게된다. 잘은 표현 할 수 없지만 분명 '공기의 탁함' 이라는 것으로 그녀는 그 기준을 메겼다. 그리고 자기가 딛고 선 위치는, 예전 카에데를 끌고나올 때의 그 탁한 공기보다도 한층 더 심했다.

그렇다고 딱히 지하감옥과는 이어져 있는 것 처럼 보이지 않았다.

 

일단 나있는 길을따라 불을 밝힌 검으로 비추며 천천히 걸어 내려가던 시부야 린은 뭔가 휑 - 한 느낌에 돌연 멈춰선다. 아니냐 다를까 - 그녀의 바로 코 앞은 바닥이 없이.. 그저 시커먼 어둠뿐이었다. 더 정확히는, 왕국을 뒤덮고 있던 검은 기운이.. 지금 자기 아래에 보이는 거대한 싱크홀 같은 구덩이를 따라 솟아나오고 있는 것이었다.

 

' 뭐지 이 구덩이는 ? 위치로 치면 여기는 궁성의 바로 아래쪽인데... ! '

 

왕국에서 지내면서 여지껏 모르던 장소를 발견하자 린은 혼란에 휩싸인다. 옛 왕조가 어떤 용도로던 사용했던 것 같은 거대한 쇠사슬들과 깎아내려져 흔적만 남은 돌계단들이 드문드문 보여서 그녀의 의문은 더더욱 증폭되었다. 동시에, 자꾸 멤돌던 말이 다시금 확연하게 떠오른다.

 

「 왕국의 깊은곳에 잠든 진실을 마주하고서... 」

 

 

' 이곳에.. 내가 마주해야 할 '진실' 이. '

 

그렇게 되뇌이며 린은 온 몸에 푸른 불을 일으킨다. 저 검은 기운과 몸이 직접적으로 닿는것은 피하기 위한 예방책이었다. 다행히도 이곳에서 솟아나가고 있는 검은 기운들은 린의 불에 격렬하게 반응하여 밀집하지 않았기에 그녀는 조심스레 몸을 기울인다. 린이 부러진 애검을 보면서 말했다.

 

" 미안, 조금 더 험한 꼴을 겪을 거 같아. "

 

이후, 망설임 없이 그녀는 맞은 편 절벽을 등지고 몸을 던짐과 동시에 네버 세이버의 부러진 도신을 절벽에 박아넣는다.

생각보다 단단한 재질이 아닌지, 검이 벽을 가르며 린은 자연스레 천천히 절벽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간다. 중간중간에 칼이 뽑히지 않도록 깊숙히 넣어주는 것을 잊지 않는다. 칼을 질질 끌며 끝도 없이 아래로 내려가는 모습은, 기발하기 그지없지만.. 위험천만해 보였다.

검은 기운과 더불어, 조명없는 순수한 어둠에 감싸일 때 까지 내려가길 10여분.

 

' 땅인가. '

 

발바닥에 닿음과, 자기 몸에서 피어오르는 푸른 불꽃을 통해 확인한 그녀는 칼을 뽑고 바로선다.

 

그리고 순식간에 전투태세로 바뀐다. 그녀가 아닌 뭔가의 기척이 확실하게 존재함에, 그녀는 경계하며 주변을 둘러본다. 네버 세이버는 자갈과 온갖것에 긁혀 기스덩어리가 된 채로 푸른 불이 붙어 주변을 밝혔다. 뭔가 - 조각 같은 것이 보였다. 공기는 탁하다 못해 무거워서, 숨 쉬기가 불편할 정도로 짙었다.

 

 

불을 더욱 크게 만들자, 석상같은 뭔가의 전신이 드러난다. 날개가 돋힌, 흡사 천사라고 불리우는 가상의 것과 같은 모습을 한 석재질의 뭔가가 수없이 많은 사슬에 꽁꽁 묶여 사슬의 끝이 모두 주변의 벽들에 고정되어있는 형태를 취하고 있었다. 그리고...

 

' 부서져있어... '

 

석상의 웃고있는 것 같은 머리부분이.. 부서지고 갈라진 채였다. 안에는 텅텅 비어있는 것 같았다.

그렇다는 건.

 

 

 

 

 

 

 

" 그래. 주인님께서, 마침내 깨어나셨다. "

 

 

 

" .... ?! "

 

목소리가 들린 방향을 향해 재빨리 방향을 틀고 칼을 뉘여 겨누었다. 검에 붙은 푸른 불로 말미암아 비춰지는 모습은.. 그녀가 알고있는 모습이었다.

 

" 너는... 분지에서의 그... !! "

 

다만 분지에서 광신도들에게 지시하던 여인과 달리 두 눈이 선홍색이 아니라, 연두에 가까운 비취색으로 반짝이고 있다는 것이 판이하게 달랐다.

게다가 분위기도.. 그 광기에 절어서 광란 그 자체라고 해도 믿을정도였던 미친여자와 다르게 놀랍도록 침착하고 차가웠다.

 

 

" 깨어났다니.. 그 '별' 이... ?! "

 

" 그래, 다 너희들 덕분이다. "

 

 

여인은 엶게 미소지었다.

 

 

" 너희들이 서로 죽고 죽이며 수많은 피를.. 생명을 쏟아부어 준 덕분에 주인님께서는 구속을 벗어날만한 힘을 얻으셨지. 엘프들의, 짐승들의, 식물들의.. 그리고 인간과 아이돌들의... 생명을. "

 

" 우리가... ? "

 

" 이제 너희들의 봉사가 보답을 받을것이다. 진정한 구원이 머지 않았도다, 허락되지 않은 작은 새여 - . "

 

 

여인이 물러날 기미를 보이자 린이 칼을 더 반듯하게 들이대며 가까이 다가가려 한다.

그러나, 둘 사이에 나타난 뭔가가 그녀를 강하게 쳐내버린다. 바닥에 몇바퀴 뒹굴다가, 뒤편의 석상같은것에 부딪혀 멈추고서야 겨우 자리에서 일어난 린은.. 불에 비춰지는 붉은 한 쌍의 눈동자를 보고, 그것의 으르렁대는 소리를 듣는다. 

 

 

" 주인님께서 강림할 그릇조차 갖추어졌노니, 이제.. 이 세상은 거짓와 허영의 막 속에서 해방될 지어다. "

 

" 크아아아악 - ! "

 

 

녹색 눈이 읊조리고, 붉은 눈이 짐승처럼 소리지르며 쏜살같이 린에게 뛰어간다. 린이 반사적으로 불 붙은 칼날로 처내려 하자, 그것이 바로 직전 앞에서 멈춰서 도신을 움켜쥐었다. 살이 푸른 불길에 타들어가고 있음에도 아랑곳 않는 그것의 얼굴이, 불에 비춰지며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 거짓말... ? ! "

 

" 크르르... ! "

 

아카네. 히노 아카네.. 분명 그녀였다. 두 눈이 붉게 물들었고, 눈가에 붉은 힘줄같은 것들이 꿈틀였지만.. 그것 외에는 영락없이 히노 아카네 자체였다. 뒤편에서 힘싸움을 구경하던 녹색의 눈은 광경을 비웃는다.

 

 

" 믿음의 대상을 옮기는 것은 힘든 일이었으나.. 그만큼 아주 신실한 종자가 되었으니, 당해내기가 여간 쉽지 않을테지. 후후후...흐흐흥... 흥... 흐히히... 히히.. 하하하하하하 - !!! "

 

 

녹색의 눈이, 도로 붉게 변하며 미친 여자의 광소가 어둠이 뿜어지는 구덩이 안에서 울려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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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3화가 끝났는데...

 

분량을 얼추 계산해보니.. 4화 보다 더 많은 5화 까지 갈 것 같습니다.

 

분량 대☆폭☆발 !

 

하지만 그만큼 실하게 다듬을테니, 봐주시면 저야 무궁한 영광이겠습니다.

 

별개로 작품 내에 요소 이야기로 가자면.

여러분 대충 짐작이 가시겠지만, 2편에서 프레데리카가 추락하고... 검은 기운이 솟아나오고, 린이 보고, 또 내려갔던 구덩이는 [ 여기서 ] 란코와 아스카가 탈출하고, 죽은 용이 묶여있던 그 장소입니다. 뭐, 그냥 그렇다는 것이죠. 장소 재활용(...)의 의미도 있고.

다크 일루미네이트가 저기에서 탈출 할 때도, 구덩이의 밑바닥에는 존재했습니다. 그것이.

 

그리고 푸른 날개( 다 아시는 그 인물) 과 보브컷(역시 다 아시는 그 인물) 을 비롯한 사도들도 등장합니다...만, 이번 편에서 린에 대해 묘사할 것이 많아서 그들의 움직임과 목적은 다음 화에 나올 예정입니다.

 

게다가, 이번 편 안에 모든 단편 인물들을 넣기는 무리였어용. 죄송합니다. ㅠㅠ

4화과 5화에도 걸쳐서 골고루 넣을테니, 혹여 참여자분들 중 ' 내가 짠 애가 안나왔어 ?! ' 하시는분들은 고정하시고 다음 화를 기대해주세요.. 다 넣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여기까지 봐주신 여러분 정말 감사합니다. 다음 화에서 뵙죠 !

 

 

아, 검과 얼음이 맞닿는곳 3편도 현 7장과 연동되는 이야기니 많이 기대해주시길.

 

 

 

 

☆ 신데렐라 판타지는 여러분의 참여를 언제나 환영합니다 !

☆ 신데판 참여관련 및 설정 관련 문의 언제나 환영입니다 ! 쪽찌로 보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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