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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플레이서 - 태양의 젤러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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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12-19, 2016 02:10에 작성됨.

날은 화창했다. 765 프로덕션을 빠져나와 외부의 레슨장으로 향해가는 프로듀서의 마음도 가벼웠다. 간신히 대학을 졸업하고 무엇을 해야 할지 잘 모르고 있었던 그는, 난데없는 사장의 스카웃 덕택에 연예 프로덕션의 프로듀서가 되었던 것이다. 프로듀싱에 대해서는 잘 아는 것은 아니었지만, 자신은 결코 이룰 수 없었던 꿈을, 다른 아이들이 이루게 해주는 것에 거부감은 없었다. 아니, 오히려 그 자신이 무엇보다 바라던 것이었다. 765 프로덕션의 사장-이름은 타카기라고 했다-은 어쩌면 본인조차 깨닫지 못했던 본심을 그대로 꿰뚫어봤는지도 모른다.

 

“혹시, 불편한 일이라도 있어?”

 

운전대를 잡은 채로, 앞을 바라보고 있던 그는 문득 그렇게 물었다. 조수석에 타고 있는 소녀가 부자연스럽게도, 마치 그처럼 앞만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곁눈질로 바라본 그녀의 옆얼굴은 갸름했다. 붉은색의 리본으로 포인트를 준 갈색의 머리카락과 어우러져 그야말로 아이돌다운 미모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살짝 앵두빛으로 혈색좋게 물들어 있는 볼이 시선 끝에서 잠깐 비쳤다.

 

“에, 에엣. 아, 아뇨, 그런 일은 어, 없어요. 프로듀서.”

“많이 긴장한 것 같은데, 하루카. 미안, 단 둘이서 차에 타는 건 좀 그랬지······?”

“엑, 아, 아뇨! 전혀 아니에요! 따, 따지자면 제가 늦은 잘못이기도 하고, 에, 에헤헤······.”

“그러고보니 하루카는 멀리서 출근한다고 했지? 고생이네, 그러면.”

“평소에는 전철을 타는데······ 이번에는 전철이 늦어져서요. 실수로 넘어져버려서 전철을 놓치기도 했고…”

“엑. 넘어졌어? 어디 다친 데는 없고?”

“괘, 괜찮아요······ 프, 프로듀서.”

“조심해야지. 다치면 안 돼, 하루카.”

“걱정해주셔서, 고마워요, 프로듀서.” 하루카는 그렇게 말하면서 환한 미소를 지었다.

 

레슨장은, 765 프로덕션 만큼이나 낡아보였다. 차의 시동을 끊은 프로듀서는 하루카가 먼저 내리도록 배려한 다음, 뒤따라 내려서 가볍게 한숨을 머금었다. 운전면허를 딴지는 꽤 되었지만 장롱면허였기에 그리 자신은 없었는데, 다행스럽게도 주행은 성공적이었다. 다행스러운 것은 날이 화창하다는 것이었다. 개인적으로 비를 그리 좋아하지 않은 아카바네 프로듀서로서는 그 점이 다행스러웠다. 그렇게 가만히 상념에 빠져있던 그를 끌어낸 것은 소녀의 쾌활한 목소리였다. 하루카는 레슨장이 위치하고 있는 문 앞의 건물에 서서, 살짝 얼굴을 붉힌 채 그에게 환한 미소를 보내면서 말했다.

 

“프로듀서, 어서 들어오세요. 미키랑 마코토가 기다리고 있어요.”

“아, 응, 그랬지. 들어갈게.”

---

 

레슨장의 창문 너머로는 우중충한 하늘이 보였다. 먹구름이 짙게 끼여서 금방이라도 비를 흩뿌릴 것만 같은 풍경이었다. 내 개인적으로는 비를 그리 싫어하지는 않지만, 아무래도 이렇게 태양이 비치지 않는다면 조명이 어두운 것은 둘째 치고 금세 지쳐버리고 만다. 그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었는지, 하루카는 레슨장으로 오는 자동차 안에서 내내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있었다. 다만, 앞을 응시하면서, 때때로 어깨를 떨었을 뿐. 그녀 나름대로의 결심이었는지, 레슨장이 위치한 건물의 문을 붙잡고 무어라 말하기 위해 입술을 들썩였지만, 하루카는 이내 포기하고 축 어깨를 늘어트린 채 안쪽으로 들어갔었다.

 

“아마····· 하루카. 괜찮아?”

 

어쩐지 힘이 없어보이는 모습이었다. 미키 만큼은 아니었지만, 그녀 역시도 그의 죽음에 의해 크나큰 충격을 받아버린 것 같았다. 애써 미소를 지을 수는 있었지만, 바보가 아니라면 그 미소를 진정한 미소로 받아들일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하루카는 계속해서 미소짓고 있었다. 그것이 아이돌의 사명이라고 온 몸으로 주장하는 것처럼. 그것이 너무도 안쓰러웠다.

 

“······네. 미키······랑, 마코토는 조금 이따······ 올 거예요.”

“마코토······?”

“···네. 단발머리에, 아주 멋진 아이예요. 아, 프로듀서, 멋지다고 하면······ 화낼지도 모르니까, 조심하셔야해요.”

“그래, 명심할게. 그런데 하루카, 마코토······는 그렇다고 쳐도, 미키가 레슨에 올까?”

 

내가 기억하고 있는 미키의 모습은 두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무대 위에서 말 그대로 반짝반짝 빛나고 있는 아이돌로서의 미키. 그리고 다른 하나는, 무서울 정도로 싸늘한 표정으로 아무런 의욕도 남아있지 않았던 사무소에서의 미키. 전자의 미키라면 몰라도, 후자의 미키라면 절대로 레슨 같은 건 하지 않을 것 같았다. 하루카는 그 질문을 듣고, 가만히 미소를, 너무도 슬프게 보이는 미소를 지었다.

 

“미키라면 반드시 올 거예요, 프로듀서.”

“······?”

---

프로듀서는 난감한 표정으로 뒷머리를 훑었다. 하루카와 마코토는 벌써 스트레칭에 들어갔건만, 미키는 아직도 구석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처음 인터뷰를 명목으로 아이돌들과 얘기했을 때도, 미키와는 그리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다. “거기 있는 사람”으로 지칭되었던 것을 감안하면, 미키는 아카바네 프로듀서를 프로듀서로 조차 인식하고 있는 것 같지 않았다. 아카바네 프로듀서는 가만히 한숨을 머금은 다음, 마음을 굳혔다.

 

“저기, 미키.”

“···아후. 뭐인 거야, 거기 있는······ 아니, 프로듀서.”

“프로듀서라고 불러주니, 장족의 발전이구나, 미키. 그런데, 이제 일어나서 스트레칭이라도 하는 건 어때?”

“미키는 하기 싫은 거야, 프로듀서. 미키적으로는 레슨 같은 거 안 해도 미키는 미인이니까 괜찮다고 생각하는데.”

“저기, 미키, 그러지 말고, 마코토나 하루카는 이미 열심히 레슨을 하고 있잖아.”

“마코토나 하루카는 미키랑은 달리 근면한 거야. 미안, 프로듀서. 미키는 더 잘 거야. 아후.”

 

금발의 소녀는 그렇게 말하면서, 초롱초롱한 초록빛 눈동자로 싱긋, 그에게 미소를 지어주었다. 이제까지 숱한 남자를 침몰시켜왔던 미소였다. 아무리 억지를 부린다고 해도, 자신이 그 미소를 지어주면 모든 억지가 실현된다. 미키는 그렇게 믿어왔었다. 실제로 그 전략은 상당한 성과를 거뒀었다. 지금까지는······.

 

“···흐음, 그렇구나. 그럼 미키는 내가 준비한 특제 주먹밥은 필요 없는 거구나, 그렇지?”

“·····! 주, 주먹밥?!”

“응. 미키가 열심히 레슨을 마치면 주려고 했는데. 안 되겠네. 하루카나 마코토랑 같이 먹어야겠다.”

“저기, 프로듀서.” 금발의 소녀는 앉은 채로, 다시 초롱초롱한 눈빛을 프로듀서에게로 보냈다.

“왜 그래?”

“미키는 주먹밥을 아주아주 좋아하는 거야. 그러니까 주먹밥도 먹고 자고 싶은데, 안 돼?”

“안 돼. 미키가 레슨을 제대로 마칠 때까지는 주지 않을 거야.”

“······프로듀서, 그럼 미키가 레슨을 열심히 하면 주먹밥 줄 거야?”

“그래. 원래 그러려고 만든 거니까. 아아, 하지만 미키는 열심히 안 할 테니, 주먹밥은 내가 다 먹어버려야겠네.”

 

프로듀서는 그렇게 능청을 떨었다. 입사 이후, 사장님께 받은 개략적인 프로필을 통한 전략이었다. 어떤 의미로는 “전략”이라기보다는 “조련”에 가까웠지만. 금발의 소녀는 볼을 있는대로 부풀리다가, 프로듀서에게로 새끼손가락을 뻗었다.

 

“미키랑 약속하는 거야. 레슨 끝내면 주먹밥을 주기로.”

“그럼 미키도 나랑 약속 하나 해. 레슨을 제대로 끝마치기로······. 어기면, 주먹밥은 없음.”

“알겠는 거야.” 소녀는 환하게 웃으며 프로듀서에게로 새끼손가락을 뻗었다. 프로듀서도 새끼손가락을 꼬아 소녀의 손짓에 화답했다.

 

---

 

하루카의 호언장담은 몇 분 지나지 않아 사실로 밝혀졌다. 금발의 소녀, 미키가 이내 문을 열고 레슨 장으로 들어온 것이었다.

 

“아, 미키.”

“······.”

레슨 장으로 들어온 금발의 소녀는, 내 목소리에는 대답조차 하지 않고 가져온 짐을 풀었다. 찌릿찌릿할 정도로 싸늘한 반응이었다. 이내, 미키는 말없이 스트레칭을 시작했다. 댄스 레슨을 맡은 선생님과, 마코토도 곧 레슨장으로 들어왔다.

 

세 사람이 레슨을 시작하자, 나는 할 일이 없어지고 말았다. 대학에서 프로듀싱 관련해서 공부를 하긴 했지만, 댄스나 보컬에 관련해서는 아무래도 전문가보다는 전문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댄스는 분주했다. 그러나 어딘지 모르게 삐걱였다. 문외한인 내 눈으로 보아도 어딘지 모르게 위태로운 댄스였으니, 당연히 레슨을 담당하는 선생의 표정도 서서히 굳어져갔다. 그 날의 레슨은 레슨 담당 선생의 호통과 말없이 지시를 따르는 아이돌이라는 형태로 막을 내렸다.

 

나는 레슨 내내 꿔다놓은 보릿자루마냥 그녀들을 보고 있을 수밖에는 없었다. 문외한이라서 간섭하지 못한다 라든가, 그런 의미도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하루카와, 미키와, 마코토와 같이 있었으면서도, 같이 있는 것 같지가 않았다. 보이지 않는 벽에 가로막혀 아무런 상호작용도 할 수 없었다. 마치, TV로 보는 것처럼. 이쪽에서 일방적으로 시선을 보내는 것 말고는 그녀들에게 닿을 수 없었던 것이다. 아랫입술을 살짝 문 나는, 어떻게든 대화를 붙여보려고 수건을 품에 들고 있었다. 마침, 금발의 소녀가 수건을 찾는 듯,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아, 저기, 미키······.”

 

“······.” 청록빛의 눈동자가 내게 꽂혔다. 여전히, 얼음장처럼 차가운 눈빛이었다. 이내, 미키는 말없이 내게 다가와서, 낚아채듯 수건을 가져갔다. 나는 그저 얼떨떨한 표정으로 미키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미키.” 하루카의 목소리였다.

“······왜 부르는 거야.”

“···그건, 조금, 무례한 일이 아닐까. 그, 프로듀서······가, 일부러 수건을 가져와주셨는데······ 그렇게, 낚아채버리면······.”

“미키적으로는 상관 없다고 생각하는데. 거기 있는 사람에게 미키가 어떻게 행동하든.”

“하지만······”

“미키는 하루카가 자신의 일이나 신경써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데. 하루카, 이번에 스물 다섯 번이나 틀린 거야.”

 

실제로, 미키는 레슨 내내 거의 아무런 지적도 받지 않았었다.

 

“거기 있는 사람에게 신경쓸 시간에 연습을 했으면 더 나은 실력을 보여줬을 거야.”

“미키! 너, 그건, 하루카에게 말이 심하잖아!”

“하지만 사실인 거야. 미키적으로는 괜히 거짓말을 하는 것보다 진실을 말해주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는데.”

“너······!” 금방이라도 달려들 것처럼, 마코토는 얼굴을 붉혔다.

“아, 아냐, 마코토, 나, 나는 괜찮아. 나는 덜렁이니까······ 미, 미키 말이 맞아. 조, 조금 더, 연습 할게······.”

“그럼, 나중에.”

 

미키는 그 말만을 남기며 훌쩍 떠나버렸다. 자동차로 태워주려던 계획도 순식간에 어그러졌다. 텅 비어버린 레슨장에 남아있는 것은 세 사람. 간헐적으로, 마코토의 것인지, 하루카의 것인지 알 수 없는 울음소리가 끊길 듯 들려왔다. 창문 바깥에서는 천둥이 내려쳤다. 폭우와 함께.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힘들어질 것 같았다.

 

---

 

여전히 비는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오늘의 일정은 레슨정도가 전부라 하루카를 비롯한 아이돌들은 자신의 집으로 되돌아간 것 같았다. 다만 나는 프로듀서라는 입장 상, 전임자의 인수인계를 제대로 끝마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문제가 있었다. 다시 말해서, 오늘은 야근이라는 소리였다.

 

“이해는 제대로 되셨나요?”

“······솔직히 말하자면 반쯤은 이해 못했습니다만, 뭐, 괘, 괜찮겠죠. 아하하.”

“컴퓨터에 그리 밝지 못한 부분은 전 프로듀서랑 닮았네요.”

“그렇습니까. 그건······ 좋다고 해야 할지, 싫다고 해야 할지······. 그나저나, 코토리 씨도 고생이 많으시네요.”

“아니요. 익숙해졌는걸요.”

 

옆에서 분주하게 일을 이어나가고 있는 사람은 오토나시 코토리. 사장님이 언뜻 소개 하셨던 765 프로덕션의 사무원이었다. 초록빛이 섞인 머리칼과 더불어서 꽤 아름다운 사람이었기에 처음에는 아이돌로 착각해 자신도 모르게 반말을 해버렸지만, 코토리 씨는 웃으면서 그런 내 “무례”를 용서해주셨다.

 

“하아.”

 

키보드에서 손을 땐 나는 가만히 한숨을 머금었다. 사실, 인수인계 받을 것도 거의 없었다. 아카바네 프로듀서가 죽은 뒤로, 765 프로덕션의 활동은 사실상 정지 상태였다. 통계적으로는 지난 반년 간 류구코마치를 제외한 다른 아이돌은 그 어떤 활동도 하지 못했다. 류구코마치의 활동 덕택에 간신히 연예 프로덕션의 명맥을 유지하고는 있었지만, 그 류구코마치 역시도 서서히 사람들에게 잊혀가고 있었다.

 

“···프로듀서는, 어째서 이곳에 들어오기로 결정하셨나요?”

“···네?”

“사실, 765 프로덕션은 많이 힘든····· 상태거든요. 아키즈키 프로듀서가 최선을 다해서 간신히 명맥을 유지시키고 있지만, 솔직히 말해서, 언제 망해도 이상하지 않아요. 그런데, 이력서에는 굉장히 명문대학을 나오셨다고······.”

“어라. 코토리 씨에게는 아직 말씀드리지 않았던가요. 사실, 765 프로덕션의 라이브를 보고 반했었거든요.”

“프로듀서 씨, 프로듀서로서 아이돌에게 이상한 마음을 품으시면 안 돼요.” 그렇게 말하면서, 코토리 씨는 소리없이 웃음을 터트렸다.

“아, 아뇨, 물론 프로덕션의 아이돌들도 정말 예쁜 아이들이 많았지만, 그것보다는, 저렇게 저 아이들을 빛나게 할 수 있구나, 하는 마음이 들어서요.”

“···아아. 확실히 그건 그렇죠. 미키도, 하루카도, 다른 아이들도 모두 반짝반짝 빛났었으니까요. 그 때는.”

“그런데 지금은······. 하아. 예상은 했지만, 미소조차 제대로 지어주고 있지 않아요. 미키가 특히······ 아, 이런, 어쩐지 푸념하는 것처럼 되어버렸네요, 죄송해요, 코토리 씨.”

“이번 주의 프로듀싱은 하루카였죠?”

“네. 오늘은 실패지만.”

 

객관적으로 본다면, 하루카의 모습은 다른 아이돌과 비교한다면 괜찮은 수준이었다. 미키처럼 내게 냉랭하게 대하는 것도, 유키호처럼 나와 눈이 마주친 순간 피해버리는 것도 아니고, 도저히 가까워질 수 없을 것 같은 막을 세워버린 치하야와도 다르게 적어도 나를 프로듀서라고 불러주고, 대화가 이어지고 있으니까. 그러나 나는 어쩐지 안심이 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하루카가 가장 위험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논리나 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냥 직감이었다. 대학에서는 그런 건 다 버리라고 했는데 말이지······.

 

“프로듀서라면, 해낼 수 있으실 거예요.”

“빈말이라도 고맙습니다, 코토리 씨.”

“아뇨, 진심이에요. 사장님께서 선택하신 분이니까. 그 아카바네 프로듀서처럼······.”

 

아카바네. 그 이름을 듣자 나는 왠지 모를 한숨이 몰려왔다. 어쩌면, 나라는, 키리기리 료라는 존재는 언제고 그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프로듀서?”

“아, 예.”

“혹시, 시간 되세요? 일 끝나고.”

“인수인계의 경우는 방금 다 끝났고······ 특별히 준비할 건 없네요. 내일은 휴일이니까····· 뭐, 시간은 충분합니다.”

“마시러 가지 않으실래요?”

“데이트 신청이신가요. 코토리 씨 같은 미인이 신청해주시니 굉장히 기쁜데요.”

“대답은 예스, 로 알겠습니다. 후훗. 아마 아키즈키 프로듀서랑 미우라 씨도 오실 거예요.”

“리츠코 씨······ 아즈사 씨······. 으음, 알겠습니다. 그럼 저는 먼저 준비하죠. 아래에 있는 가게였죠?”

“네. 타루키정. 이 서류만 처리하고 내려갈게요. 실은, 아키즈키 씨랑 미우라 씨는 이미 기다리고 계신답니다. 거절하면 어쩌나, 하고 고민했어요.”

 

코토리 씨는 가만히 웃으며 서류로 고개를 돌렸다. 나는 조금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의자에 걸어두었던 외투를 걸쳤다. 765 프로덕션이 위치한 건물의 1층은 타루키정이라는 음식점이 있었다.

 

---

 

타루키정의 안쪽 풍경은, 말 그대로 전형적인 일식집의 모습이었다. 손님이 많은 것은 아니었는지-사실 새벽이 다 되어가는 지금 시간에 손님이 많은 쪽이 이상한 것이었지만- 테이블은 대부분 비어있었지만, 안쪽의 테이블에는 리츠코 씨와 아즈사 씨가 앉아서 기다리고 있었다.

 

“어머, 프로듀서 씨, 여기에요.”

“오토나시 씨가 실패하지는 않았나보네요.”

 

이미 주문은 마쳤는지, 테이블에는 술병이 세 병이나 올라가 있었다. 더군다나 한 병은 이미 비어있는 것을 감안하면, 두 사람은 이미 조금은 취했다는 소리일까. 나는 조심스럽게 테이블로 다가가 합석했다.

 

“리츠코 씨, 그러고보니, 아직 미성년자 아니셨나요.”

“······리츠코라고 불러도 괜찮아요. 저, 이래봬도 스무 살밖에 안 됐으니까. 그리고, 미성년자 아녜요. 생일도 지났는걸요.”

“그래도······.”

“뭐예요, 프로듀서!” 이미 리츠코의 얼굴은 새빨갛게 변해있었다. “저는 술도 마시면 안 되는 그저 그런 녀석이라는 거예요?! 정말 그런 거예요?!”

“아, 아니······ 죄, 죄송합니다. 리츠코 ㅆ······ 리츠코.”

“프로듀서 씨, 오늘······ 아니, 어제 아침에는 제대로 인사를 못 드렸던 것 같네요. 미우라 아즈사라고 해요. 다행히도, 새 프로듀서가 들어오셨······네요.”

“뭐, 어쩌다보니, 그렇게 됐네요.”

“사실, 프로듀서 씨 말고도, 다른 분들도 계셨답니다. 제가 이런 말을 하는 것도 좀 그렇지만, 저희 프로덕션의 아이돌들은, 그야말로 톱 아이돌······이 될 수 있을, 그런 아이돌이었으니까요. 반년 전만 해도 프로듀서 지망생은 꽤 많았어요. 하지만, 대부분 일주일도 버티지 못하셨어요.”

“아, 아아, 왜인지 알 것 같네요.” 일주일이나 버티면 다행이지. 씁쓸함이 밀려들었다. 술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뭐라도 마셔야 할 것 같다는 충동이 들어 어느새 차 있는 잔을 들어 입 속에 털어넣었다.

 

한 순간, 마치 울분처럼 마음이 타올랐다가, 이내 서서히 퍼지는 쓴맛에 목구멍이 몸부림치고는 타올랐던 마음이 혈관을 타고 온 몸으로 흘러갔다.

 

“프로듀서도, 많이 힘드시죠.”

“······저보다는 아즈사 씨가 더 힘들지 않을까요. 리츠코 ㅆ······ 리츠코나.”

“에, 에에. 아뇨, 아녜요. 저는 아~무렇지도 않은 걸요. 혼자서 류구코마치를 프로듀싱했던 건, 아카바네 프로듀서가 있었을 때든, 아니든, 똑같으니까요. 다만······ 네에, 뭐, 굳이 말하자면, 조금 힘들긴 하네요. 경쟁자가 없으니까아. 류구코마치만, 잘 나가게 되어버려요오.”

 

당연히, 진심이 아니겠지. 어쩌면 그것이 리츠코 나름대로의 슬픔의 표시인지 모른다. 아즈사 씨는 그런 리츠코를 측은한 눈빛으로 바라보다가, 이내 나를 바라보았다.

 

“저는 괜찮답니다. 어른이니까요. 물론 슬프긴 하지만, 그래도, 아이돌이고, 어른이고, 맏언니이니까요. 프로듀서 씨는, 괜찮으세요?”

 

아즈사 씨의 질문이 공허하게 맴돌았다. 술잔에 채운 술을 다시 한 번에 목구멍 속에 털어넣었다. 지펴졌던 불이 몇 배는 커졌다. 어찌나 그 불이 뜨겁게 타올랐는지, 주저하는 내 마음마저 불태워버린 것 같았다.

 

“······솔직히 말하면, 저도, 자신이 없어요. 미키와는 거의 말도 붙이지 못했고, 다른 아이돌들과는 그리 사이가 좋지 않아요. 사실, 아즈사 씨와의 지금 이 대화가, 제가 입사한 이후 아이돌들과 했던 대화를 모두 합친 것보다 조금 많을 지경이랍니다. 아, 뭐, 아즈사 씨도 아이돌이니까, 이거, 좀 모순인가요. 아하하. 죄송해요, 어쩐지 아이돌이 아니라 친구처럼 느껴져서.”

“프로듀서어. 하루카를 맡으신다고······ 들었서요.”

“혀, 혀가 꼬인 것 같은데, 리츠코.”

“시, 시끄러워요. 기뻐서 마시는 거니까아. 그래도, 첫날을 어떻게든 버티셨자나요. 하루카는······ 어때요?”

“어떠냐고 물어봐야. 좋은 애에요. 거기다가, 그나마, 가장 저와 대화가 이어지는 아이돌이기도 하구요.”

“······그리고요?”

 

술에 취해서 눈이 풀려있던 리츠코의 눈빛이 한 순간 날카로워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즈사 씨 역시도, 비록 턱을 괜 채였지만 나를 관찰하듯 응시하고 있었다.

 

그 질문을 들었을 때, 나는 조금 갈등했다. 사실, 하루카에 대해서는 어떠한 위화감을 느끼고 있었다. 위화감, 이라고 해야 할까, 다른 이름이 붙을지도 모르겠지만, 어쩐지 위태로웠다. 그러나 그걸 그대로 말해도 될까? 내가 틀렸을 수도 있다. 어떠한 증거도 없는 그저 직감에 불과했다. 그러나 술의 힘 때문인지, 나도 모르게 툭, 말을 던지고 말았다.

 

“어쩐지, 위태로워보여요.”

그것이 신호라도 되는 것처럼,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리츠코와 아즈사 씨는 안도한 듯 한숨을 내쉬었다.

“아아, 다행이다.”

“그러네요. 이번 프로듀서 씨는, 다행이에요.”

“······에. 저, 무슨 소리인지······.”

“적어도, 아이돌에게는 신경도 쓰지 않는, 그런 프로듀서는 아니라는 말이니까요.”

“······취한 거 아니었어, 리츠코?”

“전 미성년자거든요. ······아, 속여서 죄송해요. 저, 아직 열아홉이예요.”

“······.”

 

속았다! 그것도 제대로! 그러나 분명, 자신들 마음대로 나를 시험한 것이었음에도, 그리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나는 다만 쓰린 속을 진정시키기 위해 다시 한 잔 털어넣었을 뿐. 이내, 리츠코는 조금 더 진지한 눈으로 변해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프로듀서라면······ 그 아이들을 원래의 아이들로 되돌릴 수 있을지 몰라요. 아니, 반드시 하실 수 있을 거예요. 프로듀서는, 아카바네 프로듀서를 닮았으니까. 그 사람처럼, 완벽한 것처럼 보이지는 않지만, 기어코 무언가는 해내고 말 것 같은 느낌이 드니까요.”

“네, 그렇죠. 사장님 식으로 한다면, ‘띵- 하고 왔다’ 일까요. 우후훗.”

“저를 너무 과대평가하시는 것 같은데요. 실은, 그냥 그런 느낌만 들 뿐이지, 어떻게 해야 할지 전혀 모르겠어요.”

 

나는 불쑥, 그렇게 질문을 던졌다. 누군가에게 의존하는 것을 꺼려왔던 나로서는 의외인 일이었다. 술의 힘 덕분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하루카는······ 과자 만들기를 좋아하는 아이랍니다. 그래서, 아카바네 프로듀서에게 매번 직접 만든 과자를 주곤 했어요.”

“귀여운 취미네요. 그리고 어쩐지 조금 부럽기도 하네요.”

“···하지만, 하루카는 최근 과자를 전혀 만들고 있지 않아요.”

“······.”

“어쩌면, 이게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네요. 죄송해요, 프로듀서. 저희가 드릴 수 있는 힌트는, 이 정도예요. 저희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는 건, 프로듀서랑 똑같으니까요.”

“도움이 못 되어드리는 것 같아서, 죄송해요, 프로듀서 씨.”

“·····아뇨, 리츠코, 아즈사 씨, 둘 모두 제게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네?”

“최소한 두 분은 절 무턱대고 싫어하지 않는다는 거잖아요. 다행이에요. 두 분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라도 준비할 필요가 있겠네요······. 아직, 구체적인 계획은 잘 모르겠지만······. 그럼, 전 먼저 가볼게요. 코토리 씨께는 같이 마시지 못해서 죄송하다는 말, 전해주세요. 다음에는 제가 사겠다구요.”

“어머, 다음에는, 마실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우후훗. 안녕히 가세요, 프로듀서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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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화 분량입니다 ^^;;

이 소설에서는 그러니까 원래 있었던 아카바네P와 현재 있는 키리기리P의 서술을 교차시키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둘 다 그냥 "프로듀서"라고 불리니까 구분이 어렵다는 맹점이 있어서 생각하다가, 아예 서술 인칭을 달리해봤습니다. 3인칭 서술은 아카바네P 시점이고 (모든 3인칭 서술이 아카바네 P 시점인 것은 아니지만), 1인칭 서술은 키리기리P 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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