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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렇게 프로듀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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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12-09, 2016 14:41에 작성됨.

“-----님 동생분 되십니까?”

“----님이 돌아가셨습니다”

 

내가 이 소리를 들었을 때, 하늘이 무너진다던가 믿을 수 없다던가 하는 그런 생각은 들지않았다. ‘형과 동생’이라는 형태로 묶여있는 사람이었지만 그 연결고리는 너무나도 미약하고 허울 뿐 인 것이었다.

 

한 가지 아는가? 꿈을 쫓아 달리는 사람은 아름다워보이지만, 아름답게 경험할 수는 없다. 저만치 멀리있는 꿈을 쫓아달리면 자기 주변에 있는 건 전부 버리고, 뒤도 돌아보지않고 멀리 떠나버리게 되니까. 우리 형도 그런 꿈을 쫓는 사람이었고 나를 포함한 우리 가족은 그 과정에서 버려진 사람들이었다. 그렇지만 형이 밉다던가 하는 생각은 갖고 살지않았다. 진정으로 멍청해서 이 사단을 만든 것은 그런 형을 훈육하지 못한 부모들에게 있으니까. 결국 그 꿈에 다가간 형은 가족으로 돌아오지 못했고, 그런 형을 보면서 헤실거리기만 하는 부모의 감당은 내 몫이었다. 그리고 부모가 돌아가신 이후로는 은행과 통장을 통해서만 유지되던 형과의 소통도 끊어져버렸다.

 

아무튼 그런 이유로, 내가 형의 부고를 들었을 때 든 생각은 ‘아 맞다’가 가장 정확할 것이다. 마치 잊고있던 무언가를 누군가가 끄집어내준 느낌. 결국 내가 가장 가까운 혈육이라는 이유로 사람이 죽는 데 필요한 복잡하고 귀찮은 절차를 밟았다. 사인은 교통사고. 즉사는 아니었는데, 같이 타고 있던 소녀를 구하려다가 폭발에 휘말려죽었다고 한다. 제 가족도 한 번 그렇게 챙겨보지-라는 말은 삼켜놓고, 천천히 형의 죽음은 진행되었다. 몰려온 직장동료와 때때로 찾아와 우는 소녀들을 보면서 가족을 버리고 꿈으로 달려간 일이 헛되진 않았구나-라는 생각을 하며 뒷처리를 하던 와중, 문득 또 한가지 생각이 들었다. ‘왜 이렇게 살았을까’

 

돈도 많다. 하지만 집도 병실에 남은 물건도 소박하다 못해 황량하기 그지 없다. 무엇이 형을 그토록 열중하게 만들었는지 궁금해하면서 병실을 터벅터벅 걸어나왔을 때, 옆 방에서 비명소리가 들렸다. 아프거나 두려워서 지르는 소리가 아니라 마치 마음속에 있는 걸 감당하지못해 토해내는 발악이랄까.

 

슬쩍 열린 문틈으로 본 광경은 매우 살벌했다. 십대 중반...정도로 추정되는 여린 소녀 한 명이 주먹을 쥔 채 날뛰고 있었다. 그 주먹에서 흘러나오는 붉은 피와 바닥에 널부러진 도자기 조각들로 보아 그 손에 쥔 것이 쉽게 추정되었다. 왼쪽 손목에 몇 번이고 내리그어진 흉터가 그녀의 목적을 쉽게 알게 해주고 있었다. 몇몇 사람들이 그녀를 붙잡아 제지하려고 했지만, 이성을 잃고 발광하는 사람은 제압하기 쉽지않은 일이지.

 

병원에서 가끔가다 볼 법한 기이한 광경에서 눈을 떼려는 찰나, 소녀의 눈이 나와 마주쳤다. 끝도 없이 깊어져만 가는 구멍이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도 들어가도 텅 비어서, 보는 사람을 이끌고 들어가려는 눈. 그 눈에 잠깐 마음을 준 사이에 그 소녀가 나에게 달려와 안겼다.

 

“프로듀서 씨!”

 

뭐시라-?

 

“프로듀서 씨! 어디가셨던거에요! 마유는! 마유는 프로듀서 씨가 없으면...”

 

어안이 벙벙해져서 멍하니 있는 와중에, 사람들이 거칠게 ‘마유’라는 아이를 떼어내어 끌고 들어갔다.

 

“어디로 끌고가는거야!! 놔!”

 

마유는 순식간에 폭력적으로 변해서 주위 사람을 할퀴고 때리기 시작했다. 아, 그래. 형인가. 형이 저 아이의 프로듀서였나. 그러고보면 그런 아이돌도 있었던 것 같다.(내가 그런 곳에 관심을 두지않아서 정확히는 모르지만) 그녀는 날 착각했던 것이다. 아니면 그렇게 믿고싶었겠지. 아무튼 나는 일단 지금 사태를 조금 진정시켜야할 필요성을 느끼고 방 안으로 걸어들어가 사람들을 제지했다. 나에게 재차 안기는 마유를 부드럽게 떼어내고 몸을 낮추어 눈을 맞췄다.

 

형이 어떤 사람인지는 정확히 모르지만...기억 속에 남아있는 희릿한 이미지를 따라 흉내냈다.

 

“늦게와서 미안해, 마유. 나도 마유가 걱정되었지만 너무 큰 일이 쌓여있어서 빨리 올 수 없었어. 그래도 마유가 걱정되서 잠깐 와보았어. 괜찮은거니?”

 

어찌어찌 속일 수 있었는지 마유가 울먹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또 나가봐야해. 마유, 돌아올테니까. 잠깐만 더 기다려줘.”

 

마유는 눈물을 흘리며 꾹- 눌러참는 모습으로 침대에 얌전히 누웠다. 그 때, 조금은 죄책감이 들었다. 그리고 예상대로 나에게 형의 관련인들이 접근했다. 용건은 간단했다. ‘형의 대리가 되라는 것’ 어차피 가이드라인은 다 짜줄테니 나는 거기에 맞추면 될 일이다. 직장이 급하진 않다. 형이 부러웠던 적은 없다. 그저 든 생각은 마유가 불쌍했다. 전부 다 잃고 어른들의 돈벌이를 위한 인형, 낡아버리면 가차없이 버려진 그런 인형이다. 이제는 그녀가 마음에 두었던 사람 한 명 조차 없다. 평생을 거짓 속에서 살아야겠지.

 

하지만, 내가 이걸 거부한다면.....어떻게 될까. 아이돌이라는 자리도 유지하지 못하고 당장에 버려질 것이다. 회사란 그런 거니까. ‘혼자 남는다’라......그런 것 보다는 차라리 행복한 거짓 속에서 화려하게 춤추는 인형이 낫지않을까. 적어도 그 아이의 머릿속에서는 사랑하는 사람도 살아있는 행복하기 그지 없는 생활일 테니까.

 

그리고 한 가지, 궁금해. 그 눈이 궁금해. 그리고 어떻게 형을 그렇게 만들었는지 궁금해. 어떻게 형이 부모도 동생도 내버리고 한없이 멀리 가버리는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었는지. 도대체 그 아이의 뭐가 그렇게 만들었는지 궁금해.

 

동정과 호기심이 뒤섞인 채, 나는 다시 병실에 들어가 마유를 만났다. 이제는 미소까지 띄워가며 침대에 얌전히 앉아있었다. 나는 천천히 그녀를 훑어보다가 왼손목에서 눈을 멈췄다. 소녀가 가지고 있기에는, 너무도 잔악한 흉터였다. 붕대를 한 바퀴, 두 바퀴, 세 바퀴 감고서 나는 매듭을 묶었다. 아마 제법 오래갈 상처이니까 이 붕대도 제법 오래있겠지. 그런 생각에서 매듭을 조금 다르게 묶었다. 위로는 둥근 원이 양쪽으로 있고 아래로는 끈이 나온 형태, 리본이었다.

 

마유는 그런 잠깐의 친절-어쩌면 동정-을 받고서도 사랑하는 사람의 선물이라고 생각했는지 천천히 손목의 리본을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만족감과 이루 말할 수 없는 행복이 앉아있었다. 방금전까지 날뛰던 아이라고는 생각되지않을 정도로 그녀는 행복해보였다.

 

그리고 나는 그렇게 마유의 프로듀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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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화는 없습니다.

 

제가 쓴 것치고는 꽤 멀쩡하군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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