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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데렐라 판타지] 막간 - 무대 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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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12-07, 2016 17:44에 작성됨.

시부야 린이 '이름없는 숲' 에서 마에카와 미쿠와 조우하기 열흘 전.

 

 

 

 

 

눈을 떴다.

 

보이는건 암청빛으로 물들어있는 천장. 높이는 아주 높았다. 족히 20미터 가량은 되어보이는 높이의 천장의 중간중간엔 커다란 샹들리에들이 메달려있다. 샹들리에에 맺혀있는 등불의 색도 하나같이 파랫다. 파랑의 꿈인가 뭔가 싶을정도로 온 세상이 파랑으로 일색이었다.

 

시선을 정면으로 향했다.

 

좌우로 넓은 간격으로 늘어선... 아마도 회색일 것으로 추측되는 석재 기둥들이 샹들리들의 푸른 불길과, 기둥 사이사이에 놓인 금속제 횃불들의 푸른 빛이 비추어져 기묘한 아름다움과 정적인 분위기를 자아하낸다. 기둥들의 호위라도 받듯이 덩그러니 놓여있는 큼지막한... 사람이 앉아있기에는 너무나 커다란 옥좌에는, 가느다란 다리를 뽐내기라도 하듯이 옆으로 누워 받침대에 머리를 뉘이고 있는 소녀의 형상이.

 

 

『 잘 왔어. 』

 

 

머릿속에서부터 귀 밖으로 퍼져나오는 끔찍한 목소리가 정적속에 취해있던 정신을 자극한다.

두 눈을 휘둥그레하게 뜬 린은 떨리는 목소리로 애써 목소리를 낸다.

 

" . . 그 목소리 . . ?! . . 설마. "

 

 

언제나 자기를 괴롭혀온 목소리에 린은 소름이 돋아 양 팔을 붙든다.

 

그녀의 반응에 흥미를 느낀 것인지, 목소리의 주인은 웃음을 흘렸다.

 

소녀의 형상이 짧은 치마를 펄럭이며 미소짓는다.

번쩍이는 두 눈동자는 넓디넓은 대양을 보는 것 같이 파랑 일색이었고, 한 쪽으로 묶어올린 머리카락 역시 진한 청색을 띄고있어.. 주변의 불빛을 흡수하듯이 보였다. 여지껏 그녀는 소녀의 형상을 제대로 본 기억이 없었다. 항상, 손이나 입가 혹은 알아보기 힘들정도로 안개나 노이즈같은 것들이 방해하여 그림자 비스무리한 실루엣만 봐왔을 따름이다.

 

막상 드러낸 형상은, 시부야 린의 눈에 들어오는 형상은.. 기대(?) 했던 것과 달리 무척이나 가늘고 여려보였다.

 

 

『 그래그래.. 직접 보는건 처음이지 ? 』

 

 

거의 침대에 눕듯이 드러누운 여인은 번갈아가며 다리꼬기를 반복하며 자기 이마를 톡톡 건드린다.

그러다가 양 다리를 힘껏 휘두르며, 반발력으로 앉는 자세로 돌아오고선 텅텅 비는 옥좌의 바닥을 손바닥으로 몇번 쳤다.

 

『 가까이 와. 』 형상이 언젠가 보았을 때 처럼 기분나쁜 미소로 일관한다.

 

린의 목구멍이 침을 삼키고, 그 발걸음이 떨림을 뒤로 한 채로 앞으로 다가섰다.

내딛는 한 발자국, 걸음걸이 마다 그 '또각' 소리가 사방으로 퍼졌다가 돌아오며 귓구멍 속에 나선형으로 빙빙 돌며 파고들었다.

몸은 장소에 있지만 마치 다른곳에 붕 떠있는 것 같은 불쾌감. 이 역시 시부야 린이 아주 싫어하는 감각 중 하나였다.

무엇보다도 ─── 그녀의 말에 저항하지 못하는 자신이 가장 싫었다.

 

천근같이 무거운 발걸음을 옮겨 겨우 몇걸음 거리 앞에서 멈춰서, 숨을 가늘게 떨고있는 린의 모습을 응시하던 눈동자는 이내에 옥좌에서 슬며시 일어난다.

 

『 몸은 많이 나아졌니 ? 』

 

말하는 내용과 달리 얼굴에는 전혀 걱정 끼가 보이지 않았다.

그럴 턱이 없다고. 린은 그녀의 말에 전혀 괘념치 않으며 고개를 힘껏 가로젓는다.

 

" 여긴 . . 어디야 . . ! "

  

 

린이 주춤거린다.

가볍게 던지는 농담같은 말에도 모두 과민반응하게 된다. 휘둘리고 싶지 않다고 여겨도, 마음만큼 되지 않는다.

형상은 다시금 입이 찢어지도록 웃더니 속삭인다.

 

 

『 굳이 말하자면, 무대 뒤편 - 이라도 해둘까 ? 』

 

무대 뒤편. '무대' 라는 단어 자체는 생각보다 종종 들어봤던 것이다. 미시로 왕국에서 카에데의 쿠데카가 일어나기 전 귀족들이 종종 연극에 관한 잡담을 떠들 때 꺼냈던 단어이다. 하지만, 눈앞의 '그것' 이 말하는 '무대' 라는건.. 무슨 뜻인지 짐작가지 않는다.

그리고 그런 린의 생각을 다 꿰고 있다는 자신만만하고 오만한 표정으로 린을 올려다보는 얼굴에는 마치 '기만' 이라는 글씨가 써져있다고 해도 좋을 정도의 티가 보였다.

 

 

『 여기는 시간축에서 분리된 공간. 내가 원하는, 혹은 나를 진정 간절히 바라는 사람만이 들어올 수 있는 곳. 찰나조차도 이곳에서는 흐르지 않는 완전한 정(靜)의 공간이지... 라고 해도 알아들을 리 없나 ? 뭐, 그냥 흘려들어. 』

 

주절주절 늘어놓으며 자리에서 일어난 소녀의 형상은, 이윽고 린의 턱선을 어루만지기에 이르렀다.

소름이 몸을 타고 격한 전류처럼 몸을 자극했다.

 

 

『 다시한번, 잘 왔어. 나의 기사. 』

 

턱선을 타던 손가락이 어깨를 어루만지면서, 입술이 린의 뺨에 닿았다가 떨어진다.

 

" 난.. 당신 기사가 아니야. 지금 와서도, 그 사실은 결코 변하지 않아.. ! "

 

 

『 후후~ 말은 그렇게 하면서. 네 무의식은 솔직하게도 이곳으로 오길 바랬는걸 ? 그래서 내가 부른거고, 그 무엇보다도 네가 원해서. 』

 

 

하는 어절 하나 하나가, 단어 한개 한개가 몇번씩 반복되어 들리며 머릿속에서 요동쳤다. 점점 형상이 하는 말을 듣기 괴로웠다.

 

 

" 뭐? 무슨 말도 안돼는 소릴... 그럴 리가... ! 그럴.. 리... "

 

 

하지만 그러는 와중에도, 이루 표현할 수 없는 감미로움이 머릿속 한켠에서 그녀의 의식을 붙들었다. 머리안에서 날뛰는 목소리들을 진정시켜주는 안정제와 같이 혼란스러운 머릿속을 진정시킨다. 어찌된 영문인지 마음속이 편해지는 와중에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저, 자기가 겪는 일련의 모든 상황들이 흘러감에 몸을 맡기는게 전부였다.

 

서있는게 고작인 린의 옆에 달라붙어, 형상은 스킨쉽을 더해간다. 소름끼치도록 하얀 손길이 흉갑에 닿자, 쇠로 된 갑옷과 가죽으로 된 끈이.. 마치 찢어진 종잇가루처럼 바스라져 허공 너머로 흩어져 사라진다. 이어서, 손이 조금이라도 깊게 닿는 모든 부위가 차례차례로 흉갑과 같이 가루가 되어 바스라져갔다.

 

그리고 마침내, 위와 아래. 단 한장만이 남은 남사스러운 행태가 되고서야.. 음란한 환상속의 손길은 수려한 얼굴로 향했다.

 

 

『 너의 피부, 뼈, 내장.... 너를 이루는 모든것들. 탐스럽기 그지없구나. 참으로, 아름다워. 』

 

" 아름... 다.. 워... ? "

 

 

홀린것처럼, 망연한 얼굴로 시부야 린은 말을 흘리는 것 밖에 할 수 없다.

 

 

『 그래. 나의 기사가 됨에 마지않을, 순수한 파란 새의 아이야. 』

 

" 파랑.... 새.... "

 

『 최초의 파랑새가 이 세계에 베풂과 함께 흩어지고서 아주 오랜 세월동안.. 그 티끌들이 삶을 얻어, 각자의 가치를 보이려 했지만.. 모두 부질없는 짓이었지. 왜냐하면.... 』

 

" ..... "

 

『 순수하지 못했으니까. 』

 

 

소녀의 형상이 어느센가 입고있던 옷을 훌훌 날려버린 채, 한점 부끄럼 없는 모습으로 린을 옥좌로 떠민다.

자연스레 이야기하며, 형상은 린의 몸을 옥좌에 앉힌다. 그리고 손등을 어루만졌다.

 

 

『 어느 새는 은혜를 잊고 주인에게 대들었고, 새조차도 되지 못한 깃털조각은 스스로를 과대평가한 끝에 미쳐버렸지. 또 어느 새는.... 』

 

 

탐스럽게 쓰다듬던 손길에, 볼을 문댄 뒤.. 형체는 말을 잇는다.

 

 

『 더럽혀지지 않은 깨끗함을 위해.. 스스로를 오물 속에 떨어뜨리고 말았으니. 』

 

 

말 끝에, 형상은 작게 웃었다. 초점을 잃고 눈동자의 선명한 빛도 흐리멍텅해진 기사의 눈을 바라면서 형상은 린의 옆에 나란히 앉아 그녀를 슬며시 자기 무릎팍에 뉘였다. 흐린 눈동자가 형상과, 형상 너머의 허공을 응시한다.

 

손길이 앞머리를 제치고 이마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 이제 날개를 펼칠 때가 됬단다. 둥지를 떠나서... 스스로 먹이를 구할 준비가. 』

 

 

『 홀로 남겨진 검과, 왕국의 깊은곳에 잠든 진실을 마주하고서, 해가 질 무렵에 나를 찾으려무나. 』

 

" . . . ?! "

 

멍하기 그지없던 시부야 린의 눈동자에 급작스레 빛이 돌아온다. 그제서야 자기가 정조의 위기(?) 에 처해있다는 사실을 깨닫고서, 황급히 손길을 쳐내고 몸을 소스라치며 일으켰다.

형상은 안타깝다는 듯 피식 웃었다.

 

 

" 뭘 하려고 했던거야 당신 . . !! "

 

『 흐음~ 글쎄, 뭐였을까 ? 』

 

 

" . . 아니, 알고싶지 않아... ! "

 

린은 고개를 힘껏 가로저었다. 그녀의 머릿속 한켠에 있던 기묘한 감미로움은, 이미 씻은듯이 날아간지 오래였다.

경멸에 가득찬 시선으로 노려보며 뒷걸음쳐 도로 옥좌와의 거리를 벌린다. 적나라한 알몸인 채, 소녀의 형상은 양 다리를 꼬고 앉아 눈웃음 지었다. 행동의 한 치 앞조차 예상하기 힘든 눈앞의 존재에 대해 린은 경계해 마지않으며 거부의 시선을 끊임없이 보낸다.

 

 

『 자, 이제 현실로 돌아갈 시간이야. 기사님. 』

 

 

형상이 손뼉을 맞부딛혔다. 짝.

 

 

" 하 ? "

『 이제 일어나야지 ? 후후후 . . . 』

 

 

또 다시, 이번에는 두 번.

 

 

 

 

짝. 짝.

 

 

 

 

 

.

.

.

미시로 왕국, 서부 국경지대.

괴물 사냥꾼 와쿠이 루미가 사용하는 지하 은신처.

 

 

" . . . 헉?! "

 

담요를 제끼고 시부야 린은 급히 몸을 일으킨다.

얼굴을 비롯한 온 몸이, 땀에 젖어있음을 한 한박자 뒤에 깨닫고서, 그녀는 뒷목을 문질렀다.

 

" 뭐였지... 뭔가가... 꿈? "

 

기억 하려고 하면 할수록 머릿속이 멍- 해져서 구체적으로 떠오르지 않는다.

뭔가의 이야기를.. 들었다.

 

단편적인 단어만 머릿속에 멤돈다.

 

숲의 검. 지하에 잠든 것.

 

 

 

짝 !

 

 

" 읏 .. ! "

 

" 오늘은 꽤 많이 자더군. 여지껏 뜬눈으로 지샜었으면서. "

 

박수를 친 장본인인 가느다란 눈매가 린에게 시선을 한번 흘기고선 장난처럼 말을 흘렸다.

 

 

" 아, 몸은 이제 괜찮아 진 것 같아. "

 

침대포에서 일어나자마자 건네는 말에, 은신처의 주인은 게슴츠레한 눈으로, 일어난 모습을 다시금 흘겨본다.

 

괴물 사냥꾼이자, 이곳의 주인인 와쿠이 루미는 뭔가를 만들고 있었다.

 

한 손에 작은 절구공이를 들고 약초와 가루들을 짓눌러 빻고있는 모습은 왕국의 약제사 같은 모습이었으나, 괴물 사냥꾼인 그녀가 쓰는 약재들은 왕국에서는 물론이거니와 국제적으로도 아슬아슬한 종류(?) 였다는게 결정적인 차이점이었다.

 

 

" 아니, 아직 조금 더 쉬어야해. "

 

 

여튼 약을 빻던 쪽에서는 그리 말하곤 시선을 도로 빻고있는 소재로 돌렸다.

 

 

" 이제 고작 스무 날 정도 쉬었어. 지금 당장 나가면 네가 누누이 말하던 그 ' 날개가 핀 여자 ' 에게 잡히고 말거다. "

" .... 음. 그건... "

 

 

' 날개가 핀 여자. ' 시부야 린이 북서부 분지의 폐허에서 아스카와 후미카에게 일련의 흘러가는 일들의 내막에 대해 전해들으려는 무렵에 습격해온 무리 들 중에 있던 인물이었다. 날개 라는것도 정확히 말하자면 자기가 뿜는것과 같은 '푸른 불길' 을 마치 날개처럼 등에서 피어내고 있었다는 표현이 맞았다.

 

그녀는 가공할 만큼 강대했다. 신의 사도이자, 왕국에서는 비공식으로 두번째의 강함을 자랑하는 니노미야 아스카가 제대로 된 응전도 하지 못한 채 막아내는게 고작일 정도였으니, 아마도 그녀가 직접 그 날개돋힌 여인과 맞붙었다면 어떻게 됬을지 상상도 가지 않는다.

아스카는 자기가 도망칠 수 있게 시간을 벌어줬었고.. 이후에 아무런 소식이 없다.

 

먼 거리를 한달음에 다니는 그녀의 능력 이라면 분명 자기를 따라잡아 무사함을 증명했을 터이지만, 결국 오지 않았다.

그녀는 아마도 . . .

 

 

" 무슨 심각한 고민이지 ? 과도한 흥분은 현 상태에 좋지 않아. "

" . . 아니. 아니야. "

 

시부야 린은 자기 자리 옆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보따리를 바라본다.

보따리 안의 내용물은... 용케도 아무런 냄새도 나지 않았다. 니노미야 아스카가 부탁한 마지막.. 보따리 안에 있는것이 무슨 실마리가 될지는 아직까지 아무런 감도 오지 않는다. 지금은 그저, 몸을 회복시키는데에 전심을 다해야한다는 사실을 다시한번 상기하며, 시부야 린은 마음을 강하게 먹는다.

 

 

" 자, 오늘 끼니다. "

 

" 뭐야 이거 ? 어제보다 색이 칙칙해.... ? "

 

작은 나무그릇을 받아든 린의 표정이 찡그려진다. 그럴 것이, 비주얼 뿐만 아니라 냄새도 무슨 오물에다가 소변을 잔뜩 갈겨놓은 것 같이 불쾌하기 짝이 없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린의 표정을 본 루미의 입고리가 미세하지만 조금 올라간다.

 

" 특식이니까 남김없이 먹도록. "

" 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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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장 마지막부분에서 미쿠와 만나기 전 린의 짧은 이야깁니다.... 라고 쓰고 떡밥 및 복선을 뿌리는 편이라고 읽습니다.

 

린에게 질리도록 들러붙는 소녀의 형상도 이제 대놓고 직접적으로 어필(?) 하고 있는데, 이게 사실 이 캐릭터의 원래 컨셉이었는데 너무 노골적이고 막장으로 갈까봐 여태까지 코스믹 호러느낌이 더 강해왔습니다.

뭐 사실 나올때마다 좀 무시무시한 느낌을 주긴 할거지만 이전보다는 덜해질 예정입니다. 왜냐구요? 그건 다음의 즐거움으로...

 

이제 이어질 7장에서는 드디어 뻥뻥 터집니다 ! 전개적으로나 물리(의미불명)적으로 말이죠 !

 

 

... 아, 후미카요? 

 

노코멘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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