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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IDOLM@STER - RAVEN BLACK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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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12-04, 2016 23:15에 작성됨.

 사장은 그렇게 말했다가 일순 입을 닫았다. 765 프로의 일동은 허망하고 의심스러운 눈으로 사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프로듀서는 그런 흐름에 상관하지 않고 고개를 들어, 아즈사의 뒤에 숨어 바들바들 떨고 있는 유키호를 찾았다. 유키호는 그의 시선을 마치 느끼라도 한 듯 화들짝 놀라며 허리를 숙였다. 깃털속에 머리를 숨기는 타조만큼이나 의미없는 행동이었다. 

 

  "하기와라 유키호님."

 

  "네.. 네엣-"

 

  하기와라 유키호는 깜짝 놀라 그대로 굳어져버린다. 아직 아무말도 하지 않았는데도 반응이 대단하다. 그리고 문자 그대로 온 몸을 바들바들 떨기 시작한다. 그런 그녀의 모습은 일견 짜증스러울 정도로 답답해보이기도 하고, 세상의 모든 폭력들이 죄책감을 느낄 정도로 가련해 보이기도 한다. 고개를 늘어뜨린 한 떨기 수국과도 같은 새하얀 피부의 미소녀에게 낯가림이나 두려움은 꼭 맞춘 옷처럼 그대로 어울린다. 

 

  태생적인 자기비하와 밑바닥 없는 비관 또한 그녀의 기벽 중 하나다. 하지만 때로 억눌린 무언가가 뛰쳐나오는 것 처럼, 마치 겨울철을 견딘 봉우리가 수줍게 개화하는 것처럼 의외의 곳에서, 이상한 타이밍에 뜬금없는 폭발력을 발휘하곤 한다. 그녀가 동료의 등 뒤에 숨어서 프로듀서 쪽은 바라보지도 못한 체 내뱉기 시작한 말들이 바로 그런 케이스였다.  

 

  "프, 프로듀서님이 말하지 않아도 이미 다 알고 있어요오. 저, 노래도 춤도 토크도 못하고 남자분은 무서워하고 개도 무서워하고... 온통 무서운 것 투성이에 붙임성도 없고 완전 구제불능인데 아이돌 같은 걸 하겠다니 분명 주제 넘은 거겠죠오... 저 역시, 저 같은 건 

 

  구, 구멍 파고..."

 

  유키호가 도대체 어디에서 꺼냈는지 알 수 없는 삽을 꺼내 사무실 바닥에 대차게 찔러넣으려는 찰나, 프로듀서의 목소리가 그녀를 막았다. 

 

  "그런데도 당신은 무대에 서더군요."

 

  유키호는 의외의 말에 동작을 멈추었다. 프로듀서는 그녀가 무엇을 하던 아랑곳 하지 않고 말을 이어나갔다. 

 

  "알고 있겠지만, 앞으로 당신의 활동을 응원하고 지원해 줄 팬들의 성비는 아마 70 대 30 정도로 나뉠 겁니다. 당신에겐 유감스럽겠지만 대다수는 당신이 꺼려하는 남자들입니다. 당신이 되려고 하는 아이돌은 그런 남자들과 숨을 쉬듯이 얼굴을 마주해야 하고, 밥을 먹듯이 악수를 해야 하는 일입니다. 분명 앞으로도 괴롭고, 무섭고 힘든 일들이 잔뜩 있을 겁니다."

 

  프로듀서는 거기에서 말을 잠시 멈추었다. 유키호는 이상하게도 몸의 떨림이 조금 진정되는 것을 느끼고 의아함에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프로듀서와 눈을 마주쳤다. 어떻게 된 일인가. 공포심이 느껴지지 않는다. 엄한 말과 질책에 기가 죽을지언정 프로듀서의 두 눈에 그녀를 두렵게 하는 것은 느껴지지 않았다. 

 

  "당신이 남자를 두려워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타당한 일입니다. 사실, 어느정도는 권장하고 싶기까지 합니다. 남자란 무서운 생물이지요. 광팬이 되어버린 남자들은 더더욱 위험합니다. 금방이라도 스토커가 되어 당신이 버린 물건을 뒤지고, 당신의 속옷을 훔치고, 만약 당신이 충분히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면 얼마든지 당신에게 저열한 욕망을 해소하기 위해 폭력을 가하려고 할 겁니다."

 

  프로듀서는 끔찍한 말들을 담담한 어조로 늘어놓다가, 잠시 말을 멈추었다. 그러다가 다시 한 번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 하고는 유키호를 똑바로 보며 말했다. 

 

  "그 모든 것들이 두렵고 괴롭다면 도대체 당신은 왜 아이돌을 하고 싶어하는 걸까요? 아니, 그런 건 아무래도 좋습니다. 당신이 그럼에도 무대에 서겠다고 한다면 저는 하기와라님을 말리거나 그만두도록 종용할 생각이 없습니다. 

 

  분명 당신이 한 말들은 거의 옳은 말입니다. 당신은 춤도 노래도 토크도 뛰어나지 못하죠. 대중을 휘어잡을 카리스마 같은 걸 당신이 몸에 지니게 되는 날은, 제가 단언컨데 영원히 오지 않을 겁니다. 당신에게 있는 건 근거없는 용기와 땅을 파고 들어가 숨을지언정 도망치지 않을 근성 뿐이군요."

 

  유키호는 그 순간 이상한 기쁨 같은 것을 느꼈다. 분명 비판당하고 부정당했지만 프로듀서는 차가운 독설속에서 유키호 자신을 있는 그대로 담담하게 인정해 준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그런 감정을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그녀는 말을 잘 하지는 못했다. 프로듀서는 그런 그녀에게서 시선을 돌려 765 프로의 아이돌들의 면면을 천천히 훑어 보았다.

 

  "... 저는 765 프로와 1년 동안의 계약을 맺었습니다. 그리고 이 1년 동안은 여러분들의 통제 및 육성, 영업과 라이브등 모든 대소사의 결정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사장님께서 계약시에 이미 동의하신 부분입니다."

 

  아이돌들은 놀란 기색으로 사장을 바라보았다. 사장은 그런 그녀들을 향해 헛기침을 한 번 한 다음 고개를 끄덕임으로 그 말의 사실성을 보증해주었다. 프로듀서는 계속해서 말했다. 

 

  "저는 이 1년간의 계약 동안, 여러분을 프로듀스하는 것에 총력을 다할 겁니다. 여러분들이 오디션에 합격할 수 있도록 하고, 공연을 성사 시킬 것이며, 여러분의 진보를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겁니다. 여러분이 저를 꺼려하고, 혐오한다고 하더라도 제가 하는 일이 변하지는 않을 겁니다."

 

  주변은 숨소리 하나 없이 조용했다. 프로듀서의 담담한 말은 마치 뇌리에 그대로 심어지는 것처럼 강렬한 울림이 있었다. 

 

  "제가 여러분에게 바라는 것은 두가지 입니다. 

 

  지시에 따를 것. 그리고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무대에서 도망치지 않을 것.

  

  이것들만 따라주신다면 저는 계약 기간 중 여러분 모두를 연예계의 정점에서 빛나는 '톱 아이돌'이 될 수 있도록 이끌 생각입니다."

 

  765 프로의 아이돌들 사이에서 낮은 탄성이 터져나왔다.  

 

  톱 아이돌. 

 

  허황된 말이었다. 아직 제대로 데뷔조차 하지 못 한 765 프로의 아이돌 들에게는 더더욱 그랬다. 하지만 그것은 그녀들이 추구하는 꿈 자체였으며, 모든 노력의 종착역이기도 했다. 프로듀서가 마치 사소한 공표라도 하듯 덤덤히 선언한 말은 그녀들의 마음에 거칠게 와 닿았다. 하지만 그녀들은 그런 프로듀서의 선언에 환호하거나, 부응하지 않았다. 그렇게 할 수 없었다는 것이 정답일 것이다. 잠시간의 침묵이 이어졌다. 프로듀서는 애초에 그런 것을 기대하지 않은 듯 가만히 입을 다물었다. 침묵을 깬 것은 모두가 걱정하던 인물이었다.

 

  "저 힘내볼게요."

 

  아이돌 타카츠키 야요이는 그렇게 말했다.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빨갛게 부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마치 기죽은 적 없다는 듯 양 팔을 앞으로 모으고 작은 몸에 다시금 힘을 넣어 앞으로 나선다. 그리고 자신을 향해 독설을 내뿜었던 상대를 향해 불안한 시선을 보내었다.

 

  "웃우... 저는 아는 것도 많지 않고 잘 하는 것도 없어서, 프로듀서의 말대로 모두의 발목을 잡는 사람일지도 몰라요."

 

  "타카츠키씨. 우리들 중에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치하야가 그런 야요이를 위로하듯 덧붙였다. 하지만 야요이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모두는 상냥하니까, 지금까지 저한테 그런 말을 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요. 하지만 저, 프로듀서가 저를 위해 그렇게 말해 주셨다고 생각할게요. 아직은 정말로 많이 부족하니까 그러니까 저 훨씬, 훨-씬 더 열심히 할게요. 아이돌 활동도, 사무실 일도 더- 열심히 할게요! 이제부터 타임세일에 간다고 조퇴하는 것도 절대로 안할게요!"

 

  야요이는 모두의 시선에 부끄러워진 듯 얼굴을 붉히며 양 손 깍지를 끼고 살짝 고개를 숙였다. 귀엽고도 당찬 모습에 얼어붙었던 분위기가 풀어져 간다. 주변에 다시금 미소가 번지고 사무실 안에 훈훈한 기온이 감돌기 시작했다. 이오리가 툴툴거리며 한마디를 덧붙인다.

 

  "흥- 야요이가 그렇게 말해도 나는 용서할 생각 없으니까!"

 

  그 분위기와 홀로 벽을 친 듯 무표정하게 바라볼 뿐인 프로듀서를 향해 호시이 미키가 말을 꺼낸것은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미키적으로는말야. 별로 그러고 싶지 않은거야."

 

  호시이 미키는 천연덕스럽게 그렇게 말했다. 일말의 고민도 없이 튀어나온 말이었다. 그리고 그런 자연스러움은 치명적이다. 그녀는 언제나 말하고 싶은 것을 그대로 말하고, 하고 싶은 일을 고민없이 저지른다. 자유분방하게 뻗친 찬란한 금발. 그리고 세상 어떤 것에도 기죽거나 겁먹어 본적이 없는 연녹색 눈동자가 당돌하게 프로듀서를 바라본다. 

 

  "미키, 그렇게 열심히 하고 싶은 마음 없는 걸. 애초에 여기 들어온 것도 바쁜 일 없이 한가해 보여서 느긋하게 지낼수 있을 것 같아서 이기도 하고. 프로듀서가 말하는 톱 아이돌이라는것도 너무 피곤할 것 같고. 미키, 새로운 프로듀서랑은 별로 같이 일하고 싶지 않으려나~. 프로듀서랑은 스타일 안 맞을것 같은 거야. 미키는 여기서 그만두는게 좋을 지도."

 

  그렇게 말하며 미키는 말끝에 아핫- 하고 웃어보였다. 그렇게 말하며 살짝 미소짓는 그녀는 분명 거부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답다. 아름다운 것은 고통을 모르며 때로 잔혹하리만큼 순진무구하다. 

 

  호시이 미키(14세, 중2)

 

  158cm, 44kg. 84-55-82.

 

  "호시이 미키님은 분명 우수합니다. 스타일도 좋고 감각이 뛰어나서 어떤 안무도 남들보다 훌륭하게 소화하더군요. 가창력도 인정할 만 합니다. 현재로서 당신은 제 기대치를 넘어서는 기량과 잠재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제와서 칭찬해봐도 미키, 마음 돌릴 생각 없는 거야."

 

  프로듀서는 그렇게 말하는 미키를 가만히 마주보았다. 그러다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아쉽군요."

 

  "응?"

 

  의외의 말에 반문하는 미키를 향해 프로듀서는 편안하고, 담담하게 저주의 말을 내뱉기 시작했다.

 

  "그런 당신의 매력과 잠재력을 세상 사람들은 영원히 모를 겁니다. 당신이 반짝반짝 빛나는 예쁜 의상을 입고, 모두 반하게 할 만한 훌륭한 무대를 펼쳐도 누구도 당신의 이름을 기억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그만그만한 성취에 만족하고 길거리에 지나다니는 양아치 한둘이 귀엽다며 칭송해주면 그걸로 그만인 삶이 계속해서 이어지겠군요. 

  당신이 바라는데로 말입니다."

 

  "미키는 그런 거 바란다고 말한 적 없어!"

 

  미키는 그렇게 말하며 언성을 높였다. 프로듀서의 입가에 아주 잠깐, 아주 약간의 표정변화가 있었던 것을 눈치챈 사람은 유감스럽게도 아무도 없었다. 그는 살짝 흥분한 미키를 향해 그녀가 거부할 수 없는 미끼를 던졌다. 

 

  "저 역시 당신이 그런 한심한 삶을 살아가는 것을 바라지는 않습니다. 그러니까 제가 한 발 양보해서 제안하겠습니다. 내기를 하죠. 만약 당신이 이긴다면 당신이 원하는 것을 무엇이든 한 가지 들어드리겠습니다. 어떤 터무니 없는 일이라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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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주셔서 감사할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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