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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IDOLM@STER - RAVEN BLACK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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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12-04, 2016 11:24에 작성됨.

상당한 장편이 될것 같습니다. 영혼과 애정을 담아 쓰겠습니다

앞으로 잘부탁드려요 일단은 연재량 전량을 투척한이후 

일일 10kb 정도 연재하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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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_ 그 사람의 처음

 

  765 프로덕션의 사무실은 차도 바로 옆의 오래된 건물에 삼층에 있었다. 언제 고장났는지 기억하는 사람도 없는 엘리베이터는 수리될 기약도 없이 방치되어 있다. 아마도 이곳에 출근하는 아이돌 후보생들은 계단을 통해 다니는 것을 거의 당연하게 여기고 있을 것이다. 계단은 누군가가 매일 시간을 들여 청소하는 듯, 먼지하나 없이 반짝반짝 깨끗하다. 

 

  남자가 그 계단을 오르기 시작한 것은 아직 해가 떠오르기 한참 전, 새벽이라는 말보다 심야라는 말이 더 어울리는 시간이었다. 겨울의 막바지에 접어들 무렵, 한낮의 기온은 어떻더라도 아직 새벽 날씨는 쌀쌀하여, 남자가 내뱉는 숨결마다 하얀 김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훤칠하게 큰 키의 남자는, 곧게 뻗은 허리와 일견 오만해 보일 정도로 당당한 걸음걸이를 가지고 있었다. 추위에도 불구하고 눈하나 찌푸리지 않는 차가운 표정이 걸쳐진 얼굴은 마치 얼음으로 깎아낸 조각상 같다. 

 

  남자는 이윽고 765 프로의 철문 앞에 섰다. 문고리를 당겨보았지만 열리지 않았다. 아직 사무원조차 출근하지 않은 이른 시간이다. 하지만 남자에게는 당황한 기색이 없었다. 남자는 주머니 속에서 검은 머리핀 하나를 꺼내 문고리에 밀어넣었다. 일련의 동작은 물흐르는 듯 세련되게 이어져, 철문의 잠금이 해제되는데는 2초가 체 걸리지 않았다. 남자는 그대로 문을 열고 사무실 안으로 들어섰다. 

 

  남자는 사무실 초입에 서서 잠시 내부를 둘러보았다. 응접실, 탕비실, 사장실, 몇 칸 되지 않는 업무 데스크는 사무실이라기 보다는 여느 가정집의 모습을 상기시켰다. 나란히 걸려있는 칫솔. 한쪽 벽면을 차지하고 있는 화이트보드에는 스케쥴이 적혀 있었는데, 조촐하다 못해 시원할 정도의 공백이 여백없이 들어차 있었다. 남자는 그것에 대한 어떠한 감상도 표현하지 않고 바로 앞 비어있는 데스크에 앉았다. 그리고 파일철 속에서 서류 뭉치를 찾아 눈으로 읽어내려가기 시작했다. 

 

  765프로 소속 아이돌들의 신상 상세와 썩 쓸만하다고 생각하기 힘든 프로필 사진들이 들어차있다. 남자는 미동도 없이 한 참을 서류를 바라보았다. 

 

 

 

 

  "새로운 프로듀서라는게... 그 사람인가."

 

  담배를 비벼 끄며 입을 연 남자는 마치 기자의 스테레오타입같다. 기병모가 잘 어울리는 남자는 말꼬리를 흐리는 방식으로 우려를 표했다. 반면 건너편에 앉은 중년의 남자는 의도를 알 수 없는 애매한 미소만 띄우며 딴청을 피웠다. 

 

  "그래. 오토나시군과 아키즈키군 만으론 손이 부족하던 참이라 잘 된 셈이네. 유능한 사람이야."

 

  사장 타카키 준지로의 말에는 굳은 신념에 의한 묵직한 떨림이 있었다. 하지만 그의 오랜 친구 요시자와는 그 말에 완전히 동의하지는 않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 961 프로도 감당하지 못한 사람이야. 유능한 사람이라는 건 전적으로 동의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그가 자네나 다른 아이들과 잘 해내갈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기 어렵군."

 

  "나도 그렇게 생각하네."

 

  사장은 의외로 고개를 끄덕이며 금방 수긍했다. '그런데도?' 라는 친우의 의문섞인 표정을 잠시 마주보다가 사장은 돌연 껄껄 웃음을 터뜨렸다. 

 

  "우리가 좀 더 젊었을 때는 말도 안되는 곳에서 터무니 없는 도박을 일삼지 않았나. 이제 나도 자네도 나이가 들었지만, 나는 이제 내 사업과 일생을 걸고 제일 큰 도박판을 한 번 벌여보려 하네. 우리 아이돌 제군과 765 프로의 미래를 건 건곤일척 말일세."

 

  요시자와는 방금 담배를 꺼버린 것을 후회했다. 그리고 주의깊은 눈으로 눈 앞에서 껄껄 웃고 있는 친우를 바라보았다. 사장은 잠시 후, 다소 진지해진 눈빛으로 말했다. 

 

  "그리고 결과가 어떻게 되든 모든 책임은 사장인 내가 지면 될 일일세. 너무 걱정하지 말고 앞으로 어떤 일이 있던 좋은 기사나 좀 더 많이 써주게. 내 부탁함세."

 

  "그야 물론 그러긴 하겠지만..."

 

 

 

 

 

 

  1_ 심장없는 양철 나무꾼

 

  하늘이 엷은 빛으로 밝아져간다. 흑백의 거리에 채도가 더해져 형상을 더해갔다. 하지만 이제 겨우 동틀 무렵의 이른 시간이다. 765 프로의 한 명 뿐인 사무원 오토나시 코토리의 이른 출근은 대부분 이 시간에 이루어진다. 추위에 살짝 등을 굽히고, 연신 양 손을 비비며 총총걸음으로 건물에 들어선 코토리는 만년 고장인 엘리베이터 앞에서 조금 투덜거린 다음 한 걸음 한 걸음 계단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철문 앞에 선 그녀는 외투의 주머니란 주머니는 전부 뒤져, 열쇠를 찾아내고, 열쇠를 찾느라 떨어뜨린 온갖 물건들을 주섬주섬 다시 챙긴 다음 열쇠구멍에 열쇠를 밀어넣었다. 그리고 문이 열려있는 체라는 것을 알아챘다.

 

  "아차- 또 문 잠그는걸 잊어먹었나..."

 

  그녀는 별 의심도 없이 활짝 문을 열었다. 창가를 통해 비치는 햇살이 쏟아져 들어와, 따스한 온기가 밀려나온다. 그녀는 겹겹이 껴입은 겨울옷을 해체하듯이 벗어 걸어놓고는 창문을 바라보며 기지개를 쭉- 하고 핀다음, 왠지 합장하는 자세가 되어 떠오르는 해를 향해 작은 소리로 기원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올해야말로... 올해야말로..."

 

  신령이라는게 정말로 있다면 들어주지 않을 수 없을 만큼 간절한 기원이 끝난 다음에, 온열기를 켜고 커피 포트에 물을 올린 다음, 숨을 한 번 쭉 들이마셨다가 내쉬고,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 컴퓨터의 전원을 넣었다. 그녀가 사무실의 이상을 눈치 챈 것은 그로부터 5분 이상 지난 뒤였다. 사락- 하고 서류 넘기는 소리를 들은 탓에 깜짝 놀란 코토리가 벌떡 일어났고, 건너편 데스크에서 미동도 없이 서류에 시선을 주고 있는 외간 남자를 눈치챈 것이다. 

 

  "누, 누누누누구십니까!!"

 

  "저라면 신경쓰지 말고 하시던 일을 계속하시면 됩니다."

 

  남자는 그쪽을 바라보지도 않고 계속 서류에 시선을 못박고 있었다. 

 

  "네에... 가 아니라! 누구십니까? 어떻게 들어오신 거예요?"

 

  남자는 거의 긴장감을 유발할 정도로 느린 속도로 보고 있던 서류철을 덮고 코토리를 마주 바라보았다. 얼음같은 무표정, 불안정한 촛점 때문에 코토리는 서로 마주보고 있었지만, 그 남자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남자는 잠시동안 코토리를 빤히 바라보았고, 코토리가 새빨개져서 무언가를 외치기 직전에 말하기 시작했다. 

 

  "당신이 연중 휴가없이 전일 당직근무를 할게 아니라면 사무실의 보안 상태에 대해 생각해 보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오토나시님."

 

  "네?"

 

  "출입구의 잠금 장치는 하나 밖에 없더군요. 몰래 침입하는 것은 손쉬운 일이었습니다. 제가 만약 악성 열성팬이나 가십기자. 혹은 골방에서 혼자 죽는 것 대신 다음 날 신문 일면에 크게 게제되는것이 일생의 소망인 정신병자라면 당신이 깜짝 놀라는 것 정도로 끝나지는 않을 겁니다."

 

  남자의 낮은 목소리는 마치 강제로 집중을 강요하는 듯, 귀를 파고는 듯 하여 코토리는 잠시 그것에 홀려 있었다. 하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는 고개를 휘휘 젖고 양손을 꼭 모아쥐고 외치듯이 말하기 시작했다. 

 

  "지금 당신이 완전 그런 사람으로 보이거든요? 어서 나가지 않으면 겨겨겨겨, 경찰을!! 부, 부브를테니까욧!!"

 

  이런 말을 거의 해본적이 없는 코토리는 자신이 말하면서 자신의 말에 압도당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무심한 눈으로 바라보던 남자는 더 이상 별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슬며시 고개를 내려 다시 서류철을 쳐다보기 시작했다. 참다못한 코토리가 전화를 들어 떨리는 손으로 무언가 번호를 누르기 직전, 문간에서 들려온 목소리가 그녀의 행동을 막았다. 

  

 

  "오토나시군, 오토나시군! 그럴 필요는 없네!"

 

  "사장님!~"

 

  코토리는 반쯤 울먹이며 문간에 나타난 사장 타카기 준지로에게 뛰어들듯 달려갔다. 울상이 되어 볼을 잔뜩 부풀린 코토리와 슬쩍 일어나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남자를 번갈아 바라보던 사장은 다음 순간 천역덕 스럽게 말했다.

 

  "소개하지. 여기 있는 이 사람이 앞으로 우리 765 프로의 미래를 책임질 새로운 프로듀서라네. 나는 앞으로 대부분의 일을 그의 소관에 맡길 생각이니, 그렇게 알고 그를 많이 도와주도록 하게. 응? 오토나시군, 왜 그러나?"

 

  "새로운 프로듀서라고요? 저 사람이?!"

 

  "물론 그렇다네 오토나시군."

 

  코토리는 딱딱한 동작으로 몸을 돌려 765프로의 새로운 프로듀서를 바라보았다. 기대하지 않은 신인은 그녀의 경악한 시선을 완벽한 무시로 되돌려 주었다.

 

 

 

 

                                       아이돌, 그것은 소녀들의 영원한 동경

 

                                         하지만 그 꿈에 닿을 수 있는 것은 

 

                                           선택받은 극소수의 소녀들 뿐

 

                                   권모와 술수, 피와 땀위에 지어진 금자탑을

 

                                 한 남자와 12명의 소녀들이 오르기 시작했다.

 

 

 

  아이돌 아마미 하루카는 기나긴 출근길의 한복판에 있었다. 편도로만 2시간 이상이 걸리는 장거리 통근을 매일 반복하는 것은 어떤식으로 표현한다고 해도 고역임에 분명하다. 다행스럽게도 그렇게 많이 붐비는 노선은 아니었지만, 그녀의 천성 탓에 끝까지 앉아서 가는 일은 극히 드물었다. 

 

  "할머니! 이쪽에 앉으세요!"

 

  "안 그래도 되는데. 고맙구먼."

 

  감사의 인사와 그에 보답하는 미소는 그녀가 지닌 아이돌에의 자질의 정수를 그대로 보여주는 듯 하다. 머리 위에서 춤추는 듯 흔들리는 두개의 리본과 매 걸음걸음 좀 위태로운 활기를 뿜어내는 그녀의 전신은 흔들리는 전철의 진동에 맞추어 리드미컬한 율동처럼 부드럽게 흔들리고 있었다. 귀에 꽂은 이어폰에서 들려오는 노랫소리에 맞추어 허밍하는 그녀의 모습은 이미 이 노선으로 통근하는 사람들에게 하나의 아름다운 풍경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 살짝 넘어지는 나는 머메이드 '

 

  그리고 바로 그 시각, 프로듀서는 사장과 마주앉아 바로 그녀의 프로필을 보고 있었다.

 

  아마미 하루카(16세, 고1)

 

  신장 158cm, 체중 45kg, 83-56-80

 

  "장신에 날씬한 몸매는 분명 어필할만한 구석이 있습니다. 또래에 비해 의외로 가슴이 크기 때문에 이점 또한 세일즈포인트로 삼는다면 그럭저럭 호응이 있을 겁니다. 

  별다른 특징은 없지만 특이한 것에 부담을 느끼는 수요층에 어필할 수 있는 평범한 외모도 강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덜렁이 컨셉은 다소 고전적이지만, 여전히 유효한 포인트라고 생각됩니다."

 

  "그게, 사실 아마미군의 덜렁거림은 설정같은게 아니라..."

 

  "그리고, 죄송하지만 PC에 있던 그녀의 공연 영상을 몇가지 먼저 보았습니다."

 

  "에엣-? 비밀번호가 걸려 있었을텐데!"

 

  남자는 깜짝 놀란 코토리의 비명같은 태클을 품위있게 무시했다. 그리고 다른 폴더에서 발견한 그녀의 비밀스러운 취향에 관한 것도 말하지 않았다. 코토리가 혼자 새빨게지건 말건 남자는 할 말을 계속했다. 

 

  "우선 아마미 하루카님의 보컬로서의 역량은 절망적입니다. 근처 시내의 노래방에만 가도 그녀보다 훨씬 더 잘 부를수 있는 여고생을 찾는 것은 쉬운 일일겁니다. 성장 가능성 또한 높게 보기 힘들군요. 음색 자체에 대중을 좌우할수 있는 카리스마가 없습니다. 기술적인 것은 더 이상 말할 필요도 없겠군요. 

 

  댄스 실력은 그럭저럭입니다. 발군의 체력과 근성은 평가할만 하지만 그 외에는 특출날 것이 없군요. 사장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자주 넘어지는 것이 컨셉이 아니라면, 균형감각과 순발력 또한 일반인 이하라고 판단하는 것이 타당하리라 여겨집니다."

 

  새로운 프로듀서는 그의 담당 아이돌에 대한 독설을 기탄없이 털어놓았다. 뒷모습 뿐인 사장이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지 알 순 없었지만, 그의 다소 불편한 목소리가 그 기분을 짐작하게 했다. 

 

  "이보게. 유능하다고 소문이 자자한 자네라면 이미 알 것 같아 이런 말은 하고 싶지 않지만, 아이돌의 자질이나 매력은 자네가 말한 것들로만 이루어지는게 아니야. 아직 아마미 군에 대해 다 알지 못한체 자네가 위험한 선입견을 가지게 되는건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드는 군."

 

  프로듀서는 그런 사장을 잠시 마주보다가 침착하게 말했다. 

 

  "저는 아마미 하루카님이 지금까지의 오디션에서 전패한 이유에 대해 제 나름의 생각을 말씀드리는 것 뿐입니다. 그리고 이 프로필 사진."

 

  프로듀서는 창날처럼 손가락을 뻗어 하루카의 프로필 사진을 가리켰다. 사장은 왠지 자신이 창에 찔린 것 같은 뜨끔한 표정이 되어 프로듀서의 다음 선고를 기다렸다.

 

  "사무실에 현재 운용가능한 법무팀이 있다면 해당 스튜디오를 당장이라도 고소 하는 편이 좋겠습니다. 형편 없습니다. 어느 누구에게도 어필할 수 없는 쓰레기같은 사진입니다. 사장님이 765 프로의 향후 컨셉을 서커스단으로 정해두신게 아니라면 대단히 부적합하다고 생각되는군요."

 

  사장은 두 손을 모아쥐고 어디 시선 둘 곳이 없어 괜히 먼 곳의 화분을 바라보고 있었다. 남자는 지체없이 말을 이어나갔다. 사장은 몇마디, 그의 소중한 아이돌 제군을 위한 변명을 하려고 했으나 이내 말문이 막혀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했다. 

 

 

 

 

  가희, 보컬리스트 키사라기 치하야의 무대는 마치 엄숙한 제례와도 같다. 기름에 찌든 환풍구의 팬이 끈쩍한 담배연기를 빨아내는 소리가 허접스러운 음향 장비를 압도하는 어느 낡고 지저분한 지하의 라이브 바. 그 스테이지 중앙에 그녀는 무표정한체, 엄숙하고 고고하게 서서 마치 주변의 소란스러운 분위기와는 전혀 관련 없는 다른 차원에 서 있는 것 처럼 노래하기 시작했다. 

 

 ' 계속 잠들어 있을수 있다면 이 슬픔을 잊을 수 있겠지. '

 

  한계까지 단련된 미성이, 고도로 계산된 기술이 군중의 무관심과 지루함 속에 흩어져 담배연기와 섞여 어딘가로 흘러나가 버린다. 보통, 이런 상황에서 흔들리지 않고 노래할 수 있는 가수는 없다. 하지만 그녀의 눈에 비치는 것은 머나먼 피안인가, 들리는 것은 온통 자신의 노래뿐인가. 그녀의 노래에 흔들림은 없다. 막간의 시간에 작은 박수소리가 터져나온다. 폭풍 속에서 작은 배에 의지한 표류자라도 된듯, 마이크를 양 손으로 꼭 잡고 치하야는 간주의 고독을 견뎌나간다. 검푸른 머리카락이, 가련한 몸매와 어울려 버드나무처럼 조용히 흔들리는 그녀의 모습은 마치 영원한 겨울의 성에 머무르는 고독한 공주인가.

 

  키사라기 치하야(15세, 고1)

 

  162cm, 41kg. 72-55-78

 

  "저 정도 신장에 저 체중이라면 2차성징을 건너띈것 같은 체형도 어느정도 설명이 되는 군요. 쿨한 외모로 커버할 수 있는 정도가 아닙니다. 아이돌은 커녕 놀림거리가 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의상이나 어느 정도의 조작을 통한 이미지 메이킹을 고려할 수 있겠습니다. 나중에는 약물이나 수술을 고려할 수 있겠죠."

 

  "... 자네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지 나로서는 잘 알수가 없군. 부디 자네는 자네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었으면 좋겠네."

 

  언짢은 기색의 사장의 날 선 지적에 남자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 그리고 성가신 방해가 없어지자 마자 말을 이어나갔다. 

 

  "제 일에 대한 것은 스스로 어느정도 파악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계속하자면, 신체적 절대적 불리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활용가능한 자원이라고 생각합니다. 우선 그녀가 아주 뛰어난 보컬리스트라는 점을 들 수 있겠군요. 765프로 뿐만 아니라 연예계 전체를 비교대상으로 놓는다해도 그녀 이상으로 노래할 수 있는 자원은 없을 겁니다. 활용처가 제한적이라는 것을 빼놓는다면 말입니다. 

 

  그리고 댄스 실력이나 무대장악력 또한 뛰어난 편입니다. 이런 키사라기 치하야님이 어째서 이전 대부분의 오디션에서 떨어져 왔는지에 대해서는 지금 가지고 있는 정보로는 파악하기 어렵군요."

 

  "에엣- 그, 그건."

 

  간식거리랑 차를 내온다는 핑계로 이야기를 엿듣고 있던 코토리가 반사적으로 무언가를 말하려다가 입을 틀어막았다. 본능적인 무언가가 프로듀서에게 자세한 말을 하는 것을 강하게 막았다. 프로듀서는 잠시 그녀에게 의심스러운 시선을 보내다가 이내 고개를 돌렸다. 

 

  확- 하고 사무실의 문이 열린 것은 바로 그때였다. 문을 열고 들어선 것은 한명의 소녀였다. 

 

  "웃우-! 안녕하세요!"

 

  활력이 넘치다 못해 주변을 물들일 듯 한, 당분을 잔뜩 머금은 열대 과일처럼 넘치는 생명력으로 소녀는 방안의 모두를 향해 허리를 숙이며 동시에 양 팔을 뒤로 뻗어 기운넘치게 인사했다. 떠오르는 태양의 그것과 똑같은 색의 오렌지빛의 급류와도 같은 머리카락을 좌우로 귀엽게 틀어맨 소녀의 눈동자는 아주 작은 감정에도 전력을 다해 반응할 준비라도 하듯, 별빛과도 같이 반짝이고 있다. 마치 뛰어오르는 듯 한 활발한 스탭으로 테이블에 다가온 소녀는 다시 한 번. 

 

  "사장님! 안녕하세요!"

 

  "오오. 타카츠키군. 좋은 아침이네. 오늘도 아주 활발하구만!"

 

  에헤헤- 하고 웃어보인 다음, 765 프로의 아이돌 후보생 타카츠키 야요이는 똑같은 인사를 코토리에게도 건냈다. 그리고 한쪽 구석에서 그녀에게 조용히 시선을 던지고 있는 프로듀서를 향해 시선을 보내었다. 

 

  "엣- 그러니까... 처음 뵙는 분..."

 

  "타카츠키군. 소개하지. 이 사람이 바로 우리 765 프로의 새로운 프로듀서라네."

 

  다음 순간 야요이의 눈에 광채가 가득 들어찼다. 약간 까치발을 하고서 마치 프로듀서에게 달려들기라도 하듯 다가온 그녀는 다소 흥분한 듯 기운이 넘치는 목소리로 말했다. 

 

  "와아-! 기뻐요! 처음 뵙겠습니다! 프로듀서님!"

 

  그렇게 말하며 양손을 앞으로 모아쥔 야요이를 바라보던 코토리가 코피를 정리하러 잠시 뒤로 돌아섰다. 프로듀서는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천천히 말했다. 

 

  "타카츠키 야요이님."

 

  "에헤헤- 님, 이라니. 저 그렇게 불려 본 적은 별로 없을지도! 어른스럽게 불러주셔서 감사하지만 그래도 야요이- 라고 불러주세요. 매번 그렇게 길게 부르려면 불편하기도 하고..."

 

  야요이는 수줍은지 몸을 배배 꼬며 그렇게 말했다. 프로듀서는 그에 대한 감상을 말하는 것을 거부했다. 그는 아무런 표정 변화도 없이 야요이를 향해 말들을 내던지기 시작했다. 

 

  "프로듀서로써 타카츠키님에게는 모든 면에서 좀 더 많이 노력해 주셨으면 합니다. 지금의 당신은 765 프로에서 가장 떨어지는 자원입니다. 거의 발목을 잡고 있는 정도라고 생각되는군요."

 

  방 안의 공기가 순식간에 얼어붙는다. 사장과 코토리는 그런 그를 말리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야요이는 사고가 마비 된듯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어색한 웃음마저 짓는 것을 포기한 그녀는 이내 고개를 떨구었다. 

 

  ' 어떤 씨앗이라도 심으면 싹을 틔워요 '

 

  가난한 형편에 마련하지 못해, 사장의 배려와 공금으로 마련한 그녀의 휴대전화가 분위기를 더더욱 나락으로 떨어뜨리며 울렸다. 

 

  타카츠키 야요이(13세, 중1)

 

  145cm, 37kg. 72-54-77

 

  "당신에게는 현재 다른 동료들과 비교해서 뛰어나다고 할 만한 무언가를 찾기 어렵습니다. 굳이 한가지를 들자면 어린 나이와 거기에서 나오는 천연덕스러운 순수함 등이 있겠습니다만, 그런 것을 매력으로 앞세우자면 후보생들을 유치원에서 찾아야 하겠죠. 

 

  어떤 노래던 자기식으로 부른다는 건 언뜻 개성이라고 말할수도 있겠지만, 저에게는 노래에 대한 이해도가 전혀 없는 것으로 느껴집니다. 당신이 제대로 부를 수 있는 건 당신에게 주어진 노래들 뿐이죠. 춤은 평균적인 수준이지만, 역시 특이할 것은 전혀 없군요.

 

  타카츠키님의 불우한 가정환경을 고려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계속해서 회사의 잡무나 가장 노릇에 시간을 다 빼앗기게 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무엇이 정말로 중요한지에 대해 좀 더 파악하도록 하세요."

 

  "프로듀서!! 이제 그만하세요!"

 

  코토리가 반쯤 울 것 같은 얼굴이 되어 두 사람의 사이에 끼어들었다. 프로듀서는 그런 그녀에게는 시선조차 주지 않고 야요이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야요이는 고개를 떨구고 있다가 흘러나올 것 같은 눈물을 두 손으로 얼른 훔쳐내었다. 그리고 금방 눈물이 날것 같은 눈으로 웃어보였다. 

 

  "... 고맙습니다! 프로듀서! 저, 전화 좀 받고 올게요!"

 

  '반짝반짝여요. 계속- 계속-'

 

  전화는 계속해서 울리고 있었다. 야요이는 뛰쳐나가듯 사무실을 뛰어 나갔다. 코토리는 팔을 모으고 몸을 바들바들 떨다가, 이내 그 뒤를 쫓아 밖으로 달려나갔다. 그리고 테이블에는 두 사람만이 남았다. 프로듀서는 가치없는 무기물을 보는 것 같은 시선으로 야요이가 사라지는 방향을 보다가, 이내 사장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무거운 침묵이 한 참 동안 계속되었다. 그 침묵을 깨트린 것은 프로듀서였다. 

 

  "제가 파악한 바로는 오늘 특별한 스케쥴이 있는 인원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전달하고 싶은 것이 있으니 모두를 사무실로 불러 모아주십시오."

 

  사장의 심기는 뒷모습만으로는 추론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프로듀서의 요청에 답하는 목소리에는 깊은 우려와 노기가 담겨 있었다. 

 

  "그렇게 하지."

 

  그러나 사장은 그렇게만 말했다. 

 

 

 

 

  기품이라는 단어를 그대로 형상화한다면 지금 이 자리, 장식없이 황량한 방 한 가운데에 앉아 조용히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한 소녀의 모습과 같을 것이다. 초라한 나무 의자에 앉아, 흠잡을 거리만 찾고 있는 면접관들 앞에서도 당당하게 허리를 세운 소녀의 모습은 그 어떠한 것에도 굽히지 않는 고고한 왕녀. 어깨를 덮고도 허리 아래께까지 풍성하게 늘어뜨린 풍성한 은발은 주변의 풍경마저도 고적한 왕성처럼 은은하게 물들이고 있었다. 총명한 두 눈동자는 결코 흔들리는 일 없는 자줏빛 아메지스트처럼 빛난다.

 

  마침내 그녀의 차례가 다가왔다. 765 프로의 아이돌 시죠 타카네는 자신을 호명하는 면접관의 목소리에 자리에서 우아하게 일어났다. 그리고 그녀를 바라보고 있는 세 명의 면접관을 향해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평안하신지요. 765 프로의 시죠- 타카네입니다. 아이돌이 되려는 자, 어떠한 곳, 어떠한 상황이라도 대처할 수 있도록 대비하는 법. 오늘은 어떤 질문이라도 성심 성의껏 답하려고 하니, 부디 부담갖지 마시고 마음껏 질문하시기 바랍니다."

 

  느릿하면서도 울림이 강한 분명한 어조로, 타카네는 그렇게 말했다. 면접관들은 잠시동안 그런 그녀를 어떻게 받아들여야할지 내적 갈등에 시달리다가, 이내 해야할 일을 하기로 결정했다. 

 

  "시죠씨의 프로필을 읽어보았습니다만, 비어있거나 비밀이라고 쓰여 있는 것이 대부분이라, 일단 기본적인 것부터 질문하죠. 음- 일단 출신지부터 알 수 있을까요?"

 

  타카네는 그렇게 물어오는 면접관과 시선을 맞추었다. 그리고 천천히 말하기 시작했다. 

 

  "... 대단히 죄송하지만, 방금 하신 질문에 대해서는 답을 드릴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면접관은 당황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가족관계라던가 그 외의의 것들도 거의 쓰여있지 않은데요. 그 부분은 알려줄수 있나요?"

 

  "그렇군요...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것또한 탑- 시크릿입니다."

 

  "그렇다면 더 이상 면접을 진행하기 어려운데요."

 

  면접관들의 얼굴에 그나마 남아 있던 웃음기마저 사라졌다. 타카네는 다소 날선 면접관의 답변에도 전혀 동요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녀는 은은한 미소를 띄며 면접관들을 향해 말했다. 

 

  "뱃놀이를 하려는 자, 하늘에 떠 있는 달과 수면에 비친 달 그림자, 그 두개의 달 중 어떤 것이 진짜인가를 가지고 내기를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풍류를 아는 자라면 어느 누구에게나 비밀이 하나, 혹은 백개쯤은 있는 법이지요."

 

  면접관들의 얼굴에 허탈한 웃음이 번졌다. 그것이 그녀가 그날 면접에서 할 수 있었던 마지막 말이었다. 

 

  시죠 타카네(17세, 학력불명)

 

  169cm, 49kg. 90-62-92.

 

  "출신지 불명, 학력 불명, 가족관계 불명, 과거사 불명. 확실한 것은 765 프로에서는 그녀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는 것 정도로군요."

 

  "아니, 그게, 그녀가 굳이 비밀로 하고 싶어하는 것들을 캐물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서 말일세. 그리고 그런 부분이 미스테리어스한 매력으로 작용할거라는 계산도..."

 

  프로듀서는 고개를 저었다. 

 

  "소속 아이돌의 신상마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상황에서 그것을 컨셉으로 포장하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만약 시죠 타카네님이 어떤 불법적인 장애나 밝혀지면 치명적일 수 있는 과거사를 숨기기 위해 함구하고 있는 거라면 분명 나중에 큰 문제가 될 겁니다. 현재 정보수집 능력에 커다란 결함이 있다고 밖에 생각할 수 없군요."

 

  프로듀서는 거기에서 잠시 말을 멈추고 무심한 눈으로 사장을 빤히 바라보았다. 사장은 거기에 담긴 우회적인 비난의 기색을 담담히 받아들였다. 

 

  "수상하기 짝이 없는 정보의 결여를 제외하고는 시죠 타카네 님에게 결정적인 단점은 없다고 하겠습니다. 범용성만을 생각한다면 765 프로에서 가장 뛰어난 자원이라고 판단됩니다. 가창력, 신체 조건 모두 평균 이상으로 높게 평가할 만 합니다. 말씀하신 신비주의 역시 외모와 맞물려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군요. 하지만."

 

  프로듀서는 타카네의 프로필을 주의깊은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녀에 대해서는 다른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조사하도록 하겠습니다."

  

  

 

  길치가 바라보는 세계는 일반인의 그것과 명확한 차이가 있다. 스쳐 지나온 풍경에 대해 무관심한 것이 아니라, 관심을 가지는 포인트가 다른 것이다. 나뭇잎 끝에 매달린 이슬 한 방울에 엷은 햇살이 비출 때. 회색 도시의 드문드문한 녹음 사이로 털갈이를 마친 어린 새들이 첫 비행을 준비하는 순간. 지평선 너머에서 새털같은 구름이 등선을 타고 날아와 태양에 살짝 드리우는 순간. 그 작은 찰나들에 온 신경을 쏟느라 목적지와 앞으로의 진로 같은 사소한 문제들에 신경을 쓸 틈이 없는 것이다. 

 

  오고가는 사람들의 감정이 담긴 면면을 모두 품어내는 자애로운 미소를 가진, 이 여유만만한 길치는 사무실에서 약 10분도 떨어지지 않은 거리의 촬영장에서 치렁치렁한 드레스 차림으로 복귀하는 길이었다. 하염없이 걷기 시작한지 20분은 훨씬 지난 뒤에야 그녀는 자신이 한 번도 본적 없는 어느 거리 한복판에 덩그러니 놓여진 것을 깨달았다. 

 

  "그런데... 도대체 여기는 어디일까요?"

 

  그녀는 곤란하다는 듯 한 손을 뺨에 대고, 마치 그렇게 하면 이 면식없는 거리에 이정표가 될만한 것을 찾을 수 있기라도 한 듯, 눈을 가느다랗게 뜨고 주변을 살펴보다가 이내 포기하고야 만다. 

 

  "그렇지. 여기선 역시 택시를 타고..."

 

  뒤늦게 마음을 정한 765 프로의 아이돌 미우라 아즈사는 그 즉시 마음속에 남아있던 한 조각 걱정마저 훌훌 털어버렸다. 그리고 마음이 가는 데로 곧장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택시를 타고서라도 업무에 곧장 복귀하겠다는 결심은 순식간에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거리는 맑음 색, 마음까지 맑아져'

 

  강가 어느 공원에서 들려오는 노랫소리. 흐르는 강물과 부딪혀 높은 겨울 햇살이 무지개색으로 산란하고, 새소리와 가족과 함께 소풍을 나온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모두 하나가 되어 음악이 되는 순간, 아즈사는 매번 그렇듯이 정했던 목표를 잊어버리고 다시금 헤메이곤 했다. 그리고 어느 틈에 이 태평한 아가씨는 그 아름다운 풍경과 자연스럽게 하나가 되어 시간가는 줄을 모르고 머무르고 마는 것이다. 세상 만물에 머무는 신령이라는 것이 정말로 있기라도 한 듯, 그녀는 지금 이 순간 이 공원에서 여신이 되어 있었다. 

 

  미우라 아즈사(21세. 전문대졸.)

 

  168cm, 48kg. 91-59-86.

 

  "다른 모든 것을 차치하더라도, 나이가 너무 많습니다. 아이돌로 데뷔하는 것 자체가 어느정도 무리라고 생각됩니다. 

  그렇다고 당장 솔로 유닛으로 활동할 만큼 경쟁력이 있다고 보기도 어렵습니다. 신체적 조건은 압도적으로 좋지만, 그런 장점이 본인의 성격과 완벽하게 배치되고 있어, 어느 쪽으로도 컨셉을 확립하기 힘듭니다. 그건 그렇고, 제 기억으로는 미우라 아즈사님이 스케쥴을 마치고 복귀하기로 한 시간에서 벌써 30분 이상 지난 것 같은데."

 

  사장은 짐짓 안경을 고쳐쓰며 헛기침을 했다. 

 

  "음-. 미우라군이 매번 조금씩 늦어지는 것은 개인적으로는 조금 이해를 해주었으면 하네. 그녀만의 특수한 사정이 있어서."

 

  "아시리라고 생각합니다만 연예계는 그런 특수한 사정을 고려해줄만큼 녹록한 곳이 아닙니다. 이런 식의 시간 미엄수는 결국 펑크로 이어지기 마련인데. 지금으로써는 미우라님의 프로의식을 높게 평가할 수는 없겠군요. 이런 식의 미온한 태도는 다른 장점들을 전부 퇴색시키는 치명적인 단점입니다."

 

  프로듀서는 담담한 어조로 아즈사에 대한 파멸적인 첫인상을 선고했다. 사장은 이제는 왠지 식은땀이 흐를 것 같다고 생각했다. 사장이 아즈사에 대해 몇 마디 변명을 하려던 찰나, 사무실 바깥의 계단통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뭔가가 우당탕탕 하고 요란스러운 소리가 나더니 철문이 떨어져 나갈 기세로 거칠게 열렸다. 그리고 이어서 사무실에 들어선 것은 한 명의 소녀였다. 그 뒤를 따라서 우물쭈물, 안절부절한 모습의 코토리가 종종걸음으로 들어와 거의 들리지도 않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오리, 일단 이야기를 좀 듣고 나서..."

 

  765 프로의 아이돌 미나세 이오리는 몹시 화가 나 있었다. 사실 사무실에 머무는 대부분의 시간 동안 온갖 것들에 대한 불만을 직설적으로 말하는 것을 망설이지 않는 그녀였지만, 이번의 분노는 그간에 반복되었던 짜증과는 다른 것으로 보였다. 어이가 없다는 듯 치켜뜬 눈은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오만함과 자부심을 잔뜩 머금어, 그 자체로 보석인듯 아름답게 빛났다. 분노로 인해 살짝 상기된 목덜미와 양 볼이 잔뜩 심통난 귀여운 여동생처럼 사랑스럽게 보일 법도 하지만, 그녀의 입이 열리자 그러한 감상은 순식간에 날아가 버렸다. 

 

  "절-대로 용서하지 않을 테니까! 네가 프로듀서건 뭐건 말이야! 도대체 야요이한테 무슨 소리를 한거야? 바보 아니야? 이 바보! 멍청이! 지금 당장이라도 그만두게 해버릴테니까!"

 

  이오리는 쨍- 하고 높은 목소리로 초면의 프로듀서를 거세게 성토했다. 프로듀서는 그런 그녀를 향해 무심하고 차가운 시선을 던질 뿐이었다. 그런 그의 태도는 이오리를 더욱 화나게 만들었다. 

 

  "뭐라고 변명이라도 해보도록해! 짤리기 전에 그 정도는 들어 줄테니까!"

 

  "... 실례지만 미나세 이오리 님에게 제 거취를 좌우할 만한 힘이 있다고 생각하시는지. 만약 그렇다면 생각을 달리하는게 좋을 겁니다."

 

  "뭐?"

 

  이오리가 말문이 막혀 말하지 못하는 동안, 프로듀서는 이어서 말했다. 

 

  "대재벌 미나세가의 영애. 그 위치로 저를 협박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다시 한 번 소용없다는 것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저에게 있어 당신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당신은 미나세가의 막내딸일 뿐, 당신의 형제들이 가진 특출난 재능도, 상속권도 없는데다 아무것도 이루어놓은 것도 없는 빈털터리일 뿐입니다. 이 자리에서 굳이 당신의 부모가 당신을 대충 버리듯이 이 사무실에 부탁해 맡겨 놓았다는 사실을 언급하고 싶지는 않군요. 

 

  그런 당신이 잘난듯이 제 거취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그야말로."

 

  프로듀서는 거기에서 잠시 말을 끊었다. 이오리의 폭발하기 직전의 얼굴을 빤히 마주보면서.

 

  "주제파악을 못하고 있다는 말 외에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군요."

 

  폭격이라도 맞은 듯, 사무실은 바짝 날 선 정적에 휩쌓였다. 이오리는 무언가 대꾸를 하려는 듯 입을 벌렸다가, 이내 말을 잇지 못하고 입을 다물고 말았다. 입을 다물었다기 보다 이를 꽉 깨물었다. 작은 몸이 분노와 격정에 바들바들 떨렸다. 꽉 쥔 두 손이 핏기없이 하얗게 질려간다. 하지만 이오리는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그리고 욕설을 하거나 폭력을 휘두르지도 않았다. 대신, 그녀는 눈동자에 조용한 분노를 담아 프로듀서를 향해 똑똑히 말했다.

 

  "... 지금은 당신 말이 맞을지도 몰라. 하지만, 야요이랑 나한테 했던 말을 후회하게 만들어 주고 말겠어. 영원히 기억해 두겠어!"

 

  언성을 높인 것은 아니지만, 이오리의 확고한 진심은 주변에 확실하게 와 닿았다. 프로듀서는 그런 그녀를 별 관심없다는 눈으로 바라볼 뿐이었다. 이오리의 뜨거운 시선과 프로듀서의 얼어붙은 눈길이 허공에서 얽혀들어간다. 두 사람의 냉전은 잠시 후, 사무소에 들어닥친 인파들 때문에 소강상태가 되었다. 

 

  다시금 사무실의 철문이 활짝 열리고, 765 프로의 아이돌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들어온다. 

 

  가장 먼저 사무실에 들어선 것은 눈물을 참지 못하고 뛰쳐나갔던 야요이였다. 그리고 그 뒤를 따라 하루카가 들어와 야요이의 어깨에 두 손을 올려 놓았다. 거기에서 한 걸음 정도 떨어져 치하야가 들어왔고, 그 옆에 장신의 아즈사가 들어와 선다. 

 

  유키호는 마치 좀도둑질이라도 하려는 것처럼 발소리를 내지 않고 들어와 슬그머니 아즈사의 뒤에 몸을 숨긴다. 그러면서도 어깨 너머로 사무실의 상태를 살피고 있다. 이후 스포티한 발걸음으로 들어선 마코토는 일행 앞으로 나와 야요이와 하루카의 옆에 섰다. 

뒤를 따라 타카네와 히비키가 들어왔다. 타카네는 굳게 입을 다물고 있었고, 히비키는 무언가 말을 하고 싶은 듯 근질근질해 보였지만, 분위기 탓에 입을 열지 못하는 것 같았다. 

 

  아미와 마미가 총총걸음으로 들어온 이후, 마지막으로 문을 통해 들어온 것은 미키였다. 이 정도의 인원이 한꺼번에 들어오는데도 누구 한 사람 입을 여는 사람이 없었다. 그렇게 765 프로의 아이돌 전원은 마침내 한 자리에 모여 프로듀서를 마주보게 되었다. 

 

 

 

 

  가나하 히비키는 남국 오키나와 출신의 소녀다. 집도 절도 없이 가난한 사람도 먹을 것과 얼어죽을 걱정은 할 필요 없는 한가로운 지방에서 상경한지 얼마 되지 않은 그녀가 도시의 아이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것은 그녀 다운 솔직함일 것이다. 집단생활을 한다면 다소 눈치없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대담하고 천연덕 스러운 성격은 때로 쾌활한 매력이 되어 765 프로가 감정적인 위기를 겪을 때마다 윤활제가 되어주곤 했다. 

 

  사실, 그녀는 지금 잔뜩 화가난 동료들의 표정을 살피느라 여념이 없었다. 청록색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며 이 얼어붙은 분위기를 타개할 방법을 모색하였으나 딱히 떠오르는 것이 없다. 

 

  뀨욱- 하고 그녀의 어깨 위에 올라앉은 햄스터 한마리가 그녀의 귓가에 무어라 소근소근 말을 건넨다. 그녀는 음- 음- 하고 고개를 끄덕이다가 이내 어두운 안색이 되어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주변 동료들의 시선이 온통 쏠려 있는 것을 느끼곤 이내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리고 잔뜩 기가 죽은 체 입을 열었다. 

 

  "...하무조는 방금 말은 프로듀서가 너무 심했다고 생각하는거 같다구."

 

  프로듀서는 그렇게 말하는 히비키를 마주보았다. 프로듀서의 시선이 닿자 마자 화들짝 반응하는 그녀의 몸동작은 마치 천적을 만난 작은 들짐승같다. 목 근처에서 틀어맨 군청색 머리카락이 우물쭈물하는 그녀의 고갯짓에 따라 좌 우로 찰랑찰랑 움직인다. 

  

  "보, 본인이 그렇게 생각한건 아니라구."

 

  프로듀서는 그런 그녀를 애매한 보석을 마주한 감정사와 같은 눈으로 빤히 바라본다. 

 

  가나하 히비키(15세, 고1)

  

  152cm, 41kg. 86-58-83   

 

  "가나하 히비키님."

 

  "에엑-."

 

  히비키는 프로듀서의 갑작스러운 부름에 괴상한 소리로 답했다. 프로듀서가 뭘 집어던지기라도 한 듯 양 손으로 얼굴을 가린 체로. 그런 그녀를 아랑곳하지 않고 프로듀서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애완동물을 데려올 정도라면 당신이 이 사무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짐작이 갑니다만, 지금 그걸 지적하지는 않겠습니다. 다만, 다음부터는 당신의 몸에 붙은 온갖 짐승의 털 혹은 깃털 등은 출근하기 이전에 체크하는 편이 좋겠습니다."

 

  "아? 이거라면 아침에 이누미들이 출근하려는데 놀자고 보채는 바람에..."

 

  히비키가 부산스럽게 몸을 털어댄다. 사방으로 털과 깃털이 흩날린다. 

 

  "자기관리를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애완동물을 키우고 있다면, 상식적인 수준만 남기고 분양할 것을 권합니다. 당신이 아이돌 활동을 하는 동안 당신의 애완동물들은 집에 남겨져 당신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겠죠. 당신은 또 그것이 걱정되어 활동에 전념할 수 없을 테고요."

 

  "그, 그건 안된다구. 이누미들은 본인의 소중한 가족인걸..."

 

  "그렇다면 당신의 곁에 있는 동료들은 어떻습니까?"

 

  히비키는 화들짝 놀란 듯 주변을 돌아보았다. 그 순간 날린 개털때문에 유키호가 재채기를 - 엣취!- 한 것은 그야말로 불운한 우연이었다. 히비키는 금새 울상이 되었다. 프로듀서는 말을 멈추지 않았다. 

 

  "동물들을 분양하는 것이 싫다면, 가나하님이 다른 직업을 고려해보는것도 방법입니다."

 

  "... 본인에게 그만두라고 말하는거야?"

 

  "그런 말씀을 드리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아이돌 일을 그만두지도 않겠다, 동물들을 줄이지도 않겠다고 한다면 당신은 터무니없는 특별대우를 바라고 있다고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리고 그런 대우가 합당할 만큼 당신이 대단한 사람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군요. 

 

  가나하님의 프로필을 읽어보았습니다. 자만이 대단하더군요. '댄스도 노래도 완벽하니까 뭐든지 본인에게 맡겨달라.' 고 쓰여있더군요. 당신의 활동영상과 지금 당신의 모습을 보고 있는 저는 조금 다른 생각이 듭니다. 

 

  댄스는 곧잘 하는 편이지만, 무대에 한 두번은 반드시 웃음거리가 될만한 실수를 저지르더군요. 노래 또한 그만그만하지만 당신 정도로 노래할 수 있는 후보생은 다른 곳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후보생들은 당신처럼 동료들에게 민폐가 될 수도 있는 세균덩어리를 버젓히 사무소에 반입하는 일도 하지 않습니다.

 

  이래도 제가 당신을 특별대우 해야합니까? 저는 가나하님과 계속 해나가는 것 보다 다른 후보생을 프로듀스하는데 신경쓰는 것을 우선으로 고려하겠습니다."

 

  히비키는 새빨갛게 달아올라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프로듀서를 바라보았다. 옆에 선 타카네가 차가운 분노를 담아 프로듀서를 쏘아 본다. 폭발 직전의 분위기에서 아미와 마미가 프로듀서의 앞으로 나섰다. 

 

  "엇차- 이건 분위기가 너무 무거운DE- 오빠. 이제 히비키를 괴롭히는건 그만두자. 더 이상은 히비키가 너무 불쌍하잖아. 그치 아미?"

 

  "그-래. 마미. 오빠, 이제 다른 이야기 하자. 안그러면 히비키, 울어버릴지도 모른다구?"

 

  후타미 아미, 마미 쌍둥이는 그렇게 말하며 '응훗후-' 하고 웃어보였다. 그리고 프로듀서를 향해 양 손을 들어 고양이 앞발을 해 보였다. 동료의 위기를 눈앞에 둔, 정말이지 답지 않은 어른스러움의 발로였다. 장난스러움을 가장한 총명한 눈동자에 이면에는 동료의 상처를 걱정하는 어쩔 줄 모르는 상냥함이 깃들어 있다. 그러니까 이것은, 이제 그만해 달라는 아미와 마미식의 신호이자 부탁이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신입 프로듀서라도 간질간질해서 푸핫하- 강제 지옥폭소행 코스를 타게 해줄거야구장! 그렇지 아미?"

 

  "그-래. 마미. 더블 간질간질이라GU. 더블! 웃지 않고는 절대 못배길걸."

 

  장난스럽게 손가락을 움직이는 두 사람의 호흡이 마치 한 사람인 듯 완벽하다. 틀어묶은 밝은 노란색의 머리카락이 찰랑거리며 흔들린다. 누구라도 미소짓지 않고는 못배기는 천진난만한 장난기 앞에서 프로듀서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후타미 아미님. 그리고 후타미 마미님."

 

  "에엣-. 그렇게 딱딱하게 부르면 마미,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는걸."

 

  프로듀서는 그렇게 말하며 울상을 짓는 두 사람을 향해 조용히 말했다. 

 

  "먼저 데뷔하게 될 것은 두 사람 중 한 사람입니다."

 

  "에엣!!"

 

  아미와 마미, 두 사람은 깜짝 놀라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았다. 그리고 프로듀서를 향해 거의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하지만 아미(마미)랑 마미(아미)는 일심동체라구? 떨어져서 제대로 해낼리가 없어~"

 

  "일단, 그것을 결정한 것은 제가 아닌 것을 알려드리겠습니다. 하지만 당신들에 대해 아직 완전히 알지 못하는 저한테도 그 결정은 꽤나 타당하게 느껴지는군요. 당신들은 둘이서 하나 라고 하지만 그렇다면 굳이 둘일 이유도 없을 겁니다.

 

  두사람을 다 고려할만큼의 결정적인 차이가 두 사람에게는 없습니다. 당장 머리스타일을 비슷하게 바꾸기라도 한다면 당신 둘을 한눈에 구별가능한 사람은 얼마 찾아보기 힘들 겁니다. 노래하는 목소리도, 몸동작도, 공연중에 던지는 토크 마저도 한 사람 인것처럼 개성을 찾기 어렵습니다. 아마도 당신들 중 데뷔하지 못하는 한 명은 도태되고 말겠지요. 완전히 다른 컨셉을 찾아내지 못한다면 말입니다."

 

  프로듀서의 말에 아미와 마미는 완전히 얼어붙었다. 그리고 서로를 넋이 나간 듯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우리 중, 한 사람만 데뷔...?"

 

  사장, 타카기 준지로는 거기에서 참지 못하고 프로듀서에게 외치듯 말했다. 

 

  "자네! 그 건에 대해서는 자네가 함부로 말해도 될게 아니야. 그건 아키즈키군의...!"

 

  사장은 그렇게 말했다가 일순 입을 닫았다. 765 프로의 일동은 허망하고 의심스러운 눈으로 사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프로듀서는 그런 흐름에 상관하지 않고 고개를 들어, 아즈사의 뒤에 숨어 바들바들 떨고 있는 유키호를 찾았다. 유키호는 그의 시선을 마치 느끼라도 한 듯 화들짝 놀라며 허리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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