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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섞인 그림자 - 6 (카나데 X 린 SS)

November 23, 2016 (수) 11:28에 작성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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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후미카."
후미카는 카페의 구석에서 조용히 책을 읽고 있었다. 늘 눈을 가리던 앞머리를 가지런히 정돈해서, 아직 완전히 뜨지 않은 햇빛이 책에 반사되어 푸른 눈동자에 담겼다. 아마 아리스가 정돈해 주었겠지. 두꺼운 양장본을 덮자 탁 하고 바람이 빠지는 소리가 들릴 만큼, 평일 오전 10시 46분의 카페는 매우 조용했다. 조용하게 주간지를 읽는 늙은 남자와 랩톱을 두들기는 젊은 여자와 두 종업원을 빼곤 나와 후미카 둘 뿐이었다. 종업원이 커피를 테이블에 놓았다. 카푸치노 두 잔. 흰 거품 위에 얇은 커피가루가 뿌려져 있다. 받침 접시에는 작은 직사각형 설탕 스틱이 하나씩. 주머니에 넣은 스이카 카드를 만지작거렸다. 매끄럽고 얇은 플라스틱 카드의 감촉이 손가락에 느껴진다.
  "린 씨의 취향이 뭔지 몰라서요."
  "능청스럽네. 아니면 뻔뻔한 걸까."
  "카나데 씨는 잘 지내나요?"
  "궁금하면 본인이 직접 가서 확인해 보는 게 더 좋지 않아?"
경고 삼아 자리에 핸드백을 던지듯 놓았다. 가방이 의자 쿠션에 소리를 내며 자리를 잡는다. 나도 의자에 거칠게 앉았다. 불만의 표시를 최대한 내보인다.
  "다른 사람에게 제쳐두지 말고 말이야."
일부러 씁쓸한 비소를 마지막에 곁들인다. 후미카는 별다른 표정의 변화 없이 나를 쳐다봤다. 약간 감겨있는 저 눈은, 얼마나 많은 빛을 잡아먹어야 그 깊은 바닥을 보여줄까.
  "린 씨의 말은 저를 원망하고 있는 것 같네요."
  "싫어하거든. 자신의 일을 남에게 떠미는 사람."
후미카는 팔에 어중간하게 걸린 감색 숄을 손으로 집어 여몄다. 헐렁한 상아색 스웨터가 미처 가리지 못한 쇄골이 숄에 가려진다.
  "네, 저도 그런 분별치 못한 사람에겐 호의를 느끼진 않습니다."
나와 후미카 옆에 펼쳐진 창가에 몇 개의 그림자가 지나쳤다. 해가 도로를 희게 탈색시킨다.
  "린 씨에게는 변명이겠지만, 저는 정말로 어쩔 수 없었어요."
느지막하게 일어나 잠을 묻힌 채 도로를 걷는 한 커플이 되는대로 브런치를 찾아 거리를 걷는 게 보였다. 변명이다. 변명으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입을 열면 생각하지도 않고 말을 내뱉을 것 같아, 머그잔을 들어 커피를 마셨다. 따뜻하게 데워 연한 단맛이 나는 우유 거품과 그 위에 뿌려진 씁쓸하고 향긋한 커피가루의 부드러운 대비를, 씁쓸함이 꽤 남은 카푸치노가 재빠르게 지운다. 받침접시에 담긴 설탕 스틱을 뜯을까 하다 관뒀다. 후미카와 나는 아무 말 없이 천천히 커피를 홀짝였다. 벽에 걸린 작은 시계에서 맑은 종소리가 들렸다. 벌써 11시다.
  "말해줄 수 있나요, 린 씨."
앞머리를 치워서, 후미카의 두 눈에 겨울의 비스듬한 햇빛이 오롯이 담겼다. 잔을 들어 커피를 마셨다. 커피는 약간 따뜻하게 식었다.
  "그 날 이후로 뭔가 있었나요?"
우유 거품이 차가워서 그런걸까. 우유의 비린 맛이 커피의 씁쓸한 맛 언저리에서 느껴졌다.
  "카나데 씨뿐만이 아니라, 린 씨에게도."
  
나는 며칠 전, 카나데의 빛이 거의 사라진 두 눈을 보았다. 밝고 노란 달도 빛을 잃고 바래버렸던 두 눈. 만약 그 눈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면, 나는 아마 이해할 수 없는 감정에 모든 생각이 잠겨버렸을 것이다. 후미카는 지금 나에게 카나데의 그 두 눈을 보았느냐고, 두 눈을 보고 무엇을 느꼈느냐고 묻고 있다. 내 두 눈 속 망막에 어떤 기억이 긁혔는지 알아내려, 빛이 완전히 잠긴 푸른 두 눈이 격렬하게 일렁이고 있다. 빼앗아서 읽었던 누군가의 책 속 글귀가 하나 생각난다. 장례를 마친 바이킹의 배가 바다의 끝에 다다라 그들의 천국 대신, 최초로 떨어진 배가 아직도 바닥에 닿지 않았다는 심해의 구멍 속으로 빠져버렸다는 바보 같은 글귀. 그 심해의 구멍을 그대로 깎아내어 집어 넣은 게 아닐까 싶은 두 눈이 나를 바라본다.
  "린 씨?"
하지만, 왜였던 걸까? 내가 느꼈던 그 감정의 이유는, 카나데의 두 눈 뿐이 아니다. 무언가 더 있다. 내가 그 두 눈을 보고 느낀 감정은 단순한 동정심이 아니다. 동질감에 가까워 오히려 의문투성이인 감정에 가깝다. 이유가 생각나지 않기에 이해할 수 없어, 머리 한 켠이 막혀버린 채 먹먹하게 두통을 울리는 고민이 되어버렸다. 이 감정과 고민을, 나는 후미카에게 말할 수 없다. 말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은. 불과 며칠 전까지 둘의 문제가 당사자 사이에서 끝나기를 바랬지만, 카나데의 두 눈을 본 이후로는 규정하기 어려운 감정이 내게 둘의 문제에 좀 더 깊숙하게 들어가라고 나를 이끌고 있다. 그녀를 신뢰하지 않기에, 나는 더욱 더 깊숙하게 카나데에게 다가간다. 그녀가 진창을 밟는 내 다리를 붙잡지 않을까? 그래서 더더욱 아무런 말을 하고 싶지가 않다. 뭔가 말하면 그게 나에게 좋지 않게 돌아올 것 같아서.
  "그러나 우리는 그 대신, 자신이 소유한 것을 바라면서 만일 이것을 잃어버린다면 얼마나 고통스러울까를 생각해 봐야 한다."
후미카가 조용하게 커피를 마셨다. 두 눈을 살짝 감고 식어가는 커피의 향을 음미한다. 입술엔 작은 거품 하나조차 묻지 않았다.
  "쇼펜하우어는 염세적인 인물이었다고 해요."
철학 수업을 들으러 온 게 아닌 건 그녀가 더 잘 안다. 그녀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나를 붙잡는 흑청색의 늪으로 변질되는 것 같아서,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반론마저도 집어 삼켜 썩혀버릴 것 같아, 깊이가 없는 저 두 눈을 바라보기만 했다.
  
  
 
음향감독이 믹서의 컨트롤러를 조정하기 시작한다. 멜로디가 마지막 코러스 부분에 다다라, 카나데가 두 눈을 감고 머리에 쓴 헤드폰에 손을 올린다. 아리스가 선물한 헤드폰. 믹서에 달린 모니터에 카나데의 파장이 그녀의 목소리를 가늠하며 실시간으로 그려졌다. 초록빛 파장이 목소리의 실루엣을 따라 형태를 바꾼다. 파장이 갑작스럽게 불규칙한 형태를 띄며, 스피커에서 찢어지는 불협화음과 거친 기침소리가 들렸다. 카나데가 두 손으로 입을 가리고 껄끄러운 기침을 터뜨렸다. 프로듀서가 믹서에 달린 마이크를 쥐었다.
  "햐아미 씨, 괜찮으세요?"
카나데는 한 손을 입에서 때 살짝 흔들었다. 작고 마른 기침이 몇 번 이어졌다. 프로듀서는 생수병을 들고 녹음실 문을 열었다. 카나데가 목을 가다듬는 소리가 녹음실 문이 열린 틈과 스피커에서 들려왔다.
  "감기 걸렸어요?"
  '아니, 괜찮아."
  "환절기라서 그런 거 같네요. 뭐 열이 있거나 코가 막히거나 몸이 무겁거나 하지는 않고요?"
  "정말, 여자에게 실례야."
카나데는 음향감독에게 계속하라는 손짓을 보냈다. 프로듀서가 녹음실에서 나가자 음향감독이 단추를 눌렀다. 반주가 다시 방을 채웠다. 카나데는 그 자리에서 두 곡을 내리 불렀다. 첫 번째 곡의 중간쯤에서 불안감이 느껴지더니, 두 번째 곡은 라이브에서 부를 때만도 못하게 불안정했다. 박자가 어긋나고 음정이 흔들려, 도저히 앨범에 실을 수 없는 정도였다. 프로듀서가 음향감독과 무어라 이야기를 했다. 전문용어를 섞어 말해서 정확히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지만, 아마 오늘은 그만 끝내자는 말인 것 같다. 프로듀서는 마이크를 다시 쥐었다.
  "하야미 씨, 오늘은 그만 하도록 하고 다음 주에 다시 하죠."
  <그렇게 심각한 건 아냐.>
가래가 약간 섞인 목소리가 스피커에서 울린다. 
  "아까 전에 댄스 레슨도 하지 않았습니까. 레슨도 너무 많이 하면 별로 안 좋다구요."
  <괜찮대도. 다음주까지 여섯 번째 트랙까지>
  "코러스 부분 다시 불러보세요."
  <에?>
바보같이 높은 목소리에 거친 음색이 묻어나왔다. 카나데는 희미한 홍조가 띈 얼굴로 프로듀서를 쳐다보았다. 유리창에 무언가 묻어있는지, 카나데의 눈이 약간 탁해보였다.
  "코러스 다시 불러 보시라구요."
카나데는 또박또박 말하는 프로듀서의 목소리를 듣고 불안한 목을 가다듬었다. 무겁게 가래가 끓는 소리가 울렸다. 음향감독이 패널의 조종간을 몇 번 조정하고 단추를 눌렀다. 방 안에 희미하게 들려오던 고주파음이 완전히 끊겨서 프로듀서의 규칙적인 숨소리와 카나데의 불규칙한 숨소리가 그 진공에 나란히 퍼졌다. 카나데는 크게 숨을 들이마쉬며 마이크 앞에 입을 두고 코러스 부분을 부르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고음이 불안정해지며, 울림이 우그러졌다. 우그러지는 울림을 억지로 눌러내리며 부르던 카나데가 마른 기침을 크게 뱉었다. 기침에 찢어지는 파열음이 섞여나왔다. 각혈이라도 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깊고 긴 기침이라, 걱정이 되었다.
  "카나데, 괜찮아?"
카나데는 고개를 숙여 한 손으로 뒤따라 나오는 기침을 막으면서도, 다른 손을 들어 괜찮다고 말하려는 것 같았지만, 기침에 헝클어진 머리카락이 그녀의 이마의 틈을 가려 얼굴이 보이지 않아 오히려 더더욱 상태가 나빠 보였다. 카나데는 계속 손을 들고 기침을 했다. 내 말과 카나데의 손짓 사이 미묘한 어긋남이 느껴졌다. 마이크에 달려있는 작은 led가 꺼져있었다. 마이크의 전원을 키지 않고 말했던 것이다. 카나데의 손짓은 내 말에 대한 반응이 아니라, 누가 자신의 모습에 괜찮냐고 묻는 것에 대한 보편적인 대답으로 흔드는 행동이었다. 별로 상관은 없지만, 잠깐동안 내가 바보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이크를 쥐었다.
  "카나데, 괜찮아?"
카나데는 이제 기침이 거의 가셔 얼굴을 들고 생수병의 뚜껑을 끄르고 있었다. 
  <응, 좀 괜찮아.>
카나데는 뚜껑을 대충 탁자에 던지고 물을 마셨다. 물을 마시다 기침이라도 할까 걱정이 되었다.
  "하야미 씨, 오늘은 더 안되겠네요. 그만 들어가셔서 쉬세요."
  <하아, 미안해. 이렇게 폐를 끼칠 줄은.>
  "괜찮습니다. 사장님께는 이미 말씀 드렸어요. 차량 빼놓을 테니 잠시 기다리세요."
  <미안해, 프로듀서 씨. 컨디션 불량이라니, 바보같은 실수네.>
  "아, 시부야 씨."
프로듀서가 음향조정실의 문을 반쯤 열고 나를 쳐다보았다.
  "네."
  "사장님이 찾으십니다. 지금이요."
  
  "이건 뭐지?"
사장이 책상에 놓인 A4 용지 몇 장을 내 앞으로 손가락으로 눌러 밀었다. SNS 사이트를 프린트 한 용지에는 한 사진과, 사진을 찍은 계정주의 짤막한 글귀가 인쇄되어 있다. 사진에는 나와 후미카가 초점이 살짝 어긋나게 찍혀있었다. 얼굴은 흐릿해 잘 보이지 않지만, 대략적인 인상은 알아볼 수 있었다. 사진 속에서 나와 후미카는 본래의 분위기와 다르게 차분해 보였다.
  "은둔 아이돌 시부야 린과 문학 아이돌 사기사와 후미카의 백주의 밀회, 라."
사장은 무신경하게 신문 세 부를 내 앞에 살짝 던졌다. 신문의 1면 짤막한 귀퉁이에 방금 사진과는 다른 각도에서 찍은 나와 후미카의 사진이 인쇄되어 있다. 아까 전의 SNS 사이트의 사진보다 훨씬 선명했다. 다행스럽게도 저 싸구려 신문의 사진에도 나와 후미카의 표정은 제대로 찍히지 않았고, 분위기는 아까 전의 흐린 사진처럼 차분해 보였다. 후미카 특유의 차분한 이미지 덕분인지, 흐리게 찍힌 나와 후마카의 사진은 실제는 어땠을지 몰라도 사진 속에서 만은 언제나 평범한 일상 같았다. 다행이면 다행일 것이다. 그녀 덕분에 파파라치들은 우리가 실제로 나눈 '대화'와는 멀리 동떨어진 시시콜콜한 잡소리만을 신문에 내뱉어대니.
  "스캔들에 휘말리지 않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 아닌가?"
할 말이 없다.
  "사기사와는 왜 만나고 있었지?"
그 질문에도 할 말이 없다. 단순하게 말하기 곤란하다는 변명이 아니다. 후미카, 카나데. 그 사이에 나. 셋의 관계가 엉켜있기에 함부로 말할 수 없는 문제다. 게다가, 문제는 앞으로 더욱 깊어진다. 아는 사람이 많으면 많을 수록, 문제는 더욱 복잡하고 깊어진다.
  "아니, 이건 사생활이니. 질문이 무례했군."
  "내 실수야. 아직은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사장은 차갑게 내 눈을 보았다. 심지가 약한 아이돌은 곧잘 그녀의 차가운 눈을 보고 겁을 먹고는 했다. 의심보다는 실망감이 섞인 사장의 눈매가 찡그려졌다.
  "10년전이라고 해도 너는 아이돌 얼티메이트를 우승하고 신데렐라 걸을 수상한 톱 아이돌이었다. 언론은 쉽게 잊지 않고, 너처럼 불안정하고 가십성이 큰 연예인을 쉽게 노리지. 전부 잊어버렸나?"
  "입이 백 개라도 할 말이 없어. 죄송합니다."
나는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완전한 내 실수다. 바보같이 파파라치나 일반인의 반응을 전혀 염두에 두지 않았다. 무심했다고 밖에는.
  "사과는 됐다."
사장은 의자를 살짝 돌렸다. 좁고 긴 창틀에 도쿄의 반을 깎아넣은 듯, 건물의 수평선이 불규칙한 높이로 펼쳐졌다. 창틀 속 도쿄는 왠지 모르게 작은 플라스틱 모형처럼 보였다.
  "오히려 괜찮을지도 모르겠군. 허용범위 내에서의 스캔들은 네 제 데뷰가 쉽게 정착할 수 있게 도움이 될 테니."
사장은 멀리 도시를 바라보았다. 도시의 온갖 연기를 입어 희미해지는, 콘크리트와 유리, 철골 건물로 이루어진 평야의 끝자락을 지나쳐 넘어가는 저 두 눈은 얼마나 더 먼 곳을 바라보아야 제대로 초점을 맞출 수 있을까.
  "하지만 불안정한 요소를 남겨둘 수는 없다. 더 큰 스캔들은 위험해."
사장은 두 손을 깍지 낀 채, 팔꿈치를 책상에 대고 두 손을 그녀의 목 언저리까지 올렸다. 옛 드라마만을 재생하는 케이블 채널의 법정 드라마 속에 등장하는 재판관의 위엄 비슷한 아우라가 깍지로 이루어진 아치에 담겼다. 그녀는 재판장이다. 우리는 그녀의 목소리에 맞추어 타자기를 두드리는 속기사일 뿐이다.
  "앞으로 하야미와 너는 우리가 대절한 차량으로 움직이도록."
카나데는 왜? 하고 질문하고 싶었지만, 뭔가 이유가 있으니까 하는 말이겠지. 별로 알고 싶지는 않다.
  "불만인가?"
  "불만은 아냐."
  "그럼 됐군."
사장은 더 할말이 없다는 듯 깍지 낀 손을 풀고 의자에 등을 기댔다. 검정 가죽 소파가 그녀의 몸을 받아 작게 흔들렸다.
  "나흘 후다. 지금보다는 좀 더 바빠질 테니, 각오해 두도록."
무엇을 각오해야 하는 건지 알고 싶지가 않아, 그저 아무 말 없이 사장실의 문을 열고 복도를 걸어갔다. 빈 복도에 비스듬히 떨어지는 겨울 햇빛이 회색 복도를 희게 탈색시켰다.
  
  
  
프로듀서는 네비게이션을 껐다. 내가 약간 의아한 눈빛으로 그를 쳐다본 것을 느꼈는지, 그는 짤막하게 담담히 말했다.
  "이런 때는 방해만 되거든요."
그는 부드럽게 핸들을 돌리며 코너를 돌았다. 카나데의 머리의 무게가 어깨에 점점 더해졌다. 숨에 열기와 습기가 섞여 있는 게 느껴졌다. 약한 기침을 할 때마다, 내 쇄골 끝자락에 탄성을 느꼈다. 카나데의 부드러운 머리카락은 어지러이 퍼져 내 코트 사이에 파고들었다. 코트에 내 땀냄새가 배지는 않았을까? 일단 마스크를 구매해야겠어.
도로를 꺾어 돌 때마다, 차가 도로에 가득 채워졌다. 프로듀서는 도로의 틈새 사이를 비집어 운전하며 방향등을 키고 좌회전을 하고 속도를 올려 주행했다. 그는 단 한 번도 정지하지 않은 채, 이곳저곳 막힌 도쿄의 도로를 리듬에 맞춰 손가락을 두드리듯 잠깐 드러나는 틈새 속으로 유유히 운전해 들어갔다. 택시를 잡아 타고 돌아갔다면, 아마 본격적으로 시작되려고 하는 정체의 앞자락에 끼어 하릴없이 정지등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겠지. 운전 하나만은 확실히 유능했다.
 
  "먼저 들어가, 있을게."
  "카나데."
카나데가 내 말을 듣지 못한 듯 약간 불안한 걸음으로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빌딩의 문이 열렸다가 닫히는 간극 동안, 모토사이클 한 대가 우리 뒤로 부드럽게 지나갔다.
  "잠깐 대화 가능하세요?"
어느 샌가 프로듀서는 차에서 나와 운전석 문 앞에 서 있었다.
  "하야미 씨랑 같이 산다고 들었는데요."
  "그렇게 됐죠."
  "하야미 씨가 저렇게 고분고분하게 말을 듣는 일, 거의 없어요. 아시겠지만."
프로듀서는 골치가 아픈 듯 두 눈을 찡그렸다. 왼손으로 쭈그러진 미간을 쥐고 감긴 두 눈을 이리저리 돌렸다. 카나데가 걱정되어서 그러는 걸까, 아니면 일정이 걱정되어서 그러는 걸까.
  "아무래도 몸이 정말 안 좋은 것 같은데, 잘 부탁 드립니다."
혼다 오디세이의 뒷문이 열렸다. 프로듀서가 자동차 스마트키를 상의 주머니에 집어넣고 뒷자리에 남아있는 카나데의 버킨 백을 집어 내게 건넸다.
  "문제 생기면 바로 연락 부탁 드립니다."
  
문을 열고 신발을 벗어 신발장에 넣었다. 카나데의 버킨 백은 식탁 근처 바닥에 놓았다. 거실 소파에 카나데가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얕은 숨을 내쉬고 있었다. 상기된 뺨에 얼마 되지 않는 바람이 쌕쌕거리며 드나들었다. 카나데의 윗팔을 잡았다.
  "카나데, 방 안으로 들어가자."
카나데의 몸을 일으켜 그녀의 오른팔을 내 어깨 위에 감고 몸을 일으켰다. 약한 신음이 그녀의 숨결에 묻어나왔다. 탄력을 잃어 딱딱해진 가는 팔이 어깨뼈와 쇄골에 눌려 약간 아팠다. 머리를 제대로 가누지 못해, 카나데의 헝클어진 머리카락이 왼쪽 귀와 뺨에 비벼졌다. 희미한 땀 냄새와 샴푸 향이 내 목덜미 틈새에 기댄 카나데의 머리에서 느껴졌다. 흐트러지는 중심을 잡기 위해 천천히 두 발을 움직일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취객을 다루듯 거칠게 대할 수 없다. 그녀는 환자다. 침실 문을 열고 카나데를 침대에 앉혔다. 코트와 플리스 재킷을 벗어 바닥에 내려놓았다.
  "카나데. 옷 벗길게."
눕혀서 옷을 벗기면 매우 성가시기에,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해 자꾸 쓰러지려는 카나데의 등에 팔을 감고 단추를 풀었다. 먼저 베이지 색 울 코트. 단추가 커서 쉽게 풀어헤쳤다. 그 다음은 쪽빛 울 카디건. 구불구불한 패턴 때문에 단추가 생각보다 잘 끌러지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흰 면 블라우스. 약간의 두께를 지녀 일견 따뜻해 보이지만, 겨울의 바람에는 한없이 시린 쓸모 없는 블라우스. 단춧구멍이 뻑뻑해서 끌르기 어려웠다. 카나데가 추운 듯 몸을 떨었다. 블라우스의 단추를 끌르는 것을 뒤로 미루고 코트와 카디건을 벗겼다. 카나데의 두 팔을 최대한 상냥히 젖혀 팔을 빼냈다. 그녀가 약한 신음을 냈다. 아마 감기기운과 몸살 때문에 작은 통증도 크게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옷을 입은 채로 잠들게 둘 수는 없다. 코트 속에 카디건이 흐물거리며 끼워진 상태 그대로, 옷장 속 옷걸이에 대충 걸어서 집어넣었다. 카나데의 숨이 가빠졌다. 쓰러진 카나데를 조심스럽게 일으켜 블라우스 단추를 어떻게든 끌렀다. 아마 구멍이 좀 헐거워지겠지만, 어쩔 수 없다. 완전히 벌려진 블라우스 틈새에 카나데의 배꼽과 브래지어의 가슴골 부분, 상기된 쇄골이 차례대로 보였다. 아무리 호색한이라고 해도, 저 가쁜 숨소리를 듣는다면 이상한 생각 따위는 들지 않을 정도로 카나데의 숨은 얕고 가빴다. 카나데의 몸을 감싸 안고 블라우스를 완전히 벗겼다. 카나데의 몸에서 나는 뜨거운 열이 셔츠를 뚫고 피부에 닿았다.
  "열이 심해..."
열을 빼내야 한다. 나를 어정쩡하게 감싸 안은 카나데의 몸을 최대한 느리게 침대에 눕히고 화장실에서 수건을 두 개 꺼내어, 작은 대야에 넣고 물을 받아 침실로 들고 갔다. 그 짤막한 시간 동안 너무나도 추웠는지, 카나데는 이불을 목 끝까지 덮고 있었다. 손끝이 시린 찬물을 듬뿍 머금은 수건을 짜내어 하나를 카나데의 이마에 놓았다. 카나데가 찡그린 미간을 약간 폈다. 뺨에 손등을 댔다. 여전히 뜨겁다. 열을 빼내는 최선의 방법을 생각한다.
  "카나데. 차가울 거야."
들리지도 않을 테지만, 어르듯이 상냥히 말했다. 열기로 인한 오한 때문일까, 카나데가 덮고 있는 부드러운 이불에 미약한 떨림이 보였다. 대야에 담긴 다른 수건을 짜내고 카나데가 덮은 이불을 걷었다. 자신을 감싸던 이불이 사라져 몸을 웅크린 카나데는 평소의 모습과 달리 너무나도 나약해 보였다. 붉어진 무릎이 희미하게 비치는 검정 스타킹과 허벅지를 가리는 남색 울 스커트, 추위에 떠는 상체에 걸린 검정 브래지어. 앙상하게 흰 피부에 정직하리만치 대비되는 옷의 색. 머리카락에 가린 그녀의 이마에 손을 넣어, 앞머리를 귀로 넘겼다. 떨리는 입술에서 새는 희미한 숨결과 나약하게 감은 눈, 어두워진 눈매가 마음을 아프게 했다. 이마에서 떨어진 수건을 집어 대야에 넣은 뒤 시린 수건을 들고, 뒤돌아 옆으로 돌아누운 카나데의 팔짱을 풀었다. 가는 오른팔의 손목을 잡아 벌린 뒤, 수건으로 손등부터 어깨까지 천천히 닦았다. 수건이 아래로 내려감에 따라 카나데는 더욱 몸을 떨었다. 입으로 내뱉고 들이쉬는 숨이 크게 떨려오며 점점 거칠고 가빠졌다. 하지만 지금 열을 빼지 않으면, 오한은 사라지지 않는다. 수건을 대야에 넣어 다시 짰다. 손이 젖어 차갑다. 오한은 마음을 꺾고 감정을 증폭한다. 우울과 무기력함, 슬픔이 오한에 섞여 퍼진다. 깨끗한 물 속에 떨어진 수성 잉크처럼 삼투압이 작용한다. 바들거리는 앙상한 손을 꼭 잡고, 굳은 몸을 수건으로 닦았다. 오한이 섞인 슬픈 신음과, 젖은 수건과 피부가 스치는 건조한 소리가 귓가에 들렸다.  
  
  
  
식탁 위에 저녁거리와 감기약이 담긴 비닐봉지를 놓았다. 비닐봉지가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방문을 닫아두었으므로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비닐봉지에서 1회용 플라스틱 용기를 꺼내 뚜껑을 열고, 플라스틱 용기에 담긴 토마토 치킨 수프를 냄비에 담고 끓였다. 열을 빼내고 해열제를 먹인지 네 시간 정도 지났으니, 지금쯤이면 상태는 약간은 나아졌을 것이다. 기운을 차리기 위해 조금이라도 무언가 먹여야 한다. 빈 플라스틱 용기를 쓰레기통에 집어넣었다. 요리를 못하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이런 델리 식품들은 혼자 사는 삶에 큰 도움이 된다. 심지어 지금같이 환자식이 필요할 때도. 토마토 수프가 과연 환자에게 알맞은지는, 음, 괜찮지 않을까? 토마토는 몸에 좋은 채소니까. 뭉근하게 끓어오르는 수프 속 토마토를 뭉갰다. 적당히 졸아든 수프를 작은 수프 볼에 담고 쟁반을 꺼내어 숟가락과 함께 놓았다. 쟁반을 들고 카나데 방의 문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카나데는 이불을 목까지 끌어올린 채 잠들어 있었다. 규칙적이고 안정적인 숨에 안심했다. 프로듀서에게 연락할 필요는 없을 것 같네.
  "카나데, 약 먹게 저녁 먹자."
카나데를 살살 흔들어 깨웠다. 카나데는 몽롱하게 두 눈을 떴다. 장롱에서 얇은 면 가운을 꺼내어 카나데에게 입혔다. 입혔다기보다는 걸쳤다는 게 맞는 말이겠지만. 카나데의 양팔을 차례대로 들어 품이 넓은 가운의 팔에 넣었다. 벌려진 앞섬을 대강 정돈해서 배가 차가워지지 않게 했다. 침대 옆 의자에 앉아, 카나데 앞에 수프 볼이 올려진 쟁반을 놓았다. 카나데는 멍하게 수프를 들여다 보았다.
  "린."
  “왜?”
  "토마토 수프는, 무슨 생각으로?"
  "묻지 말아줘..."
카나데가 희미하게 웃었다. 몸이 꽤 나아진 것 같았다.
  "고마워, 린."
카나데가 숟가락을 들었다. 숟가락을 쥔 손가락에 아무런 힘이 없어 보였다. 
  "만약 혼자였다면, 제대로 약도 못 먹었겠지."
오한과 열에 시달린 카나데의 뺨이 파리했다. 타다 만 장작이 바스러지는 것처럼, 팔의 움직임이 부자연스러웠다. 카나데는 수프를 반쯤 먹고는 숟가락을 놓았다. 자칫 숟가락을 놓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손가락에 힘이 없었다. 머리를 들고 입을 살짝 벌려 가는 숨을 얕게 들이마쉰다. 벚꽃조차도 저런 나약한 바람에는 떨어지지 않겠지.
  "맛이 별로야?"
  "아니, 입맛이 없어. 미안."
  "괜찮아. 약 먹어야 하니까. 입맛이 없으면 억지로 먹지 않아도 돼."
  "...린은 저녁 먹었어?"
  "아니, 이제 먹어야지."
  "냉장고에 먹을 거라곤 빵 몇 조각 밖에 없잖니. 도시락이라도 사왔어?" 
잠시 생각을 해 본다. 도시락, 사왔던가?
  "...아니. 깜빡했어." 
카나데는 잠시 내 얼굴을 바라보다 침대에 등을 기대며, 나를 바라보았다. 눈에 빛이 다시 돌았다. 짧은 미소가 그려지는 게 보인다.
  "그럼, 수프 같이 먹자. 버리면 아까우니까."
  "에, 왜? 입맛이 없다며."
  "저녁도 먹지도 않고 이렇게 차려줬는데, 아무리 환자라지만 너무하잖아."
  "그래, 그건 그렇고. 나는 왜?"
  "이 추운 겨울바람을 다시 헤치고 도시락을 사 오게? 린도 감기 걸릴걸."
정론이라 가볍게 웃었다. 이 살바람이 부는 밖에 한 번 더 나가면, 나도 감기에 걸려버릴지도.
  "알았어. 숟가락 가져올게."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 나와 카나데는 토마토 수프를 나누어 먹었다. 수프 속 깍둑썰기한 닭가슴살이 부드럽게 씹혔다. 감자와 당근, 강낭콩은 혀를 움직이는 것 만으로 뭉개졌다. 새큼하면서도 짭짤했다. 빵 몇 조각을 곁들였다면 더 맛있었을지도.
  
설거지를 마치고 머그잔에 미지근한 물을 받아 감기약 두 알과 함께 카나데에게 건넸다. 카나데는 군말 없이 알약을 받아 삼키고 침대에 누웠다. 잠시 화장실에 갔다 다시 돌아오니 두 눈을 감고 잠들어 있어, 어깨에 걸린 이불을 목 언저리까지 덮어주었다. 주머니에서 전화기가 울렸다. 후미카다. 카나데의 방에서 나왔다.
  "후미카."
  <린 씨.> 
  "이렇게 갑작스럽게 연락 하는 거, 그닥 반갑지는 않은데."
  <저도 이렇게 연락하고 싶지 않았습니다만.>
잠깐의 침묵 동안 방문을 닫았다.
  <카나데 씨의 전화기가 꺼져 있어서.>
카나데는 잠들어 있다.
  "카나데는, 밖에 나갔다 아직 집에 안왔어."
  <오늘 오프였던가요?>
  "응. 점심에 사무실에 들렀다 오니 잠깐 밖에 나갔다 오겠다면서."
  <그런가요? 이상하네요. 오프라면 이맘때쯤엔 집에 있을텐데...>
  "글쎄, 사정이란 게 있는 거 아닐까?"
  <그런가요... 알겠습니다.>
끝난 대화에 침묵이 다시 고개를 든다. 바로 끊어버릴까, 하고 생각한다.
  <린 씨, 최근에 책 읽으시나요?>
뜬금없는 질문이 침묵을 내리누른다. 뭘까, 이 질문은.
  <만약 읽지 않는다면 하나 추천하고 싶은 책이 있습니다만.>
  "책? 요즘은 읽지 않는데."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입니다.>
  "위대한 개츠비?"
  <읽어보셨나요?>
  "이름은 알고 있어. 예전에 영화로도 나온 소설."
  <네. 영화도 나쁘지는 않습니다만, 소설로 읽어보시기를.>
  "알았어."
갑작스럽게 책을 추천하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 점점 그녀를 알 수 없게 되어버리고 있다.
  <아, 그리고.>
반드시 할 말이 있다는 듯 말꼬리에 힘이 들어가 있다.  
  <카나데 씨가 돌아오거든, 제게 연락해 달라고 전해주세요.>
  "...알았어."
전화가 끊겼다. 전화기를 식탁에 놓고 차 티백을 머그잔에 놓았다. 거짓말임을 알면, 과연 그녀는 나에게 어떻게 화를 낼까. 책으로 나를 때리기라도 하는 걸까. 하지만 왠지 모르게, 카나데가 감기를 앓는 것을 그녀에게 알리고 싶지 않았다. 향긋한 홍차 향이 느껴졌다. 의문투성이인 감정이, 약간이나마 희미한 형체가 보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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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넘나 어려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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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피나렐로입니다.
만나서 반가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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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바르고 고운 말을 사용 합시다.
  • 포틴P (@howo***)

    후후후 간병 이벤트를 거쳐 이제 진짜 카나린이란 느낌이군요...좋구나
    어느샌가 우즈키는 잊혀진 기분이 들기도 하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아
    1November 23, 2016 (수) 12:23_23
  • 아키하나 (@akih***)

    그러고보니 진짜 우즈키는 어디로....? 읭
    2November 23, 2016 (수) 12:39_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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