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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코가 걷는 가을산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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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11-03, 2016 23:39에 작성됨.

".....이건?"

 

뭐긴 뭐야 똥굴이지. 저 안에 있는 건 똥굴이고. 사치코 네가 묻지 마. 아직도 귀에서 똥소리가 들린단 말이다. 코에서 똥냄새가 나고 입에선 똥맛이 난다고 나한테 말걸지마 그냥 아무 말도 하지 마.

 

"동굴이네요."

 

그러니까 말하지 말라고. 마유 넌 아직 내 안에선 혐-성이다. 어휴 손에 똥묻은 혐성 하지만 내가 할 말은 아니지. 똥에 박힌 아이돌이 똥 만진 아이돌을 나무란다는 속담은 이럴 때 쓰라고 있는 거다. 나 같은 게 세상을 인베이드 하려 했다니, 지 분수를 모르는 것도 정도가 있지. 역시 난 똥굴 같은 방구석에 파묻혀 인터넷 세상을 독버섯으로 인베이드하는 게 어울려.

 

".....그것도, 사용한 흔적이 있는 동굴이네요."

 

벌써 깜깜해진 밤 속, 오래된 랜턴의 불빛에 의지해서 내부를 쓰윽 둘러본 사치코가 말했다.

 

"그것도, 꽤 최근까지."

 

"얼마나?"

 

"자세한 날짜까지는 모르겠지만..... 1개월 내라는 건 확실해요."

 

최소한 한 달 이전에 사용된 적이 있는 비밀스런 동굴..... 이 소설이 연재되고 나서 쓰인 적이 있다는 소리인가. 그런 겁니까. 아니 이건 메타픽션이니까 거르고, 그러니까 이 동굴로 몇 번이고 오고가고 했다는 거지? 사람이?

 

"몇 번이고..... 오고.... 가고.... 했다면..... 유령은 아니라는 거네.....? 인간이라는.... 거야?"

 

"산짐승이 쓴 듯한 흔적은 없어요. 박쥐는 좀 많이 있는 것 같지만."

 

사치코가 내 발 아래를 가리키며 말했다. 설마 똥 밟았다는 소리는 아니겠지? 아닐거야. 애초에 똥은 아까 다 치웠고 박쥐가 있느냐 없느냐 이야기하는데 똥 이야기가 나올 리가 없잖아. 모든 이야기에는 맥락이라는 게 있다고. 내가 아무리 유체이탈을 하고 있다지만 유체이탈화법을 쓰지 않는 것은 혼이 비정상이고 우주가 도와주지 않기 때문인 기운이 느껴지니까......

 

"....아무것도, 없는데?"

 

"지금 밟고 있는 거 박쥐 똥이에요."

 

"이젠 싫어어어어어어--------------------------!!!"

 

여기서도! 저기서도 똥이냐! 대자연의 똥인 거냐! 그런거구나! 세상은 똥이였던 거야! 초거대 버섯인 줄만 알았던 이 화산은 사실 변비와 설사에 고통받고 있는 지구 그 자체였던 거야! 모든 것은 순환하여 결국엔 똥이 되리라! 모든 금속은 납으로 변하게 된다고 후쿠시마에 온 핵물리학자가 말하던데, 그럼 우리 살아있는 모든 것들은 결국 똥이 되는구나! 아 이 얼마나 무서운 말이니!

 

"왜! 저기도! 여기도 똥인 거야!!"

 

"그야 살아있으니까, 더러움도 배출하는 거지."

 

"펑키면 펑키답게 동양철학 같은 말 쓰..... 아, 펑키 맞구나. 아무튼!"

 

현대 서양 음악사에 있어 동양철학이 미친 영향에 대해서 논하자면 끝이 없지. 펑크도 당연히 그 영향을 받았고. 락과 헤비메탈의 아류인 이상 동양철학에선 벗어날 수 없지. 그런데 중요한 건 그게 아니잖아.

 

"모리쿠보는 박쥐 똥이랑 사람 똥은 다르다고 생각하는데요....."

 

"맞아요. 박쥐 똥은 '구아노'라고 불리며 동굴 생태계를 유지하는 데에 있어 매우 중요한 자원이에요."

 

"사람은! 똥을 자원으로 쓰지 않아!"

 

"쓰는데요? 그리고 쇼코 씨가 좋아하는 버섯도 동굴에서 자라려면 박쥐 똥이 필요한데요?"

 

"아 그럼 괜찮아."

 

진작 말하지. 쓸데없이 용량이 늘어나버렸잖아. 지가 쓴 글 용량 보면서 오르가즘을 느끼는 니시오이신 워너비인 3류 글쟁이가 좋아할 만한 전개잖아.

 

".....그래서, 이 동굴엔 박쥐가 있다는 건가요?"

 

박쥐는 야행성이고, 낮 동안은 동굴 같은 곳에서 쉬다가 밤이 되면 먹이를 찾으러 나타난다. 석양을 배경삼아 무리지어 동굴에서 튀어나오는 박쥐 떼는 다큐멘터리와 호러영화의 단골손님이다. 혐오감과 공포감이 드는 모습과는 반대로 사회성이 뛰어난 이로운 동물이지만, 그 겉모습 때문에 악마의 전령이나 흡혈귀의 사도 쯤으로 취급당하는 불쌍한 동물이다.

 

"예. 그것도 상당수. 그런데, 입구가 막혔는데도 지금 없는 걸로 봐선......"

 

그리고, 날아다니는 동물 답게 대사가 매우 빠르다. 하루라도 굶었다간 목숨을 유지할 수 없다.

지진으로 인해서 동굴의 입구가 막혔다. 열린 건 오늘이다.

 

"......."

 

바깥과 단절된 공간 속에서, 이 박쥐들은 굶주림을 맞이했다. 천장에도, 바닥에도 시체는 보이지 않지만 어떤 끝을 맞이했는지 쉽게 추측할 수 있다. 어딘가에 유폐당했다는 점에선 우리와 같지만, 적어도 우린 먹을 거라도 찾을 수 있었다. 불편하지만 목숨은 유지할 수 있었다. 사치코가 있었으니까. 

 

"쇼코 씨?"

 

"잠시만......"

 

사치코가 없었다면 지금쯤 추위와 배고픔, 절망 속에서 죽었을 수도 있다. 어쩌면 독버섯을 잘못 먹고 온 몸을 비틀며 내장을 쏟아내다 죽었을 수도 있었겠지. 먼저 간 친구들을 먹거나, 아니면 산 친구들을 죽여서 먹었을지도 모른다. 아마도, 허약한 내가 가장 먼저 죽었겠지. 지금까지 알던 세상과 단절되었지만 운 좋게 살아날 길을 찾은 우리들, 마찬가지로 단절되고 살아날 길조차 갖지 못했던 박쥐들. 저 안 어딘가에 있을 박쥐 떼의 시체가, 어쩌면 우리의 마지막이 되었을 수도 있다. 그리고 언젠가, 이곳을 찾아온 알 수 없는 누군가에 의해 백골이 되어 코우메가 찾아낸 해골처럼 땅 속에 묻혀버리겠지. 세간이 꽤나 시끄러워질 지도 모른다.

 

"......"

 

메탈을 추종하는 자로서 영 어울리지 않는 행동이지만, 땅에 십자가를 긋고 손을 모아 잠깐 기도를 올렸다. 아주 잠깐. 내 행동의 의미를 알아챈 모두가, 조용히 입을 다물고 고개를 숙였다.

 

"........."

 

어둠 속에서만 살아가던, 어둠 속에서만 날개짓하던 어둠의 종자들, 내 먼 동족들에게 애도를.

 

"........오늘은 늦었어. 이만, 돌아가자....."

 

코우메가 내 어께를 잡고 일으켜세웠다. 씁쓸한 기분을 안고, 동굴을 뒤로한다. 바닥에 흩뿌려진 똥들을 조심스레 피하며 야트막한 절벽을 거슬러 올라가 동굴을 나온다.

 

"불쌍해....."

 

누군가가 말했다. 한 사람을 빼고 고개를 끄덕였을 거라 생각한다.

 

그리고, 뒤이어 사치코가 말했다. 천진한 목소리로, 혹은 지금 상황이 잘 이해가 안 된다는 목소리...... 로?

 

"박쥐 똥이 떨어진 자리에 박쥐들이 없는 걸 보니 반대편 입구를 통해 나간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하려 했는데 왜 갑자기 어두워지는 거에요? 혹시 제 빛나는 귀여움이 동굴 분위기를 다 망친 거에요?"

 

".......에?"

 

.......야 잠깐 또 이런 전개야? 슬슬 질리지 않았어? 무슨 닥터 스트레인지 영화판도 아니고 분위기가 왜 이리 휙휙 바뀌는 거야? 나 혹시 마지막 기운을 짜내서 태클을 걸어야 하는거야? 그런거야? 모리쿠보도 미레이도 마유도 코우메도 진지하게 묵념했는데 이러기야?

 

".....모리쿠보도 분위기 읽고서 아무 말 안했는데요."

 

"후?"

 

노노는 상냥하구나. 하지만 여기선 조금만 더 상냥해줬으면 했는데. 하지만 괜찮아. 남은 넷은 조용히 묵념을....

 

"나도.... 분위기가 좋아서.... 에헤헤....."

 

"후힛?!"

 

이 S를 봐! 생명이 허망하게 져서 침울해하는 분위기가 좋다고 하잖아?! 애초에 알고서도 즐긴 거면 인성질 갑인 각 인정?! 조마님이랑 버언님도 서너 수는 무를 사디스트 맞지?!

 

"음..... 마유도 시체 냄새나 기척이 안 느껴져서 어디론가 나갔을 거라고 생각했긴 해도......"

 

"히얏?!"

 

넌 애초에 기대도 안 했지만! 것보다 기척이라니 뭐야?! 냄새는 그렇다쳐도 기척은 대체 무슨 신개념이야?! 죽음에 익숙하다는 흉측한 설정이라도 붙은 거냐?! 왼손의 리본은 리스트컷을 감추기 위한 도구라는 설정 지워지지 않았어?! 왜 갑자기 이상한 설정을 붙이는 거야?!

 

"설마... 설마 미레이 너도...."

 

"아, 뭐... 그야 상식적으로 평범하게 생각하면 말이지....."

 

"미레이 너도냐!!!!! 정했다!! 다음 앨범은 로마시대를 배경으로 써주마!! 카이사르의 죽음을 애도해주마! 13일의 금요일을 테마로 잡아서 코우메랑 합동곡을 내 주마!! 브루투스 너마저!!! 고우 투 헬!! 유다랑 브루투스랑 그외 한명과 같이 코큐토스 바닥에서 루시퍼 개껌이나 되어라아!!!!"

 

"쇼코... 의외로 문학적이네요....."

 

나 혼자 절찬리 폭주하다 진짜로 폭사하는 와중에 노노만이 상냥했다. 아리가또 노노 쌩유 모리쿠보.

 

 

------

 

 

"......이 동굴을 지나면 빠져나갈 수 있는 건가?"

 

다음날, 우리는 동굴 앞에 모였다.

 

"적어도, 다른 곳으로 나갈 수 있다는 게 확실해요. 안쪽엔 박쥐들도 자고 있었어요."

 

지진은 거대 메기신이 몸을 틀 때마다 일어난다는 옛 이야기가 있는데, 그게 사실이라면 이번 지진은 데우스 엑스 메기나로 불러야 할 지도 모른다. 지진과 분화 때문에 고립당하고, 또 그 때문에 새로운 길이 열린다. 고생해서 대가를 쟁취하는 게 아닌, 고생의 대가를 별 관계도 없는 하늘이 내려주는 고전문학의 클리셰가 지금 이 현장에서 쓰이고 있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여기 있었다면 국민의 우민화를 꾀하는 일본정부의 술책이라고 비판했을 게 분명하다. 틀림없다. 내기해도 좋다. 판돈으로 한정판 싸인 포스터를 걸 수도 있다. 이거 원래 회사에서 관리하는 거라고.

 

"그럼 빨리 가요."

 

마유가 재촉했다. 마유도 프로듀서를 만나지 못해, 인내심의 한계가 다가오고 있는 듯 했다. 인내심의 한계가 다가오기 전에 손에 든 그 총을 사치코에게 넘겨줬으면 한다. 그리고 코우메는 날 방패삼아 등뒤에 숨지 말았으면 한다.

 

"안돼요."

 

"왜죠?"

 

사치코와 마유 사이에서 불꽃이 튀었다. 생존여왕과 최강얀데레가 싸우기 시작하면 우리가 말려들어가 죽는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져나가는 거랑 마찬가지다. 마키아벨리가 말했듯이 여기선 누군가의 편을 드는 게 생존률을 높이는 방법이다. 어설픈 중립은 적대보다 나쁘다. 그럼 여기선 누구 편을 들어야 하냐면.....

 

"나도.... 빨리 나가고 싶은데..... 양송이버섯 수확시기가....."

 

"모리쿠보도 더 이상은 무-리 에요...."

 

"나도.... 밀린... 공포영화들.... 봐야 돼....."

 

"이 이상 있다간 내 펑키한 옷이 걸레조각이 될 거라고......"

 

당연히 마유지. 자 5대 1이라고 대장님. 다수결의 원칙에 의해서 저 동굴 안을 전진했으면 하는데. 난 시티 레이디라고 쨔샤.

이쯤 하면 못 이긴 척 하면서 양보해주겠지.... 라고 생각하던 찰나, 사치코가 '이런이런 나 없인 안되는 친구들이구만~'이라고 말하는 듯 한 짜증귀욤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어젯 밤에 있던 지진 때문에요."

 

........그렇다. 지진은 멈추지 않았다.

똥싸개걸즈가 데뷔한 첫날밤, 우리가 모두 자던 와중에도 지진이 또 한번 있었다. 사치코가 빨리 깨워서 우릴 산장 바깥으로 끌고 나가지 않았다면...... 좀 덜 추웠을 거다. 산장은 멀쩡했다. 하지만 동굴이 멀쩡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만일 동굴 안을 지나다 지진이 일어난다면, 그래서 동굴이 무너져내린다면.......

 

"그리고, 동굴 내부에서 쓸 연료와 오래 먹을 식량이 아직 완비되지 않았어요."

 

"그거라면, 벌써 상당히 많이 모았잖아요."

 

"동굴 안은 상당히 추울 거에요. 그리고 추운 환경 속에선 칼로리를 많이 섭취해 둘 필요가 있고, 무엇보다 동굴 안에서 얼마나 빨리 움직일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어요. 최악의 경우, 폭 6, 70센티미터 정도 되는 틈새를 지나가야 할 수도 있어요. 지형도 불분명한데다가 굴 속에 얼마나 많은 샛길이 있을지도 장담할 수 없어요."

 

하늘에서 팩트가 빗발치고 사치코가 팩트로 마유를 후려쳤다.

 

".....후에엥~ 프로듀서~ 보고 싶어요오오......"

 

잠시 입을 다물고 있던 마유가 꿇어안고선 눈물을 흘렸다. 품엔 샷건을 곰인형처럼 안았지만 귀엽... 아니아 속지마라 호시 쇼코 이건 사이코 얀데레라고. 왼손이 멀쩡하다는 건 사실 옷깃으로 절묘하게 가려서 그런 게 분명하다고.

아, 저희는 지지철회합니다 팩트로 때리지 말아주세요. 당신이 무심코 던진 팩트 누군가에겐 폭력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가장 큰 이유가 따로 있어요."

 

".....더 큰 이유?"

 

넷의 눈이 사치코에게 쏠렸다. 자기에게 시선이 몰리자 사치코가 좋아가지고 헤벌쭉거린다. 울고 있는 마유에겐 아무도 신경 안 쓴다. 이것이 바로 냉혹하고 차가운 정치의 세계! 두렵다!

 

....사치코의 말이 끝난 후, 마유가 조용히 일어섰다.

 

".....동굴 안에서, 그곳 지리를 다 꿰고 있고 총도 쓸 줄 알고 우리보다 신체적으로 우월하고 무엇보다 사람을 암매장할 정도로 흉악한 사람을 만나서 살아남을 수 있는가, 하는 거에요."

 

저 눈빛, 나처럼 그냥 폭주하다 죽은 눈이 아니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 가장 믿음직스러운 눈빛이기도 했다.

 

"......사쿠마 마유, 작전을 준비합니다. 지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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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다음화나 다다음화 쯤 완결이 나올 것 같습니다.

사실 이 소설의 장르는 고전 아동 스릴러였습니다.

 

 

 

 

 

 

 

시험이 오늘 끝났습니다. 거 참 오래도 끈다. 소설 좀 쓰자 이 지잡대.... 가 아니라 이 지거국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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