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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 曰 "아 글쎄, 저 프로듀서 안 한다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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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10-25, 2016 07:21에 작성됨.

하지만 이어지는 동네 아저씨의 일침.

"하지만 자네, 일자리도 없잖은가."

"큿!"

"이미 말했다만, 자네를 보는 순간 팅, 하고 왔단 말이지 이게. 자넨 분명 프로듀서의 그릇이야."

 

으음, 이 아저씨 엄청 끈질기네. 조금만 어조를 강하게......

 

"하지만 전 그런 쪽으로 내세울 게 전혀 없는데요..... 뭣보다 제가 아저씨 빽으로 들어가 봐야 낙하산일거고 면접 보면 떨어질텐데, 뭐하러 갑니까."

"........." 

"그럼 가볼게요. 이만."

 

이렇게 말하고 돌아서 걸어가는 날 붙잡은 아저씨가 손에 무언가를 쥐여 줬다.

 

"잠깐! 이건 가져가게."

'.......346? 웬 명함을......'

"언제든 찾아오게!"

 

나의 손에 들린 것은 명함. 이 아저씨가 있다는 예능사무소일까. 나 같은 걸 일부러 주워다 쓰려고 생각할 정도라면 큰 곳은 아니겠지. 나는 그렇게 되뇌이며 명함을 바라보다가 이내 아저씨에게 목례하고 그 자리를 빠져나온다.

 

"하아, 직업이 생기는 거야 좋지만서도, 민폐는 끼치고 싶지 않단 말이지. 이 꼴로 가면 분명 일만 망쳐 놓을 거고."

 

무엇보다 나는 프로듀서가 무엇을 하는 것인지도 정확히 모른다. 아이돌들의 뒷바라지 같은 걸 하는거 아냐? 정도로만 기억할 뿐. 이래저래 머리를 굴리는 나의 뱃속에서 연료 충전요청음이 들려온다. 꼬르륵.

 

"아, 그러고 보니 밥 안 먹었지. 역 앞에라도 가서 먹을까."

 

 

역 앞 편의점에서 배를 채운 나는 다시 길에 나선다. 다만, 이번엔 정말로 갈 곳이 없다.

 

"......그러네. 편의점에서 일하는건 밤이고. 뭘 해야 하지?"

 

이럴 때 나는 보통 걷는 걸 택한다. 집과의 거리는 제법 되지만, 일종의 산책이라고 할까. 덤으로 이렇게 바깥바람을 채워놓으면 왠지 컴퓨터 게임이 잘 되더라는 것이다. 물욕템이 갑자기 나와준다거나.

 

??? "......저기요? 저기......요?"

 

계속 누군가가 저기요- 하며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하지만 나랑은 관계 없는 일이다. 그래. 관계없지.

 

"저, 혹시 뭔가 도와줄 게 있을까요?"

 

......하지만 아무도 안 나서는 상황이라면, 내가 나설 수밖에 없잖아? 라고 속으로 중얼거리며 나는 얼굴에 철판을 깔고 목소리의 주인공에게 다가간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귀여운 여자애였다. 양갈래로 땋은 갈색 머리칼에 살짝 주근깨가 붙은 얼굴. 그리고 안경 너머의 검은 눈동자. 자기의 이름을 -묻지 않았는데- 오쿠야마 사오리라고 소개한 그 여자애는 살짝 위축되어 있는 감은 있었지만, 차분하게  자기 상황을 설명했다.

 

"어...... 그러니까, 이곳에서 아이돌 사무소를 찾는다고요?"

"맞아요! 저, 아이돌이 되고 싶어서 상경했드래요!"

 

어? 뭔가 독특한 억양이 나온 거 같은데. 뭐 알아들었으니깐 됐어, 라고 속으로 넘기고, 나는 이야기를 계속한다.

 

"혹시 특정한 어느 사무소를 찾는 건가요?"

"아니예요...... 일단 어디든 좋아요."

"큰 데가 좋지 않을까요? 유명해지기도 편하고."

"전 지금 찬 물 더운 물 가릴 처지가 아니어서요......"

 

아이돌을 지망하는데 특이한 사연이라도 있는 걸까? 하고 나는 사오리를 바라본다. 하지만 전혀 모르겠다. 나의 눈에 사오리는 그냥 평균 이상으로 귀여운 여자애일 뿐이다. 어디 가서 외모로 꿀리진 않겠지만 아이돌로서 내세울 외모는 아니라고, 그렇게 생각한다.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지만.

 

"흐응, 뭔가 급한가 봐요?"

"급한 것까진 아니지만요...... 저어, 듣고 웃지 않겠다고 약속해주시우야......아니, 그러니까, 약속해주세요."

"어, 엣. 넵."

 

사오리는 잠깐 생각하는 것 같더니 이내 입을 연다.

 

"저, 저희 마을을 위해 아이돌이 되려고 해요."

 

나는 순간 얼굴에 물음표를 띄운다. 마을을 위해서라고...?

 

"그게, 저희 마을은 내세울 만한 게 아무것도 없으니까요. 그러니 제가 아이돌이 되어 성공한다면, 그, 저희 마을도 유명해져 사람들이 덜 줄어들지 않을까 싶어서......"

"......하지만 그거, 사오리 씨한텐 아무런 득도 없는 거 아닌가요? 뭐, 아이돌로서 보수야 있겠지만."

"하지만 마을 사람들이니까요. 저, 정말로 마을이 잘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이상한 걸까요?" 방긋

"?!"

 

아, 방심한 순간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 정도로 사오리의 미소는 귀여웠다. 물론 톱 아이돌들의 자태에 비하면 어떨런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순간 사오리의 미소에서, 죽 동경하던 무언가를 발견했다. 그러니까 그건, 이미 나는 몇 년 전에 버린 유치한 꿈과, 불확실한 미래였다.

 

"......저기?"

"아....... 맞아, 그래."

"???"

"사오리 씨는 이상하지 않아요. 걱정 같은건 안 해도 되니깐!"

"......! 고마워요!"

"감사까지야. 자, 그럼 일단 주변의 예능사무소 위치를 찾아보죠."

 

 

<다음 날>

어쩌다 보니 결국 다음날에도 나는 사오리의 아이돌 구직을 돕게 되었다.

 

"하아...... 다행이예요. 그래도 이력서를 받아주는 곳이 아예 없진 않았네요! 어제도 그렇고 도와주셔서 감사해요!"

'글쎄, 어디까지 좋아해야 할까......'

 

나는 대충 눈치채고 있었다. 사오리의 약간은 촌스러워 보이는 옷차림에 면접관의 표정이 기묘하게 변했다는 걸. 분명, 십중팔구 사오리의 이력서는 휴지통행일 것이리라. 연예계에서 일하려 했던 건 아니지만, 면접관들의 표정은 내가 한때 여기저기 구직 활동을 했을 때 자주 봐 온 표정과 끔찍할 정도로 닮아 있었다.

 

"......이렇게 귀여운 애인데 말야."

"네? 방금 뭐라고 말씀하셨드래요?"

"아, 아무것도."

 

부끄러워져 버려 시선을 돌리기 위해 스마트폰을 꺼내려던 나의 손에 다른 뭔가가 걸렸다. 그건......

 

"아, 그러고 보니 이런 예능사무소도 있었지."

"엣...... 에에엣?! 그거, 346 프로의?!"

 

에, 반응이 이렇다는 건 상상 외로 큰 곳인가?

 

"거기...... 근래 들어 아이돌 업계에 뛰어들어 빠르게 영향력을 키워가는 회사여요! 원래도 대기업이라서 까다로운 곳인데......"

 

그 아저씨 대단하구먼. 그 때, 나에게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의 선행이 떠올랐다.

 

 

내가 상상하던 것 이상으로 346, 아니, 미시로 프로덕션은 엄청나게 큰 곳이었다.

 

"오 갓...... 이거 무슨 성 같은데?"

"그러게요......"

 

거진 일 년간 입지 않은 수트를 입고 온 나도 위축되었지만, 사오리의 표정은 긴장과 기대감이 뒤섞여 더더욱 묘한 얼굴이 되어있었다. 솔직히, 그 모습도 귀엽다....... 아니아니, 넋 놓지 말고 나아가 보자.

 

"자, 가 보죠. 그 아저씨를 만나러."

 

애써 표정을 풀어보이며 나는 사오리를 이끌고 로비에 들어섰다.

 

 

"와아아아......"

 

사오리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온다. 이제까지 가 봤던 그 어느 프로덕션보다도 큰 회사인 거야 건물 외양만 봐도 알겠지만, 내부는 더더욱 세련되었다.

 

"마치 성 같아요......"

"뭐, 그래서 미시로 아니려나. 일단 안내 데스크를 찾아보죠."

 

 

 

몇 분 후, 지적인 외모의 카운터 여직원의 안내 -와 더불어 기묘한 눈빛을 좀 쐬었지만- 를 받아 간 어느 작은 방에는 예의 그 '아저씨'가 있었다.

 

"아저씨, 안녕하셔요."

"결국 올 줄 알았다네. 그런데 옆의 그 아가씨는 누군가?"

 "그게......"

 

내가 지금까지 있던 일을 설명하는 동안 '아저씨'의 표정은 말할 수 없이 진지해져 있었다.

 

"......뭐, 이런 일이 있어서 사오리 씨를 데려온 겁니다. 그러니, 부탁드립니다. 전 상관없으니 이 사람을 아이돌로 만들어 주세요."

"호, 이 아가씨를? 확실히 나쁜 프로포션은 아니구먼. 그래서, 아가씨의 이름은?"

"지, 지는 오쿠야마 사오리라고 해요! 잘 부탁드립니다!"

 

아저씨는 잠깐 흐음, 하고 소녀와 나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곧 나를 쳐다보더니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 왠지 불안해졌다.

 

"자, 그럼 자네도 하는 거겠지? 프로듀서 일."

"에, 에엑?"

 

역시는 역시 역시구먼. 하아......

 

"이런 유망한 아이까지 데려오고, 프로듀서가 되겠다는 마음가짐이 보인다만."

"아니아니, 이 아이는 도와주려고 데려온 거고......"

"그거 알고 있나? 자네가 저 아이를 여기까지 데려와 소속 아이돌로 만든 것, 스카우트라고 하는 건데 말이지? 스.카.우.트."

"......"

 

에, 뭐야. 나 뭔가 이상한 지뢰 밟은 거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속으로 내가 그러거나 말거나 아저씨는 헛기침을 두세번 하더니 다시금 표정을 바로잡고 말을 이었다.

 

"그리고 여자아이 인생의 전환점을 만들어주었는데, 자네가 끝까지 책임져 줘야 되지 않겠나?"

"에,에엣,에에에에엣"

 

이건 또 무슨?!

 

"엑엑거리지 말고, 이젠 자네도 프로듀서 일을 한 가지 해냈으니 더 이상 내세울 경험이 없다는 말로 퉁치진 못할 게야. 안 그런가?"

"으으...... 하지만 사오리 씨도 저보단 좀더 뛰어난 프로듀서를 만나는 게 도움이 될 겁니다. 그렇죠?"

 

"어...... 물론 뛰어난 프로듀서라면 좋겠지만, 그, 그러니까, 저랑 하루라도 더 아는 쪽이 프로듀서로서 더 낫지 않을까 싶어서요. 게다가 그...... 믿음직하기도 하고."

"에에에에에에?!?!?!?!"

 

이 사람들은 프로듀서도 아닌 사람을 상대로 무슨 소리를 하는거야?!

 

 

<몇 달 뒤>

 

결론적으로 말해서, 난 지금, 이 회사에 있다.

 

"호, 그래서 바로 부장님 빠와로 들어온 거야?"

"아뇨, 마지막 내기로 제가 면접을 통과하느냐 마느냐였죠. 제가 면접에서 떨어지면 다신 상관 않는 조건으로."

"근데 그럼 네 쪽이 유리하잖아?"

"그게...... 저도 일단 돈이 궁하기도 했고, 사오리가 잘 하는지 지켜보고 싶기도 하고, 뭐 그런저런..."

"뭐, 요는 말로만 물린거지 뒤에선 적극적이었던 거구만? 요 츤데레 녀석!"

 

선배 프로듀서가 등짝을 팡팡 쳐 온다.  뭐, 그저 웃을 수밖에.

 

"아하하하......"

"그런데 너, 뭐라고 부르면 되냐? 여긴 하도 P가 많아서 말이지."

"그건......"

 

확실히, 이 프로덕션엔 P(프로듀서)가 엄청나게 많다. 게다가 이들이 서포트하는 아이돌은 약 200명. 이 추세로 계속 늘어나면 아마도 크세르크세스 대왕을 상대로 방어전도 펼칠 수 있지 않을까. 빨간 망토에 창을 들고 말이지.

 

아, 익숙한 실루엣이 눈에 들어온다. 사오리구만.

 

"궤도P씨, 저 레슨 끝났대요~"

"아, 끝났구나. 그런데 웬일로 찾아온 거야? 기숙사 동료들하고 갈 줄 알았는데."

"간만에 P씨랑 식사라도 할까 싶어가......"

 

오랜만에 보니 어울려 주고 싶은데. 하지만 일이 아직 남아 있다. 견습기간조차 없이 계속 굴려먹는 덕택에 일의 진행과 동시에 익히기까지 해야 되니, 내 몸은 그야말로 엉망진창이다.

 

"아, 미안. 오늘은 난 아직 일거리가 있어서."

"...."

"괜찮다면 다음에라도 먹자?"

"네~"

 

뭐, 결국 이렇게 되었다. 사실 일하다 보니 의외로 내 적성에 맞기도 했고. 무엇보다 사오리 녀석이 성장하는 걸 보는 게 정말 즐겁다.

톱 아이돌은 사오리의 시야 안에 아직 없을지도 모르겠다만, 사오리가 바라는 길의 끝을 보게 해주기 위해, 난 오늘도 일한다. 힘내ㅈ.......어라?

"예이 예이, 이제 아이돌이랑 노닥거리는건 그만두고 일하시지요~ P씨?"

"아따따따따! 사무원씨 완전 악마아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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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어찌 작성 완료. 밤중에 삘받아서 쓰다가 지금 이 문장 쓰면서 옆을 보니 해가 떴네요. 으아아아악.

처음엔 글솜씨 때문에 아 이걸 보였다가 쪽팔리면 내 마음이 죽어버려...... 라고 생각했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이런 걸로 뭔가 배울 수 있다면 그걸로도 좋지 않을까 싶어 슬쩍 던지고 가봅니다.

 

P.S. 생각해보니 자게에 가입인사도 안해서 글로 만나뵙는건 이쪽이 처음이네요. 반갑습니다-

P.S.2 새벽에 삘받아서 졸면서 쓰느라 빠진 부분 및 매끄럽지 못한 부분을 일부 교체해 보았습니다 (오후 2:45 수정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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