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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에 피는 벛꽃 - 10

October 12, 2016 (수) 13:14에 작성함.

21320

꽤나 따스한 햇빛이 눈가에 비친다. 두 눈에 내리쬐는 빛이 부담스러워질 무렵 때맞게 알람이 울린다. 부산스럽게 울리는 알람의 짜르릉 거리는 소리가 귓가를 때린다. 반절밖에 깨지 않은 정신으로 베개맡에 놓은 손목시계를 집어 바라봤다. 오늘은, 토요일이다. 몇 일 전에 엄청나게 지루하던 방학식을 마치고, 담당주임과 교감의 생 떼를 어떻게든 맞추느라 고생했던 회식 자리도 끝났다. 유카리와는 일주일 전 롯폰기 근처에서 거하게 술을 마신 뒤, 호텔에서 샴페인을 한 병 더 땄다. 그 후는 기억나지 않는다. 유일하게 기억 나는 건, 다음 날 아침, 유카리가 포스트잇에 작게 '먼저 나갈게. 계산은 해뒀어.' 라고 써 놓은 글귀를 읽는 동안 내가 느낀 짤막한 무력감이다. 나머지 기억은 목 뒤의 긁힌 상처와 가슴께에 무수하게 난 선홍빛 이빨 자국이 기억하고 있다. 나는 이부자리에서 일어나 이불을 접고 베개를 두어 번 턴 뒤, 요를 접고 장롱 안에 집어넣었다. 9시도 되지 않았지만, 벌써부터 공기는 더위를 머금고 있다. 단순한 계절의 더위뿐만이 아니라, 사람들의 열기도 함께 머금은 더위. 오늘은 스미다 불꽃축제의 날이다.

 

간단하게 식빵을 굽고 대각선으로 식빵을 자른다. 유치원생이 그리는 집의 지붕 같은, 조화로운 삼각형 두 개가 만들어진다. 냉장고에서 딸기잼이 담긴 유리병을 꺼내 뚜껑을 열었다. 어젯밤 캔맥주와 함께 먹었던 편의점 도시락에 동봉되어 있던 플라스틱 숟가락으로 잼을 퍼내어 식빵에 발랐다. 카라아게의 후추 향취가 묻은 기름이 진한 딸기잼의 달달한 향취에 순식간에 묻힌다. 냉장고에서 유통기한이 이틀밖에 남지 않은 1리터 우유팩을 꺼내 입구를 열어 팩째로 마셨다. 우유팩에 붙어있던, 묶음상품이라는 것을 증명하던 기다란 테이프가 목가에서 이리저리 흔들리며 간지럽힌다. 애초에 본연의 딸기의 풍미는 존재하지 않는, 딸기잼의 그 특유의 풍미가 입천장에 닿아 간지러운 것을, 우유가 재빠르게 입 속에 채워지며 순식간에 사라진다. 우유를 자주 마시지는 않지만, 가끔 이렇게 우유가 꼭 알맞은 때가 있다.

식빵의 나머지 한쪽에 딸기잼을 바르고 주전자에 물을 약간 받아 가스레인지 위에 놓고 불을 세게 틀었다. 식빵을 다 먹고 우유를 냉장고에 집어 넣자 물이 끓었다. 머그잔에 커피 가루를 찻숟갈로 세 번 퍼담고 막 끓기 시작한 주전자를 들어 물을 부었다. 이렇게 바깥이 더워도, 커피는 자신의 뜨거움을 어떻게든 피력하느라 김을 내보냈다. 창가에 비스듬하게 떨어지는 햇빛이 커피의 김을 한층 쉽게 눈에 띄도록 증명해준다. 찬장에서 흑색 각설탕이 가득 담긴 유리병을 꺼내어 뚜껑을 열고 각설탕을 두 개 집었다. 단내가 피어오르는 각설탕 병의 뚜껑을 재빨리 닫는다. 여름의 습기가 들어가면 곤란하다. 커피에 각설탕 두 개를 차례로 넣었다. 뜨거운 커피 속에 들어간 각설탕은 자신의 형체를 재빠르게 무너뜨리며 커피 안으로 녹아 들어갔다. 딸기잼이 약간 묻은 플라스틱 숟가락으로 커피를 휘저었다. 요즘따라 TV나 신문에서 플라스틱이나 비닐의 유해성분에 대해 여러 기사를 내보내지만, 딱히 신경쓰는 편은 아니다. 으레 기자들은 위험성을 지나치게 과장하는 편이기에, 호들갑스럽게 자식의 숟가락을 낚아채는 아줌마들처럼 유난을 떨고 싶지는 않았다. 커피잔을 들어 향을 맡는다. 딸기향이 희미하게 가미된 헤이즐넛 향이 풍부하게 피어오른다. 유카리는 커피에 설탕을 넣는 걸 질색하지만, 나는 굳이 쓴 맛을 즐기는 편이 아니기에 설탕을 넉넉히 넣었다. 분명 블랙 커피가 그녀의 살짝 삐딱한 성격에도 영향을 주었으리라, 하고 짧게 생각한다.

 

다 마신 커피잔을 싱크대에 집어 넣고 기지개를 한 번 크게 켰다. TV를 틀자 아침 뉴스는 다 끝나고, 일일 연속극이 진행되고 있었다. 진부한 러브 코메디. 채널을 두어 번 바꾸자 음악채널이 나왔다. 가볍게 차려입은 기타 연주자가 홀로 클래식 기타를 연주하고 있었다. 차분한 음색 아래 현을 뜯는 소리가 귀에 가볍게 들려왔다. 나는 TV의 음량 버튼을 네 번 눌렀다. 은은하게 들리던 기타 소리가 이제는 기타 고유의 울림을 지닌 채 귓가에 들렸다. 장롱 옆 옷장 앞에 서서 옷장 문을 열었다. 희미하게 먼지 냄새가 났다. 뭐를 입을지 고민스러웠다. 먼저, 군청색 리넨 유카타를 꺼내 앞 뒤로 주름은 없는지 확인했다. 주름은 깊게 패이지는 않았지만, 유카타 위에 그려진 흰색 나뭇가지 문양에 튄 붉은 기름 자국이 눈에 띄었다. 멀리서는 잘 보이지 않지만 가까이서 보면 얼추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자국은 나름 선명하게 눈에 띄었다. 곤란하다. 2 주 전 근처 선술집에서 한 잔 할 때, 카라아게에 찍어 먹던 소스가 흐른 모양이었다. 최대한 옷에 묻지 않게 하려고 노력했는데, 나도 모르게 흘리고 만 모양이었다. 어쩔 수 없다. 유카타는 뒤로 하고 최대한 깔끔한 흰색 버튼다운셔츠와 진청색 면 반바지를 꺼냈다. 진갈색 로퍼와 나름 잘 어울릴 것이다. 팔목에 찰, 로퍼의 색과 맞는 세 줄로 땋은 가죽팔찌와 스틸 브레이슬릿 시계를 꺼내 탁상에 두었다. 유카타를 입지 못하게 되었으니, 거기에 맞게 나름 신경을 썼다는 표현을 해야만 했다. 아무렇게나 입고 나가 유카리가 쏘아대는 걸 감당하고 싶지는 않다. 꺼낸 옷들을 의자에 단정히 개어 놓고 냉장고에서 시원하게 식힌 연한 녹차를 꺼내 마셨다. 그럼에도 더웠다. 선풍기의 바람이 미지근한 바람을 내보냈다.

 

주말특선 영화의 엔딩 크레딧이 천천히 올라왔다. TV 채널을 돌리며 의자에 앉아 생각해보니, 차라리 유카타를 입는 게 나을 것 같았다. 분명 유카리는 바보같이 빨래도 안하고 사는 거 아니냐고 쏘아 밀어붙일 것이다. 어떻게든 닦아낸다면 자국을 덜 눈에 띄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의자에서 일어나 유카타를 장롱에서 꺼내 수전을 틀어 적신 뒤, 빨래비누를 기름자국에 대고 벅벅 긁어 닦았다. 비누가 젖은 유카타의 천에 닿아 거품이 크게 일었다. 대야에 물을 다시 받아 비누칠이 묻은 부분을 여러 번 헹구고, 다시 비누를 문대 빨았다. 비눗기를 완전히 걷어내자, 기름 자국은 눈에 잘 띄지 않을 정도로 희미해졌다. 꽤나 희미해졌지만, 유심하게 보면 눈에 띌 수도 있을 듯 했다. 하지만 몸을 밀착하지 않는 이상은, 그 자국은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연해져 있었다. 수건을 대어 물기를 뺀 뒤 헤어드라이어로 유카타를 말렸다. 시간은 벌써 1시 반에 가까웠다. 벌써 1시 반. 조금만 더 쉬고 3시에 출발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열차에서 내리자, 플랫폼 출구 위에 걸려있는 시계가 눈에 띄었다. 4시 15분. 5시까지는 아직 45분이 남았다. 천천히 축제를 둘러보고 올 만한 시간은 될 것이다. 개찰구에 표를 집어넣고 아사쿠사 역 밖으로 나왔다. 바깥은 정말 더웠다. 올해는 또 얼마나 쓰러질까, 하고 담담히 생각했다. 당장이라도 계란을 아스팔트 위에 던지면, 구수한 냄새가 나며 계란이 익어버릴 것 같았다. 평소라면 자동차의 소음으로 꽉 찰 4차선 도로는 자동차 대신 축제 행렬이 차지했다. 소음은 자동차 행렬과 엇비슷하거나, 더 컸다. 하지만 귀에 거슬리고 짜증을 유발하는 소음은 아니다. 오히려 들려오면 저절로 흥과 즐거움이 느껴지는 소음이다. 작은 꼬마아이 두 명이 색색의 유카타를 입고 내 옆을 스치고 지나갔다. 뒤에서 두 아이의 어머니로 생각되는 여성의 외침이 들렸다. 아이들은 거릴 것 없이, 불안정하면서도 힘찬 뜀박질로 흥겨운 인파를 헤치고 나아갔다.

나는 너무나도 더워, 더위를 쫓을 요령으로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하나 사먹었다. 푸근한 미소를 지닌 아이스크림 트럭 주인장은 천천히, 확실하게, 나선형의 이상적인 아이스크림의 형상을 만드는데 온 집중을 다하여, 누가 보기에도 정말로 완벽한 아이스크림의 형상을 만들어 내게 건네주었다. 100엔이라는 가격을 붙이는 것이 안타까울 정도로, 아이스크림의 조형은 완벽했다. 다만 아이스크림의 맛은 완벽한 조형에는 못 미치는, 부드러운 감촉을 지닌 일반적인 바닐라 맛이었다. 모든 면에서 완벽한 것을 찾는 것은 어려운 법이다. 인파에 몸을 맡기고 천천히 인파를 구경했다. 슬슬 유카리가 연락할 때가 된 것 같은데. 유카리에게 건네줄 생각으로부채를 하나 샀다. 군청색 동그란 부채 위에 노란 달과 흰 별들이 그려져 있고, 윗 켠에 짧은 하이쿠가 날린 서체로 쓰여있었다.

  스쳐간 찰나 / 이별 뒤에 찾아온 / 잊혀진 스침

일반적인 삶에 대한 격언을 적은 흔한 하이쿠. 부채의 손잡이를 쥐고 얼굴에 대고 흔들었다. 일견 차가워 보이는 색상이기에 그런지, 바람이 한결 시원했다.

 

5시는 오래 전에 지나서 해는 벌써 석양에 가까운 색을 띄었다.  사람들은 7시에 있을 불꽃놀이를 어떻게든 놓치지 않기 위해 강변에 몰려, 자신들이 만들어내는 거대한 인파를 인내했다. 유카리는 아직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이상하다. 유카리는 약속시간에 미리 도착하지는 않지만, 결코 늦지는 않는 사람이다. 30분 넘게 아무런 연락이 없는 건 이상하다. 스미다 강변 앞 안전 펜스에 기대어 유카리가 연락하기를 기다렸다. 내가 연락할 수도 있지만, 유카리는 내가 연락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자신의 집중이 방해된다는 이유에서였다. 평소라면 그녀의 요구에 군말 없이 응하겠지만, 지금은 연락을 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갑작스레 전화기의 벨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오는 것 같아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전화기가 진동하고 있었다. 전화기의 폴더를 열어 누구의 전화번호인지도 확인하지 않고 전화를 받는다. 지금 이 시간에 내게 전화 할 사람은 오로지 한 사람이다.

  [타카오?]

  "유카리? 지금 어디야?"

  [미안한데, 오늘 못 가. 일이 바빠.]

  "뭐?"

  [미안, 바쁘니까. 나중에 전화해.]

  "잠깐만, 유카리, 유카리!"

말을 완전히 끝맺기도 전에 전화가 끊겼다. 전쟁을 무미건조하게 예고하는 사자의 선포마냥, 그녀는 단 몇 마디 만으로 자신의 목적을 달성해버렸다. 나는 허무한 감정을 느끼며 전화기를 바라보았다. 그래, 유카리는 항상 일 때문에 바쁘지. 그녀는 마케팅 디렉터니까. 하지만, 일 때문에? 굉장히 현실적인 대답이자, 한편으로 굉장히 허망한 대답이다. 광고업계가 엄청나게 바쁘고 업무가 불규칙한 건 유카리를 통해 잘 알고 있다. 정확히는, 어느 정도 주변 사람이 그녀를 맞추어 주어야 할 정도로 바쁘다는 정도로 알고 있었다. 이 정도로 곤란하게 만드리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오늘은 토요일이고, 지금은 5시 48분이다. 내가 알기로, 그녀는 분명 저번 주 일요일부터 이번 주 금요일까지 쭉 회사에 출근했다. 그 중 화요일과 수요일은 집에 들어가지도 않았다. 새벽 3시에 내게 전화해서 여성용품과 간단한 먹을거리를 사와달라고 문자를 보냈으니. 그렇게 일주일의 6일을 나는 없는 사람처럼 취급해 놓고는 오늘 저녁의 짧은 시간마저도 가능하지가 않다는 것, 그게 오늘 내가 유카리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었다.

나는 갑작스럽게 전화기를 당장 저 강물에 던져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왜? 화는 생각 외로 나지 않았다.

그냥, 어이가 없다.

왜 나는 지금, 주변 사람들이 저마다 차려입고 나와 웃고 떠드는 이 스미다 강변에서, 어이없게 약속에 차인 채 덩그러니 서있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녀는 바쁘다. 그건 알고 있다. 하지만 굳이 지금에야 와서 이렇게 일방적으로 바빠야만 하는 건, 대체 왜인 건지, 나로서는 도저히 알 길이 없다. 어떤 사과를 바라거나, 위안을 바라는 것도 아니다. 그저 이해를 바랄 뿐이지만, 유카리는 내 이해 따위는 신경 쓰지 않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이해의 가능성을 전화의 수신음과 함께 끊어버렸다.

  "이리노 선생님?"

뒤를 돌아봤다. 그 아이다.

  "아베?"

나는 끓어오르는 억울함이 배인 화를 어떻게든 억누르며 그 아이를 쳐다보았다. 주홍빛 유카타를 단정히 입은 모습은 그녀의 머리카락 색 만큼이나 아름답게 잘 어울렸다. 잘 여물은 당근의 이미지가 떠오르는 주홍빛 천 위에 닿은 노란 햇빛이, 연하게 타오르듯 그녀의 소매와 발목 끝자락에 아름다운 꽃잎 무늬를 찍어 담아주고 있었다. 마치 군데군데 잔불에 닿아 타오르는 듯 해서, 당장이라도 신사 안 작은 정원에서 단풍을 쓸어모으는 작은 식귀를 연상케 했다. 동시에 말끔하게 광택이 나는 단화 속 흰 양말이 눈에 띄었다. 귀엽고, 동시에 바스라질 것 같은 아름다움을 갖춘, 지금 내가 마주한 상황 만큼이나 이해가 가지 않는 정경이다.

  "아베 양도 불꽃놀이를 보러 왔구나."

아플 정도로 답답한 머리 속 생각을 한편으로 치우고, 가능한 한 상냥하게 말을 꺼냈다. 그녀에게 아까 전에 느꼈던 감정을 내보내고 싶지 않았다. 지금은 즐거운 축제 날이고, 어쨌거나 축제에는 즐겁게 즐기는 사람도 있으면, 오히려 불화에 휩싸이는 사람도 있는 법이다. 굳이 내가 느끼는 이 좋지 않은 감정을 그녀에게 끼치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축제를 즐겁게 즐길 권리가 있다. 

  "네. 선생님도?"

  "아아, 여름 축제니까. 잠깐 밖에 나왔어."

그녀의 얼굴에 짧은 미소가 스쳤다.

  "아베 양도 누군가 기다리고 있는 것 같네."

아무런 말 없이, 방금 전처럼 짧은 미소가 희미하게 얼굴에 생겨났다 사라졌다. 그 미소 한 켠에 섞인 위화감이 느껴져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목을 고르고 그 이상한 위화감을 쫓아내기 위해 별 시덥지 않은 이야기를 꺼냈다. 날씨가 얼마나 더운지, 지나가는 사람들은 어떤지, 점심엔 뭘 먹었는지, 알아도 쓸모없고 몰라도 상관없는 이야기들을. 10분 정도 말을 꺼내며 억지로 담담함을 내보냈지만, 어려웠다. 항상 이 아이 앞에서 감정을 정리하곤 했지만, 오늘은 그녀 때문이 아니다. 내 감정이 정리하기 어렵다. 그녀가 내가 어줍잖게 꺼내는 이야기에 짤막하게 맞장구를 쳐주는 순간마다, 두 손으로 내 얼굴을 부여잡고 "실은 말이지...."라며 내 상황과 응어리진 감정을 꺼내고 싶었다. 강가 근처에서 까마귀 몇 마리가 선홍빛을 머금은 하늘 위로 날아올라 무심결에 시선이 갔다. 날개를 곧게 펴고 활강하는 까마귀 떼를 바라보던 시선을 다시 그 아이에게 맞추었다. 그녀는 여전히 까마귀 떼에게 시선을 고정하고 있다. 역광이 슬쩍 비치는 그녀의 뺨에 아주 희미한 흔적이 보였다.

  "아베?"

나는 그녀의 뺨에 손가락을 대어 그녀의 눈가를 내 눈가에 맞추었다. 뺨에 희미하게 보이는 마른 선자국. 거의 사라진 흰자 위 핏대. 한층 맑아진 동공. 이 아이는 울었다. 그 아이는 내 손을 약하게 밀어냈다. 

  "아베."

  "아무 것도, 아무 것도 아니에요."

  "무슨 일 있었어?"

눈을 내리깐 채로 아무런 말도 없이, 소매에 가려졌던 희고 고운 목선이 햇빛에 완전히 노출되어 밝게 빛나는 채로 서 있었다. 왠지 모르게 갑작스레 화가 나서, 나도 모르게 그녀의 어깨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녀는 잡힌 팔이 아픈 것인지, 숨기고 있던 감정을 들켜서 그런지 미간을 살짝 찡그렸다. 마치 내가 그녀를 혼이라도 내는 것 같았다. 당혹스러움을 느끼며 팔을 놓았다. 그녀는 아픈 듯 몸을 약간 추스렸다.

  "미안해."

아무런 말이 없었다. 주변의 소음만이 멀리서 퍼지는 북소리처럼 울려왔다. 그녀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흐느끼기 시작했다.

  "오기로, 온다고, 했는데."

울음과 히끅임이 섞인 그녀의 목소리가 멀리서 메아리치는 소음을 찢고 귓가에 들려왔다. 숨을 제대로 고르지 못해 어깨가 불규칙하게 떨렸다. 그녀가 두 손으로 눈가에서 계속해서 흐르는 눈물을 닦아냈다. 고르지 못한 숨소리 속에서, 계속해서 눈가를 훔쳤지만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그녀를 안았다. 그녀는 내 품에서 계속해서 울었다. 별다른 이유 없이 유카타에 묻어있던 붉은 기름자국이 생각났다. 손에서 부채가 미끄러져 바닥에 떨어졌다. 저 앞 빌딩에 걸린 큰 시계가 종을 울렸다. 6시다. 1시간 후면 불꽃놀이가 시작된다. 복숭아빛 색채를 띈 석양이 빌딩을 조용하게 쓸어내리고 있었다.

5분이 지나 그녀의 울음은 멈추었다. 모든 응어리를 빼낸 듯, 숨소리도 이제는 고르다. 그녀의 작은 몸에서 안정적인 숨이 느껴졌다. 규칙적으로, 느리게 어깨가 올라갔다 내려오고, 내 허리를 안고 있는 그녀의 손에 들어가 있던 힘도 이제는 느껴지지 않았다.

  "진정됐니?"

  "네."

나는 그녀가 말을 고를 때까지 가만히 그녀를 안아주었다. 그녀는 마음을 정리한 듯, 내 허리를 감싸던 팔을 풀고 내 품에서 살짝 떨어졌다.

  "불꽃놀이를 같이 보기로 했었는데."

나는 떨어진 부채를 집었다. 그녀의 눈은 부채와 정반대로 붉게 물들어 있었다. 머리카락도 약간 헝클어졌다.

  "갑자기 바빠서 못 온다고."

기시감이 느껴졌다. 그 다음으론, 동질감이. 마지막에는 상실감과 연민. 기묘하게도 그녀와 나는 모두가 저마다의 기쁨에 들뜬 스미다 강변에서, 자신의 상대에게 일방적으로 상처를 입고 말았다. 가슴 한 켠을 깊게 패인 채 황망하게 거리를 서성이다 우연하게 서로가 마주치게 되었다. 서로의 찢어진 상처를 핥아주는 두 호랑이가 생각났다. 멧돼지의 송곳니에 받혀 덜렁이는 거죽 아래에서 흐르는, 김이 오르는 핏물을 어떻게든 막아주려는 두 호랑이가. 나는 실은 나도 똑같이 약속에 차여버렸다고 고백했다. 그녀는 아무 말없이 나를 안았다. 울음은 나지 않았다. 하지만 눈물 대신이라도 되는 양 한숨을 몇 번인가 크게 내뱉었다. 한숨 끝자락에 걸친 짤막한 신음이 들릴 때마다, 그녀는 나를 더 거세게 안았다. 자신이 어떻게든 내 상실된 감정을 대체할 수 있다고 믿는 것처럼. 빌딩 위 시계의 분침은 수평선을 대체하는 것처럼 반듯하게 누워 있다. 바로 앞으로 두 커플이 지나갔다. 웃고 떠들며, 나와 그녀가 잃은 행복감을 자랑하며.

  "선생님?"

나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여전히 우리는 서로를 안고 있었다.

  "돌아가실 건가요?"

  "글쎄. 잘 모르겠어."

  "그럼, 그럼."

그녀가 내 품에 안겨 생각을 골랐다. 말하기 어려운 이야기를 꺼내려는 건가? 무엇을 말하려는지 마음속에서 상상하면서 그녀의 대답을 기다렸다.

  "그럼, 같이 불꽃놀이를, 보지 않으실래요?"

몇 번이고 끊기면서 어떻게든 이은 말을 듣자, 갑작스레 생각이 멈춰버렸다. 그녀는 말을 꺼낸 게 부끄러워 나를 안은 팔에 힘이 들어간 것도 모르는 것 같았다. 약간 숨쉬기 번거로웠다. 나는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라 머뭇거렸다.

나랑 같이 불꽃놀이를? 평소였다면 분명 거절했을 것이다. 교생과 학생 둘이서 차려입고 나와 불꽃놀이를 보는 것은 이상한 일이라면서. 그러나 지금은 오히려 그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여기서 이렇게 만난 건 우연이 아니고 필연인 것이고, 앞으로 나와 그녀가 둘이서 불꽃놀이를 본다는 것도 지극히 당연하게 느껴졌다. 차인 충격이 너무 큰 것인지, 그녀에게 동질감을 너무 느낀 건지, 아니면 그냥 순간의 변덕이 너무 거센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냥 당연하다고, 그렇게 밖에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녀는 머뭇거리며 고개를 들어 내 눈을 바라보았다. 품에 안긴 채, 불안함을 속에 품고 올려다보는 그녀의 얼굴을 보자 작은 토끼가 생각났다. 눈 안에는 무언가를 기대하면서도, 자신의 기대가 너무 지나친 건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섞여 있었다. 눈가 끝자락에 눈물이 고여 오르는 것 같은 착각이 일었다.

  "아아, 그래. 나나."

그녀는 어렴풋하게 보이는 눈물을 훔쳤다. 뺨에 그어진 눈물자국이 더 이상 보이지 않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그래, 나나. 오늘은 같이 있는 거야. 나는 그녀에게서 한 발짝 떨어져 손을 내밀었다. 나나가 내가 내민 손을 잡았다.

 

나나와 나는 40여분 남짓한 남은 시간 동안 주변의 행렬을 천천히 구경하며 돌아다녔다. 행상인이 파는 라무네를 두 병 사서 나누어 마셨다. 약하게 트름이 났고, 나나는 그걸 듣고 웃었다. 금붕어를 뜨려고 하다 그만 뜰채를 놓쳐버렸다. 나와는 다르게 나나는 금붕어를 두 마리나 건져올렸다. 야키소바와 타코야키를 사서 같이 나누어 먹었다. 나나가 타코야키를 집어먹다 입가에 가쓰오부시가 붙은 소스가 묻었다. 그 사실을 모른 채 열심히 야키소바를 먹는 모습을 보고 웃었다. 그녀는 늦게나마 그 사실을 알아차리고 얼굴이 붉어졌다. 앞에서 코르크 총을 쥔 남자가 기쁜 듯 소리를 질렀다. 가게 주인장이 초등학생 만한 커다란 인형을 그 옆에 있는 여자에게 안겨주었다. 나도 행상 앞에 가서 금액을 지불하고 코르크 총을 쥐었다. 세발을 쏴서 겨우 작은 토끼 인형 하나를 맞추었다. 다행스럽게도, 나나는 주홍색 당근을 입에 문 분홍빛 토끼 인형을 마음에 들어 했다. 거리에서 불꽃놀이의 시작이 10분 남았다는 안내 방송이 울려왔다. 나는 나나의 손을 잡고 강가 근처, 인적이 그나마 적은 도로로 갔다. 운이 좋게도 사람이 없는 벤치를 발견해 앉았다. 폭죽을 실은 배가 스미다 강을 유유자적히 거슬러 올라갔다. 바글거리고 시끄러운 거리와 정 반대로, 작은 배 몇 척과 얌전한 파동이 이는 강변의 기묘한 대비가 자못 신비롭게 느껴졌다. 폭죽을 실은 배는 강변 한가운데에 멈춰 섰다. 다행히도 우리가 앉은 벤치에서는 눈에 잘 띄는 위치였다. 안내방송이 다시 들려왔다. 배에서 사람들이 폭죽을 정렬했다.

  "선생님."

  "응? 왜, 나나?"

  "실은"

첫 번째 폭죽이 도쿄의 밤하늘 위로 솟아올랐다. 진한 꽁무니를 내빼며 오른 폭죽이 잠시 빛을 잃었다가, 화려하게 붉은 빛을 스미다 강에 흩뿌렸다. 이윽고 노란빛, 주홍빛 불꽃이 솟구쳐 올라와 자신의 빛을 자랑했다. 나나는 자신이 할 말을 잊은 채 두 눈에 밝은 불꽃을 가득 담고 있었다. 감탄에 빠져 입을 살짝 벌린 채, 아름답게 흩어지는 불꽃이 담긴 그녀의 눈동자는 불과 한 시간 전과는 다르게 맑고 투명했다. 폭죽이 연거푸 솟아올랐다. 터지면서 피어오른 연기가 불꽃 안에서 희미한 자태를 드러내며 불꽃과 섞여 들어갔다. 진한 연기 속에서는 은은하게, 연기 밖에서는 강렬하게, 폭죽은 자신의 빛을 어떻게든 뽐냈다. 바람이 약하게 불어와 연기를 조금씩 밀어냈다. 스탭들이 폭죽을 쏘아올리는 속도를 약간 늦췄다. 그 덕에 각각의 폭죽이 터져 밝게 빛나며 사그라드는 모습을 천천히 감상할 수 있었다. 나나는 내 어깨에 자신의 몸을 기댔다. 작고 가벼운 나나의 몸이 조용히 숨을 내쉬는 게 어깨에 느껴졌다.

잠깐동안 불꽃놀이가 멈췄다. 사람들이 웅성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스탭들이 일반적인 폭죽과 다른 포장이 싸인 폭죽에 불을 붙였다. 선명하게 빛나는 에메랄드 그린이 하늘 위에 희미하게 남은 군청빛을 몰아내고 자신의 빛으로 대지를 밝게 채웠다. 앞에서 재는 척하는 남자가 여자에게 저 색은 올해 처음 쓰는 색상이라며 아는 체를 했다. 바로 주홍빛, 붉은빛 폭죽이 올라와 터졌다. 사람들의 환호와 폭죽의 굉음은 저마다 사람들을 고양시키며 환희를 일깨웠다.

 

불꽃놀이가 끝나자 사람들은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이야기를 나누며 돌아가기 시작했다. 택시 정류장엔 택시보다 사람이 세 배는 더 많아 보였다. 버스 정류장도 마찬가지였고, 아마 전철 역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나와 나나는 근처 카페에 들어가 잠깐동안 시간을 보냈다. 아이스커피 한잔과 쇼트케이크를 주문했는데, 직원이 케이크는 매진되었다고 해 어쩔 수 없이 프라푸치노를 주문했다. 주문한 커피를 받고 창가의 자리에 앉았다. 설탕스틱 두 개를 뜯어 커피에 넣고 빨대로 커피를 저었다. 얼음이 찰랑이는 소리가 들렸다. 나나와 나는 별 말도 없이 불꽃놀이의 여운이 마음 속에서 사그라들기를 기다리며, 창가 앞에서 사람들이 웃고 떠들며 지나가는 걸 말없이 쳐다봤다. 나는 아까의 여운이 남은 그녀의 눈에서 이유를 알기 어려운 작은 슬픔을 발견했다. 어쩌면 잘못 발견한 걸지도 모른다 생각하며, 나나를 재차 바라보았다. 바깥 인파에 시선이 고정된 나나의 얼굴에 방금 발견한 슬픔이 희미하게 비쳐올랐다. 뭘 생각하고 있는 건지 궁금했다. 자신을 차버린 건방진 남자친구를 생각하고 있는걸까. 아니면 비록 한 순간이지만, 그를 저버리고 나와 시간을 보낸 걸 후회하고 있는걸까. 지로 녀석의 얼굴이 퍼뜩 떠올랐다. 그 녀석인가? 분명 그때는 푹 빠져 있어 놓고는 2주도 지나지 않아 이렇게 빨리 차버리다니. 요즘 애들은 너무 빨리 식어버린다고 생각했다. 생각으로는 지로의 이름을 꺼내며 나나에게 녀석의 험담을 내뱉어 나나를 위로하고 싶지만, 그녀의 슬픔이 섞인 차분한 표정을 무너뜨리고 싶지 않아 조용히 커피를 마셨다. 오늘 저녁 전에만 하더라도 나나를 약간은 번거로운 아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그저 작고 예쁜, 바보같은 녀석에게 상처받은 가여운 아이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나나를 차버리다니, 멍청한 녀석. 정말로.

 

  "괜찮겠어?"

  "네. 괜찮아요!"

사람이 평소보다 다섯 배는 몰려, 아사쿠사 역은 목소리에 힘을 주지 않고서는 소음에 묻혀 들리지도 않을 정도로 혼잡했다. 처음 만났을 때의 침울함은 전부 사라지고, 평소의 기운찬 나나로 돌아왔다. 다행이다. 나도 나나 덕분에 감정을 추스릴 수 있었다. 나는 나나에게 전철이 혼잡할 텐데 차라리 택시를 타는 게 어떻냐고 재차 물었다. 나나는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요, 선생님!"

  "아니, 돈은 걱정 안 해도 돼! 정말로!"

나나는 아까보다 더 힘을 주어 고개를 저었다. 나나의 짤막한 혼잣말이 주변의 소음에 가려 희미하게 들렸다.

  "이것보다 더 많이 바랄 수는 없겠죠."

나는 나나의 혼잣말을 제대로 들은 게 맞는지 혼란스러웠다.

  "뭐라고?"

  "아무것도 아니에요!"

아무래도 잘못 들은 모양이었다. 하나하나 캐묻는 눈치 없는 짓은 하지 않았다. 나나의 나름 만족스러운 하루를 깔끔하게 마무리 지어주고 싶었다. 나는 알았다고 하고 억지로 삼천 엔을 그녀에게 쥐어 주었다. 카페에서 먹지 못한 케이크라도 하나 사먹으라고.

  "선생님! 이건!"

  "괜찮아! 미안해서 그래!"

갑작스레 엄청난 인파가 나와 나나 사이로 비집고 들어왔다. 작은 배 위로 덮쳐오는 거대한 폭풍의 파도도 이렇게 격하게 밀쳐내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인정사정 없이 작은 틈새를 비집고 들어왔다. 나와 나나는 포류하는 뗏목이 각자 다른 해류를 타고 퍼져나가는 것처럼 인파에 밀려 떨어졌다.

  "나나!"

  "타카오 선생님!"

  "조심해서 들어가!"

  "선생님도요!"

마침내 인파에 밀려 나나의 모습은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나는 인파를 어떻게든 헤치고 아사쿠사 역에서 힘겹게 빠져나와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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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피나렐로입니다.
만나서 반가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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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바르고 고운 말을 사용 합시다.
  • 포틴P (@howo***)

    좋구나아...
    하지만 이거 분명히 지금 프로듀서를 옭아매고 있는 과거와 밀접한 관계가 있을 것 같아...
    설마 나나가 다 꾸민 거라던가는..어..아니겠죠?
    1October 12, 2016 (수) 20:14_24
  • 야요잇찌 (@ozak****)

    항상 읽을때마다 생각하는건데
    실제 지명이라던가 진짜 있는 제품명이라던가가 있어서 마치 작가분이 수필을 쓰는것을 읽는것 같습니다
    요번편도 재미있었어요!
    2October 13, 2016 (목) 00:17_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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