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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작가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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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7-22, 2016 00:42에 작성됨.

세상에는 명작이라고 불리는 글이 있고 졸작이라고 불리는 글도 있다. 명작을 써내는 명작가와 졸작을 써대는 졸작가. 내가 지금 하려는 이야기는 한 졸작가의 이야기이자, 나의 이야기이다.

 

그렇다고 내가 글작가인 것은 아니다. 차라리 글작가라면 좋았겠지만. 나의 직업은 프로듀서다. 아이돌을 이끄는 프로듀서. 그래서 그게 글과 무슨 상관이냐고? 명작가와 졸작가는 단순한 비유일 뿐이다. 당신도 이쯤 하면 알아들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내가 나를 졸작가에 비유한 것에서 이미 알고 있겠지만, 결론부터 말하면 나의 프로듀스는 실패하는 중이다. 이제... 나의 이야기를 시작해보도록 하겠다.

 

내가 그녀와 처음 만났을 때, 그녀는 오디션에 갓 합격한 신인이었고 나는 신출내기 프로듀서였다. 열정 가득한 두 새내기의 만남...

 


M "오! 담당 프로듀서임까! ____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P "어, 어... 네. 잘 부탁드립니다... ____씨.

 


그 때 그녀는 나에게 태도가 너무 딱딱하다고 핀잔을 줬었지. 지금 생각해도 너무 딱딱한 태도였다. 저게 사람이야, 아니면 나사 빠진 로봇이야? 아무튼 신입 콤비는 열정과 희망으로 가득했고, 그 열정의 불꽃은 꽤나 오랫동안 타올랐다. 배경이 있다고 해도 빠른 시간 내에 인기를 얻기는 힘든 일이라는 것을 나도, 그녀도 알고 있었기에 우리는 미래에 대한 희망만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너무 길었다. 내 문제였다. 나도 신출내기였기 때문에 인맥이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었고 회사 내에서 입지도 없었다. 그렇기에 쉽게 일을 얻어내지는 못하고 일을 얻기 위해 내가 노력해야만 했다. 정말 힘들었지, 그 때는.

 

그래도 수확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간간히 일거리가 들어왔고, 그녀는 맡은 일에 최선을 다 했다. 그런데 뭐가 문제냐고? 물론 일을 계속하다보면 이름을 알릴 수도 있었겠지만, 그럴 만한 일들이 쉽게 들어올 리 없다. 사람들은 유명한 무대에 백댄서로 서게 된 아이돌을 기억할지는 몰라도 유명하지 않은 연극이나 쇼에서 잠깐 나오는 단역까지 기억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 나도 마찬가지다. 물론 기억해주는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내가 가져간 일들은 신인 아이돌이 이름을 알릴만한 일은 아니었다.

 

그렇게 잡스러운 일들만 하다가, 제대로 된 일거리를 받았다. 그 때 나는 기쁜 나머지 정신 나간 사람처럼 환호했다(물론 주변에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하고 한 일이다. 이 일은 비밀이니까 누구에게도 말하지 말아 줬으면 한다!). 그 일을 계기로 나의 아이돌이 날개를 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나는 나의 아이돌에게 그 일을 알렸고, 그녀는 그 일을 승낙했다.

 


M "프로듀서... 이거 꿈 아니지?"


P "꿈 아니야. 이번 일이 잘만 되면 인지도가 어느 정도 생길 지도 몰라."


M "그, 그건 나도 알아! 후와... 벌써부터 긴장되네..."

 


아, 말을 안 한 게 있는데, 우리는 서로 말을 놓게 되었다. 그녀가 입사한지 얼마 안 됐을 때 그녀가 알던 회사 사람이라고는 나랑 트레이너(당신도 그 꽁지머리 트레이너를 알 것이라고 생각한다.)밖에 없었기 때문에 나는 자연스럽게 그녀와 친해지게 되었다. 나중에는 다른 아이돌들과도 꽤나 친해지게 된 모양이지만. 어쨌든 자기 담당 아이돌과 친하다고 해서 나쁠 건 없잖는가?

 

일 이야기로 돌아가서, 그녀는 그 일을 잘 해냈다. 아니, 완벽하게 해냈다. 그것이 그녀가 아이돌로서 내딛은 첫 걸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바램대로, 그녀에 대한 인지도가 조금씩 생겨나고 있었다. 그 날 나는 그녀를 축하하기 위해서 같이 치킨집에 갔... 뭐? 아니, 그런 게 아니니까 오해하지 말아 줬으면 한다. 내가 가자고 한 게 아니라 그녀가 날 끌고 가서 나한테 돈을 내게 한 거였다! 치킨집이라니! 아무리 박봉이라도 음식점에 갈 돈 정도는 있었단 말이다! 흠흠... 아무튼 그 일을 발판삼아 우리는 멀리까지 내딛을 수 있게 되었다. 인지도가 올라서인지 일을 구하는 것이 조금 더 쉬워졌다. 하지만 남은 일이 있었다. 그녀는 CD데뷔와 라이브까지 한 아이돌이었지만, 그 이후로 라이브를 한 적은 없었다. 내가 준비한 데뷔 무대는 초라했지만, 이제 인지도도 조금씩 생기고 있었으니 더 나은 무대에 서게 해 주고 싶었다.

 


P "짜자잔."

 

M "뭐야, 이건?“

 

P "라이브 계획서.“

 

M "어? 내가 제대로 들은 거 맞지?“

 

P "아니, 잘못 들었어."

 

그녀는 내가 건네준 서류를 잠깐 흘겨보더니 나를 째려본다. 솔직히 말해서, 은근히 무섭다.

 

M "뭐야! 맞잖아!“

 

P "이제 슬슬 다시 무대에 서 보면 좋을 거라고 생각해서 준비했어. 자신 있지?“

 

M "물론 자신 있지!"

 


그렇게 라이브를 위한 레슨이 시작되었다. 이쯤에서 일이 터졌을 것 같은가? 아니다. 그녀는 라이브 또한 잘 해냈다. 그녀가 레슨을 잘 해낸 것도 있었지만, 그녀는 재능이 있었고, 그 재능을 발휘했다. 솔직히 말해서, 그녀 정도의 재능덩어리가 왜 내 담당으로 왔는지는 지금도 모르겠다. 오디션에서 심사위원들이 그녀의 재능을 제대로 못 알아본 것이었을까? 각설하고, 그녀는 잘 해냈다. 하지만, 관객은 적었다. 아직은 신인이니만큼 많은 관객 수를 기대하긴 힘들었지만 나는 내심 어느 정도의 관객 수를 기대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는 지금까지 열심히 해 왔고, 그 덕에 점점 인지도가 생겨나고 있었으니까! 약간 실망한 나는 라이브가 끝나고 난 뒤 그녀도 적은 관객 수에 실망했을지 걱정하며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P "...기분이 어때?"

 

M "엄~청 좋아!"

 

P "그... 실망하지는 않았어?"

 

M "응? 내가 실망해야 할 이유라도 있어?"

 

P “관객, 별로 없었잖아?”

 

M "그래도 데뷔 때보다는 관객이 늘었는걸! 수는 적지만 내 노래를 들어 주는 사람이 있었고, 관객 수도 늘어났으니까 좋은 무대였다고 생각해! 이야~ 이 이야기를 친구들한테 해 주면 분명 이 ____와 친구가 되기를 잘 했다고 생각할걸?"

 


그녀는 나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나는 적은 관객들만을 보고 있었지만 그녀는 노래를 들어주는 관객들을 보고 있었고, 그렇기에 그녀에게 그 무대는 성공한 것이었다. 부끄러워졌다. 결론만 놓고 보면 그 무대는 실패한 무대가 아니라 성공한 무대였다. 나는 그녀가 실망할 것만을 걱정했는데, 그녀는 오히려 기뻐했다. 데뷔 때는 적은 관객 수에 조금 실망한 듯 했었는데... 내가 제자리에 멈춰 서 있을 때, 그녀는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정체된 나와 성장하는 그녀. 내가 '이대로는 안 된다'고 생각했던 것은 이때부터였을까?

 

다음 날, 나는 일을 하다가 말고 라이브가 끝나고 난 뒤의 대화를 생각했다. 내가 저 위의 별들을 바라보고 있을 때, 그녀는 아래쪽의 땅을 내려다보고 있는 것 같았다. 어쩌면 내가 그녀의 인기가 조금씩 생겨나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는데 그것을 실감하지 못했지만 그녀는 관객이 늘어났다는 사실, 자신이 성장했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인지했던 것은 그래서였는지도 모르겠다. 하늘을 향해 올라갈 때 하늘을 보면 얼마나 높이 올라왔는지 잘 모르지만 아래를 내려다보면 얼마나 높은지 알게 되니까. 나도 그녀처럼 위쪽만을 보는 것뿐만이 아니라 아래를 내려다보는 것도 할 수 있을까?

 

 


P "후우... 일이 벌써 다 끝난 건가? 나도 과로라는 걸 좀 해 보고 싶은데, 이놈의 일들이 도와주지를 않네. 좀 더 노력해서 과로할 수 있도록 일거리를 더 가져와야지!"

 

말은 이렇게 했지만 막상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할 일도 없어서 '일이 더 많아진다면' 이라는 주제로 이런 저런 생각을 하던 도중, 갑자기 전화기가 울려대기 시작했다.

 

선배 "후배, 술 마시러 가자!"

 

P "아침부터 술타령입니까? 죄송하지만, 일이 남아서 못 갈 것 같습니다."

 

선배 "일 하나도 없어서 놀고 있는 거 다 안다. 잔말 말고 튀어와라, 이 후배놈아."

 

P "일 없는 건 선배도 마찬가지잖습니까."

 

선배 "휴가 중인 나랑 일 없는 너랑 비교가 되냐?"

 

슬프게도, 비교가 되지 않는다. 저 선배는 일이 너무 잘 되는, 이 회사의 유망주다. 그건 그렇고 전에는 일 핑계 대면 일 없는거 다 알면서도 다른 사람이랑 술 마시러 가더니, 지금은 왜 오라고 하는 거지? 지인도 많으니 부를 사람이 없는 것도 아닐 텐데, 꼭 나와 마셔야만 하는 이유라도 있나? ...약간 궁금해진 나는, 선배가 있는 곳으로 가 보았다. ...절대로 할일 없어서 놀려고 간 건 아니었으니 오해 말기를 바란다.

 

P "그래서, 왜 부르신 거죠?“

 

선배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하려고 불렀다.“

 

P "네?“

 

선배 "그러니까, 일 주려고."

 

내가 헛것을 들었나? 일을 준다고? 저 선배가? 나한테? 어째서?

 

P "일거리가 있으면 선배 쪽에서 하면 될 것 아닙니까? 아니 그리고, 휴가를 보내시는 중이긴 하지만 곧 끝날 테고, 휴가 중이라고 해도 일이 있으면 바로 휴가 반납하고 일 시작하실 선배님께서 저한테 일거리를 주신다고요?“

 

선배 "내 쪽에서 받을 수 있는 일이라면 당연히 내가 꿀꺽했겠지. 하지만 스케줄상 무리라서 넘겨주는 거다."

 

선배가 내민 자료는 회사에서 진행하는 페스티벌에 관한 자료였다. 이런 일이 기획되고 있다고 들어 본 적은 있지만, 관련 자료를 보는 것은 처음이다. 흠, 꽤나 큰일인데? ...잠깐만, 이런 곳에 ____를 세울 수 있다고? 정말로? 이 선배 장난치는 거 아냐? 아니, 이런 일로 장난칠 사람이 아니다.

 

선배 "너도 이게 뭔지는 알고 있겠지? 내 쪽에서 제의받았던 건 메인 무대였지만, 거의 동시에 일이 잡혔거든. 그래도 내가 말 좀 하면 비중은 작겠지만 네 아이돌... 이름이 ____랬나? 아무튼 그 녀석을 대형 무대에 올릴 수 있어. 너한테도, 걔한테도 좋은 기회 아니야?“

 

P "네, 좋은 기회입니다. 이런 일거리를 가져다주셨으니 감사하는 게 먼저겠지만,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선배 "왜 너한테 그 일을 가져다주는지 묻고 싶은 거지?“

 

P "...그렇습니다. 일을 줄 만한 다른 사람들도 많았을 텐데, 왜 하필 접니까?“

 

선배 "일단, 내 후배 중에서 네가 가장 실적이 안 좋거든.“

 

P "......“

 

선배 "그래도 너는 노력하고 있으니까, 이런 기회라도 주고 싶었다. 너는 잘 모르겠지만, 초짜 치고 그 정도면 괜찮은 거야. 노력하는 사람, 그것도 어느 정도 결실을 맺고 있는 사람에게는 기회를 줘 봐야 하지 않겠어? 아무튼, 할 거냐?“

 

P "...대답은 이미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M "안녕, 프로듀서!"

 

P "안녕, ____. 아, 맞다. 거기 탁자 위에 있는 자료 좀 봐 줄래?"

 

M "응? 이게 뭔데?"

 

침묵이 흘러가고 있었다. 자료를 보고 있는 것이겠지. 이윽고 "우와아악?!"하는 비명 소리가 들리는 걸 보니 많이 놀란 것 같다. 나라도 놀랐겠지.

 

M “저기, 프로듀서? 이거 설마...”

 

P “맞아. 비중은 좀 낮지만, 네가 거기에 나가게 되었어. 그래서 말인데, 그 무대에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일을 조금 줄이는 대신 레슨에 집중하려고 하는데... 너 괜찮아?”

 

M "내가... 이런 무대에..."

 

P "올라가게 됐지. 이 일을 잘 해내면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갈 수도 있어. 그러니까, 열심히 해 보자!"

 

M "...응! 기합 넣고 열심히 해 보자, 프로듀서!"

 

우리는 작은 일보다 큰일에 집중했다. 오로지 그 무대만을 성공시키기 위한 레슨의 반복. 우리, 아니... 그녀는 날개를 펼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되었다.

 

 


M "드디어 이런, 큰 무대에 서게 되는 거네..."

 

P "그래.“

 

M "이 커다란 곳에 관객들이 가득 채워진다면, 그 앞에서는 어떤 광경이 보이는 걸까...?“

 

P "그건 나도 말해줄 수 없어. 그러니까, 직접 확인하면 되는 거야. ...할 수 있지?"

 

M "...응!"

 

시작되기 전, 나는 ____와 무대에 서 있었다. 그녀가 서게 될 무대에. 이제 곧 축제가 시작되고, 사람들이 객석을 채우겠지. 나는 그녀를 믿는다. 그녀가 그 사람들을 모두 그녀의 팬으로 만들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P “좋아, 이제 곧 무대가 시작돼. 나도 이러고만 있을 수는 없지! 여기저기 다니면서 일을 도와주는 게 좋겠어. ____는... 내가 없어도 혼자서 잘 해낼 수 있겠지?”

 

 


P “지친다...”

 

이제 곧 그 녀석의 무대다. 잘 됐으면 좋겠는데...

 

스태프 “____ 씨의 프로듀서 분이시죠?”

 

P “네, 그렇습니다만.”

 

뭐지?

 

스태프 “저... 큰 무대라서 ____ 씨가 너무 긴장하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순서 변경을...”

 

순서를 변경한다고? ____가 지금 무대에 나갈 수가 없다고? 긴장 때문에?

 

...이건 내 책임이다. 담당 프로듀서로서 ____의 옆에서 긴장을 풀어 주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 했다. 이건... 내 잘못이다.

 

 


결국 그녀는 제 차례에 무대에 오르지 못 했고, 다른 아이돌이 무대에 오르게 되었다. 관객들의 반응은... 별 볼 일 없었다. 그저 ‘그런가보다’하는 반응만이 나왔을 뿐, 누구 하나 ____가 나오지 않아서 아쉬워하지 않는 것 같았다. 역시, 그녀는 그들에게 많고 많은, 이름도 기억하지 못하는 아이돌들 중 하나였을까.

 

지금이라도 그녀를 위로해줘야겠지만, 차마 그녀를 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나는 그저 어딘가에 앉아 내 책임이라고 생각하는 것 밖에 할 수 없었다. 정말 한심한 인간이네, 나는.

 

관객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

 

P “......?”

 

유명한 아이돌이 나왔는지, 우레와 같이 터져나오는 관객의 함성소리를 듣고 나는 잠에서 깨어났다. 잠깐... 잠이 들었던 것 같다. 나는 멍하니 앉아 있다가 잠에서 깨기 위해 커피를 사러 자판기를 찾아나섰다.

 

 


달그락, 하고 커피가 나왔다. 커피를 줍기 위해 몸을 기울이자, 누군가의 구둣발이 보였다. 누구지?

 

동료P "관객들 반응은 보셨나요?"

 

입사 동기였다. 관객들 반응을 봤냐고? 도발이라도 하는 건가?

 

P "뭘 말하고 싶은 겁니까?"

 

동료P "당신도 알고 있는 것을 말하려는 중이죠. 다시 말하겠습니다. 관객들 반응은 보셨습니까?"

 

P "...봤습니다."

 

관객들의 반응이 시큰둥했다는 것은 나도 알고 있다. 이 사람은 왜 나한테 이런 질문을 하는 걸까? ____가 정말 이런 무대에 올라올 만 했냐고 묻는 걸까? 그녀가 무대에 오른 다른 모든 아이돌과 비교해보면 인기가 낮은 편이긴 하지만, ____가 이 무대에 올라온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이 축제는 인기가 별로 없는 다른 아이돌들을 어필하기 위한 자리이기도 했으니까. 그렇다면, 어째서 이런 질문을 하는 걸까?

 

동료P "이 축제가 열린 이유 중에 다른 아이돌들을 어필하기 위해서라는 이유도 있다는 것은 알고 있겠죠. 축하를 드리려고 합니다. 이 무대에서 가장 빛난 아이돌의 프로듀서에게."

 

대체 무슨 소리지?

 

P "잠깐만요, 그게 무슨 소리죠?"

 

동료P "정말 몰라서 물어보시는 겁니까? 우리 회사의 다른 '평범한' 아이돌들이 나왔을 때는 별로 호응이 없었죠. 당신의 아이돌도 예외는 아니었지만, 그녀는 대단하더군요. 약간 긴장한 기색이 있었지만, 무대 위의 그녀는 완벽했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무대가 끝났을 때, 관객들은 완전히 그녀에게 매료됐던 모양입니다. 관객들의 환호성이 정말 걸작이었죠!"

 

그 환호성이 ____를 위한 것이었다고? 정말로 그녀를 향한... 관객들의 환호였다고?

 

내 걱정이 무색하게, 그녀는 결국 혼자서 해냈다.

 

...나는, 그녀에게 정말로 필요한 존재일까?

 

 


일을 따낸다. 일이 들어온다. 일을 처리한다. 일 때문에 피곤하다. 나의 소원이 이루어졌다. 드디어 일 때문에 힘들어졌다!

 

그녀가 그 일을 성공적으로 해내고 난 뒤, 그녀의 인지도가 팍! 하고 올라간 느낌이다. 일을 따내는 횟수가 늘어났고, 일이 들어오기도 했고, 무엇보다 팬클럽도 생겨난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지금 한 가지 고민을 하고 있다.

 

그녀의 날개가 된 그 기회는, 내가 잡은 기회가 아니었다. 나의 선배가 물어다 준 기회였지. 나는, 그녀에게 날개를 달아주지 못했다. 지금은 괜찮을지 모르지만, 나의 프로듀스로 날개를 단 그녀를 더 높이 올려 줄 수 있을까? 나는 그럴 수 없을 것 같다. 나는 그럴 자신이 없다.

 

내가 나를 졸작가라고 했던 것을 기억하는가? 두말할 것도 없이, 나의 '졸작'은 그녀다. 내가 차라리 글작가였으면 좋았을 거라고 했던 것도 기억나는가? 내가 차라리 글작가였다면, 내가 만약 그저 그런 졸작가였다면 나의 졸작은 모두에게서 잊혀지고 가끔 가다 그런 작품을 만들어냈다는 것에 쪽팔려하기만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내가 다루어야 하는 '작품'은 한 사람이었다. 이 작품을 망치는 것은 글을 망치는 것과는 전혀 비교할 수 없다. 물론 내가 그녀라는 아이돌을 망쳐버린 것은 아니었다. 내가 프로듀스한 그녀는 인기가 별로 없는 '평범한' 아이돌이었으니까.

 

그런데도 내가 왜 졸작가냐고? 평작가 아니냐고? 내가 졸작가인 이유는, 세상은 평범한 아이돌을 제대로 바라봐 주지 않기 때문이다. 마치... 사람들에게 읽히지 않는 졸작 소설처럼. 이 세상의 다수는 빛나는 것만을 원한다. 불우한 과거를 딛고 일어난 사람이 마침내 엄청난 업적을 이뤄 빛나는 사람이 되었을 때, 세상이 과거의 불우한 그를 기억할까? 아니, 세상은 그가 이뤄낸 빛나는 업적을 보며 그의 빛을 기억할 것이다. 과거의 어둠은 빛에 묻혀버리게 되겠지. 물론 그의 어둠은 이야기가 되어 기억되겠지만, 그 이야기는 빛을 더 밝게 해주는 도구일 뿐이다. 만약 그 사람이 지금도 어둠 속에 있었다면 세상이 그를 기억했을까? 극히 일부의 사람들은 기억하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니겠지.

 

...물론 그녀가 어둠 속에 있다는 것은 아니다. 지금은 더더욱 아니지! 내가 프로듀스했던 그녀는 실적도 그럭저럭 나오고 있고, 팬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보통'의 아이돌이었다. 저 위에서 '아름다운 빛'을 발하는 아이돌이 아닌 '평범한 빛'을 발하는 아이돌. 세상은 빛나는 것을 원한다. 어둠이 빛에게 삼켜지듯, 평범하게 빛나는 보석은 더 아름답게 빛나는 보석에게 묻혀버리게 된다. 사람들이 보석을 사러 갔을 때, 자신이 고른 아름다운 보석은 기억하지만, 그 옆에 있던 더 작은 보석을 기억하지 못 하는 것처럼...

 

돈이 부족해서 작은 보석을 산 사람은 옆에 있는 더 큰 보석을 보며 돈이 더 있었으면 저것을 샀을 거라고 생각하며 그 보석 또한 기억할 것이다. 하지만, 하지만 그녀는 다르다. 그녀는 아직 제대로 다듬어지지 못한 원석이다. 나의 투박한 솜씨로 다듬어져 아직은 평범하지만, 더 아름다워질 수 있는 보석의 원석이자 졸작가에 의해 사용되어 졸작이 되어버린 좋은 소재... 그녀는 나에게는 과분한, 빛날 수 있는 재능을 가진 아이돌이다. 나는 그녀가 빛나게 되는 것을 원한다. 하지만, 나와 함께라면 제대로 빛을 낼 수 없을 것이다.

 

선배가 준 일이 그녀를 더욱 빛낸 것처럼, 나보다 더 실력이 좋은 프로듀서가 그녀를 프로듀스해야 한다. 졸작을 명작으로 만들려면, 실력 좋은 작가가 그 '졸작'을 ‘리메이크’해야 하지 않겠는가?

 

나는 그녀를 놓아주기로 결심했다.

 

 

 

상사 “정말 괜찮겠나?”

 

P “네, 괜찮습니다.”

 

상사 “왜 하필 지금 그만두려는 건가?”

 

P “제 담당 아이돌에게는 더 좋은 프로듀서가 필요하고, 저는 이제 다른 아이돌을 프로듀싱할 자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 이건 그녀가 재능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니까, 다른 졸작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게 최선이야.

 

상사 “...알겠네.”

 

 

 

M “프로듀서~ 오늘도 안녕!”

 

P “응, 안녕.”

 

M “오늘 스케줄은... 비어 있네?”

 

P “일이 생겨서 그쪽에서 취소했어.”

 

마침 잘 됐다. 이제는 그녀에게 말해야 할 때다.

 

P “____, 할 말이 있어.”

 

M “응? 뭔데 그렇게 심각한 표정을 하는 거야?”

 

P “나...”

P “아니야, 그냥... 여기까지 해 온 네가 대견해서...”

 

M “뭐야, 그게? 싱겁게시리.”

 

말할 수 없었다. 어쩌면 이대로 말하지 않고 그냥 도망치는 편이 더 현명할 지도 모르겠다. 어차피 나 같은 게 그녀의 인생에서 없어져도 슬퍼하지는 않을 테니까. 나는 그저 그녀의 인생에 지나가는 사람 중 하나일 뿐이니까.

 

나는 그렇게 도망쳤다.

 

 

 

이게 나의 이야기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녀를 만난 적은 없다. 그녀를 TV나 인터넷, 잡지 등에서 본 적은 있어도, 그녀와 만난 적은 없다.

 

P “일자리가 필요해...”

 

그리고 난 프로듀서를 그만 두고 나서 지금까지 일자리 없이 지내고 있다.

 

갑자기 전화가 걸려왔다. 이게 며칠 만에 받아보는 전화더라? 아마 구인광고를 보고 연락했던 곳에서 걸려온 전화겠지. 잘 됐으면 좋겠는데...

 

M “프로듀서! 만나! 지금 당장!”

 

____? 이 녀석, 어떻게 내 번호를 알아낸 거지?

 

P “지금은...”

 

M “됐으니까, 만나자고! 당장!”

 

 

 

M “......”

 

P “......”

 

거북해! 거북해! 정말로 거북해! 이런 분위기는 질색이다. 뛰쳐나가고 싶다. 카페에서 이게 무슨 분위기냐, 정말.

 

M “왜... 그런 거야?”

 

P “...뭘?”

 

M “왜 아무런 말도 없이 그만둔 거냐고! 말해줄 수도 있었잖아!”

 

P “말한다고 달라질 결과는 아니었어.”

 

M “그럴 리...”

M “...왜 그만둔 거야?”

 

P “능력의 부족을 느꼈거든.”

 

M “겨우 그런 이유야? 우리 둘이서 함께 한다면-”

 

P “둘이서 함께? 아냐. 너는 재능이 있지만 난-”

 

M “그렇다면 상관없잖아! 프로듀서가 제대로 못해도 내가 잘 하면 되는 거잖아!”

 

P “정말로 괜찮을까? 다른 프로듀서와 함께라면 더 높은 곳을 노릴 수 있을 텐데?”

 

M “당연히 괜찮지!”

 

P “내가 안 괜찮다고! ...내가 네 발목을 잡게 되는 건 싫단 말이다.”

 

M “그렇다고 그만둘 것 까지는...”

 

P “너는 재능이 있어서 잘 됐지만, 다른 아이들은? 내가 다른 아이돌을 담당해도 너처럼 일이 잘 풀릴까? 그렇지 않을 것 같아. 망칠 것 같다고. 내 능력으로는 안 될 것 같단 말이야! ...그럴 바에는 차라리 그만두는 게 낫다고.”

 

M “...알겠어. 가 볼게. 물어보고 싶은 건 다 물어봤으니까.”

 

P “그래. 웬만해서는... 다시 만나지 말자.”

 


---------------

 


M “뭐야, 정말! 자기 고집대로만... 내 생각은 안 하는 거야?”


M “역시 시간을 들여가면서 설득해야 하나...”중얼

 

?? “음, 거기 자네! 팅하고 왔다!”

 

M “네? 저요?”

 

?? “초면에 실례인 건 알지만, 자네 혹시 아이돌에 관심 없나?”

 

M “네에에?”

 

?? “아, 오해는 말게! 두 명 뿐이지만 프로듀서도 있고, 다른 아이돌 제군들도 있는 엄연한 프로덕션이지, 이상한 곳은 아니라네!”

 

M “그런 게 아니라, 저는...”

 


(설명중...)

 


사장 “몰라봐서 미안하네, ____군.”

 

M “괘, 괜찮아요! 제 변장이 완벽했다는 증거니까요! 미안해하실 거 없으세요!”

 

사장 “아무튼, 실례했네. 나는 이만 가보겠네.”

 

M “저기, 잠깐만요!”

 

사장 “응? 왜 그러나?”

 

M “방금, 프로듀서가 두 명 밖에 없다고 하셨죠?”

 

사장 “그, 그렇네만.”

 

M “아이돌은 몇 명이나 있는 거죠?”

 

사장 “일단 13명이 있고, 최근에 극장을 신설해서 37명을 더 모았으니 총 50명이라네! 아직 37명은 담당 프로듀서가 없는 상태지만..."

 

M (프로듀서가 2명밖에 없는데, 아이돌만 50명이라고? 그냥 블랙기업이잖아!)


M (그래도, 프로듀서라면 외면할 수 없겠지. 착한 사람이니까. 아무튼, 질러 보는 거야!)


M “저기, 부탁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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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___도 가 버렸고, 여기 있을 이유도 없으니까 나도 이만 가 볼까?

 

사장 “미안하네만, 좀 앉아도 되겠나?”

 

뭐지, 이 아저씨는?

 

P “......”

 

사장 “자네, 프로듀서를 해 볼 생각 있나?”

 

뜬금없이 뭐지?

 

P “없습니다.”

 

그만둔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해 볼 생각이 있냐고? 당연히 없지.

 

사장 “...자네, 아이돌이란 뭐라고 생각하는가?”

 

P “네?”

 

사장 “자네가 프로듀서였다는 건 이미 알고 있네. 자네는 아이돌에 대해 어떤 생각을 했나?”

 

____가 끌어들인 사람인가? 지금이라도 일어나서 가 버릴까?

 

...아냐, 왠지 이 질문에 대답하고 싶어졌어.

 

P “저는... 아이돌이란 높은 곳에서 빛나는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사장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지. 하지만, 낮은 곳에서 빛나는 존재도 있지 않겠나?”

 

P “별들은 낮은 자리에서 하늘을 밝힐 수 없습니다.”

 

사장 “하지만 땅은 밝힐 수 있겠지. 자네는 아이돌이라면 높은 곳에서 빛나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군.”

 

P “...그렇지 않으면 도태될 뿐이니까요.”

 

사장 “도태되면 어떤가?”

 

P “네?”

 

사장 “아이돌들이 즐거워한다면 그걸로 충분하지 않겠는가?”

 

그렇게 바라볼 수도 있겠지만...

 

P “자신의 활동을, 자신의 노력을 다른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는데 과연 즐거울 수 있을까요?”

 

사장 “나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자네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군. 이참에 자네가 직접 확인해보면 어떻겠는가?”

 

P “확인이라고요...?”

 

사장 “우리 프로덕션에는... 프로듀서가 많이 부족하네. 최근에는 신인 아이돌 제군들도 모집해서, 더더욱 부족해지게 되었지.”

 

P “그게 절 고용하려는 이유로군요.”

 

사장 “그런 것도 있지만, 한 아이돌의 부탁을 외면할 수 없었던 것도 있다네.”

 

____이겠지, 분명.

 

사장 “자네가 올려놓은 장소가 낮건 높건 상관없네. 자네가 올려놓은 그 자리에서 아이돌들이 행복해하는지 확인해보는 것은 어떤가?”

 

P “하지만 저는... 실력이 좋지 않아서...”

 

사장 “자네의 실력은 중요하지 않네. 그 아이들에게는 프로듀서가 필요해. 자네는 그 아이돌들을 외면할 텐가?”

 

나는...

 

P “...좋습니다. 확인해보도록 하죠.”
P “하지만, 저 때문에 불행해하는 아이돌이 있다면 저는 그만두겠습니다. 괜찮겠습니까?”

 

사장 “내가 거절할 수 있는 처지 같은가?”

 

프로듀서 한 명 한 명이 아쉬울 테니까, 아니겠지.

 

P “그래서, 제가 담당할 아이돌은 몇 명이죠?”

 

사장 “37명이라네.”

 

P “...네?”

 

사장 “자, 당장 계약하러 가세나!”

 

아무래도 잘못 걸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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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logue]

 


린 “미오, 좋은 일이라도 있는 거야?”

 

미오 “응? 뭐가?”

 

우즈키 “조금 전부터 계속 웃고 계시잖아요!”

 

미오 “뭐, 좋은 일이라면 좋은 일일까?”

 

린 “설마 그쪽의 유명한 아이돌들과 같이 일하는 걸 기대하는 건 아니겠지?”

 

미오 “응? 시어터라잖아? 그럴 리 없지.”

 

린 "그럼 왜..."

 

미오 “그냥, 좋은 만남이 있을 것 같아서!”

 

 

타마키 “두목! 여기 좀 봐!”

 

P “야, 타마키! 그렇게 뛰어다니면 위험해!”

 

 

이런 만남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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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생각해도 제목을 잘못 정한 것 같습니다.

 

내팽개쳐놨던 글을 허겁지겁 써 봤습니다. 처음에는 분명 무언가를 써 내려고 했는데, 거기서 벗어나 이도 저도 아닌 글이 되어 버린 것 같네요. 무엇보다 P의 생각이 잘 표현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아마도 이게 제 한계겠죠.

 

본문에서 혼다 양의 이름을 ____와 M으로 표기한 이유는... ‘무명’ 상태를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이름이 잘 알려지지 않은... 에필로그에서는 '혼다 미오'라는 이름이 많이 알려진 상태이기에, 이름을 제대로 표기했습니다.

 

이 글을 쓰게 된 건 그냥 졸작에 관련된 글을 쓰고 싶었고, 거기에 ‘혼다 미오가 솔로로 시부야 린이나 시마무라 우즈키보다 먼저 데뷔했다면 어땠을까?’라는 소재가 생각났기에, 이 소재를 곁들여서 쓰게 되었습니다. 결과물은... 그렇게 잘 쓰여진 것 같지는 않네요. 중간에 넣을 만한 이야기가 생각이 나지 않아서 그냥 대충 써 낸 것도 있지만 말이죠.

 

P가 자신의 생각을 바꾸고 자신이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P의 프로듀싱 실력이 늘었는지는... 여러분의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아무튼, 재미없고 이상한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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