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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를 타락시키는 악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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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7-20, 2016 22:39에 작성됨.

어떤 이는 이 세상에는 오컬트니 판타지니 하는 비현실적인 존재는 결코 있을 수 없다며 단호하게 부정할 것이다. 그것은 책 속에서만 있을 수 있는 가공의 존재일 뿐, 결코 누군가에게 현실적인 영향을 끼칠 수 없다며 꿈에서 깨라는 충고를 하겠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어찌 현실에 존재하겠냐고 말하는 사람들의 뒤에서 닛타 미나미는 어떤 의미가 들어간 지 모를 미소를 머금으며 그들을 바라보던 눈동자를 당연하다는 듯이 덮었다.
 
애초에 유령을 보는 소녀라던가 신과 같은 분위기를 주는 소녀가 아이돌로서 같은 프로덕션에 소속되어 있는 이상 미나미는 아이돌이 되자마자 그런 '동심을 깨버리는 듯한' 생각을 버리고 말았다. 소위 말하는 '시야가 넓어졌다.'는 것과 비슷한 걸까. 19살, 대학생.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삶을 현재진행형으로 지내고 있는 미나미는 그런 '현실적인' 사람들을 외면하고서 한 명의 소녀를 머릿속에 추억을 되살리듯이 그리기 시작했다.
 

 
미나미가 소녀의 자세한 사정을 알게 된 건 그렇게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은 어느 날씨 좋은 날 때였다. 소녀가 소속된 유닛, 뉴 제너레이션과 미나미가 소속된 유닛, 러브라이카가 함께 같은 일을 하게 됐을 때, 창문도, 방문도 모두 닫혀진 밀실 안에서 소녀의 락커 바로 앞에 떨어진 하얀 깃털을 발견한 것이 그 시작이었다. 그 깃털을 미나미가 주의 깊게 바라보게 된 건, 그 깃털이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을 것처럼 아름다우면서도 너무나도 새하얀 색으로 물들여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때 당시에는 나중에 소녀에게 물어보자는 생각 외에는 드는 생각은 없었다. 미나미는 자연스러운 움직임으로 깃털을 주워 락커 안 쪽 한 구석에 자리 잡은 자신의 가방 안에 넣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고서 본방을 위해 스튜디오로 모였을 때, 미나미는 소녀의 알 수 없는 눈빛이 그녀의 동료, 쿨한 분위기의 소녀 시부야 린을 향해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 때에는 역시 두 사람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나 하며 두 사람이 알아서 하겠거니 생각을 했지만, 다시 보니 소녀의 눈빛은 언뜻 봤을 때와는 크게 다르게 꽤나 긍정적인 빛이 가득 담겨있는 것이 보이고 있었다.
 
[당신은 분명 잘할 수 있을 거예요.]
[괜찮아요, 힘내세요. 저도 같이 힘낼게요.]
[당신은 언제나 반짝반짝 빛나는 사람이에요.]
 
이상했다. 반짝이는 갈색 눈동자에서 들리는 듯한 말들은 모두 린을 축복하고, 응원하는 말뿐이었다. 소녀의 성격을 생각하면 그것 또한 그냥 지나가도 될, 미나미의 '착각'이었겠지만, 그런 것 치고는 그녀의 또 다른 동료, 혼다 미오에게 향하는 눈빛과는 어느 정도 차이가 존재하고 있었다. 그걸 아나스타샤도 느꼈는지 미나미의 귓가를 빌리고서 조심스럽게, 더듬더듬 특유의 말투로 말을 하기 시작했다.
 
"린과 우즈키, 뭔가 일이라도 있던 걸까요?"
"으음..., 글쎄? 적어도 나쁜 일은 아닌 것 같으니까 나중에 물어보도록 할까? 아냐 쨩."
"Да, 알겠어요, 미나미."
 

 
아마 이때가 미나미에게 있어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을 것이라 지금의 미나미 본인은 생각했다. 그 이후로 아무리 생각해도 신경이 쓰였는지 혹은 습관 삼아 그녀의 그 시선을 관찰하기 시작하니 의외로 자주, 아니 언제나 린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축복의 말이 담겨 있었다는 걸, 그녀의 린을 향한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그녀의 행운을 바라는 기원이 담겨 있었다는 것을 제3자인 미나미가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소녀의 마음은 언제나 린을 향하고 있었다.
 
프로젝트 크로네에 소속 되어, 트라이어드 프리무스로서 활동하면서. 그리고 따뜻한 미소의 주인의 진심이 담긴 바람을 받으며 린은 빛나는 자신의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미소 지으며 린의 목적지를 향한 여행에 언제나 고요한 축복의 바람에 불어오기를 바라며 손을 흔드는 소녀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 듯 필사적으로 가슴 속의 반짝임을 강하게 쥐고서 앞으로 나아가는 린의 등 뒤를, 소녀는 사랑을 담아 바라보면서도 입술은 씁쓸하게 웃고 있었다고, 미나미는 발견하고 말았다.
 
그 축복과 기원에는 따뜻한 사랑도, 씁쓸한 마음도 모두 담겨 있다고, 미나미는 깨닫고 말았다.
 
“우즈키 쨩, 잠시 괜찮을까?”
“네? 예..”
 
그런 걸 지켜봐왔으니 미나미가 소녀를 부르며 그것에 대한 질문을 하려고 하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미나미의 부름에 토끼 같은 동그란 눈동자를 끔뻑이며 소녀는 미나미의 말에 고개를 돌리고 시선을 마주한다. 약간의 장난을 치면서 린을 향한 소녀의 마음을 꺼낼 생각을 가다듬던 미나미는 무언가가 떠오른 듯 잠시 소녀에게 양해를 구하고서, 가방 안에서 하나의 새하얀 깃털을 꺼냈다. 언젠가 미나미가 소녀의 락커 앞에서 주운 깃털이었다. 이거 네 것이니? 그와 동시에 깃털과 미나미의 얼굴을 동시에 바라보던 소녀는 변명거리를 생각하려다가 단념한 듯 가벼운 숨을 몰아 쉬며 입을 열었다.
 
소녀는 천사라는 것, 사명이자 소녀가 자진해서 맡은 일은 시부야 린을 축복하고, 시부야 린이 가는 길을 뒤에서 응원하며 언제까지고 지켜보는 것, 쉽게 말하자면 시부야 린의 수호 천사라며 언제나 아름답게 빛나는 미소를 머금으며 우물쭈물하는, 그리고 믿을 지 모를 말을 담으면서 불안해하는 마음을 표현하듯 손가락을 꼼지락꼼지락 움직이던 소녀는 자신 안에서만 품던 진실을 자신이 소속된 프로젝트의 리더에게 풀어 넣었다.
 
허황된 말일 것인데, 분명 놀리는 게 아니냐고 장난친 아이를 혼내듯이 대답을 해야했지만 미나미는 그러지 못했다. 같은 프로덕션 소속의, 꽤나 오컬트적인 동료들이 떠오른 탓이겠지. 신빙성이 왜 그런 곳에서 오는 거냐고 미나미는 쓴웃음을 지었지만 유령을 보는 아이도 있는 마당에, 천사 본인인 사람도 없겠냐는 어쩌면 소녀에게 있어 무례할 수도 있는 마음이 두둥실 떠오르며 소녀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눈동자를 굴리는 것으로 생각을 가다듬은 미나미는 본래 질문을 물었다.
 
"혹시 천사 님은, 린 쨩을 사랑하니?"
"그야 물ㄹ..., 네? 네..., 예?!"
 
반응이 무척 귀엽다. 갑작스럽게 소녀를 향한 호칭이 변해버린 것을 모르는 채 숨을 죽여 웃고 싶은 걸 꾹 눌러 넣으며 미나미는 진지한 얼굴을 계속 쓰며 소녀를 바라본다. 언젠가부터 이런, 미나미 자신의 앞에 서있는 소녀의 목소리를, 모습을, 그리고 린을 바라보는 축복의 천사의 모습을, 그러면서도 씁쓸하게 표정을 짓는 어리석고 겁 많은 소녀의 모습을 잡기 위해 손을 뻗고 있었다. 그런 소녀의 모습이 바로 앞에 있는 거에 가슴이 강하게 죄어온다. 두근두근 뛰는 욕망은 어서 빨리 뛰쳐 나가고 싶다며 안달을 부리고 있었다.
 
어째서 그렇게 생각했냐는, 필사적으로 마음을 진정시키면서 미나미의 질문으로 떠오른 마음을 내보이는 소녀의 얼굴을 바라보던 미나미는 자신의 날뛰는 욕망을 누르며 다 알고 있다는 듯 미소를 슬쩍 흘리며 말했다. 천사 님의, 린 쨩을 바라보는 시선에서 축복와 함께 사랑이 느껴져서?
 
들키고 있었냐며 소녀가 씁쓸하게 웃는다. 역시 자신은 무언가의 뒤에서 아무도 모르게 일을 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인 게 아닐까 고민이 들기 시작했다며 장난스럽게 말을 한다. 부모에게 자신이 한 실수를 말하는 것처럼 계속 꼼지락거리던 손가락은 미나미가 질문을 하는 사이에 이미 멈춰버리고 말았다. 키 차이 때문에 자연스럽게 내려다보게 되는 구도가 새삼스럽게 부담이 된 건지 소녀는 고개를 움푹 숙였다.
 
"린 쨩은 알고 있니?"
 
천사 님이 천사라는 것을. 언제나 천사 님이 축복과 간절한 사랑을 보내고 있다는 것을. 소녀를 살짝 내려다 보는 미나미의 시선에는 슬픔마저도 흔들리며 파도를 치고 있다. 그 슬픔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희망인지 절망인지는 본인도, 소녀도 모른다. 소녀는 미나미의 얼굴을 용기를 내 다시 고개를 들어 미나미의 눈동자를 보면서 자신 없이 아니라고 부정한다. 린 쨩은 아이돌로서 열심히 앞을 보며 뛰고 있으니까, 뒤를 돌아볼 시간은 없다며 오른손으로 어색하게 자신의 묶인 일부 머리카락을 쓸어 내리며 답했다. 
 
갈색 머리카락을 연신 쓸어 내리며 씁쓸하게 웃는 소녀의 손목을 미나미는 강하게 잡고서 들어 올리고 말았다. 그대로 다시 힘을 줘 소녀를 자신의 바로 앞까지 끌어 당긴 미나미는 자신의 손이 강하게 닿는 손목이 아파오는 듯 얼굴을 찡그린 소녀의 모습을 보며 짧게 사과를 한다. 소녀의 가녀린 갈색 눈동자를 잡아 먹을 듯 지켜보던 미나미는 아까 전부터 계속 뛰는 욕망을 감옥에서 꺼냈다. 이 때가 기회였다.
 
"그렇다면 내게 그 축복을 내려줄 수는 없겠니?"
"...예? 하지만..."
"알고 있어. 수호 천사는 그 사람에게 축복을 내리는 거지? 그런데 반드시 한 사람에게만 내려야 한다는 규칙이 있니?"
"아...,뇨..."
"나는 말이야, 널 좋아하고 있었어."
 
너를 지켜보기 시작하면서, 언제 자신의 이 감정에 자각한 적이 있었다면서, 그 이후로 그 축복을, 사랑을 자신도 받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독점할 수 없다면, 적어도 나눠서라도 가지고 싶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너의 그 마음을 깨달은 후에 자신이 그걸 포기해야 한다고 해도, 손에 든 것을 놓아야 된다고 해도, 그럼에도 받고 싶었다. 나는 너를 사랑하고 있었다. 너의 일부라도 이 손에 넣고 싶었다. 미나미는 소녀에게 겨우 들릴 만한 크기의 목소리로 무겁게 말했다.
 
그것이 미나미의 노림수였는지, 우연의 산물인지는 소녀는 몰랐다. 그저 미나미의 절절한 마음을 모른 척 할 수는 없었다. 모르는 사람도 아니고, 동료이자 자신을 사랑한다고 당연하다는 듯이 말해주는, 자신을 곁에서 바라봐 와 준 이 사람을 그냥 놔둘 수는 없다고 소녀는 결심한 듯 입술을 깨물면서 눈동자에 결의를 넣었다. 그것이 최대의 실수였는지는 그 자리에선 모르고 있었다.
 
"저! 저라도 괜찮으시다면..."
 
미나미의 입술이 곡선을 그린다. 그걸로 된 거라는 만족과 욕망으로 새하얗게 물들은 말을 등 뒤로 숨기고서 미나미는 감사 인사를 소녀에게 전한다. 고마워, 역시 친절하구나. 미나미의 칭찬에 소녀가 송구스러운 듯 몸을 뒤로 젖히며 그렇지 않다며 당황하지만, 그대로 소녀의 등 뒤를 잡고서 안으려고 하는 듯 자신 쪽으로 끌어당긴 미나미의 모습이 뭔가 부끄러운 듯 소녀의 잔뜩 붉게 물든 얼굴을 보며 미나미는 말했다.
 
"고마워, 잘 부탁할게."
 
소녀에게 부담이 되지 않도록 은은하게 빛나는 달처럼 미소 지었다. 그 미소가 퍽 마음에 들었는지 소녀는 어느 정도 기운이 난 목소리로 미나미의 이름을 부르며 미나미의 두 손을 모아 붙잡았다. 적당한 크기의, 햇빛이 강한 최근에 바깥에서 활동을 많이 하는 것이 보이는 듯 살짝 탄 손이 미나미의 하얀 손을 덮는 것을 보며 미나미는 장난스럽게 말했다. 이게 천사 님의 축복이구나. 그 장난에 소녀는 부끄러운 듯 손을 놓으려 힘을 뺐다. 동시에 미나미의 손이 소녀의 떨어지려는 두 손을 붙잡았다. 
 

 
그로부터 얼마 후, 미나미는 언제나처럼 린의 뒷모습을 아련하면서도 간절하게 바라보는 천사의 모습을 보고 있었다. 언제나의 일인 건 알고 있고, 사랑하는 건 진심이긴 하지만 그런 천사의 모습을 보면서도 질투는 나지 않는다. 신기하다면 신기한 일이지만 그 직후 미나미를 발견하고서 달려오며 축복의 입맞춤을 미나미의 손등에 하는 천사의 모습이 미나미에게서 질투 대신 만족감을 주고 있었다.
 
천사의 축복은 미나미의 앞날에 함박눈처럼 흩내리고 있었다. 미나미의 피부에 닿는 눈은 미나미의 몸속으로 스며 들어가 미나미에게 한 종류의 쾌락을 선물하고 있었다. 예전과 달라졌다고 한다면 예전의 천사의 선물에는 축복과 자애만이 있을 뿐이었지만, 지금의 천사의 선물에는 하나의 사랑까지 들어가 있다는 점이었다. 미나미는 그런 천사의 선물을 껴안고서 웃고 있었다.
 
천사는 자신의 수호 대상을 배신한 것이었다. 그것이 천사가 깨닫고 있는 건지는 몰랐지만, 오직 린에게만 주어져야 했던 축복도 바람도 사랑도 다른 누군가와 나눈 시점에서 그 순수한 마음은 새하얗게 타들어가며 천사에게 배반이라는 고통을 달콤한 쾌락으로 바꾸어 가고 있었다. 천사는 그 쾌락의 의미를 모르는 채, 그저 순수한 기쁨으로만 느끼고 있었다. 그렇지만 천사가 어떻게 느꼈던 간에 천사는 이미 누군가의 수호 천사가 아니게 되었다. 그 모습을 느긋하게 바라보며 미나미는 배덕의 과일을 요염하게 한 입 베어 물었다.
 
천사의 순수한 축복과 시선을, 미나미는 배덕과 배반의 색으로 물들이며, 소중하게 천사의 등을 껴안았다. 과육이 묻은 손가락이 소녀의 뺨과 입술을 만지며 이제는 하나의 유희마저 기대하고 있었다. 이대로 정말로 자신의 수호 천사를 깨닫지 못한 채 영원히 빼앗기게 될 것인가, 아니면 깨닫고서 자신의 것을 빼앗아 간 미나미를 절망과 분노의 눈으로 바라볼 것인가. 그때가 되었을 때 천사는 과연 어떤 모습과 행동을 보일까. 미나미는 천사를 만지던 손가락을 혀로 핥으며 자신이 만든 유희를 자신의 천사를 향한 사랑과 함께 즐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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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기한다면서 소재를 트윗으로 썼을 때랑 글로 완성 시켰을 때랑 너무 다릅니다.
 
백합. 린<-우즈<-미나 같은 느낌의.
 
역시 쓰고 보니까 너무 중구난방에 글 전체가 미(검열 삭제) 널뛰기 같아서. 으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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